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이게 만드는 세 도시 이야기"
누군가가 내게 말하길 '직선은 인간의 영역이자만 곡선은 신의 영역이야'라고 했다.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아마도 내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서였을 것이다.
거대한 석조 신전들과 웅장한 고딕 건축물들을 바라보면서 숭고한 선인들의 솜씨와 지혜에 한없는 존경과 갈채를 보내면서 말이다. 그런가하면 끝없이 펼쳐진 구릉과 초원과 코발트빛 바다를 통해서 신이 풀어낸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그렇게 직선과 곡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서, 신과 인간 사이의 애증과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서사시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찾아나서는 것이 바로 내 여행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도시와 여행지들이 있다.
모두가 나름대로 각각의 개성과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장소들이다.
이제껏 내가 다녀 본 도시들의 숫자는 아주 적고 가보지 못한 장소들이 너무나 많이 산재해 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둔 여행지'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전혀 주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1. 이스탄불(아마도 영원한 나의 로망이자 버킷 리스트에 항상 맨 선두에 오를 사랑스런 도시)
2. 몰타(물론 몰타는 도시가 아니라 한 나라의 명칭이지만, 워낙 작은 국가이고 발레타와 몰타를 굳이 도시와 국가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3. 피렌체(로마.파리.런던.프라하.뮌헨.암스텔담.빈을 모두 준다해도 나는 결코 피렌체와 바꾸지 않을것이다)
이스탄불
유려한 자태의 아름다운 도시는 화려함 보다는 고혹스런 멋으로 가득하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동양과 서양의 정취와 역사와 문화가 한데어우러져 또 다른 새로운 멋과 향기로 가득넘쳐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기원전 3.000년 전에 이집트 나일강변에 거대한 문명과 도시가 생겨났다. 바로 이집트 문명이다.
유랑생활을 하던 페니키아인들이 자신들이 쏘다니는 세상밖으로 이 문명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놀라운 문명을 접하고도 한곳에 정착해서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냥 이 앞선 문물을 부지런히 퍼 나르기만 했다. 이유는 현재까지도 알 수 없다. 이집트 문명은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드넓은 아나톨리아 평원과 발칸반도와 이탈리아반도와 그리이스반도는 물론 아프리카의 튀니지와 모르코를 지나 지중해의 끝자락 이베리아반도까지 퍼져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이 시대를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이스만은 달랐다.
그리이스인들은 이집트의 놀라운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발전시켰다. 그것이 그리이스 문명이다. 그리이스 문명이 꽃을 피우자 아프리카 튀니지 지역에서 페니키아인들의 후예인 카르타고가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발전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등장한 알렉산더는 헬레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였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이스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새롭게 등장한 로마가 앞선 이 모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눈부시게 성장을 한 덕분에 곧 로마제국으로 성장하게된다. 제국은 분열하였고 이스탄불로 옮겨간 동로마는 곧 비잔틴제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유럽문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이어받는 비잔틴은 천년제국을 이룩하지만, 머나먼 동방에서 쳐들어 온 몽골에 의해서 비잔틴과 유럽은 심각한 위기를 겪게된다. 하지만 이 정치 군사적인 충돌속에서 동양의 문물이 서양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고, 실크로드를 통하여 새로운 문물이 교류하게 된다.
또한 같은 시기에 발칸반도에서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유랑을 해온 투르크족(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세력을 확대해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이스탄불을 포함한 아나톨리아 평원은 거대한 전쟁터이자 동서 문명의 충돌로 대변되는 격변의 시기를 맞는데. 그 격변의 시대 한복판에 십자군 전쟁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평원은 곧 오스만투르크의 영토가 된다. 오늘날 까지 이어져서 말이다. 곧 터키(Turkey)를 말한다.
이렇게 동서양의 문명과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이렇게 독특하고도 매력이 넘치는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이스탄불 말고는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스탄불을 거닐어 보라.
당신은 인류 문명사의 호젓한 숲속 길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낡은 고서적 책방에서 은근하게 풍겨나오던 그 역사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을것이다.
