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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아르메니아) 무조건 떠나고 보자. 예레반으로.....

by 피안재 2016. 10. 30.

 

 

 

 

 

 

 

 

 

 

 

 

 

 

 

 

 

 

 

 

  신이 이 세상의 모든 땅을 각 나라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마지막에 땅 하나를 자신이 머물곳으로 남겨두었는데

  그곳이 바로 조지아라고 이곳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신을 초대하여 맛있는 와인과 즐거운 노래로 축제를 열어 보답한다.

  찾아오는 이웃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겐 칼로, 친구로 찾아오는 사람에겐 기꺼인 와인잔을 건넨다.

  그것이 조지아다.

  조지아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대지를 신의 축복과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삶은 대단히 힘에 겹다.  그들에게 신의 자비와 은총이 다시금 함께하시길 나는 간절히 기원한다.

 

 

 

 

 

  벼룩 시장에서 용량이 가득한 메모리 카드를 갈아끼우고 다시 미술품 시장을 돌아다녔다.

  이 자유로움과 마냥 신기하고 신선한 기분........

  돌아보던 중에 아주아주 노년의 할아버지 화가 두 분을 만났다.

  그런데 이 양반들 시뻘건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계신다.  벽에 걸어 놓은 그림이야 팔리건 말건 별로 신경 쓰시는 폼이 아니시다.  술기운도 어느정도 적당한 상태를 한참 지난듯 하다.  안주래 봤자 점심으로 드시던 빵쪼가리 정도이다.  옆의 흔적을 보니 식사는 하시긴 하셨나보다.   초록색 맥주병과 하얀 피티병 하나씩이 놓였는데..... 내용물은 맥주가 아니라 (짜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더니 손짓으로 나를 부르신다.  뭐라 지껄이시는 폼이 어디서 왔냐는것 같기에 '꼬레'라고 대답한다.

  '오! 꼬레. 꼬레. 꼬레. 꼬레.'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신다.

  그러시더니 다짜고짜 나를 잡아 끌어 옆에 앉히고는 우리네 소주잔 세배쯤 되는 플라스틱잔을 불쑥 내미시는 것이 아닌가.

  (짜짜). (짜짜). 하시면서 잔을 건네고는 넘쳐나도록 따른다.  빛깔은 투명하지 않고 맑게 거른 막걸리 같은 액체였는데.......

  이건 위기다.

  나는 이미 이런 상황에서 격는 휴유증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조건 사양하고 내빼야 한다고 들었는데 차마 그러지를 못했다.

  쭈욱 들이키라는 손짓을 보니 분명 원샷 하라는 말씀인데........  까짓꺼 죽기야 하겠어?

  살짝 뜨거운 기운 같은 것이 목젖을 타고 흘러 들어가긴 했는데.......  잠시 뒤에 무엇인가가 전신의 혈도를 타고 머리카락 끝까지 팍 하고 올라온다.  먹 하고 숨이 자시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런 맛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다시 잔을 채운다.  손가락 두개를 세우며 (짜짜)라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짜짜는 두잔은 받는것이 기본원칙' 이라는 표정이시다.  순간처럼 후회가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허나 어쩌겠는가.  또 들이킬 수 밖에.......

  거 참 묘한것이........  두번째 잔은 처음보다 부드럽고 순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어떤 상큼한 기운과 맛과 향까지도 어느정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핑 도는 취기가 솟구쳐 왔다.

  그런 나를 보면서 할아버지 두 분이 신나시는지 박수를 치신다.

  알콜이 몇퍼센트나 되느냐 여쭤봤다.  대충 알아들으셨는지 손가락으로 숫자를 가르키시는데.......  자그만치 65% 란다.

  (짜짜)란 러시아식 보드카로 집에서 직접 담구는 술을 말한다.  조지아나 아르메니아등 동유럽 국가에서는 누구나 집에서 보드카를 직접 담궈서 먹는다.  술의 돗수도 제조 과정에서 조절을 하는데......  가장 무난한 것이 65도 란다.

  내가 지금 65도나 되는 보드카를 거의 소주병 반병 정도의 분량을 원샷을 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이런 흔한 일들로 술에 취해서 널브러지는 여행자들이 심심찮게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하여 무조건 도망치라고......

