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없다’는 이야기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비공식적인 정설로 알려져 있다.
워낙 자기 색깔과 주관이 확고하다 못해 넘쳐나서 괜히 얄밉기까지 하는 프랑스인들에겐 ‘커피 = 에스페레소’ 라는 의식과 생활태도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같이 약간 끔찍하리만치 진한 파리의 에스페레소 커피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행자들은 카페 알랑제(Cafe Allonge)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식의 커피 잔 보다는 조금 작은 잔에다가 그들 방식의 에스페레소를 추출한 다음에 뜨거운 물을 두 배정도 더 따라서 나오는, 아주 조금 묽어진 에스페레소 라고 해야 하겠다. 그 역시도 매우 진하다. 내 경우는 그런 상황에서 주문할 때 애초에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라고 강조를하기도 하는데, 뜨거운 물을 좀 많이 달라고 하면 간혹은 별도의 유리잔에 뜨거운 물을 내오기도 했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파리의 에스페레소가 이탈리아의 에스페레소 보다는 좀 덜 쓰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번번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이탈리아 에스페레소지만 아무리 그랬기로 터키 커피에 비하면 훨씬 덜하지 않았던가.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아야 하겠다.
There is americano in Paris, too!!!!!!
자본주의의 놀라운 시류에 대한 적응력은 기어코 파리에서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만들고야 말았다. 예술과 낭만이 어쩌니 하는 파리지만 거기도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최고 상위의 덕목은 역시나 돈(money)이었다. 모든 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먹고 살자니 반드시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이나 동양권의 여행자들이 몰려와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찾는데 처음엔 없다고 하면 억지로 에스페레소를 찾거나 카페 알랑제를 억지로 마시거나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뜨거운 물을 별도의 컵에 가득 채워서 별도의 커다란 커피 잔과 함께 내어주지 않으면 그냥 밖으로 되돌아 나가는 일이 빈번해진다고 생각해 보자. 거기다가 현지 프랑스인들은 에스페레소 한 잔 시켜놓고 두 시간도 좋고 세 시간도 좋고 책 읽고 수다 떨고 그냥 멍 때리고 죽치기가 일쑤인데, 한국 여행자 경우는 우르르 몰려 들어와 잠시 추위나 더위를 피하다가는 후루룩 커피를 마시고 십분 이십분이면 또다시 우르르 나서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폼 잡고 사진을 찍으려고 마카롱을 비롯해 달달하고 비싼 디저트 종류를 쓸어 담아 팔아주는데 말이다.
결국. 공항이나 미술관이나 여행자 밀집 지역에서는 하나 둘 아메리카노 커피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여기, 루브르 박물관 지하 나폴레옹 홀의 카페에도 지금은 버젓이 아메리카노 커피가 판매되고 있다.
잠시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려 나폴레옹 홀을 찾았다. 아메리카노 두 잔에다가 크로아상이랑 쇼콜라를 하나씩 구입해서 너른 복도에 마련된 간이 테이블로 향했는데....... 정말 사람이 많다. 차고 넘친다는 표현이 딱 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국인들이 많아 보인다. ‘파리의 겨울은, 그리고 비수기의 유럽 여행 시장을 먹여 살리는 것은 한국인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불현 듯 생각날 정도이다.
‘어디 봐. 어디. 그래도 너는 모나리자 앞에서 독사진을 찍었네? 나는 옆 사람들 때문에 망쳐 버렸단 말이야. 정말 속상해.’
‘비너스 앞에서 사진은 네가 젤 잘나왔잖아. 그러면 됐지?’
‘난 독사진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유리 피라밋 단체 사진에서도 나만 눈을 감았잖아. 우리 박물관 나갈 때 유리 피라밋 사진 다시 찍고 가야 할까봐.’
이런 이야길 랑은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내용들인데, 내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거기다가 높은 톤으로 떠들어대다시피 하니 어떻게 쏙쏙 잘 알아듣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겨우 난 테이블 빈자리가 바로 그 세 명의 아가씨들 바로 옆이었으니 말이다. 아가씨들 대화의 내용을 간추리고 또 간추리면 대충 이렇다.
루브르 박물관 여행이 인증 샷으로 찍은 네 컷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네 군데서 인증 사진을 찍었으면 루브르 박물관은 모두 둘러본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패스를 하고 오페라 하우스 인근으로 이동해서 쇼핑과 레오파드 백화점 루프 탑에서 파리 전경을 찍으러 서둘러 가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거의 전부라 해도 되겠다.
‘죽어라 쫓아다녀도 몇 작품 못 본다는 루브르’를 전제로 우선 해 놓고, 첫 번째는 긴 행렬을 꼬리처럼 달고 있는 유리 피라밋을 배경으로 한 컷을 찍어줘야 그래도 루브르에 온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세계에서 제일 비싸고 유명한 <모나리자>를 배경으로 독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줘야 여행 능력자로 보여 질것이고,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하거나 갖은 매력을 발산해야 격이 높아지며, <시모트라스의 승리의 여신상>이 올려다 보이는 계단에서 단체 사진 정도는 찍어줘야 동지애가 빛나게 되는 것이며....... 이 넉 장의 사진을 제대로 찍었다면 비로소 위대한 루브르 박물관 탐방은 대단원의 막을 내려도 좋다는 결론이었다.
와!!!!!
짝짝짝짝. 나는 속으로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허탈하게 거짓 연기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헐!!!!!! 놀랍고 무서운 이 현실을 어떻게 하지?
부서진 여신상을 보며 <시모트라스 승리의 여신상> 이라고 부르는 ‘초등학교’ 출신의 세대들이랑...... <니케의 여신상> 이라고 부르는 ‘국민학교’ 출신의 우리 세대 사이에 벌어져 있는 거리감과 괴리감과 생각과 인식의 차이가 마냥.....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똘레랑스(Tolerance)??? 프랑스 하면 똘레랑스라고?’
‘웃기지마. 이건 현실이야. 관용과 방임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저것은 레세페르(Laissez-faire)야.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이 시대의 병이야.’
하지만, 슬프게도 끝내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고 말았다. 어떤 말을 무슨 자격으로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런 현실이 슬프고 두렵게 느껴질 뿐이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저렇게 까지 다르게 느끼는 것을 당연하게끔 만든 책임이 나를 포함하는 우리랑, 우리를 앞선 세대였다는 절망적 책임 앞에서 저런 것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적인 비애감이 슬프게 만든다.
차밍여사가 라커룸에 감기약을 가지러 간 사이에 테이블을 차지하고 짐을 보고 있었는데 커피랑 간식을 손에 든 젊은이들이 다가왔다. 나는 옆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고 비어있는 의자에 내 소형 배낭이랑 짐을 놓고 우리의 테이블을 기꺼이 젊은이들에게 양보했다. 그들은 매우 고마워했고 사실 우리는 일어서려던 참이라고 말해주었다. 내 배낭에 달린 태극기를 알아보고는 자신들은 터키에서 온 대학생 졸업반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한국과 터키가 서로에게 호감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우방국(형제국) 이라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게 다시 상기되는 순간이다. 그러고 나서 각자 음식을 손에 들고는 테이블을 비워서 (파리 뮤지엄 패스)를 넓게 펴 놓고 여행안내 책자와 번갈아 가며 살피더니 몇 군데 체크를 했다. 옆에서 엿들어 보니 오늘 여행 일정에 치질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터키 젊은이들은 오늘 서둘러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고 오후엔 파리 인근의 퐁텐블로 성(Chateau de Fontainebleau)을 방문하려고 계획했는데, 박물관 입장 시 웨이팅 시간으로 한 시간 반 이상을 허비하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루브르를 대충 통과할 수는 없어서 차라리 퐁텐불로 성을 포기하고 대신에 최대한 루브르를 즐긴 다음에 소르본 대학이 있는 라탱 지구에서 오늘의 일정을 보내기로 수정하고 가능하다면 팡테옹 까지는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브르를 이쯤에서 포기하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나라 젊은 여행자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밍여사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기에 배낭을 어깨에 다시 둘러메고 있었다. 터키 젊은이가 불쑥 나에게 안녕 인사와 더불어 이런 질문을 해 온다.
‘루브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잠시 망설이면서 나는 좀 전에 그들이 메소포타미아 관을 관람하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메소포타미아 관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 중에 터키의 아나톨리아 평원에서 약탈되어 온 것들이 상당히 많이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 그래서 잠시 ‘자신들의 약탈 유물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젊은 청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고 궁금해 했던 것이다. 아울러 프랑스에 우리나라의 약탈 유물은 여럿 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당장 루브르 박물관에 한국에서 약탈해 온 유물은 단 한 점도 없다. 이럴 때 가끔 나의 명석한 두뇌와 기억력은 나 스스로도 놀랄만한 깜짝 이벤트를 벌이곤 하는데...... 차밍여사는 그것을 끝까지 잔머리라고 폄하해 왔다.
‘루브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라....... 음....... 메소포타미아 관에 전시된 알렉산더 두상이라고 해야겠지? 너무 투박하고 늙어 보여........ 알렉산더 하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 정도는 되어야 진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스탄불은 삼십대 초반의 모습인데, 루브르는 거의 내 나이 비슷해 보이잖아?’
순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흔들었다.
‘이스탄불도 가 보셨어요?’
‘그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야. 그동안 여섯 번쯤 방문했지.’
또 와!!!!!!!!
이스탄불의 톱 카프 궁전에 있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메두사 부조상이 걸려 있고, 반 층을 더 올라가면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세상에 있는 알렉산더의 그림과 조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조각상이 바로 이스탄불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던 것이다. 마침 터키 대학생들을 만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했던 말이었는데...... 정말로 그네들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Oh, Happy day!!!!!!!!!!)
셜리 관으로 다시 돌아가 그리스와 이탈리아 조각품들을 감상하면서 1층으로 올라가 우측으로 접어들면 이탈리아 조각과 회화 작품이 함께 진열된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복도에 나서면 <시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La Victoire de Samothrace)> 조각상이 나타나고, 복도를 돌아 2층에 오르면 마침내 <밀로의 비너스(La venus de milo)>가 위치해 있다.
휴식을 취한 후 우리의 우선 계획은 일단 <밀로의 비너스>까지를 보고나서 다시 세우기로 하고 나선 것이다.
이탈리아 조각 전시실을 지나는데 우연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프레스코화가 무척이나 낯이 익다. 루브르를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런 그림의 화풍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나 있어야 할 그림들이 이렇게나 많이 루브르에 걸려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그린 프레스코화를 보게 될 줄이야. 그가 캔버스와 유화 물감이 이미 널리 보급된 시대를 살기는 했었지만, 그 당시까지도 프레스코화는 엄연히 존재했던 중요한 회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기꺼이 미술관을 찾아나서는 것을 즐기는 나였지만 프로스코화로 된 그 화가의 그림을 루브르에서 무심코 지나치다가 우연히 마주쳤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한동안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어머나 세상에나..........!!!!!!
'보티첼리(Sandro Boticelli)가 느닷없이 파리에서 왜 튀어나와? 당연히 피렌체에 있었어야지?'
아무리 뜯어보고 또 뜯어보아고 보티첼리가 틀림없다. 그것도 희귀한 프레스코화 였다.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화가이기는 하나 상당히 구닥따리 화가라고 나는 부른다. 그림의 소재에 신화를 많이 사용했다고 해서만 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르네상스 회화의 아주 중요한 가치 척도였던 원근법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을뿐더러, 인체 구조의 비례 또한 엉망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참 손이나 발을 못 그린 화가다. 흔한말로 초등학생들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의 손과 발을 그렸다. 하지만 머리띠나 옷 장식은 물론 바람에 나부끼는 머릿결과 옷자락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그림의 기법상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손이나 발은 참 못그렸다. 그의 스승인 필리포 리피 또한 손과 발 표현이 별로였는데, 이거 제자인 보티첼리는 오히려 스승 보다도 한참이나 더 못그리지 않았는가? 평생 다빈치와 어울리며 교류하였는데 왜 손과 발을 다빈치 반에 반 만큼이라도 따라하거나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참으로 획일적이기만 했던 올 곳은 일방통행 정신과 뚝심과 배짱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아쉽기는 하다.
처음 만나는 그림은 <처녀에게 선물을 전하는 비너스와 삼미신(Venus et les Graces offrant des presents a une jeune fille)> 작품이다.
피렌체 인근의 빌라 렘미에 소장하고 있던 보티첼리의 그림 두 점을 르브르가 구입해서 전시하고 있는 나름 루브르 입장에서는 귀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가운데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바로 아프로 디테(Aphrodite) 여신이다. 여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삼미신(三美神) 이다. 이 그림은 아프로디테와 삼미신이 자주색 옷차림의 여인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건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옆에 나란히 걸려있는 다음 작품을 보면 <자유 학예모임 앞의 젊은 남자>라는 제목이 붙어져 있는데, 보티첼리가 하나의 소재를 동시에 나누어 그린 연작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붙였는지 어색한 제목으로 인해서 그림의 내용 전달이 심히 불편해졌다고 생각된다.
어느 시골에 선남선녀가 만나 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에는 신분이나 가정형편이나 어떤 넘을 수 없는 장애가 놓여 있었다. 올림포스 산에서 이들의 사랑을 내려다보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지상에 내려와 처녀를 만나서 결혼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는 신랑의 손을 여신이 직접 잡아끌고 여인의 가족들에게 데려가 소개를 해 주고 있는 장면을 보티첼리가 그린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붙어있는 제목이 아무러면 어떤가? 나는 내 마음 속으로 그렇게 그림을 이해했고 아주 쉽게 받아들여졌다.
