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자 하는 산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리고 그 산에는 이미 중요 등산로로 세 개의 코스가 있다고 치자.
A코스 : 거리 3.1km. 소요시간 1시간 40분.
B코스 : 거리 4.8km. 소요시간 3시간 20분.
C코스 : 거리 5.4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자. 당신이라면 어느 코스를 택하겠는가? 등산로에 대한 선지식이나 주변 볼거리에 대한 아무런 기준이나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위의 조건 중 어느 코스를 택하겠는가? 여기의 이 거리와 시간은 왕복이 아닌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과 거리만을 가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름의 그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그날은 한국축구가 나와 많은 축구팬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안겨준 날이었다.
이제 월드컵 조별 리그 결과가 모두 결정되었고,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16강이 치러질 것이다. 사이사이 며칠씩 휴식시간이 주어지고 8강 4강 결승에 가까워질수록 드문드문 경기가 있을 것이니 다시 정신적 신체적 싸이클을 본래의 일상으로 되돌리기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당장 내일만 해도 중요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흔한 말로 식전댓바람부터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경기 전까지는‘질 때 지더라도 끝날 때 끝나더라도 시원하게 한 번 붙어보기나 하자’였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처음부터 그렇게 적극적이었으면 어떤 결과에든 억울하지는 않잖아. 뭐야 막판에’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내 주위에선 작금의 이 시간에 내가 어떤 상태일거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안다. 아무래도 어떤 썸씽이 생겨도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아스라하게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른다.(사실 오전 내내 술약속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내일도 땀 좀 제대로 흘려야 하는 중요한 스케줄이 이미 잡혀있고, 7월에는 한 이십 일간 정말로 엄청난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 약속이 잡혀져있다.
어쩐다?
이 기분, 이 어정쩡한 상황, 야리꾸리한 기분, 껄쩍지분한 분위기를 과감히 탈피해 보자.
‘그래. 흐트러진 심신도 추스르고 한 여름의 무더위를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 체력이나 테스트 해보자’ 하는 과감성으로 작은 빈 배낭 하나만을 들고 잽싸게 집을 나선다.
어디로?
잠시 속세를 떠나보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 개의 등산코스를 살펴보자.
나의 경우, 특별한 근거나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주어진 세 개의 코스라면 거의 대부분, 7할 정도는 B코스를 택한다. 그리고 어디서 흘러가는 소리라도 주워들었거나 막연한 어떤 기대감이라도 생기면 나머지 3할 정도로 C코스를 택한다. A코스를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과감하게 뻔히 알면서 A코스를 택했다.
그런데..........
그런데..........
A코스를 보자. 거리도 짧은데 시간도 짧다. 그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시작서부터 죽어라 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정상까지 직빵으로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깔딱 고개로 시작해서 숨이 가슴팍까지 턱턱 차오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상황으로 가파른 돌계단이 지긋지긋하다 싶으면, 어느새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으로 풍경이 바뀌어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설마 이렇게까지 했으니 곧 정상이겠지’ 하면 바로 눈앞 까마득한 바위벼랑에 길게 내려진 로프가 실실 웃으며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로프 4남매 중 첫째입니다. 그래도 제가 가장 수월한 정도일 거예요. 제 동생들은 심뽀가 좀 고약하답니다.........’ 며 다음 상황을 너무도 친절하게 예고해주는 쎈쓰까지........ 이게 바로 A코스다.
B코스는 C코스에 비해 거리는 거의 갈 때까지 다 가는 것 같은데 시간이 팍 줄었다고 봐야겠다. 그렇게 보자면 지극히 보편타당성으로........... 시작에서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서 소도 있고 담도 있고, 더 가다보면 시원한 폭포도 있고 대체적으로 주변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코스가 나있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보면 갑자기 앞에 까마득한 돌계단이 등장하고, 죽어라 올라가도 파란 하늘은 이따금씩 찔끔 모습을 내보일 뿐 도무지 정상이 어디쯤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가파른 숲속 길을 하염없이 올라간다. 가슴이 터질듯 한 상황에서 환해진 풍광을 보며 여기가 정상인가 하면..........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 하면서 갑자기 내리막길로 지친 발걸음을 마구 잡아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내려 마침내 내려섰다 싶으면 다시 위로 잡아끌고, 다 올랐다 싶으면 다시 아래로 떠밀고.......... 죽기 직전쯤에야 마침내 정상이 삐쭉 모습을 드러내는 코스가 B코스이다.
