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세리 공항 대합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하고 낭랑한 목소리. 그것은 지금 내가 또 한번 터키 땅에 발을 내딛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에 충분했다.
'아! 터키는 무슬림 국가이지? 새벽나절의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이고? 그나저나 내가 조지아에서 성당에서 치는 종소리를 들어 봤나 못들어 봤나?'
무슬림 국가 아니라고 우기기라도 할까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러는 것일까? 시간이 몇시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에 다섯번 정해진 시간 중의 하나일 테니까. 허연 백주대낮에 해당하는 시간이 도대체 몇 시였더라?
알라는 위대하시도다.(알라 후 아끄바르)
나는 알라 이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하노라.(앗쉬하두 알라 일라 하 일랄라)
나는 무하마드가 알라의 사도임을 증언하노라.(앗쉬하두 안나 무함마다르 라쑤 룰 라)
예배 보러 올 지어다.(하이야 알라 솰라)
행운을 빌러 올 지어다.(하이야 알라 팔라)
알라는 위대하시도다.(알라 후 아끄바르)
알라 외에는 신이 없도다.(라 일라 하 일랄 라)
어디 멀리 천상에서 울려오는 듯한 애잔한 음성이 하늘가득 울려 퍼지고 있다.
여기는 드넓은 터키 영토의 중앙부인 아나톨리아 평원의 한복판 카파도키아의 중시도시 카이세리다.
여행중에 이슬람 지역이라면 언제 어느 장소에서건 하루에 다섯번은 불변의 약속처럼 울려퍼지는 '아잔(adhan)' 소리다. 무슬림들의 성스런 예배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소리다. 성당의 종소리라고 이해하면 쉽겠다.
언제나 목청을 한껏 돋운것 같은 한결같은 목소리, 그리고 같은 리듬으로 영원불변의 이슬람 교리를 낭송한다. 마치 우리나라 해질녁 국기 하강식때마다 울려퍼지던 '국기에대한 맹세' 생각이 났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미리 레코딩 된 테이프가 정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같은 음성, 같은 내용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잔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잔을 읽는 소리는 레코딩 테이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방송이다. 영원한 불문율이다.
방송 장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하루 다섯번 정해진 시간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아딘(mu adhdhin)'이 종탑에 올라가 양 집게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고 메카를 향하는 방향으로 서서 아잔을 읽어내려 갔다. 이슬람의 알라신에 대한 예배가 탄생하면서 부터 지켜내려온 불문율과 같은 것이다.
아잔을 읽어내려가는 무아딘을 특별히 양성하는 학교가 별도로 있다. 그 학교에서 자격을 얻은 사람이 전국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에 파견 주재하면서 하루에 다섯번 이같은 의식을 정확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특이하게도 어디에서건 같은 목소리, 같은 리듬. 같은 톤, 같은 내용으로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특이한 경험이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왜 현대 과학문명에 접속을 안하고 있을까? 그 또한 신의 뜻일까?
비가 내리는 트빌리시의 유령호텔을 타와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간단하게 출국수속을 마치고 새벽 4시15분에 아쉬운 조지아와 작별을 하고 아침이 밝아올 때 터키 이스탄불의 사비하 콱첸 공항에 내렸다. 처음으로 사비하 공항을 이용해 본다. 우리나라 작은 지방도시 공항만 하다. 그리고 여전히 이스탄불에도 비가 내렸다.
이 미친것 처럼 따라다니는 장거리 아동만 할려면 비가 따라다니는 징크스는 이젠 아주 넌더리가 날 정도이다. 시즌 날씨가 말짱하다가도 이동만 하려면 불쑥 소나기 구름이 어디선가 몰려온다. 참으로 기가막힐 노릇이다. 하긴 이젠 어느정도 만성이 될 때도 된것 같다. 오히려 비가 안와도 이상할 것 같다.
비바람을 맞으며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카이세리로 향했다.
다행이 카이세리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참으로 쾌청했다. 아주 약간 무덥다고 느낄 정도였다.