  하지만 나는 위대한 대한민국인이 아닌가.

  공손하게 어른들 잔에 술을 따라드리고 정중히 감사 인사를 드린 후에 내빼듯 그자리에서 물러났다.

  옴메....... (짜짜) 정말 독하다.  정말 혼쭐이 났다.

 

 

 

 

 

 

 

 

 

 

 

 

 

 

 

 

 

 

 

 

 

 

 

 

 

 

 

 

 

 

 

 

 

 

 

 

 

 

 

 

 

 

 

 

 

 

  벼룩시장을 돌아보고 나서 그냥 강변을 따라 걸어내려가다가 메테히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숙소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편인 올드 트빌리시의 중심가인 자유광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 아주 커다란 대형마트가 있는것을 보아두었던 때문이다.

  점심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난것을 먹는 것으로 했는데, 저녁까지는 좀 힘에 겨웠다.  별반 입맛에도 잘 맞지않았을뿐더러  백인 여행객들이 넘쳐나는 식당에서 유별나게 생긴 동양인이 너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포크와 나이프를 거꾸로 사용하는 모습이 영 어색해서였다.

  그래서 마트에서 쇼핑을 했다.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고 내용에 대해서 물어도 보고.....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모든것이 계량형화 되어있다.  대부분 kg 단위로 저울로 재서 가격을 책정한다.  가장 내게 관심을 끈 코너는 소시지 코너와 스페인식 하몽을 파는 코너였다.  질 좋은 돼지고기를 주로 다리를 통째로 훈연 숙성시키는 것으로 대략 2년 이상이 소요되어야 먹을 수 있다.  잘라내어진 한덩어리를 지목해서 아주 얇게 썰어대기 시작하면 팰요한 양만큼만 선택한 후에 저울에 달아서 구입하면 된다.

  위 사진의 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이 내가 저녁만찬 거리로 내가 구입한 것들이다.  청포도 1kg에 사과 2개 빵도 있고 케밥 샌드위치에 쏘시지에 하몽에 와인도 한병 샀다.  나오면서 여기에 수제맥주 피티병 2개를 추가했다.  이렇게 푸짐하게 사들인 총 금액이 우리돈으로 1만5천원이 조금 넘는다.  내용물은 아주 푸짐하게 두끼니나 세끼니를 해결하고도 남을 분량이다.

  쇼핑도 재미있고 아주 자연스럽게 장을 보는 나 지신을 보면서, 어느새 내 자신이 현지화가 제대로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참에 그냥 여기 이대로 눌러 앉을까?

  내 체질에 모든것이 그냥 딱 맞춤이다.

  자유 광장을 거슬러 다시 여행자거리를 통해 자유탑과 우체국 건물을 다시 둘러보며 숙소로 돌아온다.

  길거리에서 꽃파는 사람들이 늘어섰고  꽃을 사는 젊은이의 모습이 아름답다.

  트빌리시도 이스탄불 처럼 구 도시의 어디를 파나 유적이나 유물이 출토가 안된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것이다.

  도시계획에 의해 건축을 하다가 무엇인가 발견되면 학술 조사를 한 후에, 개발에 장애가 되지 않고 유적 보호에도 이바지 하는 선에서 현명하게 타협하며 나머지 공정을 이행하게 한다.  드러난 위쪽은 현대식 건물이요, 지하도로 이용되는 지하는 구시대의 유물인 골목들이 자주 눈에 띤다.  땅속에서 무언가 나왔다고 하면 호들갑을 떨어대는 우리나라 실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저녁을 대신하여 좀 늦은 시간에 장보아 온것들로 만찬을 시작한다.

  오늘  시티투어를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고싶다는 생각에 낮에 교환한 메모리 카드를 찾는데......

  아뿔싸.

  카드가 사라졌다.

  일상에서건 여행에서건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는 기억이 거의 없는 나였는데 이번 여행에서 지극히 소중한 메모리 카드가 사라졌다.

  입었던 옷이며 걸머멨던 배낭이며.....  모조리 꺼내서 서너번을 샅샅이 다시 뒤져보았다.  그런데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 벼룩장터 미술시장에서 카드를 바꿔 끼었다.  플라스틱 보호케이스에 담아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주머니엔 동전이 제법 있었고......  혹 소매치기라도 당했다면 다른 분실된 것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것이 그래도 있다.  딱 하나만 사라진 것이다.

