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나서고나니 갑자기 심하게 허기가 찾아왔다.
어제 점심에 충주 롯데마트에서 주점부리로 빵과 커피로 끼니를 해결했고, 밤에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항공사에서 나누어 준 아주아주 허접한(?) 기내식으로 겨우 체면치레의 요기를 한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피곤만큼이나 배가 고파서 찾아든 호텔이었는데 먹을꺼리는 해결못한 채 그대로 침대에 들었고, 4시간 좀 지나 이른 아침부터 다시 시작한 여행이었으니 스스로 생각하기로도 배가 고프긴 고플때가 한참을 지났어도 지났다.
한국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어디 해장국집이라도 찾아가겠는데.........
아무리 여행중이라지만, 그래도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인데 도대체 무얼 먹는다?
오토바이 행렬이 길고 바쁘게 이어지는 도심을 걸으며 이골목 저골목을 기웃기웃거리는데....... 있다. 나의 시선과 식욕을 자극하는 장소가.
허름한 도심의 뒷골목 어귀에 좌우지간 음식점으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북적이는것이 보인다.
무거운 배낭을 걸머진 채로 허름한 식당의 안쪽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태연하게 지나치고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을 한다.
어쩌지? 들어갈까 말까?
베트남에서 맞이하는 첫 식사에 대한 기대감에서 보자면 너무 허름하고 누추하기가지 하다. 대충 살펴 본 기억으로는 딱히 메뉴랄 것도 없이 딱 한가지 음식인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길모퉁이의 작고 허름한 식당이지만 빈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고 있고,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표정에서 싱그런 미소가 떠나지 않는것이 내 발걸음을 자꾸만 잡아당기고 있다.
다시 어정쩡한 모양새로 발걸음을 돌려 식당 앞에서 음식먹기에 바쁜 사람들을 구경하듯이 쳐다보면서 멍하니 서 있자니....... 거 참. 모양새나 폼새가 참 거시기(?) 하다.
식당의 분위기를 딱 한마디로꼬집어 표현하자면....... 시골 재래시장의 깊숙한 모퉁이에 겨우 븥어있는 '불량식품 거래소' 같은 분위기랄까?
마침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떠나는 가족들이 있기에 넙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래도 4인 좌석인데 혼자 차지하고 반대쪽에 배낭을 떡하니 얹어 놓으니 밖에 찾아온 다른 손님에게 적잖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찾아와 뭐라고 톤을 높여 이야기 하는데....... 내가 베트남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메뉴판을 좀 보여달라고 하는데도 그 아저씨 혼자서만 실컷 떠든다.
그러자 이때 안쪽에서 아저씨의 딸인 듯 밝은 미소를 띤 상큼한 아가씨가 다가와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메뉴판이 있기는 한데 여행자를 위한 영문표기까지는 안되어 있단다. 대체적으로 두 가지 메뉴가 있는데 쌀국수랑 또 뭐가 있단다.
내가 이 식당을 기웃거리기 시작하면서 살펴보니 손님들 모두가 통일하듯이 한가지 음식을 오로지 먹고 있었기에, 옆테이블의 손님이 맛있게 먹고 있는 음식을 가리키며 '나도 저것이 먹고 싶다'고 하자 친절한 아가씨는 조금만 기다리라면서 안으로 사라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비주얼로 보자면 흡사 한국에서 보는 함박스테이크 분위기라고나 할까?
사방 불에 그을린 나무판 위로 달궈진 철판이 올려졌고, 그 위로 지글지글 끓고있는 음식이 올려졌다. 소고기를 얇게 썰어서 펼쳐놓고 그 위에 토마토와 야채를 얹고 계란을 깨서 얹었다. 빠게트빵이 반덩어리 쯤 나오고, 상추를 깐 접시에 얇게 썬 오이들이 올려져나왔다. 작은 종재기에 파를 썰어 띄운 국물이 나왔고 월남고추가 담긴 종재기가 추가되었다. 생수는 아에 없었고 대신 음식에 뒤따라 붉은 물병에 담긴 베트남의 전통차가 따라 나왔다. 베트남에서는 식당에서 물을 주는 경우가 아예 없다. 한인식당이라면 모를까?
비주얼은 솔직히 좀 그냥 그렇다.
분위기도 좀 그렇다. 골목에 붙은 거리 한쪽에 그냥 테이블 펴고 의자 펴고 들어앉아 먹는 음식이었다. 허접한 노점에 은근슬쩍 불량식품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런.........
