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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장 프랑소아 모리스(Jean Francois Maurice)'를 기억 하시나요?

by 피안재 2023. 9. 20.

 

 

 

 

  장 프랑소아 모리스(Jean Francoi Mourice)를 기억 하시나요?

  알듯말듯 하시다고요?

  그럼 7080 세대가 아니신가 보군요? 8090 세대나 그보다 더 젊어도 아시는 분들이 더러 있으시거든요?

  그렇다면 혹시 < 28℃ 그늘 아래서> 라는 연주곡을 기억하시나요?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라고요?

  그렇다면 혹시 음악다방 이라는 장소는 아시나요?

  한 시절을 아예 그곳에서 보내셨다고요? 그렇다면 참 이상하지 않나요? 어떻게 < 28℃ 그늘 아래서>를 모르실 수가 있지요?

  그렇다면 음악다방에서 주로 어떤 음악을 신청해 들으셨나요?

  바카라나 핑크 레이디 라고요? 아하! 아저씨는 주로 그렇고 그런쪽이셨군요? 블론디나 도나 섬머는 안좋아하셨어요?

  노고지리의 <찻잔>과 백영규의<슬픈 계절에 만나요>를 주로 신청하셨다고요? 그래요. 죽어도 국내음악만 고수하는 분들이 꽤 계셨지요. 암요.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을 주로 들으셨다고요? 아픈 사랑에 깊은 좌절을 겪으셨나보군요. 그 당시에.

뭐요? 죠이의 <Touch By Touch>, J 가일스 밴드의 , 아하의 , 빌리지 피플이나 칭기스칸의 음악을 주로 들으신 멋쟁이 아줌마는 낮에는 음악다방에서 마냥 죽치시다가(?) 해가지면 나이트 크럽으로 출근을 하는 댄스 머신이셨구요? 요쪽 분야는 우리 친구 장주영이가 꽉 잡고 있는 분야라서 혹시 기회가 되면 나중에 소개해 줄께요.

  블랙 사바스의 <she's gone="">이나 레인보우의 (</she's>Catch the Rainbow)나 스카이 락의 (Wild Flower)를 좋아하셨어요? 한 눈에 딱 보아도 아저씨 음악 수준이 드러나시네..... 나중엔 메탈리카까지 쭉 가셨지요? 보아하니 나하고 같은 꽈(?)시네. 디오의 몽환적 보컬과 리치의 현란한 기타 애드립을 보고 어떻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살펴보자면 틀림없이 음악다방 꽤나 드나드셨던 세대들이심이 분명한데....... <섭씨 28도 그늘 아래서>를 모르신다는게 이상하네요?

  글쎄, 그 장 프랑소아 모리스 라는 사람이 기억이 날듯말듯.......... 아하! 이젠 숫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시는 군요.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보기로 하지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이 음악을 말로써 설명을 드려볼께요. 그럼 아마도...... 금방 알아내실 수 있을거에요.

 

  아마도 아주 먼...... 먼 남쪽 바닷가 해변에 아주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요.

  하얀 모래 백사장이 아니라 몽돌이 깔려있는 바닷가 바위벼랑 사이로 파도가 몰려와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이어서 아주 맑고 깨끗한 음색을 가진 고음의 기타 선율이 아름답게 울려퍼지기 시작하고.......... 짙은 호소력을 가진 낮은 바리톤 음성의 남자가 마치 시를 낭송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지요. 한 소절 숨고르기를 할 참이면 이내........

  에이!!!! 그걸 우리 세대라면 누가 모르겠어요? 이어서 여성 코러스와 함께 예쁜 목소리의 노래가 울려나오는 거잖아요. 다시 남자가 한 소절을 읖조리고 다시 여자가 노래하고.......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처음부터 <모나코>라고 했으면 담박에 알았지요. 그러니까 이제 생각이 나네. 그냥 장 프랑소와 모리스 하면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장 프랑소와 모리스의 모나코' 하면 누구나 다 기억하지요. 안 그래요?'

  원래 제목이 <섭씨 28도 그늘 아래서> 랍니다. 노래 대사에 처음 등장하는 '모나코' 나레이션이 너무나 강렬해서 아예 제목이 바뀐 경우라 해야겠지요. 그럼 다들 이 노래를 아시는 거네요?

  아무럼요. <모나코>야 말로 7080세대의 BGM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모나코의

너무나도 무더운

28℃의 그늘에서

세상엔 오직 우리 둘뿐이었죠

모든 것이 푸르렀고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대는 두 눈을 지긋이 감았고

태양은 드높았지요

그대를 어루만지는

내 손은 뜨거웠지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를 안아주세요

나는 행복하답니다

사랑이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행복해요

모나코

28℃의 그늘 아래에서

그대는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나는 담배를 껐습니다

여전히 따가운 날씨였지요

그대의 입술은 야생과일처럼

향기가 가득했죠

그대의 머릿결은

황금빛 물결 같았지요

그대는 내 마음을 빼았었지요

아무런 말도 마세요

사랑이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그랬다. 당연히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엉뚱하게 속된말로 그냥 (개뿔) 이었다.

  사랑이 있어서 행복하기는 무슨..... 개뿔.

  그늘이 필요할 정도의 무더운 섭씨 28도의 날씨는 무슨 얼어죽을....... 개뿔.

  장 프랑소아 모리스인지 뭔지 시방 내 옆에 있었다면 그냥 쪼인트를 팍 까주겠는데......... BGM은 무슨 개뼉다구 같은..... 또 개뿔.

  <모나코>? 허이구...... 그냥 모나코 자체가 시방 개뿔이여. 개뿔.

  시방 섭씨 28도는 말장 도루묵이거나 사기여 사기. '28℃'가 아니라 '- 8℃'가 맞는거여. 숫자 표기가 잘못 된거여.

  모나코의 체감 날씨 온도는 지금 영하 8도가 맞는것 같애. 낭만적인 파도소리가 들리니, 뜨거운 태양이 저기 있느니....... 제발 웃기지 좀 말아줘.