카이세리 공항은 터키 공군과 함께 이용하는 비행장인것 같다. 활주로 옆으로 수송기가 많이 놓여 있다.
공항 곳곳의 경비와 드나드는 분위기도 보편적인 사설 비행장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아주 아주 작은 손바닥만한 비행장이다.
카이세리는 카파도키아 지방의 가장 큰 상업도시다. 항공과 육상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이라 할 괴뢰메 지역과 약 80km 나 떨어져 있어서 관광도시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어보이는 도시다. 주로 여행자들이 카파도키아를 여행자자면 꼭 지나쳐 가야하는 경유지로서의 역활뿐이라고나 할까?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하고나니 여행 전 책에서 읽었던 바대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괴로메 지역과 이백리나 되는 멀리 떨어진 공항이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사전에 호텔을 예약하면서 공항픽업을 필수로 신청을 하는 것이다. 공항에서 걷던 시내버스를 타던 택시를 타고 일단 카이세리 시내의 터미널까지 가서 다시 괴뢰메까지 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쏟아놓은 여행자들은 썰물처럼 기다리던 픽업차량을 타고 모두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난 일단 환전이 필요했다. 조지아를 떠나는 순간부터 유로화와 달러만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려면 리라(터키 화폐)가 필요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카이세리 공항에는 은행이나 환전소가 없다.
망설이던 끝에 주변의 상황을 좀 알아보고 나서 손님을 픽업하려고 나온 미니버스의 기사에게 다가갔다. 상황 설명을 하고 괴뢰메까지 동승을 부탁했다.
기사는 멕시코에서 오는 8명의 손님을 픽업하러 나온 길이었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봐서 괜찮다고하면 태워줄 수 있다고 한다. 리라가 없는 상황이기에 요금도 6유로(8천원)에 합의를 봐 두었다. 터키의 환율은 나중 문제고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이백리(80km)를 가야하는데 우리 돈 8천원이면 '내가 고맙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분쯤 지나 멕시코 여행자들이 나왔고 내가 나서서 상황설명과 함께 부탁을 했다. 흔쾌히 허락을 해주어서 미니버스에 올랐다.
한참 평원을 달려 마침내 카파도키아의 중앙 한복판 터미널에서 내렸다.
역시........
'지구 속의 또 다른 행성' 이라고 들었왔던 것처럼 생전 처음보는 풍경과 아주 낯설은 이질적인 분위기에 잠시 당혹스러움이 생겨나기도 했다.
'여기가 카파도키아가 분명하게 맞기는 한가보네........'
딱히 무어라고 딱 꼬집어 말할수는 없겠지만서도......... 그냥 마음 편하게 마음이 가는데로 자연스럽게 떠난다고 늘 생각했던 나의 자유여행 스타일에서도 어쩌면 조금은 편식(?)하는 마음이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카파도키아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동안 어찌되었던 간에 터키를 네번씩이나 드나들었으면서 이번에 겨우 찾아왔으니 말이다.
'카파도키아 가봤어? 어땠어? 벌룬 타 보았고?'
'파묵칼레에서 수영해 봤어?'
터키를 다녀왔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안탈랴가 그렇게 멋있고 즐길꺼리가 많다며? 어땠어?'
'에페소 유적이 그렇게 멋있어? 사진 좀 보여줘봐?'
'배 타고 지중해로 나가봤어? 로도스 섬이 아주 가깝다며. 산토리니까지 가 본거야?'
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은 나 하나도 안가봤어. 이상하게 남들이 다 좋다고하는데는 그렇게 별반 나의 관심이 안쏠려. 마음이 덜 가. 왜 그러지?
나는 말이야. 죽자사자 그냥 이스탄불이 좋아. 오로지 이스탄불 뿐이야. 나도 몰라.
트라브존은 육로로 코카서스 가느라 경유지로 가보았고, 카파도키아는 이제 막 당도했지만 파묵칼레는 앞으로도 쭉 관심이 없어. 내가 봐도 참 이상하지?
