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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춥다 추워. 패딩 하나만 가져왔어도....... (깐느. 앙티브)

by 피안재 2023. 9. 12.

 

 

 

 

아침 산책으로 니스 해변에 나가보니 이거 정말로 장난이 아니다.

숫제 정월 초에 한계령 휴계소 눈보라 속에 서있는 것 같다. 이거 정말 지중해 날씨가 이러면 안되는것 아닌가? 니스 해변에서 겨울 수영을 생각하고 찾아 온 우리였는데.......

내심 '오늘은 그냥 호텔에 들어앉아서 쉴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침 니스 날씨가 수상하다. 영 마음이 편치가 않다. 프랑스에 도착한 이후로 일주일이 지나도록 쾌청하고 따뜻한 날씨를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엄동설한도 이런 정도는 아니지 싶어지기도 한다.

거기다가 내 오욕이 부른 치명적인 실수로 우리는 지금 겨울옷이 하나도 없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추운 날씨를........'

여행을 출발하기 일주일 전까지 유럽의 날씨는 온통 '이상고온에 시달리는 유럽'이 핫뉴스였다.

이탈리아에 폭우가 내려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물에 잠겼고, 알프스 고산지대에 만년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며, 한겨울임에도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상고온 현상으로 섭씨 20도를 넘어 사람들이 반팔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영상이 뉴스에 나오기까지 했다. 스페인 남부는 가장 추워야 할 한겨울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직접 경험한 세 번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1월의 온도가 추워봤자 영상 11도에서 높으면 18도 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평균적으로 영상 14도를 유지해 주었다. 어디를 가나 한겨울임에도 도로변의 가로수에 두 주먹만한 노란 오렌지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시칠리아에서는 나도 정말로 반바지 안가져 온것을 후회했었다. 그랬던 유럽이 이상고온 현상으로 영상 20도 이상을 오르내린다니......... '겨울 옷 절대 필요 없음. 그냥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옷차림이면 됨. 반팔 티셔츠 두 개쯤에다 반바지도 하나 쯤 넣으면 딱임. 공항갈때 한국이 추우니 약간 두툼한 바람막이 하나 걸치면 의복 준비 끝!!!!!!' 이라고 열변을 토했고........ 결국 우리는 그런 나른나른한 봄날의 옷차림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지중해 연안의 기온은 거의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추워 보았자 영상 6도에서 8도 정도를 유지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이다.

참 이상하다. 인간이란는 종이 살아가는 곳에는 항상 바람(?) 이라는 놈이 문제를 만들고 말썽을 일으킨다. 그넘의 바람(?)이 문제다.

유럽에는 가장 유명하게 두 개의 지중해성 계절풍이 있다.

하나는 이탈리아 반도의 계절풍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남부의 계절풍이다. 계절풍인 만큼 당연한 것처럼 겨울에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개의 바람이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모습과 행태를 가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나는 천사의 부드러운 음성처럼 따스한 숨결로 대자연과 사람들의 가슴까지 어루만지며 대지를 기름지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악마의 고함소리 처럼 지축을 흔들면서 요란하게 농작물을 헤집고 심지어 간판을 떨어트리고 사람을 날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금 유럽은 고온현상이 벌어졌다는데도 이곳만은 아랑곳 하지않고 좀처럼 보기드문 추위속으로 편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녀석이 바로 그 유명한 프랑스의 계절풍이다. 하필 이럴때.........

튀니지 지역의 광대한 사하라 사막에서 만들어진 뜨거운 열기의 공기가 겨울이면 게절풍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로 향한다. 사하라의 뜨거운 바람은 지중해를 건너면서 해수면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알맞게 머금으면서 뜨거운 열기도 따스한 정도로 식어버린다. 사하라에서 지중해르 건너오는 이 향긋하고 따사로운 바람을 시로코(Sirocco)라고 부른다. 이 바람은 추운 겨울로 당연히 싸늘하게 식었어야 하는 시칠리아의 대지와 숲과 자연을 화장한 봄날로 만들어 주고 주기적으로 알맞게 비를 뿌려준다. 시로코 덕분에 시칠리아는 한겨울에 오렌지를 수확하고 아몬드가 꽃을 피우고 온각 과일과 야채가 들판에서 수확이 된다. 시칠리아의 자연은 그야말로 조물주의 놀랍고도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농업이 발달하지 않은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겨울 과일과 야채는 시칠리아에서 생산되면, 이는 다분히 시로코가 베풀어주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시로코는 지중해에 불어오는 남동풍이다.