  니스에서 출발해 모나코에 도착하는 112번(예전엔 602번) 시내버스가 모나코 종점에 우리를 내려주자 마자 주변 정황을 살피기도 전에 핸디폰 음악 저장고를 뒤져서 '장 프랑소아 모리스의 <모나코>'를 찾아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음악 도입부의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세찬 광풍이 어디선가 불어와 우리의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우이씨! 무슨 모나코가 이래? 이건 아니잖아? 모나코가 이러면 안되는거지?' 쌩뚱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잽싸게 음악을 꺼버렸다.

  모나코의 첫인상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모나코는 해변에서만이 아니라 온 도시 전체를 여름이면 뭇여성들이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으로 그냥 배회를 하는 그런 휴양지여야만 했다. 그런데 개뿔. 당장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끔찍한 날씨 사정은 어제 앙티브 여행을 그대로 연장선상에 올려놓은것만 같아.

  모나코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거여? 거기 지극히 높은곳에 앉아계신 양반이유? 이거 정말 너무하시는것 아니유?

  '오늘은 얼굴 나오는 사진을 사양하고 싶어. 내가 봐도 꼴이 말이 아니네?'

  니스 숙소에서 외출 준비를 하면서 챠밍여사가 꺼낸 말이다. 나나 아내나 얼굴이 퉁퉁 부었고, 쉽게 말해서 꼬라지가 영 아니었다. 그래도 이만하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여행을 시작한지 일주일을 넘긴 마당에 프랑스의 혹독한 날씨를 하루도 안빼고 고스란히 경험했던 탓이었다. 파리는 그러려니 했다. 파리의 날씨야 어느정도 이해가 되겠지만...... 니스는 이러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남프랑스 해변지방 코트다쥐르의 자랑이자 매력이 무엇인가 말이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온화한 날씨가 여행자들에게 아늑한 휴식처를 제공해 주는것이 자랑이자 특징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물론 미스트랄(계절풍)이 지랄(?)을 부릴때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미스트랄의 지랄이 이렇게 일주일 가까이 하루도 안 빼고 연달아 기승을 부린다면....... 이건 코트다쥐르가 아니지 않겠는가?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러는 것이냐고?

  어제 앙티브에서 돌아오니 아내에게 몸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도 올랐다. 스페인에서 처럼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숙소를 최대한 따뜻하게 하고 수건을 여러개 빨아 널어서 습도를 유지했다. 가지고 간 비상용 몸살약도 복용했다. 바로 숙소 1층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커다란 와인을 두 병이나 사와서는 주전자에 넣고 살짝 끓였다. 서양 사람들이 와인을 끓여서 우리나라 쌍화탕처럼 마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끓인 뜨거운 와인은 무슨 맛이지? 챠밍여사 말로는 약간 알콜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락없는 우리나라 쌍화탕 맛이랑 비슷하단다. 듣고나니 하나도 안 궁금해졌다. 대신 남은 와인을 모두 내가 홀라당 마셔 버렸다. 내게 쌩와인이 피로회복제니까 말이다. 밤이 깊어서까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잠오는 약의 도움을 받아 잠을 청했다. 덕분에 나도 늦게 잠들었는데...... 언제나 처럼 눈이 떠지는 것은 똑같이 이른 새벽이다. 이거 몇 시간을 잔거야? 겨우 새벽 4시 50분이다. 핸디폰으로 오늘의 날씨를 검색하려 쪼물락 거리다 보니 챠밍여사도 잠에서 깬다.

  '오늘 날씨 어때?'

  '어제랑 비슷한데 일단 비는 안온대. 오후엔 해가 보인다는데? 컨디션은 좀 어때? 열은 내렸나?'

  좀 더 편하게 누워 있으라 하고 언제나 처럼 혼자 새벽 산책을 나선다. 새벽산책은 여행중에만 고집하는 내 버릇이다.

  니스의 이곳저곳을 쏘다녀 본다. 낮에는 가보려 생각치도 않는곳, 아내랑 다니기에는 썩 내키지 않는 후미진 골목이나 산꼭대기 동네 등은 주로 새벽산책에서 찾아 돌아다닌다. 위험이나 두려움이라는 건 원래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지 않고 태어났던 탓에 때와 장소와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다 쫓아 다니고 남의 일에도 곧잘 참견한다. 우범 지역도 잘 가고 남들 싸움판에 끼어들어 뜯어 말리기도 하고, 해외여행 중에도 교통사고를 보면 쫓악 응급처치나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곧 잘 발견한다. 물론 챠밍여사는 그때마다 질겁을 한다. 이젠 나이 먹었으니 제발 그런 짓꺼리 좀 그만하라고 성화다.

  세상 어디를 가나 새벽에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풍경은 우선........ 도심을 깨끗이 하는 청소차와 청소부들이다. 매번 볼 때마다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감사한 생각이 교차한다. 거기에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거나 눈이 내리퍼붓는 날 그분들의 노고를 보고있노라면 그런날은 감사를 넘어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이태리 로마여행에서 시청 소속의 청소부들이 일주일 파업을 하던 때가 있었다. 온 도시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까마귀와 고양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헤집어 터트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세상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 아니었을까? 일찍 나가서 빵을 구워야만 세상사람들이 아침을 해결하는 유럽이다보니 화려한 제과점이 아니라 소규모 전문적으로 빵을 굽는 공장 사람들이 새벽 출근을 한다. 그리고 새벽 전통재래시장에서 좌판을 설치하고 야채와 과일과 싱싱한 해산물을 꺼내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새벽형 인간들이다. 길모퉁이 작고 허름한 카페는 밤을 지새고 아직까지 영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방금 문을 열었는지 벌써 일부 손님들이 몰려있다. 주황색 야광쪼끼를 입은 공사장 작업자랑 밤새 순찰을 돌았던 녹색 야광쪼끼를 입은 경찰들도 보인다. 다들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있다. 해변에 나서면 산책을 하는 노인분들과 조깅을 하는 젊은 남녀들이 많이 보인다. 바다위에 흔들리는 불빛들은 어선들이 이제 서서히 조업을 마쳐가는 중일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챠밍여사가 벌써 침구를 정리하고 바게트 빵에 버터를 발라 구워 양송이 스프와 함께 내놓는다. 그럭저럭 컨디션이 아직은 견뎌낼만 하다는 신호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얼굴 사진을 사양하겠다면서도 걸어다니다가도 '태리야' 하고 부르면 쨘 하고 돌아서면서 손을 흔들며 더없이 환하게 웃을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ㅎㅎㅎㅎ...... 우린 또 그렇게 산다.