C코스는 윷놀이 판의 도 아니면 모다.
산비탈에 난 남의 밭둑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휘돌다 보면 어느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올라있고, 산책길처럼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정도 경사가 있는 언덕이 나타나고, 땀이 흐를만하게 걸어 오르다 보면 또 어느 산등성이에 올라있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고만고만한 숲속 길로 산자락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어떤 능선 길은 한참을 길게 늘어선 포장도로 같은 기분도 들고, 산등성이마다 맛과 향이 다른 산들바람이 자주 불어온다. 다만 가도 가도 고만고만한 산등성이가 이어져 해떨어지기 전엔 정상에 오를 수 있으려나 하는 코스다. 이런 코스에서 모를 만나면 그야말로 천상의 정원인 야생화 천국이 등장을 한다. 반대로 도를 만나면, 어느 산자락에 벌목을 하느라 임시로 내 놓은 임도만 죽어라 따라다니다 내려온 꼴이 된다.
속리산에는 여러 개의 등산로가 있지만 위의 예처럼 대략 세 개의 코스로 요약해 보자면........ 우선 법주사를 지나 세심정에서 오로지 문장대를 목표로 줄기차게 오르는 길을 B코스로 칠 수 있겠다. 또한 내가 지난날 올랐던 코스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C코스라 한다면, 법주사를 지나 세심정의 삼거리에서 천황봉으로 목표를 잡고 올라가 다시 능선을 타고 비로봉 신선대를 지나 문장대로 가는 코스라 하겠다.
하여 남은 하나 A코스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화북오봉탐방지원쎈터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A코스라 하겠다. 바로 내가 오늘 택한 등산로이다.
속리산 국립공원 화북 관리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방금 전 슈퍼에서 사온 생수 한 통과 캔맥주 하나랑 영양갱 하나를 작은 배낭에 넣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집에서 급하게 떠나올 때 생소한 여기코스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니 거리도 시간도 짧다. 허니 대충 어떤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감은 전해 오는데, 그래도 혹시나..........
‘와. 그런 통설이나 속설, 또는 어림잡은 추측들이 아주 간혹은 틀리는 경우도 있나보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 아닐까’ 하는 어떤 섣부른 설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를 출발하자마자 단박 눈앞에 시원한 폭포가 나타난 것이다. 위 사진의 오송폭포다. 아직 등허리에 땀방울이 맺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더니 이내 성불사라는 사찰이 나온다. 유래가 깊은 사찰이라기보다는 근자에 거나하게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그런 조금은 낯선 그런 느낌이었다. 이처럼 폭포랑 사찰이 출발지인 관리사무소에서 대략 300M 안쪽에서 벌어졌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떤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나 보다’라는 기대감 반 설렘 반으로 그렇게 문장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하늘은 제법 흐려있고 언제라도 한 두 줄기 소낙비쯤은 미리 각오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경관을 둘러보아도 희뿌연 운무가 안개처럼 깔려있어 맘에 드는 사진을 기대하기도 어렵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은 내 체력테스트를 겸사겸사한 등산이라고 애초부터 작정하지 않았던가.
하여 계곡 속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며 숲속 길로 들어섰다.
흐르는 물소리랑 청아하게 울리는 새소리가 가득하다.
처음엔 그랬다.
산길이란 커다란 바위도 돌아나가고 잔돌들이 발부리에 차이기도 하고 잡목들도 우거진 오솔길이어야 제대로 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늑하게 숲길을 걸어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잡목이나 조릿대가 우거진 꾸불꾸불한 숲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도 산행하는 맛이라 여겼다. 그러다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한쪽으로 비켜서서 양보하는 더불어 사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내 앞으로 하산해 내려오는 몇 무리의 팀들이 다들 저마다 배낭에다 허리춤에다 손바닥만 한 라디오처럼 생긴 것을 죄 다 매달고 다니는데 거기서 나오는 소음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선거철에 가두 방송하는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거기다 천편일률적으로 뽕짝이 흘러나온다.
가관이다 못해 천하의 꼴불견이다.