산느 우르파나 하산케이프. 말라트야. 마르딘에 더 관심이 있어. 이곳을 통해서 리비아의 팔메이라나 다마스쿠스에 갔으면 좋겠어. 어쩌면 이미 다 파괴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혹 그리이스에 간다면 돌아오는 길에 산토리니에서 로도스까지 배를 타고 와서 보드룸이나 페티예나 안틸랴에 들러보겠지만.....
카파도키아에 대한 정보는 이미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모두 습득하고 있은 다음이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나 나의 여행 계획표에서는 제외되어 왔었다.
그리고 사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터키하면 죽어라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정히 그렇다면 한번 다녀와 주지 뭐. 사진이나 많이 찍어 올께' 하는 다소 멋쩍은 기분으로........ 시작은 분명 등 떠밀려 마지못해서 택한 코스였다. 그나마 이곳에 엮어서 셀축이나 부르사가 연계가 가능하다는 전제때문에 이번에 마침내 카파도키아를 찾았던 것이다.
지금 터키의 모든 여행업계는 무법천지다.
업계의 상당수가 버젓이 허가받은 것처럼 사기 행위를 당당하게 저지르고 있다.
터키여행에 연계한 대한민국의 여행사(업자)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묵계하는 것인지 아님 부당한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것인지 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비정상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자행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지 30분 만에 나는 이 엄청나게 그릇된 현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미국과 터키의 정지적 사안으로 대두된 '환율전쟁'은 사실은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간의 쫌살스러운 알력다툼으로 느껴지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엄청난 끗발의 힘으로 결국 '터키 리라 화폐 가치는 폭락하고 말았다.
'터키 여행 간다면서, 이럴때 터키 리리로 왕창 교환해 놓으면 크게 이득 보는것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는것이나 현실적으로나 올바른 판단이겠지. 하지만 우리도 IMF 격어봤잖아. 남의 재난을 상업적인 이익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내 마음이 허락하지를 않아. 그냥 예전처럼 가서 물가가 많이 싸졌으면 현장에서 꼭 그만큼만 혜택을 보는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오히려 그네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예전보다 조금 더 돈을 쓰고 와야겠지.'
난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마음으로 카파도키아을 찾았다.
그런데........ 결코 아니었다.
그냥 한국의 여행사에 목돈을 지불하고 가이드만 쫄쫄 따라다니다 온다면 별반 아루런 문제를 아마도 못 느끼겠지만, 모든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해야 하는 자유여행자에게는 이건 커다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결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부조리한 행위인 것이다.
'미국과의 환율 전쟁으로 생긴 터키화폐의 폭락은 해외 직구를 통해 터키산 버버리 코트를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터키 여행의 절대적 찬스' 라는 문구가 검색어 상위를 기록하는 진풍경을 낳게도 했다.
늦가을에서 겨울철의 터키여행은 절대 비수기이다.
하지만 그넘의 '폭락한 환율' 덕분에 터키의 여행업계는 전대미문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어딜가나 사방으로 동양인 러시를 이룬다.
아마도 한국인과 중국인이 비슷한 비율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일본인이다. 그들의 입에선 '환율 인하로 인한 특수'를 누려보려고 왔다고 말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이번 환률 전쟁이 여행자에게 그렇게 큰 특별한 혜택으로 돌아왔을까?
환율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의 예를 간단하게 들어보자.
터키화페 10 리라는 우리 돈으로 약 2.400원 정도였다. 미화로는 약 2.1 달러가 된다.(<1리라(터키화) = 240원(한화) = 0.48 달러(미화)>
호텔 방을 500 리라에 잡았다면 이는 104 달러가 되고, 우리 돈으로 약 십이만원 정도가 된다.
터키 화페가 폭락했다. 적을 때는 18%에서 많게는 25% 이상까지 폭락했다.
그래서 내가 현지에 갔을 때는 <1리라(터키) = 190원(한화) = 0.38 달러(미화)> 가 현지에서 적용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평소 500리라 하던 방값은 당연히 395리라를 받아야 하고, 우리 화페로는 94.800 원이 적용 되어야 한다. 달러로는 82 달러가 맞는다.