프랑스 국토의 중앙으로 대동맥이라 불리는 길고 풍부한 수량의 론강이 흘러내린다. 프랑스 내륙의 가장 깊은 분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 내륙 분지의 우측으로 만년설에 뒤덥힌 거대한 알프스 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이 론강의 상류에서 시작하여 물줄기를 따라 지중해로 서슬 시퍼렇게 몰아쳐 내려오는 성난 바람을 미스트랄(Mistral) 이라고 부른다. 시베리아의 한파를 곡 닮은 미스트랄이 겨울이 되면 지중해인근의 기상 여건에 따라 수시로 불시에 사랍게 몰아쳐 내려오는 것이다. 이 무자비하고 광포하기만 한 미스트랄이 그래도 프로방스의 척박한 대지를 헤집어주고, 포도나무에 한파라는 최악의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아이러니 하게 봄이면 역경을 헤쳐나온 포도나무들이 더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 사람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아도 미스트랄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백 명중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바람이면 그냥 대충 좀 드센 바람이겠지 싶겠지만..... 절대로 아니다. 태평양에 불어오는 태풍이나 해일 못지않은 사고를 이따금식 치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금........ 프랑스 전체가 근자에 아주 보기 드문 정도의 미스트랄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근데 그게........ 왜 하필 지금이냐고????

프랑스 남부의 여행지가 비수기가 아니라 거의 휴업 수준이라고 하는 편이 제대로된 평가이자 표현이라고 해야 될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 부부가 일단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 떠났다고 치면 숙소에서 해먹는 식사의 주 메뉴는 우선 풍부한 과일에다가 아침이던 저녁이던 와인은 있어야 되고, 더하여 저녁은 늘 풍족한 정도의 육류가 제공되어야만 한다. 솔직히...... '잘 먹고 잘 싸돌아 다니자'를 기본 모티브로 삼는다. 나는 포도가 최고이고 다음으로 토마토를 고르는 반면에, 아내는 포도 아니면 사과나 딸기를 찾는다. 암튼 포도는 무조건 넘칠만큼 있어야 좋은 여행이 된다. 그런데 이 아침에 과일이라고 달랑 바나나 밖에 없다. 어제 재래시장에 갔더니 점심때 이미 파장을 했고, 동네 슈퍼에도 마땅한 과일이 없었던 결과다. 오전에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사다 놓고 움직여도 움직여야만 할것 같다. 거기다가 요새 며칠 많이 추웠는지 뜨거운 커피가 있음에도 오늘은 스프를 다 끓였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 아마도 오늘이 가장 최악인것 같애. 추위와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을텐데...... 오늘 그냥 호텔에서 쉬었다가 점심을 인근 맛집에서 외식하고 니스 동네 산책이나 할까?'

'호텔에서 쉬자고 하면서, 외식을 하든 산책을 하든 어차피 밖으로 나가는 것이네? 문밖에 나서면 어차피 춥기는 마찬가지 아니여? 꼼짝 안할거면 몰라도........ 개수작 떨지말고 어여 앞장 서. 패딩 하나만 가져 온다니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우기더니만....... 시진찍는 패션은 모슨 패션....... 어제 입은거 오늘 또 입고 내일도 또 이거 입고......... 우리처럼 돌아다니는 사람은 가만 들어앉아 있으면 더 병나. 몸살 기운이 슬며시 덤빈다고...... 그러니까 쓰러지지 않았으면 또 나가서 걷는거여. 가자고. 동쪽이여? 서쪽이여?'

사십 년 가까이 살았어도 이 사람 참 버겁다. 아이고 야!!!!!

동쪽은 이탈리아 국경 쪽으로 모나코가 있고 망통이 있는데 서쪽에 비하면 그래도 쬐끔이나마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나 더 춥지 않을까? 서쪽으로 가면 깐느가 있고 어제 못 들린 앙티브가 있니. 쬐끔이라도 남쪽으로 튀어나간게 되지 뭐.'

'그런데 왜 어색하게 깐느 깐느 그래?'

'못 느꼈어? 칸은 다분히 영어적인 발음으로 이 사람들이 잘 못알아 듯잖아? 프랑스 사람들 존심 이 쎄. 기차시간 물어볼 때 깐느 하니까 단박에 알아 들었잖아? 집에 가선 칸이고 여기 있는 동안엔 깐느야 깐느.......'

