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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멜랑꼴리 오디세이> 프로방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를 찾아서.... 방스

by 피안재 2023. 8. 14.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이탈리아 국경에 이르는 해안 지방을 일컬어 프로방스(Provence)라 부른다. 기후는 온화하고 따사로우며 감미로운 바람은 라벤더 향기를 품고 있다. 눈부신 태양의 작은 알갱이들이 무한정 쏟아져 내리는 해변은 아름답고 올망졸망한 작은 도시들은 빈티지한 아름다움과 은근한 멋을 감추고 있다.

  이런 프로방스 중에서 칸(Cannes)을 시작으로 하여 앙티브(Antibes)를 지나고 니스(Nice)를 거쳐 에즈(Eze)와 모나코(Monaco)를 지나 망통(Menton)에 이르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해안을 특별히 코트다쥐르(Cote d’Azure)라고 따로 구분하여 부르니 ‘창공의 해안’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트다쥐르가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안지방을 별도로 구분하여 부르는 명칭이라면 프로방스는 코트다쥐르 해안 지방에다 내륙의 론 알프 지역을 포함시켜 부르는 너른 의미의 명칭이라고 이해하면 결코 틀린 설명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코트다쥐르와 프로방스를 구분하는 한 방편이자 그 경계선에 있는 마을이자 작은 도시가 바로 생폴 드 방스(Satnt Poul de Vence)다. 생폴 드 방스가 바로 코트다쥐르의 시작이라는 해변도시 칸과 인접한 앙티브의 안쪽 내륙의 언덕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생폴 드 방스는 엄연히 내륙의 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니 코트다쥐르라 부르기가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자니 앙티브와는 거의 붙어있는 하나의 도시라 해도 무방할 것 같고........ 하여 프로방스와 코트쥐다르를 굳이 구분하는데 있어서 경계로는 딱 이라고 해야 할하겠다.

  오늘은 니스 인근의 소도시 여행으로 생폴 드 방스를 방문하기로 계획된 날이다.

  에즈를 방문했던 어제는 그나마 화창한 햇살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아침 산책으로 해변을 거닐면서 하늘빛을 살펴보니....... ‘오늘 날씨에 대한 기대는 애초 접어야 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니스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가능한 부지런히 더 돌아다닐 수밖에.......

  생폴 드 방스를 가기 위해선 니스에 400번이나 9번 버스를 타면 된다는 사실을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공부를 통해 충분할 정도로 이미 숙지하고 있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용했다는 코스 안내에 따라 가리발디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의 버스 정류장 안내표지판을 다 뒤져봐도 400번 9번 버스 표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헐!!!

  ‘니스의 모든 대중교통은 가리발디 광장이나 메세나 광장을 반듯이 통과한다’라고 익히 들었었고 알았음에도, 정작 400번과 9번 버스 안내는 어디에서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몇 차례 질문을 시도했는데...... 이 이른 아침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다.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도 이정도 난처한 상황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럼 메세나 광장엔 있겠지. 그래도 니스의 중심 번화가니까’하며 자리를 옮겼는데....... 광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버스정류장 어디에도 400번과 9번 버스에 대해서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아울러 이곳에서도 언어장벽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우리 앞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었을 뿐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여기가 니스가 아니라 다른 도시이거나, 내가 공부했던 안내서들이 다른 도시의 내용을 잘못 편집해 니스 편에 삽입해 놓은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혹시 400번과 9번 버스회사가 파산해서 노선이 없어졌나? 그렇다면 다른 회사가 다른 노선이라도 대체했을 것 아니야? 버스 기사에게 직접 물어보자.’하면서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마다 쫓아가 운전기사와 대화를 시도해 보는데 ‘Excuse me’만 꺼내면 벌서 손사래를 치며 창문을 닫아버린다. 얼씨구??????

  나이 지긋한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가 도착하기에 허겁지겁 다가가 무조건 ‘넘버 400 오아 넘버 9’을 외쳐대니 어찌어찌 알아들은 것 같은데........ 돌아오는 장황한 답변이 쌩판 처음 들어보는 불문학 강의 수준이다. 다만 표정과 손짓으로 보아 400번 9번 버스는 이곳에 없다는 뜻임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하여 ‘어디가면 400번과 9번을 탈 수 있느냐’고 내방식대로 표현을 해 대니.......기사가 이번엔 프랑스 고전문학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오! 마이 갓!!!!!!

