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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참으로 오랫만에 함께하는 토요 나들이

by 피안재 2013. 12. 21.

 

 

 

 

 

 

 

 

 

 

 

 

 

 

 

 

 

 

 

 

 

 

 

 

 

   본래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이시간,  우리 가족은 동해의 망상오토캠프장에서 겨울여행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다.

   분명 망상오토캠핑장 예약싸이트엔 12월 21일 날짜에 내 이름으로 세개의 예약이 새겨져있었다.

   캐라밴 하나에는 셋째동생네 가족이

   캐라밴 또 하나에는  우리아들 짱구와 예비며느리가

   자동차캠프장엔 왕짜증여사와 내가

   아마도.........  이 시간쯤엔 아이들은 겨울바다를 휘젖고다니며 사진찍기와 모닥불을 피웠을 것이다.

   어른들이야 당연히 인근 묵호항에서 가져온 싱싱한 회와 조개를 안주삼아 송년가족만찬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두달전부터 계획하고 예약을 마친 가족여행이었는데.......

   20%의 페날티를 먹으며 예약취소를 하고마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11월 한달을 꼬박 금.토요일을 이용해 청주까지 오가며 공부에 매진한 왕짜증여사 덕분에 황금같은 가을시간을 고스란히 보내주고

   12월은 쌓인 피로와 밀린 살림살이와  여기에 겹쳐지는 나의 현장스케줄로 한달의 절반을 그냥 훌쩍보내버리고 말았기에 다욱 간절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날아온 아들의 불참 통보.

   작년에 크게다쳐 수술한 팔목에 박혀있던 핀을 제거해야하는 수술일정이 잡혔단다............. 헐. 하필이면.........

   18일 입원. 19일 수술.  22일 퇴원.

   거기에 엎친데덮친격으로 제수씨가 눈길에 넘어져 뼈가드러날 정도의 무릎부상을 당해 다섯바늘이나 꿰매는 사고 발생.

   뭘 어쩌겠는가?  취소해야지.

 

   18일에 아들 입원하고 엄마로부터 통행금지 통보가 왔다.

   '19일에 아빠가 쫓아올것 같으니 그럴필요 없다고 엄마가 꼭 막아달라고'  ㅎㅎ  영악한 이놈 아빠 속내를 훤히 들여다 본다.

   수술 잘받았다고 카톡만 주고받으며 19일은 통과.  금요일인 20일 저녁에 엄마와 함께 퇴근후 가보려는데........ 이번엔 아들이 엄마에게 통행금지 통보.

   --- 거 참. 요상하네?  이거 우리가 하나뿐인 아들 둔 부모 맞어?

   --- 이럴줄 알았으면 괜히 취소했잖아?  이게 뭐야.

 

 

 

 

 

 

 

 

                                      -- 얼굴에 여유 가득.  이넘 이거 환자 맞어?  병원이 아니라 휴양소 같어.  캠핑장보다 더 좋아보여. 헐- 

 

 

 

 

 

 

 

   -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니?  아들 수술하라 입원시켜놓고 캠핑가는 부모는 안됐잖아.

   - 칫.  우리 없어도 지가 다 알아서 한다구 버티는 놈을 그냥.......... 엄마 아빠를 오지도 못하게 하는 놈을..........

   그리고 다음으로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말.....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망상이나 갔을껄. 이눔한테 페널티 먹은 20%를 물어내라  통지를 할까?'

   하면서도...... 왕여사 표정을 살펴보니 시방 내 안색을 유심히 살피는 폼이 아무래도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것 같다.

   - 아무렴.  수술 잘끝난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부몬데.  ㅎㅎㅎㅎㅎ 어디 보통아들이냐?  병실에서도 아빠 옷사주라고 걱정하는 아들을........ 쩝쩝.

   - 그래 당신도 아네? 아들이 뭐랬는 줄 알어? 계산 신경쓰지말고 꼭 코롱스포츠에가서 그럴싸 한 패딩으로 사주랬어.  아빠 같이가면 틀립없이 다음날 물릴테니깐 엄마가 골라서 무조건 갖다드리고 나물라라 하랬어.

   - 난 안한다니까?   나 옷이 넘치잖아.

   - 아들 보기에 안되어보이나보지.  옛날에 그 잘나간다고 혼자 폼재고 다니던 아빠에 비교해서 안되보였나보지. 아들 눈엔.

