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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월남유감> PCR 검사를 위해서 다낭(Da Nang)으로 이동

by 피안재 2022. 7. 21.

 

 

 

 

 

 

 

 

 

 

 

 

 

 

 

 

 

 

 

 

 

  어김없이 오늘도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호이안 어촌의 싱그러운 아침이 시야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이 아니야?

  아니면,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완전 새로운 새아침인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 스위치를 누르고 나서 창문을 여니 벌써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것만은 틀림없는 어제 온종일 나를 괴롭히던 그 열기의 연장선상임이 틀림없다. 개뿔! 새롭기는 무슨.........

  믹스커피를 타서 머그잔을 들고 다시 창가에 섰건만, 밤새 틀어 놓은 에어컨의 덕분으로 어느새 시원해지고...... 다시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초록빛깔들이 싱그럽게만 느껴진다.

  ‘오호라! 정녕 알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이 아닌가?’

  두 눈에 가득 들어오는 풍경이랑, 사진으로 담아낸 풍경이랑, 그림으로 담아내는 풍경은 같은 듯 다른 듯 제각각 그 맛과 여운이 다르게 다가오지만, 풍경 뒤에 스며있는 사연까지 담아내기엔 아무래도 그림이 좋은 것 같고,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질감과 눈이 시릴 것 같은 벅찬 감동은 아무래도 두 눈을 통해 마음에 담아두는 감동의 기억만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럴수록 두 눈을 통해 마음에 전해진 기억이란 것이 용량제한과 시간제한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어서 그 영속성이 짧음에 한탄이 절로 솟아날 뿐이다.

  사람과 사물의 풍경 뒤에 아로새겨져있는 사연까지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나의 두 눈동자를 통해 담아내는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용량 무한대의 메모리카드는 없는 것일까?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 골목길에 들어선다. 슬리퍼를 벗어들고 맨발로 대나무 숲길을 걸어간다. 스무 걸음 남짓 걸었을까? 너른 백사장 너머로 파랗게 일렁거리는 바다가 나타난다. 파란 바다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그 파란 바다를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 싱그러운 공기가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 공기가 파란 빛깔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가슴 벅차도록 다가오는 대자연 앞에 서면 사람은 왜 스스로 작고 고독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안방비치 해수욕장이 오픈을 한다더니만 이른 새벽부터 해변 가득 사람들로 넘쳐난다. 해변산책을 하고, 현지인들 틈에 끼어서 새벽 수영도 하고, 인파로 넘쳐나는 어촌마을을 변함없이 둘러본다.

  완전한 여름휴가가  꼴두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룬다.  놀랍다는 표현 밖에는......

  오늘은 호이안과 작별하고,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서 마지막 여행지인 다낭으로 옮겨가는 날이다.

달랏에서 오토바이 전용 세차장을 보면서 놀랬다면, 이곳에서는 이동식 마을 주유소를 신기해하면서 구경한다. 베트남 전역에 걸쳐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간이 주유소라고 해야겠다.

  안방비치 입구에 늘어선 반짝 시장엔 좌판을 늘어놓고 파는 상인이나, 그 앞에서 해산물이나 야채를 구입하는 구매자나 별반 낯설지가 않다. 어제 아침에 보았던 그 사람에 똑같은 그 풍경들이다. 그것이 저네들의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인 것이다.

  챠밍여사를 밖으로 불러내서 현지 점포에 찾아가 쌀국수를 한 그릇씩 해치운다. 호텔로 돌아갈 때쯤엔 또 관리인이 출근해서 아침식사를 만들어 주겠지만 말이다. 베트남 로컬 음식이라는 것이 아주 간단해보일뿐더러 먹고 돌아서면 언제 먹었냐싶게 또 배가 고파지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가족모두가 이른 아침부터 풀장에 풍덩 빠져서 물놀이를 즐기다가 풀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지루하다 싶어지면 그 차림새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가 바다에 가서 풍덩 수영을 즐기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각자의 방에서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11시쯤에 체크아웃을 하고, 어제 저녁에 미리 예약해 두었던 택시가 도착했다.

  이젠 호이안 여행을 마치고 택시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서 32km 떨어져 있는 다낭으로 옮길 차례가 된 것이다.

  여행을 마무리 하는데 있어서 꼭 사전에 이행해야할 사항들이 우리 모두 앞에 놓여 있는데, 이곳 호이안에는 없거나 아니면 있다 해도 여러 가지 여건상 다낭에서의 체류가 꼭 필요하겠기에 이번 베트남 여행의 말미를 다낭에서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호이안에서 머물렀던 피치하우스(Peach House)는 호아인 올드시티와 정반대 방향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안방비치에 위치해 있다. 호텔과 홈스테이를 절반씩 섞어놓은 듯, 흡사 우리식이라면 방갈로나 펜션 같은 분위기라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작고 아담하고 운치 있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편리했다. 일부러 조용한 휴식을 원해서 이곳을 택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미 두 번의 호이안 방문에서 올드시티에 머물러 보았기 때문에 양쪽을 비교할 수 있겠는데, 혹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어도 나는 올드시티에 머물기 보담은 이번처럼 멀리 떨어진 해변을 택하겠다.

  짧은 여행보다는 진정한 휴식을 우선하는........ 한 달 살기 같은 계획을 가지고 이 호텔에 다시 머물고 싶다. 이곳에서 머물렀던 호이안 여행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여행의 말미에 굳이 다낭에서 이틀을 머물기로 한 것은 코로나 사태(COVID-19) 때문이다. 호텔을 2박 예약했지만 사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1박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내용이야 차차 설명하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해외여행을 위해 출국하고 귀국하는데 있어서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생겨난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전, 48시간 이내에 PCR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검사의 결과가 양성으로 판명되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현지 의사의 싸인이 들어간 영문 검사서가 있어야만 출입국 검사소를 통과할 수가 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에라도 양성판정의 검사서가 없거나 음성이었다면 다시 출발지로 강제 송환된다.

