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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어떻게해? 완전 폭망한 여름 물놀이캠핑(심천 한마음 캠핑랜드)

by 피안재 2024. 8. 21.

 

 

 

 

‘우리 병아리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여름방학은 언제 시작한다고?’

‘저들끼리 여름휴가 계획은 따로 있으려니, 우리 차지는 언제가 되는 거지?’

‘여보야. 당신이 아들한테 슬쩍 전화 한 번 해볼래?’

언제부터인지 자나 깨나 ‘우리 병아리들’을 입에 달고 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참 신통하고 방통하다.

나 자신도...... 내가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원인은 한 가지~~~~~~~~~~ ‘내가 태리 세리의 할아버지’라는 것이 이유의 전부다.

오다가다 꼬맹이만 보면 괜히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런 연관이 없으면서도 꼬맹이들만 만나면 저만치 사라질 때까지 멍청하니 서서 마냥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 작은 애는 어린이 집에서 돌아왔을까? 상처 난 이마에 붙인 밴드는 떼었을까? 큰 애는 학원에서 여름캠프 간다고 했는데 잘 다녀왔을까? 슬쩍 가서 얼굴만 보고 올까?

빨리 방학이 되든가, 아니면 애들 생일 핑계대고 불쑥 찾아가든가 해야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거 참! 할아버지 노릇하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네? 그래도 잘 버텨내야만 해. 왜냐면?

‘세상에 하나뿐인 할아버지니까.’

이럴 때면 상견례도 갖지못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바깥사돈 생각이 난다. ‘계셨더라면 세상에 둘 뿐인 할아버지 중 하나였을 터인데’ 말이다.

사람팔자 알 수 없다고....... 혹여 그 분과 나의 입장이 바뀌어, 그분이 지금 살가운 손녀들을 데리고 행복해 하는 외할아버지였고, 내가 저 병아리들을 품에 안아볼 수 없는 하늘나라의 할아버지였다면 어떠했을까? 괜히 바깥사돈께 미안한 생각도 들고...... 외할아버지 몫까지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계셨다면 우리는 참 가깝고 친하게 잘 지냈을 터인데 말이다.

아들이 며느리를 만나 결혼을 생각하던 쯤에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단다. 나나 아내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 며느리가 딸만 둘인 집안의 둘째이고 다들 미혼이어서, 우리 아들이 상주 노릇을 아주 훌륭하게 했다고 결혼 후에 사부인께 들었다. 아직까진(?) 하나뿐인 사위라 장모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아들이 달랑 하나 뿐인데....... 이것 숫제 며느리가 우리 가문에 시집을 온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처갓집으로 호적을 파 옮긴 것처럼 느껴질 정도가 아닌가?

헐!!!!

허니 어쩌겠는가?

우린 어쨌거나 둘이고, 그분께선 혼자이시니 말이다.

‘대신, 병아리들만 자주 보내줘라. 할아버지 속이 탄다. 자나 깨나 우리 병아리들이 보고 싶어서....... 사진도 좀 팍팍 보내주려무나.’

 

황매산 철쭉 캠핑을 다녀 온 이후로 슬쩍 슬쩍 할망구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옆구리 쿡쿡 찔러 간을 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아무래도 당장 우리집안의 실세이자 병아리들에 대한 거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 것은 딸(며느리)임이 분명한데, 그래도 딸과의 소통이 그나마 원활할 것이 바로 할머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칠미호, 며느리는 치세가 하늘을 찌르는 구미호, 우리 병아리들은 한참 자라는 오미호랑 삼미호....... 온통 여우집안이다. 집안에 늑대도 둘이나 있기는 한데, 할아버지는 이제 늑대의 끼가 모두 사라진 온순한 강아지 정도로 변했고, 아덜도 가만히 보자니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모두 사라진 무늬만 늑대인 사내로 전락한 모습이 역력하다. 가히 우리집안은 지금 여우 왕국이 분명하다.

 

‘할아버지답게 좀 덤덤한 모습으로 체통을 지키셔야지요. 애들은 애들만의 개인적인 생활이 있는 거예요. 평상시는 그런 애들의 생활을 물끄러미 바라다봐주는 주변인처럼, 만나면 서로가 전부인 가족처럼, 그저 모든 것을 가슴에 담고 사는 튼튼한 울타리처럼 지켜봐 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랍니다. 너무 멀리서 무관심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가까이서 애들의 생활과 교육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것도 나는 반대입니다. 병아리들이 보고 싶을 때에도 적당히 참아내야 하지만, 대신 병아리들이 우리를 부르면 언제든 즉각 달려갈 수 있는 준비된 할아버지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건강하게 우리가 오래오래 살아야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세리할머니는 이렇게 평상시 쓰지 않던 존칭까지 해가면서 나에게 훈계를 늘어놓기가 일쑤다. 폐부 깊숙한 속까지 대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리저리 자꾸만 어깃장을 놓고, 서둘고 일을 저지르는 이유는.......‘내가 언제까지 우리 병아리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슬픈 느낌은 애를 써도 떠나거나 사라지지를 않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우리 병아리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가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고, 함께 해보고 만들고 싶은 추억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함께 찾아갈 여행 스케줄이 버킷리스트에 빼곡히 적혀있는데 말이다.

이것들을 어느 정도 너희들과 함께 만들고 경험하고 추억하지 못한다면...... 할아버지는 언젠가 먼저 훌쩍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억울할 것 같으니 어쩌면 좋으니? 할아버지는 수시로 시간 체크를 하고 있단 말이다. 다가올 운명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니?

 

‘난 우리 병아리들이랑 물놀이 캠핑을 가야만 하겠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손녀들과 다시 캠핑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장소를 고르고 있는 중에........ 아뿔싸!!!!

