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한 해 동안 태리 세리랑 함께했던 시간들을 회상해보다가, 그간의 여행사진들을 찾아내 파노라마처럼 보고 있노라니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감회가 새롭게 다가온다. 가을이 지나가는 이른 새벽에 마시는 모닝커피 가득 녀석들의 재잘거림과 환한 미소가 끊임없이 묻어나온다. 상큼한 행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바로 녀석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이 할애비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확연하게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작은 공주 세리의 눈부신 성장이 바로 그것이다.
봄 여행 사진속의 세리랑 가을 여행속의 세리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달리진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어쩌다 안아주게 되면 ‘할아버지. 나 이제 무거워졌어?’라고 늘 물어오곤 하는데, 안아주는 할아버지 걱정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항상 ‘아니? 하나도 안 무거워.’라고 대답해 주었었는데, 혹여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이 제가 자랐음을 할아버지에게 각인시켜 주고 싶었던 때문이라면......... 이제부터는 ‘세리가 부쩍부쩍 자라나서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몰라.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 할아버지가 얼마든지 이렇게 안아줄 수 있거든. 할아버지는 지금 하나도 안 무거워.’라고 대답을 바꿔야만 할까보다.
키가 자랐고 몸무게도 확연히 늘어났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더욱 선명해 졌다. 점 점 예쁜 소녀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산만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낯선 상황에 직면해선 잠시나마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오로지 제 방식으로 제 하고 싶은 놀이에만 몰두하던 일상에서 탈피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분위기를 맞추어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괜한 투정이나 생고집이 확 줄어들었지만, 가끔 부리는 옹고집에 대한 집념이나 강도는 훨씬 강해졌다. 그러면서 점차 그 이유를 나름 설명하거나 해명하려는....... 아직은 미흡하지만 그런 노력을 해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언니의 심술이 아니라면 이젠 세리의 우는 모습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요녀석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요녀석의 자질은 어떤 것일까? 도대체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할까?’
부쩍 작은 손녀에게 눈길이 간다. 그게 요즘의 내 주된 관심사다.
왜냐면?
우리집에서 제일 어리니까....... 녀석까지 부쩍 자라서 저 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더는 내가 가져야 할 걱정이 모두 끝날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에서 모두 벗어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 이야기도 모두 거짓뿌롱이다. 책임과 의무는 무슨....... 지금 할아버지는 너희가 있어서 행복하고 너희가 자라나는 모습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죽어라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태리야. 세리야. 조금 만 더 부탁해. 좀 더 자랄 때까지만 할아버지랑 지금처럼 놀아주렴. 할아버지가 너희 손을 이끌고 다닐 수 있을 때 까지만 말이야. 할아버지가 너희 손에 이끌려 다닐 때 까지는 결코 바라지 않는단다.
‘윤 세리.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큰 손녀가 아예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언니야. 한 번만 나도 해보고 싶어. 하게 해줘라.’는 우리 작은 손녀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손녀들 간의 소통이 원만하게 결론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돌아서고...... 동생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 울음보를 터트리기가 일쑤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되어버린 일이지만...... 우리 딸(며느리)은 그런 손녀들의 다툼이 생기면 무관심한 듯 외면해 버린다. 반쯤 되돌아 앉아서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다. 거실 저쪽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의 상황이 되어도 말이다. 누가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거나 사단이 나지 않는 한 즉석에서 당장 관여하지 않는다. 그게 아들이 사전 동의하는 우리 며느리의 교육관이다. 하지만 그 상황이 어떤 결과로든 스스로 정리가 되었다 싶으면 둘 다 불러 앉히고는 조목조목 세세하게 대화를 통해 설명을 하고 납득을 시킨다. 더하여 차후에는 그에 따른 징벌까지 다짐을 하곤 한다.
손녀들이 놀다가 다쳐서 피가 좀 나도 허둥대는 모습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좀 위험하게 놀아도 그대로 내버려 둔다. 흙장난을 좋아해 하루에 옷을 열번 버리고 들어와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비를 맞고 뛰다녀도 감기 걸리지 않을 정도면 그냥 내버려 둔다. 한 발 물러서서 지켜만 보고 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옆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여간 깐깐한 며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할머니는 아들 지지자이지만, 할아버지는 죽어도 딸(며느리) 편이다.
