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저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에게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졌다.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만큼 소득을 얻는다.”라는 표현은 주로 어떤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일까?
지극히 간단명료해 보이고 단순하기까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지 못할 사람은 아마도 전혀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질문도 아닐뿐더러 우리가 항상 주변에서 일상처럼 겪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 속에 해답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답은 과연 무엇일까?
단언 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는...... 답변들 중의 거의 대부분이 틀렸을 것이라는 슬픈 확신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가 이 질문이 어떤 것을 가리키고 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꺼내든 답변과 생각에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이해관계와 분별력을 요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행기를 마구잡이식으로 내 생각과 경험들을 토대로 써내려 가다보니 유독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산당 등의 생소한 단어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그러다 보니 약간의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지금의 이야기가 끝나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꼭 한 번 짚어보고 싶고, 아프가니스탄 사태도 마무리 짓고 싶고, 항간의 화제가 되는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한번쯤 씩은 다루어 보고자 하는 커다란 열망을 가지고 있는 터에, 그러자면 또다시 거듭거듭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산당. 테러리즘 등의 단어들을 끌어안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해묵은 과거시대의 망령들을 다시 꺼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학창시절에 깊이 발을 담그지는 않았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학생운동을 경험한 처지로 민주혁명이니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니 독재정부 타도니 하는 선동적인 언어들 자체가 지금의 내 처지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아득한 기억 저편의 남의 일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가하면 ‘짜르를 닮고 싶어 안달이 난 자아도취 살인마 푸틴’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규탄하고, 뙤놈(?)의 전형적인 음흉한 모순성 속에서 지구사령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시진핑의 공산정권을 죠지 오웰이 쓴 <1984 왕국>의 전형이라고 여겨 중국여행 조차도 사는 동안에는 포기해 버릴 정도로 오만하고 위선덩어리의 ‘중화사상’을 혐오하는 사람으로서도 그렇고, 북한의 국민은 우리 동포이겠으나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통치 집단 권력자들은 반듯이 응징하고 근절해야 한다는 확실한 주적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케케묵은 과거 군사정부 시대의 흑백논리에 입각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반공주의자로 내몰리는 것도 절대로 억울할........ 지극히 평범하고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건강한 삶을 소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픈 이제는 제법 나이가 넘쳐나는 일개 힘 빠진 소시민이라고 나를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자유대한민국의 평화애호가일 뿐이다.
하여, 그저 일상적인 평범한 여행기를 적어도 이번에는 쓰지 않겠다고 전제를 했던 만큼, 베트남을 좀 더 소상하게 알리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난 역사를 살펴보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공산당)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민주주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반대 개념으로서 사회주의를 쉽게 떠올리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이 다른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가 상호간에 작용하는 것인지, 나아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란 어떻게 다르고 구분할 수 있는지 까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운동권이었던 아니던, 경제학이나 사회학 공부를 했든지 아니던지 간에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인 것만은 결코 아닌 것이다.
하여, 다소 벅차기도 하고 어려운 과제가 되겠지만 20대에 한동안 심취했던, 당시 군사정부가 금서로 지정했던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을 토대로 기왕 제기된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서 재론해 보고, 그 안에서 벌어진 공산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거론해 볼까 한다.
그럼 먼저...... 시작 부분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기로 하자.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만큼 소득을 얻는다.”라는 표현은 누구라도 그것이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자의 신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그 말은 바로 사회주의자들의 모토(신조)였다.
프랑스의 푸리에와 생시몽, 그리고 영국의 오언이 주장한 사회주의 사상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모토가 곧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사회주의 모토로 이론화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잠시 동안만 생각에 잠겨 보기로 하자.
제기된 모토를 중심에 놓고 이리저리 또는 위 아래로 촘촘하고도 세세하게 살펴보자. 그러고 나서 그 모토에다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교대로 대비시켜 보자. 혼돈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평안으로 잠잠해 지는가?
이 모토를 기준에 놓고 파악해 보자면...... 도대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본주의 논리에 부합되는 이 모토가 정적의 개념인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방향이었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하나 같이 동등하고 똑같은 생각과 이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시절에 나에게 있어서 한동안 그토록 풀리지 않던 커다란 숙제였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오랜 역사동안 베트남은 흡사 우리 한반도 역사처럼 거대중국의 절대적 영향력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남월(南越) 이라고 불렀다. 고개 넘어 먼 남쪽의 지역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중국문화권 내에 이름이 같은 소수부족 남월이 분명히 존재해 있자, 그때부터 중국은 이들의 이름을 순서를 바꿔 남월(南越)에서 월남(越南)으로 강제로 바꾸게 했다. 중국 역사속의 남월과 변방의 오랑캐족 월남을 확실하게 구분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로 프랑스가 침략하여 수도를 사이공으로 삼아 식민지화 했을 때, 베트남의 공식적인 명칭이 월남으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북부지역의 호지명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 사회주의 연맹)이 세력을 확장하여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양분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북부는 베트남 공산당이 지휘하는 사회주의 연맹 공화국을 줄여서 (월맹) 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중부 이남의 지역은 프랑스가 식민지 정책에 따라 내세운 허수아비 민주정부가 주도하는 (월남)으로 구분되어 불려 지기 시작했다. 소련의 남하를 막고 세계장악에 나선 미국이 참전하는 월남 전쟁은 끝내 북군인 (월맹)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쟁에 승리한 베트남 공산당은 국호를 (베트남)으로, 수도를 북부의 하노이로 정하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은 지금 분명 공산당 일당제도 속에서 중국의 정치사회체계를 그대로 답습하려 노력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작은 중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산정부를 완성한 베트남 공산당은 이념과 체재를 달리하던 남부지역을 포함하는 명실상부한 통일공화국을 계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지역적으로, 혹은 태생적으로 남부 사람들과 북부 사람들은 여전히 편이 갈리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승리자인 월맹 출신의 집권자들은 패배자이자 도태되어야 할 숙청의 대상인 남부지역(사이공 중심의 파벌들) 세력을 근절시키기 위하여, 남부의 중심지였던 사이공(남부 수도)의 이름을 독립의 영웅이자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胡志明)의 이름으로 바꾸어 역사적 정통성과 대중적인 반감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베트남에서 호치민이라는 이름은 거의 절대적 신성을 간직한 고유명사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남부 수도의 이름을 바꾼 이후로, 대도시의 새로운 도로 건설이 이루어져 ‘호치민로’로 불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건 호치민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할 수 없다. 호치민의 이름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곧 베트남을 파괴하는 행위와 동급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이 가혹한 처벌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정작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사이공에 대한 진한 향수와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호치민이 들어가는 표현 못지않게 ‘사이공 공항’이나 ‘사이공 시내’라는 표현이 비일비재 하고 택시기사들 중에는 부러 그렇게 불러 달라는 사람도 있다. 사이공 맥주가 유명하고 거리의 상점 간판들 중에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사이공이란 단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지역감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베트남에서 저들끼리의 지역감정과 드러나는 문제들을 지켜보는 입장 또한 썩 유쾌하지는 못하다.