캠핑이 대중화를 넘어서 대세로 등극한 게 엄연한 현실이라더니....... 염두에 두고 있던 캠핑장들이 이미 예약으로 가득 차 있다. 방학이 아직 많이 남았는지라 주말을 이용해야만 하겠는데...... 주말에 비어있는 캠핑장이 하늘에서 별 따오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병아리들이 아직 어려서 너무 멀어도 무리가 따르고 편의시설이나 안전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 형편에서 고르자니 당장 사용 가능한 캠핑장을 찾을 수가 없다.

세상에나....... 내가 아들을 데리고 캠핑에 빠져 살았을 때는 캠핑장이나 시설이 어디 있었나? 그저 노지캠핑이 전부였지? 자연휴양림에 야영장이 생겼을 때가 정말로 천국이었지 싶다. 아무 때나 불쑥 자연 휴양림을 찾아가면 야영장은 어디든 충분 할 만큼 비어있었고, 태풍이 오거나 피로가 누적되면 아무 때고 관리소에 찾아가 방 하나만 달라고 하면 당연하듯이 숲속 오두막을 이용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자연휴양림이 사전 예약제로 바뀐 그 순간부터 우리방식의 진짜 캠핑은 막을 내린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캠핑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하자면....... ‘바깥나들이나 자유여행의 시작으로 하는 캠핑’이 아니라, ‘호캉스에 지쳤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뉴 라이프 스타일이나 장비빨을 자랑하려는 의도적인 보여주기 식의(유튜버나 블로가처럼) 호사스런 캠핑’을 대부분 추구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여 진다.

적어도 5~6년은 그렇게 빠져 지내다가....... 미니멀 캠핑에 눈을 뜨고, 비박을 경험할 즈음이면 그래도 ‘캠핑을 좀 하네’ 할 수 있지 않을까?

캠핑장을 구하면서....... 사전에 우리 병아리들을 좀 빌려오려고 아들에게 슬며시 운을 떼어보는데....... 답장으로 도착한 아들의 카카오 톡.........

‘아빠. 저희들 연차 휴가 맞추어서 꼬맹이들 데리고 비행기 타고 여행 다녀오려고 해요. 저희 다녀온 다음에 캠핑 가세요.’

‘병아리들 데리고 비행기 탄다고? 언제 얼마동안 어디를 가는데?’

‘다다음주에 일주일 다낭 다녀오려고 준비했어요.’

아들이 저들끼리 가족여행 간다는데 할아버지가 달리 태클을 걸리는 만무하고...... 그런데 어디라고? 다낭? 베트남 다낭? 거기를 왜 인제야 간다는 거야? 헐!!!!! 할망구 돈 나가게 생겼네?

헐!!!! 무심코 발행한 약속어음이 이제야 만기 도래해 지급 요청을 해왔다고나 할까?

감자기 좀 심술보가 작동을 해서 할망구에게 카톡으로 ‘약속어음 돌아왔나 본데?’했더니만, ‘이제 알았나보네? 지난주에 이야기 듣고 잘했다고 즉석에서 송금했네요. 새삼 무슨 약속어음은?’

헐!!!! 또 뒤통수 맞았다.

엄마와 아들은 이런 상황을 지난주부터 세세하게 이미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벌써 금전 계산까지 끝낸 상태라니...... ‘이것들이 시방 아빠와 남편을 뭐로 보는 거야? 가부장권을 다시 회수해 버릴까?’

 

7년 전이었던가? 2016년 첫째 손녀 태리가 가을에 태어났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등극 기념 여행을 떠났다’ 어쨌든 병아리는 건강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고생은 에미 애비가 했겠지만.......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할머니 할아비의 가절한 염원(?)’도 무시할 순 없겠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동남아 여행을 이십일 정도 떠났었다.(명분치곤 좀 구질구질 부실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태국 방콕으로 들어가서 둘러보고는 카지노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 국경을 통과해 씨엠립에서 앙코르 왓 유적군을 질리도록 돌아다녔다. 국제 버스를 타고 프놈펜을 지나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서 며칠 머물다가 무이네를 이동했고, 다시 나짱을 거쳐 호이안으로 슬리핑 버스를 타고 16시간을 이동하고, 며칠 머물다 다낭으로 이동했다가 귀국했다. 참 많이 쏘다닌 여행이었다.

그 여행 중에 나는 언제나처럼 <앙코르 왓 여행>이 참 인상적이었지만, 아내는 마음 편하고 쉼의 여유가 넘쳤던 호이안이 최고였었나 보다. 호이안에서 감동을 먹은 할망구가 느닷없이 딸(며느리)에게 전화를 하더니 ‘호이안이 너무너무 아름답고 마음 편하고 좋구나. 태리 낳느라 고생했는데 얼른 건강회복하고 나면 아무 때라도 너희끼리 여기 다낭 호이안을 꼭 여행하도록 해주고 싶구나. 모든 경비는 이 할머니가 다 대줄테니 아무쪼록...... 건강 잘 추스르고...... 내 약속 꼭 기억했다가 아무 때고 떠날 계획이 서면 이야기하렴. 내가 꼭 보내주고 싶어’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만 7년이 넘도록 아들 가족이 해와 가족여행은 여기저기 다녔는데, 생각해 보니 다낭과 호이안이 그동안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이번에 느닷없이 다낭 가족여행이라니?

헐!!! 할망구 약속어음때는 분명 ‘3인 가족’이었는데....... 시방은 ‘4인 가족’....... 여행비 청구서에 이자가 옴팡지게 붙은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내 캠핑은 뒤로 미루어졌고....... 아들 가족은 다낭으로 일주일 가족 여행을 다녀오긴 했는데.......

'얼씨구? 이게 뭐야?'

