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라.........
베트남이라.........
5월 17일 밤 9시57분, 고심 끝에 다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20일 훌쩍 베트남을 향하는 진에어 항공기에 올라탔다. 귀국 날짜는 28일이다.
7박9일의 짧지만은 않은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베트남.
처음 방문인 것은 확실하지만, 왠지 그렇게 낮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그런 나라였고, 가슴속 깊은곳에서 부턴 어떤 설렘 같은 것이 피어오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을 직접 접해 본 적은 없었으나, 아주 오래전에 나는 베트남의 가슴아픈 근현대사에 대해 제법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베트남 역사부분은 이번 여행기 중에서 한번은 피력을 해 볼것이다. 35년도 더 된 기억을 더듬어서..........
그 당시의 대한민국 현실로서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런......... 우리나 미국과 우호적인 동맹을 맺고있는 베트남의 시각이 아닌, 흔히들 베트콩으로 대변되던 월맹(베트남 공산당)의 시각에서 본 베트남의 근현대사였다. 당시 나는 아주 열심히 그런 공부를 했었다.
79학번인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어떤 선배로 부터 픽업(?)되다시피 하여 어떤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흔히들 (이념써클)이라고 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선배는 내게 읽어보라며 책을 한 권 건네줬다. 이영희 교수님이 쓰신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이었다. 항시 책 읽는것을 좋아했고 우리역사와 세계사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그 책은 엄청난 호기심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까이 해서도 안되고 읽거나 보관해서도 안되는 금서이자 흔한 말로 불온서적 이었다. 당국의 단속에 적발되면 호된 값을 치뤄야 했던 그런 시기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나는 그 선배에게 새로운 책을 직접 구매하겠다고 부탁했다.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우상과 이성) 이었다. 돈 벌어 보겠다고 택한 경영학과 학생이 경영학 시간에는 당구장에서 당구치고, 오후 시간이면 모임 따라다니면서 박현채 교수님의 (민족경제론)에 대해서 선배들로 부터 강의를 듣고, 야간이면 음악다방에서 DJ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나를 써클 친구는 (부르조아)라고 했고 하숙집 친구는 (프로레탈리아)라고 놀렸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별)을 통해 모택동을 알았고, 등소평평전은 나에게 어떤 새로운 시야와 시각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제 3 세계)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해방신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제3세계와 해방신학에 심취한 나는 수유리에 있는 모 종교대학교에 친구를 여럿 두게 되었고, 그곳의 유명(?)하신 몇몇 교수님들의 강의를 도강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그 종교대학은 종교계의 커다란 우려덩어리였고, 대한민국 정부의 아주 커다란 골칫덩어리 였다. 우여곡절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야기 할 때, 서울대나 연.고대는 뺄 수 있어도 수유리의 그 대학교를 빼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논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작은 생각이다.
나는 아주 아주 열심이었고, 실제로 여러가지 일에 관여하기도 앞장서기도 했었다.
그러다 2학년 어느날. 검정색 지프차에 게급장 없는 전투복 차림의 30대 후반쯤 되는 사람이 불쑥 나타나 나를 연행해 갔다. 삼청교육대가 극한의 위상을 자랑할 때라 엄청난 두려움이 전신을 짖누루고 하염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솔직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후미진 곳에 있는 어떤 버려진 아주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의 후원에 있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반쯤 부서진 그런 의자에 나를 앉게 했다. 담배를 피워 문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최근의 나의 일상이 아주 소상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서는 아주 조용한 말로 '젊은 혈기로 날뛰는것 말고 차분하고 진중하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심사숙고 해보았느냐' 고 물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그리고 아버지가 헌신해서 번듯하게 성장시킨 두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평생 군인의 길을 선택했던 두 형에 대한 이야기였다.
'육사라는 덴 말이다. 공부 잘해서 성적도 좋아야 하지만 친가는 물론 외갓집의 사촌까지도 철저하게 신원조회를 해서 통과해야 가는 학교다. 육사 갈 사람이 서울대는 갈 수 있지만, 서울대 갈 성적이라 해서 육사는 함부로 갈 수 없는 그런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를 나와서 하나는 *** 에 있고 하나는 지금 ***에 있던데.......... 너가 형들 인생까지 책임질거야? 너가 이러다 빨간딱지라도 붙이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동생을 둔 사람들에게 별 달아줄것 같아?'
