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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윤태리할망구 기어코 푸꾸옥(Phú Quốc)을 갔다네.

by 피안재 2024. 12. 13.

 

 

(알림)

그동안 본인(필자)이 써서 올린 여행기나 칼럼은 나름 오랜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극히 개인적 주관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까지 글을 써 왔습니다. 어떤 다른 이유로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거나 그로인한 대가를 받은 적이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랬음에도 굳이 이번 여행기에 앞서서 이런 당부를 먼저 거듭함은, 혹 이번 여행기의 내용으로 인하여, (푸꾸옥 여행)을 지극히 만족스러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여행자나 이 지역의 여행사와 관계자분들에게 누를 끼치거나 피해를 드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직접 여행을 하면서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서 나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 피력해 보는 것임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혹, 개선될 것이 있다면 유익한 선에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고, 불편한 분들이 계신다면 매사에 개인의 주관적 관심과 느낌과 생각들은 늘 하나같지 않고 다를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해하시고 지도편달이 있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굳이 불편함을 자초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아울러 앞으로 (푸꾸옥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내가 윤서방하고 다시 여행할 기회가 있을까?’

지난해 처가쪽 가족들을 모시고 고사포야영장으로 (가을 가족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여행을 마치면서 목사님(큰동서)께서 내게 작별인사로 건네주신 말씀이었다. 평생동안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셨다가 정년퇴임 하시고 지금은 경주에 거주하시는데 근자에 여러 고난을 겪으셨다. 본인이 암 수술을 거듭하셨고 지난해 큰아들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시는 고충도 겪으셨다. 90을 넘기신 연세가 되고 보니 체력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여서 자주 뵙지도 못하는 처지로 마음속으로 걱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렴요. 건강만 잘 챙기시면 계절 때 마다는 못해도 해마다 꼭 모실께요.’라고 대답해 드렸었다.

당신께서 그 나들이를 못내 무척이나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어왔다.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들이 오면 꼭 거기에 데려가고 싶다고 하셨다. 이젠 더 이상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실 정신적 체력적 자신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랬음에도 어찌어찌 사는게 다 그런 것인지........ 그 다음 여행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다.

고사포 가족여행을 만 1년쯤 넘긴 시점에서 하루는...... ‘목사님께서 당신만 괜찮으면 여행을 한 번 하고 싶으신가봐. 동남아 여행 정도는 소화해 내실 수 있대. 큰언니한테 지나는 말씀으로 그러시더래.’라고 챠밍여사가 저녁상머리에서 이야기를 전해왔다.

문득 ‘내가 윤서방하고 다시 여행할 기회가 있을까?’라고 하시던 그날의 그 표정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여행하시고 싶으시면 하시면 되지 뭐.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여행하난 기가 막히게 잘하는 손아래 동서 두었다가 어디에 써? 당장 가시자고 해? 가족여행이니까 작은형 부부한테도 이야기하고, 날짜는 아무 때라도 상관없겠고..... 그래. 동남아 어디를 가고 싶은지만 여쭤봐.’

‘해마다 가는 우리 동유럽 여행 계획을 언니들이 알고 있기에 쉽게 말을 못한거지. 태리 세리랑 여행도 그렇고.’

‘우리 여행이야 좀 뒤로 미루면 되지? 프라하가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할슈타트가 물에 잠기는 것도 아닌데 뭐. 병아리들 여행이야 지금 당장 겨우 동남아권이지만 또 알아? 내년엔 쑥쑥 커서 유럽을 갈지도?’

‘태리는 되지만 세리는 아직 유럽까진 무리라니까? 한달씩 엄마한테서 어떻게 떨어져 있어?’

‘당장 여쭤봐. 어디를 가고 싶으신지. 언제쯤이 좋겠는지. 무조건 내가 당장 모시고 간다고 전해드려.’

‘우리끼린 이미 얘기 다 끝났어. 목적지는 큰언니는 발리, 새언니는 푸꾸옥이고 날짜는 당장이라도 상관없고 비용도 상관없고 가기만 하면 좋겠대.’

‘그랬으면 진작에 이야기 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여권만 사진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시라 해.’

‘그것도 와 있어. 당신이 일이 바쁘다고 하고, 겨울엔 우리끼리 여행이 당연히 있을테니까 그런거지.’

‘어른이시잖아. 작년에도 매번 마지막 여행일거 같다고 하신 분이 계신데....... 지금 그냥 내가 검색해서 항공권 구입하고, 호텔 잡고 나서 통보만 해드리면 되는거지? 내친김에 아예 오늘중에 끝내 버리고 날짜 되어서 떠나면 그만이지 뭐. 고사포 야유회 멤버 여섯 명이지?’

‘아니? 7명. 조카 하나 추가해달래. 같이 가고 싶대.’

‘알써. 비행기 표 7장부터 살게.’

그날 자정을 넘겨서 푸꾸옥 행 비행기표 7장과 4박을 보낼 호텔을 삽시간에 모두 예약해 버렸다. 그까짓게 뭐라고...... 내 스타일대로 훌쩍.....

까짓, 생각하고 자시고 망설일게 뭐가 있겠는가?

살아있을 남은 시간을 고심하고 계신 분을 두고 그보다 더 중요하거나 화급한 일은 없다. 망설이다 후회하기 보담은 일단 저질러 버리고 나서 반성하는 편이 조금은 더 가치있고 바람직하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일방적 스케줄 통보를 했다.

‘이렇게나 빨리? 하는 일에 지장 없겠나?’

