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의 일정이 다소 벅찰만큼 먼 거리를 이동하였음에도 다음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있어서였을까?
집에서의 여느날처럼 날이 밝아올무렵 우리는 잠에서 깨었다.
별로 특별할것도 없는 TV의 새벽뉴스 채널을 켜 놓고 지도랑 여행책자들을 꺼내놓고 둘째날의 계획을 정리해본다. 왜냐하면 여사님의 건의로 이틀째와 삼일째의 일정을 바꿔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정점검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본다.
지나밤에 지역적인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벽하늘이 잔뜩 찌프린 채였다. 하지만 쉽게 비를 뿌려댈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하긴, 그간의 이력으로 볼 때 우리의 여행에는 비나 눈이 오는것이, 기상조건이 별반 여행자체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항상 그래왔다.
그나저나 날씨가 참으로 포근하다. 남도라서 그런건지..... 혹시 우리 모르는 사이에 겨울이 훅 하고 지나가 버린것은 아닌지.........
휴양림 영내를 산책해 본다.
지난밤에 가장 늦게 도착한 것이 우리였고, 또 씻고 식사하고 한잔하고 자느라 가장 늦게 불을 끈것도 우리일텐데........ 어느 오두막이고 커튼이 걷히거나 불이 켜졌거나 사람의 기척이 드러나 보이는 곳이 전혀 없다. 다들 아직도 쿨쿨 하나보다.
'이런 현실이 우리가 항상 근면한 것인가? 아님 나이 먹어서 새벽잠이 없는 것일까?' 하면서 서로 쳐다보고 웃는다.
아무렴. 남들 늦잠 잔다고 우리가 남들처럼 마냥 밍그적거릴 위인들이 결코 아니다.
콧구멍에 시원한 새벽공기를 들이마셨으니..... 서둘러 들어가서 후딱 아침식사를 해치우고 나서 부리나게 또다시 새날의 일정에 맞추어 하루를 시작한다.
캠핑하면서 한곳에 눌러앉아 힐링이라는 것을 즐길 계획을 원천적으로 대폭 수정한 지금........ 우리는 대단히 바쁘고 우리의 일정은 빼곡하다. 고로 우리의 여행은 항상 엄청난 고역이다. 피곤은 나중에 돌아가서 해결할 숙제요....... 지금은 시간을 아껴가며 많이 둘러보고 많이 느끼며 실컷 즐겨야만 한다.
대충 숙소의 살림살이를 단도리 하고 나서 서둘러 차에 올라 시동은 건다.
일단 이동을 시작하면서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ㅎㅎㅎ. 모닝 커피의 향연을 즐긴다.
눈망울 가득 새날의 새로운 여행 기록을 담아가면서............ 연하게 탄 커피향이 참으로 그윽하게 느껴온다.
천관산 중턱의 휴양림으로 드나드는 계곡은 우리나라 최대의 동백군락지로 너무도 잘 알려진 곳이다.
한겨울임에도 반들거리듯 싱그러운 동백나무의 푸른 잎들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수북히 쌓인 눈속에서도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하는 동백꽃 꽃망울들이 살며시 입을 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드넓은 골짜기 가득 집단 서식하는 동백의 푸르름만으로도 압도한는 전경을 선사해주는데 2월말쯤이나 3월이 되어서 새빨간 동백꽃이 만말하게 되면 이 계곡의 풍광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번 남도 여행중 새구경도 좀체 힘들었고 숲에서도 별로 새울음소리를 듣지 못하였는데, 유독 동백숲에서는 이 숲에서 주로 서식한다는 박새가 연실 이리저리로 나타났다가 이내 숨어버리곤 한다.
때이른 여행에 대한 어떤 아쉬움이 눈망울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아침 일찍 이동을 해서 처음 찾아간 곳은 두륜산자락 이었다.
역시 남도 산자락을 가득 덮고있는 하얀 설경을 무척이나 기대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껏 기대했던 하얀 눈은 남도자락의 어디에도 없었다. 산기슭의 군데군데 흔적처럼 조금씩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차량 뒷전엔 스패츠에 아이젠까지 가지가지 모두 실려있으나 모두가 무용지물이요....... 이런 상황에선 등산에 대한 의욕이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언제 다시 이 멀고먼 남쪽의 이곳 까지 또 와보겠나' 싶어서 커이블카를 타고 두륜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우리가 첫 손님이고, 출발할 때 되니 한쌍의 여행객이 늘어나서 한적한 분위기로 곤돌라에 올랐다.
정말로 하기 싫은......... '인증샷이나 찍으려고 찾아가는........' 심정으로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의 전망대까지 다녀왔다.