우리 병아리들이 다낭여행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틈나는대로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을 받아 보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미 충분하리만치 경험했던 익숙한 다낭여행의 풍경이 아니지 않은가?

‘아빠, 날씨가 여행내내 좋지 않았어요. 바나힐 가는 날만 빼꼼했는데...... 그날은 또 어찌나 덥던지 애들이 쉽게 지쳤어요.’

‘그랬구나. 모처럼 여행인데....... 그런데 아들...... 그래도 이건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여행의 모습이 아니지 않니?’

‘아직 너무 어려서 그래요. 점점 달라질 거예요.’

‘그럴테지...... 그렇게 되겠지. 암 그래야 하구말구..........’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입장에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해야할까?

공항 사진....... 다낭과 호이안 중감쯤 해변 리조트 풍경...... 리조트 풀장....... 리조트 리셉션이랑 레스토랑...... 다시 풀장....... 잔뜩 흐린 해변 풍경....... 또 풀장....... 바나힐 사진 몇 장.......... 그 흔한 호이안 풍경 사진도 하나 없다.(결국 호이안에도 못 나가보았단다)

할.아.버.진.충.격.받.았.당.

내가 함께였다면 우산을 쓰던, 우비를 걸치던 다낭과 호이안 일대는 물론 좀 떨어진 후에까지도 쏘아다녔을 텐데...... 일주일이라면 무이네나 달랏까지 충분히 다녀왔을텐데......... 허니 어쩌겠는가? 병아리들의 보호자는 에미 애비인 것을........ 할아버지 할머니는 후순위인 것을.......

그래서 다시 결심했고 재삼 재사 다시금 확인을 가슴에 새겼다.

너희들 가족여행에서는 그래 좋다..... 에미 애비 마음대로 하렴.

하지만, 병아리들이 우리 품에 안겨서 우리끼리(할머니 할아버지 병아리 둘만) 하는 여행은 무조건 우리 방식으로 할거야. 알았지?

우리 병아리들은 어쩔 수 없이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또는 하고 싶어하는 방식의 여행과 체험을 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고 충분히 지지하고 인정한다.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랑 함께하는 시간에는 여간해서 엄마 아빠가 잘 시도하지 않을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병아리들에게 알켜주고 경험시켜주고픈 그런 것들로 골라서 실컷 해 보아야지.

캠핑 해야지. 등산 해야지. 해외 배낭여행 가야지. 에미 애비가 사전에 알면 걱정할까봐 무조건 비밀도 하고 다녀야 겠다. ㅋㅋㅋㅋㅋ

다낭 여해을 마치고 돌아와 무더워지는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적어도 캠핑을 한 번쯤은 해야만 하겠다.

그래서 또 몰래 꿍꿍이 계획을 세웠다.

동해안에 캠핑장을 예약해 텐트를 치고, 가장 먼저 큰손녀 태리에게 서핑 체험을 한 이틀정도 시켜주어야 하겠다고. 하나의 경험으로 시작 맛보기는 할아버지가 기회를 제공해주고, 그게 재미있어 평생 취미가되던 특기가 되던, 혹여 차후로 지속적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경비는 에미 애비 몫으로 떠넘기면 되는 것이고......... 입산금지에서 해제되어 사전 예약제인 한계령 흡임골로 올라 등선대를 구경하고 주전골로 내려오는 천상의 코스를 꼭 할아버지 손으로 보여주고 싶고, 두타산 베틀바위로 보여주고 싶어서 궁리를 하는데........ 할머니의 무릎상태가 그만 태클을 걸어온다.‘우리 나이에 계단투성이 등산은 절대 무리야. 애들도 아직 어려서 거기 계단은 못 올라내려.’라면서 말이다. ‘그럼 작은 애은 내가 배낭에 업고 갈래.’하자 ‘하이고 열할아부지 나셨어요. 맨날 청춘인지 아니? 이젠 혼자 몸도 벅찰걸?’이라며 시비를 거는데...... 전혀 틀린말은 또 아닌 것 같고..... 어쩐다?

그런 가정하에서는 소나무 그늘이 많은 연곡의 솔향기 캠핑장이 딱 맞춤인데....... 아뿔사!!!!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며칠 동안 거듭거듭 사전 예약을 시도해 보았지만 도무지 예약 근처까지도 가 보지 못했다.

캠핑의 대중화에 따른 엄연한 환경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자빠질 정도였을 뿐이다. 그동안 내가...... 우리가 엄청난 호사를 누렸던 것이구나. 이젠 비수기 아니면 익숙했던 좋은 여행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생겼구나.

그렇다면 이제까지 우리가 고수해왔던 방식이 아닌 역발상 선상에서 적어도 이번 캠핑을 새로 생각하 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다른 제목으로 SNS 검색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에 (심천 한마음 캠핑랜드)라는 장소가 눈에 확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오랜 역사도 가졌고, 시설과 한마음 캠핑랜드의 좋은점들이 이용자들의 후기로 엄청 많이 올라와 있었다. ‘어째서 그동안 내게는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하는 의문은 수많은 방문자들의 경험담으로 충분히 우려를 말끔히 쓸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 결정했어. 이번 캠핑은 무주에서의 물놀이 캠핑이다.’

주저없이 7월 첫주 주말(금요일 토요일) 캠핑 사이트 예약을 했다. 평이 좋은 소위 명당이라는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우리는 너른 공간과 병아리들이 마구 뛰어놀 수 있는 곳을 최우선 주안점으로 고른 끝에 다른 것을 다 마다하고 C1 싸이트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에도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 싶다. 물가 가까이인 B형 데크들도 마음에 들었지만, 데크 높이 턱이 있고 마구 활용할 수 있는 평지가 부족해 병아리들에겐 약간의 위험 부담이 따른다 생각해 고심 끝에 C1을 택했다.

