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멜랑꼴리 오딧세이> 우린 지금 니스(Nice)로 간다

by 피안재 2023. 7. 9.

 

 

 

 

  살면서 어쩌자고 이런 일이?

  ‘저기,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어르신?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어쨌다고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해괴망측한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도대체 왜요?’

  헐!

  정말 어이가 없군!

  갑자기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위리안치란 심각한 죄를 저지른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형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주로 남해의 고도나 제주도에 유배를 보내놓고도 미심쩍어서 죄인의 귀양처소(유배지 감옥) 둘레에 빼곡하게 가시가 돋은 탱자나무를 심어 가두고는 탱자나무 울타리 밖으로 출타를 금지시키는 형벌이다.

  심각한 죄를 지어서 차라리 죽이려면 단칼에 죽이던지 할 것이지, 멀리 섬에 유배를 보냈으면 산책 정도는 하면서 반성을 하던 재기를 모색하던 할 터인데, 섬에 가두어 놓고서도 모자라 또 탱자나무 울타리로 가두어 정서적 고립까지 시키다니 참으로 하릴없이 너그러운 영감탱이 성은에 감복할 따름이다. 쪼잔하긴.......

 

  ‘저 놈을 파리(Paris)에 위리안치 시켜라!’

  ‘엥? 영감님. 시방은 21세기라니까요? 21세기에 위리안치가 어디 있어요?’

 

  이게 지금 꿈일까? 아님 생시일까?

  핸디 폰을 열면 우리가 분명 2023년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다고 분명하게 알려주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지금 분명히 위리안채 되어있는 형국이 아닌가?

  또 헐!

  이런 어처구니가.......

 

 

  파리가 완전히 멈춰 섰다.

  모든 대중교통이 완전히 차단되고 멈춰선 파리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걷는 사람들뿐이고 달려가는 것은 자전거가 전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대인들의 목숨줄이라고 할 수 있는 핸디 폰과 인터넷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가용 자동차와 지하철과 시내버스와 택시가 완전 멈춰 섰다.

  경찰 기동타격대 차량과 앰블런스 차량만이 경광등을 켜고 혼돈의 도심 속을 지나간다.

  혼돈이라 생각하면 아주 극심한 혼돈 상태임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속을 좀 들여다보면 그런 혼돈 속에서도 무엇인가 어떤 충분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나름의 룰이 느껴진다. 우선 당황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다들 나름의 어떤 대비책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일을, 혹은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비규환가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혼란과 북점임과 당혹스러워하는 모습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제와 그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한 두 시간 전의 평온한 일상과 작금의 사태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태도들이다. 목청을 돋워 말싸움이 벌어지거나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도심공황의 사태라고는 눈을 아무리 씻고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대중교통이 파업을 시작했고 데모대의 행진이 시작되어 도심이 완전 봉쇄되고 차단되었음에도 현지인들의 일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평온한 모습과 표정들뿐이다.

  80년대 초, 서울역까지의 행진에 참여했던 사람의 시선에 보여 지고 느껴지는 파리의 모습은 ‘뭐가 이래? 이건 뭔가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하는 의아심이 생겨났을 뿐이다.

  헐!

  말로만 들었던 파리의 파업과 데모....... 아니, 프랑스식 데모와 파업은 이런 거구나?