프레스코화라서 쉽게 망가지는 특성 때문에 여기저기 훼손이 심한 상태였고, 또 프레스코화라서 수리나 복원이 많이 힘들다는 사실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프로디테(Aphrodite)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를 로마화 하는 과정에서 베누스(Venus)가 되었고, 이를 다시 영어권에서 부르는 이름인 비너스(Venus)가 되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아주 복잡한 여신이다. 여신의 출생에 관해서부터 여러 가지 속설들이 무수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에 따르자면 폭신(暴神) 우라노스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려고 아내 가이아의 엄청나게 성스러운 음모에 아들 크로노스를 끌어들여서....... 아버지가 거시기 하던 참에 아들 크로노스가 낫을 휘둘러 아버지의 거시기(?)를 잘라 멀리 동쪽으로 내던졌는데, 키프로스 섬에 거시기가 날아와 떨어지며 생긴 하얀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는 것이 어디까지나 보티첼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막장 드라마도 그런 막장 드라마가 없는 그리스 신화에서 또 평지풍파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티첼리 생각대로라면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에게 고모뻘이 된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남편의 끝없는 외도에 뿔이 나서 혼자서 아들 헤파이토스를 낳는데........ 아프로디테가 헤파이토스에게 시집을 간다. 고모할머니랑 결혼을 했다는 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시어머니지만 헤라 여신이 아프로디테에게 막 기어먹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그리스 신화에서 교훈은 얻되, 절대로 족보는 따지지 말자. 미궁에 막장뿐이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가 미운데 헤라의 눈치가 보여 어쩔 수가 없어서 꾀를 부려 예쁜 처자를 하나 슬쩍 떠밀어 보냈다. 그 처자로 인해서 폭망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생각이 깊은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제우스의 흑심을 알아채고는 처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그만 날름 그 처자를 범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처자의 이름이 판도라였으니...... 문제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 만 것이다. 문제야 어떻게 되었던....... 그 일로 판도라가 딸을 낳았으니 바로 디오네 라는 처자였다. 그런데 또 일이 요상하게 꼬이려고 쑥쑥 자라난 디오네가 어찌나 예쁘고 섹시하였던지 그만....... 제우스가 보자마자 미치고 환장을 하여 또 날름 범해버렸는데........ 그게 또 직빵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딸을 낳은 것이 바로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 헤시오도스와 호머가 분명하게 아프로디테의 출생 신고서를 증빙서류로 제출하였으니 그렇게 믿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과 신상에 이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래나 저래나 출생에서부터 범상치 않으니...... 세상 남자를 꽤나 홀리고 망칠 팔자를 타고 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아프로디테의 평생 경력을 살펴보아도 정숙함이나 고고한 매력 보다는, 탕녀(婸女)나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찾아가는 <밀로의 비너스>나 눈앞에 걸려있는 그림에서 그런 느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아프로디테의 진면목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매력 넘치는 사랑스런 여신이었을까? 욕망에 사로잡힌 음탕한 여신이었을까?
아프로디테는 항상 주변에 큐피트의 화살을 들고 장난치는 아들 에로스와 그리움의 여신 히메로스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사업(?)에 종종 활용하였다. 그런가하면 어느 때는 정말 남자가 궁했는지 동성끼리의 묘한 염문을 뿌리기까지 했다.
보티첼리의 작품 <프리마베라(봄)>나 지금 만나고 있는 프레스코화를 보면 아프로디테의 주변엔 늘 세 명의 여인들이 둘러싸듯 따라다니는데, 이들을 미술사에서는 ‘삼미신(三美神)’ 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신화에서 카리스(Charis)라 부르고 로마신화에서는 그라티에(Gratiae)라고 부른다.
삼미신이 아프로디테의 그림이나 조각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무슨 수행원쯤으로 인식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결코 아니다. 하늘나라 올림포스 신전에는 여러 신들을 보좌하면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역할을 맡은 카리스(삼미신) 라는 직위를 두었으며 축제나 잔치 때 이들이 나서서 가무를 담당하는 모습이 여러 곳의 벽화나 그림이나 조각에 종종 등장한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연회에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삼미신(카리스)을 소개하면서 하나하나의 이름을 거명하는데, 에우프로쉬네( Euphrosyne. 기쁨. 매력) 이며, 탈리아(Thalia. 만발한 꽃) 이며, 아글라이아(Aglaia. 빛남. 창조성) 라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자면 삼미신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이미 아프로디테의 성품에 속해있는 것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 어쩌면 이들이 여러 곳에서 아프로디테와 어울리거나 뒤에서 배경처럼 등장함으로서 더욱 아름다운 빛을 활짝 피어나게끔 만들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그리스 신화까지도 등장한 마당에 반듯이 집고 넘어가야만 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난다.
이제까지 등장한 삼미신(三美神)과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세 여신(三女神)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삼미신(三美神)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폴로) (아프로디테) (헤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보티첼리의 그림으로 치자면 아프로디테가 삼미신 역할까지 해서 일신이역을 지금 하고 있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말해서 대충 거꾸로 생각하면 되겠다. 세 명의 가장 예쁜 여신은 ‘파리스의 심판’ 한 장면에만 등하는 것이고, 나머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 털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미신은 모두 카리스의 세 여신들을 나타낸다고 보면 되겠다.
하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세 여신의 장면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자극적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진짜 삼미신이라고 해도 감히 여기 ‘미의 삼총사’ 앞에서는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 것이다. 정말로 하나 같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절대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의 끝판왕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정말로 아폴로와 아프로디테와 헤라 보다 더 예쁜 여자는 없었을까? 내 생각엔 설혹 하늘나라에는 없을지 몰라도 지상의 인간 세계에는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제우스가 가진 여성을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고 친다면, 하늘나라의 세 여신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여성이 인간세계에 많았기에 툭하면 ...... 한 번 정확히 세어볼까? 제우스가 목숨 걸고 사고를 친 것이 과연 몇 번인지?
이를 뒷받침 해줄만한 우화가 실제로 전해 내려온다.
<밀로의 비너스>를 설명하면서 하려던 이야기 인데........ 전해지기로는 <밀로의 비너스>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혹은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조각 작품 중에 <크도니스의 비너스> 라는 조각상이 있었다. 나중에 다시 부연 설명이 있겠지만........
기원 전 350년경에 그리스 미술사를 통 털어서 최고의 조각가로 평가받는 플락시텔레스가 <크도니스의 비너스> 라는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 역시나 크도니스라는 섬에 놓여 있었다 하여 <크도니스의 비너스>인 것이다. 사실 크도니스라는 섬은 별 볼일이 전혀 없는 섬이었는데 이 조각상 하나로 세상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식이 하늘나라에 까지 올라가 비너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듣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지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기에 저렇게 난리도 아니란 말인가’ 하고 해가 지고 나서 몰래 크도니스에 내려와 보았던 것이다.
'아뿔싸!!!!! 이를 어떻게 해?'
조각상을 보고 난 비너스는 경을 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광장 한가운데 벌거벗고 서 있는 조각상이 그야말로 완벽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쌍*의 자슥이 언제 내 몸을 저렇게 샅샅이 훔쳐보았단 말인가?’ 이거야 말로 만든 것이 아니고 그냥 완벽하게 찍어낸 것이라고 생각한 비너스는 그 길로 부리나케 플락시텔레스의 작업실로 쳐들어갔다.
‘사실대로 말해. 너 내 몸을 언제 어디서 훔쳐 본거야? 도대체 몇 번이나 몰래 훔쳐본 것이야?' 하고 따져 물었다.
‘훔쳐보긴 뭘 훔쳐봐요. 전 날개가 없어서 올림포스에 올라가지도 못 하구요. 지난 이 년 동안 이 작업실을 벗어나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구요. 작업 일지도 여기 있고요. 때마다 식당에서 밥 가져다 먹은 외상장부도 여기 있어요. 알리바이가 모두 있다고요.' 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시대가 요즘 같아야 몰래 사진을 찍어 유출됐거나 동영상 유출이라도 의심해 볼 터인데 말이다.
결국,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비너스 여신은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 갈 수밖에 없었다.
비너스가 작업실 문을 쾅 닫고 떠나자마자 플락시텔레스가 이렇게 혼자 중얼 거렸다.
‘훔쳐보긴 뭘 훔쳐 봐. 하여간 공주병에 걸려가지고 지가 젤 예쁜 줄 알아. 아니거든. 더 예쁜 여자를 내가 알거든. 미의 여신은 무슨 얼어 죽을 여신....... 예쁜거로 치면 프리네가 훨씬 더 예쁘거든. 조각상은 내가 프리네를 보면서 직접 만든 것이거든.’ 라고 중얼거렸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리네는 그리스에서도 아주 유명한 직업여성, 그러니까 창녀 헤타이라(hetaera)였다.
만약에 이 플락시텔레스의 푸념까지 비너스 여신이 듣게 되었다면........ 이후의 사태는 어떻게 변했을까?
비너스가 머리를 깍고 어디 깊은 산속 절간에라도 들어갔을까?
올림포스의 세 여신이 가장 예쁠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버리는 시대가 도래 했을까? 아니면 플락시텔레스가 능지처참을 당했을까?
이쯤 되면 헤라 여신이 헤타이라를 그냥 가만 두었을 리가 없다. 사단을 내도 벌써 단단히 사단을 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럼 내친김에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도 아예 살펴보고 지나가기로 하자.
사람들은 흔히 양치기 소년 파리스를 앞에 두고 아폴로. 아프로디테. 헤라 여신이 미의 대결을 벌였다고만 알고 있지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 결과로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고, 트로이의 패망이 베르길리우스의 위대한 창작활동의 결과로 로마 건국 신화로 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이다.
어차피 오늘 여행 이야기의 종점은 비너스(아프로디테)이고 <밀로의 비너스>를 찾아가는 길이니까 지금부터 ‘파리스의 심판’을 시작으로 그 장황한 이야기 속으로 깊이 한 번 빠져 들어가 보기로 하자.
'파리스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일단 한 가지만 먼저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기로 하자.
'파리스의 심판' 이라는 한 장면만을 뚝 떼어놓고 보면, 파리스는 분명히 깊은 산속에서 외롭게 혼자 양을 치고 있는 꽃미남 소년이다. 요기까지의 각색을 살펴보자면 연출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그래야 세 여신의 비밀이 보장되고 공정성도 확보되고 나름의 공신력이 생긴다고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거나 진실이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파리스는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아테네나 스파르타 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트로이 왕국의 둘 째 왕자였던 것이다. 아킬레스에게 대적하는 그리스 최고의 용사중 한 명인 헥토르의 친동생이었던 것이다. 그만한 신분과 지위와 학식과 소양이 충분하기에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선택되었다고 보는것이 오히려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양치기로 둔갑한 것이야 그렇게 선정된 파리스가 일단 누군가의 조언이나 간섭없이 단독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만 하겠기에 억지로 그렇게 꾸민 것이겠지만........ 사냥 도중에 혼자 숲 속에 떨어져 있었다거나 심신 단련이나 요양을 위해서 조용히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다 했어도 될 문제였을 것을, 엄연한 트로이 왕국의 왕자를 혈혈단시 외로운 양치기 소년으로 둔갑을 시켰으니....... 헐!
그에게 쥐어진 사과가 마침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는 차후의 일이겠고......... 일단 파리스는 우선 나 부터라도 엄청 부러울 정도로 운이 좋은 사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중에 최고미녀 헬레네를 얻고 하는 일은 차후로 미루고라도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지상과 천상을 통 털어서 가장 예쁘다는 세 여신이 어느날 갑자기 파리스 앞에 번쩍하고 나타났다. 여신들이 주겠다는 선물도 상관이 없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여신중의 한 명이라도 만나 볼 수 있는 남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느냔 말이다. 꿈속에서나 만날것 같은 미녀 여신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세트로 동시에 번쩍하고 나타났으니....... 헐! 내겐 꿈이라도 정말 좋겠다.
파리스에게 다가와 사과 하나를 손에 쥐어 주며 가장 예쁜 여신을 하나만 뽑아달라는데....... 당시의 미의 기준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도 진정한 미를 찾는답시고 옷을 훌훌 벗어 던지는 마당에...... 그 시대에 최고로 예쁜 여신 세 명이 저마다 자신의 빼어난 미모와 매력을 마음껏 발휘하자면 현장에서 어떤 상황들이 벌어졌을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아하! 고고하신 분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감히 상상력이 부족하여 도저히 그 같은 상황을 가늠하기가 힘드시다고?
그렇다면 내가 기꺼이 해결해 드리리다. 폴 루벤스가 그린 <파리스의 심판>을 현장 CC TV로 대령이요............ !!!!!!
흐메!!!!! 파리스는 엄청 좋았겠다. 어찌 좋지 않을수가 있단 말인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유독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 이라는 신화속의 소재에 크게 매료되었던 듯하다. 그는 이 소재를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작품을 여러 점 그렸기 때문이다. 하긴..... 어쩌면 루벤스를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서 격하시키게 만든 부정적 이미지이기도 했던....... 20명이 넘는 직인(제자. 기술자)을 몰고 다니며 자신의 화풍이 담긴 그림을 마치 인쇄하듯이 찍어냈던 인물이라 ‘파리스의 심판’ 작품 중에서 하나 정도는 본인이 직접 대부분을 그린 그림이고 나머지는 내용과 구도만을 담당했던가, 아니면 올라오는 작품에 수정 덧칠 정도를 가미했던가, 그것도 아니면 감수한답시고 자신의 이름을 써 넣은 서명만 했을 수도 있다. 루벤스 사단을 한 마디로 하면 ‘움직이는 그림 공장’ 이었던 셈이다.
같은 제목의 그림 중에서는 바로 위에 게재한 ‘파리스의 심판’을 가장 좋아한다. 위 그림은 루벤스가 1606년에 완성하였으며, 가로 세로 89 X 114 크기의 비교적 개인이 소장하기에 딱 좋은 크기의 패널화로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벤스 하면 일단 풍만하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체를 통해 생동감과 실제로 보고 만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전달력이 매우 뛰어난 화가라 할 수 있겠다.
라파엘로의 천재성을 이야기 할 때마다 놀라운 그의 습득하는 실력과 재해석 실력을 꼽았다. 다빈치가 하나를 가르쳐주면 셋을 깨달았고, 미켈란젤로의 작업장을 몰래 들여다 본 것만으로 힘찬 육체를 표현하는 미켈란젤로만의 기교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버렸던 실로 괴물 같은 천재였다.
하지만 이제 미술사를 통 털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깨닫고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 하는 실력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감히 라파엘로조차도 명함을 내밀기가 좀 거시기 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불세출의 진짜 천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자랑하는 힘찬 육체에 대한 표현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티치아노의 눈이 부실 정도의 화려한 색채감, 코레지오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연속성과 긴장이 느껴지는 속도감, 카라바조가 상징하는 자연주의와 드라마틱한 서사적 느낌과 극한의 명암과 대비, 거기에다 그뤼네발트의 제단화를 무대에 올려놓고 감상하고 있는듯하게 만드는 놀라운 연출 표현력까지, 이 모두를 루벤스는 독학을 통해 이미 습득을 넘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올림피아 미인 선발대회’ 장소로 가 보도록 하자.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에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가득 차고 넘친다. 장면 하나로 멋진 드라마 한편을 통째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듯하다.