  평소 나는 북한이나 시리아나 지금의 미얀마나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지구상의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정치적 불허 지역이나 전쟁터만 아니면 어디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유우방이자 여행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서 실로 엄청난 좌절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양반이유? 어쩌자고 저에게 지금 이런 시련을 내리신단 말인가요? 제발 이러진 마세요. 저 혼자 여행할 때는 어떻게 하셔도 좋겠지만....... 아내랑 있을 때는 그러지 마세요. 정말로 좋은 여행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제발요...... 그런데 맨날 이러시면 정말로.......)

  그런 내 간절함이 높은 곳에 닿았음일까? 아니면 평소 내가 착하게 살아서였을까? 그것도 아님 내가 전생에 나라를 서너 번 구했었음일까?

  ‘Where are you going?’

  버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참으로 반가운 소리였다.

  ‘Saint Paul De Vence. Plase, show me the way.’

  버스 안쪽 자리에서 한 아주머니(대략 70세를 넘긴 듯 보이는)가 앞으로 나오시면서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신다.   그러더니 다시 운전기사와 불어로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예전엔 여기에서 생폴 드 방스에 가는 400번과 9번 버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노선이 바뀌어서 더 이상 400번과 9번 버스는 이제 여기까지 오질 않아요.’

  ‘그럼 생폴 드 방스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여전히 400번이나 9번 버스를 타야하는데....... 파크 포닉스(Parc Phœnix) 터미널에 가면 탈 수 있어요.’

  ‘처음 들어보는 터미널 이름이네요. 어떻게 가야 하나요?’

  ‘니스에 올 때 비행기 타고 왔어요? 그 비행기가 착륙했던 공항의 반대편에 있어요. 공항과 아주 가까워요. 트램 1번선을 타고 파크 포닉스로 가면 터미널이 바로 종점이라 찾기 쉬울거예요. 파크 포닉스 터미널이 생긴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후로 버스 노선이 바뀌기 시작했지요. 니스 사람들도 바뀐 노선이 아직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찾아 갈 수는 있겠는데...... 터미널에서 샐폴 드 방스 가는 버스는 자주 있을까요. 여기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거든요.’

  아주머니가 다시 기사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비수기엔 니스 인근의 모든 버스 운행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은 알 수가 없단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현지의 사정이 달라진 것이지 무엇이 잘못되거나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어찌되었던 차질은 있었지만 여행은 계속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거듭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더불어 운전기사에게도 배려해 주심에 감사를 표했다.

  아주머니와 운전기사가 무어라 계속 이야기 나누면서 버스의 문이 닫히고 출발을 시작했다. 우리가 뒤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데 글쎄...... 다시 버스가 서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더니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빨리 오라고 한다. 그리고 얼른 올라타란다. 이 버스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기사에게 들었던 기억에 망설이자 아주머니가 ‘나를 믿고 얼른 올라 와’하시고 운전기사 분까지 타라고 손짓을 보내온다.

  당황스런 표정으로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자 아주머니가 다가와 설명을 해 주신다.

  이 버스는 주로 니스 시내 가까운 주변을 순회하는 노선 버스였다. 그런데 지금 가고 있는 종점이 니스 공항을 좀 지나가는 곳이란다. 포닉스 터미널에 들리지는 않지만, 터미널에서 출발한 400번 버스나 9번 버스와 종점까지 사이에 서너 개의 정류장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 하여 그 정류장 중의 한 곳에 내려줄테니 거기에서 기다리다 샐폴 드 방스를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깊은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어디서 왔어요?’

  ‘코리아요. 당연히 남쪽 코리아구요.’

  ‘부부지요?’

  ‘네.’

  ‘함께 손 꼭 잡고 여행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여서 내가 나섰던 거예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38년 되었어요.’

  ‘자녀는 얼마나 두었어요?’

  ‘아들 하나 두었는데 예쁜 색시랑 장가를 가서 지금은 무척 귀여운 손녀까지 둘 있어요.’

  ‘니스엔 얼마나 머물렀어요?’

  ‘사흘째예요. 어제는 에즈에 다녀왔어요.’

  ‘에즈도 예쁘지요. 그런데 지금 생폴은 어떻게 알고 찾아가는 거예요?’

  ‘저희가 여행을 아주 즐겨하는 편이에요. 니스를 찾아왔지만 사실 니스 보다는 코트다쥐르나 프로방스를 느껴보고 싶었어요. 사실 칸이나 모나코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거든요. 오히려 앙티브나 생폴 드 방스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과 그 지역의 오랜 역사의 향기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싶어요. 그래서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지금 생폴 드 방스를 가려고 해요.’