  이런 검사를 호이안에서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가지 여건, 그러니까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해서 호이안이 아닌 다낭에서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최선이겠다 싶어서 다낭 체류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제 세상은 어쩌면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만 같다. 모든 것이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진........ 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달갑거나 익숙하진 않겠지만......... 코로나는 이제 어쩔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생활의 일부로 어느 사이에 들어와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왜?

  어떻게?

  코로나19가 도대체 뭐야?

  그리고...... 이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방역복으로 중무장(?)을 갖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방금 도착한 십 여대의 버스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베이징의 한 아파트촌이었다. 서너 명씩 팀으로 나뉘더니 다짜고짜 아파트 출입구로 향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아무도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제지하지 못했다.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눌렀음에도 반응이 없거나 조금이라도 지체된다 싶으면 심하게 문을 두드리거나 발로 찼다. 문일 열리면 자세한 상황설명 보다는 다짜고짜 집안으로 밀치고 들어섰다. 그리고는 둘러메고 온 방역장비를 이용한 온 집안을 방역 소독했다. 가구는 물론 옷장이며 쌓아놓은 물건들까지 들추거나 강제로 열어서 소독제를 쏟아 부었다. 온갖 매체를 통해 홍보해 오기를, 방역제 자체는 독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직접 접촉을 삼가라고 해놓고는 주방은 물론 심지어 냉장고를 열고는 그 안에다 소독제를 뿜어댔다.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에는 다급함이 역력해 보였다.

  함께 온 소수의 방역자원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같은 단지 내의 모든 가구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완벽하게 방역소독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완전방역!)

  그것이 지금 국가와 당이 그들에게 하달한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 명령은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강력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에겐 오조지 복종과 하달된 과업의 수행만이 당면한 과제의 전부였다.

  초인종을 눌러도 두드려도 안에서 반응이 없는 가구가 나타났다. 뒤쪽에서 빠루와 함마를 비롯해 여러 가지 장비를 손에든 사람들이 나와서 아파트 출입문 손잡이를 내리쳤다. 출입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거칠 것이 없었다.

  당에서 하달한 과업이 무조건 우선인 것이다. 과업의 수행에 가로막는 것이 생기면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무방했다. 뒤처리는 그들의 몫이 아닌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버젓이 저런 일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권과 개인의 사유권을 이렇게 침범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말인가? 관련자를 처벌하고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정신적 피해 배상과 치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만하기를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면 어쩌겠는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한 한다면 말이다. 자칫 인권이 어쩌니, 방어권과 피해보상권이 어쩌니 따지다가는 봉변은 물론 안전보장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 오늘날에 그런 일이 어떻게 있냐고?

  허나 어쩌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일인것을........

 

  과연 지금 중국이 중국스러운 일을 벌이고 있다.

  추측하건데, 지구상에서 지금 저러한 일을 벌일 수 있는 나라는 몇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 북한. 베트남. 러시아, 아니면 아프라카를 포함하는 개발도상국 중에서 부패한 독재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 중에서 중국. 북한. 베트남 경우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공산당이 일당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여기에서의 지배는 곧 독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부패한 독재자들의 국가 중에서 러시아는 연방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에 따라 약간 구분이 필요하겠지만, 역시나 푸틴이라는 독재자의 의향에 따라 언제든 얼마든지 만행이나 파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포함된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분모에는 공히........ 국가의 개념보다 당(공산당)이, 국가의 개념보다 독재자의 명령이 우선한다는 특징과, 이들의 지배에는 공히 민족주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순간에도...... 베트남이란 국가에는 아주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베트남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지내보라. 그들은 지금 분명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자본주의의 순리에 입각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일한만큼 보상을 받고, 그 보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의지와 이상이 자유롭게 실현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금만 속을 살펴보면....... 이런 자유스러움은 어디까지나 베트남의 국가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소수의 베트남공산당 지도부의 이해와 배려와 포용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는 순간에든지 베트남공산당의 존립과 연관 지어 지금의 자유 시장경제와 개방이 장애가 된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제재와 독단이 가능한 체제가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체제의 골격은 고스란히 중국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정체성과 흐름을 보고 있으면, 곧 베트남의 미래가 어렴풋이 그려직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대응에서도 중국과 베트남은 상당히 유사한 정책으로 대응했다. 다만 베트남의 경우는 특정 지역의 완전 고립정책은 시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베트남인들의 생활방식을 보자면 완전고립정책이 불가능하거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코로나19 사태에 전 세계가 똑같이 정신적 경제적 공황상태를 격고 있지만, 왜 중국 사람들의 대응은 유별난 것일까? 일단 나부터 그들의 행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뻔히 예측 가능한 결과를 두고서 벌어지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과학과 의학과 경제력에서 세계 으뜸을 다투는 중국이 겨우 저렇게 처신해야만 했을까?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쫓기듯 허둥대게 만드는 것일까?

  왜?

  중국(중국공산당)에게 코로나(COVID-19)는 과연 무엇일까?