  오늘은 니스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와 숙소가 이미 예약되어 있다.

  아쉬움이 없는 니스 여행을 위해서 우리는 오늘 모나코와 망통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에즈 여행갈 때 찾아갔던 바우반 버스터미널(Gare routière Vauban)에서 망통까지 다이렉트로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어서 일단 바우반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동중에 바람이 보통이 아니고 쌀쌀하기가 그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망통까지 갔다가 오면서 모나코를 들린다는것은, 어제 칸에 들렸다가 앙타브를 거였던 상황과 똑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힘들게 된다면..... 내일 이동에 자칫 부담을 주게 될지도 모를일이 아닌가.

  '우리 망통은 포기하자. 가까운 모나코에나 잠시 들렸다가 계속 날씨가 이러면 바로 돌아와서...... 차라리 니스 전망대나 올라가 보던가 시장주위를 둘러보면서 외식을 하던가 하고...... 일찍 쉬면서 차라리 짐을 대충이라도 싸놓은게 좋지 않을까?'

  '다 좋은데...... 적어도 프랑스에서 외식은 생각하지 말자. 외식이 아니라..... 생각만 해도 엄청 스트레스 받아. 말 안통하지, 메뉴판 제대로 볼 줄 모르지, 거기다  코스로 나온다고? 어디까지가 에피타이저인지 또 본 메뉴라 해도 무슨 음식 양이 유치원 애들 간식 크기냐고? 디저트는 뭔 가지수가 그렇게 많고? 가격이나 싸? 팁도 줘야되고........ 밥 먹는게 아니라 돈 내고 스트레스 받으러 가는것 같아. 내가 프랑스에서만은 외식하자 소리 안할텐니까...... 앞으로도....... 마트가서 왕창 사다가 숙소에서 해먹자. 그  돈이면 파티를 두 번 하고도 남을거야.'

  '비행기 타는것도 아니고...... 음식 재료 남기면 싸가지고 기차 타면 되지 뭐.'

  결국엔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다음날 양파랑 감자랑 바나나랑 남은 와인이랑 바리바리 싸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니스에서 모나코를 가는 방법은 기차도 가능하고 시내버스도 가능하다.

  일부 여행자들 블로그나 SNS를 보니 기차를 권하고 버스는 갈아타는 등 아주 불편하다고들 하든데....... 나는 차라리 버스를 추천하고 싶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이야기는 노선 이해가 좀 덜되어서 하는 말이다. 그분들은 에즈를 그냥 하나의 에즈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다. 에즈는 처음 시작이었던 해변 마을은 에즈 보르 드 메르(Eze Bord de Mer)가 먼저이고, 이 해변 마을에 해적들의 침략이 잦아지자 짐보따리를 들고 까마득한 바위벼랑 위의 에즈 빌리지(Eze Village)로 도망을 올라가 정착한 것이다. 이 두 마을을 흔히 그냥 에즈라 부른다. 절대적으로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산꼭대기 에즈 빌리지다. 에즈 빌리지에 가는 버스는 따로 있으며, 에즈 빌리지를 거쳐 더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이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니스에서 모나코를 가는 기차는 해변 마을 에즈 보르 드 메르에 정착한다. 니스에서 출발한 112번 시내버스도 이 해변마을 에즈 보르 드 메르를 거쳐 모나코까지 다이렉트로 직행한다. 해변마을에서 산꼭때기 빌리지 까지는 니체의 산책로를 따라 약 한시간 험준한 산악코스 산책을 하던가 택시를 차면 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니스에서 빌리지로 간 사람들이 그곳에서 다시 반대편 모나코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려 놓고는, 니스 모나코행 버스는 갈아타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못....... 헐 이다.

  모나코행 112번 시내버스는 버스 두 개를 기차처럼 하나로 이어 매달은 미니 전철을 닮은 초대형 버스가 운행한다. 니스 기준으로 갈 때는 무조건 오른쪽, 올때는 반대로 왼쪽 좌석을 차지해야 이동하는 내내 빼어난 코트다쥐르 해변의 풍광을 조망할 수가 있다. 이 광경은 정말로 압권이다. 감히 말하건데 적어도 나에겐........ 이탈리아 나폴리의 대표적 풍경인 아말피 해변 드라이브 코드 보다 더 환상적이었으면 환상적이었지 결코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이날........ 30대 초반쯤의 금발머리 미녀 모델 이상의 여기사가 버스를 운전했다. 007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몹시 가파른가 하면 급경사가 심해서 버스가 한 번에 코너를 돌지 못하거나, 옛날 우리나라 태백선 철도에 격자식(지그재그식)으로 경사를 헤치고 올라가는 노선이 있었는데....... 이 버스가 그런 묘기도 보여준다.

  코트다쥐르를 여행하거나 니스에 들리게 된다면......... 니스에서 모나코로 향하는 두 량짜리 시내버스의 오른쪽에 꼭 타보시라고 강추(?)해 드리고 싶다. 우리는 다시 간다해도 기어코 조금 불편해도 버스를 탈 것이다.

  어쨌거나 모나코에 오기는 왔는데....... '쟝 프랑소아 모리스의 <모나코>'는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쓸모없는 개뼉따구여!

  무지 춥고...... 추우면 무조건 배가 고프게 되어 있어. 인간이라는 종(?)이...... 태생적으로......