   - 아들이 몰라서 그래.  내가 이래도 옷매무새 바로하고 길 나서면 아직 먹힌다니까?

   - 아이고 잉간아.  먹히긴 뭘 먹혀?  나이 생각해라.  죄다 망가져가지고.......  하이고....... 아들이니까 그나마 걱정이라도 하지....... 잡다한 브랜드는 절대 안된단다.  최고 좋은것으로 하랜다. 아들이.

   - 아빠 다시 꾸며놓으면 뇨자들 손탄서 안된다 그래.  또 훨훨 어디로 날아간다니까?

   - 하이고.  자기가 맨날 청춘인줄 알아요.  어디 해봐.  아들이 사준 옷입고 어디든지 한 번 날아가봐. 훨훨.  그러면 아들이 뭐랄까?

   - 아들이 뭘 뭐라그래?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 그래겠지. 안가.  난 아들 두고는 아무데도 안가. 그놈한테 불량아빠 소리 이제 안들어.

   - 그러니까 아들이 며칠을 두고 사준다 사준다 하는데 받어서 입어?

   - 내가 이제껏 잘한것이 하나도 없고......... 아니지 있지. 잘난 그넘 맹근거........ 암튼 지금의 요모양인데.  내가 폼이나 재고 옷이나 챙겨입으려 하면 아들 눈에 어떻게 보이겠냐?  내가 시방 그넘 눈에 안벗어나 보이려고 일부러 초췌한 듯 오로지 일만 생각하는 듯 하고 있는거야. 노력하는 모습 보여주려고.  너도 알지?  그게 다야.  그러니까......... 아참.  아들이 정히 그려면.......... 옷 대신 캠핑장비 바꿔주라 그러면 안될까?

   - 불가.  아들이 절대로 그렇게는 안할껄?

   - 맞어.  그렇게는 절대로 안할거여 그놈이.

   - 일단은 아들한테 그렇게 말해 놨어.  아빠가 지금 살 빼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라,  조금 있다가 살 빠지면 그 체형에 맞는 옷으로 사달랜다고...........

   - 나이스.  잘 했어.  베리  베리 굿.

   - 그런데.  아들은 시간 재면서 옷값 계산할 날짜 꼽고 있을텐데, 살이 빠지는 날이 언제야?

   - 아 차차차. 그러고도 남을 놈인데......... 시간을 좀 벌어봐야지. ㅋㅋㅋㅋ 하여간 세상에서 젤 무서운 놈이야. 그놈이.

   - 당신을 빼다 밖아서, 녀석은 나름 당신같은 결과가 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거야.  아들이 얼마나 기특하니. 이 잉간아.

   - 아니....... 내...... 내가 .... 어때서.......... 이게 지금 칭찬이냐? 욕하는거냐?  넌 아들 엄마이기 이전에 내 마눌이야.  끝까지 내편 들어줘야지?

 

 

 

 

 

 

 

 

 

 

 

   아무튼 모처럼 함께하는 토요일 휴무인데 아디 바깥바람이나 쐬자고 했다.

   산책은 좀 넘어서고 등산은 안되는 선에서 나서보려 했는데.......  그래서 좀 먼곳까지 나서보려 하다가.....  아직 사방이 온통 눈길이다.

   일단은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하지않겠는가.

   아덜 땀시 스케줄 하나 망쳤으면 됐지.  두번째 스케줄까지 망치면 안되질 않겠는가.

   며칠후,  25.26.27일 이박삼일간 덕유대오토캠핑장 예약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혹시 까닥 잘못해서 왕여사 어디 고장이라도 나면 또 하나의 겨울여행 스케줄이 엉망이 되겠기에 일단 몸을 사리기로 했다.

  - 내일도 있으니까  오늘은 충주주변 가볍게 드라이브나 하자.  한군데 확인할 것도 있고.

 

   해서 차를 끌고 충주댐 방향으로 출발을 했겠다.

 

 

 

 

 

 

 

 

 

    요기 요 투명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눈 내린 댐정상을 건너다니며 댐주변의 겨울풍경을 구경해 보려고 전망대를 찾았는데.

   아뿔싸.

   동계에는 시설을 폐쇄한단다.