할머니는 꼬리가 아홉달린 구미호, 딸(며느리)은 꼬리가 일곱달린 칠미호, 태리는 꼬리가 세개달린 삼미호, 세리는 이제 겨우 꼬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우리집은 (여우 공화국)이다. 할아버지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다 뽑혀나간 늙은 늑대이고, 아들을 살펴보니 스스로 발톱을 깍아내고 이빨을 갈아 낸 무늬뿐인 푸른 늑대였다. 하이고야....... 나야 뭐. 구미호에게 홀려서 그랬다고 하겠지만..... 혹시나 지금의 여우공화국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면 우리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혹, 나이 차가 많이 나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태리와 세리의 나이 차가 네 살이다. 이 차이에서 나오는 힘(?)의 균형은 절대로 비슷하지 않다. 은연중에 언니는 군림하는 듯 태도가 엿보이고, 동생은 저항하다가 언제나처럼 굴복해서 끝내는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내가 보았던 기억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 하나만 달랑 낳았기에 형제자매들 간에 성장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엄격하신 부모님 아래 내가 당사자로 동생들과 함께 자랐던 시절의 기억이란 게 별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녀가 둘이 되면서부터 시선이 끌리고 뭔가 생겨나는 다른 상황에 대해 나름 심각하게 고심이란 걸 해보게 되었다고 해야 하겠다.
‘만약에 태리와 세리가 연년생이거나 두 살 차이였다면 자매간의 다툼이 더 심각해졌을까? 아니면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근사치를 이루어 마찰이 줄어들었을까?왜 그런것이 궁금해졌을까? 우리가 더없이 사랑하는 소중한 보배들이기 때문이지 뭐.’
어느 집이나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어디에서나 늘 있을 수 있는 지극히 보편타당한 선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전부랄 수 있는 손녀들이 커가면서 자주 다투는(?) 모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가슴은..... 일단 아퍼. 무지무지 아프단 말이다. 어서 어서 쑥 쑥 자라나렴. 너희들이 크면 저절로 다 사라지겠지. 그렇지? 세상에 단 둘 밖에 없는 소중한 자매가 바로 너희야! 단 둘 밖에 없는 우리 손녀들이고.......
인터넷에서 (만리포 맛집)을 검색해보면 이미 방송이나 SNS 등을 통해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가계들이 빼곡하게 올라온다. (호호 아줌마)가 있고 (산내들 식당)도 있고 (모항 횟집)이나 (시골밥상) 외에도 유명한 꽈배기 집도 있고, 웬만한 수목원을 능가할 정도로 부가 멋진 카페들도 수두룩한 곳이 바로 태안반도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SNS의 블로그나 카페를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고. 더불어 웨이팅이 사시사철 길기로 소문난 맛집이 하나 만리포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바로 (만리포 돌짜장) 이란 맛집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지금 당장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해보면 그런 설명이 얼마나 분명하게 사실에 입각한 팩트인지를 확일할 수 있다. 거의 도배를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태안반도를 여행하는 사람의 열에 아홉은 꼭 이곳을 들러야겠다는 사전 계획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으며, 다녀온 사람 중의 열에 아홉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명불허전 맛집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하에서 나는 그 아홉에 끼지 못하고 덜컹 나머지 하나에 속하고 말았다.(그 또한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 나의 판단하에서 말이다.)
나름으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특색있고 맛있는 돌짜장이다. 어쨌거나 가 보기를 잘했다는 만족감까지도 들었다. 꼬맹이들도 잘 먹었다.
하지만 돌아서서 나와 가만히 생각해 본 결론은........ ‘한 번으로 족했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 굳이 타인에게 권해줄 만한 진짜 맛집이라곤 못하겠고, 그렇게 유명세를 탈만한 명소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우리네가 가진 보편타당한 선에서의 자장면에 대한 인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이색적인 음식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런만큼 보편타당한 자장면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당연한 맛과 풍취와 지극히 여유롭게 아무때고 아무데서나 쉽게 대할 수 있는 자장면에 대한 당위성을 잃어버리거나 빠트리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 든다.
