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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충주)의 향기

짧은 일탈.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by 피안재 2013. 11. 14.

 

 

 

 

 

 

 

 

 

 

 

 

 

 

 

 

 

 

 

 

 

   2013년의 가을은 유독 아름답다.

   왜 유독일까?

   손에 잡히지도 어쩌면 다가서지도 못하기에 더욱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진한 아쉬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잔인하기까지?

   아뭏튼 2013년의 가을은 그냥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기로 했다.

 

 

   짬만나면 어디론가 죽자사자 떠나던 우리였는데........

   히필이면 이 아름다운 가을의 한가운데서 그만.........

   왕짜증여사께서 11월 한달간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옵션에 그만 갇혀버리고 말았다.

   매주 금.토요일 마다 5주간 연속, 하루 8시간씩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쉰이 넘어선 나이에도 아직도 이루고픈 꿈을 향해 정진하려는 용기에 나는 손과 발을 모두 들고말았다.

   새벽길과 빗길을 달려 청주까지 오가는 열정에 차마........ 떨치고 나 혼자 떠나지 못하는 내 맴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하얀눈이 수북히 쌓인 겨울여행을 기약하고 있다.

 

 

 

   모처럼 쉬기로 맘먹은 토요일 아침 한나절.

   교육장에 있어야 할 왕짜증여사에게서 카톡문자가 날라왔다.

   - 모해? 난 교육중에 잠시 휴식시간.

   - 그냥있지 뭐.  대청소나 해 볼까 하고.

   - 혼자서 쉴려니까 미안하지?

   - 미안까지야 아니지만 어째 기분이 좀 그렇지 뭐.

   - 그래도 모처럼 쉬는 주말인데 들어앉아만 있지말고 좀 우아하고 폼나게 푹쉬어.

   - 우아하게 쉬어? 폼나게 쉬어?  그게 어떤건데?

   - 개뿔.  당신 혼자서도 항상 잘 놀잖아.  맘 편하게 즐겁게 쉬라고.

   - 알써.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우아하고 폼나게 쉬는 법을 연구해 볼께.  당신도 계속 수고하고.

 

   일단 개뿔커피부터 한 잔 타서 마시며 요리조리 궁리에 들어간다.

   왕여사는 들국화를 말려놓고 아침마다 차를 내려 마시는데

   현장생활에 익숙하다보니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아침이면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게 되었는데

   커피믹스제 모닝커피를  개뿔커피라 왕여사가 그렇게 부른다.

   우아하게  폼나게........

   챵밖을 내다보니 가을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짙푸르기만 하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카메라 달랑 둘러메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무작정 출발을 한다.

 

 

 

 

 

 

 

 

      --- 석문동 고갯길.

 

 

 

 

 

   수안보를 지나 석문동 고갯길을 넘어 송계계곡으로 들어갔다.

   만추는 어느덧 지나고 있는 느낌.

   아마도 계룡산이나 내장산이 지금쯤 오색단풍의 절정일것만 같다.

   스쳐지나는 주변의 높은 봉우리에는 까맣게 타버린듯이 시들어버린 단풍의 쓸쓸한 뒷모습이 서서히 중턱까지 내려와 있다.

   그러나 도로 주변이나 계곡 사이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의 고즈넉한 자태가 아직 남아있다.

   무작정 나선 길이었기에

   그냥 잠시 스쳐지나가듯 이 가을의 여운을 슬쩍 들여다만 보기로 작정하고 방향을 미륵사지로 돌렸다.

 

 

 

 

 

 

 

   -  천년고찰이었을 미륵대원사지 터의 주차장모습.  송계게곡 제1경이라 할 만하며, 또한 하늘재 트래킹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 하늘재 오르는 길.

 

 

 

 

 

 

 

 

   이만하면 어느정도는 되었다 싶었다.

   가을에 대한 아쉬운 내 허기가 어느정도는 채워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핸디폰으로도 풍경을 찍어서 교육중일 왕짜증여사에게 보내본다.

   혹시나 약좀 오를까 해서였는데

   - 음. 아주 잘 쉬고 있구만. 계속 쉬어.

   내가 기대한 답변과는 아주 거리가 있는 문자.

   다시 핸들을 잡고 계곡 아래로 깊숙히 들어가 본다.

   송계계곡의 캠핑장을 살펴보러.

   부럽기 그지없는 가을캠퍼들의 모습을 슬쩍 들여다 보려고.......