'지금 내가 너 한테 어떤 강요나 협박하는게 아니라는건 차차 네가 스스로 깊게 생각해 보면 알게 될거야. 너는 정말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너에 관한 보고서가 내 눈에 띈게 말이다.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내가..........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신체검사 통지가 나올거다. 그리고 바로 징집 될거야. 최전방으로.......... 새로운 인생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우린 영영히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거야.'
담배 한 개피를 더 태우고 나서 그 사람은 사라졌다. 어떤 젊은 사람이 나타나 나를 애초의 그 장소로 데려다 주었다.
대학생이 되면 졸업때까지 징병이 유에되던 그 시기에 방학하자 마자 정말로 신체검사 통지서가 도착했다.
또 당시엔 신체검사를 받으면 거의 만 1년을 채운 다음해에 징병(군대에 끌려간다고 함)이 집행되었는데, 내 경우에 정말로 딱 한달 후에 추석을 3일 앞두고 징집 되었다. 그 사람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로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하는 인제 원통을 지나 철책속의 부대로 배속되었다. 부대로 들어가는 민통선에 지옥의 형상대로 실제 삼청교육대가 있었다.
제대 후, 자연스레 나는 그 열정의 시대를 함께했던 동지들과는 멀어졌다.
대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간절하게 소망 하나만 들어주십시요 라고 애원 할 정도로 맘에 쏙 드는 여자친구를 하나 찾아냈다.
그녀는 바로 그 문제의 수유리 종교대학의 가장 골칫거리 학과를 졸업한 여자였고.................. 지금은........ 내가...........
(챠밍) 이라고 부른다.
애초 2016년에 계획되고 예정된 여행은 그 시작도 돌로미테요 그 마지막도 돌로미테였다. 오로지 하나였다.
추석이 지나면 출발해서 25일에서 한달 가까이를 캠핑하면서 유럽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8월 말까지는 유럽의 성수기인 여름휴가철이라 그 살인적인 물가와 복잡함을 견딜 수가 없을것 같았다. 11월 말이 되면 여름보다 더 무서운 유럽의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 씨즌이 시작된다. 그리고 10월 중순에 접어들면 날씨가 캠핑하기에 좀 부담스러워 진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 지난해 부터 준비해온 여행이었는데.........
우리 예쁜딸(며느리) 말씀이......... '10월 1일이 예정일 이래요. 귀여운 손주 보여드릴께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할아버지가 된단다. 챠밍이 할망구가 된단다.
그깟 여행이 뭐 별건가? 우리 후손이 탄생하신다는데............
아무런 미련이나 섭섭함 없이 돌로미테를 접었다.
그렇게 두 달여가 더 지나고 예쁜딸의 배가 슬슬 불러오기 시작하고......... 다행히도 시어미 처럼 전혀 입덧도 하지 않는다.
'애 둘 까지는 무조건 길러줄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낳기만 해'라고 큰소리 치던 시어머니 입에서 점점 다가오는 날짜만큼이나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슬슬 걱정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쉽게 길러주겠다고 약속한게 아닌가 싶어지네? 어쩌지? 이제와서 약속 물리자고 했다가 애기 안낳는다고 덤비면 이길 자신도 없고.......... 아이구야.'
마치 10월1일까지는 죽어라 손주를 기다리다가....... 애가 태어나서 기쁨도 잠시 훌쩍 지나고 며느리 산후조리 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이젠 시어머니의 인생이 끝날것이라도 되는것처럼 연실 한숨이다.
'아들 기르는 것 보다 10배는 힘들다는데..........'
보다못한 내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위로해 주려고.
'손주 낳으면 우리도 한 2년은 꽁꽁 묶이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참에 손주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잠깐 나갔다 올까? 돌로미테야 어쩔 수가 없게되었지만 동남아 아디든 짧게 다녀 올 수는 있잖아. 그냥 10월1일만 바라고 있기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드네? 어때?'
나를 빤히 쳐다보던 챠밍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래볼까?'
그래서 지난 4월부터 동남아로의 짧은 여행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베트남 다당으로 6일 이나 7일 정도의 여정으로 6월8일 이나 13일 중에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랬더니 5월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막내인 챠밍여사에겐 두 언니가 계신데 이분들이 글씨.......... 용감하게도 모두 장기기증을 실행하신 대단하신 분들이다.