  사실 조짐은 이미 어제 저녁부터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와서 이동을 하려하는데 지하철 C선이 부분파업으로 중단된 사태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지하철을 포함한 모든 대중교통이 정상운행 되어서 모두 해결이 되었나 싶었다. 오후에 앵발리드(Invalides)를 들렸다가 오페라하우스(Opera Garnier)로 이동했다. 파리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진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파리 전경에 심취해 있던 상황에서 심상치 않은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잠시 담소를 나누던 미국여행자 청년들 중에서 한 명이 SNS를 통해 파리 지하철이 전면적인 파업에 돌입했다는 긴급속보를 알려준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서둘러 옥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파리 2구역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땅속의 지하철이야 어차피 보이지 않겠지만, 버스며 택시며 붐비는 사람들의 행렬은 전혀 변화나 다른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이 파업하면 버스로 이동하면 되겠지 뭐’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라파예트 백화점을 나와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마들렌 성당(Eglise de la Madeleine) 이었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지나치다 만나는 지하철 입구마다 철문이 굳게 잠기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에 어떤 기우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가 위치한 장소와 숙소는 완전히 정반대에 놓여 있었다. 만약에 대중교통에 차질이 생긴다면 여간 낭패가 아닐 것이다.(그런데..... 왜? 이런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저녁 무렵 구름이 잔뜩 끼어서 해가 보이지 않는데다가 간간히 빗방울마저 뚝뚝 떨어지는 아주 쌀쌀한 시간에 암울한 조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결국, 발걸음을 돌려 파리 시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 숙소까지 직행하는 시내버스 노선이 있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걷다가 베트남 쌀국수 집을 발견하고는 들어가서 간단한 요기와 함께 싸늘한 추위를 피하는 여유까지 가졌다. 걷다보니 시청이 나왔고 마침내 72번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버스는 분명히 있고 손님들이 가득 탔는데 출발을 안 한다. 곧 출발한다면서도 연실 핸디 폰만 주목하는 기사님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만 갔다. 그러더니 마침내 터져 나온 비극적인 통보는....... ‘버스는 더 이상 운행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도로가 완전 차단되고 봉쇄되어서 모든 교통이 중단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각자 알아서 가던 길을 가셔야만 하겠습니다.’라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각자 알아서 가란다.’

  현지인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모든 것이 낯선 여행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앞전 차량은 정상적으로 떠났다는데....... 쌀국수만 안 먹었어도 일단 숙소는 갈 수 있었는데......

  시내버스도 지하철도 택시도 없는 파리. 오로지 알아서 걸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파리.

  산 넘고 물 건너서 소풍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경찰 저지선을 뚫고 데모대 행진 대열을 뚫고 또 뚫고 건너서........ 가히, 인디애나 존스 영화 한 편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어찌되었던 종국엔 숙소에 무사하게 도착하고야 말았다.

  실로 위대한 태리할망구. 그걸 씩씩하게 해내신다. 정말 잘 걷는다. 낯선 이역만리 타국의 난리통속에서 전원 잔유량 줄어들어 가는 게 보이는 마당에, 핸디폰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서 춥고 빗방울까지 떨어지는 밤길을 걷고 또 걷는다.

  파리탈출!

  못보고 아쉬운 것은 다음에 다시 와서 보면 되지?

  저들의 각자 입장이야 나름 이해는 되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지인이 아니고 여행자가 아니겠는가? 여행자에게는 여행자로서 누려야 하는 권리와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까........ 일단, 무조건 파리를 탈출하고 보자.

 

 

  '연금 적립금은 더 내고 좀 더 기다렸다가 수령 시기에는 좀 적게 받아라.'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 정책의 핵심 골자는 이런 내용이다. 오랫동안 연금수령만 바라보고 힘들게 직장생활을 영위해 온 모든 국민이 이런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프랑스 파업이다.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난제 중에 난제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감이라고 해야겠다. 평화상도 부상으로 얹어주고 싶다.

  그런데, 내가 프랑스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이것이 오로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적어도 자본주의 방식의 자유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가 겪어야 하는...... 당장 당면하고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거기에 대한민국....... 적어도 삼 년이나 사 년 후에는 우리도 저런 사태를 겪게 될 것이라고 나는 걱정하는 사람이다. 아니 우리는 프랑스 보다 훨씬 혹독하고 참혹한 변란 아닌 변란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 파업과 시위가 장기전에 돌입하게 되면 온갖 이전투구가 발생하고 종국엔 폭력을 동반하게 된다. 이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프랑스 연금 파업사태를 지켜보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상황에 우려를 보낸다. 우리에겐 저런 사태가 없었으면 하는데...... 우리나라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이 어떤 작자들인가? 대한민국에서는 여의도만 끼어들면 문제가 확대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이자 지극히 정석적인 수순이 아닌가? 그 모든 책임은 언제나 국민에게 떠안기면서 말이다.