 

 

 

 

 

 

 

 

 

 

  왜 중국은(공산당 정부) 저렇게 코로나 사태에 민감한 반응을 넘어서 마치 국가의 존망이라도 걸린 것처럼 광분하는 것일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균이 중국의 영토를 탐할 수 없으며, 사회공산주의 이념을 훼손시킬 수도 없지 않겠는가? 인류 차원의 질병이 유독 중국인만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가장 먼저 지구상에서 멸망할 것도 아닌 상황에 말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조물주께서 모든 인류에게 처음으로 베풀어주신 공평함이니 그것이 곧 평등사회구현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처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생로병사마저도 공산당의 손을 거치게 되면 제 마음먹은 대로 공평해 지지가 않는다. 구호는 언제나 평등사회구현이 저변 깊숙이 깔려있다고 주장하지만...... 솔직하게는 정의사회구현이 이룩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정의든 평화든 행복이든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물주의 배려가 아니라 오로지 공산당의 허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이런 표현이 좀 과격한가? 그럼 내가 외골수 반공주의자인가? 아니다. 나는 사회공산주의의 허구성에 반발하지만, 사회주의 이상에는 충분히 공감하는.....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스스로 이상을 선택하고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혹, 이러다가 앞으로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사회나 국가는 방문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공산주의의 차이를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생겨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적어도 다각적인 생각과 다방면의 방법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런 노력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공사주의 체제하에서는 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사태를 보는 시각과 판단에 의해서 어느 쪽이든 과감하고 신속하게 결정이 난다. 그 결과는 공산당 차원의 홍보와 여론몰이로 언제든 당과 최고지도자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에서 결론이 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언제나 당연한 것이며, 당과 최고지도자의 선택과 처분은 언제나 정의롭고 최선인 것이다. 이것이 곧 시진핑의 정권이자 김정은 정권의 엄연한 현실이다. 중세의 왕정국가, 곧 군주제가 부활하여 한 차원 더 엎그레이드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상황을 뉴스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실로 어처구니가 없게도 느껴지지만, 어쩌면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트라우마를 전혀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자면 약간 이해가 되는 구석도 있기는 하다.

  중세시대 14세기에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黑死病. Pestilence) 전체 인구의 약 2/3를 죽음으로 이끌어갔다. 오죽했으면 이 거대한 재앙의 다른 이름을 (Black Death) 라고 불렀겠는가? 페스트가 오고 가는 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지만 지나갔다 여겨지면 온통 시체만이 나뒹굴었던 것이다.

  그럼 흑사병이 유럽에만 있었느냐? 역사는 흑사병의 발원지를 중국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실려 가는 중국의 나무궤짝 속에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들에 의해서 유럽지역에 전파되었다고 적었다. 중국의 우한 지역을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세계보건기구가 지적하였으니 중국인들이 보이는 반응이나 태도 또한 당연히 격해질 수밖에........

  중국의 원나라가 지배하던 1334년의 기록에 따르면 허베이 성에 괴질(흑사병)이 창궐하여 후베이 성 주민의 90%가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허베이성(河北省)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자치구와 텐진시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에 해당된다고 보겠다. 수도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전체의 인구 중 90%가 괴질의 치명적 영향을 받았다면 당연히 서울의 인구 90%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하북성이라는 지역은 지금으로는 중화인민 공화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20년 중국공산당은 후베이성 우한시를 봉쇄했다. 봉쇄지역은 늘어만 갔다.

  2022년 3월 27일 상해봉성(上海封城) 지침을 통해 상하이시에 대해 전면적인 완전봉쇄를 감행했다. 이는 모두가 공산당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어떤 이유도 명분도 저항도 통하지 않는다. 살려면 무조건 수용하고 당의 지시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초기 코로나 발생에서부터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으며, 이는 모든 국제사회로부터 이 사태에 대해서 초기대응 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 버렸다.

  과거의 역사에서 흑사병의 발원지라고 결코 지워질 수 없는 낙인과도 같은 오명을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걷잡을 수 없이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국제사회 수준에서 공동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악화되면서 부터는 오로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주장에 국가의 사활을 건 듯하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혹시나........ 코로나(COVID-19)의 발생이 중국 우한이 확실해지고, 초기대처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의도된 오판과 조치로 세계적 재앙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중국을 향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중국정부는 아주 심도 있게 고민을 했던 듯 보여 진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의 과실이 심하고 배상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무한대의 배상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나친 우려가 시진핑의 중국 정부관계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 아닐까?

  2019년 11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신종전염병의 발생이 외부에 알려졌다. 이 또한 우한시 보건관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중국 정부는 우한시의 통행을 제한시키고 보건당국과 관계자들을 정부차원에서 통제하기 시작했다. 시민들 사이에 환자가 급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아시아권의 중국담당 기자들이 우한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를 철저하게 차단 시켰다. 그러자 지각 있는 우한시의 보건관계자 몇 몇이 현재의 상황을 상세하고도 적나라하게 인터넷을 통해 서방에 알렸다. 우한시는 아비규환에 빠져들었고 세계증시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진핑의 중국공산당 정부는 즉각 우한시에 봉쇄령을 내렸고, 계엄사태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압적 통제를 펼쳤다. 보건 관계자들이 어디론가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2020년 1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3월 말 즈음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코로나 발생을 보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0년 1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과 사무총장의 스캔들 등의 파장을 겪은 후에 늦게나마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2월 28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온 인류에게 끼치는 위험도가 ‘매우 높음’으로 격상 시켰으며, 3월 11에는 기어코 코로나(COVID19)가 세계적 범유행성전염병(팬더믹)으로 매우 심각하다는 판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최초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과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되는 질병이라 하여 ‘우한 폐렴(Wuhan Pneumomia)’이라고 불렀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시진핑과 중국 정부가 벌어진 사태에 얼마나 놀랐고 치를 떨었기에 그렇게 무자비할 정도로 대처했는지는 파노라마를 보는 듯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진다. 중국경제가 입을 파장은 ‘중국굴기’를 앞세우고 있는 중국정부(공산당)의 이력에 치명적 오점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대화와 눈부신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종신집권을 노리는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마른하늘에서 느닷없이 떨어진 날벼락을 맞는 꼴이 되었으니, 시진핑을 하늘에서 선택해 내려주신 영웅으로 떠받들어야만 하는 정부(공산당)의 입장에서야 더더욱 어떠하겠는가? 부인. 외면. 왜곡. 검열과 차단의 정책들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이 무자비한 통제와 처벌을 기본으로 하는 정책이었다. 일당독재의 공산주의에서만 가능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감히 말하건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나는 공산당(共産黨)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는 저 깊은 심연속의 속내를 말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중국정부가 가장 극렬하게 국제사회에 외친 것은 ‘코로나 바이러서의 발생은 결코 중국 우한이 아니다. 이는 미국 정보기관(CIA)의 음모다’라고 연일 주장하고 나섰다. 무조건 부정하고 차차 왜곡을 시켜 발뺌을 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중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야말로 청정국가다’라는 것을 억지로라도 국제사회에 내보여주려는 정책을 초지일관 밀고 나왔다.

