이른아침 해가 떠오를무렵이면 풍경을 울리는 동자승을 앞세우고 붉은 가사를 두른 승려들이 길게 늘어서서 탁발을 수행한다.
미얀마 뿐만이 아니라 태국이나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의 여러 불교국가에서 흔한듯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광경이다.
사찰에서 수도하는 승려들이 인근 주민들의 보시를 통해 음식문제를 해결하는 수련생활 방식의 하나쯤으로 보여지고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하지만 불교적 교리에 입각한 탁발의 의미는 그런 일반적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소승불교를 받아들인 동남아에서는 사뭇 다르다.
(탁발)이란, 승려가 밤을 새워 수도정진함으로 발원한 복을 속세의 일반 신도들에게 찾아가 나누어 주는 성스러운 의식인 것이다. 스님들이 찾아다니며 나누어주는 복을 받는 사람들이 그에대한 감사함으로 무엇으로든 보시를 자발적으로 하는 의례행위인 것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미얀마나 동남아의 승려들은 신도들이 바치는 공양에 대해 별도의 감사를 일절 표시하지 않는다.
대승불교를 따르는 우리네의 의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소승불교에서는, 승려가 탁발 방문을 통해 일반 신도가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승려가 보시를 받아가면서도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보편타당한 상식선이 된다.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초기 불교가 생겨나던 시기의 교리를 중심으로 따르는 것이 바로 소승불교이다. 상좌부 불교라고도 한다. 미얀마나 동남아의 경우이다.
여기에서 벗어나 불교의 대중화를 이루며 보다 넓은 의미의 온세상의 구원을 추구하는 신앙관과 교리로 발전한것이 대승불교로 우리나라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불교 종파이다.
같으면서도 매우 다르고..... 심지어는 대단히 복잡하면서 그 깊이가 범부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아무튼 미얀마의 종교는 인구의 90% 이상이 믿는 불교이며, 소승불교에 속하는 '테라바다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업)을 굳게 믿으며, 이 순간에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것이 자신의 카르마(업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겨서, 어떤 이유나 상황하에서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윤회사상을 믿음으로 현세에서 열심히 수행하고 좋은 선행을 많이 하면 열반에 이르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게 간직하고 살아간다. 이승에서의 고뇌나 힘듬이나 고통은 훗날 열반에 들어 펼쳐질 내세의 영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기에, 우선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선행을 베풀며 나아가 불탑을 건설함으로써 최상의 공덕을 쌓기를 누구나 간절히 소망한다.
다분히 내세를 갈망하는 '구복신앙'적 요소가 강한 이들의 신앙은 질곡의 어두운 현세를 끝내려고 찾아오실 미래의 부처인 '아레인마데야'가 오실날을 간절하게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 바로 우리네의 '미륵불사상'과 아주 밀접한 사상이다.
일생에 한번은 머리를 깎고 승원생활을 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진정한 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대접을 받게된다.
또 미얀마에서는 여자로 태어난 다는 것 자체가 윤회설에 입각해 전생에 크게 공덕을 쌓지 못한 댓가로 여자로 태어났다고 여겨 여자를 여러면에서 천시한다. 여자는 사원에 나아가 불상 가까이에 가지도 못하거나, 아에 승려들과 어떤 접촉도 할 수가 없다. 철저하게 남성중시로 일반 생활이나 종교생활을 엄하게 구분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불교관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만달레이언덕을 시작했던 삼거리에 나오면 처음 만났던 짜욱또지사원 바로 옆으로 하얀 불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것이 보인다.
바로 (산다무니 파고다)이다.
처음에는 만달레이 도시를 건설하며 왕궁을 짓던 민돈 왕이 머물던 임시거쳐였는데, 대역사도중에 거나웅 왕자의 의문의 피살을 당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 자리에 불탑을 세웠다. 중앙의 황금 파고다에는 청동 부처상이 안치되었고, 각각의 불탑마다 속에는 불교경전을 돌판에 새긴 뜨리삐따까(불교경전)가 안치되어있다.
산다무니 파고다는 그리 큰편은 아니다.
당연히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경내를 둘러보다 밖으로 나오면, 정문 앞에 잘 가꾸어진 커다란 연못과 함께 아름다운 목조건물이 나온다. 흡사 우리나라의 경회루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잠시 땀을 시키고 난 후, 차량행렬이 꼬리를 무는 곳을 살펴보면 흡사 방금전 둘러보고 나온 산다무니 파고다가 그쪽에도 또 있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키에 딱 맞다. 산다무니파고다에서 방금 보고온 그런 하얀 불탑들이 좀 더 크기가 크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풍광이 자못 놀랍다.