 

   < 파리탈출(Escape from Paris)>

​  갈리에니 숙소를 체크아웃 하다가 사단이 벌어졌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체크아웃에서 흔하게 작은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 바로 그런 사소한 비용문제였다. 체크인을 하면서 여직원은 나에게 보증금(deposit)을 요청했다. 다른 경우에 비하면 소액이었지만 분명하게 디파짓임을 확인했다. 선결제를 했던 만큼 혹시나 객실 집기류 파손을 일으킬까봐 소액이라도 보증금을 요구하나보다 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디파짓 환급을 요구했는데 내어줄 것이 없다는 입장이 아닌가? 눈뜨고 사기는 당하지 말자는 입장이서서 따지고 들었는데 직원들이 줄줄이 나오면서까지 한목소리로 그것은 보증금(디파짓)이 아니라 도시세금을 징수한 것이라고 우긴다. 나는 내 예약서류에 도시세가 포함되었다는 명세조항을 제시했다. 그랬음에도 서류가 착오이지 도시세금 징수였다고 우긴다. 내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여행객들의 카운터 이용이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체크인 당시의 담당 직원과 최고 매니저 면담을 요구했고, 아고다에 확인서 요청을 했다. 디파짓 보관통에 내 돈과 사인서류가 없었고, 도시세를 선 징수했다는 영수증도 없었다. 더군다나 담당 직원이 휴가 중이라 연결이 안 된다는 대답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나는 지금 서둘러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이 사태를 꼭 해결해야겠으니 그 책임은 호텔이 져야 할 것이라 통보하고, 무조건 해당 담당직원 소환과 대한민국 대사관 관계자 파견을 요청하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호텔 최고매니저와 함께 호텔 소유주가 직접 나타났다. 양쪽의 상황 설명이 끝나니 자기들끼리 우르르 몰려 들어가 한동안 자기들끼리 회의를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호텔 측에서 수긍하고 수그리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끝까지 나와 싸워서 이길 방도도 없고....... 모든 것을 연락부재중인 직원의 실수로 치부해 버리려 한다. 일정소액을 보증금으로 내게 징수하고..... 흔하게 대충 대처하는 여행자들처럼 도시세라고 얼버무려서 삥땅을 치려했을 수도 있겠다. 관심을 보이는 호텔 이용객들에게 나는 상황 설명을 하면서 나 때문에 불편을 끼쳤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더 죽어날 곳은 바로 호텔 측이 아니겠는가?

  호텔은 직원이 돌아오면 파악을 해서 호텔의 실수라면 배상을 하겠다고 제시하지만, 그건 당장 호텔 이용자들 앞에서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는 욕심일 뿐(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을 가지고), 하지만 나는 돈이 아니라 분명한 진상파악과 정당한 해명과 책임을 거듭 요구하여...... 끝내 불어와 영어를 모두 하는 여행객의 중재아래 총지배인의 사후처리 각서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각서는 지금도 내 여행 이력에 대단히 특이한 기억과 경험의 증거물로 잘 보관되고 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당페르 로슈로(Denfert Rochereau)역에 도착했다. 교차로 건너편에서 공항으로 가는 오를리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파리 특유의 정취와 풍경이 물씬 풍겨 나온다. 이래서 파리, 파리 하는지 모르겠다. 많은 유럽의 도시들을 다녀보았지만 파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많이 다른 느낌이다. 이젠 파리와 작별할 때가 되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살피다가 여고생이거나 막 대학생활을 시작했을법한 여학생을 찾아서 대중교통 이용권을 건넸다. 당혹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한국 여행자인데 파리 여행에 사용하려고 대중교통 10회권을 구입하였는데 태리할망구께서 워낙 걸어 다니는데 이력이 나셔서 4회를 사용하였으니 아직 6회 이용권이 남아있다’고 설명한 후에 건넸다. 상황을 이해한 여학생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게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버스에 오를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우리에겐 자주 있는 여행의 일상이다. 바르셀로나에선 남은 승차권을 어떤 할머니에게 드렸는데 어찌나 거듭 고맙다고 크게 감정을 드러내시는지.... 약간 당황스럽기 까지 했다.

  파리의 외곽지역을 빠져나가다 보니 파리 생제르망 축구팀 전용 경기장 옆을 스쳐 지나간다. 다음에 오면 축구 경기도 보아야지.