   지나다보면 여행객들이 늘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든데,  그때 기다렸다가라도 타 둘껄.

 

 

 

 

 

   그래도 모처럼 밖에 나온것이 마냥 좋다는 왕여사.

   한때는 절대군주처럼 무한의 권위를 휘두르던 나였는데, 어느날인가 무혈혁명으로 왕권이 아들에게 훌쩍 넘어가 버리더니, 이젠 이 아지매 조차도 하루가 다르게 버겁게만 느껴지는 이 중년을 넘어서는 남자의 비애.

 

   외곽지로 나서다가 조금 이른 점심을 순대국으로 해결한다.

   (세상에서 젤 맛있는 순대국밥집을 곧 맛집이야기로 올려볼 생각이다.)

 

 

 

 

 

 

 

 

 

 

 

 

 

 

 

   목계 솔밭.

   수로를 이용한 조운이 중요한 운송수단으로 통용되던 시대,  조선 세조때 이 일대에 우리나라 최대의 물류집산지인 가흥창이 들어섰던 곳이다.

   남한강 수로를 따라 강물이 굽이치는 곳에 대단히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나그네들에게 쉬어가는 그늘을 제공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가히 빼어난 경관을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웠던 내 어린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인 신경림 선생께서 장시로 이곳에서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기도 하셨다.

   지금도 해마다 목계별신굿이 전통행사로 재현되기도 한다.  줄다리기도 하고 황포돗배가 강기슭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곳 여울의 거친 물살을 헤치고 가르며 삼남지방에서 수집된 세곡과 물품(세금)이 한양으로 올라가고, 인천 강화 앞바다를 통해 올라오는 소금과 젓갈들이 이 여울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올라갔다.

   태백 영월 정선에서 벌목한 목재들이 뗏목으로 엮어져 단양을 지나고 이 여울을 지나고 여주와 두물머리를 지나 마포나루까지 떠내려가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련한 회상과 기록에나 전하여질 뿐,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어떤 흔적 하나 남아일질 않다.

   빼나난 풍광과 위용을 자랑하던 솥밭 조차도 그저 미미하게 남아 아련하게나마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4대강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이 일대에 대규모 공원이 조성되었다.

  남한의 국토를 종단하는 자전거 전용도로중에 아주 커다란 휴식처로 쓰일 커다란 공원을 이곳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나다니면서 이곳에서 쉬고있는 자전거 동호인들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

   거기다가 자전거를 이용해 국토종단을 하는 사람들의 기록에 이곳에서 비박이나 야영을 한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

   하여 꼭 한번 들러 보자고벼르던 것을 오늘에야 직접 찾아나서게 된것이다.

   공원은 대단히 규모가 크다.

   그러나, 공원조성 이후의 관리가 전혀 안되어있다는 느낌이다.

   시설은 100점 만점에 홑 2점 정도 되시겠다.

   알맹이가 전혀 없는 겉치장뿐이 매머드급 거대한 기획 공원이다.

   차라리 구획정리를 하여서 현 크기의 한 사분지 일 정도만 실속있게 일차 기공을 하고,  차차 해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저 광활할만치 면적만 냅다 크게 잡고 조경수 갯수에만 급급해 여기저기 옮겨심고 급하게 조성한 부실투성이 공원기획의 대표적 케이스로 보인다.

   심어놓은 나무중에 고사한 숫자가 무척 많이 눈에 띄고,  중안부분의 잔디밭을 제외하고는 여름 제초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아 사방이 잡초덤불숲이다.

   차라리 시공비의 절반만을 들여서 작고 알찬 공원을 만들고 추후 십여년 정도의 알찬 관리를 그 나머지 비용으로 할 것이지,  저렇게 처음 허우대만 키워놓고 관리가 안되면........  이건 감가상각이 아니라 페기물처리장과 다를바가 무엇이겠는가?

   임시 가전물 화장실(세칸짜리) 달랑 하나.

   잔디밭 중심으로  야영지라고 4m x 4m 정도의 나무데크 6개.

   그리고 가운데 부분에 무대로 쓰라는 것인지 구조물에 천막을 씌워놓은 조금 큰 나무데크 하나.

   이것이 전부다.

   이것이 자전거를 이용해 국토를 종단하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라 만들고 야영장이라고 조성한 시설의 전부다.