'그럼 기차타는 거야?'

'모나코 망통은 버스가 편하고, 깐느까지는 일단 기차로 가고 앙티브로 옮겼다가 돌아올 때는 버스가 편해. 여기서 아주 가까워. 금방 가.'

'그럼 오늘은 무조건 일단 기차.'

그래서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숙소를 나서 니스 기차역으로 간다. 충분히 걸어갈만 한 거리다.

역 대합실에 들어가니 한 남자가 검색대 옆 피아노에 앉아서 재즈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와!!!!! 아마추어 수준을 확 뛰어넘는 실력이다. 앵콜이 쏟아졌고 두 곡을 들었을 때 개찰구가 열렸다. 박수를 쳐주고 우리는 서둘러 깐느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기차가 깐느 역에 도착했다.

역 대합실을 나서 밖으로 나왔는데 '아! 여기가 깐느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구나' 하는 설렘이나 어떤 기대보다는 '춥다. 깐느나 니스나 춥기는 마찬가지다'라는 생각밖에는........ 일단 잠시 쉬면서 스케줄을 점검해 보자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두리번 거릴것도 없이 역사에 나란히 붙어있는 건물이 KFC가 아닌가. 그래서 일단 그곳으로 들어갔다.

만약에....... 날씨가 좋았다면 우리가 깐느에 왔을까?

내 대답은 당연히 '아니, 깐느엔 관심이 없어'였을 것이다. 다음날 결국 들리게는 되지만 모나코도 우리에겐 사실 별로다. 우리는 인근의 다른 소도시를 찾아서 죽어라 쏘다녔을 것이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깐느 영화제가 추구하는 영화적 가치와 판단이 우리에겐 사실 별로이기 때문이다. 영어문화권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프랑스 문화나 가치관이 조금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모나코는 모나코 왕가의 역사 보다는 도박장이 유명하고, 그 풍경은 이미 여러차례 007 시리즈는 물론 다른 영화를 통해 충분히 본 것으로 이해하려 했고, 깐느야 모든것이 5월 중순의 영화제로 대변된다고 알고 있다. 깐느는 5월이 전부이다. 나머지는 여름 휴양지로서의 깐느가 있는데, 해변 문화를 맘껏 즐기기엔 큰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야 히기로도 유명하다. 깐느나 모나코나 해변 조차도 아무나 쉽게 이용할 형편이 아닌것이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 지고 또 그만한 부와 명예를 가진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겠으나........ 나는 자본주의 속성이나 거대 상업주의가 표방하는 응분의 가치에 심하게 거부반응과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가진게 없지만...... 가졌다 해도 저런 세상은 살지 않을 것이다.

사지도 않는 로또가 된다면.......... 충주 인근의 오지중에 오지를 찾아서 산골짝 비탈밭에 포도나무를 심을 것이다. 17평 정도 학교 교실을 닮은 아주 간단한 농막을 하나 짓고, 아침에 일어나 이슬을 즈려밟으며 걸을만큼의 잔디밭을 가꾸고, 농막 주변으로는 오로지 한 종목으로 빼곡히 자작나무를 심을 것이다. 차는 지금의 20년 된 코란도면 되고, 다른건 다 배제해도 화장실과 주방만은 아내가 깜작 놀랄 정도로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 유럽 여행은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 떠나고, 대신 틈나는 대로 국내 캠핑여행을 죽어라 다녀야 겠다.

ㅋㅋㅋㅋㅋ....... 그러다 보면 한 세상 쉬이 지나가겠지......... ㅎㅎㅎ

깐느에 오면 꾸불꾸불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 언덕 위의 성터에 올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가는 길에 커버드 마켓(March'e Forville), 그러니까 유리 천장으로 덮은 전통 시장이 유명하고, 그곳에 유명한 맛집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시내 중심에서 저만치 올려다보니 멋있어 보이기는 한데, 이 날씨에 거기까지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사실 깐느에 뭔가 기대하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깐느가 지척이라기에 앙티브 가는 길에 잠시 들려본 것 뿐이다.