그래도 베트남 여행의 첫 식사인데........
어쩌겠어? 시장이 반찬이라고......... 일단 허기나 면하고 보는거지...........
그런데 이 음식.......... 디게 맛있다.
맛있는 정도를 한참 넘어서 가히 에술적인 경지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칭찬은 이제 구 시대적 표현이다.
' 둘이 먹다가 같이 죽어가면서도 웃음이 나올 그런 맛이다' 라는 표현이 저절로 생각날 정도로 맛의 결정판이다.
거기다가 이 빠게트 또한 에술이다. 반미라는 음식에 주재료이기도 한 이 베트남의 길거리표 빠게트........ 이거 어디 제품이여?
그리운 베이커리(?). 뜰에 줄래(?) 등 등....... 야네들 베트남 가면 다 굶어죽었어.
비주얼은 좀 허름해 보이고 값싼티가 좔좔 흐르지만, 베트남 빠게트는 어딜가나 다 왜이리 맛있니? 부드럽고 고소하고 바삭바삭 하기가 뉴욕이나 파리에서 직수입한건줄 알았어.........
'보네'라고 한것 같은데 음식의 이름이 맞는줄은 잘 모르겠다. 밖에도 그렇게 써 놓기는 했던데.
아침인데도 일가족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외식을 하고, 연실 오토바이로 와서 음식을 싸가지고 가기도 한다.
그런 베트남 사람들의 아침 일상을 도로 한켠에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구경한다.
비닐봉다리 하나가 직장이자 전부인 구두닦이 아저씨.........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다. 그는 훌륭한 자기 직업을 가졌고 성실하게 일했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많이 가지지 않고 풍요롭지 않아도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의 모습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 느긋하고 이유없이 퓽요롭고...... 왠지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
난 이런 마음에 여행을 떠난다.
낯선것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한 설레임과 익숙한 것이 어느 순간 낯선것으로 여겨지는 그런 알싸한 감동을 기대하면서.........
일단 지금은 베트남 다낭.
이번 7박9일의 베트남 여행의 전 일정을 통털어 최고의 멋진 음식은 바로 그 보네였다.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베트남의 음식들. 정말 맛있다. 모두모두 맛있다.
물론 내친구는 이런 나에게 늘상처럼 또 이렇게 말할것이다.
'이 세상에 너 입맛에 안맞는 음식이 과연 있을까?' 라고.
물론 그 말도 맛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음식과 맛에 대하여 최소한의 느낌이나 기치기준도 없기야 하겠니?
근데 베트남 음식들 정말 맛있다.
굿이 베트남에 국한 시키지 말자고 한다면 아마도 정답은 '동남아는 죄 다 식도락의 천국이야'.
거기에 덧붙여 (지극히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에 준해서) 이야기 한다면, '베트남 음식은 간촐하고 싼티가 흐르는 노점에서나 파는 길거리음식문화' 라고 결론짓고 싶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 기후와 풍토와 지역적 문화교류의 결과로 다들 비슷비슷한 음식문화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간의 경제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이유도 있겠고 민족 특유의 전통도 있겠으나 베트남의 경우는 유독 간촐하고 허름해 보였다. 다른 국가들도 허름한 노점식당들이 있지만, 베트남의 경우는 어디에고 공터가 있고 비를 피하게해줄 지붕만 있으면 사방 어디고 간이식당이요 표장마차라 해야겠다. 도심 뿐만이 아니라 시골을 지나치면서 살펴보아도 어디든 그러했다.
음식 또한 보여지는 비주얼 자체가 비싸보이거나 귀해보이는 음식보다는 그냥 어디서든 흔하디 흔한 그저그런 길거리음식 수준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에게도 왜 비싸고 귀한 음식이 없을까보다마는.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쌀국수. 그런데 난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쌀국수 맛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부로 완전히 포로가 되었다. 쌀국수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먹어 본 (월남쌈)은 저리가라 였다. 거의 매 끼니마다 쌀국수는 꼭 먹었다. 서너가지 음식을 먹어도 그 기본으로는 우선 쌀국수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쌀국수에 대한 나의 확실한 소견이랄까? 분명한 기준이 있다.
'베트남 쌀국수의 맛은, 그것을 파는 음식점의 수준과 반비례 한다. 절대적으로 반비례한다.'
호텔 레스토랑을 비롯한 뻔쩍지끌한 일류 음식점들의 쌀국수 맛은 정말정말 형편 없다.