  중국공산당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칭링(淸零) 정책의 완수’였다. 어떤 희생과 댓가를 치루는 한이 있어도 ‘본래의 청정 상태인 영(0)의 수준으로 확진자 수를 떨어뜨린다’는 목표였다. 여기엔 공산당을 비롯한 중국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것이며 법령을 개정해서까지라도 강제성을 동원해서라도 반듯이 조속한 시일 안에 목표달성을 이루어 내야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모든 성공과 완성은 위대한 공산당 지도부의 뛰어난 영도력 하에서 모두 이루어졌다’라는 기념축제의 마당에서 시진핑이 영구집권의 길로 들어서는 축제를 벌일 판이었다. 이런 중국정부의 시책을 세상은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Zero COVID)’ 이라고 명명했으며, 솔직히 말해서 조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입만 열면 ‘완전 봉쇄’ ‘방역철저’ ‘제로 코로나’를 외치는 중국정부이지만, 툭하면 터지는 것이 중국정부의 봉쇄가 뚫렸다는 소식들뿐이기 때문이다.

  외신기자들 앞에만 서면 중국정부는 끊임없이 ‘코로나 발생지는 우한이 결코 아니다’ ‘제로 코로나는 달성되었다’라고 주장하자, 이골이 난 서방의 언론이 이렇게 비꼬았다.

  ‘시진핑 정부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주장이라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에 거짓말을 자꾸 더하다보니까 이젠 거짓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개념마저 모호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더하여 아무리 거짓말이라 해도 끊임없이 같은 거짓말이 반복되다보면 언젠가는 그저 보편적인 진실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궁지에 몰린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는가? 조금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민낯을 발견하기란 썩 그리 어려운 이만은 아니 것 같다.

  2022년 3월 1일 상하이시에서 처음으로 오미크론 변이에 의한 확진이 최종 결론이 났다. 그동안 그렇게 ‘제로코로나’를 위해서 총력을 쏟았음에도 상하이시의 방역망이 뚫렸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봉쇄! 또 봉쇄! 우한보다도 더 철저한 완전봉쇄!’

  내국인이던 외국인이던 무조건 통제에 순응해야만 한다. 자유와 인권이란 단어는 애초부터 어디에도 없다. 불편 감수와 굶주림과 서민경제 등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정부의 명령과 시책에 무조건 따르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행상황에 따라서 라기 보다는....... 공산당 최고지도자의 마음억기에 따라서가 더 정확할 것이다.

  ‘우한 폐렴’ 이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불렸었지만, 2020년 2월 11일 WHO(국제보건기구)는 새로운 유형의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인 SARS-CoV-2 에 의해 발병한 급성 호흡기 전염병의 이름을 코로나19(COVID19)로 명명하였다.

 

 

 

 

 

 

 

 

 

 

 

 

 

 

 

  호이안의 호텔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다낭으로 이동한 우리는 이번 여행을 마무리할 마지막 숙소로 마케비치 해변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예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일반 호텔의 10층에 아파트 형태의 룸이 제공되었다. 중간의 문만 가로막아 잠그면 두 개의 객실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제법 너른 크기의 객실 사이에 공용으로 쓰는 거실 겸 주방이 따로 설치된 저렴한 팬트 하우스 정도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내 여행에서 이런 정도면 호사라고 아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아주 저렴하게 빌렸다고 해야겠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는 동안에 옥상엘 올라가 보았다.

  예스 호텔 옥상에도 루프탑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 경관은 전형적인 루프탑의 풍경 그대로였다. 멀리 다낭 시내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고, 돌아서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마케비치 해변의 장관이 시야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이곳을 여행의 마지막 숙박지로 선택한데는 대략 세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현재 해외여행을 결행함에 있어서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출국과 귀국에 앞서 꼭 짚어야 하는 절차가 생겨났는데, 귀국함에 따르는 그 절차수행을 위하여 이곳 다낭에 꼭 묵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어서였다.

  다음은 손녀를 위해서 아무래도 바다가 있어야 하겠고, 루프탑 풀장은 덤이었다고 해도 될 필수 고려사항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은 귀국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자정을 막 지나 0시 45분 이었기에 심야에 공항으로 가는 길이 수월했으면 하는 바램때문 이었다. 물론 이 세 가지 충족 조건에 있어서 예스 호텔은 충분히 훌륭한 선택이었다.

짐 정리가 끝나자 우리는 한증막처럼 뜨거운 다낭의 거리로 나섰다.

  숙소에서 약 2KM되는 거리를 걸어서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길거리 구경은 구경이고, 검사는 또 검사인데...... 무지무지 덥다.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러내린다. 그런데 아무도 힘들다거나 택시를 타자거나 쉬었다 가자고 불평을 안 한다. 그냥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주야장창 잘도 걸어간다.