  주머니를 만진것은 마트에서 장보기 후에 계산할 때였고,  마트 후런트에서 환전을 한 후 잔돈을 받았을 때 뿐이었다.

  그럼.......  잃어버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헐......

  멘붕.........

  오만가지 생각중에......  까짓...... 이스탄불 사진이라면 어차피 귀국할 때 다시 들를 거니까 새로 찍을 수 있다.

  트빌리시 사진은 한나절이면 뛰어다니며 속성으로 다시 찍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트라브존은..........?

  또 풍경이나 건물이 아니라 우연히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은.......... ?

  또 사진을 보내주겠노라고 받아놓은 명함과 메일 주소가 적힌 메모들과.......  그 사람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허망...........

 

 

 

 

  날이 새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이제껏 살면서 무슨 일이건 질질끌며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편이 아닌데, 어제의 메모리카드 분실건은 밤새 나를 괴롭혔다.

  어떤 변화나 전환점이 필요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평화광장 주변을 서성거려본다.

 

 

 

 

 

 

 

 

 

 

 

 

 

 

 

 

 

 

 

  바흐탕 고르가살리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 트빌리시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바흐탕이다.

  트빌리시란 지명은 '따뜻한 곳'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말은 곧 이곳이 온천도시라는 것을 타타내준다.

  5세기 말 무렵의 이곳은 므츠바리강 양쪽으로가 모두 울창한 숲이었다.

  매를 가지고 꿩사냥을 하러 군사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던 그르가살리 왕은 참으로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달아나는 꿩을 쫓아가 나꿔챈 매가 함께 숲속으로 떨어져 나뒹굴게 되었는데, 쫓아가보니 매와 꿩이 함께 뜨거운 연못에 빠져 죽어버렸던 것이다.  왕은 그 연못이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온천임을 알아차렸다.

  하여 인근의 모든 숲의 나무를 베어버리고 그곳에 도시를 세우라 하였으니 그곳이 바로 오늘의 트빌리시이다.

  여기 올드티빌리시 메테히 다리 인근,  므타츠민다 산자락의 바로 아래 나리칼라요새를 올려다보면서 그 유래가 상당한 이슬람식 유황온천이 실제로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 들렀던 푸쉬킨이 '내 생에 최고의 유황온천' 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온천이다.

  사우나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내가 그곳을 실제 이용해 볼 기회를 나는 가져보지 못했다.

 

 

 

 

 

 

 

 

 

 

 

 

 

 

 

 

 

 

 

 

  아침 산책을 하였음에도 기분이나 컨디션은 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배낭을 꾸려메고 여행자 거리로 나섰다.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스바네티로 떠나고자 마음 먹었었다.  스바네티 지역은 조지아에서 가장 깊은 산속 오지이다.  트빌리시에서 미니버스로 약 8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 스바네티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3시간여를 달리면 최고의 오지 우쉬굴리 마을이 있다.  아르메니아를 포기한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이곳 스바네티와 우쉬굴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밤의 휴유증으로 이래저래 어수선하게 있다보니 정작 금일 스바네티로 떠나는 미니버스 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내일을 기다리던가 중간 기착지인 주그디디까지 가는 야간 열차를 기다려야만 했다.

  어쩐다?

  왜 이렇게 자꾸만 꼬여가는 거지?

 

  '그래. 무조건 떠나고 보자. 예레반으로 가자.  아르메니아에서 새롭게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오자.'

 

  오르타촬라 터미널로 향하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잔돈이 없다.  지페도 액면가가 큰 돈만 있다.  동유럽의 버스는 개중에 거스름 돈을 잘 거슬러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메모리카드 찾느라 남은 동전들을 그대로 큰배낭 깊숙이 쏟아부은 탓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할머니 한분이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더니 내 차비를 대신 내어 주신다.(오백원 정도)

  '마들로바(감사합니다).'

  손사래를 치시며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시는 머나먼 이국의 한 할머니로 인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정말로 칭찬이나 작은 배려는 코끼리도 기꺼이 덩실덩실 춤을 추게 만드는것 같다.