갑오징어나 뜨거운 돌판이나 누룽지와 푸짐한 해산물과 동남아처럼 얹혀나오는 숙주나물 등이 일단 시선을 잡아끌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꼭 이렇게 비싸게끔 해야만 하는 요리인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식탁을 가득 채우고 남았으며, 태우지 않기 위해 누룽지를 깔고 기름을 듬뿍 둘렀음인지에서 생겨나는 넘쳐나는 느끼함은 외려 항정살을 올리브를 두른 돌판에 버터까지 얹어서 구워내는 듯한 지나친 거북스런 느끼함으로 다가왔다.
그런가하면 중화요리 집을 직접 운영하는 가까운 친구에게서 요리 판매에서 나오는 마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전제로 또 한 번 지극히 내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하에서 결론을 내 본다면....... 당장 만리포 돌짜장의 음식 가격은 적어도 20%~ 30% 이상 당장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운영자 입장에서야 그 부분이 자신들이 노력해서 개발해낸 레시피나 특허권을 비용으로 환산한 정당한 마진이라고 하시겠지만 말이다.
또 내가 아는 상식선에는 이런 터무니 없어 보일 정도의 고가정책이 운영자의 치밀한 사전 계획에 의한 판매정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1만 7천원 정도의 고른 판매가가 형성되어있는 상권에서 한 점포만이 자장면에 갑오징어를 넣었다고 1만 8천원이나 1만 9천원에 판매한다면........ 비싸게 판다고 몰매를 맞기 십상이다. 하지만 눈에 확 띄게 갑오징어에다가 전복 한 마리를 가장 위에 확 얹어놓고(예를 들어 그 추가 재료비가 3.000 원 이었음에도) 자장면 가격을 2만 8천원 이라고 무리하게 책정했다면......... 일 이천원을 비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터무니없게 비싸다고 할 것이지만, 의외로 엉둥한 사람들 입에선 ‘비쌀만 하네’‘확실히 다르네’하는 정당한 인정성이 담긴 표현들이 터져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싼 것을 먹고 나와서 ‘사기 당했다’고 외치다 보면 그 속에서 ‘멍청한 놈’ ‘대가리가 텅 비었으니 그런 멍청한 음식을 먹고 다니지’라는 핀잔이 슬슬 풍겨나온다는 것을 그들은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러다 보니 역으로 ‘돈값을 하네’ ‘난 그 정도 가격대를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부류야’라고 떠벌리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흡사 주변에서 ‘장비빨에 목숨걸고 몰려다니는 캠핑 모임’이나 ‘자동차 튜닝에 목숨거는 동호회’나 ‘해외 직구 상품에 목숨 거는 똥손’처럼, 속사정과는 다르게 겉으로 내보이고자 하는 일에만 목숨 거는 부류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만리포 돌짜장은 아주 특색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기가 막히게 맛있어’라고 누군가에게 강추 할 정도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더하여 웨이팅까지 해가며 맛보아야 하는 상황이나 실로 엄청난 가격대를 생각하면........ 우리 동네 충주 자동차 운전 면허 시험장 부근에 가면 딱 한군데 짬뽕과 자장면을 나름 기가 막히게 하는 내가 자주 들리는 가계가 있다. 아주머니가 주방을 독차지하며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시고 바깥양반께서 홀 서빙을 전부 도맡아 한다. 달랑 두 분이서만 운영을 하다보니 점심시간에 즈음해서는 여기도 웨이팅 줄이 생긴다.
돌짜장을 먹는 대신에...... 그 비용이면 차라리 가까운 지인을 서넛 데리고 달래강변에 있는 작은 자장면집에서 짬뽕이나 간짜장을 지인들에게 대접하겠다. 공기밥을 추가해도 부담이 전혀 안 느껴질 가격대이고, 저렴한 가격대인 탕수육 하나를 추가해도 충분하다. 난 차라리 그렇게 하겠다.
자장면은 말이다. 가서 먹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자장면 특유의 고유한 맛과 우리네 일상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차지해온 자장면 만의 남다른 정서가 서려 있어야 제맛이다. 거기다가 진정한 자장면이란 당 시대의 외식 문화중에서 가격대가 가장 저렴한 측에 끼어야 그때 진정한 자장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게 진정한 자장면이다.
