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에 이미 코카서스 남쪽으로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던 대아르메니아에는 대단히 크고 넓은 호수가 3개나 있었다.
반 호수. 우르미아 호수. 세반 호수이다.
그 후로 숱한 분쟁과 전쟁을 치르면서 영토는 거의 1/4로 줄어들었다. 하여 반 호수는 터키의 영토가 되었고, 우르미아 호수는 이란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는 세반 호수가 아르메니아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거대한 바다 같은 호수로 남아있다. 세반 호수라는 이름도 기원전 현재 터키땅의 반 호수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반 호수를 그대로 닮았는데 물빛이 검다하여 세반 호수라 불렀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에레반에서 북동쪽으로 70km 쯤에 위치한 세반 호수는 수면이 해발 1.900m에 위치한 특이한 호수중 하나이다.
아르메니아의 아름다운 경관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세반 호수와 세반나 반크를 찾았다.
흔히 그냥 부르는 지명인 세반나 반크는 수도원을 가리키는 것이고, 정작 세반 호수에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것은 따로있다. 바로 세반나 반크 반대편으로 세워진 두 개의 교회 건물인 것이다. 사도 교회와 성모 교회가 그것이다.
본래의 에정대로라면 우리가 타고 국경을 넘어온 택시는 그대로 에레반으로 향할 에정이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거나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방편에 따라 세반 호수에 들른다는 게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투미아주머니가 기사분에게 한참을 무어라고 설득을 한 끝에 여기 세반 호수를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은 작년에도 들러보았는데 멀리 아시아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나를 위해 좀 배려를 해달라 부탁을 하셨다는 설명이었다. 세사람 모두에게 깊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또 애초엔 이렇게 세반 호수를 지나치리라는 것은 에상하고 있었지만, 세반나 반크가 예레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불과 수백미터 밖에 안떨어져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었다.
호수를 끼고 포장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야트막한 언덕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좌회전을 했다.
다시 약간의 언덕길을 내려 달리다보니 길 양편으로 호두나무 숲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나자 너른 주차장과 숙박시설과 상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세반 호수에서도 가장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 세반나 반크에 도착을 한 것이다.
굵은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 잔뜩 찌프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사정없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세찬 바람은 마치 겨울인듯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상당히 많은 여행자들이 세반나 반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많은 여행자중에서 반팔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 뿐이었다. 다들 가을을 보내고 초겨울을 맞이한 차림새들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싸늘한 바람결이 매서운 정말 초겨울 날씨를 방불케 했다. 겉옷 하나 걸치고 나올껄 하는 후회가 저절로 생겨났다. 이미 한참 계단을 올라왔으니 이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검고 드넓은 세반 호수를 배경으로 세반나 반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와!!
-- 주차장과 상점들. 이곳이 본래는 모두 호수면 아래에 잠겨있던 곳이다. 사진 가운데 언덕위의 커다란 건물(호텔)이 본래의 선착장이었다.
--- 마침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반 교회.
--- 사도 교회 반대편 언덕에 위치한 수도원. 여기 수도원의 이름이 바로 세반나 반크이다.
-- 검은 현무암으로 지어져 어둡게 보이는 건물이 사도 교회이다.
-- 호수에서 좀 더 가까운 흰 벽칠이 드러난 건물이 성모 교회이다.
-- 사도 교회에서 내려다 보면 호수가 언덕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대통령 여름별장이 보인다.
흔히들 세반나 반크로 불리는 이곳에는 두 개의 교회 건물이 있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아 만든 검은 빛깔의 사도 교회와 쌓아올린 들틈 사이를 메운 휜 회벽칠이 두드러진 성모 교회이다.
사도 교회의 문은 육중하게 잠겨 있으나 성모 교회의 문은 열려 있으며, 현재에도 예배처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흔히 이곳의 지명으로 대변되는 사반나 반크는 여기 교회의 반대편 언덕에 장중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는데, 시간과 날씨 사정으로 다가가보지를 못하였다.
아르메니아의 으뜸가는 절경지로 소문이 자자했던 세반 호수와 두 개의 교회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하다 싶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만큼 쓸쓸했다.
세반 호수는 무엇인가가 쓸쓸하고 착잡해 지는 그런 모습이다. 그것이 왜 인지는 모르겠다.
검은 물빛때문일까?
소금기를 머금고 있을것만 같은 파도처럼 일렁이는 물결 때문일까?
쌀쌀하면서도 스산하기까지 한 바람 때문일까?