   닷돈재 캠핑장과 덕주골 캠핑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캠핑장 한 구석에서 꼭 해봐야 할 일이 있다.

 

 

 

 

 

    - 닷돈재 야영장 입구.

 

 

     - 물레방아 다리 위쪽 계곡.  예전엔 이곳이 모두 야영장이었는데,  구역정리가 이루어진 후 야영이 금지되었다.

 

 

 

 

 

 

 

 

 

 

    - 그리고 문제의 요 텐트.  코베아 제품이다.

 

 

 

 

 

 

 

 

   덕주골야영장을 둘러보는데,  간간히 몇몇 캠퍼들이 여기저기 떨어져서들 만추의 캠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계곡 다리를 건너 건너편 야영장까지 둘러보는데

   야영장 깊숙히 은둔하듯이 숨겨진 숲속에 유난히 눈에 띠는 텐트 하나가 보였다.

   리빙쉘 기능을 갖춘 코베아 제품의 텐트다.

   똑같다. 똑같다.  디자인은 물론 색상까지도 똑같다.

   - 아니 저건 내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영장을 둘러보며 겨울의 초입에서 캠핑하는 모습들도 살펴보려는 뜻과

   바로 요 텐트를 실제로 설치해 보려는 애초의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일주일 전에 바로 요 텐트를 새로 구입한 나.

 

   지금까지 우리부부의 캠핑에 늘 함께해준 텐트는 버펄로 제품이었다.

   대한민국 대다수 야영장의 표준설치 시설데크인 3 x 3m 크기에 안성맞춤인 실용적인 동반자였다.

   헌데,  겨울캠핑을 계획하면서

   왠지 어딘지 모르게 아주 약간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느낌을 캠핑을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장비를 눈여겨 살펴보면서 누누히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왕짜증여사 왈.

   - 우리의 다음 캠핑장비 최우선 목표는 텐트의 교체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고 내년이나 후년쯤에......

   -  뭐 다른건 생각이 없으시고? 사방 둘러보면 기가죽을 정도로 좋은 장비들이 넘쳐나잖아.

   -  차차 시간을 갖고 하면 되지 뭐.  뭔가 부족한대도 자연이 좋아 찾아다니는게 캠핑이지, 좋은거 비싼것 다 챙겨서더 다니는게 캠핑만은 아니잖아.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상태만으로도 호강이다 생각하고....... 시간을 두고 하나씩 하나씩 바꿔가는 거야.  또 모든 장비라는게 쓰다보면 수명이라는게 있는거니까 그때 새로 구입하게 되는것은 조금 더 좋은것으로 바꿀 수 있는거고.  그러니까  텐트는 좀 더 튼튼하고 컸으면 좋겠다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지금것도 말짱하니까 내년이나 후년쯤에........ 알았지?  또 나몰래 일 저지르지 말고.

   - 알써.  마음에 담아만 놓고 있을께.

   그러면서 캠핑촌을 두리번 거리다 왕여사의 손가락이 딱 멈춘곳이 바로 위의 조기 조 텐트였다.

   -  너무 큰것들은 좋기야 하겠지만 무게도 엄청날꺼고........  아무데나 설치하기에도 부담스러울 것 같애.  우린 겨우 둘이만 늘상 다닐텐데......  조게 딱 맞겠다.  튼튼해 보이고.  담에 살땐 꼭 저것으로 하자. 어때?  저것으로 결정?

   - 알써.  바로 저것으로.

   눈도장을 힘주어 찍어놓고 가슴속에 각인까지 새겨놓았었다.

 

 

   11월 첫주말 일요일에 저녁데이트를 하던 중 대화가 온통,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의 한복판에서 각자 일에 갖혀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의 토로였다.

   - 12월의 겨울여행을 기약하면서 11월은 절약하는 달 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뭐.  그렇지?

   왕여사는 생글생글 거리며 축 처진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데......... 나는 벌써 속으로 딴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절약.

   절약.

   절약?

 

 

   - (독백) 다음 주말쯤인 11월 8일 아들 짱구의 생일에 맞춰 선물로 이미 책을 사 놓았고 편지도 써 놓았으니 포장만 하면 되고........ 또 아덜 생일 선물과 조카 대입축하 겸 셋째네에게 겨울선물로 지난달에 이미 예약준비해 놓은 (12월의 동해망상오토캠핑장 카라반 2동)에 왕여사와 내가 눈속에 텐트치려고 야영장 예약까지 마쳐서 셈까지 치르고 난 후였겠다..........  11월은 나들이나 캠핑이 (꽝) 이니까 그만큼 절약이라고라 고라 고라 고라 고라 고라 고라 고??????????????????????????