(꾸도더 파고다)이다.
꾸도더(Kuthodaw pagoda)파고다는 2013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보호되고 있는 사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현판에 'The World'S Biggest Book' 적혀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책'을 보관중인 사찰로 더욱 알려져 있다. 불교경전을 돌판에 새긴것을 '뜨리삐따까' 라고 하는데, 역시 민돈 왕의 명령으로 729개의 대리석판에 깨알같은 불교경전을 새겨 넣고는,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하나하나의 하얀 불탑마다 하나씩의 뜨리삐까따를 보관하게 하였다. 2.400명의 승려를 동원하여 729개의 뜨리삐따까에 기록된 불교경전을 낭송토록 하였는데 500여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다. 1900년에 실제로 이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였는데, 400페이지의 분량으로 총 38권이나 되었다 한다. 물론 단일 기록으로 우리나라의 '왕조실록' 등에는 비교할 바가 못되겠지만, 커다란 돌판에 새겨진 '책'이라고 보면 가히 '세계에서 가장 큰 책' 이라는 의미가 실감이 난다.
사원 중앙의 황금빛 거대한 파고다는 바간의 쉐지곤 파고다를 모델로 하여 제작된 것이라 한다.
사원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을 때, 많은 방송 장비와 인원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어떤 특집 프로그램 놓과가 끝났나보다 생각하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꾸도더 파고다의 왼쪽으로 가장 깊고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곳에서 나머지 일부의 방송촬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미얀마의 한참 활기차고 미래가 촉망되는 청소년 무리가 모여서 자신의 의견도 피력하고 장기도 자랑하는, 오래전 우리나라 방송의 청소년 만남(미팅) 프로그램 같은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참석한 남녀 청소념이 30명도 넘어 보였다. 스탭들도 여럿이고...... 실내촬영을 끝내고 레크레이션 방송분을 녹화하는것으로 보였다. 호기심이 일어 다가갔다. 처음엔 제지했는데 배낭의 태극기를 보고는 손가락을 입에대면서 '조용히만 해달라'는 제스쳐를 보내온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 촬영도 하고, 그네들의 놀이하는 모습도 구경하고, 스텝들과 작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대한민국의 여러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스크랩 한단다' 이 프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따금 행사중인 청소년들 중에 나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도 있다. 태극기 때문일까? k-pop 때문일까?
미얀마의 젊은이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35년 전쯤의 나 였다면 나도 저들 틈에 끼어 앉았을텐데........
'젊음은 항상 아름답다.'
파고다에서 나오니 어느덧 저녁 무렵이 다되었다.
지금 위치에서 생각해보니 정사각형의 성곽을 가운데 놓고 완전히 정반대쪽 모서리에 서있다. 성벽의 모서리 두개를 지나고 나서 조금 더 가야 호텔인데..... 성벽 하나의 길이가 3km 이니까 아직 남은 거리가 6km..... 시오리를 더 걸어야만 한다.
오토바이 택시 잡을까?
해거름인 저녁무렵에도 족히 온도는 33도를 넘을것 같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젖은 땀에서 오는 끕끕함 보다 더 이상한 찜찜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게 만달레이의 전부인가?
이것이 미얀마라는 말인가?
누가 말했더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고......... 그런....... 뭐라 딱히 표현 할 수 없는 상념들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그동안 나름 적지않은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의 한복판에서, 여행지에서 중간에 이런 생각에 이런 느낌에 사로잡혀 본적이 없었다.
본래 만달레이에서 3일을 묵을 생각이었다.
바간에서 4일이나 5일을 머물 생각이었다.
그런데........
걸어가면서 생각 좀 해보자. 아무튼 오늘중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래 생각하며 좀 걷자.
호텔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미 밤은 깊어만 갔고 노점에서 현지인들 틈에 끼어 저녁도 해결했다.
정말 힘들고 피곤한 하루였다. 조금 무리도 했지 싶었다.
후런트에서 매니저를 만났다.
본래는 이쯤에서 내일 저녁 하루를 더 숙박기간 연장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스케줄을 바꾸기로 했다.