   어디에도 수도꼭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흐르는 남한강 물이 워낙 맑고 깨끝하니까 그냥 음용수로 이용해도 무방하다는 깊은 속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강물에 음식을 먹고난 그릇 설것이를 하고 비누칠에 머리라도 감을라 치면  한양지방의 상수도 사업소에서 난리를 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이곳을 둘러 본 소감을 피력해 본다면........

   개뿔,

   어떤 짜식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물을 내놓은거여?  어떤 놈의 발상이여?

   당장  도심속의 공원에 설치된 정도의 화장실이 네군데,  사설캠핑장 수준의 계수대가 네군데.  진출입 안내간판 설치등  최소한의 여건은 만들어 주어야 하질 않겠는가?

   산골의 산중턱에도 화장실이 설치되고 상시 화장지가 비치되고, 깊은 계곡에도 계수대가 설치되어 계곡물에 취사하지 말아달라는 표지판이 설치된 정도의 문화권에 살고있는 지금에,  어찌 4대강과 연계만 되면 이따위 이꼴들인지 정녕 모르겠다.

   논바닥에 기소(바닥보강)도 안하고 네 기둥에 지붕만 얹으면 거나하게 집이 잘 빠져나오는지 아는 넘들이 도대체 뉘기여?

 

 

 

 

 

 

 

 

 

 

 

 

 

   - 그냥 그러려니 덮어 줘.  이게 어디 여기뿐이야?  낙동강 따라 내려가면서 보던 풍경들이랑 다 비슷하네 뭐.  거기가 거기겠지.

   - 이게 무슨 공원조성이니?  돈지랄들 한거지.

   - 여기를 다녀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불쌍한 거지. 가까운데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나름 좋잖아?

   - 첨 와본게 이런데 좋긴 뭐가 좋겠어?

   - 일단 가까운데다가 너른 공터는 마련됐잖아.  집에 있다가 좀 답답하다 싶으면 슬쩍 보따리 싸서 이리로 오면 되잖아. 우리한테야 식수가 뭔 상관이겠니? 생수병 하나에 식수통 하나 들고오면 되고  아무데나 너른데 떡하니 자리잡고 들어앉아서  화장실은 저기든 저쪽이든 대충해결하고 설것이는 다시 집에가지고 가서 하면되고,  최소한 밤하늘에 별은 확실하게 잘보일것 아니야?  강바람은 시원할거구..........

   - 아멘 !!!!!!!!!!!!!!!!!!!!!!!!!!!!!!!!!!!!!!!!!!

   오 주여.  날로 강단만 늘어가는 이 아지매를 어찌 감당해 내야 좋겠습니까?  부디 굽어 살펴 주소서.  또 아멘.

 

 

   가만히 듣고 나니 나름은 또 그렇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날 풀리는 2014년 부터는 수시로 여기를 드나들것만 같은 예감이...........

   빵점이든 부실이든 남들에게 최악의 공원이든..............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야영장으로  슬쩍 우리 가슴속에........ ㅎㅎㅎ 인 마이 포켓.

   그래도........ 그래도......... 관계자 여러분.

   최소한의 화장실 한개와 계수대 한개는 날 풀리는 대로 만들어 주슈.  아멘!

 

 

 

 

 

 

 

 

 

 

 

 

 

   야영장 남쪽 위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다리공사장에 설치된 임시부교를 건너 두무소에 들러보았다.

   두무소는 극히 일부 아는 사람들과 낚시꾼들만 찾는 나름 비경을 간직한 신성스러운 장소였다.

   일단은 쉬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오지성이 더욱 어떤 신비감을 느끼게 해주던 곳이었다.

   아주 오래전 카메라를 들고 처음 이곳에 들렀을때의 감회를 결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던 곳이 고속도로 공사장이 되고 자재가여기저기 쌓이고  주변의 여건들이 훼손되면서 그 옛날의 신비스럽고 놀라우리만치 빼어났던 풍광은 어디론가 모두 자취를 갑추고 말았다.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여기저기 물속에서 기둥처럼 솟아오르고 또 그위로 떠오른 둥근 보름달이며,   이곳에 살았다는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며, 부근의 여울 물길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끝이 단양에 닿아있다는 등의 무수한 사연들까지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제 두무소는 그곳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으로 들려본 곳은  (루암리 고분군) 이다.