  ‘나는 이 버스의 종점인 니스와 앙티브의 중간에 위치한 해변 가에서 남편과 텃밭을 가꾸며 노후를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앙티브와 생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그래요. 맞아요. 코트다쥐르에서 정말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면 앙티브와 생폴을 우선 적으로 꼽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주책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 나만의 비밀을 하나 알려준다면........ 남편과 나는 앙티브나 생폴 보다도 조금 위쪽에 있는 마을인 방스를 진정한 코트다쥐르 최고의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름다움이나 역사의 향기나 앙티브나 생폴에 뒤질게 하나도 없는데다가........ 방스에는 진정한 프로방스 사람들의 평온한 삶과 냄새가 가득 배어 있어요. 다른 지역에 비해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코트다쥐르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곳은 아마도 방스라고 나와 남편은 생각하고 있어요.’

  ‘방스는 멀리 떨어져 있나요? 어떻게 가요?’

  ‘생폴의 윗마을이 방스예요. 400번 버스나 9번 버스의 종점이 방스예요. 그냥 타고 올라가서 둘러보다가 시간 조절을 해서 돌아오면서 생폴을 보면 충분할 거예요. 혹 생폴을 보고나서 오늘 중에 앙티브를 보려 생각했다면 시간이 부족하겠지만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생각이니까 참고해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버스가 니스의 코트다쥐르 공항을 지나고 있었다. 아주버니가 반대편을 가리키기에 바라보니 버스가 여러 대 얽혀 정차해 있고, 그 사이로 빨간 트램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파크 포닉스 터미널이었다.

  어!!!!! 저만치 앞쪽의 정류장에 이미 정차해 있는 버스의 푯말에 400번이라는 숫자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만 본 것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도 운전기사도 앞 버스를 가리켰다. 우리가 탄 차가 정차하려는데 앞차가 막 출발하려 한다. 그러자 기사분이 라이트를 번쩍이며 경적을 빵빵 거렸다. 우리를 쳐다보면서 얼른 건너가서 타란다.

  경황 중에 엉거주춤 감사 인사를 전하며 죽어라 뛰어가 400번 버스에 올라탔다. 고마운 사람들이 탄 버스가 앞질러 지나가는데 우리는 체면이고 뭐고 그들을 향해 죽어라 손을 흔들었다. 벅찬 감동에 눈물이 솟아 날 지경이었다. 그 버스는 우리를 여기까지 공짜로 태워 주었다.

  이제 그 아주머니와 운전기사의 얼굴까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진한 감동은 여전히 생생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분이유? 그분들 잘 부탁해유? 아멘!’

  방스(Vence)는 애초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방스를 찾게 된 이유는 오로지 딱 하나, 그 아주머니의 소개 때문이다.

  산언덕길을 꼬불꼬불 한참 올라가던 버스는 생폴 드 방스 입구에서 멈추어 섰다.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여기서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챠밍여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멋쩍은 미소만 지어보이며 생폴 버스 정류장을 그대로 통과시켜 버렸다. 버스를 가득 채웠던 여행자들이 거의 전부 다 생폴에서 내렸다. 버스에는 손님이 우리와 다른 젊은이 두 명이 전부였다.

  그렇게 채 10분 정도(5km 거리)를 더 올라가자 제법 커다란 마을(아주 작은 도시)이 나타났고 꽃밭으로 조성된 회전 교차로를 지나 너른 공터에 버스가 멈춰 섰다.

  400번 버스의 종점....... 그러니까 여기가 바로 방스(Vence)인 것이다.

  예정에 없던 우리의 방스 여행은 또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방스(Vence)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길 건너편인 카탈리나 알리나트(Square Catherine Alinat) 공원에 벌어지고 있는 상설 재래시장이었다. 방스는 흔히들 예술의 도시 혹은 물의 도시라고도 불리지만 기실은 방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재래시장의 도시라는 사실이다.

  코트다쥐르 지역에서 상설 재래시장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 본다면 그것은 곧 이 마을의 역사와 시장의 유래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해안 지역인 코트다쥐르와 알프스 산악지역 론 알프의 경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한 고대에서부터 이미 방스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인근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는 뜻이다.