하긴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루프 탑 수영장에서 열심히 노느라 체력이 어느 정도 방전되었다 싶어졌을 무렵 손녀 민주가 슬며시 다가와 한마디 던진다.
‘할아버지. 요 아래 길모퉁이에 우동집 보셨어요? 사람들이 줄을 섰던데요. 유명한 집인가 봐요?’
손녀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할아버지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이란 달리 특별히 없다.
‘그래?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 뭐.’
후다닥 가족들을 몰고서 우동 집으로 향한다. 2층까지가 매장인데 정말로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매번 지나다니는 스타벅스 커피숖과 너무 대조를 이룬다. 우리고장 충주에는 몇 군데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는데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호암지에 위치한 매장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매번 ‘스타 커피가 정말 저렇게 좋은가? 난 잘 모르겠던데?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까지 테이크 아웃을 해 가면 맛이 덜해질 것 같은데.......’ 라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쩔씨구?
호치민의 반탄 시장과 여행자거리 사이에 교차로에 있는 스타벅스는 도통 드나드는 사람을 좀 체로 보기가 힘들다. ‘이건 또 무슨 경우지’ 도심 여기저기에 있는 콩 카페나 하일랜드 커피점에는 지금은 현지인들로 가득하지만, 예전에 보면 여행자들로도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베트남과 이탈리아의 스타벅스는 한산하다. 아니지 한산하다 못해 적막해 보일 정도다. 아마도...... 베트남의 스타벅스는 좀 더 코로나 사태가 풀려서 한국여행객들이 몰려와야만 활성화되는 것은 아닐까? 한국과는 커피문화 자체가 전혀 다른 독특한 경우가 바로 이탈리아와 베트남이다. 내가 스타벅스라고는 터키 이스탄불의 베벡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 매장’ 으로 꼽히는 곳에서만 두 번이 전부다. 이때 까지는 말이다.
스타벅스와 정반대 모습인 우동 매장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일본 정통방식이라는 우동을 여러 가지로 시켜서 먹어보았다.
그 맛 평가는 굳이 이 자리에서 더 하고픈 생각이 없다.(왜?) (글쎄?)
주문한 것 다 먹고 나오긴 나왔는데....... 뭔가가 밍밍하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런 어처구니가........
어쩌겠어?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숙소에 올라가 외출준비를 마치고 호텔 로비를 막 나서던 씩씩한 우리의 챠밍여사 이자 태리 세리의 할머니께서는 저만큼 성큼성큼 앞서 나가시더니, 길가 횡단보도 앞의 노점 리어카에 다가가더니만........ ‘반미. 반미 투(two)’를 외친다. 그러면서 ‘배낭에 맥주는 담아왔겠지?’ 하며 우리를 힐끗 돌아보더니만, 다시 휙 하고 고개를 돌려 '아줌마, 고수는 넣지말고..... 고추도 빼고.......' 대충 한국말에다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설명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렁뚱땅 주문은 이루어진다. 참 신통방통하다.
호치민의 도심에는 곳곳에 공원과 숲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품종으로 보여 지지만, 고온다습한 열대의 기후 속에서 이들 수목들은 가히 까마득하게 하늘을 올려다 볼 정도로 쑥쑥 자란다. 눈보라 몰아치는 추운 겨울이 없지, 거기에다 하루에 한번 정도는 스콜이 지나가니 가뭄을 모르지...... 정말 부럽다. 그 숲속 공원을 거니는 현지인들 속에 파묻혀 걷다보면 군중무용으로 체조를 하는 사람들과 댄스파티를 만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역시나...... k-pop 음악을 틀어놓고 단체 춤을 연습하는 젊은이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숲을 벗어나면 그야말로 비닐하우스 속에서 상추 수확하는 노동자의 기분이 순간처럼 팍 하고 현실이 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무덥다 싶어지면 무조건 옥상으로 올라가 하루에도 몇 번씩 풀장에 풍덩 하고 몸을 던진다.