그런데 정작 예약을 하고난 후부터 커다란 문제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사전 예약일 열흘 전부터 하루도 빼지않고 허구헌날 미친 듯이 비가 내렸던 것이다. 어제도 비, 오늘도 흐리고 비, 내일은 아침에 비 후에 맑음, 모레 글피는 종일 소나기. 다음 주도 거의 한 주 내내 소나기 예보...... 아직 장마철에 접어들지도 않았는데 기상이변에 따른 연일 비소식만.......

캠핑장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하루가 다르게 텅 비어간다. 줄줄이 예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날씨를 지켜보다가 결국 사흘 전에 캠핑장에 전화를 걸었다.

캠핑장측에서 먼저 친절하게 예약 취소 안내를 해주신다. ‘저는 지금 취소하려는게 아닙니다’라는 내 말에 전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신다.

‘가장 소중한 우리 병아리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조건 어떻게든 거기에 가야만 합니다. 이미 잔뜩 기대를 하고 있거든요. 해약이 아니라 그냥 고스란히 한 주를 미루어 주세요. 해약했다 날씨 좋아졌다고 다시 줄을 서서 예약하는 게 싫어서요. 혹여 다음 주에도 계속 비가 내리면 그때도 똑같이 한 주를 고스란히 미룰 거예요. 날씨가 맑아지는 가장 가까운 주말에 무조건 병아리들과 함께 찾아갈래요.’

나 같은 고객을 처음 대하시는가? 아무 걱정말고 하루 이틀 전에만 출발할 거라고 연락해 달라고 하신다. 무조건 최고 자리 만들어 주신다고. 무주에 말고도 함께 운영하는 다른 캠핑장이 또 있으니까 자리가 없어도 연락하면 자리 만들어 주신단다.

아!!!! 어쩌나?

다음주가 되어서도 비가 오고 또 비가 내린다.

수요일 비, 목요일 흐리고 밤에 비, 금요일 오전에 비가 내리고 오후에 흐림, 토요일 흐리고 비, 일요일 흐림........

아!!!! 이번 주는 또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결국 나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태리야. 할아버지가 금요일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에 데리러 갈게. 물놀이 캠핑 출발하는 거야.’