  이곳 역시 페니키아인들에 의해서 적의 침략으로부터 취약한 해안 방어를 보완하기 위하여 내륙 깊숙한 언덕 위에 마을을 건설하였고, 포에니 전쟁 이후에 이곳을 점령한 로마에 의해서 군사 요충지로서의 요새 마을이 건설되었으며, 타 부족의 침략이나 해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로마 군대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마을 형성을 넘어 작은 주요 거점 도시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25년부터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10년 이상동안 이곳 방스를 중심으로 코트다쥐르 해안지방 정복전쟁을 벌여 대부분의 영토를 로마에 편입시켰고 점령지에 로마인들을 정착시켰다. 그 중심에 바로 방스가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면 저절로 시장이 벌어진다. 이어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방스는 이렇게 해안지역과 산악지역의 경계에서 상업중심의 도시로 점차 번창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마군대의 주둔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로마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 점차 도시로 발전해 나가게 된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인근에 다른 소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런가장 대표적인 결과과 바로 생폴 드 방스(Saint Poul de Vence)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코트다쥐르를 찾는 여행자들조차도 방스(Vence)와 생폴 드 방스(Saint Poul de Vence)를 똑같은 하나의 도시로 알고 있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방스와 생폴 드 방스는 엄연히 다른 마을이자 소도시이다. 비록 인근인 약 5km 정도 떨어져 위치해 있지만 엄연히 다른 행정구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지만, 두 지역의 현지인들 입장에선 ‘그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먼 곳의 아주 이질적인 타 도시를 대하듯’ 한다. 이 말인 즉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두 도시간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방스 사람들 마음속에는 생폴 드 방스가 낳아서 잘 길러주었더니 은혜를 박차고 뒤쳐나간 몹쓸 놈 정도로 생각을 하고, 생폴 드 방스 입장에선 그것은 모두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로 지금은 분명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한 생폴 드 방스 덕분에 그나마 관광사업으로 인한 잉여를 얻어가는 쫄딱 망한 큰집 정도로 폄하해 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시에나가 영원한 라이벌이자 앙숙이었듯이, 방스와 생폴 드 방스 역시 그런 사이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를 다시 설명한다면........ 세계 유수의 유명인과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생폴 드 방스를 찾아오고 ‘예술의 도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찬사를 늘어놓았고 여전히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생폴 드 방스의 여행이나 체류를 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런 떠들썩한 소문과 화제를 만들기 싫어하는 예술가와 유명인들은 슬며시 방스를 찾아왔다. 체류하다 떠났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남은 자신의 생애를 조용히 숨어 지내듯 방스에서의 한적한 삶을 선택했다. 회고록이나 유언장에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행복한 도시가 방스다’ 라고 적었고 남겼다.

  이렇게 다르다.

  방스와 생폴 드 방스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인 듯 비슷해 보이지만, 다가가서 가만히 살펴보면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물론 어디가 더 좋은지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의 몫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견해로는....... 생폴 드 방스는 여행자들이 찾아와야만 하는 역동적인 이방인들을 위한 관광도시다. 하지만 방스는 정적이며 온전히 삶의 질을 걱정하는 현지인 스스로를 위한 아주 소박한 삶의 휴식처 같은 도시라고 말하겠다.

  내륙에 속하지만 방스는 유독 온화한 기후와 수질이 좋은 식수를 가진 곳으로 널리 알려져 몸이 약하거나 병든 몸을 휴양을 통해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찾아드는 마을이었다. 로마 이후로 건설되고 거듭 중축된 성채 요새 덕분에 비교적 전쟁의 수난에서도 비켜나 있을 수 있었다. 거기다 고대 이래로 프랑스 카톨릭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마을의 시작에서부터 시장이 활성화 되었고, 주변으로 올리브 농장과 포도 농장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 모든 것을 이웃주민들인 자신들만을 위해 활용하며 지내기를 원한다.

  방스의 인구는 지금도 채 이만 명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여전히 완벽한 자급자족 마을이다.

  하지만 방스는 프랑스의 그 어느 도시 어느 마을보다 풍요롭다. 처음 사람들이 모여들던 로마군의 주둔지 시절부터 언제나 모든 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아주 특별한 축복받은 역사를 그들은 가지고 있다. 그런 절대 부족하지 않고 넘치도록 정도까지는 풍요롭지 않게 스스로 조절해 나가면서 조용하고 아늑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해 나갔다. 그들에게는 개방이나 부의 축적보다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있는 삶의 질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곳이 바로 방스다.

  그런 결과로 방스의 야외 재래시장은 이젠 프랑스에서도 매우 유명한 명소다.

