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박 14일간의 자유배낭여행.
인상적이었던 여행지를 떠날때 마다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오게되면 그때는....' 하는 아쉬움이 담긴 지극히 막연한 바람들을 가슴 한켠으로 삭이면서 발걸음을 돌리곤 한다. 거의 항상 그렇다.
막연한 바람이면 어떻고 허망한 상상인들 또 어떠랴?
'다시' '다음'이란, 일단은 이 순간 어떤 만족스러움에 가득차 있다는 뜻 일게고 또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의미일테니까 말이다.
작금의 당면과제는 우선 열심히 즐기고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이 순간을 되돌아보며 절대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게 말이다.
그러자면 어떻게 할까?
어떻하긴 뭘 어떻하겠어? 걸어야지. 죽어라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무조건 걷는 것이지.
어디를 여행하던 그 여정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는 바로 그곳의 거리 곳곳을 걷는것이 아닐까 한다.
내 자유의지로 걷는 걸음을 제지하거나 막는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보고 듣고 만나고 느끼고 생각하는것에 있어 걷기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 햇쌀이 너무 따가우면 어느 카페 테라스에 앉아 한낮의 맥주를 즐겨보고, 소낙비 지나가면 노점 처마밑에 숨어들어 망고쥬스 한잔이나 따끈한 커피 한잔 즐기면서 비가 멈춰주기를 기다리면 되지 않겠는가?
그 어느 곳이나 여행자의 심장을 쿵쿵 뛰게만드는 무한한 매력이 숨어있다. 그래서 나는 자유여행이 좋다.
이스탄불(터키) -- 트라브존(터키) -- 트빌리시(조지아) -- 에레반(아르메니아) -- 트빌리시(조지아) -- 이스탄불(터키)
가슴이 텅 비어버린것 같다.
가는곳마다 마음 한 조각씩을 남겨두고 오다보니 정작 이제는 더 꺼낼 마음 한조각 조차 남아있지 않다.
추억은 내 눈망울과 카메라 메모리카드에 담북 담아 놓았으니, 텅 빈 가슴에는 그냥 알싸한 아쉬움만을 담고 돌아가야만 하겠다.
나이가 들었음인지 툭하면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10년만 젊었다면' 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10년을 되돌려 주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것 같애? 바보 바보 바부들......'
'행복하고 싶으면 나처럼 자유여행을 떠나봐. 가는 곳곳마다 힘들게 찾지 않아도 따사로운 햇쌀아래 빨래줄에 내걸린 빨래처럼 여기저기에 행복이 널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거야.'
'이 길을 걸어보지 않고서는 이스탄불의 현재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스틱랄 거리는 우리나라의 명동거리이다. 젊은 여행자들에 사랑받고 있는 거리이다.
트램이 다니는 대로의 양편으로 유럽풍의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거리이다.
요즈음에는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같은 건물을 짖는데도 우리나라 건축물들은 왜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현대식 건축물로 가득찬 이스틱랄 거리의 한가운데로 땡땡 종을 울리며 고풍스럽고 장남감같은 트램이 다닌다. 거리의 절반은 보행자 전용도로 인데도 이른아침이어서 그런지 승용차며 택시들이 보행자 도로로 연실 넘나들며 다닌다.
비까지 적지않게 내리는 이른아침 이스틱랄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세계적인 유명브랜드의 상점들과 식당 갤러리들이 즐비하다. 터키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지역이다보니 웬만한 수입의 브랜드로는 차고 들어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다. 건물의 꼭대기 층은 대부분 클럽이나 바가 들어있어 밤이면 젊은이들을 위한 전혀 다른 모습의 거리로 변모한다고 한다. 대로를 따라 사방으로 뻗어나간 미로같은 골목들은 각각이 다른 업종과 다른 문화로 도심에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로를 따라 똑바로 걷다보면 이내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대표광장인 탁심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탁심광장은 이스탄불의 정치 문화적인 상징이라 할 수있다.
건국기념일 행사. 새해맞이 행사 등, 각종 국가 주도의 행사장에서 각종 단체의 집회장소로도 최고로 각광받는 장소이다.
광장 중앙에는 11m 높이의 공화국 기녑비가 우뚝 서있다. 터키공화국을 이야기 할때, 그 시작에서 전부라 할 수 있는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여러모습들이 조각으로 놓여있다.
탁심광장은 터키공화국의 심장이다.
탁심광장에서 물러나와 갈라타브릿지로 향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목하고 아주 잠간씩은 해가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날씨탓인지 오늘 보스포로스 해협의 파도는 높고 거칠었다.