창과 방패와 투구와 갑옷을 벗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맨 오른쪽에서 등을 보이며 옆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여인이 바로 아테네(Athene) 여신이다.
지혜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테네는 일단 처녀 여신이다. 함께 쌍둥이로 태어난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더불어 영원히 독신으로 살면서 순결을 지키는 동정녀 여신의 쌍두마차라 하겠다. 남자들보다도 용맹했고 모든 분야에 두루 박식하여 지혜의 여신으로 추앙 받았으며 뜨개질과 염색에도 조예가 깊었다. 살면서 오디세우스. 아킬레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 용맹한 남성적 영웅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약했다.
그런 아테네에게 아무리 ‘올림피아 미인대회’가 중요하다고 해도,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순간에도 이미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세상에 등장했던 처녀 여신의 처지로 무작정 옷을 홀라당 벗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이것까지 벗어야 한단 말이야?’라고 항의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낸 루벤스의 감각에 경의를 표한다.
홀랑 벗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심판위원장인 파리스의 하복부 중심을 쏘아보고 있는 당당한 모습의 가운데 여인이 당연하게 아프로디테(Aphrodite)가 맞다. 마치 ‘어쭈. 너 지금 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거니?’라고 추파를 던지고도 남을 만큼 뇌쇄적인 모습이다. 하여 알 것 모를 것(?) 이미 다 꿰차고 있는 아프로디테는 이쯤에서 적당히 패스하기로 하자.
안쪽에 황금 비단으로 만든 옷을 벗지 않으려고 모진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이 과도하게 연출을 벌이고 있는 여인이 바로 헤라(Hera) 여신이다. 이 선발대회가 벌어진 연도가 확실치 않아 아프로디테가 이때 헤파이토스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하여간 헤라 여신은 확실한 유부녀 신분이다. 하여 이미 남녀 간의 오묘한 이치와 숙명에 대해서 아프로디테와 헤라는 풍부한 경험(?)을 소지한 여신들이었고, 아테네만은 끝까지 동정녀로 살았다.
하여 아프로디테 못지않을 만큼 세상 물정에 대해서 충분히 알았을 헤라 여신이 이렇게까지 부끄러움을 타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은 순수한 말로 ‘왕 내숭’ 이라고 해야겠다. 그 남편이 누구인가? 절륜 왕(?) 제우스를 남편으로 두었던 처지에, 흔한 말로 요즘 화제꺼리에 등장하듯이 ‘집에서 안 해줘서 밖에 나가서 외도를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 제우스와 헤라 간에 사이는 썩 원만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다만, 제우스의 그쪽 분야가 너무나 왕성하여 사고를 치고 또 치었던 것이리라. 이것이 역사적 평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헤라가 저렇게까지 내숭을 떠는 것은 숫처녀인 아테네를 염두에 두고 벌이는 해프닝이라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루벤스한테 물어보면 보다 정확할 텐데 말이다.
아주 희박한 경우에 해당하겠지만........ ‘어쩌면 헤라 여신이 정말로 저렇게 부끄러워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여운처럼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헤라 여신은 1년에 한 번씩 카나토스 섬에 찾아가 목욕을 함으로써 매번 처녀를 회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즘처럼 의료기술 발달의 혜택을 받아서 처녀성을 회복시키는 것인지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헤라는 매년 카나토스 섬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숫처녀가 되었다가, 제우스와 잠자리를 함으로써 유부녀가 되었다가, 다시 때가되면 숫처녀가 되었는데......... 마침 ‘올림피아 미인대회“가 목욕탕에 다녀온 직후였다면........ 처녀성을 회복했으니 당연히 새파란 애송이 남자 앞에서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이들 세 여신 앞에서 턱을 괴고 앉아 다소 거만한 자세로 여신들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농염함까지 낱낱이 도륙하듯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는 파리스의 표정과 모습을 보라. 요 대목에서는 루벤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찰떡처럼 잘 들어맞고 있다고 하겠다. 어디 파리스가 산비탈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고 있는 양치기 소년 같은가? 떡 벌어진 어깨와 단련된 다부진 신체를 가진 건장한 상남자의 모습이 아닌가? 딱 봐도 이미 세상물정은 물론 음양의 오묘한 조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충만한 노련함이 엿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여성의 신비를 모르는 양치기 소년이 뭐를 안다고 무엇을 기준으로 미인 선발대회 심판위원장을 맡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딱 보아도 루벤스가 기가 막히게 파리스 역을 맡아줄 배역을 잘 찾아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세 여신 앞에서 감히 인간의 처지이면서도 전혀 밀리거나 기죽지 않았을 뿐더러, 의연한 남성다움으로 농염하고 뇌쇄적인 여신들의 율동에도 당당하게 맞서고 있지 않은가? 감히 천상의 제우스신도 세 여신 앞에서는 저 정도의 당당함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제우스에게 닥쳐 온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지상의 인간 세계로 떠다 민 것이 바로 지금 펼쳐지고 있는 ‘올림포스 미인 선발대회’가 아니었는가?
더구나 왼손에 슬쩍 감추다시피 한 사과를 보고 있으면........ ‘세 여신님들. 혹시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를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야?’ 하는 은근한 자신감과 거만함까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세 명의 여신이 각자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고, 그 앞에 파리스가 예리한 시선으로 최고의 미인을 뽑고 있는 상황에 뜬금없이 나타나 나랑은 별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포즈로 슬쩍 비켜서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황홀한 장관에 입을 떡 벌린 채 무아지경 속을 헤매고 있는 이 억세게 운 좋은 사내는 또 누구란 말인가? 완전 공짜 관람객이 아닌가?
날개 달린 모자(Petasos)를 쓰고 있으면 무조건 헤르메스(Hermes)가 맞다.
두 마리의 뱀이 휘감긴 지팡이(Kerykeion)를 들고 다닌다. 그가 허리춤에서 날개달린 신발(Ptenopedilos)을 꺼내 신으면 온 세상을 넘어 온 우주의 어느 곳이든 가장 빠르고 은밀하게 날아다닐 수 있다. 그가 아폴로가 기르는 황소를 짚을 엮어 만든 네 개의 신발을 신켜서 하늘로 데리고 도망친 일화는 올림포스의 사건일지에 크게 기록되어 있다.
정말로 신비로운 장난꾼이자 미래지향적 벤처 사업가라 해야 하겠다. 머지않은 미래에 드론 택시가 상용화가 된다면 이미 수천 년 전에 헤르메스가 창조한 하늘을 나는 신발 사업이 이제야 현실 생활에 적용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12명의 신중에 한 명이다. 못가는 곳이 없고 빠르다는 이유로 항간에서는 ‘신들의 전령사(使者)’ 라고 불린다. 장난꾸러기는 맞으나 올림포스를 통 털어서도 손에 꼽힐 만큼 멋쟁이 미남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도둑과 상인과 나그네의 수호신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둑이나 상인이나 나그네에게는 어느 정도 은밀하고도 동종업종 비슷한 어떤 공통분모가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헤르메스를 무시하거나 내치면 안 된다. 혹시나 먼 훗날 죽음이 찾아 온 다음 길을 몰라 못가겠다고 버티면....... 그때 헤르메스가 나타나 순식간에 지옥까지 길 안내를 해줄 테니까 말이다. 헤르메스는 지옥까지도 제 집처럼 마구 드나드는 라이쎈스를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이 장면에 헤르메스가 등장한 것은 제우스가 올림포스 미인대회 우승자에게 줄 사과를 택배로 보냈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달을 하려면 헤르메스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1초에 광고비가 수억씩이나 한다는 미식축구 슈퍼볼이 열리는 경기장에 들어가려면 입장표를 사야하는데 그 가격이 실로 엄청나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상에서의 일인데.......
그리스에서 열리는 ‘올림포스 미인대회’ 입장권은 얼마쯤 했을까? TV 중계도 없고, 단 1회뿐인 행사고, 진짜로 아테네와 아프로디테와 헤라 여신이 출전을 하고 수영복 심사를 넘어서 전라 심사가 있다고 치면.......... 과연 얼마쯤이면 입장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당일 당 시점에 우승컵을 배달해야만 한다면........ 택배 회사는 DHL일까? 대한통운 택배일까? 로젠 택배일까? 한진 택배일까?
왜냐고? 그게 어느 정도 짐작이 가야 내가 시방부터래도 그 택배회사에 취직을 해 볼까 해서 하는 말이다. 가진 돈은 없고...... 혹 그날 내 짐차에 그 우승컵이 실리게 되면....... 흐메. 공짜로 미인대회를...........???
혹, 대회는 어디까지나 비공개니까 배달만 마치고 얼른 나가라고 하면?
‘잠깐 스탑. 저 그림에 헤르메스는 그냥 구경하면서 남았잖아유. 이건 아니지유?’
가만히 보니 그렇다. 헤르메스는 이 사태와 별반 아무런 직접관계가 없다. 사과 배달을 마쳤으면 어쨌거나 빨리 돌아갔어야만 한다. 그런데 아예 날개달린 신발까지 벗어버리고 능청스런 표정으로 콘테스트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헤라 여신이 누구인가? 헤르메스의 엄마다. 낳지는 않았지만 족보상 분명한 엄마가 아닌가?
제우스가 이번에도 절륜을 앞세워 마이아와 정을 통해서 낳은 것이 바로 헤르메스였다. 이것이 들통이 났다. 헤라의 성격대로 한다면 마이아와 헤르메스의 앞날은 온통 캄캄한 절벽이었을 것이다. 헤라의 질투와 보복은 온 우주를 통 털어서도 전무후무할 정도로 잔혹했기 때문이다. 재간둥이 헤르메스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과 어머니가 처한 처지를 이미 잘 깨닫고 있었다. 사실 같은 시기에 제우스의 정부인인 헤라는 왕자를 낳았던 것이다. 바로 전쟁의 신 아레스를 왕자로 낳았던 것이다. 갓난아기 헤르메스는 날개달린 신을 신고 제우스 궁전의 창문을 날아 헤라의 침실로 들어갔다.(어디까지나 신화니까 가능) 아레스를 옆으로 밀어서 이불을 덮어놓고 헤라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엄마 젓을 실컷 빨아 먹었다. 잠결에 배가 고파 젓꼭지를 빨아대는 아들을 헤라가 꼭 껴안아 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헤라가 모든 정황을 깨닫게 되었다. 분노가 치솟아야 하는데...... 그냥 허탈해 졌다. 아들인줄 알고 수유까지 해준 아이가 남편이 바람을 피워 태어난 헤르메스였으니 헤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런 헤라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헤르메스가 해맑게 웃으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실은 이게 다 그 영특한 헤르메스의 계교에서 나온 연기였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바람을 피운 모든 여자들과 자녀들에게 잔혹하게 보복을 했다. 단 한 가족....... 헤르메스와 마이아만은 그대로 두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헤르메스가 빤히 쳐다보는 앞에서 지금 옷을 벗고 쇼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림을 자세히 쳐다보면 아래 중간에 루벤스가 떡하니 개를 한 마리 그려 넣은 것은 아닐까?
‘시작부터 모든 게 개판이었어.’ 라고 말이다.
루벤스도 나에게 그것에 대해선 어떤 암시나 부연 설명까지는 해주지 않았지만..... 내 나름으로 판단해 본다면 충분히...... 아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헤르메스는 제우스로부터 이 콘테스트의 끝까지 잘 지켜보고 끝나는 즉시 자신에게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별도의 지시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현장에서 끝까지 지켜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청난 호사를 공짜로 즐기면서 말이다.
‘올림포스 미인선발대회’는 애초에 하늘나라 올림포스에서 제우스 주관 하에 열리게 된 경연대회였다. 하지만 그 경기 결과가 불러 올 화를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조차도 감당하기가 불가능 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제우스가 내린 최종 결론은 ‘책임회피’였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조차도 감당 할 수 없는 결과를 그만...... 인간에게 떠맡겨 버린 것이다. 폭군 네로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떠맡긴 것과 비슷한 예라고 하겠지만, 그 격의 차이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겠다.
신(神)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나약한 인간에게 전가 시킨다?
하긴 이런 일이 ‘파리스의 심판’ 하나에만 그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인류의 역사에는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인간의 피와 땀으로 책임을 지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 그림 어디에서도 ‘신성모독’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인간과 신 사이에 어떤 신분의 차이나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나 경계도 느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헬레니즘이다.
그럼 이 그림의 배경을 조금 바꾸어서 저렇게 완전히 벗지는 않겠지만 우측에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성모의 어머니 안나가 그려져 있다고 치자. 그리고 왼편에 세례 요한과 천사 가브리엘이나 미카엘이 등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상황 연출이나 포즈는 어떻게 하던 좋겠는데 표정과 눈빛만은 지금 파리스의 표정과 눈빛을 고수했다고 치면....... 당연하게 즉시 ‘신성모독’에 난리가 날 것이고, 어쩌면 루벤스는 기독교에서 파문당하고 심지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에 처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기독교 주의라고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바로 이런 차이가 내재해 있다. 그리고 그런 차이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르네상스인 것이다.
‘올림포스 미인대회’는 회화이든 조각이든 연극과 같은 다른 모든 예술분야에서 얼마든지 창작되고 시연될 수 있다. 하지만 ‘예루살렘 미인대회’는 바티칸 위원회의 기준과 간섭과 엄정한 사후 책임에 대해서 결단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올림포스 미인대회’의 참가자들은 천상의 여신(女神)들임에도 한없이 자유로운데 반해서, ‘예루살렘 미인대회’ 참가자들은 분명 모두가 인간(人間)임에도 제한규정에 ‘신성모독’의 적용을 받아야만 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을 몰살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집단 학살된 헬레니즘을 되살려 낸 것이 바로 르네상스’가 되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일은 벌어져 버렸는데...... 정작 이 사태의 원인은 전혀 다른곳에서 엉뚱하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자.