 

  오르타좔라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으로 가는 마슈르카(미니버스)를 타기 위함이었다.

  터미널 안에서 정식 노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 행색을 하고 이곳에 도착하면 벌써 '예레반' '예레반' 하면서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트빌리시에서 예레반으로 가는 비정상적인 운행의 시작이 바로 오르타촬라 터미널 부근인 것이다.  처음에는 트빌리시와 예레반 공용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출발 도착지가 여기뿐인 줄 알았다.  헌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군데가 더 있었다.  바로 지하철 중앙역 광장 한쪽도 중요한 출발 도착지였고 지난 이틀간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도로 하나 건너면 되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예레반에서 돌아오는 날은  지하철 중앙역사 그곳에서 하차했다.  부러 여기까지 멀리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트빌리시에서 예레반까지 운임은 미니버스 30라리(1만오천원 정도). 4인 택시 40라리(2만원 정도)가 공식 통용 가격이다.  6시간 가까이 소요되며 국경을 통과하는 점에 비하자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라 하겠다.  실제 경험을 해보지만 상당히 정도가 아니라 거져 정도이다.

  호객꾼이 달려들어서 그중 성능이 좋아보이는 미니버스에 35라리로 흥정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차야 떠나게 되는것이니 출발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키가 아주 작은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중간쯤 되는 여자분이 한분 다가와서 영어로 말을 건네왔다.(대략 한 63세 정도)

  - 혹시 예레반에 가려고 하신는 중이십니까?

  - 그렇습니다.

  - 그럼 저희랑 함께 가시지 않을래요?  마슈르카는 언제 인원이 차게 될지 알 수가 없고,  우리는(남편과 그 여자분) 바투미에 살고 있는데 지금 에레반에 살고 있는 딸을 보러 가는 길이랍니다. 택시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마침 그 택시가 에레반에서 여기까지 사람을 태우고 왔다가 되돌아가는 중이라 한 사람만 더 채워도 바로 떠나겠다고 하네요. 3명만 되어도 출발을 하겠다는데 비용은 그냥 1인당 40라리만 받겠대요.  미니버스 보다는 5라리 더 내야 하지만 3명만 이라도 떠나겠다니 어떠세요? 같이 가셨으면 좋겠는데........

  저만치 그녀의 남편분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남편도 유럽인 치고는 아주 작아 보였다.  그 옆에 있는 택시 기사는 액션배우 제이슨 스타덤을 빼닮았다.  차량은 거의 새것 수준의 일제 숏바디 SUV였다.  우리나라 현대 갤로퍼 숏바디라 보면 되겠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차량 뒷편에 배낭을 실었다.  딸네 집에 가는 분들 답게 이미 실려있는 아주머니의 짐도 만만치 않았다.

  차는 출발했다.  그리고 이분들과 함께 여행하기로 한 나의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가자.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을 향해서........

 

 

  출발을 한지 10분 정도가 지나자...........  트빌리시에 대한 기억들은 저절로 외면하게 되었다.

  다시 터키 트라브존에서 국경을 넘어 조지아에 들어서면서 부터 가지게 되었던....... 그 느낌들이 되살아 났다.

  삭막함. 황량함. 피폐함. 막막함 같은 감정들이 파노라마 처럼 눈 앞에 펼쳐져 갔다.

 

 

 

 

 

 

 

 

 

 

 

 

              ---- 조지아 국경 검문소.  이곳에서 출국심사를 하고 500m 쯤 걸어서 아르메니아로 향한다.  굿.바.이.조.지.아.

 

 

 

 

 

 

 

  40줄의 운전기사는 배려심 깊고 차분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함께 한 부부도 금슬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때론 연인 같고 때론 부부 같고 때론 남매 같은 느낌의 팔색조 부부였다.

  거기다 이들 부부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한순간도 잠시나마 조용히 있는 것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세상에 가장 수다쟁이는 중국인이라고 들었고 실제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나에게 이들 부부는 충격이었다. 조지아 사람 결코 중국이니에게 뒤지지 않는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중국인의 수다를 옆에서 어쩔 수 없이 듣고 있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뒷좌석의 조지아 부부가 늘어 놓는 이  무궁무구의 수다가 (깜찍)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또 무엇일까? 무언가 모르게 멜랑꼬리한 느낌이 있다.