  모나코의 물가는 세계 최고 톱클라스에 속한다. 런던. 파리. 로마를 능가해....... 뉴욕의 타임 스퀘어나 두바이 아니면 아이슬란드 물가랑 미슷하다고 보면 된다. 국가는 바티칸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번 째로 작은 나라라는데 잘 사는 정도도 그 정도 상위에 속하는 나라다. 모나코는 세금이 100% 없는 몇 안되는 아주 특별한 국가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국가가 신혼살림 집을 무상으로 마련해 준다. 그런 국가의 수입은 거의 대부분 도박장으로 충당을 하고, 치안(경찰)과 국방(군대)는 돈을 지불하고 프랑스에 위탁한다. 벤츠나 BMW 등의 가장 최신형은 이곳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그런 고급차들 보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등등의 명차가 택시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그건 그런 사람들 이야기고......... 주택가 인근에서 다분히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로컬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 간단한 요기와 커피를 주문했다. 이거 상당히 맛있고 푸짐했다. 물론 내가 고른 음식 말이다. 챠밍여사는 일단 비주얼이 갈끔해야지 아무리 맛있는 고급 음식이라해도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쳐다도 안보는 타입이다. 난 맛있으면 전혀 개의치 않는 타입니고. 생연어가 아주 담뿍 들어간 버거라고 해야하나? 거기다가 모나코는 분명 프랑스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메리카노가 있다.

 

  따뜻한 커피와 간식으로 기운을 되찾았음인지....... 다시 길을 나서는데, 잠시 기념품 점에서 손녀들 생각을 떠올렸던 것 말고는 그야말로 무지막지 오로지 직진이다. 오늘은 무엇을 보고 싶고 어디 들리고 싶고 하는 생각들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냥 내키는 만큼만 직진으로 대충 둘러보고 언제든 되돌아 가겠다는 심산이 틀림없다.

  작고 좁은 도시(?), 아니지 그래도 엄연한 국가가 아닌가. 한 나라 전체가 온통 가파른 언덕과 계단으로 이우러져 있다고 해도 될 성싶은 모나코의 구석구석을 내친 걸음으로 마냥 내달린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발걸음을 멈춘곳이 모나코 대성당 앞이다. 그러실테지. 오늘도 아들 며느리 손녀들에서 시작해 가족들 모두와 마지막에 자신과 나에게 까지 기도를 해주려니....... 헐!

  그렇게 부자인 나라 모나코 임에도 대성당이 이렇게 소박한 거이야? 우리동네 성당이랑 별반 차이가 없네? 높은 분들한테 깊은 신앙심이 절대 부족하셨나? 바티칸 정도는 아니래도 몰타의 요한 기사단 성당 비스무리는 해야 하는것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여긴 모로코가 아니라 모나코잖아?

  '어디 가겠어? 그넘의 도둑놈 심뽀!!!!!' 어느새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 거리고 있었다. ㅎㅎㅎㅎ

모나코의 본래 국가명은 모나코 공국(Principauté de Monaco) 이다. 여기에서의 '공국'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공화국'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백작 후작 남작과 같은 봉건시대의 귀족 계급인 '공작이 다스리는 영주국' 이라는 뜻이다. 영국 일본과 같은 여전한 전제공화국이지만 왕이 아닌 공작이 다스리는 현대사회에서는 좀 처럼 보기 드문 그런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근현대의 역사속에서는 '키프로스 백국(백작의 나라)'나 요즈음 세계 정세를 뒤흔들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역사의 뿌리를 두고 다투고 있는 '키예프 공국(공작의 나라)' 등이 있다.

그런 모나코(Monaco)라는 이름의 어원은 '외로운 헤라클레스(Hercules Monoecus)' 에서 유래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속의 헤라클레스가 8가지 과제를 해결하러 여행하는 동안에 바로 여기 몬케카를로 지역을 지나갔다고 전해지며, 실제로 이 부근에 헤라클레스 신전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재의 역사에 들어서서 살펴보면........ 모나코의 뿌리는 이탈리아 제노아 상당이며....... 좀 더 솔직히는 해적들의 소굴이라고 하는것이 정확하다고 하겠다. (하여, 어차피 모나코에 찾아 온 만큼 아주 짧게나마 역사를 살펴보고 떠나야 하겠는데, 이쯤에서 속성으로 아주 간략하게......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관점에서의 역사해석에 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동서문명의 충돌'이자 '동서 문물의 교류'가 시작된 (십자군 전쟁) 200년의 시기에 지중해 무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동서양이 마주치는 꼭지점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건국된 동로마(비잔티움 왕국)로 동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시아 전역까지 실핏줄처럼 흩어져 퍼진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온갖 향신료와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해 종이와 화약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에 모여진 동방의 귀한 물품을 유럽의 전역으로 실어다 나르면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쥔 대표적인 3개의 해상세력을 (베네치아 상당) (제노아 상단) (나폴리 상단)으로 꼽는다.

선두 주자로 당연히 돋보인 강한 세력은 제노아 상단이었다. 제노아 상단은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왕국 지도층과 아주 밀접한 협력 체제를 유지해 나왔던 것이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 보면 꼭 찾아가게 되는 명소중에 하나가 카라쿄이(Karakoy) 지역에 우뚝 솟아있는 갈라타 타워(Galata Kulesi)로 이스탄불 최고의 전망대라 하겠다. 카라쿄이 지역은 터키(튀르키에) 해군본부가 있는, 처음 도시가 건설될 때부터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무역항으로 현재까지도 해운항만회사 보험회사 무역회사들이 들어선 교역의 중심지역이다. 그런데 중세시대 이 지역 거의 대부분이 제노아 상단의 자치지역 이었다. 제노아 상단은 이 해안 언덕에 주변을 삥 두르는 거대한 요새와 같은 성채를 쌓아놓고, 그 안에 동방에서 온 물품들을 쌓아놓는 창고를 짓고 무역사무실을 짓고 자체 방위 군대까지 보유하면서 지중해 무역을 개척했던 것이다. 부동의 1위 기업이었다. 그 생채의 곳곳에 6개의 망루(감시탑)을 설치하였는데...... 현대에 들어서 재개발과 노후화로 모두 무너지고 단 하나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 바로 갈라타 타워이다. 이스탄불 전역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있는 갈라타 타워의 웅장한 기개는 곧 지난날 제노아 상단의 위세가 실로 얼마만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의 급격한 쇠락으로 제노아 상단 또한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비잔틴의 몰락과 오스만의 급성장은 지중해 무역을 심각하게 피폐하게 만들었는데, 제노아 상단과는 다르게 엔리코 단돌로라는 희대의 광인(?)을 우두머리(도제)로 뽑은 베네치아 상단은 이 재앙과도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제노아 상단을 제치고 지중해 무역의 패권자로 부상한다. 나폴리 상단은 늘 한 발치 떨어져 이들의 싸움에서 낙과나 주워먹으면서도 가장 나중까지 살아남는다.