다시 저녁은 되었고, 깊고 독특한 베트남만의 향신료와 현지 음식에 적응을 못하는 손녀를 보자니 할아버지로서 안타깝고....... 적어도 호치민시에서는 크게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식 건물을 개조해서 온갖 덩굴식물로 장식한 냐항 응온은 두 군데 매장이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한곳이다. 메뉴판에 사진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을 두루두루 주문했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대중적인 베트남 음식들이다. 스테이크만 손녀의 취향에 맞는다. 유명함 때문인지 손님이 무척이나 많고 스텝들이 여럿 있어도 마냥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한국에서의 4인 외식비용만큼을 지불하고 나섰는데...... 절대로 흡족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왜지?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이날 저녁식사 사진을 전혀 찍지 못 했는데..... 내 머릿속에는 온통 오늘 오후에 잠시 떨어져서 혼자 공원산책을 하던 중 길거리 노점에서 목욕탕 앉은뱅이 빨간 의자에 앉아서 먹었던 길거리표 쌀국수 (퍼보) 생각뿐이다. 시간만 늦지 않았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 한 그릇 뚝딱 해치웠을 텐데 말이다.
쌀국수는 길거리표가 진국이다. (퍼보)는 소고기 육수에 고명으로 소고기가 올라오고, (퍼가)는 닭고기 육수에 고명으로 잘게 뜯은 닭고기가 올라온다. 또.먹.고.시.포.
우리는 내일을 위해 침대에 들었는데...... 조카와 손녀는 심야에 또 옥상에 올라가 수영장을 독채로 전세내고 야간 물놀이를 실컷 즐겼다고 한다. 하여간 젊다는 건 좋은 것이여!
새아침이 밝아오면 또 나는 언제나처럼 카메라 하나 달랑 둘러메고 길거리로 나설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어떤 성스러운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또 언제나 처럼 말이다.
20세기 현대에 들어서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요구되고, 국가들 간의 미묘하면서도 대단히 복잡한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거대한 실험의 장이었다. 역사 정치 군사 학자들조차도 두 차례의 전쟁을 간단하게 정의 내리거나 쉽게 설명하지 못하기 일쑤다. 그만큼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고 문명사조와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나타났으며, 민족 종교 언어 생활풍습을 달리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적응하고 자신들에게 이롭게 다가가려는 생각과 움직임들이 모두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이 바로 (제로섬) 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말은 1971년에서야 겨우 등장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혼돈이 지배하던 아비규환의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가진 아주 오래된 낡은 메모장에는(어려서부터 나는 노트건 일기장이건 낙서장이던 백지이던 아무데나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분명 엉망인 글씨체로 보아 내가 적어 놓은 메모가 분명한데, 어느 책에서 인용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일찌감치 해외 식민지 개척에 나서 크게 성공을 거둔 선발 제국주의(영국)와 거기에 기대어 국운을 유지하려는 진영과, 식민지 획득에 실패한 후발 제국주의(독일)와 동맹이익을 노리는 진영이 맞붙은 하나의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1차 전쟁에서 패망한 후발제국주의(독일) 진영이 파시즘이라는 신무기로 당당히 재무장을 마치고 절치부심 또다시 세계재패에 나섰다가 또다시 실패한 전쟁이다.’
두 번에 걸친 인류차원의 실험과 진통의 결과로, 이후로 지구상에는 더 이상 무력을 앞세워 마구잡이식으로 남의 땅을 식민지로 삼을만한 ‘주인 없는 땅’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경제적인 용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고전 자본주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라고 정의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경제학 강의 시간에 당시에는 강사의 신분이었던 유학파 젊은 교수님이 이런 강의를 우리에게 해주신 적이 있다.
‘이제까지의 제국주의는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서 무조건적으로 약소국의 영토를 빼앗아 차지하는 것으로 제국을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2차 대전의 결과로 이제는 더 이상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빼앗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존 애덤스의 주장에 따르면 새로운 방식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는 제국주의 행태는 계속될 수 있다고 예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돈(달러) 이다. 새로운 강대국은 군사력이 아니라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목표로 한 상대약소국에 무한정의 빚을 내어 준 다음에 그 채무상환 능력을 빌미로 경제력을 먼저 빼앗고, 이어서 정치력과 그 나라의 국운마저도 빼앗는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 하게 될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머지않아 초강대국들이 거대한 자본을 가진 은행들을 앞세워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을 다시 벌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라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명강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는 한참 진행형이다.
그런가 하면...... 과연 구시대적인 제국주의는 사라졌느냐? 아니다. 푸틴 정권의 조지아 침공, 크림반도 점령, 우크라이나 침략이 여전히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등도 보기에 따라서는 여전히 제국주의적 침략전쟁 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동서냉전에서 보았듯이 대등한 세력 간에는 절대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동서냉전을 지구가 종말을 향해 질주하는 세기말적인 핵전쟁으로 모두가 생각했지만, 소규모 대리전이나 심심하면 벌이는 대치뿐인 냉냉한(COOL) 초강대국이자 거대한 제국인 미국과 소련의 허풍뿐이었다. 미국 정치가들의 마음속에는 ‘절대로 막상막하일 싸움은 벌이지 않는다. 핵을 가진 국가와는 절대로 전쟁하지 않는다. 공멸일 뿐이다.’라는 확실한 주관이 엿보인다. 적어도 이제까지의 모든 분쟁에 대처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 말이다.
여전히 21세기에도 지구상에는 형태를 달리하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만연하고 있다. 버젓이 말이다.
어쩌면 인류는 영원히 스스로가 파놓은 (제로섬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 할 것만 같다. 여기에는 그 어떤 신(神; 혹은 종교)이라 해도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개선의 의지가 담긴 비전이 제시된다고 해도....... 이미 오만과 방종과 자유분방함에만 물들고 찌든 인류를 한자리에 모으고 집중시키고 뜻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지구가 소멸되었다가 다시 탄생하는 과정보다도 훨씬 힘들고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각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현대의 인류가 무척이나 가엽게 느껴진다. 살만큼 산 우리는 별로 아쉬운 게 없지 않을까?