길거리 골목안쪽에 천막지붕도 찢겨나간 도저히 음식점이라 할 수 없는 그런곳에서 늙으신 할머니가 말아주는 거의 불량식품 비스무리하게 보이는 쌀국수가 최고의 맛이다. 정말 정말 맛있다. 달리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행자거리의 별이 서너개 붙은 레스토랑에서 쌀국수와 다른 음식을 시켜 싹싹 쓸어먹다시피 하고 난 후,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전통재래시장 구석에 있는 할머니 노점에 찾아가 기어코 쌀국수를 더 시켜서 먹고 말았다. 무엇인가 2% 정도 보족한 그 무엇인가를, 골목 바깥을 내다보며 목욕탕 때밀이 난쟁이 의자를 깔고앉아 먹는 할머니표 길거리 쌀국수는 단번에 그 무엇인가가 부족한 내 속을 확실하게 채워주고도 남았다.
제대로 셋팅된 테이블에서 먹는 음식보다 길거리표가 더 맛있음을 증명해주는.........
새벽 나짱(나트랑) 해변이 건너다 보이는 길가 노점에서 쌀국수를 시켜놓고 맛있게 먹을 궁리를 하던 차에........
거랑말코 같은 남자 하나가 다자고짜 내 면전에서 합석을 한다고 앉은뱅이 의자를 들고 와 차지하고 앉는다. 참 염치도 좋다.
그리고는 빤히 쳐다보면서 연실 혼자 떠들어대는데 당체 내가 알아들을 수가 있나? 제 접시에 야채도 지맘대로 담아오고, 내 접시에 야채도 더 얹어준다. 음식이 나오자 코딱지만한 테이블을 탁탁 치면서 나보고 자기를 따라 해보란다.
헐. 세상에 뭐 이런 거랑말코가.........
무서워서(?) 따라해 보았다.
야채 팍팍 넣고, 느억맘(완전 발효시킨 새우젓 쯤)인줄은 사전에 공부해서 알겠는데 시늉으로 알아서 적당히 넣으라 시범을 보여주고, 라임 쪼가리를 손으로 꽉꽉 짜서 넣고는 훌 훌 젖어서는 한 젖갈 크게 떠서 먹는다. 그러면서 눈짓으로 얼른 자기처럼 먹어보란다. 또 무서워서 시키는대로 얼른 따라 해 봤다.
캬. 직인다.
바로 그맛이다. 쌀국수는 그렇게 먹어야 제 맛인줄을 이제야 알게되었다.
내가 이렇게 노점음식 좋아한다고 속까지 싼티는 절대 아니라는걸 밝혀두고자 한다.
밖에서 싼티나게 놀면 우리 챠밍이 아주아주 싫어한다. 우리 아들도 싼티나는 아빠는 절대 절대 안된다고 누누히 강조하는데......... 아들이 한 개 밖에 없는 처지에........... 음식맛만 그렇더라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암튼, 내거 그 거랑말코에게 쌀국수 먹는 방법을 다 전수받기도 전에 그 할머니 가계랄걷도 없는 길거리 점빵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메뉴라고 오로지 그거 한 가지 밖에 없는 노점에, 그것도 새벽 6시도 안되었는데.......
또 헐............
베트남 음식은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다.
나의 신체가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체구가 큰 편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마르고 왜소한 편이니 차량의 배기량처럼 당연히 연료탱크가 작은 이유도 있겠지만, 또 우리네 음식처럼 기름진 음식들도 드물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왠지 푸짐함 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다른사람들의 여행기를 보아도 둘이서 두가지, 셋이서 세가지 음식으로 땡 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둘이서 세네가지, 셋이선 최소 다섯가지 등등을 주문하고 또 맛있게들 그릇을 싹싹 비우는 것을 보았다.
무울론, 다앙혀니 내 경우도 많이 먹었다. 갯수는 말 안해도 되겠고 하루 4끼나 5기를 먹었다. 거기에 매 끼니마다 맥주를 한두병 곁들였다. 왜냐면......... 맥주가 싸니까.........
그런데도 요상하게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파오는 것이다. 왜 그러지?
야네들 음식 향료에 소화제 넣는것은 아닌가 몰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의 잘란알로 푸드코트나 페낭의 거니드라이브 푸드코트의 분위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여기에 비하면 말레이시아 음식은 지극히 많이 세련됐다.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도 더 하고, 가격에 대해서도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인접국가이자 열대의 나라이다 보니 많은 음식들이 공유내지는 겹쳐지는데도 비주얼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말레이시아가 적어도 포장마차급 이상의 제대로 모양새를 어느정도 갖춘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이라면 , 베트남은 포장마차급 이하의 대충 아무대고 걸치고 앉아 올려놓을데만 있으면 되는 노상음식의 천국이라 해도 될까?