못 믿겠다면 아무때고 충주 자동차 운전 면허시헌장 인근에 달랑 하나뿐인 자장면 집에 들려서 직접 먹어 보시라. 짬뽕은 본인이 계산을 하시고 자장면은 필자 앞으로 달아 놓으시라. 문에다 필자가 시켜서 먹은 외상 숫자만 따로 슬쩍 표기해 놓으시라 하면, 내가 추후로 들릴 때마다 계산을 하겠다. 자장면은 그런데서 그렇게 먹는게 진짜 자장면인 것이다.(아니면 다녀 오신 후에 외상 달아 놨다고 댓글을 달아 주시면 가서 확인하고 계산하겠음)
‘느그들이 진짜 자장면 맛을 알기나 하는 거야? 까불고 있어.’
'도대체 야들이 커서 나중에 모가되려고 이러지?'(그것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윤 태리는 웬만해선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헐!!!!!
만리포의 돌짜장을 대충이나마 어설프게 경험하고 나서 해변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이번 여름의 후유증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이번 여행의 이틀 전까지만 해도 비와 추위에 대한 예보는 전혀 없었다. 이상기온의 날씨만 계속 된다는 것이 티비 공영방송 정규방송 날씨 예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제 아침 일기예보에 약간 흐리며 비가 올 확률 15%라 등장하더니, 오후에는 오전에 흐리며 약 5mm 정도의 가랑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가 바뀌었다. 여행 당일 아침까지도 흐린 날씨에 가랑비 5mm 정도가 일기예보의 전부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충주에서 출발하여 달천 대교를 건너기 시작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가랑비가 아니라 시야 확보가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5mm 가랑비라고? 지럴하고 자빠졌네. 이건 숫제 쏟아붓는 것으로 5분에 5mm 이상 수준이 아닌가? 한 시간에 60mm 집중호우라고....... 이 싸가지들아!!!!
또 그넘의 수퍼 컴퓨터 타령이나 할껴?
어찌어찌 병아리들을 챙겨 태우고 2시간 남짓 예상했던 이동시간을 넘기고 또 넘겨서 5시간 반 만에 캠핑장에 도착했던 것이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지만 새로운 문제는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과 불어오는 시베리아급 광풍이었다.
미치겠다. 우리 모두의 복장 상태는 여전히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복장이 정부였던 것이다. 그나마 거기에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허겁지겁 챙겨 넣은 우비가 전부였던 것이다.
지난 겨울 역시 유럽 기상청의 일기예보 오보 탓에 이상기온을 믿고 가을 복장으로 프랑스를 갔다가 불어 닥친 엄동설한 추위로 ‘그넘의 패딩 하나남 챙겨왔어도’를 연실 남발하는 여행 사고를 당했었는데......이번엔 가을의 초입이어야 하는 상황에서 소한 추위를 또 당하는 사람의 기분은...... 정말로 더럽다. 왜 계속 우리에게 이러는 것이지?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나?
당장 우리 병아리들을 어떻게 하라고??????
좀 늦게나마 점심을 해결했으니 이제 슬슬 청산포 수목원으로 이동을 해서 가을 축제를 즐겨야 하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스케줄이었는데...... 뻔히 나를 돌아다보는 세리할머니 표정이 흉흉한 것이 심상치 않다.
‘이 상황에 지금 애들을 데리고 수목원인지 뭔지 가겠다는 거니? 병아리들 추워서 벌벌 떠는 것 안보여? 이 상태로 정원 산책을 두 시간쯤 하고나서 또 야외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겠다고? 그러다가 애들 감기 걸리면 아들 며느리한테 뭐라고 할껴? 할아버지가 다 책임질껴?’
‘태리야. 지금 많이 춥니?’
‘네. 추워요. 할아버지. 우리 그냥 텐트로 돌아가서 거기서 놀면 안 되나요? 텐트에서 우리끼리도 충분히 재미나게 놀 수 있거든요?’
‘안되긴? 너희들만 좋다면 뭐든지 다 되지. 그럼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기로 하고, 가다가 하나로 마트 들려서 맛있는 것 많이 사고 텐트로 돌아가서 장작불도 피우고 밤이 되면 보름달 구경도 하고 풍등도 또 날리고 하면서 놀까?’
‘네 좋아요.’
‘할아버지. 마트 가면 뽑기도 하는 거예요?’
‘그럼. 하루 한 번 뽑기는 할아버지 약속이니까 당연히 해야지.’
차를 돌려 장보기를 마치고 텐트로 돌아 왔다.