가족중의 어른을 모셔야 하는 것도 내 몫이고 직업적인 일처리도 내 몫이 아닌가? 그런데 다행스럽게 난 아직 든든한 현역(?)이다. 우린 이제 푸꾸옥으로 간다.

챠밍여사의 표정이 어제보다 조금 밝아졌다. 내겐 그거면 충분하다.

내 어머님이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것을 시작으로 우리 부부의 양가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신 편이다. 하여 지금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은 바로 목사님인 큰동서(34년생)시다. 큰딸이 나이 차가 제법 나는 목회자에게 출가하였고, 그만 낳으려던 차에 느지막이 우연히 생겨서 부득이 낳은 나이 차가 제법 나는 막내딸이 우리 마눌님이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큰동서이긴 하나 연배로 따지면 우리 아버지 연배에다가 목사님이시니 나로서는 어려워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챠밍여사가 다섯 남매 중에 느지막이 막내인 처지로 이제껏 지내왔는데,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할까....... 큰오빠가 하늘나라로 가셨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재작년에 작은 언니가 훌쩍 떠나면서는 충격이 훨씬 컸었다. 그러다 보니 남아있는 삼남매에 대한 애착과 걱정이 남다른 상황에서 큰형부(목사님)의 암수술과 약간의 후유증과 눈에 띄는 노쇠화 현상이 자나 깨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목사님의 유고는 큰언니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이고, 이는 곧바로 삼남매의 생활에 변화와 영향으로 드러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하기 전에 그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챠밍여사의 간절한 바람이다.

‘이제 모두 함께 늙어가는 처지로 멋진 가족여행을 위해 푸꾸옥으로 떠나보자!!!’

그럼 이제...... 훌쩍 푸꾸옥으로 우리 가족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

아니다. 그렇게 쉬우면 챠밍여사가 아니지. 태리할머닌 절대로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어른들 끼리만 가면 심심할지도 모르는데...... 푸꾸옥이 물놀이 천국이라며? 우리 태리 데리고 갈까?’

‘데리고 가는 거야 얼마든지 좋지. 그런데 방학도 안했는데 내리 결석을 겡구(며느리)가 허락해 줄까?’

‘결석 처리 안되게 할 수 있다며? 저학년이니까 학습 진도에 큰 무리도 없을테구. 내가 지금 당장 이야기 할게.’

하여간 누가 할머니 아니랄까봐 병아리들만 나오면 완전 꿈뻑한다.

하여 즉석에서 카톡 가족대화방에 ‘윤태리를 내놔라’라고 올렸다. 이젠 공론화가 제대로 되었단 뜻이다.

‘어머니 전 좋아요. 괜찮으시겠어요?’하는 겡구(며느리)의 답변이 올라왔다. 허락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며느리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젠 추가로 손녀 비행기표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데.......

‘그럼 세리는? 언니가 하루만 없어져도 찾을텐데 뭐라고 하지? 딴데 갔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다고 하면 세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할텐데. 차후에 할머니 할아버지 원망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백퍼센트 맞는 말이다. 우리는 병아리 두 마리에 대해서 어떤 경우나 상황에서도 절대로 차별하지도, 그런 인식을 갖게도 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노력하는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럼 둘을 다 데려가야 한다는 말인데......

‘엄마. 아빠. 이번 여행은 목사님부터 어른들을 편히 모셔야 하는 여행이잖아요. 이젠 엄마 아빠부터 벌써 보호받아야 하는 노년들이세요. 그러니까 이번엔 그냥 어른들끼리 편하게 다녀오세요. 애들이 따라가면 많이 불편하고 힘드실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언제고 다음에 가시면 되잖아요.’

얘가 얘가 누구 아들이라서 이렇게 현명할까?

순식간에 상황은 정리되고 병아리들 문제는 없었던 일로 되는가 싶었는데........

하지만, 그러면 윤태리 할머니가 절대 아니다. 이미 아들 며느리 앞에서 병아리들을 해외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내지르신(?) 마당에 이렇게 어중짠하게 대충 넘어가면 태리할망구 사표낸거나 마찬가지다. 아들 며느리에게나 병아리들에게나 대충 공수표 남발하는 할망구가 절대 아니다.

다시 가족대화방에 열심히 글을 써서 올린다.

‘그럼 태리 방학 시작하는 대로 태리 세리 데리고 베트남 여행 갈거여. 방학 날짜 알려줘. 여행 장소나 기간이나 날짜나 비용은 모두 오픈된 상태로 무조건 할머니가 부담해서 갈래. 애들하고 겨울여행 약속했었으니까 무조건 갈거야.’

‘네 . 어머님. 그렇게 하세요. 태리 크리스마스 전에 방학 해요.’

그렇게 해서 그날 나는 또 비행기표 넉장을 샀다. 호텔도 예약했다. 애들은 무조건 최대로 편안하게 조식제공에 수영장에 해변 숙소까지 ...... 내 여행 이력에서 처음으로 스위트룸 이란것을 예약했다. 땡 잡았다.

다음 장소는 푸꾸옥이 아니다. 푸꾸옥 여행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남들이 물놀이 하기에 천국이라고 새롭게 떠오르는 베트남 핫플레이스인 푸꾸옥을 패스하고 나는 기꺼이 다른 곳을 골랐다.