그런데 현지의 모든 여행업계는 이 상황에서 아예 '터키화페인 리라로 책정했던 기본 금액'을 삭제내지 무시하는 엉뚱한 사기 방식으로 바꿨다.
그냥 방 하나에 애초에 104달러에 책정해왔던 금액만을 제시하고 (500 리라) 항목을 가려버렸다. 그리고는 104달러에 현재의 리라 환율을 거꾸로 곱하는 셈법을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은행에서 환전할 때 환율차로 이득을 본 부분을 고스란히 다시 토해놓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여행업계 전체는 환율전쟁 이전의 수익률을 그대로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불합리한 방법으로 말이다.
호텔등의 숙박없소. 식당. 여행사 투어상품....... 모두가 마찬가지다.
여행자가 직접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슈퍼나 노점에서 무엇을 사먹었을 때에만 환율차의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려고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면서 뼈저리게 느껴지는 아픈 부분이었다.
일단 실질적인 비용의 절감이 피부에 와 닿아야지 '환율 때문에 이렇게 되었구나' 라고 느끼겠는데......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만 넘쳐나고 오히려 몰려드는 인파덕분에 더 비싸게 배짱 장사를 하고 있다.
우리 여행사의 경우도 이를 해명하지 않고 몰려드는 여행자만 늘어난다면 절반의 이득을 적당히 터키 여행업계와 나누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때문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절약이 되고 무슨 혜택이 있는지 알려 주지도 않고 알 수도 없다.
오로지 그냥 '지금이 다시없는 절대적 찬스' 라고만 늘어 놓는다. 그리고 순진한 여행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기꺼이 지갑을 연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건 보편 타당한 선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이 아니다. 이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비 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기행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 그렇게 보고 경험했다.
(불루) 문구가 들어가는 호텔에 들어가 물어보니, 어젯밤에 인터넷 싸이트를 통해 검색해본 금액보다도 오히려 더 비싸게 부른다. 부디 저주받을 지어다.
'어디까지 막나가는지 한번 끝장을 보자'하고 계속 발품을 팔아보았다.
낯선 초행지의 언덕길을 걸어올라가면서 보이는 호텔마다 죄 다 들려보았다.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다. 국가는 재난이지만 여행업계는 특수를 보고있다.
언덕에서 호텔 앞 도로를 쓸고있는 젊은 남자를 만났다. (유니콘 케이브 호텔) 매니저였다. 숙소를 구한다고 물었는데 청소를 하다말고 그냥 올라가서 차부터 한잔 마시라고 한다. 내가 힘든 표정으로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가 처음 제시한 금액이 3박에 650 리라였다. 비싸다고 하니까 600 리라까지 해준단다.
다소 망설이다가 상대가 젊고 친절한 사람이기에 독한 마음 먹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나는 환율 전쟁으로 인해 터키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때그때 현지 사정에 맞게 이득이나 손해도 없이 그저 예전에도 터키를 좋아했던 만큼 그냥 평범한 일상처럼 지내려고 하는데, 현지에서 느껴보기로는 여행업계만은 오히려 거꾸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도 비 도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라면서 지금 행해지는 환율 문제를 지적했다.
매니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그런면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면서 내게 사과를 한다.
순간 당황했다. 이것이 그가 나에게 사과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내가 큰 결례를 범한것 같아서 서둘러 일어나 배낭을 챙겼다. 어차피 거래는 캔슬이 난것이고 서둘러 이 자리를 뜨는게 서로에게 좋을것이라 생각되어서 였다. 손을 내밀었는데 그가 악수를 받아줄 생각을 안한다. 화가 났나? 그런데.......
'그렇게 실질적인 내용으로 지적을 해주는 분이 그동안 한분도 없었습니다.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마음 한구석으로 무언가 찜찜했었거든요. 사과드리는 방법으로 치고 손님께서 그냥 저희 호텔에 머물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금도 손님께서 지적해 주시는 방법으로 셈해서 말입니다. 3박에 530 리라 정도면 머물러주시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해를 해주셔서 고맙네요. 금액은 따로 계산을 안해보았지만 그냥 쉽게 500 리라에 주시지 않겠습니까?'