그런데 이거야 원........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우리는 함께 혜화동 대학로 거리로 순간 공간 이동을 했다.
화롯대를 꺼내 장작불을 피우면서부터 연극 공연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태리와 세리가 즉석 연극을 각색 연출해 가면서 무대에 올린 것이다.
‘도대체 장차 얘들이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어질 정도로 진지하고 열정적인 놀이마당 한 마당을 펼쳤다. 뛰어다니고 땅바닥에 드러눕기도 하더니 느닷없이 캠핑 장비들인 조명 장비를 켜달라고 한다. 허겁지겁 서둘러 가지고 온 조명기구를 모두 꺼내서 하나씩 하나씩 붉을 밝혀 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완전 불쑈가 펼쳐진다. 그리고 카메라 조명과 셔터가 사방에서 연실 터지는 상황극을 재현해 보인다. 그때그때 마다 관객 앞으로 나아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다양한 표정 변화가 이어져 나온다. 그리고 무대가 텐트 안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무대에 새로운 복장으로 노랗고 빨간 우비를 꺼내 입는다.
현란하다.
하이고야!!!! 할아버지 할머니 미친다. 카네기 홀 공연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이대로 이 열기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모두 불에 타 버리고 말겠다. 공연 중단 휴식 타임이 절실하다.
그래서 병아리들을 강제로(?) 끌어다 앉히고 잠시 저녁 식사 타임을 가진다. 사골 곰탕으로 입맛 까다로운 병아리들 간단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열기도 시킬 겸 해변으로 가서 풍등을 날린다. 가족 하나하나씩의 몫에다가 소망을 가득 담아서 저 멀리 바다위로 띄워 보낸다. 아빠 등불이 날아오르고 이어서 엄마 등불을 날렸는데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처지자 아이들이 안타까운 함성을 질러댄다. 그래서 특별히 엄마 아빠 풍등은 한 번 더 날렸는데....... 이번에도 엄마는 쳐지기만 했다. 우리가족 여섯 식구 몫을 여덟 개에 나누어 담아 하늘 저 멀리까지 불꽃으로 피워 올렸다.
추위를 느낄 때쯤 다시 텐트로 돌아와 장작불을 더했는데........ 이쯤에서 그칠 줄 알았던 연극의 2막이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대조명 기사로 둔갑하고, 무대 전면에 나아가 펼치는 병아리들의 표정 연기가 실로 압권이다. ‘도대체 나중에 뭐가 되려고 이러지?’
이 무대 공연은 텐트밖에 피어둔 장작불이 저절로 꺼져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안타까운 공연을 겨우 마치고 치카치카(?)를 하자마자 병아리 둘이 그만..... 세상모르게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무대 공연에 온 정열을 불살랐음 때문일까?
삽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버린 우리 병아리들이 한없이 예쁘고 귀엽다. 사랑스럽다.
잠든 녀석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제야 우리 방식으로 과일을 안주 삼아 소맥파티를 벌인다. 어쨌거나 오늘 하루도 더 없이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가 아니었던가!
‘내용 파악이나 이해는 다가 아니더라고 감동적인 무대였지?’
‘그 생생한 표정 연기 좀 봐. 도대체 나중에 뭐가 되려고 저러지? 할아버지가 나중에 태리 로드매니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요물이여 요물. 아들에겐 저런 열기까지는 없었는데?’
‘그럼 겡구(며느리)한테서 나왔나?’
‘우리 겡구두 저런 쪽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나올 데가 더 있나? 할머니인 당신이겠지. 이 할아버진 절대 아니니까.’
‘그런가? 내가 속에 숨겨놓은 기질이 슬쩍 태리한테 내려갔나?’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바탕 박장대소를 날린다. ‘에구에구. 끔찍한(?)우리 새끼들!!!!!’
그날, 그야말로 환상적인 열정의 무대 공연을 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단독 공연을 말이다.
우리가 본 연극의 제목은 뮤지컬<레미제라블>이었던 것 같다.
우린 그날 함께 깊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아쉽지만...... 물때가 최적기라 해서 갯벌체험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조개 수확이 별로였던 때문에, 마검포 캠핑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체크아웃 타임에 맞추어 나오면, 태안반도에서 분위기 좋은 카페나 빵집을 찾아 방문해 보기로 처음부터 계획을 했었다. 다음으로는 귀가 길을 약간 우회하여 챠밍여사에게 알싸한 가슴 아픈 추억의 장소이기도 한 장흥 소나무 숲 유원지를 방문해 볼 계획이었다.