고등어케밥 할아버지는 아직 영업을 시작학기 전이었고 오가는 행인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오가는 여객선 선착장을 지나가고 있을때 가운데 건물에서 나오던 점잖은 신사분이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 차이니스?
-노. 꼬레. 사우스 코리아.
계단을 내려와 다가온 사내는 다짜고자 내게 악수를 청한다. 알 아니지 인가 뭔가 이름이 어려워 정확한 쓰기가 불가한 이름이었다.
인사를 나눈 뒤 사내는 내 손을 잡아 끌며 자기네 사무실로 잠시 가자고 했다. 코리아에 대해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이곳 보스포로스 선착장에서 모든 여객선과 선박들의 항해와 안전에 관한 뭐 그런일을 하는 공무원으로 보였다. 사무실의 입구를 무장한 경찰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후런트를 지나 사내가 나를 이끈 곳은 그 관청의 휴계실이었다. 그 안에서 차를 마시려 준비하던 사람에게 부탁해 나에게도 차를 가져다 주도록 했다. 홍차와 함께 터키사람들이 간편하게 한끼 식사로 대용하는 시밋(전통빵)까지 내어온다. 차를 내온 사람과 인사도 시켜주고, 사무실 후런트를 오가는 동료직원들을 죄다 불러서 한명씩 인사를 시켜준다. 이거야 원. 내가 대한민국 항만청에서 파견한 외교사절도 아닌데......
노스 코리아의 크레이지 프레지던트 이야기. 한국의 국교(종교)가 붓다(불교)이냐는 이야기. 이슬람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IS와의 전쟁에 대해 아느냐. 터키 여행이 어땠느냐 등등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마구 지나갔다.
나는 이스탄불은 경유지로 선택했었고 지극히 일부만 걸어서 다닌 정도였고, 머지않아 오로지 터키를 만나기 위해서 다시 올것이고, 오늘밤 비행기로 돌아간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짧은 시간을 머물렀다는 것에 안타까워했고 꼭 다시오기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터키여행에 대한 한가지 팁을 나에게 선물처럼 가르쳐 주었다. 이스탄불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시간을 내서 꼭 바다에 나가보라고 말해주었다. 역사와 시간은 고궁과 사원과 박물관에 있지만 이스탄불의 멋과 맛은 바다에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나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하자 직원을 시켜 인근 다른 사무실에가서 팜플릿을 좀 얻어다 주라고 했고, 잠시 뒤 팜플릿을 받아들었다. 오후 2시에 출항해 총 2시간반이 소요되는 보스포로스 쿠루즈였다.
나는 그분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촉박하기는 하지만 스케줄의 일부를 수정하면 가능하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정을 줄여서라도 쿠루즈를 타 보리라 결심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주아주 감명깊었던 고마운 사람 중의 한 분이었다. 점잖고 멋진 신사였다.
그 분과 헤어져 다시 거리로 나서자 갑자기 발걸음의 빨라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찾아간 곳은 바로 사르케지 역이었다.(바로 위 사진)
사르케지 역.
사춘기 시절부터 나는 여기 사르케지역을 찾아오는 꿈을 자주 꾸곤 했었다.
지난날의 영화는 모두 사라졌지만 역사 건물만은 여전히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번듯하게 서있다.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숀 코널리가 주연한 007 위기일발. 올리버 스토리(러브 스토리 속편). 오리엔탈 특급 속의 사랑.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등 숱한 영화에 등장하던 사르케지 역이다. 셰릴 랏드가 주연한 오리엔탈 특급 속의 사랑 에서는 사르케지를 출발한 기차가 프랑스를 자나면서 엘튼 존의 (굿바이 엘로 부릭 로드)가 흘러나와 나에게는 영원한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르케지는 1977년 까지 운행되던 이스탄불과 프랑스 파리 사이를 오가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의 출박역이었다. 유럽의 부호들과 명망가들이 타던 그 오리엔탈 특급열차 말이다. 어른이 되면 그 열차를 꼭 타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이제야 찾아왔건만..... 이제 그 오리엔탈 특급열차는 운행하지 않는다.
사르케지 역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일부 교외선과 아시아쪽으로의 일부노선을 운행중인 정비소에서는 지금도 철로를 보수하고 기차를 보수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의 아쉬운 추억이 솟아오른다. 언제고 복원되면 꼭 타보고 말리라........
왼쪽으로 보스포러스 해협과 금각만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풍경을 기고 돌아가다 보면 이내 잘 정돈된 푸른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귤하네 공원이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살던 톱카프 궁전의 성벽밖 숲속이라 여기면 되겠다.