  오를리(Orly) 공항에서 정시에 니스(Nice)로 가는 비행기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무척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든 서둘러 무사히 파리를 탈출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에 니스 비행장에 도착했다.

  무사 안전 비행에 감사할 순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요란한 브레이크 소음과 함께 비행기의 동체가 무사히 착륙했다고 느꼈을 즈음부터 창밖으로 이상한 광경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이동 중인 우리가 탄 비행기 주위로 어디선가 빨간 무늬가 선명한 공항 안전요원 차량과 소방차들이 나타나 전후좌우로 에워싸듯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우리 비행기를 호위하거나 호송하는 모양새였다.

  비행기가 게이트에 안착했지만 기내방송은 승객 모두에게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 승무원들은 별일 아니라며 승객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거나 벌어진 모양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마침내 녹색 조끼를 입은 공항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기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다시 기장의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가 랜딩에 진입하는 순간에 화물칸에서 알 수 없는 경고음이 울렸었다는 것이다. 하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비상대기조가 출동했고, 화물칸을 먼저 점검한 결과 기계작동 오인으로 판명되었기에 모두 정상적으로 안전하다는 안내였다. 하마터면 화물칸 화재였거나 테러에 의한 폭발 등의 희생이 될 뻔한 아찔한 경험이었다.

  아니, 이번여행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겨우 파리를 빠져나왔나 싶었더니....... 이번엔 항공기 사고?

 

  어쨌거나 공항을 빠져나오니...... 파란 하늘과 화창한 날씨가 시야에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그래. 여긴 니스야. 이 정도는 기본이어야 니스가 아니겠어?’

  공항에서 2번 트램에 올라탄다. 니스에는 1번과 2번 트램이 운행 중인데....... 니스라는 도시 여행은 걸어서 다니기도 충분할 정도의 크기인데, 도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다닌다고 해도 트램 하나면 완벽하게 해결이 된다. 거기에다 같은 노선을 달리던 트램이 도시의 한복판에서 양쪽으로 갈리어 나가는 구조에다 환승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교통 천국이 바로 니스다.

  우리의 숙소 베란다에서 니스 해변까지는 불과 2백 미터 남짓일 뿐인데 아쉽게도 가로수에 가로막혀 직접 바다가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밤중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니스 해변의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출입문에서 오십 미터만 걸으면 해안 가로수길이 나오고, 도로를 건너면 해안 산책로에서 니스 해변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가 있다.

  아무튼 우린 지금 니스에 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nade des Anglais)가 무엇인지 들어본적이 있으신가?'

  우린 지금 다시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구......... 헐!!!!

 

 

 

 

 

 파리에서 느꼈던 자유가 관념적인 자유였다면 니스에서 느끼는 자유는 조금 색다르게 다분히 육체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파리에서는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서 진한 갈색의 커피를 앞에 놓고 짙은 담배연기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사상가나 혁명가적인, 다소 관념적인 자유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이 파리만의 독특한 낭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남프랑스 지중해 해변에서 느끼는 자유는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대자연 속으로 연인과 자전거 여행을 떠나거나 들로 산으로 트래킹을 떠나는 다분히 활동적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현대인들이 소망하는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일탈) 같은 육체적 해방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 또한 프랑스적 낭만의 다른 빛깔인 것이다.

  알프스 몽블랑에서 시작하여 남하하던 만년설에 뒤덮인 험준한 산 봉오리들이 드넓은 초원을 만나 곳곳에 천혜의 비경을 감추어둔 협곡들을 사방에 만들어 놓았다. 협곡을 벗어난 올망졸망한 언덕들은 라벤더 향기 가득한 들판과 끝도 없이 펼쳐진 포도밭으로 수를 놓고 있다. 눈부신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에서 기름진 토양까지.....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모두가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대자연의 위대한 축복이 내려앉은 대지를 프랑스는 가득 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대지의 향연이 더 남쪽을 향해 흘러내려가 마침내 코발트빛 지중해 바다 속으로 퐁당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그 해안가를 따라 작은 산책로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고, 풍광이 빼어난 언덕마다 앙증맞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과 도시들이 마치 화폭에 수를 놓듯이 늘어서 있다. 그중에 아늑한 해변가에 자리를 잡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향해 손짓을 하는 도시가 바로 니스(Nice)인 것이다. 은근하면서로 코앞에 지척인 니스해변으로 새벽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벌써 해변으로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고급스런 향기가 묻어나고 수많은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고 유명한 사람들이 은둔생활을 영위하려 만든 호화로운 별장들이 사방에 내걸려 있다. 이곳 해안의 어딘가 에서는 매일 축제가 열리고 온갖 꽃들이 가득하며 달콤한 와인이 넘쳐나고 벅찬 환희에 환하게 미소 짓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렇게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과 도시의 중심에 바로 니스(Nice)가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바로 여기 니스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창밖을 내다보니 채 아직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습관처럼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언제나 커피포트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다른 때보다 조금 진하게 머그잔 가득 블랙커피를 타서는 베란다로 나서서 테이블에 앉아 내 방식의 모닝커피를 즐겨본다. 노트북을 통해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의 날씨부터 확인해 본다.