우리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간직한 손녀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뿐이다. 아멘.
이른 새벽, 채 어스름한 도로를 따라 나선 산책길에 길모퉁이 노천카페의 빨간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소 어색한 듯 어정쩡한 미소를 건네 오는 아주머니에게 카페 농(Ca Phe Nong)을 한 잔 주문한다.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냥 ‘아메리카노. 핫 아메리카노 플리이스’라고 하면 어떻게든 의사는 전달되고 주문은 이루어진다.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시는 베트남식 모닝커피는 정말로 기가 막힌 맛이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대중적인 커피 맛이 스타벅스 커피라면, 나는 베트남 전역에 퍼져있는 길거리 커피의 이름을 파라다이스벅스라 부르겠으며, 내가 아는 한 세상 최고의 맛이라 하겠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수시로 도전하게 되는 터키식 커피는 그야말로 ‘막가파식 에스페레소의 진수’라 할 만하지만 도저히 쉽게 친해질 것 같지가 않다.
무덥다 못해 푹푹 찌는 것 같은 베트남의 날씨를 견디려면 수시로 연유가 듬뿍 들어가 매우 달달한 아이스 밀크커피 카페 쓰어다(Ca Phe Sua Da)를 입에 달고 살아야 보다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이 독특한 베트남 커피의 특징과 맛의 뿌리를 추적하던 중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만 절망적인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 나는 베트남식 커피의 애호가이자 열렬한 팬이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베트남 커피의 특징과 맛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생산 대국이다. 전 세계 커피생산량의 약 20% 정도를 담당한다. 그런 베트남이 아이러니 하게도 매년 베트남에서 사용되는 커피소비량의 40% 정도에 가까운 원두를 수입해서 사용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좋단 말인가? 이유는 로스팅 기술(커피 생두 가공기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라 한다. 실소가 터져 나온다. 무연탄을 수출하는 나라가 다시 완성된 연탄의 형태로 절대적인 양을 다시 수입한다면 말이다.
왜 로스팅 기술 확보에 매달리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베트남식 길거리표 커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로스팅 기술이 한참이나 떨어진 현지 로컬 방식으로 로스팅된 커피일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까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로스팅된 수입산 원두와의 가격 격차가 엄청날진대 길거리에서 수입가공 원두를 쓸 일이 희박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가......... 헐.
그럼에도 말이다. 베트남 로컬방식의 커피는 정말로 매력적이다. 기가 막히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라. 이것이 한국 땅에서라면 식품위생법의 강력한 제재 때문에라도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할.렐.루.야.
사유재산(私有財産)과 이윤(利潤)의 추구가 제도적으로 인정되며, 그러한 전 과정이 시장(市場)의 고유기능(매카니즘)에 의해서 생산과 분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회를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라고 한다.
누구나 익히 다 아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자본주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일상 속에서 충분하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를 정의내리고 설명하는 것을 대단히 곤혹스럽게 느끼곤 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사유재산의 의미, 이윤의 추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시장이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고, 집단 거주를 시작하고, 농경생활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미 보편적 성격의 사유재산 개념은 시작되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물물교환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장소를 시장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 또한 보편적 개념의 지극히 원초적 성격의 단순한 시장형태를 가리킨다. 인구밀집현상의 발생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단순한 물물교환을 뛰어넘어 좀 더 적극적 성격의 시장으로 확장되고, 이 시장을 통해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형태의 새로운 상업 활동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활동에서 이윤추구가 발생한 것이다. 새로운 개념의 시장에서의 상거래와 그 거래에서 파생되는 이윤추구가 바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라 하겠다.
다시 표현하자면, 물건을 싼 값에 사서 비싼 값에 되팔아 이윤을 얻고자 하는 행위를 (상업 자본주의)라 하고, 물건을 싸게 생산해서 비싼 값에 내다 파는 행위를 (산업 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기계 산업의 발달과 증기기관을 통한 선박운항과 철도와 자동차의 등장과 도로망 확충이 원만한 원자재의 확보와 운송으로 발전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상품의 생산량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가내수공업 방식의 소량 생산된 물건을 겨우 물물교환 하던 형태의 시장이 점차 도시간의 거래를 넘어 국가 간의 거래를 통한 구제무역 시장의 역할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이제까지의 원칙과 가치기준과 생활방식을 순식간에 모두 바꾸어 버렸다. 바야흐로 대량생산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모든 상품은 생산수단(기계설비와 원자재)에다 노동생산력을 결합하여 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기계설비와 같은 원자재가 고르게 분배된다면, 결국 생산된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숙련된 노동력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결국 최고의 생산시설과 양질의 원자재를 확보한 자본가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 경쟁하듯 자본가는 뛰어난 기술의 노동력을 가진 사람과 고용 계약을 맺게 되고, 가급적 최적의 환경에서 정해진 시간에 의해 최고의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시작하였다. 노동자가 가진 노동력의 가치에다가 기술력의 가치가 더해지고 자본가가 투자한 부분만큼의 잉여가치가 더해져서 상품의 가격이 형성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이다. 애초 상품 생산을 계획할 때부터 시장을 염두에 두거나, 시장성을 적적하게 조절하는 것에서 안정적인 이윤추구가 가능해졌다. 이런 모든 것이 자본주의만의 특성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규모가 마냥 비대해지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쟁력을 갖추려다 보니 기술력 쟁탈전이 벌어졌고, 우수한 원자재의 선 도매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폭발적 수요 증가는 그 수요를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분별적인 상품 공급이 이루어지는 사태를 낳았으며, 하루아침에 수많은 자본가들의 도산과 파산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열된 무질서는 점차 무정부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고, 이는 또다시 주기적인 경제공황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시장의 무정부성은 자본주의의 성격마저도 바꾸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초기 자본주의자들은 나날이 급성장을 거듭하는 시장(市場)의 규모를 무한대까지 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수요가 발생하고, 수요가 발생하는 곳에는 반듯이 생산이 뒤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시장에는 언제까지고 아담 스미스가 말한 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힘을 가지고 적당한 가격을 형성한다.’라고 굳게 믿었다. 이것이 내가 학교에서 경제학 경영학 원론을 공부할 때까지의 정설이자 경제의 정의였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생활 경제가 나날이 발전해 가고 인구의 증가가 폭발적으로 뒤따르던 먼 과거의 시대 경제이론이 되고 말았다.