정말로 대충대충 서둘러 올라갔다 내려왔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심정이리라.
사실 오늘의 일정 중에는 끝내 시간으로 인해 오늘 중에 가보지는 못하였으나, 달마산의 미황사와 도솔암, 그리고 달마산 산능선타기 까지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분이 서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두륜산 케이블카와 지척에 있는 천년고찰 대흥사 때문이었다.
우리의 여행에는 항상 사찰이 많이 포함되어왔고, 이번 여행에서도 앞으로 들러야 할 사찰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던가? 그 중에서 미황사와 송광사는 예전에 다녀본 기억이 있었기에.........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왠지 이번에 대흥사를 빼어놓고 가면 무척이나 서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몰고 대흥사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의 망설임은 충분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오늘 하루의 여행을 저녁에 마무리 하면서 대흥사를 빼놓지 않았던 것에 대해 진실함으로 감사를 드렸다. 그만큼 대흥사에 들렀던 것은 아주 감격적인 발걸음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남도자락 대륜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대흥사).
매표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표를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대흥사 관람을 위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대흥사의 경내까지 거리라 족히 4km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 길이 계곡의 계류를 따라 올라가는 것은 맞은데, 숲속으로 난 길의 한편으로는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동백나무 고목들이 하늘을 가려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빼곡하니 숲을 이루고 있다. 맞은편으로도 벚나무와 잦나무와 편백나무와 느티나무 같은 수백년씩 나이먹은 고목들이 또다른 높디높은 위용의 숲을 이루고 있다. 제법 먼 거리라 할 수 있겠으나 오랜 세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길을 마냥 거닐어 볼 수 있는 길이다. 딱히 우리의 취향에 100% 걸맞는 길이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봄이나 가을도 좋겠으나, 녹음 우거진 한여름에 이 숲길을 걸으며 땀이 흐르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지 못하는 때를 맞추지 못한 아위움이 너무도 짙게 가슴에 남겨진 길이었다.
남도 여행을 계획한다면...... 어느 계절을 불문하고 대흥사를 아래쪽 입구 주장인 초입에서 부터 걸으며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 천년의 세월이 전해주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저만치 산모퉁이에 사찰의 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흘러내리는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고 나면 부도탑과 일주문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흥사의 경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어떤 이색적인 김회가 진하게 전해져 오는 놀라운 일을 격게 되었다.
여관.
여관이 그곳에 있었다.
간판이 여관이었으니 분명 여인숙 여관 모텔 호텔 하는 그런 사람이 유속하는 장소를 일컫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좀 더 소상하게 표현하자면 요즈음 느끼는 그런 통속적이고 조금의 외설스럽거나 불경스럽게 느껴지고 인식되어지는 그런류(?)의 여관과는 좀 다른 특별한 여관인 것이다.
그것도 이 여관이 생겨나나지가 백년이나 되었다니....... 2015년에서 100년을 빼면 1915년이 되고........ 일제의 합방이 1910년이요 3.1운동이 1919년이니까, 그 중간인 일제치하의 암흑기에 이곳에 근사한 한옥으로 여관이 들어섰다는 놀라운 감회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유선관.)
기름보일러 시설이 설치되었고, 공동화장실과 공동샤워실이 추가로 설치된것 외에는 100년 전 처음 지어질때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지금도 손님이 유숙하고 음식을 주문해 먹는 여관으로서의 본연의 업무에 그대로 충실하고 있다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답싸리비로 마루를 쓸고 물걸레로 닦고 계셨다.
암울했던 그 시기에서 부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우국지사와 시인이며 소설가며 숱한 묵객들이 묵었다고 하니 그 세월의 면면이 사뭇 궁금할 뿐이다. 또한 전통 한옥의 미를 함껏 감상할수 있는 여기 유선관은 영화 (서편제) 촬영장소로도 이미 널리 알려진 명소이다.
유선관의 이곳저곳을 세세하게 둘러보고 주인과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고 나서 한참을 그렇게 잘 쉬었다가 이윽고 다리를 건너 대흥사의 경내로 들어섰다.
부도탑이며 하마비며 본격적인 경내로 들어서게 만드는 천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돌다리며.........
참으로 오랫만에 새롭게 느껴보는 짜릿하고 지극히 만족스런 기분이다. 아주 오랜 지난날 강원도 고성의 폐허같은 (건봉사)에 처음 들어서던 날과 비슷한 느낌이 가슴 기피은 곳에서 부터 어떤 감회로 전해져온다. 지금은 엄청나게 충창되었지만...... 그 옛날의 건봉사는 내 사찰여행에 있어서 최고의 감흥이요 소중한 추억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흥사의 모든것이 나를 그런 기분으로 젖어들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대흥사에 들러보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것만 같다.