   왕짜증여사에게는 가까운 곳에 있는 문화유적이면서도 처음 구경시켜주는 곳이다.

   이 고분군은 나에게 있어서는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색다른 호기심과 의미를 안겨주는 곳이기에 산책하듯 주위를 거닐면서 나름의 나의 생각을 설명해 본다.

 

 

 

   루암리 고분군은 신라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귀족들의 무덤이다.  바로 신라인들의 무덤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경주에 있는 고분들은 왕릉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곳의 고분은 왕족이 아닌 귀족들의 무덤이다.

   신라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전에 그 한 방편으로 당나라와의 교역에 주력하였다.

   백제가 가로막고 있는 남서해안을 돌아서 가는 바닷길 보다 가깝고 비교적 수월한 교역로를 원했던 것이다.  하여 한강유역을 점령하게 되었고, 그 한강의 끝자락인 벽란도를 거점으로 당나라와 원활하게 교역을 하게되었던 것이다.

   본시 삼한의 땅이었던 충주는 백제를 거처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다시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신라의 영토로 복속되었던 것이다.  한강을 오르내리는 수운(수로)의 중요성만큼이나 충주는 남한땅 제일의 철 생산지였기에 그 중요성은 더욱 배가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이었다.

  이러한 모든 여건으로 인하여 한강유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신라의 입장에선 이 너른 충주지방을 쉽게 도외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라는 충주지역에 중원소경을 건설하였다.  경주인 서라벌에 다음가는 중요한 거점도시로 발전시켜간 것이다.

   그리고 서라벌에 살고있던 다수의 귀족들을 선발하여 충주로 이주시켜 지역을 다스리며 살게 하였다.  그만큼 중요한 거점도시였단 뜻이다.

   중원경에 이주해 와 살던 귀족들이 죽게되면 장사지내 묻은곳이 바로 루암리 고분군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왜 당시 신라의 귀족들은 이 루암리에 무덤을 만들었을까?

   충주읍성에서 이십여리나 떨어져 있으며, 서너번의 물웅덩이 개천을 건너고 탄금대 직전의(유엔평화공원자리)의 작은 샛강을 건너고,  대문산을 휘감아 돌아 합수머리에서 깊고 드넓은 달래강을 건너고 나서도 가파른 산언덕길을 한참을 넘어야 하는 이 외진곳에 말이다.

   서라벌(경주)의 경우를 살펴보자.

   왕릉들은 신라인들이 당시 거주하던  거주지(궁성)에서 그리 멀지않은 경치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관리하기에도 그렇고 후손들이 자주 찾아가기에도 좋은 위치에 조상의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루암리 처럼  들판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그런 먼곳이 결코 아닌 것이다.

   충주읍성(관아공원)에서 지금의 도로여건하에 차를 가지고 달려도 족히 삼십분 이상이 걸리는 곳이다.  사차선 도로에 아주 웅장한 다리까지 놓여있는 데도 말이다.

 

 

   하여, 나는 순전히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같은 시기에 세워진 탑평리 팔층석탑(중앙탑)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면서도 많은 의미를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서라벌이 왕도이자 당시 신라의 통치를 담당하는 중요한 도시였다면,  중원소경은 신라 영토의 한 복판에 위치하며 북방을 염려하는 신라인들의 마음이 새겨 세운 도시였던 것이다.  하여 그 의미를 담아 세운 탑은(탑평리 팔층석탑) 그 중원소경의 도심 중심에 세워졌을 것이라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다.

   발굴기록에 의하면 탑평리에,  이 팔층석탑의 주변으로 아주 커다란  대사찰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은 있으나 아직 발굴된 유물이나 기록은 없다.

   당시의 수운의 중요성을 감안해 강을 끼고 도읍을 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점과  탑평리의 경우는 인근에 장미산성등을 비롯해 지역의 방어가 상당히 유리했다는 드러난 사실들에 입각해,  당시 실제 중원소경의 위치는 바로 탑평리 였다는 지극히 나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옛기록을 살펴도 탑평리에는 많은 가가호로들이 선사시대 이후로 꾸준히 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읍성이라는 것이 오천호 정도의 가구수만 모였다 해도 당시로는 커다란 도시였을 테니까,  탑평리가 그정도 이상의 1만가구의 도읍지였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인다는 점이다.