세반 호수는 쓸쓸하다.
가을과 겨울의 딱 중간에 서서..........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반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으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세반 호수의 옛모습을 그려보거나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보자면 그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것이다.
호수의 수면이 지금보다 한참이나 더 높았다고 치면 간단한 일일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나에게 설명을 해주려 이야기를 꺼내던 택시드라이버에게 내가 이미 그 지난 이야기들을 모두 알고있더라고 바투미 아주머니가 말을 전하자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책 읽는것을 좋아하는 탓에 여기 세반 호수 뿐만이 아니라 아르메니아의 역사나 유명 관광지들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노라 말을 꺼내니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세반 호수는 지금의 수면 보다 자그만치 16m나 높은 수위를 가지고 있었다. 해발 1.900m의 산골짜기에 말이다.
여기 이 교회와 수도원은 철저하게 고립된 섬이었다. 배를 타야만 접근이 허락되던 장소였다.
여기에 들어오던 진입로와 주변의 호두나무 숲과 주차장과 성점들은 모두 호수면 아래의 깊은 바닦이었던 것이다. 대통령 여름별장의 마당 높이쯤에 선착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호수 수면이 낮아졌고 섬이 육지가 되면서 길도 생기고 숲도 생기고 마을도 생겨나게된 것이다.
왜?
재앙. (대자연의 경고)
(구)소련 시대가 남긴 자연환경적 대재앙이라 할만한 사건으로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 따른 재앙이었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의 4호기가 폭발했다. 순간 모든것이 지옥으로 변했다. 이 순간까지도 체르노빌은 유령의 도시로 남아있다. 인류가 생존해 나가는데 있어서 필수요건의 하나인 에너지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 석탄과 석유가 고갈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원자력은 뗄래야 뗄수없는 필수요건이 되었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면 세상은 언제든 또다시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똑똑하게 가르쳐준 선례로 남게되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아랄 해(海)의 소멸 사태이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걸쳐서 분포해 있던 아랄해는 지구상에서 네번째로 큰 담수호였다. 아랄해 라는 어원이 (섬들의 바다)라는 의미에서 생겨났다니 가히 얼마나 거대한 호수였든지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르다리아강(江)과 아무다리아강(江)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드는 풍부한 물이 바로 아랼해의 젖줄이었다.
1960년대 이후 (구)소련 정부는 아랄해의 젖줄인 시르다리아 강과 아무다리아 강의 물길을 돌리는 대역사에 돌입하게 된다.
돌려버린 이 물길을 이용하여 사막화가 시작되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지의 광대한 땅에 물을 공급함으로서 관개농지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이 관계사업으로 인한 결실을 채 보기도 전에 이미 아랄해의 수위가 급속도로 낮아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최고수심은 69m라 하였으나, 평균 수심이 19m 정도인 아랄해의 수위가 12m나 급속히 내려앉았다. 수량이 줄어든 호수 바닦에서는 온갖 중금속들과 가라앉았던 염분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식수로 사용이 불가능해 졌고, 철갑상어를 비롯해 전 소련 영역에 상당부분을 충당하던 풍부하고 다양했던 어종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중금속에 오렴된 거대한 소금 평야가 만들어졌다. 지금 호수면은 지난날 면적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경을 넘어 교역을 하던 항구들도 페쇄되었고, 풍요롭고 아름답던 어촌마을들도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변했다. 그냥 소금사막이 되어버렸다. 그 지옥을 연구하러 학자들이 찾아오고, 그 지옥을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만 넘쳐나고 있다.
그런 아랄해의 대재앙이 바로 여기 이 세반 호수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세반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라츤강이 있다.
라츤강은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작은 지류에 불과하다 하겠으나 협곡을 따라 흐르고, 또 아르메니아의 국토를 가로지른다 하겠으니 정부관계자들이 그 이용가치를 수시로 계산해 보는것이 무리도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정부는 대단위 관계사업에 뛰어들었다. 세반 호수의 바닦을 뚫어서 풍부한 물을 터널을 통해 라츤강으로 끌어들이는 대역사였다. 불어난 라츤강 물을 이용해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그 물을 국토 전역의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터널 공사는 마무리 되었고 수력발전소는 씽씽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해 냈다. 인근 도시들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가 목표로 했던 바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반 호수의 수위가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랄해의 재앙을 지켜보면서 세반 호수도 그렇게 되리라 에견했던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위가 19m나 낮아지는 것을 목격한 아르메니아 정부는 더 이상 다가오는 대재앙을 외면 할 수 없었다. 세반 호수와 라츤강을 연결하던 터널을 폭파해 막아버렸다. 수력 발전소를 화력발전소로 바꾸었다.