깐느의 중심이자 비교적 해변에 인접한 라 크로시테(La Croisette)능 역시나 최고급 호텔들과 명품 부티크 상점들로 가득차 있다. 패션과 관광 활동의 중심지인 것이 느껴진다. '저런게 명품이구나. 새해니까 방금 나온 신상들이겠지?' 하면서 서둘러 그냥 지나친다. 해변에 가까이 갈 수록 유명 스타들의 포스터가 길게 나붙어 있다. 해마다 5월 중순에 영화제 기간동안 축제에 참가한 영화를 상영하고 심사를 하고 시상을 하는 해외 토픽에 매년 등장하는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의 입구 22개의 계단이 보인다. 흔히 레드 카펫이라 부르는 장소이다. 그리고 그 계단의 아래에 '별들의 손' 이라 부르는 유명 스타와 배우들의 손바닦 프린팅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한 번 남들처럼 손바닦을 대고 손 크기가 비슷해 보이는 곳에 손을 대고 찍어 보았는데, <미녀 삼총사>의 주연 배우 카메론 디아즈의 프린팅이었다.

깐느의 해변은 대부분이 유명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사유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멀리서 지나치며 마리나로 향해서 요트 구경을 하는 것으로 깐느 방문을 마치고자 했는데.......... 시내에서 마주친 아주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초로의 아주머니나, 방금 도착한 여행자 차림으로 해변을 걸어가는 신사 두 분이나, 해벽 백사장 산책중인 아가씨 두 명 모두가 다들 도애체 왜 그러는거야? 너무 멋지잖아?

'살아 있네. 핏이 살아 있어. 어떻게 재들은 아무렇게나 해도 저렇게 핏이 사는걸까?'

마리나 앞에 설치된 버지니아 해리오트 기념물은 상징성이야 있겠지만....... 깐느 해변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느낌이다.

프랑스에게 올림픽에서 요트 금메달은 안겨 준 상징적 여인이다. 그냥 프랑스 요트 역사의 연관성상에서나 보아야 할 듯........

 

 

  앙티브(Antibes)는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하나의 로망처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도시다.

  특히나 해변에 인접해 있는 구도시를 일컬어 'la Vieille Ville d'Antibes' 라는 별도의 애칭을 지어 부를 정도이다. 인근의 니스나 깐느나 모나코처럼 화려하거나 인파로 넘쳐나지는 않지만, 프랑스인 이라면 적어도 누구나가 '앙티브 한 달 살기 내지는 앙티브 일 년 살기'를 꿈꾼다.

  부자들이라면 5월의 깐느 영화제를 찾거나, 모나코에서 도박을 즐기거나, 여름 니스의 해변에서 돈을 많이가진 사람들 특유의 씀씀이를 자랑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앙티브는 전혀 다르다. 앙티브는 잠시 여름을 즐기고자 찾아가는 도시가 아니라 언제까지고 마냥 머물고 싶은 도시라고 하는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특히나 지금 현재 프랑스는 국민 연금 문제로 나라 전체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형편인데....... 매달 내는 돈은 더내고 퇴직 후에 받아가는 돈은 더 적어지는 마당에...... 62세부터 주던 연금을 64세부터 지급하겠다고 정부가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으니....... 헐......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벌어질 필연적인 사태라는 점을 예의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모델을 할 정도의 미모를 갖춘 젊은 아가씨가 새벽에 청소차를 따라다니며 동네 쓰레기 통을 나른다. 직접 몇 번이나 목격을 했다. 마르세유의 시내버스 여자 운전사랑 몽펠리에의 트램 여자 운전사는 <007 영화> <분노의 질주>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하는 금발의 여배우 보다 휠씬 매력적이었다. 그야말로 황홀한 무기 그 자체였다.

  이들이 자기의 직업에 진심인 이유는 오로지 정년 퇴직 이후의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퇴직 연금의 수준은 대략 월 350만원 ~ 400만원 정도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부부가 낡고 작고 협소한 서민 아파트에 기거하면서도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이유가 바로 정년퇴직에 있다. 퇴직을 하면 도시의 서민 아파트를 팔고 시골지역의 조금은 더 넓거나 아늑한 아파트를 마련해 직접 수리를 한다. 퇴직금으로 주거환경에 별도로 더 투자하지는 않는 편이다. 대신 연금을 부부가 합쳐서 주로 여행을 다닌다. 일 년에 서너번씩 해외 여행을 나간다. 그런 여행의 한 방편으로 모두들 알티브에서 서너 달이건 일년 이년 살아보기를 원한다. 보편적인 여행과는 좀 다르게 말이다.