결국, 지중해 무역의 패망은....... 오스만 왕국이 비잔틴 왕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 무역을 차단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이제 지중해를 오가던 모든 무역선들이 앞다투어 대서양으로 진출해 신대륙 무역에 나서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모나코가 탄생하게 되었다.

제노아 상단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인근의 제노바(제노아)를 근거지로 활약하였으나 지중해 무역의 폐쇄로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나의 거대 상단에는 왕이나 귀족과 같은 통치그룹인 도제와 최고 지도자들이 있고, 그 아래 무역업과 은행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부서가 있고, 이스탄불을 비롯한 지중해 전역에 설치된 무역관리소와 창고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다. 그외에는 선박의 제조와 수리와 운행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아주 중요한 부서로 용병집단(사병 내지는 상단의 군대) 조직이 있다. 지역 무역사무소와 창고와 운항하는 무역선을 지키는 군사조직이다. 좋게 말하면 봉건제도 하에서는 하급 귀족이나 특별한 능력자가 인솔하는 기사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네치아 제노아 나폴리 상단에는 각기 수 천명 이상의 군대 조직이 존재했던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는 돈을 받고 군사 업무를 수행하는 용병집단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했을 것이다. 모두가 계약에 의해서 종사했으니 말이다.

제노아 상단 소속의 용병 집단에 속했던 일부의 무리가 은밀하게 무리를 이탈했다. 계약 기간은 남았지만 수 개월 째 급여가 밀렸고, 당장 생필품 조달이 어려울 정도의 제노아 상단 처지였던 지라....... 단순하게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하여(목구멍이 포도청) 전투함 한 척을 훔쳐서 탈령을 감행한 것이다. 탈영 사실을 알았지만 당장 추적대를 보내지도 못했다. 그만큼 상단 자체의 존립 자체가 위기였던 때문이다.

스므 명 남짓의 탈영 용병 우두머리는 용맹하면서도 매사에 용의주도 했던 그리말디였다. 그리말디의 노련한 지휘아래 탈영용병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해적업(?)에 뛰어 들었다. 닥치는대로 때려 부수고 빼앗았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해안 지방을 습격해 약탈했다. 오랜 세월 용병으로 살아 온 그들에게 해적업은 아주 적성에 맞는 수익성이 아주 뛰어난 새로운 사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사업이 번창하면 할 수록 사방에서 관심을 넘어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한 제노아 상단에서 원대복귀를 촉구하는 명령서가 도달했다. 이렇게 마냥 바다 위에서만 떠돌아다니다가는 언제 적들에게 침몰될지 모르는 위기 의식을 느꼈다.

육지에 거점을 마련하되 적들이 쉽게 율로로 침입해 올 수 없는 난공불락의 해안방어 거점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모나코였다.

모나코는 당시 딱히 주인을 내세울 수는 없지만......... 캐러비안 해적에 나온는 자유무역 해방 특구 쯤으로 여기면 될 무법지대였다. 지중해에서 빼앗고 약탈하고 훔친 모든 물품이 이곳에서 거래되는 자유 무역항이자 조세 피난처였다. 유럽의 대부분 왕조도 이런 사실을 모두 잘 알면서도 이곳을 점령하거나 바로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로 여기서 거래되는 장물을 주요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실이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사라졌다고 하면 모든 유럽의 귀족과 왕비들은 이곳으로 측근을 파견했다. 기다리다 보면 그 사라진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언제가 반듯이 이곳 암시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해적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어서 어디에 쓰겠는가? 무인도에서 자랑을 할 것인가? 목걸이에서 빵이 나오는가? 하지만 모나코로 가져가면 금은과 언제든 바꿀 수가 있다.

1297년 배 한 척이 모나코 항구에 들어왔다. 그 배에는 40여명으로 불어난 그리말디의 부하들이 모두 수도사 복장으로 변복을 하고 쉽게 상륙을 했다. 밤이 깊자 수도사 복장을 벗어던지고 자치 수비대를 몰살시킨 후, 곳곳에 불을 지르고 해안 마을을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모나코는 그리말디 해적단의 소굴이 되었던 것이다. 해적의 무리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어차피 해적의 길로 나선 것 뭉치면 뭉칠수록 위험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게 때문이었다. 뒤늦게 기력을 회복한 제노아 상단이 배신자 처단을 외치며 나오자 그리말디 해적들은 서둘러 사르데냐 왕국에 귀속하여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자치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하여 받아들여 졌다. 배후의 사르데냐 왕국을 의식해 제노아로서도 함부로 그리말디 해적 소탕에 나서지 못했다. 이때부터 해적들의 리더였던 그리말디 가문이 사실상 모나코를 지배하는 봉건영주의 지위에 오르게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기에 성공한 제노아 상단이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들을 포섭해 모나코 정벌에 나서자 결국 그리말디의 후손들이 지배하고 있는 모나코는 다시 제노아 상단에 귀속될 처지에 놓익 되었다. 그 와중에 합스부르크 왕가(신성로마제국)의 지원을 받는 사보이 왕국이 제노아 상단을 점령하는 일대 변혁이 생겨나고, 그리말디 가문은 제노바 상단에게(실 소유 사보이 왕국) 모나코 영토에 대한 엄청난 가격(돈)을 지불하며 자치권을 사들인다. 그동안 해적질로 벌어들이 돈이 실로 엄청났던 모양이다. 이제 모나코는 그리말디 가문 소유의 영지가 되었다. 다만 자치권을 갖되...... 그리말디가 사보이 왕가에서 임명하는 공작의 지위에 올라, 명목상 사보이 왕과에 충성과 세금을 받치는 관계가 설정된다. 그리말디 가문은 공작의 지위를 세습하게 되지만, 상속때마다 사보이 왕가의 허락에 따라 공작 지위 수여식이 벌어져야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주종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독립 전쟁과 프랑스의 국토회복 전쟁과 오스트리아 왕가(새로운 신성로마제국)의 다툼 속에서, 오늘의 기준으로 볼 때, 니스와 앙티브에 이르는 프랑스 내륙의 영토가 오스트리아 왕가가 관활하는 이탈리아 영토였고, 파르마 피에젠차 등의 이탈리아 깊숙한 북쪽 지역이 프랑스 영토인 상황때문에 잦은 분쟁이 자주 발생함으로 오스트리아 왕국과 프랑스의 협약으로 두 지역을 맞바꾸는 사태가 1860년 토리노 조약에 의해서 체결되자, 결국 모나코가 강제로 프랑스에 합병 흡수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상황에 이쯤에 이르자 그리말디 가문이 유럽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벌인 결과, 모나코의 자치권과 자주성은 보장이 되고 군대와 경찰권은 프랑스에 위임하며 공작 가문의 세습과 임명은 프랑스 정부가 행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특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모나코 그리말디 가문에 대단히 우호적으로 국제법에 준하여 모나코의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보장해 준 것으로 유명하다.