인구 증가가 점점 둔화되고 산업의 발전이 거듭되는 만큼보다 훨씬 더 많은 대량생산이 증가되면서, 결국 시장에서의 소화기능(수요의 급감)이 급격하게 상실되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본주의의 한계성이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되자 세계 경제는 끝을 알 수 없는 공멸의 광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발 빠른 거대자본가들은 시장 고유의 자유경쟁을 포기하는 대신에 강대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로비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독재자나 부패한 정치권력이나 몰락 직전의 국가를 대상으로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거대자본이 택한 것은 자유 시장경제가 아니라 독점을 통한 매점매석을 통한 극한의 이윤추구였다. 자본가를 대신해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제국주의 탄생이었다.
국가주도의 과열된 시장개척은 곧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과거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그 형태만을 달리한 새로운 경제적 침략전쟁이 된 것이다.
세계는 이제 거대 자본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초강대국 제국주의 국가와 경제 식민지 국가이거나 제국에 속한 종속국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에다가 복귀한 독일 등이 새로운 제국일 수 있고, 아니면 미국. 중국. EU(유럽 연합) 에다가 새롭게 러시아를 제국으로 분류 할 수 있겠다. 그들을 우선적으로 먼저 머리에 올려두고 나면 누구누구가 식민 국가이고, 또 누구누구가 그들에게 속한 종속국가인지도 구별이 가능해 질 것이다.
그럼 이런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에 속할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영국. 프랑스. 인도. 호주. 브라질 등의 국가에다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일본 정도는 위의 세 가지 분류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부류의 자주적 국가라 하겠는데..... 과연 한국은 어떤 처지일까?
세계의 모든 정부는 입을 모아 자신들의 국가나 정부가 지금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세계화 전략에 돌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세계화 전략은 이 순간 과연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묘한 여운처럼 알싸하게 남아있는 글귀가 있다.
‘경제에는 국경이 있지만, 자본에는 국경이 결코 없다.’ 라는 문구이다.
어쩌면 (글로벌 경제) 또는 (다국적 금융기업) 들과 다분히 연관되어지는 현실적인 혹은 다소 미래적인 문제일 것이다. 경제적 제국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나 정치권력 집단이나 일부의 자본가들은 은연중에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꼭 그만큼만의 ‘민족주의’를 부추기곤 한다. ‘민족주의’는 긍정적인 면으로는 한 국가 혹은 한 민족 단위의 대단히 중요한 가치관이자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성스러워야 할 공동체적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해외여행 중에 태극기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어떤 자긍심이 솟아나고 조국의 소중함이 어떤 애국심으로 전환되면서 가슴 깊이 새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내 경우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고국을 떠나보면 누구나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 라고 했던 선배의 오래 전 말씀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가슴과 핏줄 속에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민족주의’에 대한 애착이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
그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 민족주의 정신을 가끔씩 부당한 정치권력이나 탐욕스런 정치가나 이질적인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정책과 사업에 아주 교묘하게 대입시키면서 부추기는 경우들이 종 종 있고는 한다. 자신들의 정치적 사업적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애국심은 물론 조상이라도 충분히 팔아넘길 부류들이다.
서기 2000년 밀레니엄을 계기로 나는 국가와 기업을 지켜보고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우리의 손녀들이 살아갈 미래 시대에 대해서 나름 작게나마 고심하는 시간들을 가져보고는 한다. 헌데 묘하게도 밀레니엄을 계기로 그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렸다. 이전에는 우리 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굳건하게 위상을 높여가는 국가가 우선이었고, 세계에 경제적 기반을 단단히 하는 기업이 다음 순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정신을 담고 있고 기업정신이 튼실한 정정당당한 기업이 우선이고, 매번 분란과 정치적 퇴보를 반복하는 국가가 다음 순위로 밀려났다.
한 때는 대한민국의 기업관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지만, 나름 그런 기업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부를 좀 하다 보니, 지금은 몇 몇 기업에 대해서 호감을 넘어 대한민국의 품격 이상으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해외 공항이나 도심 한복판에서 삼성의 로고가 생긴 광고판을 보면 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삼성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기업이며 내가 같은 대한민국인’ 이라는 품세로 어깨를 저절로 들썩거리게 된다.
해외의 호텔에 머물 때마다 설치되어 있는 벽걸이 TV와, 창문을 열었을 때 놓여있는 에어컨 실외기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LG 마크를 볼 때마다, 대한민국의 새로워진 위상이 나의 잠자리를 지켜줄 것만 같은 안도감에 편안한 휴식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귀국하고 나면 연일 뉴스에서 정치 불안과 대기업의 부정적인 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이유로 나는 참으로 이상한(?) 생각을 가끔씩 하곤 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여론이나 국가의 다소 편향적인 제재나 단속이 이상하게도 정권마다 완전히 뒤바뀌곤 한다. 통수권자나 집권정당의 특정 대기업 길들이기라는 설도 난무하고, 심지어는 기업해체설이 나돌기도 한다. 과거 정치경제사에서 적어도 나는 김우중의 대우기업이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는 과정을 실제로 목격하고 체험해 본 사람이다.