귤하네 공원에서 올려다 보이는 톱카프 궁전의 성벽 너머가 바로 하렘이다. 하렘은 술탄의 여자들이 머무는 궁전숙소를 말한다.
철저하게 외부와 차된되어진 환경에서 살았던 술탄의 여자들은 궁전의 극히 제한된 지역만을 오가며 살았다. 작은 정원 정도 까지만. 외부인과도 철저하게 차단되어서 오로지 술탄 한명만을 하늘처럼 올려다보며 살아야 했다. 아마도 여기 굴하네 공원 정도가 그녀들이 창문을 통해 내다볼 수 있는 성밖의 다른 세상이 아니었을까?
귤하네 공원을 빠져나와 톱카프 궁전을 둘러 볼 생각이었는데, 그 중간에서 내 발길을 붙잡아 끄는 곳이 있었다
톱카프 궁전의 제1정원 옆에 놓여있는 세계 5대박물관의 하나로 불리어지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 바로 그곳이다. 오후에 (보스포러스 쿠르즈)를 타기로 한 만큼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역사를 유독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이런 멋진 박물관을 그냥 지나치라는 것은 차라리 죽으라 하는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비행기는 놓칠 수 있었도 이런 박물관을 놓칠 수는 없다.
그래서 입장권을 샀다. 비싸다. 터키의 입장료는 거의 로마의 수준에 가깝다.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대부분이 공짜인데........
멀리 고대에서 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여행이 이어졌다.
터키 여행의 백미였다. 살아있는 역사 공부였다. 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보았던 알렉산더를 여기서 만난 것이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유물들. 너무너무 많아서 극히 일부만 추려 올려본다.
시간이 없다. 연실 시계만 본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뛰다시피 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서둘러 톱카프 궁전으로 이동 했다. 이번 입장료도 디지게 비싸다.
오스만 제국을 통치하며 세상을 호령하던 술탄이 기거하던 곳. 역시나 멋지다.
후원의 정원에선 성벽 너머로 보스포러스 해협과 금각만이 보인다.
궁전이 서있는 유럽 지역. 갈라타 다리 건너 역시 유럽 지역. 그리고 해협 건너로 보이는 아시아 지역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멋지다.
와!!!! 술탄은 이렇게 살았구나.
이스탄불은 역시 아름답다.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 이미 기준이 되는 자를 만들어 모든 계측과 치수의 표준을 만들어 사용했다.
---- 예레바탄 지하저수조에 있는 거꾸로 된 메두사 기둥을 만들때 함께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크기도 모습도 닮았다. 양면조각이다.
-- 올림픽 출선 선수 대기실 조각이다.
-- 알렉산더는 아름답다. 세계를 정복한 대왕의 위용보다는 섬세하고 여성적으로 표현되었다.
--- 고대의 시대에 이미 유리를 만들어 사용했다. 놀라울밖에.....
---- 그리스 시대에 전쟁에 나가는 병사가 개인적으로 휴대해야 하는 준비물들.
--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해저 케이블을 이용해 적선을 무너뜨렸다는 학설은 있으나 유물이 없다. 그러나 여기엔 항구로 들어오는 적 함대를 막기위한 실제사용한 해저 케이블로 유물로 존재한다.
(형제의 나라) 운운하면서 (우리말 관광 안내 써비스)도 해주지 않는 나라 터키.
중국어 일본어 안내는 한다. 쓰 ~~~~~~~~~ 벌. 솟구치는 배반감.
톱카프 궁전에서 나와 나는 곧바로 인근에 있는 (아야 소피아 성당) 앞에서 또 서성거린다.
2천년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섞인채 공존하고 있는 지상 최대의 박물관인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를 선택하면 보스포러스 쿠르즈가 날라가고, 보스포러스 쿠르즈를 선택하면 아야 소피아가 날라가고......
어쩔 것이냐?
결국 아야 소피아를 찔끔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맛만 보고, 불루 모스크를 지나쳐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짐을 챙겨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인근에서 폼나는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전철을 타고 보스포러스로 향했다.
표를 사고 쿠루즈선에 올랐다.
배는 정확히 2시에 출항을 했고........ 또 다른 이스탄불이 거기 바다에 있었다.
오.
정녕 아름다운 이스탄불이여.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는 바다를 우리는 흔히 보스포러스 해협이라고 한다. 터키사람들은 보아지치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바로 갈라타 다리이다. 이 두 지역은 모두 유럽지역이다.