 

 

 

 

  조지아 출국 심사는 지극히 간단했다.

  모양만 심사대고 그쟝 지나치는 정도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권에 스탬프가 꽝 하고 찍혔다.

  500미터 정도를 걸어갔다.

  여기서 부터는 아르메니아 영토인 것이다.

  다른 버스로 온 여행객들과 섞여 이삼십여명이 함께 국경을 걸어서 넘어갔다.

  저만치 빨간 지붕의 아르메니아 국경검문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아르메니아 출입국 심사대 앞에 섰다.

  조지아에 비하면 조금은 까다롭다 싶었지만 모두가 순조롭게 심사를 마치고 아르메니아 영토로 들어서고 있었다.  내차례가 왔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본다.  물론 이해는 간다.  여기에서도 어디를  둘러봐도 유별나게 다르게 생긴 유일한 사람이 나 뿐이니까.

  -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 싸우스 코리아 입니다.(짜식 여권보면 모르냐?  리퍼블릭 이라고 써 있는거 못 읽어?  아님 사회공부 빵점이었냐?)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내 여권을 샅샅이 뒤져보며 찍혀있는 도장들을 유심히 살핀다)

  - 여행객 입니다.

  - 비자를 제시해 주십시요.

  - 대한민국과 비수교국이라는 것 알고 왔습니다.  여기 국경에서 입국비자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알고 왔습니다.

  40줄의 차가운 인상을 가진 사내는 연실 나를 흩어본다. 성질 대로라면 정당하게 따져들고 싶지만 참아야만 했다.  갑질 아닌 갑질이라 해도 지금 이 사내가 나쁘게 마음 먹으면 무조건 일단은 다시 조지아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순조롭게 잘 진행되던 입국수속이 내 차례에서 지연이 되자 뒤에 늘어선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까지도 감당해야만 했다.

  심사관이 뒤에다 대고 뭐라고 소리치자 저만치 뒤에서 감시를 하던 젊은 군인 하나가 달려왔다. 심사관의 지시가 있자 군인은 나를 데리고 도로를 건너 별도의 사무실 창구로 안내했다. 인터폴에 수배된 지명수배자의 심정이 꼭 이럴거라 싶었다.

  창구엔 좀 전의 심사관 보다 더 차가운 인상의 60줄 정도의 정복을 입은 심사관이 앉아 있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마.이.갓.

  그 심사관 뒤에 있던 십여명 정도의 시선이 일제히 창구에 나타난  나에게 쏟아졌다.  국경 행정사무소인 모양인데.......  모두 하던 일손을 내던져 놓고 오로지 나를 주시한다.

  - 아르메니아엔 왜 오셨습니까?

  - 여행을 하려고 왔습니다.

  - 이전엔 어디어디를 거쳐 오셨습니까?

  - 이스탄불을 거쳐 조지아에 왔고, 이제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려고 합니다.

  - 아르메니아에서 나가시면 어디로 가실 계획이십니까?

  - 다시 조지아 이스탄불을 거쳐 귀국하려 합니다.  마지막 항공스케줄이 이스탄불입니다.

  - 아르메니아엔 얼마나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 1주일 정도 머물 생각입니다.(이럴 땐 하루 이틀보다 오래 머물거라고 하는것이 반응이 훨씨 좋다)

  - 아르메니아에 연고가 있으십니까?

  - 자유여행자일 뿐 다른 연고는 없습니다.

  - 어디서 머무실 것입니까?

  - 예레반 센트럴 파크 인근의 아가밴드 호텔입니다.(이 부분이 의외로 중요한데, 그냥 검색했던 호텔을 둘러댔다)

  심사관이 내 여권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A4 용지의 (입국심사서)를 내게 내밀었다.  쭈욱 흩어봤다.  여러 항목이 있는데 그림 상형문자 같은 아르메니아 글자로 써 있고,  그 아래에 영어로 번역되어 나열돼 있다.  여전히 굳은 표정들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만 보고 있는 사무실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느끼며 조목조목 세심하게 살표보며 질문지에 답변을 하나하나씩 써 내려 갔다.

  질문지에 엉뚱하게 대답을 하게되면 곧 바로 추방당할 거라는 사실에 다소 중압감이 느껴졌다.