펠레우스(Peleus)와 테티스(Thetis)의 결혼식에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이 초대를 받았고 기꺼이 제우스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신들이 참여해 축하해 주었고 성대한 피로연이 벌어졌다. 다소 이례적인 행사였다. 신(神)과 신(神)의 결혼이었다면 당연했을 수 있겠지만, 이 결혼은 분명히 신(神)과 인간(人) 사이에 벌어진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신부인 테티스는 지상과 하늘나라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미 소문이 자자한 바다의 여신(님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막을 슬쩍 들여다보면 테티스의 미모가 어찌나 빼어났었는지 벌써 제우스와 포세이돈까지 몇 번씩 구애를 했다가 퇴짜를 맞았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결코 아니었다. 급기야 둘이서 서로 먼저 테티스를 차지하는 내기까지 벌이게 되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다가와서 제우스와 포세이돈에게 놀라운 비밀을 하나 알려 주었다. 테티스에게 내려진 신탁이 하나 있는데 ‘테티스에게서 아버지를 훨씬 능가하는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였다고 한다. 세상은 지상과 하늘을 차지한 제우스와 땅속을 차지한 하데스와 바다를 차지한 포세이돈의 것인데........ 제우스가 되었던 포세이돈이 되었던 테티스를 차지하여 아들을 낳게 되면 장차......... 신들 세계의 권력서열에 커다란 변동이 생길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우스도 포세이돈도 하데스도 서로를 감시하면서까지 테티스에게 접근을 못하게 서로 감시해야 할 판이었다. 공생이냐 공멸이냐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들을 한 결과로....... 테티스를 서둘러 하늘나라의 위계질서에 위협이 되지 못할 정도의 남자에게 무조건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한 미모 하는 테티스가 아무남자에게나 가랜다고 쉽게 시집을 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신의 안목과 체신머리라는 것이 버젓이 있는데 말이다.
하늘나라 삼대장이 모여서 합숙훈련 끝에 내놓은 묘수가...... 일단 신랑을 인간 중에서 찾자는 꼼수였다. 인간이라는 한계성이 있는데 아무리 신탁으로 태어난 사내아이라 하여도 하늘나라의 위계질서까지 흐트러트리지는 못 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남자 신 못지않은 인간 영웅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찾아낸 신랑이 바로 인간 중에서 용맹하기로 이름을 떨치긴 했지만, 어딘가 영웅 단계에까진 차마 미치지 못한 잘생긴 펠레우스를 선정했던 것이다. 펠레우스는 인간으로서 헤라클레스가 열두 가지 과업을 해결할 때 옆에서 함께 고난의 여행을 함께한 전우이자 친구였다. 어쨌거나 테티스는 죽어도 펠레우스에게 시집을 갈 수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신들이 모여 짜웅을 해서 어떻게든 펠레우스에게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갖은 음모들을 꾸몄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론적으로 테티스는 펠레우스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
여기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깊은 내막이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가 테티스를 남몰래 찾아가서 설득을 했던 것이다. 설득이라면 당연히 신탁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고....... 테티스는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대신 총명한 테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아버지를 능가하게끔 만들어져 태어나게 될 아들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는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역시나 모성애는 실로 위대했다. 이 또한 운명이라고 판단한 프로메테우스는 테티스에서 태어날 아들의 운명을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테티스와 펠레우스 사이에 태어나게 될 아들은 장차 헤라클레스 못지않은 위대한 영웅이 될 것이다. 그의 용맹한 이름 또한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다만......... 다만........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요절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그대로 전했다.
기가 차고 까무러칠 노릇이었다. 태어날 아들이 영웅이 되긴 하는데 일찍 죽는다니.......
‘신탁을 이미 들었으니 결혼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아들은 낳지 않겠어요. 어차피 일찍 죽어야할 운명을 가진 아들이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을 테니까요. 결혼은 하되 영원히 합방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반듯이 아들을 낳게 되어있습니다. 가여운 테티스여.’
‘그렇다면 내 아들의 운명을 바꾸어주고 싶어요. 뻔히 죽을 줄을 알면서 아들을 낳고 귀여워하며 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프로메테우스. 내가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드리겠어요. 제발....... 제발 아들의 운명을 바꾸어서라도 죽음에서 구해 주세요. 아니요. 제가 하겠어요. 무슨 일이든 방법만 가르쳐 주세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거예요. 부탁 이예요.’
밤이 새도록 테티스는 프로메테우스 앞에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그 지극한 모성애에 감동한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천기를 누설하고 만다.
‘아기가 태어나면 첫 보름날 밤에 운명의 강(스틱스)으로 데려가세요. 보름달이 가장 환하게 빛나는 순간에 아기를 강물에 푹 잠기도록 하세요. 이후로 그 아이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신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거예요. 어떤 병마도, 어떤 무기도 그 아이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렇게 불로불사의 삶을 살다보면 언젠가 어머니를 따라 올림포스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거예요.’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테티스는 그 가르침을 따랐다. 아들이 태어난 첫 보름날에 스틱스 강에 찾아가 달빛이 가장 빛났을 때 아들을 흐르는 강물에 푹 담았다가 꺼냈다. 이로서 아들의 운명은 새롭게 된 것이다. 이제 아들은 자신과 더불어 영원한 신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들을 강물에 던지면 떠내려 갈까봐 한쪽 발목을 엄마가 움켜쥐고 담았다가 빼었던 것이다. 하여 한쪽 발목에는 강물이 스며들지 못했다. 그 자리를 훗날 사람들은 (아킬레스 건) 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어쨌거나 제 갈 길로만 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운명인 것이다.
또 한 번, 어쨌거나 저쨌거나 말이다. 어찌되었던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은 벌어졌다. 테티스가 아깝기야 제우스나 포세이돈이나 마찬가지로 그지없겠으나 하니 어쩌겠는가? 하늘나라의 안녕과 자신들의 만수무강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참석해서 축하를 해 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늘나라의 모든 신들을 빠짐없이 초대 한다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다 했는데....... 아뿔싸. 딱 한명, 에리스(Eris) 여신이 그만 초대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늘 틀리지를 않는 것일까?’ 하는 어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이 여신의 뒤끝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에리스 여신을 ‘불화의 여신’ ‘이간질의 여신’ 이라고 불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뿔다구가 머리끝까지 난 에리스 여신은 서쪽 세상의 끝에 있는(북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맥) 헤스페레데스의 정원의 사과나무에서 불노장생의 황금사과 하나를 따서 결혼식장 근처의 숲속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결혼식 피로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제우스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황금사과를 던지고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과에는 이렇게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라고.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이목이 황금사과에 쏠리게 되었는데.......... 특정 수취인이 지목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막연하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이었으니........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도 전에 한 여인이 고즈넉이 턱 선을 45도로 추켜세우면서 슬며시 다가서는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당연히 내가 아니겠어?’ 하는 폼으로 봐서 당당해도 너무나 당당한 아프로디테였던 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제우스가 그냥 지나는 말로 ‘옛다. 아무래도 너에게 보낸 것인가 보다’라고 하면서 사과를 툭 건넸으면 그냥 단순한 해프닝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제우스는 난처한 표정만 짓고 묵묵히 쳐다만 보고 있지. 아프로디테는 당연히 자기 차지인 것처럼 주변을 서성대지........ 그러자 서서히 사방에서 요상한 소리(불협화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프로디테가 확 집어가도 문제가 될게 없는 상황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야?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잖아. 내 생각엔 아테네 몫이야. 우리가 허구헌 날 갑옷입고 투구 쓴 아테네만 보니까 그렇지, 지금 당장 아테네를 가만히 살펴봐봐 우리가 그동안 몰라서 그렇지 정말 미인은 아테네라니까?’
‘그럼 아르테미스는? 매일매일 들로 산으로 사냥 다니느라 가꾸질 않아서 그렇지, 꾸며놓으면 최고 미인은 아르테미스여. 알아?’
‘뮤즈들과 삼미신들도 한 미모씩 하잖아? 무대에 세워놓고 제대로 살펴보기 전엔 판단하는 게 무리일거야. 다들 자기만의 개성이란 게 있잖아. 길고 짧은 건 재봐야 하는 거야.’
‘테티스는 또 어때서? 오늘 잔치의 주인공이라서 가만히 있을 뿐이지. 테티스가 누구에게 비교해서 빠질 미모는 절대 아니거든? 그건 제우스와 포세이돈도 부인 못할걸?’
‘헤라 여신도 한 미모 하잖아?’
‘쉿. 나이가 있잖아? 옛날에는 이뻤지. 어디까지나 옛날에는 말이야. 그리고 지금 테티스가 시집을 가는 중이니까 아무 말도 안하고 있잖아. 유부녀가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럼 어디 헤라가 유부녀야? 거의 할머니라고 불러야지. 안 그래?’
그런데 바로 요 이야기가 살랑살랑 나부끼는 바람결을 타고 그만....... 헤라 여신의 귓전까지 흘러가 버렸다. 이는 곧 이제부터 사단이 나도 단단히 사단이 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눈을 부릅뜬 헤라 여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보자보자 하니까 더는 안 되겠네. 제우스 남편님. 올림포스의 명예와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 황금사과의 주인을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가리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누가 과연 저 사과의 주인이 되는 것이 맞겠는지 이 자리에서 공평하게 겨뤄보도록 합시다. 자신이 정말로 저 황금사과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나서든가, 아니면 여기 모인 사람들이 추천하여서 경연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우선 나 헤라가 먼저 출전하겠습니다. 내가 경연에 출전하겠다는데 다른 이의는 없으시겠지요?’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제우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섰다.
‘아니 여보.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새파랗게 젊고 어린 여자들이나 미모를 겨루는 것이지 당신이 어찌.......... 그냥 내려오셔.’
‘내가 어때서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이라는데 유부녀는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이 어디 적혀 있었나요? 여자라면 일단 기본 조건은 갖춘 것이 되는 거잖아요? 내가 틀렸어요? 미스(Miss) 라는 규정이 없으니 미즈(Mrs)도 참가가 허락된다는 뜻이 아닌가요? 혹, 처녀만 된다는 규정이라면 모를까?’
그러면서 힐끗 아프로디테를 흘겨보는 헤라였다. ‘처녀라는 게 조건이면 너도 자격이 없지? 그렇지만 난 어제 목욕탕 다녀왔거든’ 하는 표정의 시위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너는 나의 참여를 가로막지 마’ 하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다.
‘헤라 여신께서 참석을 하신다니까....... 그래도 어디까지나 경연이 성립되려면 혼자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경연을 위해서 저도 나서겠어요.’ 라면서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아프로디테였다.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혈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자고로 인간이 생겨난 이후부터 (불구경) 하고 (남의 싸움 구경)은 제일 재미있고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진리 아닌 진리 비스무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어디서부턴지 모르게 ‘아테네’ ‘아테네’ 하는 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렴 그렇지. 양강구도 보다는 삼파전이 훨씬 재미있지. 이젠 바야흐로 삼파전이 되었다.
세상에 뒤끝이 가장 무섭다는 헤라 여신에, 미모라면 절대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아프로디테, 제우스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아테네........ 이렇게 셋이 나섰다. 다른 여인들은 하나 같이 아프로디테나 아테네의 미모에도 자신이 없었을뿐더러, 헤라 여신의 뒤끝이 무서워 감히 경연에 나설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용기가 없기는...... 제우스가 하나 같이 막강한 이 세 여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제우스는 꼼수로 세 여인으로 하여금 스틱스 강에 가서 이 경연의 결과가 어떻게 내려지든 간에 차후로 어떤 이의 제기나 이것으로 인한 후폭풍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맹세를 하고 오도록 요구했다. 세 여인은 쏜살같이 스틱스 강으로 날아가 ‘경연은 어디까지나 경연일 뿐, 무조건 그 결과에 겸허히 승복하고 절대로 보복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맹세들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맹세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경연 이후에 벌어질 패배한 두 여인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하나는 마누라요, 하나는 딸이요, 또 하나는 며느리가 아닌가? 천하의 제우스도 이 과제만은 스스로 해결해낼 자신이 없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식구들 간에 벌어지는 경연을 가장으로서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와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이요. 적어도 여기 세 여인과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 사람을 골라 판정하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드오. 차라리 올림포스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지상의 인간 중에서 골라 공정한 심판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인간들에게 신들의 관심과 함께하는 기회를 베풀어 주는 뜻으로 말이요.’
이렇게 해서 황금사과인지 애물단지가 결국 파리스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제우스로부터 황금사과를 건네받은 파리스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찌질이. 철부지 애송이. 옹색한 녀석 등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일단, 파리스는 세 명의 미인대회 출전자들로부터 제각각 모종의 제의를 받는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약속했고, 아테네 여신은 위대한 지혜와 모든 전쟁에서의 영원한 승리를 약속했고, 헤라는 최고의 부와 권력을 약속했다. 이는 곧 처음부터 미인대회는 공정하지 않은 부조리 위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세 여신의 약속은 모두가 뇌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결국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우승자를 뽑지 않고 뇌물을 보고 우승자를 뽑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최고 미인 선발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최고의 뇌물이 우승자를 발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벌어진 당연히 신성했어야 할 최초의 미인 경연대회가 이렇게 개판(?)으로 끝이 나고 만 것이다.
파리스에게는 어쨌거나 세 장의 카드가 주어졌었다. 그 중에서 단 한 장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녀석은 하필 가장 효용 가치가 적은 썩은 카드를 골랐으니 정말로 한심하고 ‘ㅂㅅ, 지랄 육갑을 떨고 있네’라고 해주고 싶다. 왕자로 오냐오냐 키워져서 세상물정을 너무나 몰랐던 탓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선발대회였으니, 아프로디테가 우승자가 된 후에 아무리 예쁜 여자를 골라준다고 해도 일단은 아프로디테만은 못하다는 결론이 난다. 차라리 배짱 있게 ‘아무리 봐도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것이 틀림없으니 당신에게 황금사과를 주겠소. 대신 약속대로 이제부터 당신은 내 여자요’라고 내질러 보든가........ 아니면 단서 조항에 최소한 본인이 아직 미혼의 총각이었으니 ‘유부녀가 아닌 처녀 중에서’라는 조건 제시 정도는 했어야만 했다. 그냥 여자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팔푼이처럼 놀아났으니......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파리스의 선택에는 패 주고 싶을 정도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어쩜 저렇게 모를까? 정말 팔푼이여?
만약에 파리스의 황금사과가 내 손에 쥐어졌다면 나는 미인대회의 개회 선언과 동시에 촌각도 지체하지 않고 아테네의 이름을 호명했을 것이다.
