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카프카스'라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로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때문이었다.
그 기사의 내용 중에 한장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는데, 그 한장의 사진이 나를 두번이나 이곳으로 이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카프카스'는 러시아어로 된 표현이고 영어권에서는 '코카서스'라 부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시작은 정확히 2008년 8월 8일 이었다. 십년이 지난 일을 어떻게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까?
기사를 읽은 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어떤 기념비적인 행사의 기록물을 뒤져보면서 나의 뇌리에 각인시켜놓은 날이어서 잊을 수가 없다.
'베이징 올릴픽'
온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스포츠 축제인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이 바로 2008년 8월 8일 이었다.
티비 화면에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등장해서 인류화합의 축제를 위해서 세계각국에서 베이징을 찾아준 선수들을 환영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때 화면 한구석의 귀빈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소근거렸다.
'부시 대통령님. 저는 방금 우리의 군대를 조지아의 영내로 들여보냈습니다. 부득이한 조치였습니다. 아시고나 계시라고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푸틴은 다시 자기 자리에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꼿꼿하게 서서 무표정한 시선으로 티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시의 표정은 달랐다.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하면서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누군가를 급하게 찾는 표정이었다. 상황을 눈치챈 미국 국토부 안보실장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부시가 무엇이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안보실장이 먼저 부시의 귀에 대고 외쳤다.
'방금 러시아 군대가 조지아의 국경을 넘어 진격을 했습니다. 조지아의 전역에 대대적인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이어서 귀빈석에 앉아있는 각국의 정상들에게 이같은 사실이 수행비서들을 통해서 전달되기 시작했다. 연설을 마친 후진타오 주석에게도 급보가 전해졌다.
모든 정상들의 시선이 일제히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푸틴은 전혀 미동도 없이 무심한 눈길로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올림픽 세레모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께서 이 세상의 모든 땅을 각 민족에게 고루 나누어주며 저마다 자신들의 나라를 세워 살아가도록 배려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신(神) 자신이 머물곳으로 남겨놓았던 땅이 바로 그루지아다. 신이 선택한 땅에서 대신 살아가는 그루지아 사람들은 해마다 잊지않고 신을 초대하여 맛있는 와인과 즐거운 노래로 축제를 연다. 그곳이 바로 카프카스의 보물이자 신비의 땅 그루지아, 바로 그곳이다'
사실은 전쟁 발발을 알리는 신문기사였으나 너무도 낯선 카프카스나 그루지아라는 지명을 이해시키고자 함이었는지 기사는 아주 매력적인 표현으로 그루지아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하여 한장의 사진이 첨부되었다.
'도대체 카프카스가 어디고 그루지아는 또 뭐여?'
'전쟁이고 뭐고 풍경하나는 끝내주네....... 언제고 기회된다면 꼭 가보고 싶다. 도대체 저게 어디 붙어있는거여?'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로 가기위해 아침 산책을 마치고 서둘러 유령호텔을 나섰다.
오늘 유령호텔에는 큰 배낭 혼자서 하룻밤을 지키게된다. 작은 배낭에 세면도구와 긴팔 셔츠와 긴바지 하나씩만을 넣었다. 벼락치기 나들이였는지라 스테판츠민다에 미리 게스트하우스 방 하나를 지난밤에 예약해 두었다.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문득 학창시절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밤 생각이 났다.
2년만에 다시 찾아가는 장소였지만, 그때의 아쉬움이 너무 컸던 때문인지 잔뜩 기대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애꿋은 하늘만 자꾸 다시 올려다본다.
'설마 이번엔 신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시겠지? 아마도 다시는 기회가 없을것 같으니까........'
지하철을 이용한다. 정말 정말 깊다. 한참을 내려간다.
트빌리시 도심의 외곽지역에 해당하는 다두베(Dadube) 역에서 내리면 바로 코앞에 넓고 왁짜지껄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워낙 넓고 붐비는 곳이라 여기저기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면 어디에서 버스를 타야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스테판츠민다 가려는데 버스 어디서 타요?'
'카즈베기? 아. 카즈베기.' 하면서 손끝으로 저만치 광장 건너편 모서리를 가리킨다.
이 사람들 정말정말 국가 정책에 협조를 안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스테판츠민다'를 그렇게 사용하라고 했건만, 버스 창문에 써진 안내판에서도 여행 안내 지도에도 어디에서도 스테판츠민다 라는 표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딜 가나 그냥 카즈베기 카즈베기 뿐이다.
'카즈베기(Kazbegi)'는 바로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의 옛지명이다.
허니 어쩌겠는가? 나도 이제부터는 그냥 카즈베기로 해야겠다.
미니버스인 '마슈르카(Mashrutkas)'를 타고 험준한 산악지형을 타고 넘어서 165 km를 이동해야 카즈베기에 당도할 수 있다. 통상 14인승인 마슈르카는 18명을 정원인것처럼 의자를 개조하였으며, 매시각 정시출발은 말뿐이고 일단 정원이 차야만 출발함으로 통상 십분 이상 지연된다고 보면 된다.