  (입국심사서) 작성을 마쳤을 때,  이번엔 새로운 중년의 남자가 내 여권을 들고 살피면서 내 앞에 나타났다.(뭐가 잘못되었나?)

  - 별도로 신고할 사항이 있으십니까?

  - 없습니다.

  - 사진을 제출 안하셨네요? 사진은 됐습니다.  여권 사본으로 대체하지요. 비자 신청 비용을 내셔야만 합니다.

  -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면 됩니까? 달러. 라리(조지아 화폐). 드람(아르메니아 화페) 어느 것으로 낼 수 있는지요?

  - 말씀하신 세가지 화폐 다 가능합니다.

  - 달러나 라리가 좋겠습니다.  드람은 아직 환전을 못해서요.  얼마인지요?

  - 10라리(5.000원) 입니다.

  지불을 하고 나자 여권 크기보다 조금 작은 스티커를 한 장 꺼내서 거기에다가장 중요한 날짜와 서명을 한 후 여권에 붙여서 나에게 돌려준다.  그러자 그제까지 기다리고 섰던 아까 그 군인이 다시 나를 따라 오라고 한다.  창구 직원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그 찰라에  안쪽에서 들려오는...........

  '안~~~ 뇽 하세요?'

  어눌한 아르메니아 사투리라 할까?  그러나 분명히 한국말로 누군가가 내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 역시 한국말로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받았다.  고개를 숙여 들이밀듯이 창구 안을 살피니 갓 이십줄에 들어섰을 제복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K-POP nummber 1'이라고 외친다.  '땡큐. 알 럽 아르메니아.'

  본래의 심사대로 돌아오자  늘어선 심사자들을 멈추게 하고 내게 먼저 다가오라고 한다.  여권을 내밀었다.  또 다시 세심하게 살피던 사내는 마침내 방금 받아온 비자란 위에 쾅 하고 스템프를 찍은 뒤 나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 컨그래츄래이션.

  -   스노라칼 엠(감사합니다)

 

 

  이런거였구나.

  그가 건네 준 (축하)라는 한마디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대한민국과 상호간에 협약이 되어있지 않은 비수교국을 드나드는 일이 이런것이구나.  '반갑습니다''즐거운여행 되십시요''환영합니다' 이런 인사가 아니라 '축하'라고 해야할 만큼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수교국이라는 것이,  어쩌나 사고나 조난이나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어느곳에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당장 보호나 도움이나 조치를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보호나 도움이나 조치를 받으려면 제3국을 거쳐 상당한 시간과 과정을 필요로 하는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 발생된 것이다.

  비수교국을 갈 때는 그런 일들에 대비나 철저한 각오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비수교국의 국경을 통과하여 그 나라 영토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은 것이다.

 

 

 

 

 

 

 

 

 

 

        ---- 멀리 보이는 아르메니아 국경검문소.  여기서 부터는 아르메니아다.  대한민국과 미수교국가의 영토이다. 조심 조심 또 조심.....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와 여러면에서 상당히 닮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무엇인가가 다르다.  무언인가가 다른것은 느끼겠는데  딱히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처음 눈에 띄는 다른것으로는  산 넘고 물 건너고 길 건너서 집잡마다 사방으로 널려있는 가느다란 노란 파이프라인이다.  이것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다.  우리나라 도시가스 파이프라인이라 할까?  그런데 여기서는 꾸물꾸물 지상으로 매우 엉성하게 얼기설기 엮어져있다.  우리나라 가스안전기준에 준하면 이나라 아르메니아의 가스설비 기준은 빵점이다.  100% 합격 미달이다. 위험에 그대로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어 보인다.  그럼에도 저렇게 방치하듯 상용되는것을 보면  저들에겐 그만큼의 사후조치가 오랜 경험에서 비축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

  아르메니아는 세계적인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그러다보니 도심이건 시골이건 온통 가스충전소 뿐이다.  타국에서 휘발유차를 렌트해서 아르메니아에 오게되면 금방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것은 너무도 뻔하다.  내가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면서 휘발유 주유소를 본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컨테이너 차량의 두배 크기 정도되는 차를 여러번 보았는데,  그 차들도 모두 가스차였다.  흔히들 가스차는 힘이 딸리느니 하는데......  절대 아니란다.  처음부터 가스차를 사용한 그네들에게는 그만큼 매카니즘적으로 가스차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유류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렴하다.  이건엄청난 축복이 아닐까?