  거의 매일 지금처럼 재래시장이 펼쳐진다. 둘러보니 재활용을 통해 나온 중고 생필품과 옷가지들이 많이 있다. 방스의 재리시장이 정작 유명한 것은 요일별로 다른 중요 상품들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화요일엔 꽃시장이 서고, 수요일엔 야채와 과일시장이 활성화 되고 목요일엔 가전제품이나 가구시장이 열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금요일에 열리는 빵과 치즈 등의 유제품 시장이다. 거의 전부가 방스 인근의 농촌에서 현지인들이 직접 생산하거나 가공한 농축산 가공식품들이다. 특히 빵 시장이 유명하다. 아마도 방스에 사는 현지인이라면 반듯이 금요 시장에 나와서 한 주일 동안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빵을 한아름씩 사서 돌아간다고 한다. 등장하는 빵의 수량과 빵을 사서 돌아가는 현지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또한 진풍경이라 한다. 방시 시내의 빵집이나 식당에서 파는 빵 보다도 금요 재래시장의 빵이 훨씬 맛있고 저렴하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간 날의 재래시장은 지극히 한산하고 허접해 보였다. 낡은 옷가지를 고르는 사람 몇이 전부였다. 비수기인 한겨울이고 가장 한산한 요일이었던 듯 보인다.

  마주치는 재래시장의 현지인들은 대부분 가정주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노인들이다. 대부분이 지극히 평온한 모습과 표정들이다. 어디나 똑같듯이 품질이 좋고 저렴한 옷가지와 식료품들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재래시장을 지나 올드 시티로 향했다. 거리는 제법 한산한 편이다.

  다만 문제는 날씨였다. 옅은 구름 사이로 해가 드러났다 가렸다 반복하고 있지만 간간히 아주 매서운 바람이 어디선가 몰아쳐 들어와 체감온도가 아주 낮은 게 문제였다. 춥다.

  저만치 길가 모퉁이에 눈에 띠는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는 현지인과 나오는 현지인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잠시 추위를 피해서 몸이라도 녹이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는데........ 얼씨구?

  챠밍 여사가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 모서리에 있는 외부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안 들어가?’

  ‘여기도 괜찮잖아? 모퉁이 담벽이 바람 막아주고 조금이지만 햇살이 비추고 있잖아.’

  ‘헐!!!! 그새 당신도 프랑스 현지인 닮아가는 거야?’

  ‘궁금했어. 저 사람들은 왜 한웅큼 햇살만 있으면 하나같이 마냥 넉넉해지는지 말이야.’

  ‘프랑스인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우리하고는 다른.......’

  ‘아닌 것 같아. 나도 이런 게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

  ‘헐!!!! 들어가서 커피 가지고 올게.’

 

  ‘한웅큼 햇살에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마냥 행복해 하는 사람들’과 ‘그런 프랑스만의 독특한 카페문화에 대해서는 마르세유 여행쯤에서 다시 거론을 해 보겠지만......... 다행히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를 이해하는 카페주인을 만나서 잘 쉬었다가 다시 방스의 올드 시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아뿔싸’라고 해야 하는 걸까?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멋지고 너른 광장의 한쪽으로 겨우 스며드는 한주먹의 햇살 아래 수북하게 모여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동네 반상회 뒤풀이라도 하는 것일까? 가스난로가 불게 타오르는 레스토랑 실내를 내버려두고 왜들 저렇게 밖에서 호들갑들을 떨고 있는 것일까? 껴안고 볼을 맞추고 와인 잔을 부딪치며 왁자지껄 한바탕 작은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다. 테이블마다 안주로 올라있는 굴과 홍합과 문어숙회가 너무도 먹음직스럽게 느껴진다.

  ‘에이 씨. 조금 전 카페가 아니라 여기서 쉬었으면....... 와인 한 잔에 굴 하나는 얻어먹었을 텐데........ 저기 빈 와인 병 나뒹구는 것 좀 봐. 저게 시방 몇 병이여?’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이 대단히 적극적이고 더할 수 없이 평온한 모습들이다.

  방스 올드 시티의 시작점이자 이 도시의 심장이랄 수 있는 그랑 자르뎅 광장(Place du Grand Jardin)이다. 방스의 모든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기념비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2019년에 대대적으로 벌어진 도심 재개발 사업의 결과로 그랑 자르뎅 광장은 지금의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본래는 좁고 굽어진 도로가 얽혀있는 유서 깊은 전통 재래시장이었던 것을 카페와 기념품 상점과 명품 거리에 둘러싸인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

  방스 고대도시는 14개의 성문이 나있는 튼튼한 로마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명실상부 방스의 중심 관문이랄 수 있는 페이라 성문(Place du Peyra) 앞에 펼쳐진 광장이 바로 그랑 자르뎅 광장이다.