트빌리시 다두베 터미널에서 카즈베기까지는 소요시간이 약 2시간반 안쪽이며 요금은 10 라리(약 5천원)다. 나는 앞쪽의 좋은 좌석(단독의자)를 차지했다.
예정된 출발시간은 이미 넘어섰는데 빈자리가 아직 2개나 남았다.
그때....... 하마터면 나는 놀라 자빠질뻔 했다. 세상에나............ 조...... 조.........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가 허리를 굽히며 미니버스에 올라왔다.
오. 마. 이. 갓.
헐리우드 스타를 이렇게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최고 스타가 이런 미니버스(마슈르카)라니?
헐.
여행 떠나기 전에 (호텔 아르테미스)라는 영화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상당히 놀랐었다.
내가 알던 조디 포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녀가 62년생이니까 내 자신에 비추어 보아도 당연히 상당히 늙었을것이라는게 맞는 현실이겠으나, 내 추억속의 조디 포스터는 (피고인)때의 소녀 모습은 아니더라도 (컨텍트,Contact)에 출연할 당시와 같은 항상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명문 예일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지적인 이미지의 대표 여배우가 아닌가? 내가 다섯손가락 안에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여배우였다.
찰라의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를 빤히 주시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니버스 맨 뒤에 남아있는 좌석만 둘러보더니 다시 버스에서 내렸다. 차비를 수금하고 있는 차주와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표정을 보니 맨 뒤의 좁고 구석진 자리가 불편한것 같아서 차라리 다음 차를 이용하겠다는 것으로 들렸다. 다음차는 1시간 뒤에나 있는데 말이다......... 헐.
내가 차에서 내렸다. 친절하고 자상스러우며 헌신적인 한국인의 긍지를 듬뿍 담아서 말했다.
'함께 가세요. 제가 자리를 양보하지요. 뒷자리가 저에게는 그렇게 불편해 보이지 않는걸요. 다음차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주저없이 내가 작은 배낭을 들고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겨우 비집고 들어갔는데 역시나 많이 비좁다. 무릅이 앞자리 등받이에 닿아서 약간 옆으로 비틀어야 제대로 앉을 수가 있다.
포스터양이 버스에 다시 탔다. 자리에 앉으면서 나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보내온다. 차에 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를 쳐다본다.
아마도 내 얼굴엔 이렇게 쓰여 있었을 것이다. '뭐 그정도를 가지고....... 한국 사람에게 이정도는 기본이라구.' 사실은 조디 포스터에 대한 팬심때문인데.
물론 진짜 조디 포스터는 아니었다.
스물 일곱이나 여덟쯤......... 보름전에 화면에서 만나본 (호텔 아르테미스)에 등장하는 최근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젊은 모습이었다. 또 헐. 그렇다 해도 정말 많이 많이 닮은 아가씨였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피고인) (택시 드라이버) (써머스비) (양들의 침묵) (왕과 나) (매버릭) (넬) (컨텍트) (패닉 룸) (브레이브 원) (플라이트 플랜) (머니 몬스터) (호텔 아르테미스) 외에도 더많은 영화가 있지만 그중에 내가 본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제목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넬) (컨텍트) (머니 몬스터)에 등장하는 조디의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감독이 되어서 영화 한편을 리메이크 한다면 (바람과 라이언)이라는 영화를 그녀를 위해서 리메이크 할 것이다. 영화속의 여주인공 '캔디스 버겐'의 역활을 조디 포스터가 맡으면 딱일것 같다. 숀 코널리역은 찾아보기로 하고.......
이 젊은 조디 포스터 이야기는 후반부에 다시 하기로 하고.........
그렇게 카즈베기를 향해서 마슈르카는 다두베 터미널을 출발했다.
카즈베기 마운틴'을 향해서......
북쪽을 향해서 평원을 내달리던 버스가 서서히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아주 거대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라그비 강을 막아서 만든 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나누리 성채(Ananuri)'가 나타난다. 13세기부터 이 지역을 통치하던 '아라비(Aragvi)' 봉건왕조의 중심지였다. 성채 안으로 영주가 사용하던 부속건물과 더불어 두개의 교회가 들어서 있다. 외형적인 보존상태는 좋은 편이며 주변경관이 뛰어나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즈베기로 가는 내가 탄 마슈르카는 이곳 아나누리에 들리지 않는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를 다녀오는 여행사 버스나 개인 택시들만이 여행자를 싣고 이곳에 들른다. 교외를 지나다니는 직행버스(미니버스)는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정차만 할뿐 그냥 지나쳐 간다.
2년 전에 들려보았던 곳이기에 그때의 사진을 몇장 찾아서 대신하기로 하고 다시 가던 길을 떠난다.