짧은 시간에 세상은 무섭게 변했다.
자유 시장경제의 논리를 떠받들던 평범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새로운 제국주의식 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거대자본의 금융시장이 지금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 한 기업의 흥망이 이제는 한 국가의 존립을 좌우할 수 있는 지경의 새로운 세상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대한민국 안에서만은 집권 정치세력과 기업과의 불완전한 공생관계가 과거나 현재나 어쩌면 먼 미래까지도 영 달라질 싹수조차 보이질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정권의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박정희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항상 공과 과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다. 정권이 바뀌는 때마다 딱 고만큼씩의 차이고 늘 따라다닐 뿐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사를 논할 때마다 늘 그 중심에 삼성이라는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 극단의 공과 과가 심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다. 작은 지분으로 거대기업의 지배력을 가지고 황제처럼 군림하며 여러 가지 국내 경제문제의 폐단을 야기 시킨다는 지적도 늘 따라붙는다. 하지만 삼성의 기술력이 애플을 앞질렀다든지 삼성의 기업가치가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을 드높였다는 등의 해외 평가에 대해서는 그저 모르는 척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하여, 혹시나 내가 해외여행 중에 삼성그룹 안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연처럼 호프집 정도에서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지나는 말로 충고를 해주고픈 말도 있다.
‘글로벌 경제를 논하는 마당에 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 굳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대한민국 이라는 영역 안에만 얽매여 있을 필요가 꼭 있겠는가?’ 하고 물어보고 싶다. 왜 대한민국을 탈출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삼성은 어마어마한 자산을 보유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이다. 그들이 가진 유형 무형의 자산 가치를 한 순간에 평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대한민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삼성은 대한민국의 것이야. 대한민국의 재산인 것이야.’ 라는 확실성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제 글로벌 기업이다. 삼성이 대한민국 안에서 상품을 만들어서 대한민국 안에서 주로 판매 소비하고 있다면..... 그때는 삼성은 분명 대한민국의 것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탄생한 기업이지만 국내 시장을 뛰어넘어 이미 절대적인 상당부분의 원재료를 외국에서 가져다가 외국의 기술력에 의해서 생산하고, 다시 그것을 세계 도처에 판매하면서 이룩한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라면 이제는 적어도, 세계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인류적 차원의 발전과 번영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애국심에 기대어 대한민국의 실정과 정치적 안배에 따라 기업의 사운이 흔들리는 소기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삼성의 경영진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마인드가 이미 정착된 듯 보이는데, 대한민국의 정치집단과 권력자들은 여전히 민족주의나 애국심을 빌미로 이 세계적인 거대기업을 길들이려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탐.대.실.
삼성의 거대 자산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다.
대충 일례로 삼성의 보유자산을 100조원쯤이라고 가정해 볼 때(유형의 재산만을 가지고)....... 예를 들어 대한민국 영토에 배치된 연구실과 생산시설과 중앙지휘 센터 빌딩을 종합해 한 35조쯤이라 가상하고, 베트남이 10조요, 미국에 지금 생산 시설 확충으로 매입한 토지를 비롯해 약 43조쯤 배치되었고, 그 외에 세계 각국에 골고루 판매망과 물류센터 등에 나머지 재산이 분배되어 있다고 치자. 그 재산 모두가 대한민국의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기실은 그 자산의 대부분이 투자자인 해외자본의 몫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삼성 기업의 오랜 특수성이 창업가문의 비록 소자본의 비율로 절대적 기업 지배를 이어온 전통을 기반으로 해서 하는 가정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특별한 대한민국의 정치적 특수성이 계속적으로 삼성 기업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게 된다면........
나는 삼성의 최고 경영자가 슬며시 해외로 떠나는 것을 전혀 탓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룹 최고 운영본부는 그대로 서울에 두고 최고 경영진들이 하나 둘 해외로 떠나는 것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임시 상황대책본부라고 설치해 놓고, 실제적으로는 최고 경영진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서 거대 글로벌 기업 삼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가족들도 하나 둘 모셔가고, 그 정도 자금력과 경영 능력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라도 기꺼이 환영하고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내어 줄 것이다. 뒤늦게 세제 문제나 여러 가지 사안을 들어 정치세력이 삼성의 경영진을 국내로 불러들이려 한다 해도, 이미 어느 정도 방비책을 마련한 이중 국적 이상의 국제적 거물들을 송환하기에는 넘어야 할 국제법상 제약이 시로 엄청날 것이다.
삼성의 국내 운영자가 국가 시책에 순응하고 내라는 세금 또박또박 내면서 능력 있는 국제변호인단을 앞세운다면, 지난 시절의 군사 독재정부라 해도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정도까지의 상황을 전개시킨 다음에, 어느 시점에서 현 최고 경영자가 손을 떼고 일선에서 물러나 버린다면, 어쩌면 삼성이란 브랜드 가치는 쪼개지고 나뉘어져서 그 뿌리나 모기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되어 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 국가적 장벽이 갖는 의미는 대부분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수교국을 여행하거나 국제관계가 모호한 지역에서 위험에 빠졌다고 가정해 보자. 대론 국력이 미치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험준한 국제 경쟁력을 헤쳐나오던 기업의 해외업무 종사자들의 도움과 헌신이 훨씬 유용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다는 놀라운 사실이 바로 현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개 기업의 파생력이 국가를 훨씬 초월하기도 하는 세상인 것이다.