하긴...... 당장 시급한 것의 우선순위가 ‘PCR 검사와 양성반응 결과와 영문 검사서’가 가장 우선이고, 그런 다음에 맛있는 점심식사요, 그 다음이 다낭소재 롯데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다가 주방이 딸린 아파트형 숙소에서 만찬 겸 파티를 여는 것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마침내 병원 건물이 나타났고 기쁜 마음에 챠밍여사가 도로를 무단 횡단으로 쫓아가서는 병원 간판에 손짓을 해가며 기뻐한다.

  ‘아니...... 병원 도착이 무슨 PCR 검사 양성반응 확인서로 느껴지나?’ 헐.

  <Hospital 199 under the Ministry of Public Security (MPS)>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199 공안병원’ 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나 모르겠다. 경찰이 공안부에 속하니까........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찰병원’ 혹은 ‘보훈병원’ 쯤이라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더하여 다낭 주재 적십자운동 본부를 겸하고 있는 병원이다. 까짓 그렇다면 우리나라 보건소 기능까지 보탠 복합병원이라 해두자.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국 전 코로나 테스트에서도 비슷했었지만, 해외에서 입국 전에 코로나 테스트는 어디나 필수였는데, 주된 테스트 방법이 검사 결과에 대한 신빙성이 가장 높은 PCR 테스트 방법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문제는 비용이었다. 세계 어디나 해외여행의 빗장이 열리는 나라에서는 대부분 한화로 13만원에서 17만원, 간혹 20만원을 상회하는 나라가 있었다.

  베트남의 경우도 14만 원 정도가 주류였는데........ 내가 비행기 표를 한 달 이전에 예약하고 나서 4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그러다 보름 정도 지나고 나니 출국할 때 13만원이 드는 PCR 검사가 신속 항원 검사로 대체 허용되었고, 비용도 절반가량인 6만 원대로 줄어들었다는 낭보였다.

  출국을 열흘 남기고는 출국하는 데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환원되어서 아무런 검사도 필요치 않고 여권과 비행기표만 들고 나가면 된다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횡재 같은 기분이 들었다. 4인으로 계산해 보면 얼마만한 비용이 줄어드는 것인가? 더하여 현지를 먼저 다녀온 사람들 정보를 찾아보니........ Oh-mygod!!!!!

  다낭의 199 공안 병원을 찾아가면 PCR 검사 비용이 1인당 7,500원이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불과 한 달을 전후하여 나갈 때는 공짜, 올 때는 4명이서 3만원 이면 된다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구체적 여행 일정을 계획할 때만 하더라고 코로나 검사 비용으로 총 4십 만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다낭의 199 공안 병원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에게게........ 또....... Oh- mygod!!!!!!

  신중하고도 엄격해야만 할 코로나19 PCR 검사가 병원 내의 특별한 검사실이 아닌 정문 옆 자전거 거치대를 지난 공터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검사 당사자나 보조 요원이나 아무리 요목조목 살펴보고 따져보아도 어디에서도 의사선생님 티가 엿보이지를 않는다. 여섯 명의 관계자 전부가 모조리 아르바이트 도우미 수준으로 보인다. 진행 방법과 절차와 과정도 너무나 엉성해 보여서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점심시간이라 해서 40분을 기다렸는데........ 검사를 기록하고 서류를 출력해주는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서 장장 1시간을 더 기다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컴퓨터가 고장이 아니라.......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 작동되지 않아서 생긴 해프닝이란다. 하긴..... 종 종 그렇다고 한다. 국립 관공서에서...... 촌각을 다툴지도 모르는 병원에서...... 이렇게 해외 여행객을 주로 담당하는 장소에서 인터넷이 먹통이라니......... 대한민국은 지금 5G의 시대를 달려가고 있는데....... 베트남은 지금 2G에서 3G쯤으로 넘어가는 정도로 느껴진다.

  현장에서 해외여행객을 주로 상대하면서 코로나 사태의 PCR 검사를 해주고 있는 마당에...... 그 비용 징수가 카드로 되지 않는다. 오로지 베트남 화폐로 현장에서 수작업으로 징수가 가능하다는 이 놀라운 현실에........ 절로 고개만 절래절래......

  암튼 어찌어찌해서 우리 모두 검사는 무사히 마쳤다.

  결과는 이따가........ 밤 8시 넘어서 본간 건물 2층의 검사실로 와서 찾아가란다. 본인이 직접 오지 않고 대리자가 찾아가도 되니깐 여권은 필수로 죄 다 가져 오란다. 우리나라 심산유곡 보건소도 여기보다는 훌륭한데 이거야 원...... 결과를 믿을 수는 있는 거야? 이래놓고 나중에 딴소리 하면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좋다. 검사가 부실하던 안하던 상관없으니까..... 일단 우리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게 양성판정에 의사 싸인만 해줘!’

 

 

 

 

 

 

 

 

 

 

 

 

 

다낭(Da Nang) 소재 롯데마트를 찾아갔다. 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우리 눈에 익숙한 가득 쌓여있는 상품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왜 그렇게 가슴이 푸근해지고 넉넉하니 여유로워지는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버젓이 한글표기가 선명한 식료품 코너가 특히 반가웠다. 많은 간이 스낵 코너들도 있었는데 어느 정도 한국과 베트남의 생활문화가 반영된 퓨젼의 느낌이 확 다가와 느껴진다. 2년 이상의 코로나 사태로 매장이 정상화되지 못했었음인지 부분적으로 페쇄된 코너들도 상당히 있었다. 여행안내서에서 보았던 대형 마켓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한산하고 침체된 분위기가 역력해 보였다.