  방스는 고대 로마의 군대가 주문하면서 탄생된 도시이다.

  프로방스 지역의 중요 전진기지로 로마군은 이곳에 처음 목책을 둘러치고 요새를 만들었다. 그러자 전쟁과 약탈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민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군대가 드나드는 가장 중요한 통로 앞에 자연스레 광장이 생겨났고 이곳에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광장(시장)을 중심으로 서서히 마을이 커져가고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진기지였던 목책은 석축으로 성벽을 만들어 보다 완전한 요새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로마군이 주둔하는 방스 요새의 관할지역이 튼실해지고 넓어지면서 차차 인근으로 생 폴드 방스, 앙티브, 니스와 같은 새로운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로마군이 주둔하기 이전에 먼저 방스의 군사적 중요성을 알아보고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 사람들이었다. 그리스 군대가 먼저 주둔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도시를 건설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리스는 방스에 여러 개의 신전을 지었는데, 여기 그랑 자르뎅 광장과 성채 안의 노틀담 대성당 자리에는 확실하게 그리스 신전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유적발굴에서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곳의 장송에는 마르세유 기둥이라 불리는 석주가 나란히 놓여있다. 전해 져오기는 본래 방스에는 본래 세 개의 마르세유 기둥이 존재했었는데, 언제인가 하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현재 남은 두 개가 두 곳의 그리스 신전 터로 추측되는 곳에 남아있는 것이다. 하여, 속속들이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방스에는 세 개의 그리스 신전이 건축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마르세유 기둥의 이름이 왜 마르세유인지도 불분명 하다. 마르세유에서 제작되어 운반되었다는 설이 있고, 마르세유에 있는 신전의 기둥을 몇 개 가져다 이곳의 신전 건축에 보완재로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용도에서도 신전 기둥의 하나였다는 설과, 그리스 신전의 안내문 용도로 설치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로마가 로마 가도의 표시와 거리 측정을 위해 설치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2019년의 도시 재개발 사업의 과정에서 도로 확충과 공원 조성을 위해 광장에 남아있는 고대 유물인 분수와 마르세유 기둥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방스의 관문이랄 수 있는 페이라 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왼편으로 아주 멋진 분수를 만날 수 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비교적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페이라 분수(Fontaine Place du Peyra)다.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멋들어지게 생겼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주관적 관점에서 보자면 방스의 랜드마크로 페이라 분수를 꼽겠다.

  방스에는 약 20개 정도의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위치나 규모나 아름다움이나 활용도로 보았을 때, 가히 페이라 분수가 으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페이라 분수의 다른 이름은 오트 폰테인(Haut Fontaine)으로 ‘높은 분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대가 가장 놓은 곳에 위치한 분수라는 뜻이다. 1439년에 처음 이 자리에 분수가 설치되었다가 서너 차례 교체되었으며, 최종 1822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방스의 랜드마크 라고 해야겠다.

  방스에서 분수가 유명한 것은, 고대 이래로 방스의 미네랄워터가 상처를 낳게 하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휴양지로서 꾸준히 각광받아 온 것에서 이미 잘 알 수 있다.

  방스는 옛날부터 좋은 물이 아주 풍부한 곳으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방스는 해안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가파른 산자락 위에 건설된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 도시다. 세 개의 강(밀반.루비안. 카뉴)이 방스의 인근을 휘감아 싸고돌 듯이 흘러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발치 아래로 낮은 곳을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로마의 군대가 먼 강의 상류에서부터 수도교를 건설해서 물을 끌어들인 도시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솟아난 산자락에 올라앉아 있는 도시가 어떻게 풍부한 수량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방스 구도심을 돌아보면서 사방에 설치된 분수를 살펴보고, 성채에 올라 인근의 지형을 관찰해 보면 볼수록 그 많은 물이 다 어디서 나오는지가 궁금해 졌다. 지하수를 파서 전기로 강력한 모터를 발전소 수준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 나도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파고 또 파보았다. 하여 마침내 찾아냈다.

  역시나 ‘위대한 로마군대 만세’ 라는 결론이 나왔다.