매니저에게 바간으로 가는 스피드 보트 에약을 부탁했다.
다음날 새격 7시 스피드 보트를 에약했고 픽업은 6시반으로 약속했다. 비용은 40$인데 수수료 2$을 더 주어야 했다.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는데 쉽게 잠이 찾아주지를 않는다. 두 블럭 떨어진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샀다. 안주는 겨우 과자 밖에 없다. 모두 비우고, 배낭을 열어 모든 짐 정리를 마치고 나서 다시 잠을 청했다.
배낭을 메고 프런트에 내려가니 매니저가 예약해 준 오토바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야와디 강변에 위치한 제티(선착장)까지 2.000짯(이천원)을 지불하고 몸을 실었다. 지도상으로 무척 가까운줄 알았는데 거리가 제법 있다. 이 날도 역시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이었는데, 새벽에 오토바이에 올라보니 여기 사람들이 새벽에 긴소매에 두터운 옷을 입는 기분을 알겠다. 하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
20여분을 달려 제티에 도착했는데도 강둑을 따라 계속 달려 내려가는 오토바이. 내가 예약한 보트회사가 저 아래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을 해서, 아직 날이 어두운 새벽에 아주 커다란 낡은 보트에 올랐다. 보트의 크기에 비해서는 대부분이 외국여행자들인 승객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대략 한 50여명 조금 웃도는 정도.
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가거나,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오는 보트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장 대중적인 수상교통인 슬로우 보트.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오가면서 여러군데의 마을을 들렸다 간다. 13시간 소요되면서 비용은 15달러선.
두번째는 9시간 소요되는 스피드 보트로 크기가 좀 작은 여행객 전용 보트로 중간에 두군데 정도 들리며 비용은 40$이고 아침만 준다.
세번째는 10간 소요되는 스피드 보트로 목적지까지 다이렉트로 간다. 40$이고 아침에 점심까지 준다.
내가 선택한 보트는 바로 세번째 보트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기에는 세번째 선택이 탁월하겠으나, 지금같은 건기에는 두번째를 선택하는 것이 최상이다.
7시 정각에 보트는 선착장을 떠났다.
바간까지는 장장 10긴의 멀고도 긴 뱃길이다.
무얼하며 보내지?
그나저나 이제 '만달레이는 안녕.'
에이야와디 강을 거슬러내려가는 보트에서 아침을 맞는다. 보트에서 처음 겪는 아침 일출.
그렇게 일출을 구경하면서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강을 따라 흐르듯 늘어선 언덕위로 수많은 파고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사가잉 언덕(Sagaing HilL) 이다
만달레이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면 지금쯤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타고 육로로 사가잉을 찾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400만 불탑의 도시 바간'을 탄생시켰던 바간왕조가 200여년만에 망하고 난 후, 새로 태어난 사가잉 왕조가 번영을 이루던 곳이다. 수많은 불탑들과 고즈넉한 분위기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그런 유적지가 바로 사가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쉽지만 스케줄 변경으로 인하여 지나가는 보트위에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더군다나 강줄기를 따라 희뿌옇게 연무가 끼어서 빼어난 사가잉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보트에서 커피나 쥬스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준다.
대단히 아쉽다 할까? 허망하다고 할까? 아무튼 아침을 너무도 간단하게 마치고 나서 부터..... 이젠 제대로 에이야와디 강의 보트 여행이다. 아지기도 배는 9시간 이상을 강을 따라 내려가야만 한다.
그럼 이제부터 뭘하지?
피부 허옇고 눈이 파란 사람들은 도대체 뭘하며 놀지?
뭐 대충 저렇게들 논다. 피부 허연 사람들은....... 동양인은 나랑 일본인 한명 뿐.......
한 두시간 여행이면 바쁘게 오가면서 셔터 눌러대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겠는데...... 열시간을 간다고 쳐보자.
처음엔 다음 여행일정에 대한 스케줄 점검, 여행정보 확인.
다음엔 잡지나 소설책 읽기나 음악 감상.
종국엔 실없이 왔다갔다 하거니 쪽잠때리기.
까만비키니 차림으로 썬탠을 하는 아짐마. 얼굴에 주름도 많은것이 얼추 연식은 나랑 비슷하거나 많을것 같은데...... 아무대나 먼저 훌러덩 벗고 썬탠을 하는데........ 와! 얼굴하고는 다르게 피부랑 몸매는 아직 탱탱하다. 세상에 날 놀래키다니......