나름 여행 전문가인 할아버지 입장에서 우리 병아리들을 데리고 푸꾸옥에서 이동다니느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푸꾸옥이 아닌 다른 지역을 왕복할 비행기 표를 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푸꾸옥 여행을 모두 마치고 복기하는 수순으로 여행기를 쓰면서 지금 나는 그때의 나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푸꾸옥은 어린이들이 즐기고 보내기에는 여러 면에서 많이 힘겨울 수 있다.(물론 비용이 넉넉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나름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훨씬 더 가성비나 시설이나 활용면에서 좋은 곳이 베트남엔 여럿이 더 있다.

윤태리와 윤세리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나짱(Nha Trang)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랑 함께 말이다. 그게 할아버지가 택한 최고의 송년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우리가 지금 여행사 사무실 운영하냐? 한 해에 두 번도 아니고, 한 달에 두 번을 베트남으로 떠난다고? 헐!!!!

우리의 이번 여행 타이틀은 <겡구에게 방학을 주자>로 내걸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 계획을 세우는 시점에서 태리와 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서 동남아 여행을 함께 즐기고, 집안 일하랴 병아리 육아하랴 직장 생활하랴 바쁘게 살아온 우리 겡구에게 조금은 긴 휴식시간(방학)을 주기로 했다. 아들 며느리 둘이서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든 호캉스를 하던 나름 멋진 시간(신혼처럼)을 계획해 보라고 당부해 두었다.

 

 

 

언제나처럼 새벽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습관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동네 산책을 나간다.

마을 골목길을 지나 큰 도로를 하나 건너면 다시 골목 안쪽으로 열대지방의 해변 풍경이 펼쳐진다. 익숙하고 편한 풍경이다. 다낭의 마케비치처럼 현대화된 모습이 아니라 호이안의 안방비치처럼 베트남 어디를 가나 그저 그렇게 흔하디 흔한 변두리 해안 모습이다. 아침 산책길에 하루는 바다에서 조기 운동회 수영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의 발길은 싼팜으로 향한다. 싼팜(Xanh Farm)은 쯔엉동 마을의 초입 골목 안에 앙증맞은 자태로 걸터앉아있는 아주 작은 카페의 이름으로 ‘푸른 농장’을 의미한다.

첫날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동네가 어떻게 생겼을까’하고 둘러보러 나간 길에 골목길 초입의 한 작은 카페가 눈에 딱 들어왔다. 잠시 쉬어가려 코딱지만한 의자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코코아 커피를 시켰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그동안 베트남 여행에서 호치민의 노틀담 대성당 모퉁이 자전거 점빵에서 팔던 쓰어다이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 쓰어다이에 견줄만한 맛이었다. 서른 줄에 접어들어 보이는 젊고 싹싹한 젊은이가 여기 카페를 운영하며 커피를 만들고 반미를 만들어 판다. 두 아들을 둔 젊은 여인이 카페 일손을 거들면서 옆에 이어붙은 점포에서 오토바이 대여와 여행상품을 팔고 있다. 벌거벗고 꼬추를 내놓으며 뛰어다니는 꼬맹이나 여인이나 카페 사장 모두 더없이 활달하고 상냥하고 친절하다. 절로 우리 아들 며느리 손녀가 생각이 났다.

하여, 떠나오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카페를 드나들었다. 두 번은 기본이고 세 번을 간 적도 있다. 마지막 떠나오는 날엔 가지고 가서 남은 소주 팩 네 개를 선물로 주고 왔다. 무척 좋아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튼날은 가계 자물쇠는 열려있는데 장사를 시작하지 않고 사람이 안보이기에, 아예 내가 가계 문을 열고 쌓아놓은 의자를 꺼내다 펼치면서 아침 장사 준비를 내가 임으로 해버렸다. 외국인 여자 손님 한 명까지 호객해서 말이다. 뒤늦게 나타난 카페 사장 많이 놀랐나 보다. 그 후론 우리 가족 모두가 새벽 산책을 마치면, 의례 그곳에서 모닝커피와 반미로 아침을 해결하곤 했다. 지나가는 현지인이나 여행자들에게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다 보니 사흘째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서..... 그새 마을 유지가 되어 버렸다. 이참에 아예 이민 가서 살까?

저녁 시간대 티비 채널을 켜면 케이블 방송 대부분에서 여행상품을 팔고 있다. 어린이들이 겨울방학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겨울은 여행의 극성수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을 향하는 정말로 차고 넘칠 정도로 다양한 여행상품들이 팔리고 있다. 그중에서 근자에 유독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이 (이탈리아 여행) 상품이다. 매번 방송의 힘이 정말 이렇게 무섭구나 하고 떠올리게 하는 것이 나름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텐트 밖은 유럽 이탈리아편>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일전에 겉핥기식으로 지나쳐 버린 남성편이 아닌 아기자기한 여성편이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이탈리아 일주 여행상품이 대세로 보여진다. 우리도 아직 가지 못하고 버킷 리스트에만 담아놓고 있는 (돌로메티 여행)이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다양한 동남아 여행상품이 눈에 띄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푸꾸옥 여행) 상품이다. 아마도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여행사가 힘을 합쳐 전면에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는 대세 상품이 (이탈리아 여행)과 (푸꾸옥 여행)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번 가족여행을 준비하면서 처남댁으로부터 (푸꾸옥 여행)을 요청받을 때 까지만해도 나는 푸꾸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동안 베트남을 세 번이나 드나들면서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더하여 북쪽으로 사파지역이나 남쪽으로 메콩강 하류 델타 지역에 대해서는 나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푸꾸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가족여행 목적지를 얼덜결한 상태에서 결국 푸꾸옥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동안 푸꾸옥이란 여행지를 전혀 몰랐을까? 물론 이번에 가보면 모든 의문이 풀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 여행을 마친 시점에서 내 생각과 결론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베트남 여행)은 동남아 여러 국가 중에서도 최고로 편리하고 저렴하고 만족스런 여행지로 꾸준히 각광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애증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 크게 호감을 갖게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리라.