시대의 흐름을 보는 눈이 탁월했던 알버트 1세에 이르러 도박사업을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도입 발전시켰으며, 결국 그 수입으로 국가 경제를 운영하고도 남는 세계적인 부호국이 되었다. 모나코 인구의 30% 이상이 백만장자에 올라있다고 한다. 아울러 세계에 몇 안되는 완전 면세국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모나코에는 세금이라는 것이 없다. 아울러 역사상 최초의 조세피난처라고 해도 되는 국가가 바로 모나코이다. 국가에서 개인 기업에서 몰래 돈을 무한정 가져다가 흔적을 안남기고 도박장에 쏟아부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 돈으로 모나코에 부동산을 투자하거나 장기 신탁을 맞겨도 아무 탈이 나지 않게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허락한 것이다.(시작이 해적질이었으니.......)

결국 프랑스의 부자들과 기업가와 범죄자들이 모나코를 통해 돈을 은닉하는 사태가 너무나 커져 버리자....... 드골 대통령은 '모나코의 완전 봉쇄' 명령에 서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 벌어진 세계적인 희대의 결혼식이 바로 '모나코 레이니 3세와 미국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식' 이었다.

'세기의 신데렐라 그레이스 켈리' '카라크 케이블이 선물한 2 달러짜리 지폐의 기적' 같은 화두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과연 그 결혼식이 그렇게 아름다웠고 그레이스 켈리는 행복했을까? 1982년 그레이스 켈리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사건은....... 항상 너무나도 닮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사건과 함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영원한 미스테리라 하겠다.

일부 사람들은 이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해적질로 이룩한 그리말디 가문의 모나코 왕가 흑역사와 세계 언론을 떠들썩 하게 만든 조세 피난처로 변모한 모나코와 온갖 범죄와의 연루설이 끊이질 않던 시기에......... 모나코의 이미지 쇄신, 해적 후손인 그리말디 가문의 신분 세탁을 위해서 헐리웃 출신의 은막의 공주를 스카웃하여 신데렐라 스토리의 이벤트를 벌여 홍보효과를 노리려고 벌인 비지니스였다고 말이다.(레이니 대공이나 그레이크 켈리에게 직접 듣지 못했으니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나도 동조하는 한 사람이다.)

도박장은 나하곤 전혀 안 친하므로 그냥 패스........

'오늘은 얼굴 사진 사양할께' 하더니 정말로 변함없이 두손으로 얼굴부터 가리는데....... 그렇게 추워죽겠다면서 잠시 쉬어가자니까 뜨거운 커피가 아니라 차라리 시원하게 생맥주 한 잔 마시면서 기운을 차리겠단다.(알콜 의존증인가?) 거기다가 전망도 좋고 따뜻한 난로가 있는 실내를 마다하고 굳이 도로가 테이블을 먼저 차지하는 것은 또 뭔 씨츄에이션?

유럽에서도 알아준다는 모나코의 열대식물원을 죽어가 언덕을 걸어올라 찾아갔는데........ 헐!!!!!(거의 사기급) 우리나라 제주도 중문단지 여미지 식물원이 20배는 훨씬 뛰어넘는다 자신할 수 있다.(극한의 실망.)

거기다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이 여시 할망구.......... '늘 우리 태리...... 우리 세리........' 손녀들 이름이 닳을 정도로 입에 달고 살면서....... 세계적인 명차 부스 앞에만 가면 떠날 생각을 한하고 넋을 놓고 쳐다본다. 파리에서도 그랬다. 그러다가 튀어 나오는 깊게 감춰둔 속내.........'멋있지? 저런거 우리 아들이 하나 타고다니면 폼 날텐데.........' 헐!!!!!!! 지금도 또래에서는 나름 고급 차를 타고 있는 아들........ 20년도 더 된 차를 타고 있는 여기 이 아빠도 있는데......... 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쉐만 보면 아들한테 잘 어울린텐데....... (난 도대체 뭐지????????)

마눌님에게 잘 보이려면 아무래도....... 로또를 한 번 사 볼까? 아들 명차 사주게.......... 흥!!!!! 아들 주려고 명차는 절대 안산다! 태리 세리를 위해서 멋진 원두막을 하나씩 다르게 지어주면 모를까. 아니!!! 태리 세리랑 세계 일주여행을 떠나고 말지...........ㅎㅎㅎ

봄이 오고, 해마다 꽃이 피는 오월이 오면 그리 멀지않은 깐느의 영화제를 시작으로 코트다쥐르는 온통 축제의 도가니로 변한다. 그때가되면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답게 변한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물가가 시작되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깐느나 모나코의 물가는 일잠 여행자들이 감당해 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니스도 그에 못지 않게 변한다고 한다. 하여 보통의 여행자들은 망통이나 생폴 방스나 앙티브나 인근 산자락의 소도시들에 시작해 멀리 마르세유와 아비뇽 인근에 까지 멀리 숙소를 잡고 당일치기로 깐느와 니스와 모나코 축제를 참가한다고 한다. 극한의 비수기인 한겨울에도 당일치기 여행이 결코 녹녹치 않은 마당에....... 무더워지고 인파로 파뭍히는 축제 시즌은........ 어쩌면 정말 지옥이 아닐까? 난 감히 그 축제기간의 코트다쥐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깐느에서 레드카펫 축제가 벌어질 즈음이면 이곳 모나코 도시는 온통 요란스런 자동차 굉음으로 뒤덮인다.