'500 리라요? 음....... 좋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좋은 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여행 후에 저희 호텔이 썩 괜찮더라고 여기저기 홍보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주 훌륭한 매니저를 만나게 되어서 제가 영광입니다. 물론 힘 닿는데까지 여기저기 자랑을 하겠습니다. 카파도키아 가게되면 (유니콘 케이브 호텔)을 찾으라고 널리 알리겠습니다.'
방은 좀 작은 편이었지만 싱글 침대가 2개나 있어서 하나는 테이블로 사용했다. 그래도 카파도키아에서 동굴호텔에 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이때까지는 몰랐는데......... 그 젊은 매니저 속내가 깊고 상당히 정직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품격있는 매니저였다. 흔한 장사꾼이 아니란 말이다.
대충 짐을 풀어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산책을 나서려는데 매니저가 할말이 있다고 부른다.
내일 오전에 체크아웃하는 러시아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가고나면 지금의 내 방 바로 윗층의 다른 방으로 바꿔주고 싶단다. 지금 방도 그런대로 만족한다고 했더니만....... 2층 방이 좀 더 넓고 발코니가 있어서 카파도키아를 내다보는 뷰가 훨씬 더 좋단다.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콜 아니겠는가? 다음날 점심에 방을 옮겼는데....... 아래층보다 세배는 더 좋았다. 카파도키아에 간다면 당연히 유니콘 세이브 호텔 발코니 있는 2층에 머물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침 조식을 제공해 주겠단다. 조식은 아예 생각이나 기대에 없었다. 저렴하게 방을 얻었으니 나가서 사먹으려고 생각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아침이란게..........
일단은 산책부터 하고 나서.........
--- 괴뢰메 선셋 포인트(일출 전망대). 바로 아래에 유니콘 케이브 호텔이 있다.
이런것을 '허파에 바람들었다'라고 하는걸까?
아무 이유도 없이 시도때도 없이 실실 혼자 웃는다. 의식을 하던 안하던 저절로 피식피식 웃고있는 나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사막을 건너오느라 모래먼지를 잔뜩 머금었을것만 같은 실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당연히 사막을 냄새를 품었을것만 같아 하늘을 향해 킁킁거려 보지만 아무런 냄새도 없다. 아니지. 나는 아직 사막의 냄새를 모른다.
훗훗훗.
가만히 나란 녀석을 들여다보니 하는짖이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너무도 강렬하다. 충격으로 다가온다. 너무 놀라면 당연하게...... 반쯤 정신줄 놓고 실실 거리게 마련이다.
카.파.도.키.아.
이미 방송이나 책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았던 풍경이었지만 눈으로 읽었던 카파도키아와 가슴으로 보는 카파도키아는 너무도 달랐다. 가히 충격적이다.
나는 지금 카파도키아에 있다. 전망대에 올라 지구와 전혀 다른 어떤 행성을 바라보고 서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일출이나 일몰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 사람이 아니다.
기억에 남는 일출이라면 미얀마 바간에서 맞이했던 신년 첫날 일출이 인상적이었고, 이번에 조지아 카즈베기 산의 일출은 내가 간절하게 원해본 거의 처음 일출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내가 올라가서 일출을 보았던 두 군데의 사원 모두가 이제는 문화재보존의 차원에서 출입 금지가 되었다니, 이제 바간의 일출. 일몰도 그냥 평지에서 보아야 한다니 감흥이 뚝 떨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바간에도 벌룬투어가 있지만 허접한 벌룬투어임에도 비용이 카파도키아의 두배에 가까우니 알아서 할일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댓가가 가장 험악한 벌룬투어가 바간일 것이다. 극구사양 권고. 다음으로 캄보디아 프놈바껭의 일출은, 특히 내가 갔던 그날이 아주 좋은 날씨라고 해서 죽어가 뛰어갔다가 허탕을 치지 않았던가. 워낙 강수량이 많은 동남아의 우기였으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가 또 있을까?
여기 카파도키아에 머무는 동안에는 매일 꼬박꼬박 일출과 일몰을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던 것이다.