'아직 세 자매가 모두 장기 기증을 한 가문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바로는......... 챠밍을 슬슬 구스르는 냄새가 나는데.......
아들에 대한 소유권을 딱 절반씩 나누어 소유했다가 며느리에게 100% 무상양도를 마친 우리 부부에게 있어, 상대방의 신체와 기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를 않아 그 장기기증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초차 못하고 있다.
우리는 평소에도 성경에 쓰여진 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거,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 거)를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들이고 보니 (제꺼 제 마음대로 한다)고 하면 따지고 들 명분이 전혀 없다.
그런데 거의 해마다 행해지는 장기기증 운동본부에서 주관하고 초대하는 해외여행 행사가 6월 중에 동남아로 일정이 잡혀있단다. 지나는 말로 (언니들이 초대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하는 말을 두 세번 늘어 놓는다. 안 된다고도 할 수없고, 그러라고 하면 힘들게 계획한 베트남 여행이 날라가는거고...........
나도 그냥 늘어놓는 푸념처럼 '모처럼 자매들끼리 여행하는 것도 좋지 않겠어? 나이 차이도 많으니 앞으로 몇 번이나 할 수 일을지 알아?' 라고 슬쩍 사내대장부의 호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말로 금년도 상반기는 죽어라 바쁘게 돌아가고 일만 했었는데, 서로 맛물려 가던 현장들이 마무리들이 되어가면서 차기 스케줄과의 사이에 모처럼 텀이 생기기 시작했다. 3일도 쉬어보고 4일도 쉬어보고........
그런데 17일 저녁에 상황을 점검해 보니 18일이면 또 현장 하나가 마무리 되고....... 닷새 정도는 쉴 수가 있을것 같다. 그 다음 일정도 빡빡하게 당장 돌아갈 현실도 아닌것으로 보이기에......... 파트너들에게 문자를 날렸다.
벼르고 벼르던 휴가를 다녀와야 겠다고.
파트너 둘이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 그들이 함께 필리핀이나 팔라오로 다이빙을 떠나면 내가 혼자 남아서 현장을 이끌고 급한 상황을 대처해 왔고, 서로의 다른 취미에 대해 배려를 하며 지내왔다.
- 언제 떠나려고?
- 글피. 20일.
- 어디로?
- 베트남 다낭.
- 며칠이나?
- 28일 돌아올께. 나는 팔 고쳐서 올테니 그때까지 현장 잘 챙기고 있어.
그것으로 끝.
마침 처갓집 행사로 오늘 오후부터 며칠 집을 비운 챠밍에게도 비밀로 하고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여행에 환장한 나의 무리한 욕심이 아니라, 이래 놓으면 언니들과의 여행을 쉽게 다녀오라는..... 어디까지나 사나이 깊은 속내에서 나오는 고뇌에 찬 결단!!!!!! ㅎ ㅎㅎㅎ 갖다 붙이고 나니 일단 그럴싸 하다..... ㅋㅋㅋㅋㅋ
밤 9시57분 비행기 티켓팅 완료.
18일 정상 출근. 근무 마침으로 휴가 시작.
19일 짐정리해서 배낭 꾸리고........ 호암지 산책하며 충분한 휴식.
20일 공항으로 출발.(이때 까지도 챠밍은 전혀 이런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음.)
ㅎㅎㅎ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
저가항공이다 보니 지연은 자연스러워졌다.
어찌되었던 베트남 다낭을 향한 진에어 비행기는 떴고, 새벽 1시 가까워져서 다낭에 무사히 도착했다.
베트남 입국절차를 모두 마치고 공항밖으로 나오니 사정없이 파고드는 열대의 뜨거운 열기.
새벽 1시가 넘었는데도 미치고 날뛸 정도로 덥다.
15KG은 넘는 배낭을 걸머지고 나서는 심야의 공항터미널.
이제 어떻하지?
어디로 가지?
정말로 항공권예매 말고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베트남 여행에 대해 생각은 쭈욱 해 왔지만, 갑자기 시작한 나 혼자의 여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그 흔하디 흔한 호텔예약 바우처? 이런건 애초 게획에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멀고 낯선 이국땅에서 집도 절도 없는 그런 신세였던 것이다.