이토록 매혹적인 도시를 또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
몰타(Malta)
요한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이 나타나 붉은 바탕위에 흰 십자가 깃발을 내걸기 전까지 몰타는 그저 무인도나 해적섬에 지나지 않았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부터 인간이 살았었다는 선사시대 유적이 남아있기는 하나, 몰타는 그저 한마디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아주아주 척박한 고립된 섬에 지나지 않는다. 농사를 지을 농토가 절대부족하고, 선인장 외에는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 숲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선박건조술과 항해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고대에서 중세때까지 험난한 지중해를 건너가자면 반듯이 이곳 몰타연안을 지나가면서 잠시 섬에 올라 심신을 추스르고 식수를 챙기던 지정학상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을 뿐이다. 사람이 거주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모든것이 절대 부족한 버려진 땅이었다.
비잔틴의 마지막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던 장소에서, 쫓겨갔던 그리이스 로도스 섬에서 신흥제국 오스만 투르크에 격렬하게 끝가지 항전했던 요한기사단은 결국 또다시 몰타까지 쫓겨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직 성전(聖戰)이 끝난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몰타에 온 이유는 오로지 한가지였다. 오스만 세력으로부터 유럽의 기독교를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뿐이었다.
육지를 통해 발칸반도를 지나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일부를 점령한 오스만 투르크는 해상을 통한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몰타를 향해 총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끝내 소수의 몰타기사단은 오스만의 대군을 맞아 역사적인 승리를 쟁취한다. 이 전쟁의 여파로 오스만 투르크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술레이만 대제가 다음해 사망하면서 부터 오스만 투르크는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몰타는 그 시작에서 끝까지가 모두 요한 기사단에 의해서 설계되고 만들어진 천험의 요새이다. 몰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방어요새이다.
그랬음에도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섬 전체가 마냥 아름답다. 라임스톤의 색채가 독특하게 빛를 발하는 멋들어진 계획도시가 여행자의 발길을 잡아당긴다.
몰타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유럽의 은퇴자들이 남은 여생을 지내기에 첫손가락으로 꼽는 곳이다.
1년에 300일 이상 따사로운 햇살과 지중해의 온화환 바람이 사람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곳이다.
대부분의 생활물자는 비록 인근의 시칠리아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몰타에는 몰타만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매력이 넘쳐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조지아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착한 물가를 보여준다. 하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피렌체(Firenze).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는 아신다구요?
르네상스가 과거 그리이스 문화로의 복귀나 인간 본연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잘 모르신다구요?
사실 그딴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하루 온종일 산책하듯이 걸어다니실수는 있으시겠지요? 온종일 전시장에 서서 벽과 천장을 바라보고 올려다 본다는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만만한 일은 아니랍니다. 지상 100m 쯤(아파트 30층 정도)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실 체력은 가지셨지요? 쿠풀라와 종탑을 동시에 오르시라고는 하지 않을테니까요. 몰론 올라가 보면 비슷한 높이의 다른 장소가 안겨주는 미묘한 차이의 아름다움을 느끼시게 되겠지만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다보면 가슴에 남는것이 아마도 생길거에요.
피렌체는 그것으로 충분한 도시랍니다. 걷고 둘러보고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되고 곧 사랑하게 될테니까요.
무수히 많은 사람과 무수히 많은 조각들과 무수히 많은 그림들을 만나게 되지요. 넉넉한 마음과 약간의 호기심과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를 표할 마음가짐 정도면 충분할 거에요.
피렌체를 찾아오는 여행자들 중에서 상당수가 이제는 (기베르티)와 (부르넬리스키)는 아시고 오시더군요. 하지만 그 옆에는 (깜비오)와 (지오토)가 있답니다. (파브리아노)도 피렌체에선 중요하고, (도나텔로)나 (델 카스타뇨)도 빼놓을 수가 없겠지요. (마사치오)를 빼고는 르네상스를 말할 수 없음이며, (안젤리코)나 (베네치아노)도 있답니다. (보티첼리)나 (브라만테)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겠지요.
피렌체에 온다면 <우피치 미술관>을 통해서 이들 모두를 만나 볼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피렌체에서 이 사람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되겠지요? 바로 (단테) 입니다. 물론 베아트리체도 피렌체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피렌체는 고즈넉한 조금은 도도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화려하다는 표현은 피렌체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조금은 음습하고 우울한 도시라고 나는 표현하겠습니다.
어떤 떨림과 울림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도시라 말하겠습니다.
피렌체는 한마디로 오랜세월 잊지못하는 첫사랑 같은 도시입니다.
피렌체의 골목골목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몸과 마음에서는 르네상스의 향기가 풍겨나오게 될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것이라는 것을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래. 다시 떠나자. 이번엔 오로지 이탈리아다'
코카서스 산맥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와 (터키)를 다녀온지 꼭 석달밖에 안되었는데.......