(부지런히 다녀야 겠다. 적당히 생략도 하고....... 분량도 사진도 너무나 많이 남았다.)
대흥사의 감흥을 오래오래 가슴에 되새기면서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 끝까지 달려 내려갔다. 바로 해남이다.
땅끝마을 직전 송지면에 잠시 서서 날씨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서 푸념과 원망을 조금 해보기 위하여 한 곳에 들렸다.
(해남 땅끝마을 오토캠핑장) 이다. 본래 이번여행의 거점으로 애초 계획했던 곳이다.
사방 온통 눈이 쌓이고 바다쪽으로 부터 세찬 바람에 실려 눈보라가 몰아쳐 오면 팩을 더 박아서라도 바람에 대비하고 , 텐트안을 따뜻하게 난로를 피우고 들어앉아서 인근 어시장에서 여러가지 수산물을 사다가 짠하게 폼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겨울여행을 정말 운치있게 하려고 오래전부터 작정을 하였었건만........ 포근하다 못해 봄날깥은 날씨는 눈속에서의 캠핑을 접게만들었고, 종국에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우리를 내몰았던 것이다.
겨울이 겨울 다워야지 무슨 겨울이 이래????????
아쉬음속에 캠핑장을 한바퀴 돌아본다. 혹시나 이 먼 남쪽의 끝까지 오로지 캠핑을 위해서 다시 찾을리는....... 확률상 지극히 미미하겠지만...........
둘러본 결과로 주변경관이나 싸이트를 위한 테크와 노지, 그리고 각종 여러 시설들은 아주 훌륭했다.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질것이 없는 썩 좋은 여건을 골고루 두루 갖춘 훌륭한 캠핑장이었다. 단, 너무 멀다...... 충주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그리고는 서둘러 땅끝마을로 향했다.
우리 여행에서는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예외였지만 말이다.
평소 이런..... 별반 특별할 것도 없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이런 상업적인 여행지는 한사코 외면하는 우리였는데..........
'남도 끝까지 왔으니 살짝 들려만 보자. 결단코 두번 다시 오지는 않기로 전제하고...........' 하면서 이미 잘 알려진 대로의 땅끝마을을 관광이 아닌 경험으로 들려본다.
땅끝에서 돌아나오기 얼마지나지 않아서 (도솔암) 표지판이 시야게 들어왔다. 아주 비좁은 산길로 7km 거리의 안내판이었다.
달마산자락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산자락의 반대편에 (미황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달마산 꼭대기 언저리에 자리한 방송중계탑까지 올라가는 협소한 도로인 것이다. 중계탑에서 도솔암가지는 지척인것으로 이미 검색을 했었고, 거기에서 조금 올라가면 달마산 정상의 능선길을 트래킹 할 수 있게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둘째날인 오늘도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머지않아 해가 서산에 기울게 될것이다. 요목조목 따져보니 나머지 일정은 무척이나 아쉽지만 둘째날 일정을 여기서 접어야만 할것 같았다. 휴양림까지의 거리가 또한 여기서 상당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어디 포구에라도 들려 수산물을 좀 사기로 했는데....... 휴양림으로 가는 내내 바닷가 포구가 눈에 띠지를 않는다.
우리는 휴양림에서 가장 가까운 도회지를 찾아 장흥으로 향했다. 그런데 장흥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읍이었다. 그리고 전통시장을 찾아갔는데........ 아뿔싸. 장흥이 한우로 유명한 줄을 오늘에야 알았다. 횡성이나 언양 못지않게 한우 전문식당들이 길게 늘어섰는데 택배 포장들이 바쁘고, 남도 여행에서 가장많은 관광괙들이 보인다. 한우전문점 한 두군데를 살펴보다가 지갑을 꺼내드는 그분의 손을 급하게 저지해 본다. 휴양림이 겨울철에는 화덕 사용이 금지된다. 그 유명하다는 장흥 한우를 후라이팬에 구워먹기에는 아무래도 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제 강진에서 사 놓고 미처 해결하지 못한 석화 한자루도 휴양림에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는판에......... 에라이....... 한우는 충주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결국 대하와 쭈꾸미를 양이 푸짐하다 싶을만큼 샀다.
휴양림에 돌아와 보니 오늘도 밤이 제법 깊어지고 난 후였다. 급하게 씻고 저녁을 겸하여 술상을 준비한다.
대하를 굽고 쭈꾸미를 데치고......... 석화를 굽기도 하고 찜을 하기도 하고............ 어느새 술병이 비었다. 우리의 주량은 극비사항이다.
이렇게 남도여행 둘째날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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