강수량이 지극히 적은 지방이요, 바람이 문제이지 날씨는 거의 대부분 쾌청한 지역이 아닌가? 거기다 일출 일몰 포인트가 숙소에서 빤히 올려다보이는 바로 지척인 곳이다. 아울러 아침 저녁으로 별로 할 일이 없다. 새벽 산책을 나가도 전망대요 저녁 바람을 쐬러 나가도 전망대다. 어덯게 살다보니...... 싸돌아 다니다보니 이런 날도 겪어보게 생겼다. 보기 싫어도 어절 수 없이 일출 일몰을 지겹도록 봐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여행을 말이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전체 도심 전경을 보고 싶어서 우연히 언덕길을 찾아올라간 곳이 바로 전망대일 줄이야?
두리번 거리다가 간이 매점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내려오려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줄줄줄 올라들 오고 있다. 그제서야 책에서 읽었던 일몰 포인트가 이곳이라는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올라 온김에 일몰을 보고 내려가는 수 밖에......
달리 할 일도 없고.........
카파도키아에 밤이 찾아 들었다.
조명이 밝혀진 카파도키아는 완전히 또 다른 분위기와 정취를 드러낸다. 가만히 앉아서 둘러보기는 밤의 정취가 훨씬 아름답다.
낮의 카파도키아가 열심히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도시라면, 밤의 카파도키아는 아무곳이든 조용히 앉아서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농익은 카파도키아가 슬며시 여행자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온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붐비는 관광지의 치안이나 여타의 걱정없이 그냥......... 살짝 가랑비라도 내렸으면 더없이....... 밤길을 거닐기에 더 없이 매력적인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그런가 하면 카파도키아는 매우 불편하고 여행자를 짜증스럽게 하는 면도 있다.
대형 마트나 슈퍼마켓이 없다. 작은 면소재지 정도라 돌고 돌고 또 돌아보아도 제대로 된 마트가 없다. 구멍가계 수준의 소형마트들 뿐이다. 맥주는 흔하게 팔지만 와인을 파는 곳이 많지 않다. 거기다가 질 좋고 저렴한 와인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럴줄 알았으면 트빌리시에서 서너병 사들고 오는건데........ 가장 저렴한 와인이 트빌리시의 세배에서 다섯배 정도 가격이다. 품질도 그리 기대가 가지 않는다. 포도도 매우 비싸다. 거의 한국에서의 가격에 육박한다.
상상초월에 기절초풍 수준이다.
내가 웬만큼 여행을 다녀본 처지로 와인을 빵하고 비스켙을 안주로 마셔보기는 카파도키아가 태어나서 처음이다.
거기다 더욱 기가찬것은........ 이런일이 여기 카파도키아에서만 그렇더라는 놀라운 현실때문이다.
카파도키아에서의 마지막 날 가까운 인근 마을 (위르굽)을 방문했다. 그런데 세상에.......... 재래시장도 서고 대형마트도 있고 여기저기 과일들이 차고 넘쳐나는데 무지무지 싸다. 와이너리도 있다. 와인이며 과일이 트빌리시와 별 가격차이가 없다. 카파도키아에서 미니버스로 15분 정도 떨어진 마을인데도 말이다. 첫날 이곳을 먼저 들렸었다면 매일 이곳으로 장을보러 왔을 것이다. 어쩌자고 같은 지역에서 이런일이......... 여행자를 모두 호구로 보는가?
카파도키아는 여행자를 감동으로 몰고 갔었다.
카파도키아는 여행자에게 심한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망할놈의 치졸한 거짓 상술만이 판을 치고있는 지상 최악의 낙원' 이었다.
나는 앞으로 내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카파도키아는 일생에 꼭 한번은 가볼만한 곳이야. 다만 아주 짧게 벼락치기로 다녀오고, 두번 다시는 쳐다 보지도 마. 사람을 지페로 보는 사람들이 사는 구약성경의 소돔 같은곳이 바로 카파도키아야.' 라고 말해주겠다.