우리 4명의 가족들이 각자의 취향에 입각해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주로 식재료와 주전부리와 과일과 맥주를 엄청나게 구입하는 것이었다. 모처럼 주방이 있는 숙소의 장점을 최대한 맘껏 누려보려는 심사에서였다. 롯데마트 매장 1층에 패스트 푸드점이 입점해 있다. 여행 내내 베트남의 강한 향신료 덕분에 제대로 식도락을 누려보지 못한 손녀에게는 아마도...... 무척 반가운 음식점이 바로 이날의 이곳이 아니었을까? 한참 배가 고팠던 탓에 어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수고보다는 그냥 이곳에서 한 끼니를 때우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한참이나 뜸을 들여가며 어렵게 주문을 한 끝에 나온 것은 달랑 햄버거랑 감자 크로켓이랑 감자튀김이 전부...... 뭐, 처음 예측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지극히 기본적인 선택....... 그럼에도 손녀는 마냥 다행스럽고 즐거운 표정이 역력하다. 이게 세대차이인가?

뒤편의 다른 가계로 가더니만 BBQ 치킨을 손에 들고 오는 손녀의 표정이 유독 환하다. 다행이라고 박수를 치면서 할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한다.(숙소에 돌아가는 대로 혼자라도 밖으로 나가서 쌀국수 정도는 먹어줘야지. 이거야 원.......)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장을 본 분량이 엄청났다. 호텔을 얻은 것은 2박 이지만 밥해먹고 쉬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라 해야겠는데....... 이걸 다 먹어치우고 갈 수 있으려나? 결론은 모자라지도, 남길 만큼 넉넉한 것도 절대로 아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게 다 어디로 갔지?

장을 본 짐들을 바리바리 싸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 장거리를 정리하는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번개처럼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옥상의 루프탑 풀장으로 직행했다. 현지인 가족들 여럿이 점령하고 있는 풀장 사이로 풍덩하고 뛰어든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가........ 살짝 비위가 상하려고 한다.

풀장의 물이 뜨거운 열대의 옥상에서 따뜻하게 덥혀져 있었던 것이다. 상큼함과 알싸한 서늘함이 송두리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저 밍밍하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맹탕의 수영장이었던 것이다. 호텔 측의 관리부실을 탓을 해야지........ 물을 자주 갈아주고 계속 순환을 시켜주어야지 이게 지금 도대체 무슨..........

그런 와중에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챠밍여사가 올라왔다.

‘애들은 왜 안와? 왔으니까 일단 들어와 봐. 조금 깊은 편이야.’

풀장의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부러 왔으니 살짝 담구기는 하고 내려가자고 애써 웃으면서 들어오라고 사정하고 있는데......... 얼씨구! 챠밍여사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내가 뭘 잘못했나?

‘지금 혼자 뭐하고 있는 거야? 장난해?’

‘장난이라니? 내가 먼저 올라가 있는 다고 이야기 했잖아.’

‘그게 아니고? 저기 내려다보이는 저곳이 당신이 말하던 그 해변 아니야? 방에서 창문으로도 잘 보이기만 하던데....... 저 해변이 그렇게 끝내준다고 애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실컷 자랑해 놓고, 정작 다낭까지 와서는 그렇게 멋지다는 해변을 코앞에 놓아두고 달랑 혼자서 옥상 풀장을 차지하고 신나게 놀겠다고?’

‘내가 언제 풀장에서 실컷 놀 것이라고 말했나? 잠시 더위만 시키고 나서 준비가 되는대로 해변에 갈 거라고 했지?’

아! 옛날이여! 어느 순간엔가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아부성 모드로 전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니........ 슬프다. 이렇진 않았었는데.......

해변으로 향하는 씩씩한 세 명의 여인네들 뒤를 쫄쫄거리며 따라 나선다.

미케 해변(My Khe Beach)?????? 아이고 내가 먼저 미치겠당?  어케????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미처 사전에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렇게 다들........  마치 영혼을 모두 바다에 저당잡히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미친듯이 빠져들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천진난만한 애들도 아니고.......  바다를 처음보는 사람들도 아닌데.........  헐.  아니 다낭의 미케해변엔 여타의 다른 바다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라도 있는 것일까?  오딧세우스를 잡아 끌던 싸이렌의 노랫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도무지 작금의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분명,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기도 한참 전인 시뻘건 대낮에 미케해변의 바다에 도착을 했는데.........  노을이 지고 한밤중이 되어가는 데도   도대체 바다에서 나갈 생각들을 안하고 있다.

  '배도 안고파?'  시큰둥 별반 반응이 없다.

  '핑크 교회도 있고  한시장 쇼핑도 기다리고......  다낭 시내 안나갈거야?'  그래도 역시나 시큰둥.........  손녀가 살며시 다가와 커다란 비밀을 은밀하게 알려준다.  '할아버지.  이런 바다 처음이예요.  한국엔 이런데가 없어요. 밤바다에서 실컷 수영을 즐기다니요?  저쪽 파도가 더 쎄게 다가와 부딪치는거 아세요?  오늘 만은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어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손녀는 다시 바다 깊숙한 곳으로 헤엄쳐 가고 멍하니 서서 이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그냥.........  헐!  또다시  헐!

  손녀는 그렇다 치자.  쓰는 김에 우리보단 한참 젊으니까 조카까지는 또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아무리 그렇기로........  60을 훌쩍 넘긴 태리할망구의 지금 상태는 도대체 뭐랄까?  이.해.불.가.

  '저런 체력이 어디에 남아있었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저 할망구가 처음 내 눈에 띈게  23살 이었다.  내가 24살(날짜로는 차이가 94일 밖에 안나는 내가 오빠지만)

  여름 성경학교 캠프를 미륵리 입구에 있는 수안보 초등학교 분교(집사님 한 분이 분교 담당교사)에 설치하기로 계획하고,  책임 교사대표가 사전 답사를 떠났는데.......  ㅎㅎㅎㅎ.  그게 우리 두 사람이었다.