 

   그리고 끝내 그날로........ 난 일을 또 저지르고 말았다.

   (11월 무여행으로 절약되는 만큼만을 투자하면 될거 아니야) 하면서 기어코 코베아 텐트를 구입해버리고 말았다.

   텐트가 도착하고........  이제 왕짜증여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연실 고심에 또 고심에 궁리를 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돌리기도 전에.

   - 뻔하네. 이야기 꺼내는 폼이 벌써 샀다는 말이네. 아니야?

   거 참.  이사람 언제 신기까지 생겼단 말인가?  남의 속내를 자기 손바닦보다도 훤히 들여다 보니........

   이걸 빌어야 하나. 사정을 해야하나.

   - 그게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이건 이렇구 저게 저래서........... (한시간 경과)

   - 좋아.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당신도 이렇게 되기까지는 나름 충분히 고심을 했을테고....... 사실 나도 갖고 싶은 것였고......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번까지만 이해하고 덮어준다.  다음에 또 나몰래 이렇게 일저지르면.......... 아예 나 캠핑 안다닌다. 알았지? 약속해.

   - 그럼 당연하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약속.

   겨우 위기를 넘겼다.

   헌데........

   남아 일언이 중천금이라 했던가?

   그때 일은 또 그때 가봐야 알지 뭐.  또 알아?  기발한 변명거리가 생길지?

 

 

 

   차에서 무거운 새텐트를 꺼내서 양영장 한켠의 한적한 곳에서 새로 구입한 텐트의 첫 설치연습을 시작한다.

   펼쳐보니 생각했던것 보다 바닦이 넓다.

   팽팽하게 당겨 바닦 네 귀퉁이에 팩을 박았다.

   폴을 꺼내서 연결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설치를 시작하려는데........

   아뿔싸.

   하늘이 수상하다.

   툭. 툭.

    투투투 툭. 툭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갑자기 종일 잔뜩 찌프렸던 하늘에서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쩌자고 이런 어처구니가..........

   예행연습이고 뭐고 대충 꺼냈던 텐트를 둘둘 말아 안아들고서는 서둘러 차안으로 대충 집어넣는다.

   우이씨.  어떻게 장만한건네........ 하늘. 너까지.........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새건데 다 설치한 후에 비가 내렸으면 어쨌을까?

   - 그래. 좋은쪽으로 생각하자.

 

 

 

 

 

 

   -  덕주골 야영장계곡 정경.  이 계곡의 양편으로 아름답고 빼어난 야영장이 들어서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송계계곡을 빠져나오다가  단돈재야영장 위쪽에 붙어있는 오토캠핑장을 들려보기로 했다.

   연중예약제인 곳으로  통나무 오두막집 처럼,  설치되어있는 캠프촌을 그대로 여행객에게 대여해 주는 곳이다.

   취사도구와 침구류까지도 대여를 해주니,  말 그대로 먹을것만 준비해 오면 나름 캠핑의 묘미를 즐기며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캠핑에 대한 나의 관점과는 판이하기에 몇차례 지나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냥 한번 둘러보기로 마음먹고 찾아가 보았다.

   혹시 또 모르지.  살다보면 이런 시설을 찾게되는 날이 있을런지도.

   둘러보니 나름 매력이 있다 싶을 정도로 잘 갖추고 꾸미어져 있다.

   그 시설 안에서 지금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 표정에서도 또 다른 어떤 만족스러움들이 느껴진다.

   - 아.  저런 캠핑도 있구나..........

   호기심 가득 어린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유심히 둘러본다.

 

 

 

 

 

 

 

 

 

 

 

 

 

 

 

 

 

 

 

 

 

 

  - 풀옵션캠핑존의 건너편으로 일반야영장에 몇몇 캠퍼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다.  전기시설도 없이.

 

 

 

 

 

 

 

 

   둘러보고는 송계계곡을 빠져나왔다.

   일탈.

   아주 짧은 나들이였으나  진하디 진한 가을의 여운은 이미 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있었다.

   석문동 고갯길을 넘으면서 나는 2013년의 가을을 놓아주었다.

   곧 다가올 겨울캠핑까지 다시 열심히 생활해야만 하니까.

   그나저나..........

   이 아줌마 빗속 밤길운전은 제대로 하려나?

 

 

 

 

                            --------------  2013년 가을이 지나가던 날에.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