 

 

  그리고 다음으로........

  아르메니아 여성들은 조지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아름답다.

  길 가다가 지나치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007 영화의 본드걸 급이다.

  '이쁘면 모든게 용서된다'는 항간의 속어가 절실하게 이해가 된것이 이번 아르메니아 여행이었다.

  '남자는 이태리 남자가 멋있고,  여자는 아르메니아 여자가 지상 최고'라는게 나의 새로운 인식이다.

  그리스 조각이나 클레오파트라 그림에서 보는 이마에서 코 끝까지 일직선이 그려지는.........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아르메니아 국경을 넘어서 처음 만나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우리나라 면소재지 정도였다.

  바투미의 부부가 유심칩 교환을 위해 들르자 했다.  딸과 통화를 해야 하겠단다.

  나는 아르메니아 화페인 (드람)으로 환전이 피리요해서, 바로 위의 사진속 빨간 간판의 은행으로 찾아갔다.  마을 소재 유일한 은행이었다.

  은행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나라의 시골농부들 모습의 십수명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불쑥 나타난 처음보는 낯선 동양인.......

  어디를 가나 이런 당혹스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보편적 은행 모습이 절대 아니다.  주판을 가지고 장부 펼쳐가며  수기로 업무를 보던 70년대 초 쯤의 상황이라고 할까?  안쪽 사무실에서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나와 나보다 더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네온다.

  '환전을 할까 한다'고 하자...... 은행 업무에 환전이 들어있어서 였는지 '체인지 더 마니'는 알아 듣는다.  잠시 기다리면 직원이 올거라 하면서  다이럴 전화기를 돌리더니 뭐라 뭐라 한다.  나는 그들 생활 모습이 신기하고,  그들은 나의 생겨먹은 생김새가 신기하고......

  잠시 뒤에 옆의 복도에서 담당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와.따.부.러...........  미치게 이쁘다.

  정말정말 아름답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실제로 대면하거나 책을 통해서거나 영화를 통해서 보았는 드 수많은 여성들을 통털어서도, 그 중에서 가장 예쁘다.  정말 정말 아름답다.  흘러내리는 길다란 갈색머리에 까만 눈동자.  전혀 인공적이지 않은 유독 짙고 긴 까만 눈썹하며...... 오드리 햅번과 리즈 테일러와 재클린 빈센트에 애슐리리 쥬드를 합친것 보다도 훨씬 아름답다.

  서른을 조금 넘겼을 아름다운 여성이 나를 안내했다.

  환전 사무실로 갔는데.....  뭔가 가름막이 쳐있는 금융업무실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초등학교때 보았던 양호실 같은 분위기였다.

  작은 나무 책상에 그 여성이 앉았고 바로 그 옆에(호흡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지척) 바짝 다가 앉는 구조라면 이해가 갈까?

  지갑에서 100$ 짜리  지페를 꺼네 건너면서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게 되었다.

  훅!

  심장이 떨리다 못해 멋어버리는 것 같았다.  얼굴이 순간 확 달아오르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백인들은 얼굴이 두꺼워서인지 좀체로 벌겋게 얼굴이 상기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아가씨도 무엇인가 몹시 당황한 태도가 역력하다.

  '이쁘면 모든게 용서된다'는 속설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갑이 멀지 않은 나이에 여성으로인해 가슴이 설레는 상황을 겪어 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전투기 엔진소리 보다도 더 크게 마구 방망이질을 해 대는 내 심장소리를 실제로 들었다.

  옆사무실 아가씨가 일에 볼펜을 물고 불쑥 나타났다.  환전소아가씨 책상에 비스틈히 서서 개구장스런 시선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자기들 끼리 무어라 대화를 하는데  환전소 아가씨가 더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보니 지금 우리 흉을 보나보다.

  돈을 건네 받은 것인지 제대로 헤어 보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그자리를 빠져 나왔다.