  기온은 영상 13도 까지 오르는데 흐리고 강풍이 예고되어 있다. 다행히 비는 없다. 이번 여행 자체가 굳은 날씨와 예상치 못한 추위로 인해 여간 고생이 심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더군다나 내 오판으로 인해서 겨울옷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가을 옷차림으로 떠나오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날씨는 기온은 좀 높은 편이지만 세찬 바람과 잦은 비로인해 체감되기는 한국에서의 한겨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인데, 우리가 가진 방한 차림은 스카프랑 바람막이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패딩 하나씩만 챙겨왔어도........ ㅎㅎㅎ

  어제 파리 대탈출 작전이 힘에 겨워서였을까? 파리에서의 궂은 날씨로 고생을 했음 때문인지 챠밍여사가 잠을 깨기는 했는데 침대에서 쉽게 일어나지를 않는다. 보기 드문 현상이다. 좀 더 누워서 쉬라고 하곤....... 여행 중엔 반듯이 치러야만 하는 어떤 성스러운 의식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산책을 나선다. 니스 사전 답사라도 미리 해둘 겸 해서 말이다. 그래야 머슴의 처지로 마님을 모시고 다니기에 수월할 테니까 말이다.

  숙소를 나서 거리에 섰다.

  바로 코앞에 지척인 니스해변으로 새벽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벌써 해변으로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새벽바람이 상쾌함을 넘어서 제법 매서울 정도로 쌀쌀하다. 차라리 혼자 나오길 잘했다 싶어진다.

  서.서.히.니.스.의.아.침.이.밝.아.오.기.시.작.했.다.굿.모.닝.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무엇이 그토록 뭇 사람들을 홀려서 사시사철 끊임없이 이곳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것일까?

  아마도 그중의 하나는 바다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굳이 쪽빛 바다라는 표현에 어깃장을 놓으면서까지 우기게끔 만드는 매혹적인 코발트빛으로 빛나는 검푸른 지중해와 항구마다 빼곡하게 진열되어있는 새하얀 요트들과, 해변 언덕에 장식품처럼 매달려있는 빨간 지붕을 가진 예쁜 집들, 돌담장을 쌓아놓은 꼬불꼬불 아슬아슬한 해안도로와 바람에 너울대는 종려나무들에서 풍겨 나오는 바다의 향기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면 이번엔 등 뒤로 내륙 깊숙한 곳에서 풍겨 나오는 대지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다.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칠한 외벽에 달랑 파란 창문이 어떤 상큼함으로 다가온다. 올망졸망한 꼬불꼬불 골목길이 온통 온갖 꽃들로 차고 넘쳐난다. 골짜기 건너의 언덕에 빨간 지붕의 집들이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틀어서 있고,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아주 작은 광장에 놀이터 같은 분수대와 샘물이 놓여있다. 빈티지풍의 가구들이나 역시 빈티지풍의 기념품 가게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돌계단을 지나 골목길 어귀를 나서면 작열하는 태양이 비로소 본 모습을 드러내고, 올리브 나무숲과 드넓은 포도밭과 시골 들판을 가득 뒤덮은 온갖 허브와 야생화와 라벤더 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프로방스가 자랑하는 대지의 향기이다.

  하지만 개뿔!!!!