여행사의 상품성으로 볼 때, 과거엔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연결하는 상품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이 유행이 지나자 여행사들은 호치민을 부각시키면서 베트남 종단 여행상품을 팔았다. 이마저도 한계에 이르자 일제히 대대적으로 다낭여행 상품에 올인했다. 호이안과 바나힐을 연계시키면서 사상 유례없는 일대 호황기를 맞았다.

몇 년이 지나 이제 웬만한 대한민국 여행자들은 대부분 다낭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다낭은 지명도 높은 여행지이기는 하지만 여행업계 측으로는 지속적 확장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 다낭과 아래쪽으로 나짱의 최고 단점이던 시내의 협소한 비행장이 멀리 남쪽으로 이사를 가는 상황이 되자, 여행업계는 이번엔 나짱으로 시선을 돌려 대대적인 홍보에 열을 올렸다. 나짱의 비교적 좁고 협소한 여행환경이 단점으로 부각되자 인근의 무이네와 달랏을 연계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많은 베트남 여행사가 협력 가세하여 새로운 호황기를 만들어 냈다. 그 또한 몇 년 지나자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달랏 역시 지금 젊은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매력적인 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비교적 안전하고 저렴하고 친절한 이국적 여행지로 베트남을 우선 손에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마당에, 베트남에 진출한 수많은 여행사들이 여기서 결코 멈출 수는 없지 않았을까? 새로운 상품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서 캐고 캐고 또 캐내야(?) 하는 베트남이라는 매력적인 엘도라도를 말이다.

그래서 2023년 쯤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인 여행사들이 합심하여 대대적으로 새롭게 추진한 여행지가 바로 푸꾸옥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정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푸꾸옥 여행) 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2024년에대한민국 여행사들이 꺼내 든 최고의 신상품이란 말이냐?

이에 대해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나는 2023년 모 잡지에 실렸던 푸꾸옥에 대한 기사를 하나 옮겨내와 계재를 해 보기로 한다.

아래의 글은 모 잡지에 박00 라는 분이 써서 올렸던 글의 일부분이다. 내용은 모두 (푸꾸옥 여행)에 관한 기사이다.<퍼 옮겼음을 밝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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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푸꾸옥, 당신이 모르던 파라다이스

아직 푸꾸옥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면 그건 다행이다. 반드시 가봐야 할 목적지 하나가 남아 있는 셈이니까.

by 박 00 2023.05.03

          쉐라톤 푸꾸옥 롱비치 리조트에선 고객의 요청에 따라 석양을 배경으로 풀 사이드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쉐라톤 푸꾸옥 롱비치 리조트의 메인 야외 풀은 80m에 달하는 길이를 자랑한다.

 

“한 20년 전만 해도 여긴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노 맨스 랜드’였죠.” 우리 일행을 데리고 선셋 타운을 안내하는 제이스가 말했다. “깃발을 꼽기만 하면 그냥 자기 땅이었다니까요. 푸꾸옥엔 그만큼 사람이 없었어요.” 그의 말은,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사실이다. 외국인과는 말도 섞지 못하게 통제했던 공산국가 베트남이 세계인에게 문을 연 지는 대략 50년쯤 됐지만, 푸꾸옥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지는 이제 겨우 10년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후추 농장과 피시 소스 공장으로 유명했던 인구 10만의 섬, 여러 방문객들이 ‘나른하고 느슨한 분위기가 감도는’이라고 표현하는 한산한 섬, 베트남에서 가장 큰 남쪽의 섬이었을 뿐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특파원으로 오랜 기간 베트남에서 근무한 기자 데이비드 램은 2010년도 기사에 “10년쯤 전에 비행기를 타고 이 섬을 방문한 지인은 착륙할 지점을 찾느라 활주로 위를 세 바퀴 돌아야 했다”고 썼다. 소들을 활주로에서 몰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푸꾸옥에는 호텔이 3개뿐이었고 그중 별을 내걸 만한 호텔은 단 하나도 없었다. 휴양지로 유명한 다낭에 1990년대에 5성급 푸라마 호텔이 들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푸꾸옥은 정말 뒤늦게 발견된 섬이다. “넓고 한적한 해변, 빽빽한 정글과 아무도 손대지 않은 원시 우림이 수마일에 걸쳐 있는 이 섬은 오래전 태국의 푸껫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을 때를 연상케 하는 그런 곳이다.” 데이비드 램이 당시에 쓴 푸꾸옥에 대한 인상이다.