   신라는 국토의 중간에 중원소경을 건설하였으며 그 뜻을 살려 그곳에 중앙탑(탑평리 8층석탑)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바로 탑평리 였다.

   탑평리에 거주하며 도읍지를 다스리던 귀족이 죽으면 그들은 인근 오리 정도 떨어진 바로 루암리에 묻었던 것이다.  천천히 걸어서 이삼십분의 거리인 것이다.

 

   아울러 당시의 변화상을 추측으로 하여 언제고 다음번 역사소설로 써 보려고 구상중이다.

   통일신라가 멸망으로 치닫고 여러 군웅들이 활거하게 되었을 당시,  이미 이 탑평리를 거점으로 세력을 유지하던 신라의 세도가들과 수운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유지들은  당시의 가장 세력을 떨치던 견훤에게 의탁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이곳에 북쪽으로 부터 서서히 궁예가 세력을 넓혀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나름 지역의 유지임을 내세우기는 하였으나, 탐평리 세력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던 사내 유장자가 있었다.

   이 유장자는 커다란 야망을 품고 있었다.  언제고 기어코 이 탑평리의 세력들을 자기 발앞에 무릎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야망이었다.  그런 유장자의 처소이자 가지고 있던 농장의 위치가 바로 지금의 충주읍성(성내동) 일대였다.  꾸준히 야망을 키워가던 유장자에게는 시류를 살피고 판단하는 나름의 능력이 있었다.

   언제고 시간이 지나게되면 견훤의 위세는 점차 수그러지고 궁예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천기를 읽은 것이다.  그러나 궁예를 살펴보니 그에게 모든거것을 의지하기에는 너무 위험이 컸다.  그는 포악한 미륵의 현신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유장자는 궁예의 휘하 장수중 하나인  왕건의 됨됨이를 살피게 되고,  마침내 왕건에게 모든것을 걸기로 하였다.

   왕건이 충주지역을 점령하는데 모든것을 다 바쳐서 앞장서서 그것들을  모두 이루게 하였고,  그를 극진하게 대접하여 마침내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시집보내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왕건과 그의 군사들이 집결하고 매사를 처리하는 장소를 바로 유장자의 거점이 현 읍성에서 처리하게 하였다.

   고려가 건국됨과 동시에 엄청난 세력을 손아귀에 쥔 유장자는  탑평리 일대를 점차 파괴하고 거주자들을 자신의 거점인 읍성(성내동)으로 옮겨오게 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중원경의 모든 사람과 세력을 바로 자신의 발아래 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충주이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가설이다.

   아마도 다음 쓰게 될 역사소설의 소재이기도 하다.

 

   이 모든 설명을 듣고 난 왕짜증여사의 반응.

   - 나름으로는 생각해보고 확인해볼 가치가 있는 생각이긴 한데......... 어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설이나 역사학자가 또 있어?

   - 아직은 이야기 못들어 봤어.

   - 그럼.  그냥 혼자만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해 봐.  괜히 소설로 쓴다고 달려들지 말고.

   - 그냥. 그러한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어서.

   - 관둬 !!!!!!!!  요새 누가 그 긴 장편소설을 읽고있냐?  돈도 안될테니 관 둬!!!!!!!

   - 내가 ㅁㅌㅁㅌㅁㅌㅁㅌㅁㅌㅁㅌㅁㅌㅁㅌㅁㅌㅁㅌ.

 

 

 

 

 

 

 

 

 

 

 

 

 

 

 

 

 

 

 

 

 

   돌아 나오는 길에 탄금대에 있는 유엔평화공원내 특설링크에 마련된 실내 스케이트장을 들러보았다.

   역시 겨울은 개구쟁이 꼬마들의 계절인가보다.

   다들 어찌나 신나보이던지..........

   예전엔 한 스케이트 했었다는 뫙짜증여사를 강제로 잡아끌고 서둘러 그곳을 나온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다시 현대타운으로 이동.

   (변호인) 관람권을 끊고서는  커피숖에서 창밖구경하기.

   시간 맞춰서 영화감상을 하고...........  모처럼 토요나들이를 마감.

 

   그냥 이렇게 살아왔고........  또 이대로 살아갈것 같다.

   지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