  이런 것은 모두 6월에 시작해서 7월이나 8월에 절정을 이루는 남프랑스의 모습이다.

  우리가 찾은 1월의 남프랑스는 결코 그렇게 온화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아니다.

  프로방스의 1월은 온통 바람의 향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바람의 향기는..... 참으로 웬수같은 애물딴지일 뿐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남프랑스(프로방스) 여행은 6월이나 9월초를 꼭 추천하고 싶다. 차차 설명이 되겠지만 말이다.

 

 

  내가 지향하는 여행의 묘미 중에 하나가 어떻게든 가능하다면 현지인들의 삶속에 자연스레 젖어들어 보고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여행자의 처지로 현지인들과 똑같이 생활을 영위해 보기는 힘들기에 가능하다면 로컬 시장을 자주 들르고 뒷골목 탐험을 즐기며,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도시 주변을 곧 잘 서성거리는 편이다. 소박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과 훈훈한 미담이 여운처럼 여행이 모두 끝난 이후까지 오래오래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된다.

  우리는 지금 니스에 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첫 새벽산책길에 살레야 광장 꽃시장(Marché Aux Fleurs Cours Saleya)을 찾았다. 아마도 니스라는 도시가 생겨나면서부터 시작된 전통시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이야 대로변 건너로 신도시가 들어서 있지만, 과거 니스의 중심은 바로 이곳 살레야 광장이었다. 여기 일대가 니스 올드 시티인 것이다. 이름에는 꽃시장이 들어있지만, 그냥 여타의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생필품과 과일과 야채와 향신료와 꽃을 파는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아기자기한 시장이다. 이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판매되는 대부분의 야채와 과일과 꽃들이 인근의 농장에서 자기들이 직접 재배한 것을 내다파는 노점시장...... 그야말로 전형적인 옛 방식의 전통시장인 것이다. 하여 이른 새벽에 열리고 오전 열시쯤이면 파장에 들어간다.

  열한시쯤 되면 시장 인근의 식당이나 카페, 그리고 가구나 가전제품을 파는 일반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니스 최고의 카페와 음식점들은 대부분 이곳 살레야 광장 주변에 위치해 있다. 니스 올드 시티의 중심이었으며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였으니 모든 장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활성화 되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한겨울 평일의 시장은 아주 한산하다 못해 그나마 시장이 여린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울 지경이었다. 여기 이 좁은 광장과 골목이 노점상들과 손님들로 가득차고 넘쳐난다고 했는데...... 허접해 보일만큼 소수의 노점상만이 가게를 열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모습들이다.

  코로나 사태가 3년 가까이 모질게 할퀴고 지나간 마당에 이제 겨우 일상의 격리에서 해제되어 활동을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때가 마침 한겨울 비수기였으니 어찌 저들의 삶이라고 버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장은 전체적으로 한산하고 쓸쓸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성가신 입김을 불어재끼며 노점을 열려고 오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낯선 이방인이지만 애써 힘찬 목소리로 그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 본다.

  봉쥬르! 우리 모두 파이팅!

  서너 군데 늘어선 꽃집으로 향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곧잘 꽃을 사곤 한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 있은 이후로 곧잘 꽃을 사게 된 것 같다.

  영화에서 자주 보았듯이 꽃을 생활 속에 자주, 혹은 자연스레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분히 생활수준이 높거나 생활환경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쯤으로 쉽게 여기곤 한다. 부자들의 대저택이나 고급 호텔이나 카페나 레스토랑에 주로 화려하게 장식된 꽃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리라. 생활의 여유(돈)가 고급 여흥이나 적어도 생활 속의 꽃 문화로 연결 지어 진다고 나도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세계 최고의 꽃시장은 미얀마의 길거리 노점상 꽃집들이었다. 여기저기 길거리마다 차고 넘치는 게 꽃행상들이었다. 길 건너 도랑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도 자르고 다듬고 엮어서 바구니에 담고 팔고 있었다. ‘누가 저걸 살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꽃을 사는 것이었다. 지금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갈 수도 없는 극빈국 미얀마이지만....... 국민소득은 최하위이자만 그들에게 꽃은 지극히 일상이었다. 길거리 노점에서 너도나도 꽃을 사서 들고 다녔다. 불교 국가이기에 태국이나 동남아 국가처럼 부처님게 받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가 꽃을 사서 들고 다녔다. 대문에 자동차에 처마에 꽂거나 매달고도 다녔다. 마당에 꽃밭을 가꾸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없는 꽃을 사서 플라스틱 병에 꽂아 테이블에 얹어놓았다.