데이비드 램 씨가 우리와 함께 제이스가 안내하는 선셋 타운의 장관을 목격했다면 아마 두 눈을 훔치며 믿지 않았을 것이다. 푸꾸옥 인근의 작은 섬 혼똔에서 시작되는 편도 8km짜리 케이블카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 케이블카를 타고 선셋 타운의 선셋힐에 다다르면 잘록하게 파인 선셋 비치만의 이편과 저편을 가로지르는 약 800m 길이의 ‘키스 브리지’가 눈에 들어온다. 베트남의 견우와 직녀인 ‘응우랑과 직느어’의 사랑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키스의 다리 인근은 온통 이탈리아풍으로 오렌지빛 지붕을 얹은 수백 채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친퀘테레 같아 보이는 건 착시가 아니다. 사이즈가 중요하다. 한국에 있는 작은 프랑스 마을 수준의 규모가 아니라 하나의 해변과 그 해변을 둘러싼 지역 전체가 통일된 미감으로 정돈되어 있어 오히려 감탄이 흐를 정도다. 그러나 아직 건물들은 비어 있다. 2010년대부터 푸꾸옥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자 관광객이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선셋 타운에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도 2015년도부터다. 그러나 그 뒤로 코로나가 닥쳤다. “이제 다시 마중물을 부어야 할 시점이 왔어요. 한번 펌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사람들이 찾아올 거예요.” 썬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 & 스파 관계자의 말이다. 거대 리조트의 개발이 푸껫의 과거를 연상케 하는 손대지 않은 자연을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니다.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 & 스파의 뒤편에 펼쳐진 켐 비치(Khem Beach)의 바닷물은 해변에서 10m를 들어가도 하얀 모래에 잠긴 발가락이 보일 정도로 맑고, 해안을 따라 무성한 야자나무가 초록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인간 유래의 쓰레기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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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던 파라다이스가 아직 남아 있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다. 앞으로 가보면 될테니까.'

그곳이 어디라고?

그곳이 바로 푸꾸옥(Phú Quốc)이라고들 여행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외친다.

이 거룩할 정도의 찬사에 대한 내 소감은 둘로 나뉜다. 푸꾸옥을 가보기 전의 소감과 다녀온 후의 소감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 느낌과 생각이 극과극으로 달라지는 이유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무런 사심없이 그저 단순하게 위의 기사를 쓰신 분께 '당신은 정말로 푸꾸옥을 다녀오시고 느낌대로 진실하게 글을 작성하신것입니까?' 라고 묻고 싶고, '혹 어느 여행사나 어느 단체의 요청으로 소정의 어떤것을 받으시고 그들의 의도나 요구에 의해서 사실과는 상관없이 적어 올려주신것입니까?''내가 직접 푸꾸옥 현장을 안내해 드릴테니 진실된 속편 기사를 쓰실 의사가 있으신가요?'라고 되물어 보고 싶다. 물론 모든 사물이나 상황이나 사태에 대하여 누구나 보는 관점과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정말로 위의 기사가 당신의 생각과 느낌입니까?' 라고 거듭 거듭 되물어보고 싶다.

왜???????

<푸꾸옥은 과연 어떤 곳인가?>

이제부터 푸꾸옥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함에 있어서, 누군가의 부탁을 받거나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지 않고 오로지 상식과 양심의 차원에서 지극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베트남 남쪽 끝자락에 놓여있는 가장 큰 섬(제주도의 1/3) 푸꾸옥(Đảo Phú Quốc)은 한자문화권인 베트남어로 부국도(島富國)라고 불렸다. 현재의 경제 사정으로 볼 때 그 호칭이 다소 무리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베트남이 현대화로 개발 성장한 역사가 불과 몇십 년에 불과하다 볼 때, 그 이전의 시기까지 어쩌면 낙후되어 보이는 이 외딴 섬이 베트남의 경제에서 오히려 상위권에 속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외딴섬의 특성상 어업이 주업이었고 내륙으로 어느 정도 영농이 가능했다. 그런 지리적 이점으로 해산물을 이용한 소스산업(느억맘)이 발전했고, 푸꾸옥의 후추는 베트남의 중요 수출품목이기도 했다. 그렇게 볼 때 왜 이 섬을 부국도라고 불렀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21세기라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특징에는 눈부신 경제성장의 결과로 사람들의 해외여행이 붐을 이루게 되었다. 서구사회의 해외여행은 한 세기 전부터 대중화 바람이 불었지만, 급성장한 저개발 국가들의 해외여행 붐은 그야말로 사상 유례없는 러쉬를 이루었다. 일본. 한국. 중국에 차례로 그 열풍이 불어 닥쳤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나는 말로 이탈리아에서 현지인을 만나면 ‘조상 덕분에 잘먹고 잘 사는 사람들’ 하면서 부러움과 질투를 간혹 느끼곤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관광 활성화라는 새로운 경제 개념은 ‘관광업으로만 국가 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굳이 죽어라 상품을 개발하고 만들고 팔아서 먹고사는 게 경제가 아니라, 역사 유적이나 아름다운 휴양지나 끝내주는 음식이나 맛사지 같은 관광 상품을 통해서도 한 나라의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여행지에서 한국인들이 몰려오기를 간절히 원했다. 한국인은 곧 현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을 엄창난 격차로 따돌리고 급부상한 현찰 덩어리가 있었으니 바로 중국의 개방화 이후 벌어진 해외여행 붐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FIFA(세계 축구협회)가 중국의 본선 진출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참가국 수를 늘리겠는가? 중국 축구의 본선 진출은 곧 월드컵 흥행 수익의 2배 3배를 보장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로 여행 산업에도 적용되었다. 중국과 외교 분쟁으로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고 안 오고에 따라 서울 명동의 상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대한민국 무역수지 적자의 폭을 넓히기도 할 정도니까 말이다.