자고로 남자란 앉아서 죽어도 남자요, 서서 죽어도 남자다. 그런 남자로 태어나서 지혜를 얻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차려입은 호랑이 가죽에 무늬가 더욱 더 선명해 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일 년을 살던 십 년을 살던 아니면 백 년을 살던 사내는 어디까지나 사내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파리스라는 맹추는 전쟁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전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왜 수많은 숫컷들이 기를 쓰고 전쟁에서 이기려고 안달인 줄을 안타깝게도 파리스는 몰랐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모든 것을 정당화 시켜주고, 아울러 그 승리에는 보답으로 노획물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 노획물에 영토. 금은보화도 있겠지만 가장 실속 있는 노획물은 바로 여자라는 사실을 녀석은 몰랐다. 승리에 딸려 나오는 여자는 1회성으로 한두 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무한대의 영속성을 지닌다. 거기에는 어제의 최고 미인과 현재의 최고미인과 미래의 최고미인이 모두 포함된다. 거기에 더해서 지혜와 명성까지 말이다. 아프로디테의 약속보다는 아테네의 약속이 백배 천배 월등한 효율성과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짜슥, 카드면 다 같은 카드인줄 알아? 등급이 다르고 레벨이 다른 카드가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한도 무한대 카드를 눈앞에 두고도 몰라봐? 한심한 녀석.’
바로 그점이다. 바로 요 한도 무한대의 대목을 생각할 쯤이 되면........ 조금은 더 심각하게 생각을 고려해 볼 필요성이 생긴다. 아무 이유 없이 밀려나 버린 헤라 여신이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고려를 해 보아야 한다.
오죽하면 하늘의 제왕 제우스조차도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세 여신에게 무조건 경연 결과에 승복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운명의 강(스틱스)에 가서 맹세부터 하고 오라고 했을까? 그러고도 종국엔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심판위원장을 사퇴하기까지 했는데......... 만약에 파리스를 대신해 내가 즉석에서 아테네를 승리자로 뽑아준다면 과연......... 헤라 여신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내가 앞으로 지혜를 갖춘 용사가 되어서 매번의 전쟁에서 늘 승리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까 하는 대목에서는 왠지........ 왠지....... 생각하면 할수록 찜찜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테네 여신이 약속했으니 종국에 승리를 얻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아닐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떠나질 않는 것은 왜일까?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자면, 헤라 여신이 약속한 부와 권력의 약속이 아테네의 약속보다 못 할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정말로 돈 있고 권력을 쥐었는데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면 돈 주고 사던지 빼앗으면 되지 않겠는가? 헤라 여신이라는 막강한 백 그라운드가 버티고 서있는 마당에 세상에 두려울 것이 더 무엇이 있겠는가? 제우스도 조차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헤라인데 아테네나 아프로디테가 뭘 어쩌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부작용 없이 확실하게 약효를 보장하는 것은 아스피린(?)이 아니라 헤라 여신의 약속이 진짜 따봉(?)이 아니겠는가?
그랬음에도 쪼다 파리스는 하필...... 가장 못한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러게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절대 사진빨에 속지 말자.’ '절대 장사속엔 속지 말자.'
그런데 아쉽게도 가끔 속아 넘어가 퐁당 망하곤 한다.
'그래도 난.... 열 번을 고쳐 죽는다 해도 후회없이 아테네의 카드를 뽑을래!!!!'
‘알함브라 궁전의 노을’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 ‘네덜란드의 오줌싸개 동상’ 우리 앞으론 이런 것들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 우리 스스로를 처량하게 만들지는 말자. 제발.
밀로의 비너스 발굴(1820년), 마침내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출하다.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밀로스 섬에 배를 타고 프랑스 해군 장교 한 명과 선원 두 명이 나타난 것이 1820년 4월 8일 오전이었다. 당시 23살의 해군장교인 올리비에 부티에(Olivier Voutier)는 오스만 터키와 그리스의 영토분쟁을 막기 위해 프랑스가 밀로스 섬에 기항시킨 스쿠너 에스타페트 전투함의 소위였다. 그는 군인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고대 그리스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학자 지망생이었다. 그런 부티에가 그리스로 파견 명령을 받음과 동시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한 가지 비밀 지령이 도착했다. 파견 지역을 샅샅이 수색하여 그리스의 고대 유물을 확보하라는 지시였다. 그것이 프랑스가 차지하는 합법적 지역이던, 아니면 적국의 영토이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고대유물 확보에 주력하라는 비밀 명령이었다. 그 모든 내용을 별도의 라인을 통해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프랑스 정부의 최고위층에 직접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거기에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며, 일단 선 조치 후 보고 까지 허락하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부티에는 늘 해오던 일과처럼 삽을 든 두 명의 해군 병사를 데리고 밀로스 섬의 허물어진 고대 신전 주위를 탐색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다. 밀로스 방문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가을에도 밀로스 섬의 곳곳을 샅샅이 탐색하기는 했었는데 별 소득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 겨울에 지진이 이 지역을 강타하고 지나갔기에 혹시나 지각 변동으로 어떤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 발굴이 생겨났을까 싶어서 다시 찾아 온 길이었다.
그는 섬의 가장 높은 지대에 놓인 허물어져 완전히 폐허로 변한 고대 신전 터를 찾아 언덕을 올라갔다.
그곳에서 부티에는 아주 반가운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농부인 요고스 켄트로타스(Yorgos Kentrotas)였다. 지난 탐사기간 내내 인부로 채용했던 순박한 그리스 농부였던 것이다.
'요고스. 그동안 잘 지냈나? 그래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부티에 소위님이셨군요.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또 유적 탐사 나오셨군요? 뭐 별거 아니 예요. 텃밭에 바람을 막아주던 돌담이 무너져서요. 겨울 지진이 말썽을 부려놓았지 뭡니까. 틈틈이 다시 돌쌓기를 하고 있어요.’
‘그랬군. 다들 다른 사람들도 별일 없겠지?’
‘무슨 일이 있겠어요? 터키 놈들만 아니면 보리나 심고 양이나 돌보고 가끔 바다에 가서 물고기 몇 마리 잡는 것이지 뭐 다를 게 있겠어요? 그래 이번엔 얼마나 머무시는데요? 혹시 인부는 안 필요하신가요?’
‘아니야. 그냥 잠시 들러 본거야. 다음에 제대로 탐사를 오면 그때 자네에게 먼저 알져주도록 하겠네. 그럼 일 보시게.’ 하면서 부티에는 부하들을 이끌고 신전의 반대편으로 갔다.
부하들을 시켜 주변의 여기저기를 파보도록 했으나 석재 파편 부스러기들만 나왔을 뿐이었다. 그새 해도 서편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슬슬 배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때 부하가 손가락으로 저쪽의 요고스를 가리켰다.
요고스가 구덩이 안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무엇인가 있긴 있나봅니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었거든요?’
순간....... 하얀 섬광처럼 어떤 번뜩이는 알 수 없는 느낌이 부티에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부티에가 요고스에게 다가가자 느닷없이 요고스가 구덩이를 흙으로 다시 메우는 것이었다.
‘요고스. 그럴 필요 없어. 자네가 발견한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그건 분명히 자네 것일세. 그건 내가 약속하겠네. 다만 나는 지금...... 그게 무엇인지가 알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감추려고 할 필요는 없어. 내게 설명을 해주고 좀 보여주면 좋겠네. 나와 함께 일해 봐서 잘 알지 않은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일에 정당하게 보상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렇게 함세. 그러니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게.’
‘대리석으로 만든 석상인 것 같습니다. 하반신 조각인 것 같은데 옷 주름 같은 것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대리석의 품질이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쾌나 크고 무거울 것 같습니다.’
‘조심하시게나. 내가 보기에도 그렇군. 자네 혼자는 안 될 것 같으니 우리 부하들도 불러서 함께 조각상을 꺼내도록 돕도록 하겠네. 그냥 돕는 것이네. 모두 꺼내서 살펴보고 조각상을 내가 스케치 하는 것 까지만 자네가 허락해 주면 좋겠네. 나는 거기까지 만이야. 약간의 비용도 지불하겠네. 자네 것이니까 말일세.’
시간이 제법 걸려서 땅거미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 즈음에야 대리석 조각상을 신전 바닥에 똑바로 세워놓을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 상처 난 곳이 많이 있었지만 여성 신체의 허리 아래 부분에 해당하는 지금 발굴된 조각상에는 이루 형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기품과 우아함이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들 정도로 한 눈에 걸작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각상을 받치고 있는 일부가 부서져 떨어져 나간 받침돌에는 선명하게 ‘안디옥에서 온 메니데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조각상을 만든 사람의 이름으로 보였다.
부티에는 서둘러 조각상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요고스와 부하들에게 주변에 혹시나 다른 조각상의 흔적이 없는지 살피고 땅을 보도록 했다. 이렇게 하반신이 있다면 분명히 부근에 나머지 상반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티에는 내일 당장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데려와 이 부근을 깊숙한 곳까지 파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좀체 보기 드문 걸작이라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그렇다면 반듯이 상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부티에의 주변을 아주 거북한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요고스가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부티에는 요고스가 아가 말한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약속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골 어촌에서 돈을 만질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부티에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요고스에게 약간의 돈을 지급했다. 요고스의 표정이 금새 환하게 변했다. 역시 돈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사실을 들여다보면 지금 건넨 그 돈 때문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요고스. 고맙네. 자네기 이해하고 허락해 주었기에 이렇게 스케치까지 마칠 수 있었네. 참으로 고맙네. 내일 다시 오겠네. 틀림없이 주변 어딘가에 나머지 상체가 있을 거야. 내가 사람들을 많이 데려와서 나머지 조각상을 찾도록 하겠네. 물론 발견된다면 그 상체도 자네 것이라는 것은 거듭 약속하겠네. 나는 완성된 전체 실물을 확인하고 이렇게 스케치만 남길 수 있으면 되겠네. 이해하시겠지? 대신 이 발견이 마무리될 때 까지는 누구에게든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네. 아시겠는가?’
‘그렇게 하지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만약에 말입니다.’
‘그래, 만약에....... 그냥 머뭇거리지 말고 내게 무엇이든 물어보시게.’
‘만약에 말입니다......... 이 조각상을........ 조각상을 판다면....... 그게........ 얼마쯤 받을 수 있겠는지.......’
‘아하. 자네에게는 이 조각상이 별로 필요치 않은 성가신 물건이라 어느 정도 돈이 된다면 팔수도 있다는 의향인 것 같은데....... 일단 내가 보기에는 이게 그냥 평범한 보통의 조각상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이네. 여기 이렇게 만든 사람이 분명이 새겨있을 정도라면 말일세. 물론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조각가인 것만은 틀림없네만.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어찌되었건 자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정도의 금액을 받아주도록 노력해보겠네. 다만...... 우선은 나머지 상반신을 찾아야만 제대로 된 하나의 작품으로 팔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나머지를 찾아서 맞춰놓고 나서 얼마만큼 돈을 받을 수 있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기 않겠는가? 어찌되었던 나머지 부분도 찾게 되면 모두 자네 것일세. 그 후에 자네가 나에게 맡겨 준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 보겠네. 부디 희망을 가지시게. 아마도 자네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될 것일세.’
‘한 가지만 더 질문이....... 만약에 나머지 상반신을 찾았는데........ 만약에....... 그 상반신이 많이 부서져 있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발견된 하반신만큼 어느 정도 훼손이야 있다고 쳐도 제대로 온전한 전신상의 형태를 유지하고만 있다면 당연히 비싸게 팔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찾아도 끝내 없다면 지금 저 상태만으로는 큰돈을 받기가 어렵겠지만 말일세.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지금 찾아낸 하반신의 상태를 보면 보존상태가 썩 훌륭하다고 할 수 있네. 그러니 희망을 가지시게.’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머리에서 몸통까지는 멀쩡한데........ 팔이...... 양팔이 부러져 나가서 없다고 치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아. 아직 찾지도 못한 상태를 난들 어찌 알겠는가? 혹, 자네 말처럼 그런 상태로 발견이 된다면....... 완전한 것은 아닐지라도....... 전신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 그 남겨진 상태에 따라 좀 달라지기는 할 것일세. 생각해 보게. 양 팔이 달려있어도 머리가 없다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머리는 온전하게 달려 있습니다. 양 팔이 잘려나가고 없지..........’
‘뭐라고? 자네 혹시..........’
‘지난겨울에 지진이 지나가고 나서 같은 자리에서 끄집어 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 하반신 형태를 보나 크기로 보나 영판 하나의 몸뚱이가 떨어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매끈하게 상태도 아주 좋습니다. 다만 양쪽 팔이 잘려나가고 없습니다. 하여 실은...... 이 하반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본래가 상반신만 있는 조각상으로 생각하고 떨어져나간 양 팔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뭐라고? 요고스 자네...... 자네가 이미....... 조각상의 상반신을 찾아서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것과 딱 들어맞는 한 몸뚱이가 틀림없습니다.’
‘요고스. 지금 그 조각상이 어디 있는가? 내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 또한 추가로 비용을 넉넉히 지불하겠네. 부디 이것과 합쳐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시게. 부탁하네.’
부티에는 애가 타 들어갔다. 어찌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부티에는 부하들을 남겨놓고 혼자 요고스를 따라 나섰다. 그곳은 신전 터에서 불과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요고스의 집 뒤란에 있는 헛간이었다. 헛간의 문을 열자 그곳에 순백의 살결을 가진 아름다운 여신이 나타났다.
오래전에 사라져서 하나의 전설로만 남아있던 올림포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이 지금 부티에 앞에 현신한 것이었다.
배로 돌아간 부티에는 밤을 새워가며 보고서를 작성해 자신이 그린 조각상의 스케치와 함께 보고 절차에 따라 상부로 소식을 전했다. 이른 아침부터 선장을 포함해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에 부티에는 그리스 주재 프랑스 영사를 포함해 선장과 일부 장교들과 함께 밀로스 섬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실로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각상이 발굴된 신전 터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던 것이다. 전날 부티에가 돌아간 다음에 어쩌면 커다란 목돈을 쥐게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요고스는 부티에의 간곡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동네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분리되어 있던 조각상의 상반신을 들어 올려 하반신 조각에 맞추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 놓아야 좀 더 멋진 본연의 조각상 모습이 완성될 것이며, 어쩌면 그렇게 해둠으로써 훨씬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예상대로 조각상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으며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은 부티에의 바람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던 것이다. 하여 이른 아침부터 밀로스 섬뿐만이 아니라 인근의 지역 유지에서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각상이 들어있는 창고는 굳게 잠겨있고 요고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부티에가 일행과 함께 요고스 집 마당에 도착하는 것을 산언덕에 피해서 살펴보던 요고스가 그제야 산을 내려와 모습을 드러냈다. 몰려든 사람들을 밀쳐내고 적어도 이 일에 상관이 있다고 판단된 12사람만이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 요고스의 창고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 정황 생략 --
프랑스 전함 스쿠너 에스타페트로 돌아온 부티에 일행은 즉시 대책회의를 열었다. 주재자는 프랑스 영사였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조금 전에 보지 않았던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상을 말이다.