분위기 보다는 맛이 끝내주는 노상카페 라고 표현을 약간만 바꾸기로 하자.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베트남의 맛이었다.
보네를 맛보고 골목을 나오니 저만치 앞에 그 유명한 다낭의 전통재래시장 쩌 한(한시장)이 보인다.
이곳을 찾아온것은 여기 인근에서 바로 호이안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는 사전공부를 해 왔기때문이었다.
시장구경을 하다가 누구에게 물어보면 되겠느구나 하고 길거리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었는데, 엄마 허리춤을 잡고 따라오고 있는 베트남여자 꼬마가 엄청 예쁘고 귀엽게 생겼다. 인형 같았다. 사진기를 대고 줌을 당기고 있는데 지나가던 외국여행자가 그만 그 꼬마의 엄마와 살짝부딪쳤다. 막 태어난 아기를 앉고있는 꼬마엄마는 막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외국인여행자가 놀라 영어로 사과하는데, 이 엄마 썩 잘하는 영어로 교양끼가 절절 차고 넘치게 대답을 하는것이 아닌가. 막 부딪치고 난 후의 모습이 내 카메라에 담겼다. 잠시 후 내가 꼬마엄마에게 호이안 가는 버스를 타려한다고 물었는데, 너무도 친절하고 소상하게 안내를 해 주는 것이었다. 아! 이정도면 틀립없는 베트남의 인텔리 여성이다 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길 안내를 받은 후 꼬마아이가 참 이쁘다고 사진 한 장 찍으려 했다고 하자, 그 엄마가 꼬마에게 연실 뭐라고 해 주었는데.......... 엄마 뒤로 숨은 아이는 다시는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도 나도 멍하니 마주보며 실없는 읏음만 짓다가 감사인사 후 헤어져 돌아섰다. (에이. 엄마라도 다시 찍어둘껄. 베트남의 지성미를 갖춘 여성상이었는데.)
말레이시아 길거리에서 30% 정도는 영어로 대충이나마 의사 소통이 됐다. 10% 정도는 거의 미국인 수준이었고.
베트남 길거리에서 5% 정도는 영어도 대충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2% 정도가 겨우 나를 이해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겨우 콩그리시 수준인 나의 한계도 전제하면서 하는 말이다.
꼬마엄마가 가르쳐 준대로 도로 하나를 건너 모퉁이를 돌아서니 버스정류장 표시가 보였다.
그런데 그때........
정류장을 한참 지난 저만큼에 노란 버스가 하나 멈추어 서있다가 막 출발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살펴보니 (01)번이다.
'가만 01번이면 호이안이 틀림없는데........ 이거 놓치면 30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호이안?' '호이안?' 외치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묻다시피 하면서 버스를 쫓는데......... 이번엔 행인들이 '호이안' '호이안' 외치면서 이미 출발하고 있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러자....... 거짓말 처럼 버스가 멈춰섰다.
암튼 나는 기어코 호이안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버스나 택시나 바가지 요금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심심찮게 들어왔고 실제 경험도 했었다.
그리고 여기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가는 시내버스이 바가지요금에 대해서도 사전 공부를 해 둔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 올라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가쁜 숨을 고른 후에 버스 맨 뒷편의 좁의 의자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났을 즈음이었다.
안내양이(호이안 버스에는 남자 여자 2명의 보조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차비를 받으러 왔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손을 들어 펼쳐보이며 5만동( 2.500원)을 내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사전에 책에서 읽은 그대로였다.
실제 요금은 8천동(400원) 인데 말씀이다. 또 아예 거스름돈은 받을 생각을 말라는 내용도 나는 이미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적선은 할 수 있어도 뺏기거나 사기는 당하지 않는다)는 나의 신조를 이 아줌마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부러 지갑을 그 아줌마가 잘 보게끔 꺼내서 열었다. 달러까지 포함해 제법 적지않은 지폐가 수북히 들어있는 지갑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 아줌마가 들여다 보고 있다.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나는 1만동(500원)짜리 지페를 내밀었다. 그러자마자 그 아줌마 경을 치듯이 거세게 손을 내 젖더니 다시 손가락을 펴 5만동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조용히 타이르듯 말해줬다.