‘네. 좋아요. 할아버지. 세리랑 기다릴께요.’

~~~~~ 끝!~~~~~

손녀랑 할아버지 사이에 약속이 확정되었으면 이젠 하늘도 못말린다. 왜! 내가 손녀랑 한 약속은 목숨을 내걸고라도 지킬테니 말이다.

 

금요일.

새벽이 되었건만 밤새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새벽부터 야속한 시선으로 하늘만 올려다 보고 있다.

비가 오건말건 사무실 창고에서 캠핑장비를 하나하나 골라서 차에 싣는다. ‘우중 캠핑이면 어때?’ 이번엔 우비까지 챙긴다.

아침나절이 지나자 하늘 한쪽이 서서히 개기 시작한다.

태리 하교 시간에 맞추어 아들네 집으로 출발한다. 감사하게도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부부의 오랜 여행 이력에는 ‘신통방통한 날씨의 놀라운 감동’이 여러곳에 아로새겨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날씨처럼 말이다.

듣기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캠핑장으로 알고 있다. 유명세도 곡 그만큼인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캠핑장에 도착해 보니 리셉션도 잠겨있고 관리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 연락을 해보니 요란한 소음에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예약자 신원을 밝히고 시설 상황을 잘 아기에 일단 우리 사이트를 찾아가 설치를 할 터이니 그렇게 아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C1 테크를 찾아가 우리의 임시 숙소를 설치했다. 사이트에 타프도 꺼내 치고 병아리들이 누워서 쉬기 좋게 야전침대까지 꺼냈다.

싸이트 구축을 마쳤을 즈음에야 캠핑장 관리용 트럭을 끌고 사장님이 나타나셨다. 연일 계속된 비로 무주 지역이 지금 엄청난 수해를 입은 상태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는 도중에 도로가 일부 유실된 곳도 있었고 쓰러진 나무와 흙더미가 도로를 가로막은 곳도 몇 번 있었던 기억이 났다.

거기다가 정작 가장 놀란 것은........ 오늘 이 캠핑장의 예약 손님이 달랑 우리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늘 붐비고 바쁘기로 정평이난 캠핑랜드가 처음으로 예약 고객 단 한 명의 사태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물론 주말인 내일은 좀 불빌 것 같다고 한다.

캠핑랜드 자체도 지금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수해로 인한 재난상태라고 한다. 골짜기 전부거 쏟아져 내란 토사로 인해 물놀이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시설물 안전관리에도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중에서도 너른 평지 위에 데크로 만들어진 C구역 만이 그나마 안정적인 상태라고도 했다. 주말에 찾아오실 물놀이 캠핑객을 위해 우리 자리 위쪽 지역인 D 구역에 포크레인을 이용해 흘러내린 토사를 퍼내고 있기에 내일은 그곳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미 현장에 도착을 했고, 다행이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 상태라 나머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어서 가셔서 하던 작업을 계속하시라고 안심시켜 보내드렸다.

사이트 구축도 마쳤겠다, 저녁 준비와 불멍을 즐길 화로대와 장작도 준비했겠다, 오늘은 머처럼 하늘에 날려보낼 풍등까지 마련해 놓았으니..... 가볍게 과일과 주전부리를 한 후에 병아리들 손을 잡고 산책 겸 캠핑장 둘러보기에 나섰다.

또 아뿔싸!!!!

숫제 이건 좀 비패해를 입은 캠핑장이 아니라........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수해 재난구역이 아닌가?

캠핑을 즐길 분위기가 아니란 수해재난지역 복구공사에 자원봉사를 나서야 할 그런 지경이었다.

‘우리 사이트 지역만 그나마 말짱하다고 해야할까?’

 

 


웬만해선 그녀들을 막을 수 없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재난구역이면 어떤가?

물놀이장이 쓸려 내려가고 흘러들어온 토사로 골짜기가 파묻히면 또 어떠랴?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또 어떠랴?

녀석들은 녀석들만의 방식으로 이 난간을 타개하고 나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간다.

토사가 점령해버린 물놀이장을 서슴없이 걸어 들어간다. 고운 모래가 쓸려온 지역은 흡사 늪지대처럼 발목 위쪽까지 푹푹 빠지기도 한다. 처음에만 좀 망설이는듯하더니 이내 그런 살짝 무서운 스릴을 즐기는 것처럼 사방으로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일절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이 없다. 이쯤이면 난리가 나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다. 병아리들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약속하고 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다치게 만든다면 앞으로의 여행이나 캠핑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이고야!!!! 작고 어린 녀석들이야 늪에 빠진다 해도 발목보다 조금 위쪽까지겠지만, 체중이 나가는 어른들은 거의 무릎까지 푹 푹 빠지지 때문이다. 한참 병아리들 뒤를 쫓아다니던 할머니가 마침내 탈진하고 만다. 할아버지가 교대를 하고 쫓아 들어가는데 서너 걸음도 가기 전에 푹 빠져 나동그라지고 만다. 그런데 그런 씨추에이션이 마냥 재미있고 즐거운 녀석들은 거듭 거듭 빠질게 뻔한 곳으로 가보자고 조른다.

'차라리 할아버진 염전에 소금 만들러 가거나 갯벌에 꼬막 캐러 갈래.'

 

이 큰 캠핑장에 달랑 우리뿐이다. 우리 텐트가 설치된 사이트가 이 계곡에서 유일하게 손님이 머물고 있는 데크라는 이 놀라운 현실......... 헐!!!!!


캠핑장에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고요한 적막이 드리워졌다.

오리고기를 굽고, 구운 김에 간장 계란밥을 싸고, 오뎅국으로 저녁 상차림을 했다. 오로지 우리 병아리들 취향을 최우선으로 한다. 거기에 작은 손녀를 위해서 과일은 거의 종류별로 총망라했다.

혹시, 숲 모기가 덤벼들까봐 공터 저쪽으로 모기 유인 호롱불까지 환하게 밝혀두었다.

깜찍한 티케 타프는 오늘도 우리에게 아늑하고 우아한 분위기와 한껏 폼나는 만찬을 즐기기기에 딱 좋은 공간을 제공해 준다. 다행으로 할망구가 이 타프를 유독 만족해한다.

큰손녀 태라가 유독 좋아하는 불멍을 위해 원통형 화롯대에 오늘도 당연하게 장작불을 피운다. 녀석들이 마쉬멜로를 나무젓가락에 끼워 구워먹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오래 전에 사두었던 풍등(豊燈)을 꺼냈다. 녀석들과 즐기려고 예전에 구입했지만, 겨울이라 안 되고, 또 풍등을 제한하는 캠핑장들도 많이 있어서 화재예방차원에서 자제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하나를 피워 올려 하늘 끝가지 날아가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우리 병아리들이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서 오붓하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캠핑놀이를 즐겨본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불꽃을 보면서는 한없이 즐거워하면서도, 정작 풍등을 펼쳐서 불을 붙이고 내부의 공기가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면서 붙잡고 서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무서워하는 녀석들........ 하나를 날리고, 두 개를 띄우고 나니...... 슬슬 자기가 붙잡고 기다려 보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경험치가 중요한 것 아니겠니? 결국 세 개를 날리고, 더해서 네 번째 풍등까지 날리고 나서야...... 나머진 다음 여행에서.......