그랬음에도....... 예상치 않았던 견해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부티에와 동료 장교가 조각상의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적극 주장했다.
그러자, 안티오크의 알렉산더라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조각가의 짝퉁이라고 폄하하며 쓰레기 취급을 하는 장교도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발견된 조각상이 남달리 훌륭한 작품인 것은 보아서 알겠는데, 안티오크의 알렉산더라는 분명한 서명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다시 말해서....... 딱 봐도 좋은 작품인 것은 알겠지만, 굳이 돈을 들여야 할 만큼 명품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결국 영사는 시간을 가지고 사태를 지켜보면서 결정하기로 다소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부티에는 엄청난 실망과 좌절을 겪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부티에를 지지했던 장교가 편지를 써서 인편에 어디론가 보냈다. 그가 잘 아는 선배 장교가 인근의 다른 해역에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편지를 받고 한 걸음에 달려온 프랑스 장교가 바로 쥘 뒤몽 드위빌레(Jules Dumont d'Urville)였다. 드위빌레는 낙담하는 부티에를 격려해주며 함께 밀로스로 가서 조각상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실은 드위빌레가 복무중인 군인 신분이었지만 고대 그리스 문화와 미술 연구에 능통한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젊은 학자였던 것이다. 그는 이 조각상이 ‘고대 그리스가 남긴 위대한 미술품’ 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니 확신했다.
드위빌레는 즉시 프랑스 정부와 자신과 함께 연구하던 동료 학자들에게 이 놀라운 발견에 대해서 보고서 형식으로 장문의 편지를 써서 파리로 보냈다. 동시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프랑스 파견 최고 관리였던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 샤를 프랑수아 드 리파르도(Charles Fran?ois de Riffardeau)에게 상세한 내용과 함께 당장이라도 이 조각상을 서둘러 구입해야 한다고, 그것으로 오랜 프랑스의 비밀 프로젝트를 달성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는 편지를 긴급으로 발송했다.
프랑스의 고위 관리인 대사는 비밀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고, 드위빌레가 얼마나 학식이 있고 신뢰를 받는 뛰어난 학자인줄도 잘 알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권한 안에서 얼마인지도 모를 자금을 마련할 자신이 없었다. 혹 돈이야 어떻게 추단해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혹시나 잘못되면 고위 관리로서 그동안의 입지를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 좀 더 솔직한 설명일 것이다. 그러서는 본국에 보고서를 보내고 어쨌거나 본국의 답신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그렇게....... 프랑스 측에서는 시간만 하염없이 축내고 있었는데, 현장인 요고스 주변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온갖 브로커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찌나 사태가 심각하게 번지기 시작했는지 요고스 조차 조각상의 발견을 후회하면서 망치를 들었다 놓았다는 이미 여러 번 반복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부티에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었었는데 이젠 아예 아무런 기별조차 없었던 것이다.
판단력까지 흐려진 요고스의 심기를 파고든 것이 바로 밀로스 섬에 파견된 오스만 터키의 최하급 말단 관리였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터키의 식민지였으며 앞으로 8년이 지나야 독립국가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급관리는 요고스에게 그까짓 조각상 하나를 팔아봐야 기껏 얼마를 받겠느냐며 꾀기 시작했다. 자기가 잘 아는 이스탄불의 최고급 관리가 있는데, 그 사람이 그리스 조각상 모으는 것을 취미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이 조각상을 이스탄불의 고급관리에게 선물로 보내면 그 관리가 아주 부자라 섭섭지 않게 보상을 해 줄 것이며, 그의 권력이 최고위층이라 여러 가지로 요고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추겼다. 세금도 어느 정도 깎아 주고 공역(부역)에서도 면제해 주며 나아가 밀로스 일대에서 벌어지는 공공사업에 우선 취직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유사시 요고스나 가족들이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는 상황에서 고위급 관리에게 부탁해 징집 해제 내지는 편의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줄 수 있다는 제의였다. 그런 정도라면 실제로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백 그라운드가 아니겠는가? 요고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징집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가 브로커 관리의 다른 속셈에서 나온 양차치질이었다.
그 역시도 이것이 정말 큰 물건이라는 사실을 즉석에서 깨달았다. 이 정도라면 환장할 오스만 터키의 실력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것을 자신의 손을 거쳐서 실력자에게 받칠 수만 있다면 이제 밀로스에 파견된 하급 말단관리에서 벗어나 그리스의 고급 관리가 되던가, 아니면 이스탄불로 불려가 실력자의 밑에서 탄탄대로를 걷는 관리로 거듭날 수 있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니 당연하게 그는 요고스의 약점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물고 뜯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부티에와 드위빌레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말았다.
조각상이 이스탄불의 고위 관리에게 가기 위하여 포장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파리의 시민들은 날이 밝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동네 어귀의 카페에 나와 진한 에스페레소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신문을 펼쳐 읽는 것이 당연하게 정해진 수순인 것처럼 말이다.
그날도 파리 시민들은 너나없이 커피를 앞에 놓고 신문을 펼쳐 들었다.
<밀로스 섬에서 프랑스 학자가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발견> 이라는 제목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스 조각의 신(神)으로 불리는 프락시텔레스(Praxiteles)의 직품으로 추정되는 여신상이 프랑스 학자에 의해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덧붙여 이탈리아로부터 <메디치의 비너스>를 회수 당하던 기억이 아직까지 너무도 생생한 프랑스 인들에 이번에 발굴된 여신상이 비너스(Aphrodite)이던 암피트리테(Amphitrite)이던 간에 <메디치의 비너스>를 잃으면서 생긴 프랑스 인들의 상처난 자존심 회복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였다.
밀로스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혀 모른 채, 파리에선 그 여신상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아니면,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아내인 암피트리테 일지 모른다는 추측성 기사까지 버젓이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던 것이다.
소식에 놀란 루이 18세와 정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리스로부터 보고서가 올라 온지 이틀 만에 이 극비 사항이 벌써 언론에 유출되어 파리를 온통 들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젠 정부로서도 뒤집고 따지고 볼 염두가 없었다. 무조건 조각상은 파리의 루브르로 와야만 하게 생겼던 것이다.
서둘러 프랑스 정부는 긴급 특사를 파견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그리스까지는 까마득히 멀고도 먼 곳이었다. 그리고 밀로스에선 이미 엉뚱하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부티에와 드위빌레가 밀로스에 도착했을 때, 여신상은 이미 포장을 끝내고 항구에서 이스탄불까지 실어갈 커다란 대형 선박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요고스와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하급 관리가 가로막고 나섰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브로커 관리가 요고스를 인근의 다른 마을로 빼돌렸던 것이다.
전함으로 돌아 온 드와빌레는 선장에게 폭탄선언을 하고는 직접 이스탄불을 향해 떠났다. 프랑스 정부를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인근 거리의 최고급 관리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부티에와 드위빌레는 이 순간의 결정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 명예와 목숨을 건 도박을 시작한 것이다.
끝내 조각상은 오스만 터키의 선박에 선적되고 말았다. 조각상을 실은 선박이 막 항구를 빠져나가 이스탄불로 향하려 하는 때에 느닷없이 프랑스 전투함 스쿠너 에스타페트 호가 빗길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터키 선박이 이를 비켜 빠져나가려 하자 에스타페트 호에서 일절 망설임 없이 요란한 포성과 함께 실제로 포격이 시작되었다. 위협사격이긴 했어도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멈춰선 터키 선박이 다가와 거세게 항의를 퍼부었다. 그러자 프랑스 전투함 함장이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오스만 터키와 그리스 저항군(독립군) 사이에 전투가 점점 빈번해지는 가운데 무기 밀매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것이다. 전쟁 당사자 양국의 안전을 위해서 당분간 모든 선박의 이동을 금지시키고 철저히 수색하라는 프랑스 정부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그런 협약이 없었다고 항의했지만 프랑스 해군은 요지부동으로 본국에서 새로운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계엄령 선포와 함께 모든 선박과 사람의 이동을 금한다고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는 모두가 가짜였다. 이스탄불로 떠난 드위빌레가 돌아 올 때까지 무조건 시간을 벌기 위해 벌인 아주 위험한 사기극이었다. 이는 엄청난 국제 관계에 있어서 스스로 분쟁의 빌미를 자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발이 묶인 오스만 터키 선박이 육로를 통해 인근의 오스만 본거지로 긴급 구원을 요청했다.
이렇게 무지막지 하게 벌어진 예측불허의 대치 상황이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오스만 터키 선장에게 밀서가 도착했다. 아주 가까운 인근까지 세 척의 터키 전함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어둠이 찾아 온 이유로 인근의 항구에서 장비와 탄약을 재점검하고 날이 밝는 대로 진격을 할 것이라는 통보였다. 이제 오스만 터키의 승리가 목전에 다가온 것이다.
이 소식은 당연하게 프랑스 전함 에스타페트 호에게도 전해졌다. 낮고 좁은 밀로스 해협에 꼼짝없이 갇힌 꼴이 되어버린 상황에 세 척을 동시에 상대하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이 어둠을 타고 반대편으로 달아나야만 했다. 함장은 드위빌레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겠다고 약속을 했었고, 드위빌레가 돌아오려면 적어도 닷새는 버텨야만 했던 것인데 이틀이 겨우 지나자마자 이런 암담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정부의 명령도 없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인 건, 어찌되었던 최고 책임자인 자신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함장은 결심이 섰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부관을 불렀다.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 섬에 들어가 부티에를 데리고 서둘러 돌아오도록 하게. 서둘러야 하네.’
‘그러잖아도 막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드위빌레로 부터 전갈이 왔는데 지금 밀로스 섬에 도착해서 부티에를 만났다고 합니다. 우선 당면한 급한 일부터 마친 후에 서둘러 전함으로 돌아오겠다는 전언이었습니다.’
‘뭐라고? 드위빌레가 돌아왔다고? 어떻게? 이제 겨우 이스탄불 대사관에 도착할까 말까했을 이 시간에 말이야? 그게 확실한 소식인가? 확인했어?’
‘드위빌레와 함께 떠났던 하사관이 직접 가지고 돌아온 소식입니다. 밖에 있습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드위빌레가 돌아와 부티에를 만났다고? 어떻게?’
대충 사정은 이랬다.
다급한 드위빌레가 대사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 이스탄불을 향해 뱃길을 달려가고 있던 중에 반대편에서 달려오고 있는 함선을 하나 만났는데 분명히 프랑스 국기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배에 올라 신분을 밝히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함선은 바로 자신들이 있는 밀로스를 향해 가던 중이었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해 좌불안석 프랑스 본국으로부터 새로운 명령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던 이스탄불 주재 프랑스 대사가 자칫하면 자신에게 근무태만 내지는 현실적인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는 문책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까지 불안감이 미쳤던 것이다. 하자니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면 적당히 시늉만 내자.
결국 그는 금고에서 천 프랑을 꺼내 밀로스로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나중에 결론이 어떻게 나던지 이로서 책임은 모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실로 그것이 천운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둘러 돌아 온 드위빌레는 타고 온 함선을 자신의 본대와 함께 이 밤중으로 오스만 터키 함대의 뒤쪽에 매복하게끔 작전을 세우고, 작은 배를 타고 서둘러 밀로스로 향했던 것이다.
부티에와 드위빌레는 밀로스를 샅샅이 탐문한 결과로 심야에 결국 요고스를 찾아냈다.
서둘러 찾아와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오스만의 브로커 관리가 꾸민 음모와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요고스와 부티에의 우정은 변함없으며 둘 사이의 약속 또한 영원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과 약속을 했다.
끝으로 부티에는 요고스 앞에 천 프랑이 들어 있는 돈 보따리를 내 놓았다. 현지의 시세로 치자면 천 육백만원에서 천 칠백만원 사이의 금액이지만, 이백년 전 그리스의 외딴 섬에 사는 농부로서는 꿈속에서도 만져보지 못한 커다란 액수의 돈이었던 것이다.(물론 지금 루브르에 있는 동상의 가치로 따지자면....... 헐....... 또 헐)
‘모두 이해하고 모두 용서하고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조각상은 제 손을 떠났습니다. 말씀하신 관리가 벌써 이스탄불로 가는 선박에 선적까지 마쳤는걸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자 그제야 평소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의 드위빌레가 중간에 나서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것을 내주고 당신은 무엇을 받았습니까?’
‘아무것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무엇이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건 말뿐이지요. 약속을 담보할 무슨 서류라도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받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당신 것을 가져가도 좋다는 서류에 서명이라도 하셨습니까?’
‘아니요? 저는 글을 쓸 줄을 몰라요. 써 달란 적도 없고요.’
‘그렇다면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군요.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조각상은 처음 발견했을 때나 지금 이 순간에나 분명하게 당신 것입니다. 당신만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벌써 남의 배에 실렸는데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프랑스가 나서서라도 분명하게 당신 것이라는 것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전히 조각상을 팔수만 있다면 팔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십니까?’
‘그럼요. 저렇게 아무 보상도 없이 빼앗기는 것 보다는 얼마에라도 팔 수 있다면 팔아야지요. 저걸 제가 가져서 뭘 하겠어요? 무엇에 쓰겠어요? 저에겐 사실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거든요.’
‘그 말씀을 부티에 소위에게 전해 듣고 제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느라 이렇게 늦게 도착했던 것인데....... 저 조각상은 대단히 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격을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지 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이요. 그래서 죽어라 쫓아다녀 보았는데 최선을 다해 모은 돈이 바로 여기 있는 천 프랑입니다. 이게 과연 요고스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지금으로서는 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여기 이 천 프랑이 요고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라면......... 이 금액에 팔 생각이 있으시다면 프랑스를 대신해 저희가 이 자리에서 사겠습니다.’