  로마의 군사적 주둔지인 목책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시가 형성되면서 물의 부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등장해 온 것이 로만 수도교였다.

  하지만 이번 로마의 군인들은 전혀 다른 판단에 도달했다. 군대 주둔지의 위쪽 산자락을 낱낱이 살핀 결과로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엄청난 숫자의 옹달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용천수가 솟아나는 샘의 숫자가 정확하게 52개나 되었다. 로마 군인들은 옹달샘을 파서 가다듬고 한 방향으로 흘러내려가게 물꼬를 튼 다음에 돌로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이렇게 만든 여러 개의 샘에서 흘러나온 물을 커다란 바위 저장고에 가두고, 이런 여러 개의 저장고 물을 최종적으로 마을 안쪽의 거대한 저수조에 보관시켰던 것이다. 모든 시설이 지하에 감추어졌다. 그 물로 도시생활을 가능케 했고 분수를 만들고 빨래터를 만들었다. 거기다가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난 양질의 용천수였던 탓에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좋은 약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고대의 상수도 시설이 2천년이 지난 지금에 까지도 버젓이 온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바위산자락에 올리브 나무를 심고, 요새 주위로 포도나무와 오렌지 나무를 군인들이 심었다.

  산자락에 올라앉다시피 한 아주 작은 마을 방스가 이 순간에도 완전 자급자족의 풍요를 누리며 여유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위대한 사람들은 바로 로마의 군인들이었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희한한 해프닝이랄까?

  방스가 수로 공사를 통해 완벽하게 생활용수를 확보할 수 있게 지시하고 지원한 황제가 바로........ 네로 황제였다는 사실에서는 나도 모르게 실소를..........ㅎㅎㅎ

  이런 살기 좋은 방스에 프랑수아 1세 황제의 시대에 교황이 방문을 했다. 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해 궁전 터(방스 박물관)에 물푸레나무로 기념식수를 했는데........ 방스의 나무(Tree of Vence)라 하여 기념수로 보존되고 있는데........ 참 별 볼 일없게 생겼다. 아니면 제대로 폼나게 가꾸던가....... 우리나라 시골마다 당산나무라 해서 멋진 나무들이 차고 넘쳐나는데........ 헐. 하나 기증해 줄까?

  거기다가 그게 멋지다고 유명한 화가들이 달려들어 작품을 만들고....... 주변의 산자락을 둘러보아도 쓸 만하거나 멋진 산봉우리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나붙어 있는 그림안내판의 작자 란엔 하나같이 어마 무시한 유명화가들이다. 우리 동네 남산 정도면...... 방스에선 금강산 정도 되지 않을까?

  하긴, 거긴 거기고 우린 우리니까........ ㅎㅎㅎㅎ

  ‘아! 프랑스사람이 내 고향 충주에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다면 틀림없이 지금의 나랑 같은 생각을 하겠구나?’

  방스의 구도심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내가 떠올렸던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고향 충주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 살기에 대한민국에서 충주만한 곳이 또 있을까?’라고 늘 자부하는 사람이다.

  인구가 적다보니 경제적이나 문화생활면에 있어서 그다지 화려하거나 편리하거나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동서남북 어디로든 차로 십분만 나가면 어디에서든지 강이나 산이나 계곡을 마주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가뭄으로 부터나 태풍으로 부터나 지진으로 부터나 온갖 자연재해로부터 항상 안전하고 지극히 만족스러운 곳이 충주가 아닐까 싶다.

  경제 문화적 부족이야 살아가는 당사자가 어느 정도 수준의 기대치를 놓고 만족도를 따지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나은 것은 나은 대로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두고 인정하면서 삶의 질이나 기대치 면에서 따져본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곳이 바로 충주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방스를 돌아 나오면서 내리게 된 결론은........ ‘아하!!!! 여기는 프랑스의 충주구나.’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없이 마냥 쉬고 싶을 때....... 사나흘 그냥 조용히 머물렀으면 좋겠다!

 화려하지도 수많은 여행자들로 넘쳐나 붐비지도 않는 아주 작고 소박한 시골마을의 인상을 품은 방스지만 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옛 향수가 묻어나는 그런 아주 정겨운 공간이다. 나도 나이가 들만큼 들었음인지 왠지 모르게 이런 분위기에 점차 빠져드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살다가...... 또 살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어떤 정리를 할 시점이 되었다 싶어지면..... 오늘의 방스를 많이 그리워할 것만 같다.