다행이 날씨는 개었지만 쌀쌀한 바람은 여전했다.
캠핑장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검색을 통해 찾아낸 카페 목적지가 바로 나문재 카페(Cafe 나문재)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미 태안반도에서 어느 정도 명성이 자자한 젊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였다. 굳이 특별한 이유는 아니지만 그런 이유 같지 않은 특색을 가진 널리 알려진 명소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야간 촌스럽거나(빈티지) 토속적인(로컬)을 주로 찾아다니는 우리였지만 지금은 우리 꼬맹이들도 같이 있고 해서 아름다운 가을 정원이 펼쳐져 있다는 나문재 카페를 기꺼이 선택하였다.
나문재 카페는 너른...... 좀 포괄적 의미의 가볼만한 그런 카페였다. 알려진 유명세만큼이나 꽤 많은 손님들로 넘쳐났지만 너름 공간과 야외정원에서 주는 넉넉함 때문인지 북적거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옷맵시 한껏 부리고 예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젊은 여행자들이 아주 좋아할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랬음에도 현장에서 느낀 것은, 오히려 젊은 여행자들보다도 훨씬 더 낭만적인 분위기 갬성(?)에 푹 빠져있는 중년여성들이 반할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중년이나 막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인정하기 싫은 정도의 연배를 가진 여성 여행자 무리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나문재 카페는 딱 그런 곳이었다.
갬성(?). 중년 여성. 가을. 갈대. 진한 커피 향..... 뭐 그런 카테고리로 연결되는 그런 안락한 쉼터였다고나 할까?
그런 장소에 거의 어린 아이로는 우리 병아리들이 전부였다고나 할까?
쥬스나 베이커리 등은 젊은 아가씨들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어린 병아리들 취향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위기 짱 나는 실내에서 폼 좀 잡고 커피를 즐기면서 잠시 쉬어가려 했더니만...... 우리 병아리들은 그런 실내 분위기가 금방 싫증이 났나보다.
‘할아버지. 나 밖에 나가고 싶어요.’
‘밖에? 정원에?’
‘네. 그네 탈래요.’
할아버지 부랴부랴 꼬맹이 뒤를 쫄쫄 따라 나가 그네를 밀어준다.
불타는 할아버지의 사명감 때문이다. 꼬맹이 녀석이 아직 이 할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는 사실에 눈물겹도록 감사하면서 말이다.
정원 숲길을 오가면서 술래잡기도 하고........
나문재 카페에서 나와 장흥 유원지를 향하려는데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일 없느냐고, 도착 예정이 언제냐고 하면서 서해안 고속도로 길이 막힌다는 뉴스가 나왔단다. 내려올 때 고생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둡기 전에 병아리들을 집에 도착시켰으면 좋겠다고 챠밍여사가 말한다. 그래서 장흥 방문을 취소하고 고속도로에 올라 저녁 무렵에 이천에 도착해서 병아리들을 인계하는 것으로 이번 마검포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저녁을 외식으로 하자는 며느리를 만류하고 서둘러 다시 집을 나선다.
너희는 병아리들 짐부터 풀고, 우선 따뜻하게 씻기고 나서 병아리 먹이부터 주라고 하고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아직 안 끝났어.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가야만 우리 집이라고...... 아니지. (우리 집)이란 말이 영 어색하다. (아들 집)이자 (태리네 집) (세리네 집)이 맞는 표현일 테니 말이다.
중간 쯤 와서는 단골인 송어 양식장에 미리 포장을 예약해 둔자.
충주에 도착하면서 송어 회를 찾아서 집에 도착하면 짐 정리는 나중이고, 일단 씻고 나서 이번 여행을 복기하면서 무사여행에 대한 우립방식의 조촐한 파티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항상 ‘집에 술이 얼마나 있지? 아예 더 사가야 할까? 오늘은 좋은날이니까 보통 때 보다 좀 더 마셔도 되겠지 뭐.’ ‘맨날 저래. 어떻게 하면 술을 더 마실 껀 수(?)가 없을까만 궁리하는 할아버지 같아.’ ‘어허. 자축이라니까? 뒤풀이!!!!’