지구상의 어디든지, 한국인과 중국인이 몰려든다 싶으면 이는 곧 그 여행지가 노다지가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베트남의 통치지도자들이 바로 이 여행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는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트레비 분수같은 내세울만한 역사적 명소가 별로 없다. 하물며 인접국인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 유적군 비슷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알프스를 내세운 스위스 같은 명소도 없다. 가진 것은 길고 긴 열대우림의 산지와 덕분에 생겨난 긴 해안선을 따라 해변과 어장이 가진 것의 전부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결국 오랜 고심 끝에 통치 지도자들이 내린 결론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사시사철 몰려가는 세계적인 휴양지인 발리(Bali)와 푸켓(Phuket)과 같은 휴양 해변 도시를 건설해 베트남의 미래 국가산업으로 성장 발전시킬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원대한 베트남의 미래산업 최적지로 선택된 곳이 바로 푸꾸옥이다. 소수의 인원(거주인구 십삼만 정도)에 동떨어진 완전 미개발지였던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먼저 이 섬을 모조리 압수해 버렸다.

베트남은 이 순간에도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매우 독특한 국가이다. 베트남의 정치적 롤 모델은 오로지 중국의 체제다. 사회주의 정치 제제 하에서도 묘하게도 경제는 어설픈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경제분야의 롤 모델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중국의 공산당 일당 지배하의 자유시장경제 도입이 여러 가지 부작용과 혼란을 부추기고 있은 것에 더해, 베트남의 부작용과 혼란은 훨씬 더 심각한 편이다. 오랜 외세와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것이 짧다 보니 체제 정비나 산업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산당 일당의 지배가 유일하고 당연하다시피 유지되다 보니 고위 공직자의 부정과 부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가 푸꾸옥 섬을 모조리 압수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유재산을 따지다가는 당연하게 격리 내지는 유배가 뒤따를 테니 말이다. 공안(공산당)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불어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부패의 규모 또한 커지는 것이 베트남의 엄연한 현실이다.​

베트남 최고지도부는 재계서열 1.2위의 민간기업을 불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삼성과 현대라고 할까. 공산당 정부는 빈 그룹(Vingroup Joint Stock Company)과 썬 그룹(Sun Group)으로 하여금 푸꾸옥을 발리나 푸켓 못지않은 해안 휴양도시로 개발해줄 것을 요구했다. 공산당 정부는 염라대왕이나 저승사자보다 훨씬 무섭고 강하다. 양대 그룹은 사운을 걸고 서로 경쟁하듯 푸꾸옥 개발에 나섰다. 그들은 정부에 개발을 위한 첫걸음으로 육지로 연결되는 항만 건설과 공항 건설을 요청했고, 2012년 푸꾸옥 공항이 개항하면서 부터가 본격적인 개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푸꾸옥이 현대화 휴양도시로 탈바꿈을 시작한 것이 불과 12년 정도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불모지의 땅에 12년이란 시간을 들여서 지금 온갖 매체에서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푸꾸옥이라는 현대적 휴양시설을 만든다는 것....... 결코 사진에 보이는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건설 기업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해안선을 따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중심은 쯔엉동 마을이다. 그 마을마다 약 12개의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들이 모여서 놀이를 하고 글을 배웠다. 그 학교라는 것이 하나같이 마을 외곽으로 경치가 빼어난 해안에 세워졌다. 푸꾸옥 개발을 위해 공산정부는 무조건 방식의 무제한 개발을 기업들에게 허락했다. 10개의 초등학교가 하루아침에 모두 헐려 나가고 그 자리에 리조트와 호텔들이 건설되었다. 정부의 명령 우선으로 개발이 최우선이고, 학교는 차후에 차차 논의해 볼 사항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에서 공산당 일당 지배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푸꾸옥의 중부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밀집해 살고 있었지만, 휴양지 개발지로서는 주변 환경이 이미 파괴되고 노화되어서 재개발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인력 수급처로 삼고, 북쪽 해변을 빈 그룹이 개발에 나서 (빈 펄 랜드)(빈 원더스)를 개발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용인 애버랜드)라고 하면 되겠다. 반면 썬 그룸은 섬의 남쪽 끝에 (선셋타운)(혼똔섬 케이블카)(썬 월드)를 건설했다. 이어서 거대 자본들이 몰려와 쯔엉동 마을과 선셋타운 중간의 소나시포구에 현대적 초대형 리조트들을 대거 건설했다.

이런 북쪽의 (빈벌 랜드) 구역과 남쪽의 (선셋타운)구역에 리조트 지역인 (소나시 마을)과 현지인 대부분 주거지인 쯩엉동 지역의 (쯔엉동 야시장)이 푸꾸옥 여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푸꾸옥을 허상뿐인 거대한 유령도시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정말로 푸꾸옥 (Phú Quốc)은 여행사 관계자들의 말처럼 새로운 파라다이스인가?
이미 나트랑에서 (빈펄랜드)를 세워 크게 성공한 빈 그룹은 섬의 북쪽에 (그랜드 월드)와 (사파리)를 건설했다.

 

이미 다낭에서 (바나힐) 개발에 성공했던 썬 그룹은 섬의 남쪽에 (선셋타운)(혼똔섬 개발)을 완공 시켰다.

 

거기에 (쯔엉동 야시장)과 (마사지) 같은 휴식과 (호핑투어) 같은 이색 체험이 푸꾸옥 여행의 전부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 7명은 이미 푸꾸옥 중앙에 위치한 쯔엉동 마을(Dương Đông, Phu Quoc)에 위치한 호텔에 여장을 푼 뒤가 아니겠는가?

첫 느낌은 그야말로 ‘덜컥 내려앉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었다. 수영장이 입구에 버젓이 놓인 호텔이었지만....... 이번에도 사진발에 속았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진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지척일 것으로 알았던 해변도 동네 골목을 한참 빠져나가 큰길을 건너서도 다시 골목을 지나야 하는 제법 만만치 않은 먼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여행에 비교해 호텔 시설이야 나름 그러려니 할 수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여행은 내 주도로 어른들을 모셔야 하는 여행이 아닌가?