유독 힘들게만 다가오는 이번 겨울이 기어코 나를 다시 떠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오로지 (이탈리아)다.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속에는 온통 '피렌체' 뿐이다. 모든 여정을 '피렌체' 한 곳에만 소요한다해도 아무런 불만이 없을것만 같았다.
그래서 느닷없이 떠났다.
이탈리아로.........
항공편 사정으로 이번엔 '베네치아'로 들어가서 '로마'로 나오는 20일간의 여정을 마련했다.
지지난해 겨울은 무척이나 바쁜 계절이었다.
가을에 시작한 공장 증설공사가 해를 넘겨가면서도 여전히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해를 넘겨서야 기초작업에서 시작해 철구조물과 벽면 세우기까지가 끝나고, 이젠 다른 팀에서 거대한 기계설비들을 시공하는 시기가 되었다. 약 20일에 걸려 천장을 통해 들여오는 거대한 기계설비 설치가 모두 끝이나면 다시 우리팀이 지붕을 덮고 마무리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하여 그 텀이 남게되는 시기를 이용해 나는 훌쩍 유럽으로 떠났던 것이다. 1월 중순에서 2월 초순에 걸쳐 약 20일간의 자유여행을 감행했었다. 이탈리아 (로마)로 들어가서 머물다가 야간 기차로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로 갔다.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시라쿠사를 찾아다녔다. 비행기로 지중해를 건너 (몰타)로 이동해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는 다시 비행기로 터키 이스탄불로 날아갔었다.
2월 초순에 귀국하자마자 다음날부터 당장 현장에 다시 투입해야만 하는 정말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었다.
즐겁고 유익하고 행복한 여행이었지만 단 한가지 아쉬움을 꼽는다면........... 그것은 로마에 머물면서 '피렌체'를 당일치기로 서둘러 다녀왔다는 점이었다.
떠나기 전부터 '시칠리아'와 '몰타'에 관심을 두었던 터라, 그렇게 '피렌체'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가슴에 깊게 남게 될줄을 그때는 미쳐 알지못했다.
'피렌체'는 아쉬움을 넘어 뼈저린 아픔으로까지 내 가슴 깊은곳에 아로새겨져 남았다.
지난 혹독했던 여름 더위를 견뎌내면서 작업에 몰두했고, 비행기를 타기 전날까지 야간작업을 해야만 했다.
여행에 다소 무리가 따랐지만, 당장 가을에 시작해서 긴 겨울을 매진해야만 하는 대형 공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년 초여름까지는 짬이 안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하게 서둘러 (조지아)와 인근 국가들을 다녀왔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모든 상황이 너무도 크게 변해 있었다.
경기도 안좋고 자금 사정들도 생겨서 급기야 약속된 대형공사 착공이 해를 넘겨 시작하기로 일정이 변한것이다. 대형 공사에 전력하기 위해 소소한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취소해버린 즈음에 참으로 대형 악재라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0월은 그럭저럭 넘겼는데, 11월과 12월은 사상 최악이었다.
일에 바쁠때는 어떻게든 짬을 내서 쉬고 싶었는데, 모든 스케줄이 취소되고 나니 온통 무료함만이 찾아왔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어봐도 연일 술자리 약속만 늘어가고...... 심신에 피로가 누적되고 생활의 활기가 점차 사라져갔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길고 지루한 겨울을.............'
'아무리 자기 팔자가 늘어졌기로 유럽 다녀온지 석달만에 또 나간단 말이야? 자기가 무슨 여행사 직원이야?'라는 핀잔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혹, 차밍여사와 동행을 한다면 혹시나 다소 그럴싸한 명분이 서기는 하겠지만.......... 작년 여름 허리수술 휴유증에서 아직 덜 회복된 상태라 배낭은 커녕 장시간 걸어다니기도 힘들다 못해 불가능한 상황이라 속된말로 '씨아리도 안먹힐' 상황이었다.
해는 바뀌고 새해가 되었어도 구질구질 술이나 마시고 다니는 백수...........
아는 사람은 안다. 내 생활에 극단의 활력소가 되는 두 가지 명약이 있다는 사실을...........
첫째는 우리 예쁜 손녀 윤태리. 둘째는 여행.