카파도키아에서는 소매치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자를 상대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매치기 이상이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의 랜드마크는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신비스런 버섯바위가 아니다.
카파도키아의 랜드마크는 사람이 만들어낸 형형색색의 애드벌룬이 만들어내는 찬란하고도 매혹적인 아침 풍경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드벌룬이 카파도키아이고 가장 덜 아름다운 애드벌룬이 미얀마 바간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풍경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가성비로 따져도 카파도키아가 최고이고 미얀마 바간은 가성비 최악이다.
새벽에 일어났으니 산책삼아 당연하게 일출 전망대로 향했다.
지구상에 부지런한 여행자는 모두 카파도키아로 몰려 들었다. 어휴~~~~~
새벽의 일출전망대는 쌀쌀하다. 아니 한겨울만큼이나 춥다.
모두가 방한복으로도 모자라 담요까지 푹 푹 뒤집어 쓰고들 올라왔다.
그런데 한순간......... 어느 한순간 여자들이 너도나도 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잠옷차림인지 웨딩드레스 차림인지 슬립 차림인지...... 더도나도 훌훌...... 아니 훌러덩 옷들을 벗어재껴버렸다.
무엇이 이 여인들로 하여금 이 추위속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게 만들고 있는가?
그것 참 신통방통한 미스테리가 아니겠는가? 이유는 대략 두가지라 할 수 있겠다.
시뻘건 불꽃을 울리며 애드벌룬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카메라 렌즈가 여인들을 향하면......... 너도나도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훌러덩 훌러덩 옷을 벗는다.
참으로 심비한 인간 본연의 모습들이 아닌가?
'인생 샷'에 목숨을 건 여인들의 퍼포먼스가 애드벌룬이 서쪽 언덕 너머로 질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또 하나의 기가막히게 멋진 풍경들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이 생각이 난다. '사람이 더 아름다워........ 하는 짓이 더 아름다워.........'
이 추위에 훌훌 벗는 여성들도 대단하지만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죽어라 가메라 앵글을 들이대고 쫄쫄거리며 따라다니는 남친(?)들도 위대하다.
그넘의 인생샷이 뭔지? 그넘의 점프샷 때문에 무릎 인대 다 날아가겠다.
어쨌거나 말거나........
카파도키아의 새벽은 충격적일만큼 아름답다. 경이롭다는 느낌마져도 저절로 생겨난다.
살아서 한번은 꼭 보라고 말하겠다. 누구에게나. 어디까지나 꼭 한번만........ 짧게 치고나오는 쪽으로 말이다. 배신감 느끼기 전에..........
터키를 포함한 동유럽의 호텔 조식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가끔 뷔페식으로 나오는 곳도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이와 비슷한다.
달걀을 삶아서 내주는 곳이 더 많은 편이다. 정갈하고 건강한 식단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곳 (유니콘 케이브 호텔)의 조식은 정말 최고였다. 정말로 정말로 인상적인 조식이었다.
내 방 바로 앞 테이블에서 먹고 싶다고 하자 모든 음식을 그곳까지 가져다가 셋팅까지 손수 해준다. 모든것은 또한 무한리필이다.
가족끼리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호텔에서 정말로 정성을 가득 담아서 내 놓는 아주 훌륭한 식사였다.
천연 벌꿀과 포도 딸기 쨈과 더불어 다섯가지 소스에 찍어먹는 아침빵은 그야말로 맛의 예술 경지였다.
첫 아침식사를 하면서 단박에 좀 미안한 생각부터 들었다. 이런 정성 가득한 아침까지 포함될줄 알았다면 어제 한푼도 안깍고 그냥 650 리라를 다 주었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서 음식을 통한 충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행복감? 그랬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그날.
그날 저녁부터 잠자리에 들면 항상........ 아침 조식이 떠오르고 기다려 지기까지 했다.
(유니콘 케이브 호텔)의 맛있는 음식에, 그리고 그들의 배려심 깊은 친절에 오래오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테 쉬퀠레르. 테 쉬퀠레르.(감사합니다)
---- 다음 이야기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카파도키아 투어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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