‘아주 좋네요. 윤서방이 잘 골랐어요.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구만.’

자칫 시작에서부터 망칠 수 있었던 여행을 목사님의 지원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나는 듯 싶었다.

목사님께서는 70년대 월남전 당시 군목으로 파병되셔서 다낭과 호치민에서 근무하셨던 경험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베트남의 현지 생활 모습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신 것이다. 우리나라 6.25에 참전했던 터키 군인이 서울의 지금 모습을 보고 놀라 감회에 젖던 모 프로그램 방송처럼 말이다.

짐을 풀고 나니 뭐...... 그런대로 시설이 낙후되긴 했지만 친절한 관계자들과 깨끗하게 청소된 상태와 호젓하고 넉넉한 위치와 주변 환경에 나름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해변 리조트를 예약했었는데, 개별적 프라이빗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넉넉한공간의 객실 넷을 따로 예약하려니 실로 그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싱글로 함께한 조카도 별도의 공간을 꼭 따로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아침이던 저녁이던 가끔은 7명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너른 공간도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숙소 비용이 여행비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즉시 내가(우리가) 늘 해오는 방식선에서..... 가성비 위주로 넉넉한 개별 공간을 확보하는 대신, 시설이나 위치 등의 요건은 살짝 양보하는 선에서 택한 결과가 바로 지금 이 호텔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나름으로는 가성비와 실용성과 만족도를 모두 잡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여행을 마치는 시점에서의 공통된 평가였다. 휴~~~~~

여행을 와서 일단 잘곳을 정했으면 그 다음은?

먹어야지. 먹기위해서 산다는 말은 좀 그렇지만...... 여행을 왔으면 일단 실컷 먹고보는 것 아녀?

일단 베트남 하면...... 해산물의 천국이 아닌가.

물론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고, 먹는 사람마다 종류나 취향이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극명하게 갈린다는 푸꾸옥의 해산물은 과연 어떤것일까?

‘목사님. 여기 쯔엉동의 야시장이 아주 유명하고 온갖 해산물이 다 있다는데 첫날 저녁으로 어떨까요?’

‘여러사람이 좋아하는대로 해요.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즉시 그랩 택시를 부른다.

오늘 저녁은 쯔엉동 야시장에서 해결한다. 해가 지면 북적북적하고 혼란스럽다니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에 돌아와야겠다.

 

야시장 초입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인지 사람도 별로 없고 너무나 한산했다. 호객행위도 그만큼 적었다. 우리에겐 그래서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비를 맞으며 시장을 좀 둘러보고 나서 어디서든 웬만큼의 해산물을 먹어볼 생각이었다. 때가 12월이기 때문인지 시장 한복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났다.

몇 군데서 해산물 시세를 알아보니...... 헐. 아무리 날시 탓에 조업성과가 없기로서니........ 우리나라 주문진 수산시장과 비슷하지 않은가? 또 헐!!!

조카가 열심히 구글 맛집 검색을 해본다. 야시장 주변으로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 꽤나 유명한 해산물 식당이 세개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셋중에 하나로 야시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식당을 고른다. 비도 피해야 하고 어른도 쉬셔야 할것 같아서 그리고 찾아갔다.

야시장 보다는 저렴한 편으로 여러가지 다양하게 해산물 요리를 주문하고, 가족여행 축하 화이트 와인도 한 병 추가했다.

쯔엉동 야시장 하면 베트남을 대표할 정도로 풍부한 해산물의 보관창고라 불리지만, 바가지 상흔과 지나친 호객행위로 일부 여행자들로부터 극악의 평가를 받고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 해산물 물가와 비교해 대부분의 해산물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 이용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랍스터나 가리비의 경우는 대략 국내 물가의 80% 정도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람 나름이고 가계 나름이라서 심지어는 국내보다 비싼 가격에 해산물을 먹어야 했다는 체험기도 속속 올라 오고있는 실정이다. 몇 년씩 장기체류하는 사람들이나 현지인들의 말로는 ‘실로 터무니없을 정도의 가격’이라는 말을 실제로 여러 번 들었다. 그렇다면 바가지 물가는 틀림없음이고 이는 정당한 가격 흥정으로 해결해야만 하겠는데...... 모처럼 여행을 떠나 온 여행자 입장에서는 언어 문제도 있고 정정한 선을 알지도 못하고 참으로 난감할 뿐이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그냥 그들이 원하는 현찰을 그대로 내지르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 돈을 쓸 각오로 떠나온 여행에 기분 망치고 싶지 않아서이고, 어쨌거나 한국보다는 싸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너무 비싸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만큼 싱싱한 자연산이 아니겠냐 라며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한다.