‘당연히 팔고 싶지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액수인걸요. 하지만 제가 여기서 이렇게 팔았다가 두 분께서 터키 선박에서 조각상을 되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다시 돈을 내드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일단 파시겠다면 돈을 받으시고....... 조각상을 찾거나 못 찾는 것 하고 지금 여기서의 거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약속은 여기 이 자리에서 모두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요?’
‘계약서를 작성하고 확인하신 뒤에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저는 글씨를 몰라요. 여기 제 딸은 글을 아는데...... 대신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그러시면 저희가 이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겠습니다. 작성이 끝나면 따님이 계약서를 읽어드리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희가 보충 설명을 드릴 것이고, 그래서 계약 내용이 이해가 되시고 나면 따님의 손을 잡고 함께 이름을 적어주시고, 아래에 저희도 이름을 적어서 넣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마침내 밀로스 섬의 농부 요고스 켄트로타스(Yorgos Kentrotas)와 프랑스 정부간에 <밀로의 비너스>에 관한 계약이 성립되었다. 프랑스 측 대리인으로 올리비에 부티에(Olivier Voutier)가 서명했다. 매매 금액은 1천 프랑이었다.
다음 벌어진 상황은 말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재현되었다.
오스만 터키 선박은 항구를 나섰고 전함 에스타페트가 막아섰다. 저만치 오스만 함선 세 척이 나타났고, 그 배후를 노리고 프랑스 함선 세 척이 새롭게 더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결국 양국은 대치중에 책임자들이 담판에 나섰는데, 프랑스가 계약서를 내보이며 조각상의 인도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은 한동안 더 계속되었다가....... 끝내 조각상은 프랑스 함선으로 이송되게 되었다.
조각상을 실은 함선은 즉시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프랑스 전역에 환호성이 피어 올랐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나의 혼인잔치>를 가지고 파리에 입성하던 날 벌어졌던 축제 이후에 처음 벌어지는 신나는 잔치판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전체가 축제에 빠졌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조각상은 마차에 실려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거치는 도시마다 거창하게 환영 잔치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고 조각상의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그저 포장된 커다란 짐만 바라보아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루브르에 조각상이 도착했다.
파리 시민들이 연일 루브르 광장에 몰려와서 여신조각상이 선보이길 간절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 정부와 루브르 박물관의 담당자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왜?
도대체 왜?
이번엔 또 뭐가 문제야?
그것은 바로....... 프랑스의 자존심이 문제가 되었다.
이 상황에 무슨 자존심?
그런게 있었다. 알면 알 수로 뻔번 스러운 프랑스 스타일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영원할 것 같았던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영광은 러시아 원정 실패로 끝이 났다.
수도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했을 때는 온통 세상을 모두 정복한 것 같은 축제 분위기였는데, 그것도 잠시 며칠 지나 잔혹한 시베리아의 강추위가 프랑스 군대를 덮쳤던 것이다. 옥수수와 감자 포대를 둘러메고 숲속으로 도망친 러시아는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지만, 처음 겪는 영하 40도의 추위를 프랑스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전쟁은 이겼으나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은 홈그라운드인 러시아 편이었다. 굶주리고 동상에 손발이 잘려나가게 되자 프랑스 군대는 무기도 내버리고 도망치기에 바빠졌다. 그러자 그제서야 슬슬 숲에서 나온 러시아 군인들이 패주하는 프랑스 군대의 뒤를 쫓아가며 하나씩 하나씩 가을에 낫과 도끼로 가을 곡식을 추수하듯이 잘라 나갔다.
프랑스는 항복했고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귀양을 갔다.
승전국 연합인 러시아와 영국과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빈에서 만났다.(1814년)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수습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모든 것을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합의를 끝냈다. 포로가 풀려나고 약탈 문화재가 반환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전쟁 승리의 기념관으로 생각했던 루브르 박물관이 텅 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랬었는데....... 어디까지나 그렇게 끝이 난 줄로만 알았는데....... 얼씨구나 어쩔까? 불사조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던 것이다.
역사의 교훈 중에 한 가지가....... 가장 큰 피해와 손실은 전쟁이나 혁명을 통해 왕조나 권력이 바뀌면서 생겨나고, 더하여 바뀐 것이 또다시 역전되어 되 바뀐다면 가히 그 결과의 참혹하기가 가늠하기조차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해 진다고 가르쳐왔다.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승리자가 된 전승국들은 프랑스를 난도질 한다. 응분의 댓가를 치루게 하겠다는 보복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전쟁 보다 이런 과정이 훨씬 더 참혹하고 피해가 크다. 인간 본성 속에 숨어있던 잔혹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엉뚱하게도 또 다시 하루아침에 프랑스가 들고 일어나서 잃었던 권력을 회복하게 되었다면, 그제의 보복에 어제의 보복을 더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오늘의 보복까지를 더하는 실로 아비규환의 대재앙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다시 나타나자 연합국에 난도질을 당했던 프랑스인들이 다시 뭉쳤다. 맞아 죽느니 차라리 다시 총칼을 들고 싸워서 보복을 할 만큼 하고 나서 차라리 그때 덜 억울하게 죽겠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 나폴레옹이 재등장한 것이다. 세상은 점차 아비규환 지옥으로 변해갔다. 승리의 잔치를 끝내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연합국은 다시 모여 정말로 목숨을 내걸고 나폴레옹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만 하게 되었다. 영원한 불사조와 맞설 비장의 무기는 영국군의 자랑 웰링턴이었다.
어쨌거나 시베리아의 혹한이 나폴레옹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겨 주었듯이, 이번에도 하늘은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렸다. 전쟁사에 한 획을 선명하게 긋는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이 승리함으로서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완전 궤멸되고 말았다.
프랑스는 다시 가혹한 시련에 빠져들었고....... 승리자들은 참혹했던 전쟁의 배상을 요구했다. 프랑스 국고도 바닥이 났고, 루브르 박물관도 텅 비게 되었던 것이다.
이젠 더이상 루브르가 내세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다섯 점정도 소장되고 있었으나, 당시로서는 어느 누구도 어느 어느 작품이 다빈치의 작품인 것조차 아는 사람이 사실은 드물었다. 더하여, <모나리자>가 루브르 어딘가에 붙어 있기는 하였으나, 누구도 그것을 눈여겨보거나 그 그림에 다빈치의 특허인 스푸마토 기법이 적용되었다고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적어도 이 시기에서 백 년은 지나서야 ‘모나리자 도난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느닷없이 세게 최고의 명화이니 어쩌니 하는 난리의 결과로 이름이 꽤나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네 마리 청동 기마상>도 회수해 갔고, <라오콘 동상>과 <벨베데레의 아폴론>도 <겐트의 제단화>도 모두 강탈하듯이 회수해 갔다.
박물관장 드농의 기지로 세계 최고의 명화인 <가나의 혼인잔치>만은 빼앗기지 않고 루브르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하지만...... 보관 상태가 좋지 않고 복원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붙잡아 놓기는 했던 것이라 드러내놓고 다시 자랑을 할 수는 없어 벽에 걸어두고 휘장을 덮어놓은 상태였다. 혹시나 내막을 알아챈 베네치아가 언제 돌려달라고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루브르 박물관이 예전처럼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예술작품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창고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예술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 인들의 상처가 매우 크고 깊었다.
불과 얼마 전에 그동안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면서 자랑해오던 고대 그리스의 자랑스러운 유물인 <메디치의 비너스>를 빼앗기듯 내주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온 파리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탄식의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였던 것이다.
텅 빈 창고가 되어버린 박물관을 들여다보는 것도 커다란 고통이었는데....... 연일 전해오는 절망적인 다른 나라 소식에 그만 파리 시민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라이벌 이자 영원한 정적 영국에서 연일 날아드는 소식에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고,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은 것처럼 참을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서러움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에서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간직한 로제타석을 발굴하여 대영박물관으로 들여왔다.’(1799)
‘고대 이집트 문화의 상징인 람세스 2세의 흉상이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1816)
‘고대 그리스 건축과 조각의 정수인 엘긴 마블이 오랜 시간 복원과 설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 1799~1803)
‘새로 발굴된 고대 그리스 조각품의 상징과도 같은 원반 던지는 사람이 마침내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1805)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보물창고 에레크테이온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던 여신의 조각상중 하나가 영국 고고학자의 노력 끝에 마침내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게 되었다. 곧 일반에게 고대 그리스 조각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 전시가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1816)
패전국의 처지로 루브르가 소장했던 대부분의 미술품과 유물들이 빼앗기듯 빠져나가는 와중에 딱 그런 시기에 일부러 맞추듯이 대영박물관은 알짜배기 미술품과 유물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거의 100% 훔치거나 약탈한 문화재였지만 말이다.
왜 하필 영국이란 말인가?
프랑스인들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보다 대영박물관이 알짜배기들로 채워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슬펐다. 루브르는 텅 비어 가는데 말이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우월적인 자부심만은 꼭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영국으로부터.’ 그런데 지금 현실적으로 그런 오래 바람과 자부심이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었고 무참하게 허물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프랑스 정부는 곧 새로운 대책을 마련했다.
해외 주재 공관과 해외에 파견되어 있는 군대에 비밀 공문이 하달된 것이다. 불법과 합법을 개의치 말고, 누구의 영역이던 누구의 영토이던 가리지 말고 은밀하게 고대 유적과 유물 탐사에 전력을 다하라. 무조건 찾아서 국내로 반입 시켜라. 사후 문제는 모두 국가가 나서서 책임진다. 훔치던 빼앗던 군대를 파견해서라도 귀한 고대 유물과 유적을 확보하라‘는 명령이었다. 강화도에 침입해서 외규장각 도서와 의궤를 바로 이때 훔쳐갔다.
그리고 그런 비밀 명령의 결과로 밀로 섬의 조각상이 마침내 루브르에 도착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와 국민들의 열망과 간절함이 실로 어떠했으리라는 정도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자니 정작 이제부터 본격적인 문제는?
문제의 핵심은 벌써 요란하게 소문까지 난 조각상이 무조건 귀하고 위대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것이다.
최소한...... 최소한으로 잡아서 얼마 전에 빼앗기다시피 한 <메디치의 비너스> 보다는 모든 면에서 월등해야만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최근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들 보다 앞서거나 훨씬 값어치가 있는 유물이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게 된 것이다.
아직 조각상의 실체를 보고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 장차 조각상 유물이 가져야만 하는 가치와 역할이 확정 배정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어쩌면 그런 예정된 결과를 위해서 무언가를 덧붙이거나 꾸미거나 허위 과장을 하거나 신분을 세탁해서라도 실로 위대한 유물로 재창조를 해야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임 박물관장 이었던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 이었다면 조각상의 실체를 면밀히 파악하고 최대한 그것이 돋보이고 빛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추진했겠지만, 드농의 뒤를 이어 박물관장이 된 포빈(Louis Nicolas Philippe Auguste, comte de Forbin)의 입장은 드농과 사뭇 달랐다. 이 젊고 패기만만하고 야심찬 사내는 이번을 계기로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오르고픈 야망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평생을 따라붙어 다니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기에 이번을 계기로 그 추문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빼어난 미남에다 훈남이었던 포빈은 야심을 가지고 한 여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을 했다. 바로 황제인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 보르게세였다. 보르게세에게 시집을 가 유부녀인 처지였으면서 폴린의 주위엔 낮이고 밤이고 남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폴린은 유럽 역사를 통 털어서도 최상위에 올려진 아주 유명한 님포마니아였던 것이다. 팜므파탈 정도로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의 지나친 여성 성도착 중독자를 님포마니아라고 부른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어머니와 아내 조세핀의 사치와 향락, 아내 조세핀과 여동생 폴린의 남성편력 때문에 모진 고통을 받았던 것이 사실일 정도로 아주 그 증세가 심각했다. 어쨌거나 포빈이 의도적으로 접근을 했고 결국 폴린과 어떤 썸씽이 발생했는데....... 아 글쎄 그것이 우리나라 설화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의 유럽 버전’이었다나 어쨌다나...... 암튼 이들이 그후로 한 이년동안 붙어 다니면서 죽고 못 사는 사이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승승장구 하였고 부자가 되었으며 훗날 그의 직위가 백작에 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침대에서 열심히 일해 성공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어 다녔다.
새로 발견된 밀로의 조각상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이 이미 확고해진 포빈은 일의 진척을 위하여 포벨(Louis-François-Sebastien Fauvel)을 급하게 끌어들인다. 포벨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골동품 수집가이자 예술가였다. 그를 좋게 보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그리스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하고,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은 ‘외교관의 신분으로 위장한 가장 큰 고대유물 도둑’ 이라고 불렀다. 평가에 내포된 것처럼 주로 그리스 아테네에 머물면서 온갖 합법을 가장한 도굴과 위장반출과 불법매매를 저질렀는데, 대영박물관이 그토록 자랑하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훔쳐 온 엘긴 마블 유물이 사실은 엘긴과 포벨 사이에 경쟁을 벌였던 역사적으로 회자될 만큼의 유물 도굴 밀반출 쟁탈전이었다. 결과는 엘빈의 승리였고 승리한 엘빈은 훔쳐간 마블을 영국 정부에게 팔아서 막대한 부를 차지했다. 만약 포벨이 승리했다고 해도 결국엔 누군가에게 마블을 팔았을 것이다. 프랑스 정부에 제의 했다가 거절당하거나 금액이 적었다면, 어쩌면 포벨이 마블을 들고 바다를 건어 영국정부를 찾아가 흥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포벨을 루브르 박물관장이 포빈이 서둘러 비밀리에 불러들였다.
왜?
조각상의 포장을 열어 본 포빈은 한동안 비밀리에 샅샅이 조각상을 관찰했다. 그이 머릿속에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다. 포빈은 비밀리에 사람을 아테네로 보냈다. 포벨을 불러들인 것이다.