싸이트로 돌아와 녀석들은 테크 아래 펼쳐준 야전 침대에 누워서 과일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의 성스런 의식처럼 소맥으로 이번 캠핑을 자축하고 있는데......... 큰손녀 태리가 불쑥 다가오면서 말했다.

‘할머니. 빗방울이 떨어지는데요?’

‘그래? 아까까지 파란 하늘이 보였는데? 오늘밤엔 일기예보에도 흐리기만 한댔어.’

‘지금 또 떨어졌어요. 비가 오려나 봐요.’

‘할머니. 나도 비 맞았어요.’

작은 손녀 까지도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타프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칠흑처럼 까만 허공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찰라........ 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만 한단 말인가?

딱 2분!!!!!.......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딱 3분쯤이라고 할까?

느닷없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아니, 그냥 쏟아져 내렸다는 표현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산악지역 화재 진압에 출동한 헬기에서 내리 쏟아 붓는 물 폭탄이 바로 우리 텐트 위에서 직빵으로 터졌다고 해야만 어느 정도 비슷한 설명이 될 것이다. 달리 어떻게 설명 할 방법이 없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물난리로는 내가 태어난 이후로 처음 겪어보는 최고의 물 폭탄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 피하고 치우고 할 짬이 전혀 없었다.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짧은 순간에 이미 물 폭탄의 잔해가 전신은 물론 우리 싸이트와 캠핑장을 휩쓸고 있었다. 물에 퐁당 빠졌다가 나온 그 이상의 놀랍고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엄청나게 세찬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의자와 음료수병과 야전침대가 들썩거리다가 나뒹굴기 시작했다.

한 순간......... ‘아참, 우리 병아리들!!!!!’

허겁지겁 병아리들을 텐트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할머니는 급한 대로 타프 안에서 나뒹구는 살림살이를 단도리하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앞뒤로 활짝 열어놓은 텐트의 출입문을 닫는 것이 최급선무인데...... 이게 벌써 비에 흠뻑 젖고 서두르려니 더 꼬이기만 한다.

불과 1~2분이 걸렸을 뿐 일터인데...... 바람에 버티려고 느슨한 끈은 좀 더 당기고 팩을 좀 더 깊게 박기까지 불과 2~3분이 걸렸을 뿐인데.......출입문을 열었던 텐트의 앞쪽과 뒤쪽이 벌써 물난리를 만난 모내기 논처럼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방수가 기가 막히게 되는 품질 우수한 텐트였지만, 대신 안쪽에 쏟아진 물 역시 기가 막힌 방수능력으로 그야말로 물구덩이가 되어버렸다. 텐트와 바닥 일체형이 가지는 최고 난감한 상황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되었다.

오 마이 갓......... 어쩌자고 이런 청천벽력이 우리에게....... 아니, 우리는 괜찮지만 우리 어린 병아리들에게........ ‘여보슈. 지극히 높은 곳에 앉아계신 양반. 정말 이럴 거유? 우린 괜찮지만 병아리들은 안 된다고 그렇게 누누이 말씀 드렸건만..... 넘 하시네.’

그제야 갑자기 물난리가 벌어진 텐트 안으로 등 떠밀어 들여보낸 우리 병아리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혹시 겁에 질려 떨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와 궁금함이 떠올라 다가가 슬며시 텐트 쟈크를 올리고 찔끔 들여다보는데.........

바로 코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비 맞지 말고 얼른 들어오세요.’

우리 큰손녀 태리였다. 동생을 마른 구석에 세워두고 수건 서너 개를 가지고 텐트 출입문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물기를 훔쳐서 고사리 손으로 틈새 밖으로 짜내고 있었다. 아홉 살 어린 소녀가 이 난리 통에 스스로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밖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며 할머니 할아버지의 걱정까지 하면서 말이다.

‘우리 태리가 어느새 다 컸구나. 그리고 장녀가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이미 물 폭탄에 흠뻑 젖었으니까 녀석이 지금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은 다행히 눈치 채지 못하겠지?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은 이후로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이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순간적으로 이렇게 놀랍도록 큰 감동을 먹은 적은 아마도 기억에 없다. 이 녀석이 태어나는 순간 하늘에다가 대고 ‘조상님들. 이제 저를 이 세상에 보내신 책임을 완수 했습니다’라고 속으로 맘껏 외쳤던 이유를 절실하게 다시 느꼈다고나 할까?

아주 오랫동안 (짱구 아빠)로 멋지고 행복한 시간을 헤쳐 나왔는데......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나는 (태리 할아버지)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마지막 이름이다.

‘아들. 이제 너는 뒤로 밀렸다. 그 순간의 태리 표정과 눈망울을 난 죽어서도 결코 잊지 못할 거야.'

항.상.보.고.싶.은.윤.태.리.할.아.버.지.가.많.이.사.랑.해.요.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음에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병아리들이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꿈나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대충 수습과 정리를 마쳤다고는 하나, 텐트의 양쪽 출입구 쪽의 러그는 물론 일부 담요까지 이미 흠뻑 젖어있는 상황이었다. 대충 마른 쪽으로 살림을 모아 쌓아놓고 다른 마른 공간에서 불편하나마 오늘밤은 쪽잠을 자야하게 생겼다. 축축함과 습기 때문에 혹시라도 추울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텐트 밖은 여전히 폭우가 내리 퍼붓고 요란한 천둥소리와 벼락이 번뜩이고 있는데도 우리 병아리들이 오래지않아 포근한 모습으로 꿈나라로 향해주었던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밤을 거의 하얗게 지새우다시피 했다.

내 옆에..... 내 품에 안겨 잠든 우리 소중한 병아리들을 보살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문이 가진 소중한 보물이자 희망이자 꿈이자 우리의 전부인 녀석들이 아닌가.

새벽에 비가 그쳤다. 그리고 얼마 더 지나지 않아 마침내 날이 밝았다.

텐트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본다.

쏟아진 폭우와 거센 광풍으로 할퀴고 간 상처는 사방에 그득하지만...... 다행스럽게 우리 사이트 살림살이에는 별반 더 이상 피해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보면 볼수록 현재 우리가 가장 아끼며 사용하고 있는 브라이튼 12.3 텐트의 빼어난 우수성이 여실히 증명되었다고나 할까. 탁월한 선택이었다. 외부와 차단력이 뛰어나고,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다. 실내 공간이 넓고 외부 디자인도 흔치않을 만큼 멋진 녀석이다. 가성비를 포함해 요목조목 따져보아도....... 이만한 텐트가 없다!!! 거기다가 보유하고 있는 서너 개의 타프를 재치고 하나만 계속 사용하게 만들고 있는 티케 타프가 참 대견해 보인다. 예쁜 디자인과 구성에다가 칼라에다가 다용도로 쓸 수 있는 티케를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세리할머니가 참 예뻐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어디를 여행하던지 티케 타프만은 일단 가장먼저 챙겨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해하고 있다. 단점으로 여겨졌던, 너무 하늘하늘 흔들려서 세찬 바람에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그 약해보임을 유연성으로 극복해 내는 녀석이어서 참으로 놀랬다.