자유분방하고 용감한 저들의 모습....... 난 저만치 떨어져 앉아 햇볕에 다리만 선탠을 했다. 페낭에서 부터 쫓아다니는 쪼리 신고서.
위에서 언급한 크기가 좀 작은 스피드 보트가 저만치서 뒤따라 오더니 이내 우리를 추월해 나간다. 종국에 계산해 보니 우리보다 적어도 3시간은 빠르게 도착했을것 같다. 떠다니는 호텔 쿠르즈선도 지나가고..... 중간에서 조각배로 이 배에 수상 노정에서 다가와 출퇴근 하는 풍경도 보고....... 물품을 싣고 올라가는 컨테이너와 무연탄을 싣고 올;라가는 바지선. 대신 내려가는 바지선에는 대부분 티크 목재가 실렸다.
점심은 쥬스에 볶음국수나 볶음밥을 주는데 아침에 비하면 그나마 먹을만 했다.
하류로 내려갈 수록 강폭은 넒어지는 만큼 수량이 부족해 수위가 낮아졌다. 그때부터 배의 운행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졌다.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어느정도 수심이 되는 물길을 찾아다니며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엔 선원 두명이 긴 장대를 가지고 배 선수 앞에 앉아서 일일이 수위를 찍어서 점검하면서 내려간다.
10시간 예정시간이던 운행은 시간을 훌쩍 넘겨 거의 12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겨우 바간 선착장에 도착했다.
늦어진 덕분에 바간의 인근에서 에이야와디강의 일몰을 덤으로 얻기도 했디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당일에 한 배위에서 보게될줄은.....
바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낭우의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깔린 이후였다.
전체 미얀마 여행을 통털어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낭우선착장의 삐끼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터무니 없다면 너무 터무니가 없고, 바가지라는 표현만으로는 표현이 한참 부족한 해도해도 너무하는 야바위꾼들의 천국이 바로 거기였다.
나는 선착장에 내릴때 중간쯤이었는데, 사방에서 시장 난전같은 호객꾼과 흥정이 벌어지고 여기저기 고성도 오가는 상황속에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치 썰물처럼 모든 사람들이 어디론가 쏟아지듯 사라져갔다. 나는 가장 나중까지 남은 여행객이 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집요하게 달려드는 삐끼들....... 내가 알고 있는 가격은 아주 오래전의 가격이란다. 그래서 걸어가겠다니까 떼로 몰려와서 바간까지는 멀어서 절대 걸어가지 못한단다. 그래서 밤을 새워서라도 걸어가겠으니 나를 좀 놓아달라고 엄포를 놓듯이 외치고 나서 정말로 도로를 향해 걸어나갔다. 배낭은 무겁고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고........
도로에 접어드니 삐끼들이 하나씩 개별적으로 접근해 온다. 발길에 거기까지 걸어가기엔 무리라면서......
그래서 멈춰서서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내가 배에서 내린 마지막 손님이라는 것도 알아. 다시 말하자면 아직까지 여기에 남은 너희 몇몇도 내가 아니면 죄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게 되는거야. 나는 최악을 이미 각오했어. 그러니까 너희중에 본래의 적절한 가격..... 내가 알고 제시하는 가격에 나를 태우고 갈 한사람만 남거나 아니면 모두 서둘러서 집으로 가. 2.000짯이 마지막 제시금액이야. 더는 있어도 못내.'
10달러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2천원을 제시하고 배짱을 부리는 나 자신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런데 한 녀석이 다가와 타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제시 금액을 확인하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 '느그들이 미얀마의 최고 삐끼들인줄은 모르겠지만..... 나? 의지의 한국인이야.'
그것도 잠시. 도로에 접어들기도 전에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가로막고 선 검표원은 지역입장권을 사라며 25$를 내놓으란다. 이건 순전히 미얀마라는 국가가 강제로 강도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 바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발도 못디뎠는데 말이다. 기분 더럽다.
미얀마는 정말로 달러에 환장한 저급한 나라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다분히 뒤따르는데, 글을 마치기 전에는 작게라도 미얀마의 정치와 현실에 대해 피력을 해 볼 요량이다.
번화가에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여기도 다운타운과 업타운의 구분이 가질 않는 곳이다. 수첩을 꺼내들고 메모해 둔 첫번째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아뿔싸.
바간에서의 악몽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서........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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