  구시가지의 아주 저렴한 주택을 아예 육개월 일년으로 임대를 한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처럼 퇴직 후의 생활을 그곳에서 꾸려나간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정원도 가꾸면서 해변에 나가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탄다. 그리고 주말이면 주변 사람들과 혹은 먼곳의 가족을 불러서 저녁 외식을 나간다. 앙티브는 그런 도시다. 현지에 사는 사람과 한동안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의 차이나 티가 별로 나지 않는 그런 종용하고 마냥 차분한 도시다. 하여 그들은 잠시 다녀가는 떠들썩하고 바쁜 여행자에겐 별반 관심이 없다. (얼핏 여행자를 차별하는 것처럼 무관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또한 그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단면일 뿐이라고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앙티브는 그런 곳이다.

  짧은 설명으로 앙티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것이 어려울것 같아서 두 가지의 상반된 상황을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에 대해서 잘 헤아려 보면 앙티브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약간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앙티브에서 환영받지 못한 대표적 인사는 바로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이다.

  세기말 증세를 보이던 루이 왕조와 소수의 부패한 귀족과 성직자들이 벌인 패악은 결국 프랑스를 병들게 만들었고, 모든 프랑스인들이 굶주림과 전염병 속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자유. 평등. 박애의 새로운 공화정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새로 집권한 소수 정치 지도층의 부패와 야욕으로 더 극심한 혼란의 시대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 틈새에서 불세출의 기린아 나폴레옹이 나타나 새롭게 자신의 왕조를 수립했다. 봉건왕조의 폐단을 없애려고 만든 공화정의 부패가 엉뚱하게 다시 더 강력한 봉건왕조를 탄생시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프랑스는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더 강력한 폭군이면 어떻고 코르시카 촌놈이면 어떤가? 점염병을 몰아내고 백성들이 더는 굶어죽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었는데 말이다. 독재자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유럽의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전쟁을 벌여서 온갖 물자를 약탈해 오고 두둑히 배상금을 받아와서 어찌되었던 프랑스를 훨씬 살만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야심은 러시아 원정에서의 패배로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엘바섬으로 유배를 떠나고 만 것이다. 유배 생활 8개월만에 나폴레옹은 영국군의 감시소홀을 틈타 엘바섬을 탈출했다.

  나폴레옹은 이전처럼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었다. 프랑스의 영광을 다시 이룩하리라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다시 온 프랑스가 자신을 지지하리라 맹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유배 이후에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프랑스를 난도질 해서 모조리 빼앗아 가는 통에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형편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프랑스 육지에 상륙한 곳이 바로 앙티브 인근이었다. 나폴레옹은 일단 허기와 추위를 모면해야 했으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영국군 추격대로 부터 자신을 지켜줄 호위군이 필요했다. 그는 앙티브로 향했다. 시민들이 대낮처럼 횃불을 받쳐들고 몰려나와서 돈고 재물을 받칠것이라 생각했다. 젊은이들이 서로 앞다투어 자원 입대하고, 다시 군대를 꾸미는데 필요한 지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집집마다 모두 문을 굳게 걸어 잠구거나, 나폴레옹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짐을 챙겨 멀리 친척집으로 달아나 버린 사람이 부기기수 였다. 어느 집에도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았으며 마중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앙티브라는 도시 자체가 자신에 대해서 심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폴레옹은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충격이었다. 나폴레옹은 모든 계획을 변경했다. 파리로 가는 길에 여러 상황과 입장을 가진 도시들이 서로 얽혀있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 험준한 알프스 산자락을 이용해 파리까지 가는데 성공한다. 훗날 워털루 전투로 마감될 때까지의 100일 천하가 처음 앙티브에서 부터 예기치않은 불안한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앙티브는 왜 나폴레옹을 거부했던 것일까?