해 마다 5월 예수 승천 기념일(부활절)이 있는 주간이면 어김없이 모나코의 모든 도로는 차단되고 자동차 경주장으로 변모한다. 모나코 도심의 대로가 모두 F1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트랙으로 변하는 것이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F1 그랑프리 대회 중에서 유일하게 전용 경기장이 아닌 도심의 일반 도로위에서 벌어지는 대회로 유명하다. 좁은 도로와 급경사의 언덕과 상상 이상의 꼬뿔꼬불한 골목길....... 그리고 도로 주변은 물론 상가의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에 장식품처럼 빼곡히 사람(주로 여행객)들이 모여 이 경기를 관람한다. 이 기간의 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꽤나 오랫동안 월급을 한 푼도 안쓰고 꼭꼭 모아야 하다고 악명(?)이 상당히 높은 축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6월이 되면 다시 한번 도시는 자동차 굉음에 퐁당 빠져들게 된다. 6월 셋째 주말이 되면 포뮬러 경기가 열렸던 트랙에서 F1경주차가 아니라, 개조된 시판되는 자동차들이 참여하는 그 유명한 (르망 24) 대회가 이곳에서 같은 방법으로 펼쳐진다. 르망 대회의 특징은 한 대의 자동차를 그때 그때 두 명의 드라이버가 교대로 운전하면서 24시간 동안 내달리려 순위를 정하는 경기다. 24시간을 줄기차게 달려야 하는 자동차 자체의 내구성이 뛰어나야 할 뿐더러 24시간 동안 경기가 계속된다는데 있어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멋진 경기가. 특히 폭우속에 벌어진 대회들이 아주 유명하다.

해변 도로(경기땐 트랙)에 초창기 F1 그랑프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상당히 귀엽다.

흡사 프랑스 명화 <남과 여>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 경주를 마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태풍으로 결항된 비행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자동차를 끌고 폭우속의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그 남자는 결국 고속도로에서 내려서지 못했다.

아련한 해변 씬과 아름다운 그 BGM에 빠진채로 우리는 다시 니스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되돌아 갈 때는........ 왼쪽.........

추운 날씨로 인하여 망통까지 여행하는것을 포기하고, 모나코를 대충 흩어보다시피 하고 니스로 돌아오니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다.

하여 우리는 니스 요트선착장(마리나)이 있는 버스가 림프 포트에 정차하자마자 서둘러 내렸다. 지난번엔 여기에서 장글레 해변(영국인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숙소까지 걸어갔는데, 오늘은 방향을 구도심쪽으로 잡았다. 가리발디 광장과 마세나 광장을 거쳐 중세풍의 엔티크한 건물들이 늘어서있는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어서 였다. 19세기 정도까지는 아마도 가리발디 광장이 니스의 중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도시가 확장되면서 신도심이 생겨나고 도로가 확충 정비되고 전철(트램)이 다니면서부터 마세나 광장 주변이 새롭게 도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관공서와 백화점과 고급 카페나 레스토랑이 그곳으로 이전하면서부터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니스의 중심이 마세나 광장으로 옮겨간 것이지 싶다.

이탈리아 통일 건국에 영웅인 가리발디 동상 머리에 비둘기 떼가 앉아서 볼 일(?)을 보고 있다. 흰 페이트를 덕지덕지 발라놓은것만 같다.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영웅이지만 여기는 분명 프랑스 영토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런 지나간 역사에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적지않게 앙숙관계인 것은 분명한데...... 지나간 역사문제로 다투지는 않는다. 혹, 모르지 않겠는가? 피에몬테 지역은 이탈리아 영토이지만 어딘가 프랑스 영웅(프랑수아 1세나 나폴레옹) 동상이 세워져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1860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영토를 분할 교환했다. 알프스 지역의 프랑스 영토가 이탈리아에 건네졌고, 앙티브에서 망통에 이르는 해안지역(코트다쥐르)이 이탈리아 영토에서 프랑스 영토로 넘어왔다.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 니스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가문의 시작부터 이곳에 살았던 프랑스 뿌리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으나 영토 교환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프랑스인으로 남은 사람들도 섞여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나, 그리스 터키 사이의 민족 전쟁, 그리고 우리나라 지역주의 까지 모두가 이런 경우에 생겨나는 풍토병 같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 이들에게서는 그런 분쟁이 엿보이지 않는다. 저들은 한참 지나간 조상들의 문제로 잘잘못을 트집잡거나 따지지 않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과거사 때문에 말썽을 일으키기 보다는...... 상호간에 현재속에서 삶의 질을 더 많이 걱정하고 고민한다. 평화롭고 여유롭고 넉넉한 삶을 공존을 통해 유지해 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오늘이 등 따습고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다면.....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모든것이 주변 이웃과 지역 공동체 안에서 말이다. 참 부럽다. 저들이 저렇게 한 줌의 햇볕만 있으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커피나 와인을 마시면서 환하게 웃는것은..... 모두에게 공히 유익한 더불어 사는 양질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부자나 권력자가 되기 보담은...... 맡은 바 직업적인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을 가족이나 이웃들과 여유롭게 즐기며,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넉넉하고 여유로운 취미 생활이나 여행이나 레져를 즐기고자 하는 너무나 당연하고 소박한 바램들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저들에게서 각박함이나 절박함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나도 저런.........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배우고 싶다. 정말로 정말로 부럽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일이 아니라면....... 나는 그 무엇이든지 내 바램과 내 생각대로 자신있게 모두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광장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과 함께 미술 시장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갤러리나 미술품을 사고파는 시장이라기 보다 그냥 동네 사람방 같은 분위기다. 이젤을 앞에두고 의자에 앉아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한 무리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 무언가를 나무어 먹고 마시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화가이고 누가 고객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더하여 이곳에서는 현지인과 여행자의 구분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냥 시골동네 마을회관에서 주민 잔치를 벌이는 풍경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쉬움 속에 가리발디 광장을 나와 마세나 광장으로 옮겨가는데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단체 복장을 차려입고 마세나 광장 넵튠 분수대 앞으로 몰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흡사 우리나라로 치자면 보라색 가운을 걸친 대형교회 성가대 차림이었다. 어디 기독교 미션 재단의 대학생 성가대 같은 느낌이랄까....... 참지 못하고 떨어져 뒤따라 가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무슨 행사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예닐곱 명의 여대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향해서 집단 포화를 퍼붓듯이 따발총 설명을 시작하다가 이내...... 합창단 하모니와는 전혀 다르게 도저히 알아들 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변모했음을 느꼈는지, 서로 쳐다보면 입을 막고 웃기 시작했다. '시방 이게 뭔 씨츄에이션? 거기다 죄 다 프랑스어로....... 헐!!!!'