30여분을 더 지나서 나는 결국........ 위쪽 사진의 맨 마지막 그림처럼 사람의 그림자조차 전혀 없는 그런 베트남의 어두운 밤길 속으로 혼자 묵묵히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베트남.
그건 아직 먼 곳의 남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없을 수도 있는 그런 남의 이야기였다.
'고작 이럴려고 달랑 여기까지 혼자 온거야? 이럴려고?'
여행은 그냥 여행이다.
낯선 것을 전혀 낯설지 않은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아주 익숙한 것을 갑자기 낯설게 대하게도 한다. 그것이 여행이다.
캠핑은 물론 백패킹을 마다하지 않는 나에게 있어, 거의 아파트 한 채를 옮겨다니는 오토캠핑족들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불편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마다하지 않고 낯선것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어떤 깨닭음을 얻는다.
분에 넘쳐나는 여행가들을 보는 나의 시선 또한 결코 곱지 않다.
만나고 부딪치고 느끼는 여행이 아닌, 편하고 화려하고 호사스러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 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러다 보니 나의 여행은 때론 힘들고 때론 용기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당연히 챠밍여사는 나의 이런 성향을 믿고 늘 함께하고 때론 앞장을 서 준다.
홀로 훌쩍 떠난 베트남 여행.
잘 먹고 잘 쓰고 잘 돌아다니다 모면........ 혼자만 잘 논다 그럴테고.........
덜 먹고 덜 쓰고 죽어라 고생만 하고 다녀오면............ 지랄한다고 그 고생하러 그 먼곳까지 가냐 할테고.............
그냥 내 스타일로 속 편하게 있다가 오자고 맘 먹었다.
인천공항에 돌아와서 배낭 찾아놓고 1시간반이나 남은 버스 기다리면서 주머니를 정리해 보니..........
$ 337.
337 달러라는 현금이 내 여행지갑에 아직 남아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궁금한 생각............
혹시 제주도를 한 7일쯤 여행하자면 경비를 어느정도 잡아야 할까?
아니면, 울릉도를 일주일 여행하고자 한다면 예상 경비가 어느정도일까?
이거 내가 베트남 다녀오는데 총 얼마를 쓴거야?
헐.
먹을거 다 먹었다.
하루에 4끼에서 5끼니를 먹었다.
한끼에 달랑 한 음식을 먹은적도 길거리 음식인때는 있었지만, 대부분 두가지 음식 이었고 세가지를 먹은적도 있다.
단 무이네에서 예정했던 푸짐한 해산물요리는 먹어보지 못했다. 완전히 현지 사정때문에. 또 매끼니 마다 한 두병의 맥주는 기본이었다.
그럼 숙소가 허름했냐?
호화로운 100불 200불의 리조트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도미토리에서 낑겨 자지도 않았다. 더블 베드가 있는 호텔에서 전 숙박을 했다. 하루 숙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풀장이 딸리고 발코니가 있는 그런 호텔에서 묵었다.
그럼 다낭에서만 먹고 놀았느냐?
아니다.
다낭은 물론 호이안과 후에도 다녀왔다.
그럼 그게 다냐?
아니다.
호이안에서 11시간 슬리핑 버스를 타고 나트랑(나짱)엘 갔었고, 다시 5시간 버스를 더 타고가 무이네도 갔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웬만큼의 제대로 된 여행이었다. 쉴땐 쉬고 강행군일땐 강행군 하고 먹을건 다 먹고, 볼건 다 보고.............
그런데 아직 337달러가 남아있다는 이 놀라운 현실...............
충주 농협중앙회에서 우대금리를 적용받아 1회에 환전을 했다. 그런데 그만큼 남아 온 것이다.
내가 얼마를 환전해 갔었을까?
비밀.
아직은 비밀.
이 여행기를 마치는 즈음에서 내가 환전한 금액을 밝히려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번 7박9일간의 베트남여행 경비가 드러날테니까 말이다.
내가 얼마를 경비로 쓴거지?
챠밍여사의 금고엔 작년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남겨온 $450 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에 $337 를 남겨왔으니........ 뭐 얼추 가까운데는 땡처리 항공권만 구입해도 못다녀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ㅎㅎㅎ
아니지.
겨울에 손주는 챠밍에게 맡겨 놓고 유럽까지는 못가드래도 인도네시아 화산 투어나 한번 또 다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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