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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터키) 역사의 향기로 기억되는 도시 '이스탄불'

by 피안재 2018. 12. 17.

 

 

 

 

 

 

 

 

 

 

 

 

 

 

 

 

 

 

 

 

 

 

 

  한 번의 여행이 끝나간다는것은  곧  다음 여행이 사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 진다는 뜻이다.

  한 장소를 떠날때면 곧 잘  '다음에 이곳에 오면 무엇을 꼭 해보아야지' '어디를 먼저 다녀왔어야 했는데' '무엇을 꼭 먹어본다고 해놓고는'  등의 아쉬운 기억들을 뒤에 남겨놓게 된다.  '다음에 다시  오기위해 일부러 남겨 놓은거야' 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돌아서지만......  여행을 계속하다보면 그 남겨놓은 아위움의 목록들이 점차 늘어나서  어느새 제법 두꺼워진 페이지로 다가온다.

  지지난번에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남겨놓고 떠나기가 아쉬웠고,  지난번에는   미마르 시난에게 인사를 못하고 떠나는게 아쉬웠다.  그리고 이번엔  새 이스탄불 공항에게 인사를 못하고 떠나는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고 할까?

  10월 초에 귀국하는 나는  10월 23일에 개항 예정인  이스탄불 신공항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 다시 이스탄불에 오게될지 알 수 없는 처지로서는 아주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긴  오늘  폐장 전의 마지막 아타튀르크 공항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의미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현재 신공항은  극히 일부의 항공사만 이용하고 있고,  12월 말일부로 완전 개항에 들어가기로  조금 연기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여행에 있어서 '다음번' '다시' 라는 것은 아쉬움 보다는  '기다림'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그 '다음'이란 의미의 단어가  항상 내 주위에 머물러 주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스탄불 시르케지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나의 여행에 있어서 최고의 자유와 보람은 그곳의 거리를 마음껏 걷는데 있다.  골목 산책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이 골목의 끝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다가 한웅큼의 햇살이 내리비치는 골목어귀 노천 카페에 앉아서  따스한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던가,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실 수 있는  그런 짜릿한 일탈을 기대하면서 걷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여느때처럼 나는 시르케지의 골목길을 나선다.

  물론 오늘도 어디를 먼저갈까 하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오늗로 볼펜을 하늘로 던져서  볼펜심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골목을 나가면서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향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가보기로 작정한다.

  헐.  같은 숙소에 머무는 사람이  빵사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면  다시 숙소로 되돌아와 오늘 산책은  무조건 취소다.  한번 마음먹은 것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했기로서니...........

  설마?

 

 

 

 

 

 

 

 

 

 

 

 

 

 

 

 

 

 

 

 

 

 

 

 

 

 

 

 

 

 

 

 

 

 

 

 

 

 

 

 

 

 

 

 

 

 

 

 

  골목길에서 처음 눈에 띈 사람은 동시에 두명이었다.

  한 명은 방향을 정하지 못한 모습으로 분명하게 서 있었기에 제외를 하고 보니,  다음 사람은 지금 바쁘게 칼라타 다리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도 다지지도 않고 무작정 그사람이 향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사람은 시르케지 전철역을 앞두고 길을 건너 예니자미 뒷쪽의 골목길로 접어 들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살펴보았다면 새벽부터 눈군가를 미행하는 사람쯤으로 보였을 수도.......

  그런데 아뿔싸.

  골목 안쪽에서 그 사람을 놓쳤다.  혹 자미에 들어갔나?

  뭐 다른 의미가 있었겠어?  그냥 여기서부터는 평소 하던대로 하라는 계시겠지.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갈라타 다리를 건넌다.  이 사람들 이거  여기서 낚시로 밥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가?  그럼 이들이 모두 어부여?  아님 낚시꾼이여?

  다리를 건너 카라쿄이 선착장을 바라보니 벌써 페리를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시아지역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우루르 쏟아지듯 배에서 내린다.

  이스탄불에 활기찬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카라쿄이 지역에 들어가니 길가의 간이 스낵점들과 카페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다.  출근길에 간단하게 차나 커피와 빵 한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도 먹음직스럽다.

  햇쌀이 들이치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아메리카노를  한잔 주문한다.  터키 커피는 아침에 마시기에는 너무너무 진해.........

  메르하바.

  메르하바 이스탄불.

 

 

 

 

 

 

 

 

 

 

 

 

 

 

 

 

 

 

 

 

 

 

 

 

 

 

 

 

 

 

 

 

 

 

 

 

 

 

 

 

 

  아침 산책을 걷다보니 어느새 아스틱랄 거리까지 오고 말았다.

  서둘러 아침 출근을 하는 사람들뿐  빨간 트램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 이른 아침이다.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보니  더 이상 앞으로 걸어나갈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탁심 스퀘어에 가본들........ 

  오전중에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갈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맞겠다 싶다.