‘설마 그분께서...... 그런 생각까지 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라고 나는 마지막에 묻고 싶다.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를 일상복처럼 입고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더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세계 각국의 나라마다 입고 있는 일상복이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어떤 일상복을 입고 살아가느냐는........ 국가. 기업. 그리고 우리들........ 이렇게 삼박자에 의해서 결정 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지금 당장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지금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19세기 말쯤이 되면 이제 세상은 어느 정도 서구 열강들에 의해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정치적 또는 경제적 기준의 세계분할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니언 잭(영국 국기)을 휘날리며 대영제국의 무적함대가 세계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코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표방하면서 제국주의 행태의 전형적인 식민지 확대정책을 펼쳐나갔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 타운(Cape Town)과 이집트의 카이로(Cairo)와 인도의 캘커타(Calcutta)를 연결하는 거대한 식민지 왕국 건설을 위한 ‘3C 정책’을 밀고 나갔다. 남아프리카 공황국의 황금과 다이아몬드, 값싼 노동력 착취로 거의 거저 얻다시피 인도에서 세계 최대의 목화 생산량을 고스란히 영국 맨체스터 지방의 방직공장으로 보내 방직산업을 통한 부를 축적했다. 이를 바다를 통해 운송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스에즈 운하가 실로 어마어마한 경쟁력과 이윤을 챙겨 주었다. 세상은 온통 대영제국을 위한 독점 시장이었던 셈이다.
그러자 이 경쟁에 한참이나 늦었지만 결국 독일이 뛰어 들었다.
새롭게 제국으로 급성장한 독일은 수도 베를린(Berlin)에서 비잔티움(Byzantium, 현재 이스탄불)과 바그다드(Baghdad)를 연결하는 ‘3B 정책’으로 맞대응을 시도했다. 종주국(영국. 독일)과 종주국이 점령한 식민지들과, 종주국에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들러리 국가들로 경계선이 그어지고 경쟁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이들보다 더 늦게야 식민지 쟁탈전의 달콤한 열매에 취한 프랑스가 달려들어 마침내 인도차이나 지역을 식민지화 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마침내, 시베리아의 거대한 북극곰도 영원한 국가적 숙제였던 따뜻한 남쪽에 얼지 않는 항구를 하나쯤은 가져야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남쪽을 향해 슬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영국이 모두 차지한 식민지에 독일이 슬금슬금 영역을 침범하더니 이제는 드러내 놓고 내 몫을 나누어 주든지 한바탕 전쟁을 벌이든지 결판을 짓자고 덤벼드는 통에, 프랑스가 슬쩍 이들의 관심이 적었던 지역을 날름 점령해 버리고는 ‘나는 요기까지만’ 이라고 발뺌하며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상황에 하필이면 영국과 독일이 한참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지역을 향해 북극곰(러시아)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복잡한 상황들이 얽히고 섥혀 마침내 폭발된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 이다. 과하게 욕심이 지나쳤던 독일은 패망했고, 뒤늦게 연합군에 합세하는 척만 했던 러시아는 승전국으로 국제사회에 위용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뻔한 결과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러시아가 연합군에 참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오랜 역사적 숙적관계) 터키는 전쟁의 끝자락에서 느닷없이 독일을 지원한다면서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패전국으로 전락해 실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이 전쟁 덕분으로 세계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등장시키고 말았다. 독립을 쟁취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못했던 바다 저편의 대륙에서 새로운 강자 미국이 성조기를 흔들면서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초강대국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불쑥 나타난 이 새로운 제국은 영국도 독일도 프랑스도 러시아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오로지 민주주의와 새로운 이념의 자본주의로 완성된 팍스 아메리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영토는 몇 몇의 강대국들이 분할해서 차지하고 관리하는 영역으로 분배 배치되었다. 강대국들은 이제 부문별한 분쟁과 과열경쟁을 자제하고, 자신들이 차지한 영역에서 국가차원의 실리를 취하면서 평화와 번영과 행복이 마냥 자신들만의 것으로 지속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마냥 평온해 보이는 제국주의 형태의 자본주의를 지켜보면서 콧방귀를 꾸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강대국들끼리 움켜쥐고 합의한다고 해서 시장이 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달콤함에만 점 점 취하다보면 누군가는 먼저 자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 자제력의 상실은 시장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필연이지. 저들이 언제까지 시장의 통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저들로서는 불가능해, 결론적으로 지금의 자본주의에는 지금 이상의 어떤 보다 강력한 통제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롭고 강력한 통제력..........’
파리 시내의 어느 후미진 카페의 창가에 앉아서 창문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빼앗고 빼앗기고, 올라서고 쫓겨나고, 하여 저자거리에서 쫓겨 다니며 겨우 구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소시민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없이 눈물만 짖고 있던 중년의 사내는 또다시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놈들아. 파먹을 수 있는 땅이 언제까지고 무제한일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 파이는 이미 고정되어 있는 거야. 파이의 크기를 마음대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은 신(神)에게도 없다고....... 타락한 국가와 욕심뿐인 자본가들이 점 점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인다면 세상은 점차 지옥으로 변해갈 뿐이야. 최후의 싸움에 승리한 국가와 자본가만이 살아남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자유경쟁과 자유 시장경제는 기능을 잃고 죽어버린 것이란 말이다. 독점자본주의 시대는 세상 모두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뿐이야. 인류의 종말이라고.......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후의 방법뿐이라고...... 최후의 방법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는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키는 허름하고 삶에 지친 표정이 역력한 유대인 사내의 이름이 바로 마르크스(Karl Heinrich Max)였다. 세상은 그냥 그를 간편하게 ‘칼 막스’라고 부른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사회적 생산과 소유(이윤)의 사이에서 심각한 모순이 점점 커져만 가게 됨으로써 결국 자본주의는 붕괴된다고 마르크스는 예견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안정은 시대발전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 이론이 들어맞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예견했다. 자본가는 어떻게든 생산력을 늘리고 생산 단가를 낮추려고 혈안이 되었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자유 경쟁과 수요와 공급의 적정성이야말로 시장을 통한 자본주의의 핵심이었건만, 이윤추구에 점점 눈이 멀어가는 자본투자가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정상적인 시장의 기능은 장애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독점의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불안정한 시장일수록 단번에 커다란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생겨난 과도한 욕심이 스스로 자본주의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폐단에 물든 국가와 자본가들로서는 절대로 개혁을 이루어 낼 수가 없다. 그들로서는 몰락해가는 자본주의를 다시 예전으로 절대 되돌릴 수가 없다.