  서울 생활만 해서 시골을 전혀 모르는 초짜님을 모시고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시내버스를 타고 답사를 떠났는데........  당시엔 미륵리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하루에 세 번밖에 없었고,  내송계에 오는 완행버스가 세 차례밖에 없던 시대였다.  송계를 가로질러 관통하는 지금의 도로는 국토개발 계획에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1983년)  미륵리와 송계 사이는 리어카 정도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꾸불꾸불 농로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수회리를 지나면서부터 초자님의 열려진 입은 다물어 지지를 못했고 연실 감탄사를 연발했다.  월악산에 가까와질수록 커져가는 눈망울에 심각해진 표정은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지금도 그날의 풍경과 감동을을  그 할망구는 전혀 잊지 못하고 있다)

  분교 상황을 돌아보고 여름 성경학교 계획을 확인하기는 했는데  돌아갈 차편이 없다.  저녁까지 기다리려면 아직 서너시간을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데.........  그때까지 뭐하지?  선남선녀(?) 단 둘이서 말이다.  당시 나는 그 지역을 웬만큼 알고 있었다.  사냥이 취미였던 부친께서  월악산 인근인 공이동. 미륵리. 한수. 송계. 덕산 일대를 어려서부터 어린 장남을 튼튼하게 키우신다고 열심히 데리고 다니셨기 때문이다.

  어차피 돌아가는 차편은 비슷한 시간에 미륵리와 내송계에서 출발한다.  시간은 넘치도록 남았다.  그래서 내가 시골초짜님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풍덩풍덩 물놀이를 좀 하자고 말이다.  그것이 요샛말로 치자면 오리지날 트래킹(Tracking) 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겠다.

  챠밍아가씨가  당장 준비할 것은 딱 두 가지면 충분했다.  이제부터 마구잡이로 이끌고 나갈 놈팽이에 대한 신뢰와  물에 빠질 배짱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 초짜아가씨가 겁도 없이 선뜻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망설일 것이 더 무엇이 있겠는가?

  다짜고짜 손을 붙잡고 도랑에 풍덩 뛰어 들었다.  손을 잡는것은 무한정 허락되었고,  웅덩이를 빠져서 지나가거아 수풀을 헤집고 지나갈때는 어느정도의 스킨쉽까지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ㅎㅎㅎ.

  미륵리 송어 양식장에서  송계 캠핑장을 지나고  닷돈재를 지나고 폭포를 지나고 덕주사 입구를 지나고.......  어찌되었든  얼추 5시간 이상 걸려서 내송계 완행버스 주차장에 도착했다.  물론 초죽음 상태였지만,  노력한 결과로 아주 다행스럽게 완행버스에 올라탔다.  (이런 경험 가진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지금의 송계계곡이 이름난 여행지라고 한다면.........  그때 우리가 경험한 송계계곡은 한 폭의 산수와였고,  세상 어디에도 다시없을  무릉도원 이었다.  이제까지의 온가자 경험속에서도 그날의 감동은 리얼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그 시절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태리할망구의 표정이 꼭 그때 표정이다.

  도대체 뭐에 홀린거지?

  해변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해안가 다낭의 도심 풍경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 피어올랐지만,  문제는 낮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알맞은 해수온도 속에 밀려와 햐얗게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또한 더욱 선명해 지더라는 말씀이다.  그런 밤바다에 풍덩 빠져들어서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다가와 부딪치는 파열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면서  또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음 파도를 기다리는 마음이란........  아는 사람만 안다!

  결국, 나는 감춰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나,  PCR 검사 확인서 찾으러 가야하는데?'

  그제서야  우리가 오늘 왜 다낭까지 와야 했는지를 깨달은 표정들이다.

  못내 아쉬운 표정들을 감추지 않으면서 순순히 해변으로 나선다.  아마도 그냥 두었으면 나 보고 나가서 먹을것 준비해 오라고 시키면서 자정까지 놀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내일 저녁에 다시 와서 실컷 놀아야지.  공항으로 출발하기까진 여기서 놀아도 상관 없잖아?'

  Oh!  my god!!!!!!!!!!!!!!

  해변에 마련된 노천 샤워장에서 물을 한바탕씩 뒤집어 쓰고나서 호텔로 향하는데........  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변가 번화가를 그냥 수영복 차림으로 씩씩하게 나선다. 

  '뭐. 남들도 다 그러는데........'

  '이러다 한국 가서도 훌렁 벗고다닐까봐 그렇지.'

  '가릴건 다 가렸는데 뭘.  그리고.......  여기가 베트남이니까 그렇지.  한국가면 거실에도 이렇게는 안 나와. 절대로 그런 걱정하시덜 말어.'  그리고는 그 넓은 해안도로를 그냥 막무가내로 가로질러 간다.

  '못 말려 정말........'

  해안도로를 따라 불야성을 이루며 수많은 인파로 북적대고 있는 곳이 전부 해산물 레스토랑이다.  전시된 수족관 마다 총천연색 싱싱한 해산물들이 펄떡이고 있다.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부산이고 강릉이고 제주도고 웬만큼 다녀보았지만 다낭은 해안가 씨푸드 단지처럼 크고 화려하고 넘쳐나는 곳은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한 가지로 분명 언젠가 배가 터져죽을만큼 씨푸드를 맘껏 즐겨보자는 목표가 있는데......  유럽에선 씨푸드가 워낙 고가인 까닭에 이제껏 목표달성을 못해왔다.  갑자기 생각나는 통세 슬쩍 '우리 씨푸드 파티 한 번 하고 갈까' 했는데  즉각 돌아오는 대답........  '호텔에 낮에 장봐다 놓은것 다 어떻게 하려고?   그랬으면 첨부터 장을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잖아?  그거 다 먹어 치워야 비행기 탈건데  누가 먹을거야?' 라고 마치 내가 무슨 죄가 있는 것처럼  따지고 들 기세다.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구나.  그냥 잠깐 생각해 본것일 뿐이야.  어여 가자.  배고파........'  꼬리를 내릴 수 밖에.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채비를 하고  거리로 나선다.