이 유럽지역에서 보다 더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금각만으로 가는 다리가 2개있는데 하나는 보스포러스 대교이고 다른 하나는 술탄 마호멧 대교이다. 이 대료글 건너서 있는 금각만 지역이 바로 아시아지역이다.
보스포러스 해협과 금각만, 그리고 마르마라 해를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방법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보거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돌아보는 방법 뿐이다. 헬기는 비용이 너무 엄청나기에 나는 보스포러스 쿠루즈에 올라 또 다른 이스탄불을 만나보기로 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의 별장으로 금 14톤과 은 40톤을 들여 건축했다는 (돌마바흐체 궁전)과 데이트 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오르타쿄이 부둣가)도 지난다. '보스포러스의 눈동자'로 불리는 (베벡). 포구를 따라 늘어선 이스탄불에서 가장 럭셔리하다는 베벡 카페촌을 지나다 보니 파도가 발끔치까지 튀어오르는 멋진 카페에서 혼자 음식을 즐기는 멋진 여성도 보인다. 페이는 모두 내가 지불할터이니 같은 테이블에 합석해서 식사를 할 수만 있다면........ 와인까지 겸해서....... 너무 멋져 보인다. 술탄 마호멧2세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침공하기 위하여 전진기지로 쌓아만든 천험의 요새 (루멜리 히사르) 성벽의 위용과 빼어난 풍광이 장난이 아니다. 보스포러스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며 오랜세월 함께해 온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항구마을 (위스큐다르)와 규모는 좀 작아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베일레르베이 궁전). 슬픈 전설이 서려있어 더욱 아름다운 비잔틴 시대부터 유구한 세월동안 바다위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탑 (크즈 쿨레시)는 처녀의 탑이라는 의미이다. 007 언리미티이드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이 소피 마르소에게 속아 이 탑에 갖힌 M을 찾아내 구하던 바로 그 명소이다.
이 모든 것들을 (보스포러스 쿠루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생일대의 결고 잊지못할 쿠루즈여행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약 3시간 정도.
다음에 다시 이스탄불을 가게 된다면 이 쿠루즈여행은 꼭 다시 해보고 싶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굿은 날씨의 바다.......
거기에 수학여행 온 이슬람학교 여학생 단체를 만났던 기억.........
세계 어디를 가도 식을 줄 모르는 이넘의 인기.......... ㅎ
이렇게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
쿠르즈 끝나고 공항으로 이동해서 야간비행기 타고 귀국했으니까........
9월24일 귀국했으니까 거의 80여일이 지나 이렇게........ 지난 여행기를 마무리 하려 한다.
긴 여행기를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길을 떠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시간이나 돈이 행복을 안겨줄 수도 있겠지만...... 5년 10년이 지나도 바라는 만큼의 행복을 모으기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떠나라.
가서 보고 듣고 만나고...... 그 여정을. 그 망설여짐을. 그 어색함과 힘듬을 즐겨라. 자유를 누려라.
당신이 꿈꾸는 그곳에는...... 빨랫줄에 내걸린 빨래처럼 또는 울타리도 없는 과수원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처럼..... 행복이 사방으로 그렇게 널려 있다.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또?
- 웅.
몇 일이나?
- 18일 잡고 있어.
미쳤어. 아예 나가서 살어. 석달도 안돼서 또 나간다고?
- 떠나는 날이 아마 석달을 채운 다음날일거야. ㅎ
어디로?
- 방콕에서 하루 머물며 미얀마 비자 해결하고 나서 일단 만달레이로 갈거야. 그 외엔 아무 예정된 스케줄도 없어. 마음이 가면 발길이 거기로 향해주겠지.
누구랑?
- 혼자. 챠밍은 손녀 돌보고 있겠다네. 한 2~3년은 이럴것 같애. 우리 태리가 좀 커야 함께 데리고 다니지. ㅎ
그럼 또 다음여행은?
- 내년 6월 두째주. 베니스로 가서 기차타고 코르티나 담페초로 갈거야. 더 늦기전에 꼭 돌로메티를 만나야겠어.
미쳤어.
- 내년쯤엔 너도 곧 미치게 될거야. 그땐 친구도 데려갈께.
------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기는 (알 럽 트래블 / 미얀마)로 만나뵙겠습니다. 피안재.
P.S ;
이번 여행기의 서문에 (짱구아빠)로 떠났다가 (태리 할아버지)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나서 열흘쯤 있다가..... 정말로 예쁜 손녀가 태어났다.
윤 태리.
ㅎㅎ
요즘은 고녀석 사진 들여다보는 재미로 산다.
어서어서 커야 데리고 함게 여행을 떠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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