마르크스는 조만간 혁명이 불가피해 졌다고 확신했다.
병이 깊어져 이제는 사망 직전의 식물인간으로 전락해 버린 자본주의 방식의 시장경제를 다시 회생시킬 방법은 혁명을 통해 부패한 국가와 탐욕에 빠진 자본가가 아닌 새롭고도 보다 강력한 힘(통제수단)이 필요하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그 힘이 바로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 혹은 Communism)의 완성’ 이었다.
그런데 말씀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이럴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휘력과 표현력의 한계에 대하여 뼈저리게 아쉬움과 반성을 가지곤 한다.
자본주의의 한계성과 부작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으로 마르크스는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의 완성’을 제기했다. 그 결과로 레닌과 스탈린을 거치면서 인류역사는 현대사 속에서 ‘사회주의 실험’을 경험했고 그 결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생겨난 이유나 시작이나 과정까지는 세세하게 모른다 해도, 어찌되었건 그렇게 시작된 사회주의조차도 많은 단점과 한계성과 시행착오를 거쳐 종국엔 실패로 끝을 맺었다는 분명한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이 영상으로 뉴스를 통해 속속들이 전해졌고, 지금도 생생하게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애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창한 사회주의는 레닌과 스탈린이 실행에 옮긴 사회주의와는 사뭇 다른....... 무척이나 낭만이 가득한 인간적인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아름다운 공산주의 세상을 꿈꾸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도 배타적인 활동 영영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사회가 함께 모든 생산의 영역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하여,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 일은 저 일을 선택하여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 후에 문학비평 모임에 참석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누구나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라고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가 이런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 누구인들 열렬한 지지자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의 이념이나 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원의 복음인 것이다.
그야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양과 사자가 함께 뛰어노는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바로 거기가 아니겠는가? 그곳이 바로 지상낙원인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과연 그랬을까?
이 세상에 과연 그런 세상을 펼칠 수 있는 사상이나 주의나 혁명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구세주(救世主)가 아니겠는가?
아침산책 중에 호치민시의 가장 중간에 위치한 드넓은 광장(흡사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에서 아침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코리아. 코리아.’ ‘손홍민’ ‘박항서’를 연발한다.
지나가면서 한눈에 대충 딱 보기만 해도 내가 노년에 막 접어든 아직은 팽팽한 대한민국 멋쟁이의 표준임을 그네들도 모두 통감하는 듯(?) 했다. 암!!!!!!
꼭 열흘 전에 베트남의 U-22 축구대표팀이 하노이 국립경기장에서 숙적 태국과 동남아시안게임(SEA) 결승전을 벌여서 극적으로 1-0 승리를 하면서 우승했다고 한다. 2연패의 쾌거였다고 한다.
그날 이 광장은 물론이고 온 베트남 전체가 열광과 축제의 도가니에 풍덩 빠졌었다고 한다. 흡사했을 우리나라 2002년 월드컵 당시 광화문 응원이 떠오른다. 그날의 열기는 마치 한국이 숙적 일본을 이기고 승리한 분위기와 비슷했다고 한다.
아쉽다. 여행을 열흘만 앞당겨서 그날 이곳에서 저들과 함께 승리의 현장을 목격했더라면......... 저들과 함께 어울려서 밤새 승리의 축배를 들었을 텐데.......
사이공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공원에서 호치민 도심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한다. 감회가 새롭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과 도심의 고층건물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베트남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베트남의 미래가 무궁무진하며 희망에 차고 성실한 저들의 노력으로 머지않아 새롭게 번영하는 베트남의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네들에게 신의 가호가 언제나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숙소로 돌아오면서도 현지인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계속된다.
‘씬짜오!’ 라고 인사를 나누고, 저들 무리에 섞여서 진한 커피도 마시고, 쌀국수도 먹고(이번엔 닭고기 육수의 퍼 가) 반미도 두 개를 사서 호텔로 돌아온다.
오늘은 달랏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을 해결하자마자 조카와 손녀는 또다시 옥상 풀장으로 향하고......
출발 시간이 되어 우리는 짐을 꾸리고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우리가 묶었던 숙소는 반탄 시장 근처의 조비알 호텔(Joviale hotel) 이었는데 조금은 낡아 보였다. 주소를 먼저 검색하면 다른 호텔 이름이 뜨는 것으로 보아, 근자에 호텔을 인수하고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위치가 참 좋았고, 시설은 불편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루프 탑 풀장은 큰 즐거움이자 피로회복제였다. 가성비 우수하고, 무엇보다 매니저의 친절함과 배려가 가장 인상에 깊었다. 그들의 친절과 배려에 우리 여행의 시작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거듭 감사할 따름이다.
--- 다음 이야기는 (달랏으로의 여행)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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