  그곳에 살아 온 사람들의 정서가 혼란이나 전쟁을 극도로 기피하는 성향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앙티브는 그런대로 자급자족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넉넉하진 않아도 나름 만족스런 생활을 영위하던 곳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도 그랬고, 나폴레옹의 시대라 해서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저 늘 그곳에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끼리 농사도 짓고 어업에도 종사하면서 대를 이어 평화롭게 살아온 소도시였다. 어제에 부끄러울게 없고, 오늘에 나름 만족하면서, 내일에 대해 딱히 걱정거리도 없는 삶이 앙티브에 대를 이어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 앙티브에 나폴레옹이 찾아왔다. 전성기의 나폴레옹이 수천 수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도 꺼리고 싫어 할 마당에 완전 몰락한 나폴레옹이 찾아온 것이다. 일단 머물곳이 필요하고 재기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물자며 사람이 필요하게된다며, 처음에 자발적 헌납이겠지만 자칫하면 강제적 징발과 징용이 뒤따를 것이다. 거기에다 나폴레옹의 재기를 막으려는 영국해군이 몰려오기라도 하게된다면........ 앙티브는 하루아침에 전쟁터가 되는 것이다.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풍요와 평화가 한순간에 파괴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앙티브는 루이 왕조에도 살아남았고, 나폴레옹 시대에도 살아 남았고, 나폴레옹이 없는 시대에도 충분히 잘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폴레옹이 하필 이곳에 나타나면서 어쩌면 모든게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누가 나서서 선동할 이유도 없이 자연스레 나폴레옹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다.

  나폴레옹과는 반대로 앙티브가 온갖 정성을 들여 초청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다.

  피카소는 생폴 드 방스에 자주 머물면서 비교적 인근인 방스에 아예 눌러 살고있는 지인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마티스와 자주 교류했다. 그러던 중에 앙티브로 부터 정중하게 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아주 멋진 전망의 작업실과 숙소를 제공받으면서 언제까지고 머물고 싶은만큼 머물러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했던 것이다. 그가 제공받은 구도심의 가장 크고 멋진 성채가 지금 피카소 박물관으로 꾸며져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도르 드 라 수셰르(Romuald Dor de la Souchère)는 이곳 코트다쥐르 출신의 프랑스 고고학자다. 1923년 그는 앙티브의 그리말디 성과 주변을 고고학적 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고대 그리스 유물과 고대 로마의 유물들이 발견되자 앙티브 고고학 박물관 건립을 위해 앙티브 유력자들을 모아 혐회를 결성했다.

  앙티브의 유래는 처음 마르세유에서 이주한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앙티폴리스라 불렸다. 그들은 가장 높은곳의 광장에 성채를 쌓았고, 로마시대에 이를 중측하고 주둔군 사령부로 사용하였다. 중세 시대에는 인근에 교회가 지어지면서 성채는 천 년가까이 주교회 교회지도자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그후 이탈리아 제노아 가문이 차지하면서 봉건 영주와 총독의 거처로 사용되면서 그 가문의 이름을 따서 그리말디 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이탈리아 북부 영토와 코트다쥐르 지역 영토의 교환이 이루어짐에 따라 앙티브에서 망통에 이르는 영토가 모두 프랑스령에 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성채는 앙티브 시청으로 전환되었다가 시청이 기차역 인근의 분수대 광장으로 이사하면서 군대 막사로 이용되다가 1925년 그리말디 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되면서 수셰르가 첫번 째 큐레터에 임명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앙티브 인근에서 발굴한 유물을 주로 전시하던 수셰르는 나름 친분이 있었던 피카소를 자신이 관리하고 있든 박물관의 가장 높은 층 사무실 전체를 작업실과 숙소로 제공하겠다는 초청장을 보냈다. 앙티브 박물관에 피카소의 작품 한 두점을 보관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초대에 응해서 한 번 다녀가겠다던 피카소의 방문은 박물관 옥상에 올라 앙티브 주변의 바다를 둘러보던 피카소로하여금....... 그만 대략 석달 정도를 머물게 만들었다. 피카소는 앙티브의 옛스런 멋이 가득한 구도심과 푸른 지중해와 해변의 바위에 다가와 부딪치는 파소소리에 그만 푹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 멋진 장소에서 또다시 뜨거운 창작열에 사정없이 빠져 든 피카소는 그 짧은 기간에 23점의 그림과 44점의 삽화와 스케치를 남겨놓고 떠나갔다. 그는 이 작품들을 앙티브에 모두 기증했다. 더우기 이년 후에 다시 돌아와 78개의 도자기 작품을 추가로 기증했다. 수셰르의 열의와 정성에 앙티브 사람들의 다정스러운 배려가 피카소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앙티브 시는 피카소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앙티브 역사박물관의 이름을 피카소 박물관으로 바꾸었다.

  이제 앙티브는 명실상부 세계적인 피카소 박물관 대열에 우뚝 올라선 것이다.

  피카소를 제대로 한 번 만나 볼 심사였다.