그래도 한번 내려간 수위는 되돌아 올라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흘러드는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더러 겨우 흘러드는 그 양으로는 드넒은 면적에서 자연 증발해 버리는 양에도 미치지 못할 형편이었다. 점차 부영양화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녹조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혼비백산 했다. 서두르고 또 서둘러서 50km나 떨어진 아르파 강의 물을 끌어다 호수에 흘려 넣었다. 그랬음에도 고작 수위는 1.5m 밖에 오르질 않았다. 하여 또다시 22km나 떨어진 보로탄 강의 물을 끌어오기 위하여 또 터널을 뚫었다. 그랬음에도 고작 수위는 또 1.5m 밖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의 부영양화나 녹조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후 오늘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랬음에도 세반 호수의 수위는 본래의 수위보다 16m나 낮아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이 모습인 것이다.
환경이라는 것은 개발이라는 목표만 생각하고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는 그런것이 아니다.
손을 대서 훼손 하기는 쉽겠으나, 그 회복은 그리 요원한 일이 절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원칙이 무너졌을 때, 대자연은 우리 인간들에게 감히 상상조차 할 수없는 엄청난 재앙을 기꺼히 선물하듯 내놓는다.
세반 호수는 왠지 쓸쓸하다.
오늘 그 쓸쓸함에 한껏 취해보았다. 대취했다. 만취했다.
옷깃을 슬며시 들춰보니 내 가슴에서 알싸한 씁쓸함이 은근하게 풍겨나온다.
가자.
다시 에레반을 향해서.............
예.레.반.
좋다.
나는 에레반이 좋다.
예레반이 이처럼 좋을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사랑스런 나의 도시 에레반.
오래오래 머물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에레반을 꼽겠다.
조지아 여행의 일부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3일 동안만 다녀오자고 허겁지겁 서둘러 찾아온 아르메니아 였지만......
다음 여행에 이번처럼 보름가까이 여기 코카서스를 다시오게 된다면...... 3일 정도를 조지아에게 주고, 나머지 모든 일정을 아르메니아에서....... 그 중 절반은 여기 예레반에서 머물고 싶다.
나라 전체가 야외박물관이라 일컷는 아르메니아.
(구)소련이 서방세계에 내놓고 자랑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히 계산에 의거해 계획한 현대식 계획도시 에레반.
에레반의 거리에선 파리의 모습이 스며있고 런던의 분위기가 풍겨나고 포루투갈 리스본의 정취가 묻어난다.
예레반의 도심은 온통 짚푸른 숲에 들어앉은 공원분위기다. 아름다운 여성들, 고풍스러우면서도 멋있는 건물들, 착하디 착한 물가에 넘쳐나는 풍부한 과일과 와인과 꽃들........ 유독 꽃가계가 많고 꽃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꽃을 사랑함이 암스텔담이나 파리 이상이다.
나.는.예.레.반.을.지.상.최.고.의.아.름.답.고.행.복.한.도.시.로.꼽.는.것.에.절.대.주.저.하.지.않.기.로.굳.게.마.음.먹.었.다.
-- (마더 오브 아르메니아) 칼만 들고 서있는 강인한 모습이다. 조지아의 동상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크다.
예레반에 도착한 택시는 본래의 목적지인 터미널로 가지않고 센트럴 파크 오페라하우스 인근에 멈춰섰다.
내가 우선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여기 인근이라 하자 바투미부부가 기사를 설득해 그런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터미널에거 기다리고 있는 딸에게도 차를 가지고 오페라하우스로 오게끔 했다. 너무너무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드라이버도 마친가지였다. 하도 감사해서 별도의 팁을 주려 하였더니 극구 사양을 해서 그저 감사함과 한없는 아쉬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작별을 했다.
아르메니아로 넘어오던 사다크로 국경에서 입국비자 면접때 이야기했던 배가본드 호텔을 찾아 나섰다. 사전 검색을 해 둔 1순위 호텔이었다. 겨우 찾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이 없다. 서너 군데를 돌아보았는데 어디에도 방이 없다.
이번 여행은 시기를 잘못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고를것 같다. 비수기에 접어들었을 시기인것은 분명한데...... 최고의 성수기로 변모한 것이다.