그리고 서리.......
<마검포 캠핑>을 마무리하고 있는 이 순간.........
나는 지금 우리 병아리들과 떠날 다음 여행을 세세하게 계획하고 있다.
이번엔 비행기타고 해외로 나간다. 큰 병아리가 겨울방학만 시작하면 아무 때라도 좋다. 할아버지 해외여행 버킷 리스트는 언제나 변함없이 (윤태리와 함께하는 이탈리아를 일주하는 여행) 이고, 사실은 이번 겨울에 태리랑 이탈리아를 갈 계획을 세웠지만, 동생 세리를 어떻게 떼어놓고 가야하는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태리에게 12시간 비행이나 한 달 가까운 장기여행은 무리가 없겠지만, 동생 세리에겐 아직은 12시간 비행이 무리일 테고, 한 달 동안 엄마 아빠에게서 떨어져 있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해서 결국엔 (윤태리의 이탈리아 여행)은 내년 여름방학이나 겨울 방학으로 미루기로 하고, 약간 미안한 마음 보상차원에서 먼저 이번에 태리와 세리를 함께 데리고 동남아로 연습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들 가족끼리는 이미 여러 번 동남아 여행을 자주 다녔었기에, 할머니 할아버지 차원에서도 그동안 함께 캠핑다니는 수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리라. 비행기 탄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동남아에서 어디를 갈까?
할아버지 관점에서 손녀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동남아 여행이라면 무조건 1순위는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군>이다. 할아버지가 아시아권에서 거기만은 꼭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직항이 어렵고...... 다른 아시아권 어디보다도 캄보디아 자유 배낭여행은 좀 까다로운 여건이 따른다. 방콕과 연계도 해보고, 호치민과도 연계를 해 보았지만....... 9살 손녀는 그렇다 치고 5살 손녀에게는 좀 벅차 보인다. 추억이 서린 페낭이나, 괌이나, 롬복 등도 생각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들과 함께라면 일단은 베트남이 아닐까 싶다.
당장 내일 밤에 집안 어른들끼리 가족 여행으로 푸꾸옥으로 떠나는 상황이지만, 세리 할머니 말씀으로는...... ‘가 보이서 푸꾸옥이 정말 좋으면 한 달 뒤에 병아리 방학하는 대로 다시 푸꾸옥으로 가는 거야’라고 이미 하명이 떨어진 상태다.
푸꾸옥은 다 좋은데...... 어느 쪽으로든 이동하는 시간과 거리가 제법 걸린다. 여행을 제대로 하자면 말이다. 꼬맹이들에게 긴 이동 거리와 시간은 쉽게 지치게 만든다.
하여, 내가 찾아 낸 대안은 나트랑(나짱)이다. 어린이들 데리고 하는 물놀이 여행은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나짱이 최고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나로서도 나장에 체류해 본적은 아직 없다. 다만 경우하면서 두 시간정도 머물면서 싸돌아다닌 경험은 있다.
(태리 세리와 떠나는 해외여행)의 원픽은 무조건 나트랑이다. 나트랑과 무이네나 달랏을 엮을 수도 있겠지만, 편안하게 쉬면서 놀기는 나트랑에서만 머무는 것이 최고다. 다음으로는 푸꾸옥과 나트랑을 묶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트랑과 다낭을 엮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병아리들이 이미 다낭은 다녀왔고 다낭의 1월은 바다 수영이 불가능하다고 해야겠기에 패스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손녀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해야 하겠기에......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동사무소엘 다녀왔다.
왜냐고?
<가족 관계 증명서>를 영문으로 떼기 위해서다.
한국에서야 어디를 가나 ‘손녀들이 잘 따르네요’ ‘손녀가 할머니를 닮았어요’ 등등 윤 태리와 윤 세리가 우리 손녀라는 사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들 사거나 별도로 입증을 하라는 소리를 못 들어 보고 경험도 못했다.
우리 병아리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명백한 우리 손녀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이어주고 증명해 주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면 이런 만고불변의 진리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조건 서류로 증명을 해야만 한단다. 우리 병아리들이 하도 예뻐서 나쁜 사람들이 슬쩍 훔쳐간다는 눈초리로 할아버지를 노려볼 것이라 했다.