‘대략적인 푸꾸옥의 여행 물가는 베트남의 다른 여행지에 비해서 20~30% 정도 비싼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비싼 물가는 모두 한국인 여행자들이 그렇게 올려 놓았다’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 말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면 푸꾸옥엔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 여행자들 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푸꾸옥에 한국인 여행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면, 당장 항공편 운항이 팍팍 줄어들 것이며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무료 셔틀 서비스가 당장 중단될 것이며, 북쪽의 빈 그룹 놀이시설이나 남쪽의 선 월드 놀이시설의 운영이 부분적으로 가동되거나 어쩌면 중단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유령도시 푸꾸옥을 먹여 살리는 것은 거의 전부가 한국인 여행자들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찾아보고 뒤져 보아도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마당에 야시장이나 해산물 식당이나 기념품점이나 마사지 업체들의 생계는 거의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달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푸꾸옥의 어느 거리를 가나 간판이고 안내판이고 어쩌다 오가는 말까지 베느남어 아니면 한국어가 도배를 하고 있는 수준이다. 영어 표기는 없어도 되지만 한국어 표기가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는 곳이 바로 푸꾸옥이다. 푸꾸옥의 그 수많은 마사지 숖들의 목숨줄은 한국인의 현찰가방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 푸꾸옥을, 베트남을 통털어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푸꾸옥을 지금 한국인들이 절대적으로 먹여 살리고 있는 실정인데........ 그럼 푸꾸옥이 다낭이나 나짱보다 좋고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파라다이스냐 하면...... 노!!!(NO) 라고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것이다. 어떻게 다낭이나 나짱에 비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낭은 베트남을 통털어 가장 현대화된 멋진 도시다. 그 도시의 외곽으로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될 마케비치라는 멋진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미국이 강제로(?) 월남전에 참전하게되면서부터 다낭은 현대적 시설을 갖춘 해군 기지이자 마케비치 해안을 군인들을 위한 해변 휴양지로 개발을 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해변은 현대화 되었고 최고급 호텔과 루프탑 바와 카페와 해산물 식당들이 해변을 따라 마천루를 이루어갔다. 최고급 리조트들은 같은 해변을 따라 호이안쪽으로 내려가 현재까지 무섭게 건설되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나 브라질 리오네 자네이루 못지않은 해변 휴양지가 다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열대의 휴양지이기는 하지만 바닷물의 온도가 겨울철에는 바다수영을 하기가 좀 어렵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겠다.

나짱(나트랑)은 다낭의 한참 남쪽에 위치해 그런대로 겨울 수영이 가능한 천혜의 해변 휴양지이다. 겨울 온도에서 푸꾸옥에 1도~2도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약 6km 정도의 해변에 빼곡하게 현대식 도시가 주로 호텔과 식당과 여행 관계 건물로 들어서 있다. 도시 규모와 환경 자체가 좀 좁고 협소하다는 것이 단점인 도시였다. 그런 좁은 도시에 속해있던 공항이 40km 외곽으로 이전해 가면서 나짱은 새로운 최고 해변 휴양지로 급부상했다. 흡사 우리나라 해운대 일대를 연상하면 바로 그런 곳이 나짱이다. 이동거리 없이 해변 가까이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최고급 휴양지가 바로 나짱이다. 시내와 공항 사이의 너른 해변 공간에 현대식 최고급 리조트들이 마구마구 들어서고 있다. 거기에다가 호치민에서 다니긴 좀 거리상 그런(?) 무이네와 달랏이라는 멋진 여행지가 나짱에서는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푸꾸옥을 여기 다낭이나 나짱에 비교한다면........ (단순히 비교 표현을 하고자 함이지, 차별이나 편견이 아닌 입장에서) 우리나라로 보자면, 30년째 개발 중인 경기도 화성 시화호 개발사업장 해상 휴양지 정도라고 감히 나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에 드러나고 사진에 찍히는 것 말고 이면의 실질적 상황은 그리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리라.

결론은, 비교할 것 비교해야지 어디 푸꾸옥을 다낭이나 나짱에 비교한단 말인가?(물론 여행사나 관계자들의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랬음에도 나는 내 재주껏 이번 푸꾸옥 여행을 어느 정도는 재미있게 즐기다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함에도 내가 푸꾸옥에서 잘 놀다가 왔다고 하는 것은 내나름대로의 방식과 선택이 있었던 결과이고 누군가가 나에게 '푸꾸옥 여행이 어떠냐'고 물어오면, 그 목적지가 꼭 베트남이어야만 한다면.......

푸꾸옥 여행을 가려 한다고 하면....... 차라리 다낭이나 나짱을 가라고 하겠다.

다낭도 나짱도 이미 다녀왔다고 하면...... 그래도 그곳을 두 번 가는 것이 좋겠다 라고 대답해 주겠다.

나짱이나 다낭은 두 번을 간다해도 말리지 않겠지만, 푸꾸옥은 기어코 갈 이유가 없거나 아주 적다고 말해 주겠다.

(푸꾸옥을 갈 생각이라면 차라리 나짱을 가라) 이게 내가 모든 사람에게 해주고픈 이야기다. 푸꾸옥은 아주 허접한 나짱의 짝퉁 정도일 뿐이다.(나의 소신 가득한 결론)

지난 나의 여행기를 찾아보면 다낭, 달랏, 호이안은 물론 무이네까지 나름 소상하게 올려져 있다. 이를 참고해 주면 좋을것 같다. 아울러 그 여행기 중에 중간 기착지로 나짱에 잠시 체류한 내용도 있기는 한데, 이번 연말에 병아리들과 나짱을 다녀 올 계획이 잡혀 있어서 새해 정초가 되면, 아마도 (나짱여행)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오르게 될 것이다.

그때의 기억중에 한가지, 현지인들은 무조건 나짱이라고 부른다. 나트랑이라고 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왜 나트랑이란 지명이 등장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행사나 잡지에 나트랑이라고 써 있을 뿐이다. 영어식 표기를 보이는 대로 읽다보니 음성어로 나트랑이 등장한 것일까? 앞으로 나는 무조건 나짱으로 부르고 표기하기로 해야겠다.

 

 

 

--- 다음 이야기에서 (푸꾸옥 여행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