  새벽 재래시장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바구니 가득 꽃을 사서 지나가던 한 여인이 내게 처음 보는 꽃 작은 묶음 하나를 건네주고 갔다.

  ‘아!!! 꽃과 생활수준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구나. 꽃을 좋아한다면..... 그냥 형편에 맞추어 늘 어떤 꽃이건 가까이 하면 되는 거야.’

  그날 이후로 나는 꽃을 참 자주 사게 되었다.

  한곳에 삼일 이상 머물게 되면 꽃을 산다. 시들면 버리면 되고, 체크아웃 하면서 누군가 다음 이용자를 위해 꽃을 선물한다는 기분으로 잘 놓아두고 나온다.

  이날 나는 니스에서 튤립을 샀다. 챠밍여사를 위해서........ ㅎㅎㅎ

  그런데 이 꽃집의 할아버지가 문제다. 완전 사기꾼 수준이다.

  내가 꽃집 앞을 서성이니까 다짜고짜 다가와서는 어디서 왔느냐 묻는다. 한국서 왔다니까 ‘꼬레 굿!’ 하고는 손을 잡아끌며 모닝커피부터 한잔 하자고 하신다. 꽃집 천막 안으로 끌려들어갔는데 아뿔싸....... 완전 살레야 광장 꽃시장 반상회 하는 날 분위기다. 십여 명 정도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모닝커피타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아뿔싸!!!! 예전에 티비에 수다쟁이 프랑스 아줌마가 자주 나온 적이 있었다. 이다도시 인가? 처음엔 서너 명이었는데 차차 지나가는 사람 죄다 불러서 그런 이다도시가 열 명쯤 모였다고 상상을 해보자.

  ‘올랄라!’‘올랄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식전댓바람부터 어디 교회 부흥회라도 온 기분이 생길 정도다.

  사기꾼 할아버지가 모닝커피 하자면서 소주잔을 내민다.

  얼래? 해장술을? 잘못 알아들었나?

  헐! 모닝커피는 맞는데....... 나는 속으로 아메리카노를 기대했는데...... 니스식 전통 에스페레소가 나왔다. 모닝커피 한 잔이 쬐그만 소주잔에 담겼으니 얼마나 독하겠는가? 나는 눈 뜨면 커다란 머그잔으로 한 잔이 기본인데....... 우이 씨..... 써도 너무 너무 써!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내 표정을 보고는 재미있다고 웃는다.

  그러자 사기꾼 할아버지가 계산대로 쫓아가더니 대바구니 속에서 커다란 종이에 쌓인 뭉치를 꺼내서 헤치더니 모닝 빵 한줌을 뚝 떼어다가 얼른 내 손에 쥐어준다. 그 허둥대는 할아버지 모습과 내 표정 때문인지 또 한바탕 폭소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여기까지 그저 그랬다 치고...... 이제 꽃을 사서 나서려고 이것저것 살피다가 튤립을 사야겠다고 한 묶음 달라고 사기꾼 할아버지에게 요청하니...... 손사래를 친다.

  자기가 여기 이 꽃가게 주인이 아니라면서 이제껏 천막 밖에서 물을 뿌리던 젊은이가 주인이라면서 소리쳐 부른다.

  헐!!!! 정말 어이가 없다.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이제서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고?

  광장 건너편 모서리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는 거기에 사는 주민이란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모두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란다. 그리고 매일아침 이러는 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란다.

  튤립을 건네받고 계산을 하면서 ‘이래도 정말 괜찮냐?’ 물었더니만...... 이곳에서 장사하다가 돌아가신 부모님 때부터 계속 이래왔기에 아무렇지도 않단다. 그냥 가족이란다.

  헐!!!!

  다음날 지나는 길에 또 들려보았다.