포빈(Louis Nicolas Philippe Auguste, comte de Forbin)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포벨(Louis-François-Sebastien Fauvel)을 끌어들인 이유는 바로 조각상의 받침돌에 새겨져 있는‘Meander의 Antioch 시민인 Menides의 아들 Alexandros가 조각상을 만들었다. 라는 문구의 해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만큼 포벨은 고대 그리스 조각과 건축에 있어서 나름 상당히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유물과 역사에 통달을 해야 훔쳐서 돈이 될 물건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포벨은 이 놀라운 여신상을 치밀하게 살폈고 새겨져 있는 문구에 대해서도 각종 자료를 모두 찾아가며 연구를 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여신상의 주인공이 아프로디테(Aphrodite) 인지 암피트리테(Amphitrite) 인지는 알아 낼 단서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안티오크 출신인 메니데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만든 조각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우리가 그동안 메니데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그는 분명 피디아스(Phidias)나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못지않은 그리스 조각의 천재였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새겨진 문구를 유추해 보건데...... 안티오크(Antioch) 라는 도시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중에 부하인 셀레우코스가 지중해 연안 시리아 지역에 건설한 여러 개의 고대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는 헬레니즘 후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메니데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피디아스나 프라시텔렉스가 활약한 그리스 고전 후기에서도 백년에서 혹은 이백년 후인 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천재 조각가였다고 볼 수 있다.’
포빈에게는 바로 지금 드러난 조각상의 제작 시기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드러난 것으로 보자면 발굴된 여신상은 상대적 기준으로 제기되다시피 한 최근에 빼앗긴 <메디치의 비너스? 보다도 최소한 1백년 이상 후대에 제작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보시게 포벨. 만약에 말일세. 이 받침돌의 절반을 제거하여 글자를 모두 지워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저기 불편하게 매달려 있는 왼쪽 어깨팔도 아예 어깨에서 잘라내 버린다면 말일세. 그러고 나서 피아디스나 프락시텔레스의 아카데미에서 이름 모를 천재 제자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말일세. 그렇게 되면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지 않겠는가? 어때 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미술품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지만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을 모두 한꺼번에 쓸어서 없애버리지 않는 이상 이미 드러난 것들에서 어떤 판단 기준 같은 것이 생겨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매우 훌륭한 작품인 것은 맞겠으나 당장 저 작품을 피디아스나 프락시텔레스 시대의 것으로 주장하기에는 균형미나 세세한 자연스러운 옷 주름 장식등을 달리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고전 시대에는 저렇게 우아한 미적 표현이 거의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상당한 반론에 부디 치게 될 것입니다.’
‘ 좀 더 철저하게 준비를 갖추어서 처음부터 아주 세게 밀어붙이면 되지 않겠는가? 반론이 나오면 그 반론에 다시 반론을 제기할 나름의 막강한 지원부대도 준비를 미리 해두면 되지 않겠는가?’
‘관장님. 지금 저 상태만으로 내놓아도 무엇과도 비교해도 자신이 있을 만큼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왜 논란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까지........ 조각품에 손상을 가하면서까지 그깟 시대를 올려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게 다 프랑스를 위해서 그러는 것일세. 지금 영국이 대영박물관을 채우면서 나대는 꼴을 이대로 마냥 쳐다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단번에 영국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어야만 하네. 자네와 나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단 말일세.’
포빈은 극도의 보안 속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가장 깊숙한 장소에서 어떤 아주 성스러운 의식(?)을 극소수의 전문가만을 데리고 직접 거행했다. 그것은 고고학 분야나 미술 역사에서는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런 위대하고 엄숙하고 성스러운 그런 의식이었다. 하지만 지극히 세속적인 나는 이것을 ‘모나리자 성형수술’ 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패어나간 코를 살짝 보완했고 디딤판의 절반을 잘라내서 새겨진 글자를 모두 없앴으며 엉거주춤 매달려 있던 왼쪽 팔을 잘라버렸다. 바로 지금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모습의 <밀로의 비너스>가 탄생한 것이다.
마침내 포빈은 1821년 4월 8일, 그리스 조각의 고전기에 해당하는 프락시텔레스의 아카데미에서 만들어진 <밀로의 비너스>라고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가히 그 열품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2002년의 월드컵 못지않았다. 프랑스는 물론 온 유럽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루브르의 옛 영광이 재현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고대미술 전문가를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이의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개된 <밀로의 비너스>가 프락시텔레스 아카데미의 작품일수 없는 보고서 형태의 논문이 발표되는가 하면, 보다 구체적인 후대 헬레니즘의 작품이라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독일 고고학회에서 발굴 조각상의 훼손이 제기되고, 사방에서 온간 흉흉한 소문들이 끊임없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포빈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반격하기 위하여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 두었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미술과 문화 분야에서 프랑스를 통 털어서도 가장 크게 영향력이 있고 존경을 받고 있는 고고학자이자 건축가이며 조각이자 고위층 행정가였던 퀸시(Antoine-Chrysostome Quatremère de Quincy)를 끌어들여 ‘포빈과 루브르가 주장하는 내용이 모두 진실이다’라고 대중 앞에서 선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론은 금새 잦아들었다. 이제 논란은 이대로 수그러 드는듯했다.
그런데, 한 지식인이 루브르 박물관의 고전 유물 보존 책임자인 크라락 백작에게 신문을 통해 이렇게 공개 질의를 했다.
‘항간에 루브르에서 <밀로의 비너스>에 성형 수술을 강행했다고 전해지는데, 수술에서 파생된 잔존물들은 따로 잘 보관되고 있습니까? 그것들 역시 귀중한 문화유물이 아니겠습니까?’
‘루브르는 박물관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일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크라락 백작 역시 공개적으로 신문을 통해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지식인은 다시 신문을 통해 이번엔 조각상의 최초 발견자였던 부티에와 드위빌레에게 공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부티에와 드위빌레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이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수고한 조각상의 발굴당시 모습이 지금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상의 모습이 틀림없습니까?’
사람들은 날이 새면 무조건 신문부터 찾았다.
부티에와 드위빌레의 대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부티에와 드위빌레의 대답은 신문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포벨이 먼저 보따리를 싸서는 그리스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부티에는 프랑스 군대에 사표를 내고 그리스로 향했다. 그리고 오스만 터키에 대항하는 그리스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많은 전공을 세웠고 정식 그리스 육군 대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죽었다.
드위빌레는 프랑스 해군 소속의 연구함선을 타고 남아메리카로 떠났다. 평생 남태평양과 서태평양. 호주. 뉴질랜드. 남극 대륙을 탐험하면서 식물학자와 지도 제작자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왜 프랑스를 떠났을까?
왜 그토록 목숨을 걸고 헌신한 예술의 나라 프랑스를 등져야 했을까? 그리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그리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것일까?
하지만, 아무도 죽는 날까지 지난날에 대해서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세상이 잠잠해 지자 포빈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이제 분쟁은 모두 사라졌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폭풍전야였던 것이다. 포빈 일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한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를 꼽는다. 우리는 그를 그냥 쉽게 ‘나폴레옹 전속 화가’ 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어용화가라는 꼬리표를 슬쩍 따라 붙여서 말이다. 프랑스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정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벨기에를 시작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을 거치며 망명생활을 하다가 끝내 해외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해외 망명 중에도 옮겨 다니면서 꾸준히 전시회를 개최할 만큼 명망과 인기를 얻었고 하여 도처에 수많은 제자를 두었다.
벨기에 망명 중에 루브르 박물관에 남아있던 한 제자에게서 스승에 대한 문안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의 내용 중에 ‘그리스 밀로스 섬에서 출토한 여신 조각상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포빈과 포벨과 함께 연구에 착수하였는데 어떤 이는 그 여신상이 아프로디테라 하고 어떤 이는 암피트리테라고 하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선생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이시라면 단박에 그 여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셨을 텐데 라고 말예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비드가 평소 많이 아꼈던 제자인지라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추신으로 ‘그렇게 내 의견이 궁금하다면 아무때고 시간이 날 때 그 조각상을 한 번 스케치해서 보내주렴. 그럼 내 생각을 가르쳐 주마.’라고 적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자로부터 새로운 편지와 함께 한 장의 스케치가 도착한 것이다. 다비드가 뭐라고 답해주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제자가 보내 준 스케치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조각상이 밀로스 섬에서 발굴되어 파리로 옮겨져서 포빈의 관리 하에 놓여졌을 당시, 그러니까 한참 시간이 지나 일반에 대대적으로 공개되기 이전에 그려져 벨기에의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진 편지에 들어있던 스케치 그림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루브르 박물관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냈다. 포빈(Louis Nicolas Philippe Auguste, comte de Forbin)의 치밀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제작 시기가 그리스 고전기가 아닌 헬레니즘 시대의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의 위대성으로 인하여 작품의 제작연도는 별반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대영박물관의 부상으로 크게 낙담했던 프랑스인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강한 자긍심 회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제 루브르 박물관은 <밀로의 비너스>를 박물관의 상징처럼 전면에 내세웠다.(1821년)
더하여 좀 더 시간이 흘러 그리스 사모트라케 섬에서 승리의 여신상이 발견되어 루브르에 소장되었다.(1863년) <밀로의 비너스>와 동시대인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머리와 양팔이 잘려진 채 힘차게 날개를 펼치고 부상하는 모습의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상(victoire de samothrace))로 크기가 비너스 보다 절반 이상 큰 328cm의 대리석 조각상이 프랑스의 고고학자 샤를 샴프아소가 찾아낸 것이다.
격동의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가 막 시작하는 즈음에서 프랑스와 이란 합동 고고학 발굴팀이 이란 서부지역 고대도시 수사에서 인류 문명사에 커다란 획을 긋게 되는 실로 위대한 유물을 발굴하게 되었다.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랄 수 있는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 발굴된 것이다.(1901년) 이것을 확보하기 위한 프랑스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지만....... 강대국의 문화침탈과 문화재 약탈 이라는 불명예를 떨쳐 낼 수는 없었다.(언제고 약탈 문화재에 대한 심층 취재를 벌여 볼 계획임을 밝혀둔다)
<밀러의 비너스>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상)> <함무라비 법전> 이렇게 루브르의 공격편대 3총사가 완성되는 순간...... 비로소 자신들이 대영박물관을 앞질렀다고 자신했다. 그동안 부서졌던 예술에 대한 프랑스의 자존심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만천하에 선언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에....... 한 이탈리아인이 루브르에서 작은 미술품 하나를 훔쳐가지고 달아났다. 2년 후에 피렌체에서 발견되어 루브르로 환수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인류가 소장한 모든 미술품에 대한 관심과 평가의 판도가 확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1911년)
루브르 박물관 한 구석에서 누구의 관심이나 조명도 받지 못하고 빈 공간을 겨우 차지하고 있던 그림이 한 순간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그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세상 사람들이 가장 찾아가서 보고 싶은 그림으로 재탄생하였던 것이다. 비로소 <모나리자>가 제대로 알려져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박물관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고 프랑스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는다.
해마다 <모나리자>는 수많은 여행자와 미술 관람자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끌어 들인다. 아마도 <모나리자>를 능가하는 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미술품은 없을 정도이다. 사람들은 루브르라는 예술의 숲속에서 치고의 감동과 경험을 맘껏 누릴 수 있다. 혹여, 마음속 한 가닥이라도 여타의 다른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비교해 보려는 마음이 생겨날 쯤 이면 어김없이 그런 생각들 앞에 <밀로의 비너스>가 떡하니 나타난다. ‘어때? 아직도 다른 미술관들과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고 나면 스스로 의구심이나 경계심을 스스로 무장해제 시키고 항복하고 만다. 하여 박물관을 떠날 즈음에는 ‘루브르여. 당신이 최고입니다’ 라고 충성 맹세를 하며 나서게 되는 것이다.
‘비너스 조각상의 성형수술’ 문제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많은 학자와 미술관 관계자들은 정말로 성형수술이 있었으며, 오히려 그런 의심이 <밀로의 비너스>를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거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문화대국이라는 프랑스 입장에선 결단코 인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강대국에서 파렴치한 문화 찬탈범 내지는 조작범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거나 지금 <밀로의 비너스>는 프랑스의 위대한 자부심이 되었고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보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모든 자료에 <밀로의 비너스>는 작자미상 이라고 적혀 있고 그렇게 홍보하고 있다. 프랑스 혹은 루브르 박물관이 미술품이나 유물을 소장하는 과정에서 정당하지 못한 절차와 과정을 겪었건, 혹은 피를 보았을 지라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워 전시를 한다면 적어도.......... 소장 과정은 밝히지 못하더라도, 그 미술품이나 유물의 뿌리에 대해서만은 올바르게 제시하고 알려 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와 포빈이나 루브르 당시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서 무엇 하겠는가? 프랑스라는 예술에 관해서라면 무한의 자부심을 가진 국가가 나서서 진상을 밝히고 이해당사자들이 허락할 수 있는 만큼의 해명과 배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수많은 약탈 문화재를 보유한 나라들이 그렇게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마도 사람이 다시 원숭이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Meander의 Antioch 시민인 Menides의 아들 Alexandros가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그것을 사실로 믿는다. 포빈이나 포벨은 오래전에 죽고 없지만, 적어도 프랑스라는 국가는 그 진실을 알고 있다.
’작자미상으로 알려져 왔던 <밀로의 비너스>가 시리아 지역의 안티오크에 살았던 메니데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해서나 그의 작품이 더 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학계에서는 알렉산드로스가 만든 <밀로의 비너스>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가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할 만한 실로 위대한 고대 그리스 조각가 중에 한 명이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알렉산드로스에게 존경과 관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를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라고 프랑스 대통령이나 문화부 장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장이 발표한다고 해서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히려 문화 강국으로서의 품위가 격상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고...... 알렉산드로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하이고야!
역사와 미술로 밥을 먹고사는 처지도 아니고........ 한없이 부족한 아마추어인 주제에 하나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분량이 넘쳐나면......... 죽을 때까지 루브르 박물관 이야기만 해도 다 못하겠다.
또 하이고야.
이러다 언제 루브르를 나서고...... 오르세도 가야하고........ 비행기 국내선 타고 니스(Nice)로는 언제 떠난단 말인가? 마르세유와 몽펠리에와 바르셀로나 까지 돌아보아야 집에 갈 수 있는데 말이다. 본래부터 나는 로마의 문화와 역사를 좋아해서 로마 군대의 발자취를 쫓아다니는 편이지만........ 유럽 전체에 골고루 로마의 문화유산이 흩뿌려져 있는데다가, 가는데 마다 웬 미술관과 박물관이 이렇게 많은 거야?
이러다 집엔 언제 가냐고?
태리야. 세리야. 할아버진 너희가 보고 싶어. 차라리 담부터는 같이 다닐까?
---- 감사합니다. 다음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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