한 호텔 후런트 아가씨가 '자신이 권장하고픈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기에 약도까지 받아들고 찾아갔다. 이제것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 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런거 저런거 따질 상황이 못되었기에 찾아갔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재정 러시아 시대의 그 허름하고 낡은 그런 곳이었는데....... 거기에도 침대가 없다. 허탈했다.
힘에 겨워 보였는지 주인여자가 얼른 물병을 건네준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는데....... 주인 여자가 나를 부른다.
인근에 자기와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는데 가격이 자기 집보다 조금 더 쎄단다. 하지만 여러가지 조건은 그곳이 더 좋을 거란다. 점심을 함께 했는데 방이 남았다는것 같단다. 또 약도를 그려주면서 자신이 소개했다고 꼭 전해 달란다.
your hostel.
어렵게 어렵게 찾아갔다. 4층 게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메모를 건네서 누가 소개해 주었다고 했다.
방이 하나 있었다. 아주 작지만 깨긋하고 천장이랄까 벽이랄까 흡사 옥탑방처럼 밖으로 창이나 있는 방이었다. 침대가 2개였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애 본적이 없어서 무척 낯설었다. 그냥 우리집 아파트를 이방 저방 나누어서 사용하는 것 쯤으로 이해가 되었다.
상황 설명을 해서 딱 하나 남은 그 방을 이틀동안 혼자 쓰고 싶다고 했다. 침대 하나에 10$ 씩이었는데 절충해서 하루에 약 16$씩 32$에 이틀을 빌리기로 합의 했다. 독방인 것이다.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이 3개나 되는 제법 너르고 깨끗한 호스텔이었다. 이정도라면 앞으로 내 여행에서 선택의 폭이 한층 넒어진 것이다. 화장실이 방 밖에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불편할 것이 없어 보였다. 차차 겪겠지만 또 다른 장점도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온 부부와 독일에서 온 청년과 인사도 나누었다.
배낭까지 풀어서 방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까지의 그 어떤 호텔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에레반에 오게되면 또 여기를 찾으리라.
저녁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당장 찾아가 보고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략이지만 그 위치도 파악하고 있었다. 방금 도착한 처지이지만 적어도 에레반 도심은 이미 어느정도 꿰차고 있었다. 자신있게발걸음을 옮겼다.
낯선 이국의 도시 예레반.
그런데 이상하다 싶을 만치 첫느낌부터 무엇인가가 한없이 좋다. 그냥 마구마구 좋아진다. 에레반이 좋아진다. 한없이 편안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잔뜩 찌프리고 있다.
온 종일 지프리고 굵은 빗방울을 오락가락 떨어트리고 있다.
레스토랑이 늘어서있는 골목을 지나고, 지하도를 통과하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물론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낀다. 어디에도 나랑 비슷하게나마 생긴 사람이 없다. 온통 매부리코의 쭉쭉빵빵들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예레반의 상징 캐.스.케.이.드.
꼭 보고 싶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케스케이드 계단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설마.........
계단을 오르다 말고 서둘러 되돌아 내려왔다. 인근의 레스토랑 처마 아래로 대피했다.
아뿔싸. 쉽게 멈출 소나기가 아니지 싶다.
담배파는 간이매점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커다란 비닐봉지 하나를 얻었다.
카메라를 둘둘말아 감싸안고 빗속을 태연스럽게 걷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속옷 그 깊숙한 곳까지 온통 비에 젖는다. 우산 파는 곳을 찾아보려다 말았다. 이미 다 젖었는걸 뭐.
그래도 이 의지의 대한민국인...........
숙소 근처에 오면서 보아두었던 대형마트에 들러서 저녁만찬 장보기를 한다.
씻고..... 옷 갈아 입고....... 창 밖을 내다보며 멍 때리고...... 책자와 메모지 꺼내서 내일 스케줄 확인하고.........
환상의 저녁만찬.
캐스케이드는 눈을 뜨자마자 새벽에 다시 가보기로 하고........
예레반에서의 첫날.
행복하다. 트빌리시에서의 메모리카드 악몽도 어느새 자연 치유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정말 행복하다. 에레반에 있어서...........
새벽에 눈을 뜨니 공동부엌 탁자에 정성스레 아침꺼리가 올라와 있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커피를 타고 조촐하게 아침 식사도 마친다.
새벽 산책 나갈 시간이다.
에레반에서 맞는 새아침이 시작된 것이다.
-------- 다음으로 이어서.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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