  199 공안 병원까지 택시를 마다하고 씩씩하게 다낭의 밤거리를 걸어나간다.  어두운 밤길이고 치안 걱정에 택시를 이용하라고 당부하지만,  이제껏 세상 여기저기를 웬만큼 싸돌아다녀 보았지만  내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오지랍 때문에 간혹 내가 남들의 다툼에 끼어드는게 오히려 문제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만하면 웬만큼 건장하지, 한 인물(?)하지,  쉽게 건드려 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어디서든 통하는 것 같다.  셋 이상이면 곤란하겠지만  아직까지 둘 정도가 나가와서 내게 위해를 가하고 내 물건을 빼앗아 간다는 것은........  혹 러시아의 훌리건 아니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난 아직도 현역!)

  어두운 도로도 질러가고 좁은 골목길도 거침없이 빠져다닌다.  움직이는 내비게이션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더군다나 밤길엔 배낭도 없이 최대한 가벼운 차림으로 다닌다.  여행에 대한 내 지론이 '가진것은 시간과 배짱뿐'인데 겁날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199 공안병원에 도착해서 2층의 검사실을 찾아가 제출한 우리들 4개의 여권과 PCR 검사 확인서를 꼼꼼하게 조목조목 확인을 한다.  혹 영문 표기가 잘못되면 심각하게 낭패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OK!  All pass!!!!

  우리 모두가 아무 이상없이 안전하다는 양성판정이 나왔다. (휴!!!!)

  여권과 확인서를 갈무리 하고......  다시 왔던 길을 씩씩하게 되돌아 간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검사 양성판정 결과를 알리고,  되돌아 가면서  슈퍼에 들려서 추가로 맥주를 더 구입했다.  전화 목소리를 들으니 벌써들 한 잔씩 거나한 상태인것 같아서 말이다.  낮에 롯데마트에서 구입한 캔맥주만 해도 양이 상당한데......  벌써 그것을........  숙소에 들어가니  벌써 만찬이 한참이나 무르익어 있었다.  예상대로 말이다.

  이제 여행의 말미에.......  인생 뭐 있어?  이런게 인생이지.........  내일이면 집에 간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거야?  확,  일주일만 더 있어?  다들 그러고 싶다는데........  이미 되어진 약속들은 또 어떻하고?

  이럴때는.............  아쉬운만큼 마시는 거야.  그냥 마시는 거야.  취하면 어때?

 

 

 

 

 

 

 

 

 

 

 

 

 

 

 

  헐!!!

  또  헐!!!

  변함없이 새벽에 일어나 해변이랑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숙소에 올라오니 아뿔싸!!!!  가족들이 벌서 일어나 거실 소파에 도열하듯이 나란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오늘은 아침 산책도  짧게하고 돌아왔건만.......  벌써 외출 준비들을 대충 마쳐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다소 원망이 서린 눈빛들이 느껴지는것은 왜지?

  '뭐야?  어제 과음에 속이 쓰려서들 일찍 일어들 나셨나?  웬일들이십니까?'

  '웬일은 무슨 웬일?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었으니까 좀 일찍 서둘러보자는 마음이지.  우리가 시방 얼마를 기다리고 있는거여?  이대로 당장 내려가자고......  식당은 새벽부터 열어놨을것 아니여?'

  예스 호텔은 뷔페식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해외여행에서 제공받는 아침식사는 동남아나 유럽이나 거의 비슷하다.  다민족 다국가 다종교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대충 어림잡아 고만고만한 메뉴가 정해지는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어느나라 어느 호텔에서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충분히 잘 즐기는 편이다.  단품 보다는 뷔페식에서 훨씬 여유로움과 풍성함을 듬뿍 느끼고 받아들이는 타입이다.  그러니 당연히 오늘 아침식사도 무척이나 여유롭고 풍성하고 즐겁다.  내 경우야 커피만 리필해 준다면 빵 쪼가리던  삶은 계란 두 개이던 별반 개의치 않지만 말이다.

  방에 올라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벌써.......  외출 준비를 마쳐놓고 지키고 앉아서 나보고 서두르라고 독촉하는 것이 아닌가?  애들은 벌써 후런트로 내려갔다고  성화를 해댄다.

  미티미티  미티미티.

  다들 오늘 아침엔 왜들 이러는거여?  바나 힐이 어디로 도망이라도 간대?  세상에........

  오늘은 바나 힐(Ba Na Hills) 여행을 하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지난 번 여행에서 챠밍여사와 나는 바나힐 여행을 충분하게 즐기고 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여 애초의 계획엔 바나힐을 제외시켜 놓았었다.  그런데 손녀가 왈,  '할아버지.  우리 바나힐 가는거지요?  엄마가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바나힐이 그렇게 예쁘다고.' 하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부랴부랴 바나힐을 스케줄에 포함시킬 수 밖에........  베트남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드는,  제일 비싼 여행지를 말이다.

  하긴 뭐,  운이 좋아서 출국입국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들어갔을 비용중 상황이 나아져서 절약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을 다시 써먹는다고 생각할 밖에..........

  더하여,  우리 찾아갔을 때 바나힐에 없다가 새롭게 생겨난 엄청난 볼거리가 추가되어 있다니,  다시 또 찾아갈 이유가 충분하게 생긴것이 아니겠는가?

  서둘러 대충 채비를 갖추고 후런트로 내려간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사전에 미리 에약해 두었던 픽업 서비스 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우리는 이제 바나 힐로 간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나 힐 여행으로 이어지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