  어디까지나 그냥 하는 말이고, 내심 속으로는 '날씨가 너무너무 추워서 더 싸돌아 다니기도 힘들 지경이라 피카소 미술관에 들어가 피카소가 싫어질 때까지 실컷 따스하게 시간을 좀 보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더 강했지만 말이다.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꼬맹이들 서넛이 장난을 치면서 미술관 계단을 돌아 올라가고 있었다. 할머니 한 분과 꼬맹이들의 엄마인 듯싶은 여성이 손에 막 구운듯한 파이를 바쳐들고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서둘러 계단을 올라 미술관에 막 들어서려는데........ 아.뿔.싸. 남자직원 한 명이 나오면서 오늘과 내일은 미술관 휴관일 이란다. 안쪽에 십 수명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있었는데......... 헐!!!!! 최고연장자 직원이 생일이라서 동네분들이 모여 작은 생일파티를 벌이려고 준비중이란다.

  물론 전시실 밖이었지만........ 헐. 이거야 피카소 미술관이 아니라 동네 마을회관 같은 분위기......... '아하! 이런게 바로 앙티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 작품값이 얼마인데....... 강도라도 들면 어쩌려구 미술관에서 파티를........ 하긴 피카소라면 당연히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이런 일로 작품을 잃어버리면 새로 그려서 채워주겠다고 피카소도 말했을것 같다.

  겉은 세계적인 피카소 미술관이 분명한데...... 속은 이렇게 동네 사랑방이 아닌가?

  앙티브의 해변은 니스나 깐느나 모나코의 해변과는 전혀 다르다.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멋진 아가씨들이 물놀이 보다는 썬크림을 바르고 비치 발리볼을 하거나 해변을 산책하는, 아찔한 자태를 한껏 뽐내기에 더 열심인 그런 해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앙티브의 바다는 그냥 바다멍때리기에 그만이지 싶다. 바위 해변이나 방파제에 걸터 앉아 먼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바위에 부딪쳐 산산히 부서지는 하얀 포말의 수채화를 보거나 모래 해변을 쓸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바다를 마냥 바라보기에 참 좋은 해변이라고 해야겠다.

  늘 같은듯 하지만 뭔가 다를것 같고, 자꾸 바라보면 지루할 것 같지만 또 그렇게 지루하지도 않은........ 참 앙티브스럽다고 해야 할까나?

  구도심 풍경도 그렇다.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풍경과 그리 특별할 것도 색다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방스 구도심 사진과 생폴 드 방스 구도심 사진과 앙티브 구도심 사진을 섞어서 늘어 놓으면....... 아주 특별한 건물이 아니고 그저 흔한 낡은 골목길 사진이라면........ 구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다 비슷비슷한고 같은듯 하면 다 아닌것도 같고........ 물론 짧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 같음과 다름을 현지인들이 이야기하는만큼 구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가만히 세세하게 들여다 보면 적어도 나는 어느정도 찾을 수 있을것 같다.

  방스나 생폴은 가파른 언덕에 성채를 짓고 그 좁은 터전에 빼곡히 건물들이 들어서다보니 우선 골목길이 유달리 좁고 가파르다. 하지만 아티브는 성채에 갖힌 도시도 아니고 비교적 해변이라는 너른 영역에 세워지다보니 골목길이며 광장이며 건물들의 배치나 구조가 좀 넉넉하다고 해야하나....... 공간이 주는 어느 정도의 해방감이라고 해야할까? 아기자기함 대신 뭔가 넉넉함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코 앞에 펼쳐지고 있는 바다가 주는 느낌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오후가 되자 바람은 더 쌀쌀해졌고 세어졌다. 거기다 다시 빗방울까지 뚝 뚝 떨어진다.

  우리는 서둘러 분수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시청이 있는 광장을 지나면 니스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발걸음을 돌려야만 하겠다. 앙티브를 절반도 못만나 보았고........ 무척이나 아쉽다. 또 올 수 있으려나?

 

  카페에 들려 지치고 추운 몸과 마음을 잠시 녹이면서도 연실 속내는.......... 웃고는 있지만 이게 웃어도 웃는게 아니여!

   그.넘.의.패.딩.만.하.나.챙.겨.왔.었.으.면.아.무.문.제.가.없.었.을.텐.데.

  오늘은 많이 힘들고 지친다. 컨디션이 정말 최악인것 같다.

  아쉽지만........ 굿바이 앙티브.

-- 다음 이야기는 모나코에 잠시 들리고, 니스와 작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일과 병행하다보니 조금 바쁘네요.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