  그 젊은 주인 용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즐거운 여행 하라고 격려해 준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언젠가 다시 니스에 가서 그 사기꾼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를........ 꽃도 다시 사야지. 미모사 한아름........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인 니스(Nice) 칸(Cannes) 모나코(Monaco) 등을 여행하다보면 언제나 (코트다쥐르) 혹은 (프로방스) 라는 용어가 따라다니는데,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는 여행자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가 않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는데.....프랑스는 총 18개의 주(도. 특별시)로 나뉘고 다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처럼 여러 데파트망(Department)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행정구역은 분명하게 나뉘어 구분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영동과 영서 지방으로 나뉘어 기상예보에 통용되듯이, 프랑스도 역사적 또는 지형적 특성을 기준으로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옛 지명이 여전히 섞여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소 애매모호해 보이는 구분이 여행자에게는 당혹스러울지 몰라도 현지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필연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내게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바를 통하여 조금은....... 여행자들이 나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추려 설명을 간단하게 해 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남해안을 지도에서 보면 왼쪽은 전라도, 오른쪽은 경상도가 위치해 있다.

  프랑스도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중간지점의 마르세유(Marseille)를 기준으로 우측으로 이탈리아 국경까지의 지역을 프로방스(경상도에 해당)라 부르고, 좌특으로 스페인 국경에 이르는 지역을 랭그독. 미드피레네(전라도 해당) 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마르세유는 프로방스의 중심도시이자 프랑스 제2의 경제도시(부산에 해당)라 하겠다. 이곳 프로방스 지역 중에서도 동쪽으로 이탈리아 국경을 향해서 해안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특별히 더 아름다운 지중해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생트로페(Saint Tropez)와 칸(Cannes)을 시작으로 앙티브(Antibes)를 지나고 니스(Nice)를 거쳐 모나코(Monaco)를 지나 이탈리아 국경 지역인 툴롱(Toulon) 까지 빼어난 해안절경 지역을 특별히 코트다쥐르(Cote d’Azur)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한려수도 해상 국립공원 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통영. 여수. 거제 등은 니스. 칸. 모나코. 툴롱에 해당하는 최소 지방단위 도시들이고, 코트다쥐르는 이 도시들을 하나로 묶는 여행권역인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코트다쥐르)이 되는 것이고, 해안가만이 아닌 좀 더 내륙의 도시들을 포함하는 지방자치 권역으로 경상도. 전라도처럼 프로방스 지역이 있는 것이다.

 

  통상적인 프로방스의 프랑스 행정구역상의 정식 명칭은 <PACA주> 로 나온다.

  이를 다시 풀어쓰면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ote d’Azur)>가 된다. 니스. 칸. 모나코. 툴롱을 포함하는 동쪽 해안가인 코드다쥐르와 내륙으로 알프스 산맥에 이르는 지역과 중부의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프로방스라 부르는 것이다.

  프로방스 하면 풍부한 햇살과 라벤더 향기를 먼저 떠올리고, 코트다쥐르 하면 말고 투명한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게 사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해외여행 잡지를 보면 가끔 우리가 코트다쥐르라고 부르는 남프랑스 명칭을 뜬금없이 프렌치리비에라(French Riviera) 라고 올리브유를 아주 듬뿍 발라놓은 표현을 접할 수 있다. 그래놓고 하도 칭찬이 자자하기에 ‘이건 또 어디여?’라고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프렌치리비에라’라는 표현 대신에 ‘코트다쥐르’를 있는 그대로 번역해서 ‘창공의 해안’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창공의 해안이 뭔가 하면....... 그냥 여행자들을 위해서 ‘프랑스에서 온갖 좋은 것은 몽땅 다 가져다 모아 놓은 곳’이라고 설명해 주고 싶다.

  코트다쥐르는 어떤 여행자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여행지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다만....... 우리 경우처럼 이상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 11월~ 3월은 가급적 피하시라고 팁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우리는 이미 니스에 있고........ 코트다쥐르에는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품 미스트랄(mistral)이 있는 것을..........

  미스트랄이 뭐냐 하면........

 

 

 

 

 

 

 

 

 

 

 

 

 

 

 

 

 

 

-- 다음 여행기는 니스 인근 소도시 여행으로 (에즈 빌리지)를 소개하겠습니다. 가라발디 광장에서 만나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