'아줌마. 내가 어제 호이안에서 왔다가 여권을 놓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가는 것이거든? 그리고 나는 이미 여기 버스의 속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거든? 거스름 돈까지는 필요없으니까 그냥 받으셔..............' ㅋㅋ ㅋㅋ ㅋ
순간, 그 아줌마 참으로 오묘한 표정을 짖더니 슬그머니 1만동 지페를 집어들고는 앞쪽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는 남자 차장과 귓속말을 주고 받는데 아마도 고자질인듯 싶다. 왜냐면 그 남자가 수시로 나를 돌아다 봤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들에게도 국가적인 자긍심이나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는가보다.
이번엔 남자차장이 나에게 다가와 분에 넘치는 관심과 친절을 보여준다. 심지어 관광가이드까지 해준다.
그렇게 그렇게 1시간 30여분이 지나면서 시내버스는 마침내 호이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번엔 여자차장이 쫓아나온다.
자기네 버스는 40분 후에 다낭으로 출발한단다. 서둘러 여권을 찾아서 다낭까지 간다면 이번엔 자기들이 공짜로 태워준단다.
헐.
세상 어디를 가도 시내버스는 항상 즐겁고 아주 흥미롭다.
아!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오묘한 세상사............
할렐루야. 아멘.
그
리
고
암튼.
여기는 호. 이. 안.
대한민국에 경주가 있다면, 베트남엔 호이안이 있다.
서구의 여행객들은 자연스럽고 자유분망하다,
그들은 정말로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 대한 기본적 예의에는 지극히 충실하면서, 그 외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로지즐거운 여행이다.
호이안에서 대부분의 서구여행자들은 자전거를 빌려서 나들이 하듯 여기 이 유명한 관광지를 즐긴다.
보다 젊은 여행자들은 현지인들처럼 오토바이를 빌려서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여행객들의 바이크 솜씨들도 프로 못지 않았다.
그네들의 자연스러운 여유와 움직임들이 유독 나에게 낯설고 새롭게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적어도 내 눈에 띄는 유별난(?) 한국의 여행객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생각이나 행동이 다분히 서구지향적이라는 말을 들어오고 있는 나의 처지에서 보자니 어쩌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차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듭 다시 말하자면, 비록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에 의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중국인들의 무경우와 유독 소란함) (유별나게 어줍짢게 티를 내려고 안달하는 한국인의 요상한 정서) (왠지 옆에 두기엔 꺼려지는 일본인) 들의 꼴부견이 비단 나만의 어긋난 견해는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호이안, 아니면 베트남에서의 꼴불견에 대해서는 다음회나 어디에서든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아직 호이안에서의 머물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
조금 소란스럽다는 구시가(호이안의 대표 관광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행자거리를 벗어나는 지역에서 숙소를 얻고자 했다.
패캐지여행은 죽어도 싫고.
챠밍과 왔다면 근데군데 여행의 거점도시엔 호텔예약을 사전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여행스케줄 없이 달랑 비행기표만 들고 떠나온 여행이기에 내 수중에 호텔 바우처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런 것들이 걱정거리일 수 있고, 불편한 점도 되겠지만, 정녕 자유스러운 여행에는 아주 커다란 장점일 수도 있다는 나의 생각이다.
사전 예약해 둔 호텔(이미 비용 지불) 때문에 여행스케줄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여행스케줄을 내마음대로 하면서 그때그때 안해도 되는 발품을 좀 팔아야 어떤때는 그나마 겨우 숙소를 구할 수 있는 정도의 불편이 어행내내 겪게되는 어려움 일지라해도 나는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겠다. '방 못구하면 해변 백사장에서 그냥 쓰러져 뒹굴지 뭐' 하는게 실제 떠날 때의 각오였다.
또 실제로는 떠나기 전에 거쳐갈 거점도시들의 숙소에 대해서 (아고다) (익스피디아) (부킹 닷 컴)들을 통해서 검색을 충분히 해둔다.
가격대비 또는 접근성 등에 대해 살펴보고 거점도시희 호텔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열심히 메모해서 가지고 간다.
예약 시점은 성수기였으나 시간이 지나 할인률이 커질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호이안에 들어와서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나의 여행계획표를 검토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내가 골라놓았던 호텔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주소를 들고 길을 물어가면서 찾아간다. 나의 여행은 걷는것으로 시작하고 걷는것으로 끝난다. 언제나.....