  돌아사는 발걸음으로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에  술레이마니에 자미에 들러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마르 시난)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지.......

  다시 언덕을 내려가며 갈라타 타워를 골목어귀에서나마 올려다 보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서는  예니 자미 인근에 들어선 향신료로 유명한 이집션 바자르를 구경하면서 골목을 거슬러 언덕을 오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찬 터키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가 있다.

  술레이마니예 자미로 질러가는 지름길이다.

 

 

 

 

 

 

 

 

 

 

 

 

 

 

 

 

 

 

 

                              --- 갈라타 다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술레마니예 자미.

 

 

 

 

 

 

 

 

 

 

 

 

 

 

 

 

 

 

 

 

 

 

 

 

 

 

 

 

 

 

 

 

 

 

 

 

 

 

 

 

 

 

 

 

 

 

 

  마침내 슬레마니예 사원을 다시 찾았다.

  사원을 참배하는 순례자들과  알바니아에서 결혼 사진 촬영차 방문한 예비 부부를 만났다.

  그리고 사원의 담벼락을 나서서야 마침내 (미마르 시난)을 만날 수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술탄으로 추앙받는  술레이만 대제의 무덤인  슬레마니예 자미를  미마르 시난이 건축했다.  오스만 역사상 최고의 건축가이다.  하지만 끝내 그는  슬레마니예 대제의 영역인  자시 안에 뭍히지 못했다.  담장 밖에 그의 무덤이 설치되었다.  수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자미의 안쪽에 뭍혔다.  슬레이만 대체의 업적과  그 안에서 눈부신 공적을 세운  미마르 시난은 당연히  술탄의 가장 가까운 곳에  뭍혔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런 그가 왜 담장 밖으로 밀려나야만 했을까?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투르크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데브 쉬르메 제도)에 의해서 탄생한  기묘한 운명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그의 위대한 업적 이면의 소소한 개인적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거의 신화적인 존재이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일생을 바쳐 오로지 존경과 충성을 다바쳤던  술레이만 대제의 곁에 뭍히지 못한 자신의 삶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아주 짧게 머물렀던 이번 이스탄불에서의 시간은  유명 여행지 보다 그저 지극히 일상적인  터키인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있는  도심과 골목길 여행에 중점을 두었었다.  다분히 내 취향과 내 성격에 맞는 그런  조용한 산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여행의 말미에  (미마르 시난)을 다시 만났다.

  홀로 뚝 떨어진 그의 묘소 옆에 앉아  시공을 초월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여행기의 말미에 짧게나마  그를 소개하고자 했었는데.........

  송년 모임에서  한 지인으로 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바로 (미마르 시난)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인은 아주 특별하게도  지난달에  '보스니아 여행(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동유럽을 여행하는 분들이 늘어나기는 해도  보스니아를 다녀오는 분들은 그리 많은편이 아니다.  열정적인 가이드를 만나서  벼락치기 보스니아 투어를 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그리고 오스만 제국 점령 당시에 건설했다는  아름다운 다리에 관해서 질문을 해왔다.  그 와중에 (미마르 시난)의 이름이 등장했다.

  20세기 말을 장식한  참혹한 전쟁과,  여전히 분쟁이 가시지 않는 일촉즉발의 화약고  보스니아 주변의 역사를 가이드의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부분이 있어서  부연 설명을 부탁받았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지역에 있는 두 개의 다리에 관한 역사도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라예보 인근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리는 세개가 있다.  그런데 여행사들이 쉽게  두 개만 중점적으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내 여행 버킷리스트에  보스니아 알바니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내 여행스타일이  역사를 기반으로  스토리가 있는 여행을 추구하다보니.  이곳을 방문하자면  크로아티아 뿐만이 아니라  보스티아. 세르비아를  포함하는  발칸반도 전체를 둘러보아야 한다는 전제가 우선된다.  폴란드와 체코와  유고 연방의 역사가 한데 어우러지는 여행이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비용 이전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내 직업상의 이유로  그나마 한가한 겨울철에 이곳을 모두 돌아보기에는  추위가 커다란 장애가 된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어 오고 있는  희망 여행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곳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알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에 관해서나,  오스만이 이곳에 뿌린 역사적 씨앗이며,  그 안에서의  미마르 시난이며.........

  그래서,  이번 이야기 말미에 짧게 소개하려 했던  미마르 시난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십자군 전쟁사'  이후에  다시 한번 '보스니아 역사와 오스만' 이라는  내용으로 특집 성격의 다음 이야기를 한번 써 보려고 한다.   지인의 부탁도 들어드릴겸해서......... 

 

 

 

 

 

 

 

 

        ----  다음 이야기에서  '보스니아 사태 속의  오스만 투르크'를 그리고 '미마르 시난'을 다시 조명해 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피안재.

 

 

 

 

                                         --- 미마르 시난이 건설한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모스타르 다리'(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