데크 위에 올려 진 우리 싸이트는 출입문 관리에 실패해 빗물이 안으로 스며든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고 여전히 꿋꿋했다. 브라이튼 12.3 텐트의 진가는 겨울 캠핑에서 더욱 돋보일 것이다. 헌데..... 티케 타프는 겨울 캠핑 시즌에는 긴 동면에 들어야 할 것만 같다.

앞으로 어떤 상황. 어떤 계절. 어떤 장소로 캠핑을 갈지라도...... 지금 우리가 가진 장비 정도면 어떤 걱정도 없을 것 같다. ‘이젠 제발 그만 사 들여’하는 마눌님 경고성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부족함은 극복하면 되지만...... 과하거나 넘치면 즉각 세리할망구의 징벌이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오려면 혼자나 다니셔!’라고 말이다.

슬그머니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산책을 나선다. 캠핑장 주변을 둘러보고..... ‘어디 제대로 물놀이를 할 만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한 번 찾아보려 나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뜩이나 여러 날 계속해서 쏟아진 폭우로 골자기 전체가 수해 긴급재난지역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지난밤에 쏟아진 폭우로 대충이나마 수습하려던 상태 위에 도 한 번 수마가 덮친 형국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를 빼곤 모든 예약객들이 해약을 한 상태였으며, 그나마 주말을 맞이해 오늘부터 재개장하듯이 일부 예약이 접수되었다고 했는데...... 사방에 부러진 나뭇가지며, 토사 가득한 붉은 계곡물이 쏟아져 내리고...... 어제 상류에 일부 물놀이장을 급하게 수습하려고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파냈는데...... 아뿔싸. 밤새 쏟아진 폭우로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새벽부터 서둘러 인부들과 트럭으로 계곡 위쪽을 향해 가시던 사장님이 큰 한숨과 함께 ‘우리들의 밤새 안부’를 물어오신다. 아무래도 오늘 당장 물놀이장 수습 재개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금 캠핑장은 ‘수해 재난구역’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데크는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노지 캠핑이라면 지면을 다듬어야 하는 것은 필수고 혹시나 또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한다면 침수가 아니라 떠내려가는 것을 우선 걱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려다 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지난밤의 몹쓸 기상이변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여름이 본색을 되찾았나 보다.

사방 곳곳을 돌아보고 텐트로 돌아오니 큰 손녀가 밖에 나와 있다. 작은 손녀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모닝커피를 마시다보니 작은 손녀도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맑은 하늘과 얼굴을 드러낸 햇살이 반가운지 다시 꺼내놓은 조립식 침대 위에서 재롱을 부리며 논다.

그런 아침을 보내다 보니 캠핑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주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이거나, 캠핑이 아니라 노부모님들을 모시고 당일치기 계곡 방문을 하려는 가족나들이객들이다. 군데군데 아이 동반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사이트를 구축한다. 가족 나들이객들은 부모님으로 보이는 어른들을 중심으로 서너 가족쯤 자녀들이 여러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몰려들었다. 방갈로나 정자를 빌어서 고기를 굽거나 요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다 저녁 무렵이면 일제히 빠져나가는 나들이 가족들로 보인다. 이곳 캠핑장에는 유독 그런 행락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건너편 글램핑장에도 가족여행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한낮이 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물놀이라는 것이 이미 어제 우리 손녀들이 토사에 파묻힌 물놀이장에서 갯벌 체험처럼 빠지면서 놀았던 그런 놀이가 전부였고, 어른들은 식상하고 불편하고, 아이들은 재미가 없어보인다. 왜냐면 밤새 내린 폭우로 토사가 더 늘었고, 밤새 다져진 이유로 늪지처럼 빠지는 구역이 줄어들었고, 흐르는 물도 아침 내내 계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계곡의 급류는 급격하게 늘어나지만, 곧 급격하게 줄어 졸졸 흐르기가 일쑤다. 결론은 이제 더 이상 물놀이가 재미없거나 물놀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 물놀이 불가의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들이 죄다 구명조끼에 튜브로 하나씩 들고 멀리서 찾아왔음에도 말이다. 우리 병아리들도 어제 정도의 기대를 가지고 이미 물놀이장을 다녀왔지만 재미없어 실망한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할아버지. 물놀이장이 망가져 버렸어요.’

‘우리 태리. 물놀이가 많이 하고 싶구나? 간식 먹고 좀 쉬었다가 할아버지가 멋진 물놀이장 만들어줄게.’

‘정말요? 할아버지, 우리 정말로 물놀이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태리 세리가 원하면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할아버지랑 함께 신나게 물놀이 하는 거야. 알았지?’

‘네. 그랬으면 참 좋겠어요.’

세리 할머니는 뒤에서 안절부절 이다.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런 약속을 해?’하는 표정이다.

But........ 걱정일랑 붙들어 매셔. 내가 누구? 태리 할아버지야. 태리 할아버지는 손녀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내는 사람...... 그게 바로 나야!

내가 새벽부터 왜 사방 쏘다녔게?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야. 나만 믿어!!!

물놀이 채비를 갖춘 후에 보부도 당당하게 사이트를 출발한다.