헐!!!!! 할아버지 속을 훌러덩 뒤집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그래서 병아리들이 내 핏줄이 틀림없다는 증명서를 만들러 동사무소에 갔더니...... 영문으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 손녀인 윤 태리와 윤 세리>가 서류 한 장에 달랑 그대로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이 가족관계 확인이란 게...... 조부와 손녀..... 그러니까 삼대 확인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단다. 그걸 입증하려면 반듯이 매개체로 중간에 애비 에미가 들어가야 한단다. 그러니까 일단...... 할아버지 할머니 아래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우선 증명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그 아빠가 엄마랑 결혼해서 태리 세리가 태어났다고 해야만 되게 되어 있단다.
헐!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래서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가족 관계 증명서> 라는 것을 만들어 봤다.
내 이름(할아버지)이 떡하니 있고, 아래에 아들 이름이 나와 있다. 둘의 관계가 ‘부자지간’이라고 써 있다. 그 아래에 아들이 태어난 이유이자 조건으로 챠밍여사(할머니)가 절반의 지분이 있다는 표시로 등장했다. 둘의 관계는 ‘모자지간’이다. 그럼 챠밍여사와 내는 결혼한 부부라는 삼각함수 방정식이 나오는데...... 햐!!! 이건 가족관계가 이차 삼차 오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복잡한 관계처럼만 느껴진다.
서류 다음 장을 보자.
윤 태리라는 이름이 떡하니 가장 먼저 나온다.
그리고 아래에 아들 이름이 나온다. 관계는 ‘부녀 관계’라 적혀 있다.
다시 아래에 며느리 이름이 나온다. 관계는 ‘모녀 관계’이며 2014년에 혼인 신고한 날짜가 적혀 있다. 결혼 기념일은 필요가 없고 법적으로 부부가 된 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들 며느리가 2014년에 결혼을 한 다음에 어쩌고저쩌고 해서 태어난게 윤 태리라는 설명이다.
셋째 장을 보니 첫 이름에 윤 세리가 나오고 나머지는 똑 같은 내용이다.
헐!!!!
햐!!!!
이젠 국제적으로도 병아리들이 내 핏줄이라는 걸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게 입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정식을 외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물어오면 어떻게 설명하지?
‘봐유. 이게 나유. 확실 하지유? 여기는 내 마누라이자 재들 할머니구유.’
‘여기엔 안 왔지만 요기 적혀있는 요넘이 내 아들이유. 요건 내 며느리구.’
‘잘 봐유. 갸네들 사이에서 태리 세리가 태어났다는 기록이 보이지유?’
‘그러니까 내가 재들 할아버지인게 틀림없는 거구유. 언더스탠드????????’
헐!!!!
햐!!!!
‘잘 모르겠다구? 그럼 니덜 나라 국립수사연구소로 가자구. 피 뽑아 보면 알게 될 거여. DNA가 딱 가족이라고 나온다니까?’
동사무소 의자에 앉아서 신기한 듯 영문 서류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는 나에게 담당 직원이 물어온다.
'엄마 아빠는 왜 빼놓고 할아버지랑만 해외여행을 가시나요? 이런 경우는 이제껏 없었거든요. 엄마나 아빠가 할아버지 모시고 삼대 가족여행 간다고 오시면 서류 한 장으로 다 해결되는데요.'
'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신세대랑 나처럼 늙은 세대랑은요. 엄마 아빠랑 갈 때 신세대 문물에 맞추어 여행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다닐 땐 또 우리 방식의 올드한 스타일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또 함께 가면 은근히 애들이 엄마 아빠에게 의지하고 눈치 보는게 있어서 완전히 우리차지가 안돼요. 여행기간 동안 만은 우리 손녀들이 온전히 우리 차지가 되어야 해요. 그런 느낌의 차이가 확실히 있어요. 또 우리 병아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따라주어요.'
'엄마 아빠 떠나서 할아버지 할머니랑만 지낸다는게 쉽지는 않을텐데요?'
'그래요? 내년쯤엔 유럽으로 한 달쯤 데리고 떠날 생각인데요?'
'네? 엄마없이 한 달씩이나요? 5살이요?'
'어떻게든 되겠지요.'
-- <마검포 캠핑>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기는 내일 출발하는 <푸꾸옥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리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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