후런트 데스크에 가서 에약 없이 왔는데 머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가격대를 물어보고 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1층이었는데 건물 뒷편으로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가격도 내가 검색한 것보다 약간 더 비싸다. 일단 엎그레이드를 요청하면서 경치가 좋고 발코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요구한다. 4층의 방을 구경했는데 쏙 마음에 든다. 후런트에 내려와 다시 흥정을 하면서 나의 메모장을 꺼낸다. 벽에 걸린 (부킹닷컴) 협력없체 인증을 가리키면서, 내가 여기를 알고 찾아온것도 부킹닷컴에서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킹닷컴에서 인터넷 예약시 제시한 금액의 메모를 직접 보여준다. 고객이 이렇게 직접 찾아와 현금 결제를 한다면 너희들은 부킹닷컴에 수수료 지불 안해도 좋은것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도 좋고 나도 해피한 가격에 여기 머물고 싶다고 정중하게 요청한다.
결론은...... 1층 제시한 가격에 4층에 발코니 있고 풍광이 빼어난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아침도 2번 주고 풀장도 있고........
그럼 도대체 그 가격이 얼마냐?
무이네의 호텔 보다는 비쌌지만......... 말레이시아 호텔 보다는 확실히 싸게 얻었다.
무이네 호텔 이야기 할 때 슬쩍 알려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인상적이었으니까)
조금 걷는 불편만 감수 한다면....... 이런 뜻밖의 결과를 언제든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나의 여행이다.
- 라이크 호이안 호텔 전경.
가진것은 별로 없고 고급 브랜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그래도 빠지거나 없는것도 없는 내 살림살이를 평상시대로 일단 갈끔하게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챠밍의 불문률이다. 아무리 피곤하고 여행중이라도.
초간단 샤워 후 초간편 반바지로 갈아입고 초스피드로 풀장으로 돌진, 그리고 혼자 잘 논다.
기분 끝내준다.
놀만큼 놀았다 싶으니 그제서야 서서히 호이안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아직 섭씨 33도의 햇쌀이 기승을 떠는 시간임에도 씩씩하게 다시 호텔을 나선다.
- 스코틀랜드?
- 노우. 스위즐랜드.
- 아! 스위스?
여행자거리 근처 커피숖에서 만난 친구다.
호이안에 나흘 머물고 오늘 호치민으로 떠난단다.
구시가에서 이틀 묵었는데 시끄럽고 공기자체에 좀 꾸리꾸리한 냄새가 난단다. 돌아다닐땐 모르는데 밤에 잘려고 하면 느껴진단다. 이틀은 내가 찾아가는 호텔 근처였는데 구시가 드나드는게 번거롭고 너무 더웠단다.
집나온지 석달 되었는데 아직 가볼곳이 많단다. 2년을 준비하고 저금해서 떠나온 여행이란다.
사진 한 장 찍자니 혼쾌히 허락하고 웃으며 손인사까지 보내온다.
- 부럽다. 너의 열정과 젊음이.
- 부럽네요. 우리 아빠도 아저씨처럼 여행을 좋아한다면 함께왔을텐데.
에이 c.
눈물이 날라 그러네?
갑자기 아들이 보고싶어지잖아. 우리 아들 짱구. 보구싶다.
아들. 아빠 기운 떨어지기 전에 담엔.......... 아빠 한 번 데리구 가라. 아들이 두 개만 되었어도 나 너한테 이렇게 부탁 안한다?
여행자거리에서 나머지 일정에 꼭 필요한 (신 투어리스트) 호이안 지사의 위치를 확인해서 기억해두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호이안 구시가지로 옮겨본다.
유네스코 세게문화유산 이라나 모라나?
그거 엄청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좋고 귀해서 정말로 아껴야 된다는 지극히 형식적인 캐치프레이즈에서 벗어나..........
일단 지정만 되면 유명해지고 관광수입 챙기기가 수월해지고 짭짤해진다는 후담에 점점 식상해가는 중이었는데........
지금처럼 늘어나면 지구상에 꼭 보존해야 할 중요하지 않은게 뭐가 남아있겠어? 다 세계문화유산이지?
한 150개로 줄여서 재지정하면 안될까? 그러면 한국엔 지정될게 거의 없다구?
암튼.
지금 내 눈앞에 그 무수히 많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에서도 아주 많이 유명하다는 곳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이안!
------- 다음 에피소드 3 에서 아름다운 호이안의 모습을 세세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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