차라리 동네 하천변을 따라 이어폰을 끼고 조깅이라도 하실 것이지............ 한 순간에 숲속이 캬바레로 전락해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연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두고 와야 할 것이 담배와 라이터만은 아닙니다. 뽕짝 박스도 꼭 두고 오십시오. 물소리와 새소리가 질식하고 있습니다.’ 라는 광고라도 내야겠다. 아주 혹간, 요한 슈트라우스나 슈베르트라면 또 모를까.......
산길은 조용하게 다녀야 제 맛이 아니겠는가.
속세에서 잠시 비켜나 보자 하여 여기를 찾았더니 오호라 꾸정물 속이로구나.
산세는 점 점 험악해져 가는데 ‘혹시나’는 역시 기우였다.
시도 때도 없이 앞을 막아서는 집채보다 더 큰 바위들을 돌아 나가야만 한다.
속리산은 화강암과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서, 변성퇴적암 부분은 물러서 깊게 패여 골을 만들고, 단단한 화강암 부분은 남아서 날카로운 봉우리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길가로 조릿대 빼곡한 숲길을 걷노라면 숲에 바위가 사는 것인지 바위 사이로 숲이 둥지를 튼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화북오봉탐방지원쎈타에서 시작하는 속리산 문장대 오르는 길은 타인에게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다. 바로 A코스의 전형적인 진면목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오르고 또 올라도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진 바위벼랑길 뿐이다.
여기 이곳의 등산로는 9할이 하늘에 맞닿은 끝없는 바위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길이다. 나머지 1할 정도가 이따금 도랑을 건너는 철 계단과 정상에 거의 다다라서 나타나는 잡목 숲 속으로 난 정돈된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길이다.
그 외엔 없다.
1할의 데크 길이 끝나나 싶으면 눈앞에 곧바로 문장대가 어느새 다가와 저절로 놓여지게 되어있다.
중간 중간에 빼끔 하늘이 올려다 보이면 주위의 바위를 찾아 올라가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기도 한다.
어찌어찌하여 가까스로 문장대에 올랐다.
거기에 체력테스트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스피드야 나름 조절을 했지만 이 하늘만 올려다보며 죽자 사자 올라오는 이 코스를 무난히 논스톱으로 주파를 하였기에........ 내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지는 이 기분...........
암튼 일단 문장대까지 오르고 나니 저절로 입이 떡 벌어진다.
여기가 바로 속리산이 아닌가!
신라 혜공왕 때 소달구지를 타고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고승이신 진표율사를 만나게 되어 커다란 감화를 받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세속을 모두 버리고 이 산으로 들어와 살았다 한다. 하여 그 때부터 구봉산이던 이 산을 속리산(俗離山)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하여 진다.
간밤에 부던 바람에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 다 핀 꽃이야 닐러무엇하리오
어린 단종의 죽음을 애달파 하며 사육신인 유응부가 여기 속리산을 찾아 읊었다는 시조이다. 이 산에 들면 속세의 번뇌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였거늘, 유응부의 가슴에 맺힌 한은 속리(俗離)에 들어서도 차마 잊혀 지지가 않았나보다.
그런가 하면 바로 이 자리(문장대)는 항상 구름이 걸려있어서 운장대 라고 불리어 왔는데, 세조가 이 바위에 올라 서책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 해서 문장대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유응부의 가슴에 한을 심어준 사람이 바로 세조였거늘, 세조가 다녀간 후로 이렇게 그럴싸한 이름까지 이곳에 얹혀 졌다니 말이다. 유응부의 마음대로 라면 탄식대 라고 이름 짓던가 망연대 라고 했을 것 같다.
문장대(1.054M)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사방으로 어디를 둘러보아도 가히 절경이로다. 선경이 따로 없도다.
비록 세속을 등지고 살 수 없는 슬픈 인생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 순간만은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속세를 떠나 대자연의 위대한 품속에서 마음껏 노닐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잠시 지나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겠으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조물주의 위대한 축복인가.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함이요, 내 두 발로 스스로 걸어 올랐음에 또 감사함이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저만치 산자락 아래로 내려보니......... 그곳에 내가 돌아가야 할 속세가 바로 거기에 있다.
힘내자.