아직 너무 어려서 에미 애비가 감기에 노심초사 하는 와중에 할미 할배가 맘대로 어찌할 수도 없고서리.......... 챠밍여사 왈.........'다녀 와'.
서둘러 떠날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떠나기 이틀 전에는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여행 취소'를 생각하는 중에도 '시간이 아직 충분하니 계획대로 다녀오라'고 해준다.
그래서 나는 길을 떠났다.
언제나 처럼 홀연히 나의 생활과 터전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된것이다.
이번엔 온전히 이탈리아다.
그중에서도 우선은 피렌체'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싫증이 날때까지 머물것이다.
대신 다음여행은 챠밍여사와 '스페인' '포루투갈' '모로코'다.
첫 여행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항공편이 마땅치 않아서 (베네치아)로 들어가서 나중에 (로마)로 나오기로 했다.
베네치아는 그냥 경유지로서 한나절 정도만 머물것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세상에서 하나뿐이 독특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이제 베네치아를 만나 보게되겠지만....... 기실 나는 역사속에서의 '베네치아'를 그리 달가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위대한 문화를 간직했고 또 위대한 업적을 기록한 베네치아지만........ 사실 베네치아는 그 화려한 명성 보다 더 많이 못된짓을 많이한 사람들의 도시이다.
인류 문명사에 기여한 업적보다도, 나쁜 선례와 오점을 더 많이 남겼다.
베네치아의 화려한 아름다움 뒤에는 수많은 약탁과 침략과 전쟁과 탐욕이 덕지덕지 얼룩져 있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그릇된 얼룩만을 보지는 않으려 애쓰고 싶다.
그냥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 찬연한 아름다움에 잠시 젖어보아도 무방하리라 하는 기대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잔뜩 흐리다못해 간간히 비가 뿌리는 날씨속에 자정을 넘긴 시간에 비행기는 마침내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에 내려 앉았다.
베네치아의 관문인 마르코 폴로 공항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자정을 훌쩍 넘긴 관계로 택시를 이용해 시내로 이동한다. 산타 루치아 역 건너편에 있는 로마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육상교통(버스.택시) 수단이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다.
이곳에서 내려 인근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짧은 시간이 되겠지만 긴 항공여정에서 생겨난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보기로 한다.
내게 있어서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항상 여행의 첫날이 긴 비행시간으로 인하여 가장 피곤을 느끼곤 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첫날이라 아직 여행자의 몸과 마음가짐이 적응이 덜 된 상태이기에 더더욱 크게 피곤을 느끼게 되는것 같다. 오히려 귀국하는 날은 그에 비하면 훨씬 수월한 느낌이다.
하지만 여느때처럼 여행의 첫날은 아무리 피곤해도 쉽게 단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만다.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게 된다.
막연하나마 어떤 여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랄까?
여행중에는 항상 당연시되는 아침 산책을 이날은 취소했다.
대신 비행기 탑승을 위해서 큰배낭 작은 배낭에 나름 정리해서 보관했던 짐들을 다시 분리해서 갈무리 한다. 이젠 휴대하고 다닐 짐과 보관해 두고 다닐 짐을 분리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걸어서 다리 하나를 건너 코 앞에 닿을 듯 놓여있는 '산타 루치아 역'으로 향했다.
오후에 피렌체로 가는 기차편을 우선 예약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약된 기차표를 지갑에 갈무리하고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할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대신 커피만 한잔 마셨던 터라 우선 브런치 삼아서 어디에서든 요기를 좀 하고나서, 숙소에 들려 체크아웃과 함께 배낭보관을 부탁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베네치아'를 즐겨보면 된다. 기다려라. 베네치아야.........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은 모든 베네치아 여행의 시작이자 종착지이다.
--- 다음 이야기에서 부터 본격적인 베네치아 여행(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 럽 트래블 / 이탈리아) 걸어서 베네치아여행 - 2부 (0) | 2019.02.14 |
---|---|
(알 럽 트래블 / 베네치아) 아주 독특한 풍광의 베네치아를 만나다 (0) | 2019.02.11 |
(알 럽 트래블) 오스만 투르크의 역사를 통해 들여다보는 '보스니아 사태' (0) | 2018.12.19 |
(알 럽 트래블 / 터키) 역사의 향기로 기억되는 도시 '이스탄불' (0) | 2018.12.17 |
(알 럽 트래블 / 터키)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곳 '이스탄불' (0) | 2018.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