'우리는 불어 못 알아들어요. 전혀.'

그러자 한 아리따운 금발 아가씨가 나와서 주변을 정리한 후에 조금은 당돌한 듯한 태도로 빤히 쳐다보면서 영어로 말을 걸러오는데........

'어디서 오셨는데요?'

'코리아. 물론 남쪽이예요.'

순간 온동네가 떠나가도록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 코리아!!!! BTS...BTS......BTS...... BTS......'

이거..... 숫제로 말이 안나올 정도다. 사람을 엄청나게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왁짜지껄......... 이거 내가 BTS 멤버의 일가친척이라도 되었더라면........ '나와 BTS는 그냥....... 동포(?)....... 그냥.........' 그들이 내 배낭에 달린 태극기를 알아본다. 심지어 우리를 핸디폰으로 찍기 시작한다.

그리곤 아주 또박또박 우리에게 설명을 해 준다. 해외 공연까지 다니는 제법 유명한 대학생들로 구성된 선교합창단이란다. 내일 음악회가 마세나 광장 중앙의 무대에서 있을 예정이기에 리허설을 하려고 모였단다. 그리고 넵튠 광장의 분수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러 왔단다.

'내일 공연에 꼭 와주세요. 아주 멋진 시간이 될거예요. 물론 무료 공연이예요. 자선 모금은 하겠지만요.'

우리는 그 금발 아가씨와 일행의 친절한 배려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미안하다 전했다. 우린 내일 낮에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가 예약되어 있어서 아쉽지만 음악회를 참석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우리가 돌아 설 때까지 그녀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세상 부럽기는 역시....... 해맑은 활기찬 표정의 젊음이 가장 부러울 수 밖에....... 우리에게 도 캠퍼스 생활은 있었던것 같은데...... 별반 낭만이라던가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꼭이요.)

숙소로 돌아와 올라가기 전에 해변 구경으나 잠시 하자고 도로를 건너 왔는데....... 얼씨구.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

우.이.씨.뭐.이.래?

눈이부실 정도의 햇쌀이 쨍쨍 내리 비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헐!!!!!!

이번 여행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야 처음으로 맞이하는 그야말로 지중해의 쾌청한 날씨 그 자체였다. 진작 이랬더라면 어제 앙티브에서 그 고생을 안하고, 오늘도 지금쯤 망통을 둘러보고 모나코에 있었을 시간인데......... 이제서야......... 코트다쥐르의 날씨는...... 적어도 니스의 날씨는 파리를 떠나 니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이랬어야만 했다. 이랬더라면 내가 호기를 부려 겨울바다 수영을 해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약속이 뻥이 안되었을 것인데...... 거기다 바람도 없지 않은가?

역시나....... 많은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해변에서 한없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거, 지극히 높은곳에 앉아계신 존엄한 양반이유? 이러는거 아니지유? 우리한테 이러심 안되지유? 내일 오전에 니스 떠난다니까 이제 이게 뭐유? 이건 아니지유?'

나는 괜히 주변을 서성이듯 이리저리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챠밍 여사는 비어있는 파란 벤치를 찾아 앉더니만........ 오매불망.....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버렸다. 마냥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정말 한참을 그러고 앉았다. 제대로 멍을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대로 더 있을거야?'

모처럼 정말로 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아니? 일단 숙소에 올라가야지.'

'그럼 마트에 부터 들려야 하잖아?'

'마트는 나중이고........ 보온 병이랑 가방 부피부터 좀 줄이고 다시 나가야지.'

'다시 나간다고? 어딜?'

'니스를 제대로 둘러 보러. 처음 맞은 이 햇쌀을 무시하고 그냥 집에 있자고? 그런 아니지? 일단 여기 이 해변을 다시 나와서 쭈욱 걸어보고 나서..... 재래 시장으로 가야지. 주말엔 오후 장이 열린다 했으니까....... 걸어다니며 장도 보고........ 내일 떠나기 전에 니스까지 가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없어야 할것 아니야. 사람을 밖으로 몰려 나온것 좀 봐. 카페들도 제대로 열리고 사람들로 붐빌거야. 이럴 때 길가에 걸친 테이블에서 폼나는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골목길을 죄 다 돌아보자. 내일도 이런 날씨가 계속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저렇게 눈부신 태양을 봤어?'

'당신 이제 반은 프랑스 사람 되었는가봐? 매번 햇쌀 햇쌀 멍때리기 멍때리기 주문을 외우고 있네?'

'나 이제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한 줌의 햇쌀만 있어도 행복한 표정으로 마냥 멍때리기를 하는지 조금 알것 같애. 이제 앞으로 나도 그럴꺼야.'

헐!!!!! '한 줌의 햇쌀' 이래.......... 누구는 한여름 양철 지붕위에서 맞는 뙤약볕만 생각나는그만......... 그나저나...... 내일도 이런 날씨려나?

 

------ 다음 이야기에서는 (굿바이 니스!)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