  오늘 일정이 좀 빠듯한 이유로 재촉하듯 서둔 발걸음으로 방스 구도심을 둘러보고 다시 그랑 자르댕 광장(Place du Grand Jardin)에 닿았을 때 그곳에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천카페에는 아침보다 훨씬 많은 현지인들이 몰려나와 싸늘한 바람결이 매서운 노천에 그대로 나와 앉아서 커피와 와인을 마시며 왁자지껄 호들갑들을 떨고 있다. 난로가 활활 나오르고 있는 실내는 마다하고 저렇게 목도리로 칭칭 감싸고 패딩의 옷깃을 올려 세우면서 까지 기어코 실외를 고집하는 저들의 속내를 모두 이해하기가 적어도 내게는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헐!!!!!

  광장의 도로변으로 아침엔 보이지 않던 커피 트럭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중에 한 곳이 엄청 유명한 곳이었는지 방송 촬영을 하고 있었다. 방송 관계자 여럿이 커피 트럭을 촬영하더니 이번엔 주변의 현지인들을 하나 둘 인터뷰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커피 트럭을 유심히 살펴보고 인터뷰 상황을 엿보기도 했는데...... 난 도무지 모르겠다. 전혀 특별해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은데 말이다. 그렇담 커피를 직접 마셔봐야 그 해답을 찾겠는데...... 방송 촬영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하여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방스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버스 터미널이자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공터에 왔는데 마냥 썰렁하기만 하다. 그리고 터미널 마당 건너편으로 커다란 푸드 트럭이 하나 등장하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지나는 학생들 말로는 프랑스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명물이라고 한다. 궁금해 다가가니 한 젊은이가 아주 환한 미소로 맞아준다. 프랑스어로 적혀있는 입간판과 메뉴판에 난감해하니 이내 친절한 영어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앞치마에 손을 훔치며 차에서 내려온 청년은 아주 친절하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푸드 트럭과 시그니처 메뉴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을 해준다. 더하여 내 배낭에 달린 태극기를 알아보고는 자신의 가족 모두가 K-POP에 열광하는 팬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트럭에서 울려나오는 음악도 분명히 한글 가사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완전 노친내라 K-POP을 들으면서도 연주부분만 대충 들을 뿐이지 그게 누구의 무슨 노래인지는 저렇게 열광하는 외국인에도 전혀 미치지 못한다. 어쩌겠는가? 우리는 7080 세대인 것을........

  청년이 권하는 메뉴로 주문을 했는데...... 청년이 트럭 위쪽을 올려다보면서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 소리치자 이내 트럭 위쪽 창문으로 내 또래거나 아님 조금 위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역시가 환한 미소와 함께 모습을 내밀려 손을 흔든다. 이 푸드 트럭의 창업자이자 청년의 아버지인 메인 셰프다. 이어서 젊은 사내 두 명이 번갈아 모습을 드러내는데 청년의 형제들이다. 가족 소개를 해준 것이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푸드 트럭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전담하는데 성수기 주말에는 나오셔서 도와주신단다. 이년 쯤 후에는 독립해서 마르세유에 분점을 하나 낼 계획이란다. 그래서 내가 ‘이삼년 후에 다시 올 테니 그땐 마르세유에서 만나자고 했다.

  정말로 맛있다. 혹시 방스에 여행을 하신다면 카페나 레스토랑보다도 터미널 주차장의 푸드 트럭을 꼭 한 번 이용해 보시라고 강추하고 싶다.

  푸드 트럭의 음식을 맛보고 길 건너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있는 상황에 푸드 트럭 청년이 고함을 치며 손가락을 흔들며 무엇인가를 가리킨다.

  터미널 밖의 정류장에 시내버스가 하나 멈춰서고 있었다. 저 버스를 타도 생 폴드 방스로 갈 수 있다는 신호였다. 우리는 서둘러 뛰어가 버스에 올라탔다. 물론 손을 흔들어 답례도 했고 말이다.

  버스는 꼬불꼬불 언덕길을 쏜살처럼 내달렸다.

  채 십 분이 안 되었을 즈음에 버스가 산모퉁이에 멈춰 섰고 차문을 연 기사분이 아무 말도 없이 옅은 미소 속에 고개 짓으로 우리보고 내리라고 신호를 보내주었다.

  내리라니 내릴 수밖에........

  그곳이 바로 생 폴드 방스였다.

  우리의 다음 여행이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 생 폴드 방스 이야기로 이어지겠습니다. 바쁘게 지내고 있는 처지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