  허둥대기도 했고 상황이 상황이니 만치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나와버렸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이나 찬미일 뿐이지,  혹시나 하는 속물적인 시각의 동물적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소설가나 조각가나 화가 등등의 시선으로 예술적으로 승화될 정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의 시선이었을 뿐이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한참을 달리다 보니 가동이 중단된 채 멈춰서서 오랜 시간동안 방치된 아주 커다란 대단위 공장 건물이 나타났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아주 멈춰선 것은 아니었다.

  출입구 쪽으로 극히 일부의 공장은 가동중인것으로 보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엔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형편없이 낡고 녹슬고 허물어져 버린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공장의 바로 앞 길건너 편은 아주아주 허름한 간이매점에 멈추어 섰다.  기사가 소개하는 맛집이었다.

  주변에는 공터마다 공장 서비였던 물건들과 페차로 방치된 차량들이 여럿 보였다.  현재에도 영업중인 호텔도 인근에 두 군데나 있고 사방으로 문을 닫은 호텔이 여럿 보이고 상가와 창고 건물들이 페허가 되듯 방치된 모습들을 보자니,  지난 과거의 어느시점 까지는 이곳이 대단히 번성하고 성업중이던 번화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앞의 커다란 공장의 페쇄와 함께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었던 때문이리라.

  또 그것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아르메니아 독립으로 생겨난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공단 정문 옆에 고장난 커다란 트럭이 멈추어 서 있는데 이 빗속에서도 남자들이 차를 수리하고 있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그들이 낡은 차를 수리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뒷편의 궁상맞은 모습을 한 공장을 찍으려 하니 경비원이 다가와 제지를 한다.  사진촬영 금지 구역이라 한다.

  '세상에 이 다쓰러진 공장이 무슨 비밀이라고.......  아니지.  무너져 머린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서인가 보다.'

   (fus)라고 해야 하나?  그게 뭐 대단한 비밀 아지트라고........  지나면서 슬쩍 정문도 찍었다.

 

 

  바투미 잉꼬 부부께서 짜짜(러시아 보드카) 63도 짜리를 산다.

  원샷이 불문율이라는 짜짜를 연거푸 석잔씩 마셨다.  에스페레소 보다 더 진하고 쓴 아르메니아 ㅓ피를 마셔본다.

  운전 기사가 우리나라 자두 크기만한 단감을 한봉지 사서 나누어 준다.

  내가 가계주인 할머니에게 요기꺼리를 부탁했더니, 케밥 샌드위치가 제일 맛이 있단다.  그래서 내가 4인분을 주문하고 셈을 치뤘다.

  즉석 요리다.  허름한 화덕에 그 즉시 불을 피우고 주인과 손님이 함께 어우러져 케밥을 구워 익힌다.  그리고 빠게트빵 비슷한 것에 싸서 먹는다.  무척 맛있다.  주인할머니에게 맛난 음식에 대해 두 손을 맞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런게 여행의 재미다.

  그곳의 일상에 스며드는 내 방식의 여행의 맛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밤의 악몽이 서서히 잊혀져 가는 듯 했다.

 

 

  비는 점점 거세어 지고 길은 점점 높은 산악지형으로 접어들고 있다.

  높은 사자락 위의 세계는 이미 쌀쌀한 깊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 아르메니아인 택시 기사와  바투미에서 오신 잉꼬 부부.  잠시였지만 참 좋은 인영들이었다.

 

 

 

 

 

 

 

 

 

 

 

 

 

 

 

 

 

 

 

 

 

  트빌리시를 떠난지 5시간을 넘겨서 긴 여행끝에 험준한 산골짜기를 내려가서 맞이한 평원을 또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반 호수. 

  바다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어마어머한 크기의 세반 호수는 전체 아르메니아 국토면적의 6%를 차지한다.  또한 산악국가라 할 수 있는 아르메니아의 평균 표고가 해발 1.000에 이르는데, 여기 세반호수의 경우 표고가 자그만치 해발 1.900미터에 위치해 있으니,  우리나라의 한라산 꼭때기 백록담보다 높은 위채에 형성된 거대한 바다같은 호수라 하면 이해가 될까?

  한마디로 경이로움 자체라 해도 무방할듯 싶다.

  그리고 그 거대한 호수위에 떠 있는 (세반 반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  다음으로 이어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