물놀이에 실망한 아이가 있는 가족들의 텐트 사이를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 본래의 물놀이장을 지나며 보니 맨 모래밭에서 물놀이 복장에 완전 무장을 하고 튜브까지 가진 채로 흘러내린 토사 밭에서 흙장난을 하는 꼬맹이들이 보인다. 멀쑥하게 옆에서 지켜만 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린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보부도 당당하게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 아래로 보를 설치해 막아놓은 수문을 통해서는 비록 탁해 보이지만 수량이 풍부하게 계속 작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이 캠핑장에서 가장 유명한 B2 B3 사이트 앞 도랑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평소 막아놓은 보에서 급류가 흘러내리다보니 물살이 세고, 바위고랑이 깊게 패어있고,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그냥 발만 담그고 물멍을 때리거나 인증 샷 찍기에 좋은 장소로 알려져 왔다. 싸이트 사이의 좁은 계단을 통해 우리 병아리들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니..... 이만저만 걱정이 가득한 할머니 표정이 아니다. 눈빛으로 ‘위험해’‘미쳤니’‘하지 마’하는 경고 메시지가 계속 날라 온다. ‘기다려 봐’ ‘내가 다 이미 파악해 봤어’ ‘걱정하지 마’ 하면서 할아버지가 먼저 물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흙탕물 때문에 계곡의 속사정을 알 수 없었을 뿐이지, 수일동안 흘러내린 토사가 이곳의 바위고랑까지 누적되어 충분히 덮고 있었다. 깊이도 어른의 허벅지 정도였고, 가장 깊은 곳이 배꼽 정도가 된다. 다행스럽게 물살도 그리 거센 편이 아니다. 배꼽 깊이의 물살이 센 부분만 아니라면 충분한 어린이들의 물놀이 장으로 손색이 없다. 골자기 위쪽에서 조금 아래 철 난간 다리까지 사이라면 어떤 위험도 없어 보인다. 주변과 바닥 상황 조사까지 다 마친 후에야...... 우리 병아리들을 불러들였다.

‘그래. 이게 물놀이지. 이 정도는 되어줘야 제대로된 물놀이 캠핑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우리 개구쟁이들이 어찌나 신나게 노는지..... 흐흐흐 크크크크. 그제서야 안심을 한 할머니까지 물놀이에 가세해서 신나게 놀아주는데....... 이 계곡이 온통 우리 것이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족나들이 객들이 모두 우리만 쳐다보고 사진들을 찍어댄다.

내가 누구??? 흐흐흐흐 ‘태리 할아버지’바로 이런 사람이야!!!!

시간이 좀 지나자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 둘....... 우리 수영장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점심때가 되어서는 그만..... 동네 물놀이장으로 변해 버렸다.

오랜 장마 아닌 수해가 지나가고 모처럼 화창하고 무덥던 날에 우린....... 온종일 그곳에서 실컷 물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태리가 물속에서 씨름으로 할머니를 이겨보겠다고 덤비는 통에...... 할머니 몸살이 나고 말았다.

 

 

 

 

 

태리가 좋아하는 모닥불 피워서 불멍 때리고, 세리가 열광하는 풍등 날리고....... 모처럼 비바람 걱정을 하지 않았던 심천 한마음 캠핑 랜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평온함과 감사함 속에서 보낸다.

다음날 아침에 할아버지는 사이트 철거를 시작하고, 할머니는 병아리들과 실내 놀이방으로 향했는데...... 한참 지나 느닷없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코끼리 열차가 씽하고 지나가는데 ‘할아버지’하는 외침 소리가 들린다. 우리 병아리들이 즐거워하면서 할아버지를 연실 불러대니 알지 못할 어떤 뿌듯함이 마구마구 솟아난다. 잠시 지나 다시 씽 지나 내려갈 때 쫓아가 끝까지 지켜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그런데 한 참 지나더니..... 또 코끼리 열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역시나 ‘할아버지’하는 외침 소리가 또 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도 재미있고 신이 나서 한 번 더 태워달라고 부탁드렸단다. 첫날 달랑 혼자 캠핑한 꼬마들이었기에 사장님도 익히 기억하고 있으셨던 터라 흔쾌히 한 바퀴 더 태워주셨단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의 이번 물놀이 캠핑도 무사히 끝이 났다.

그나저나....... 다음 캠핑은 어제 어디로 갈까?

벌써부터 나는...... 할아버지는 그것이 걱정이고,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무래도 무척 힘이 들것만 같다.

우리 병아리들.......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병아리들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게 전부랍니다. 또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심천 한마음 캠핑 랜드>

대단히 크고 넓고 다양한 시설을 갖춘 훌륭한 캠핑장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관점에서 나름 소신껏 소감을 피력해 본다면....... 호되게 당한 느낌이다. 수해재난지역에 복구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찾아갔으니 말이다. 내 소견대로라면....나름 아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캠핑장이었다고 이야기 하겠다. 어쩌다 이렇게 다양한 시설과 장점을 많이 가진 캠핑장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찾아가게 되었을까 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볼 정도였다. 쾌나 오랜 세월동안 명성이 자자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충분히 들 만 했다.

적어도...... 노지 캠핑이나 비박 캠핑을 거절하지 않는 캠퍼들이라면 이곳이 하나의 성지쯤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가항목을 몇 개를 두느냐에 상관없이 전 부문에서 충분히 상위 점수를 받을 것이라 예견된다.

다만, 현대적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글램핑처럼 폼나고 멋지고 깔끔하고 마냥 편리한 캠핑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 같다. 왜냐면 전체적으로 대부분의 시설이 많이 낡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워낙 넓고 다양한 시설이 산재해 있어서 이들 모두를 보수를 넘어 개량하거나 새롭게 꾸미기에는......... 차라리 처음 건설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투자가 많이 필요한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량과 개설과 꾸준한 보수는 모든 곳에 필요해 보이고 절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업종에 직업을 둔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실로 버겁고 힘든 일이다. 그러자면 적당한 선에 서 타협이 필요한데......... 그런 다소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감수하면서 찾아 갈 수 있는 캠퍼들이 늘어나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찾아주는 캠퍼들을 위해서 경영자는 보다 더 꾸준히 개설 보수에 노력해야하며, 어느 정도의 보상차원에서라도 이용요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양보도 필요해 보인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에 입각한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일 뿐이다.

깔끔 떨고 폼나는 캠퍼에게 심천 한마음 캠핑 랜드는 그저 그런 장소쯤 되겠다.

노지 캠핑을 즐길 줄 아는 캠퍼라면 심천 한마음 캠핑 랜드는 충분히 성지가 될 수 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아이들이나 가족들과 동행하는 문제를 더해본다면...... 그 해답 또한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고 시간이 좀 지나서....... 이번 수해의 기억이 모두 사그라지고 난 후에...... 나는 우리 병아리들과 함께 다시 한 번은 꼭 심천 한마음 캠핑 랜드에 다시 가보고 싶다. 혹여, 다른 계절이라도 말이다. 가을과 겨울의 딱 중간쯤에 가볼까????

--- 찾아주시고 읽어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