산의 정상부분 바로 아래 나무데크길 주위로 빼곡하니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다.
철이 지났음인지 누렇게 색이 바래 꽃봉오리 모양도 찌그러져있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측은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 그러다 한참 만에 철이 좀 지날 쯤에 늦게 피어난 예쁜 꽃봉오리 하나를 찾아냈다. 여러 번 셔터를 눌러댔지만 제대로 나온 것이 이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는 이런 것도 간접광고라 해야 하나?
스폰도 없고 받은 것 하나 없이 내 돈 내고 산 것이니까 문제될 것이 없지 않겠는가?
내 여행이나 등산의 필수품. 생수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정상에서 한 모금이 특효약인 캔맥주. 아주 오래전 ‘지하 *** m에서 뽑은 암반수로 빗은 맥주’라 했던 광고가 아직도 강렬하게 내 뇌리에 남아있어서 늘 이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순간 활력촉진제 영양갱이다. 오이나 과일에 배해 수분흡수는 없겠으나 휴대 간편함. 맛이 기막힘으로 애용한다. 여기에 더 한다면 가나 쵸컬릿이 있는데, 이 쵸컬릿이라는게 일단 녹았다 먹으면 그 맛이 영 아니다. 하여 여름계절은 피하고 가을 겨울엔 필수품목이 된다. 여기에 핸들을 잡고 오고가면서 즐겨먹는 달팽이 과자.......... 어디까지나 내 취향........
문장대에서 쉬다보니 시원한 바람결에 이젠 어느 정도 서늘함 마저 느낀다.
선계에 머물 만큼 머물렀으니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나서 사방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고 발길을 산 아래로 돌린다.
문장대에서 내려와 주차장에 닿으니 땀에 흠뻑 젖은 모습에 심히 배가 고프다.
어쩐다.
돌아가는 길에 어디 가까운 중화요리집이라도 있으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비우고 가겠으련만.
아님 괴산에 들러 올뱅이 해장국이라도.......
아니다. 서둘러 가서 시원한 것 먹자.
그래서 갑자기 서둘러 바쁘게 주차장을 빠져나와 달린다.
운전이라면 한 운전하는 내가 아닌가.
2차선 시골길을 곡예하듯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달려본다.
화양동 입구의 언덕길 코너를 급하게 도는데....... 아뿔싸.
마주 올라오다 놀라며 스쳐지나가는 차량이 폴리스카(? ㅎㅎㅎㅎ)가 아닌가.
지나 놓고서도 연실 백밀러를 돌아다본다. 혹시나 차를 돌려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차를 돌렸어봤자 이미 사라지고 난 후로 만들자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골길을 달려 나간다. 괴산읍을 지나 돌아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급하게 우회전으로 쌍곡계곡을 향해 언덕길을 달려서 한참을 가다보니......... 누구든 내 뒤를 쫓아오려면 땀 꽤나 흘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 본다. 혹 내 아들이라면 쫓아올까 몰라?
쌍곡계곡을 통과하는데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평일임에도.
장연을 지나 충주에 들어오면서 유주막 초입에서 차를 세운다.
메밀막국수 먹으려고 여기까지 그렇게 달려왔으니........
본래 중앙탑(탑평리)에 있던 가계였는데 어떤 사정으로 이곳으로 옮겼다. 애초의 성황이던 상권에서 너무도 동떨어진 곳으로 와서 ‘장사가 될까’ 걱정했는데......... 무지무지하게 잘된다.
막국수를 너무 너무 좋아하는 왕짜증여사께서 충주에서 가장 맛있는 막국수 집으로 공인 인증을 해준 집이다.
내 느낌으로는 중앙탑에서 할 때 하고는 무엇인가가 아주 조금은 맛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드는데 딱 꼬집어서 어떻다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그리고 오늘도 맛있다.
왕짜증 여사는 항상 비빔막국수 보통.
나는 항상 물막국수 곱빼기.
그리고 가끔씩 메밀왕만두 추가............
오메. 이 막국수 한 그릇 먹으려고 한 시간 가까이 그 난리를 부리면서 달려왔음 이련가.
‘옴메. 음청나게 마시써 부려.’
‘누가 나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그래. 웃으며 살자.
------------- 몹시 무더운 여름의 초입에서.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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