아나누리를 지나면서 부터 본격적인 '러시아 군사도로'가 시작된다. 이 도로의 기원이 러시아가 이곳을 쳐들어 오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길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러시아가 모스코바까지 연결해 천연가스를 약탈해가던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군사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그리고 '군사도로'란 이름에 걸맞게 이제부터 해발 3.000미터의 고갯마루를 향해서 길은 가파르고 또 가파라져만 간다. 천길 낭떠러지 길을 올라간다.
조지아 최고의 스키리조트 '구다우리'를 지나면서 '러시아 조지아 우정의 기념비'에 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방금 지나온 꾸불꾸불 도로를 내려다보거나 창문 밖 천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노라면 정말로 아찔하다.
힘에겨운 비명을 지르며 헉헉대던 버스가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세찬 겨울바람이 마치 악마의 울음소리 같은 괴성을 지르며 창밖을 스쳐지나간다. 이 고갯마루의 높이가 우리나라 백두산의 높이와 비슷하다. 귀도 먹먹해져 온다. 여기는 이미 한겨울이다.
우리 같으면 죽어라 하고 산허리 아래에 터널을 뚫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 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길은 18세기 재정러시아의 '예카데리나 대제(Yekaterina,1729~1796)' 시대에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겨울에 얼지않는 바다가 필요했던 러시아는 이 길을 통해 흑해로 진출하고, 더불어 코카서스 산맥 남쪽에 자리하고 있던 3개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을 차지하기 위하여 이렇게 험준한 산악지형에 길을 만들었다. 이 길을 통해 재정러시아 제국의 군대가 몰려내려 왔다. 하루아침에 코카서스 3국은 러시아의 식민국가로 전락했다.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이번엔 이 길을 통해 오스만의 군대가 러시아 영토로 쳐들어 갔다. 3국은 이번엔 오스만의 식민지가 되었다. 오스만과 러시아는 오랜 세월을 두고 서로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면서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코카서스 3국은 이들 틈에 끼어서 참으로 고달프기 짝이없는 시련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이 양대 강국에 의해서 영토가 찢기고 빼앗기고 수많은 자원이 약탈되었다. 언제 또 저들만의 전쟁에 무참하게 끌려나가게 될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세월이 1991년 독립할때까지 식민지의 아픈 역사가 되풀이 반복되었다.
러시아 군대가 몰려 내려온 통한의 길이었으나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조지아의 가장 중요한 도로중에 하나가 되었다. 애증이 켜켜히 쌓인 도로라 할까?
사방으로 험준한 바위산들이 길을 따라 양쪽으로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가끔씩 골짜기 사이로 저만치 만년설을 뒤집어 쓴 카즈베기 산이 보인다.
그렇게 차차 드넓어지는 구릉지대를 휘감아 돌듯이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카즈베기를 가리키는 안내 표지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슈르카가 카즈베기 터미널에 들어서면 차창 밖으로 개울건너 산자락 위로 장난감처럼 교회가 보인다. 그 뒤로 멋진 배경화면 처럼 카즈베기 산의 장엄한 모습도 나타난다.
카즈베기에 도착한 것이다.
터미널 한켠으로 소설가 '알랙산드로 카즈베기'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카즈베기란 지명을 남긴분이다.
카즈베기의 본래 지명인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는 바로 이 동상의 주인공인 조지아 정교회의 수도사 '성 스테판(St. Stephan)'에서 유래했다.
-- 19세기에 발행된 조지아의 우편엽서에 담긴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의 전경.
카즈베기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든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목적지인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까지를 오가는 사륜구동 차량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호객행위를 하는 까닭이다. 이 영업이 저들에게는 생계수단이기는 하지만 '순전히 도둑놈들'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내가 알고있는 세상에서 가장 질(?)이 안좋은 허가받은 순전히 날강도들이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까지 미니버스로 165 km를 2시간 반을 걸려서 달려온 미니버스 요금이 10 라리(5천원 정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약 6 km 산언덕 위에 있는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까지 사륜구동 봉고차에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히 싣고서는 1인당 무조건 10 라리(5천원)씩 받는다. 지프를 혼자 대절하면 50 라리(2만5천원). 언덕길을 올라 교회인근까지 데려다 주고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시 태우고 내려오는 비용이다. 단독 대절이 아니면 무조건 인원수가 찰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로 따져보자면 정말로 이건 엄청난 폭리다. 거의 사기에 가깝다.
사진속의 멋진 풍경만 보고 카즈베기를 찾았던 여행자들은 까마득히 멀고 높은 언덕위의 교회를 보자마자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그것을 노리고 이 바가지를 씌운다. 2년 전에 여행사 당일치기로 다녀갔을때도, 여기에서 1인당 13 라리씩을 주고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3 라리는 아마도 여행사의 커미션으로 떼어먹은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흑막까지 알게되면 너무너무 불쾌해 진다. 이건것도 과유불급(過猶不及)에 해당되나? 맞나?
조디 포스터양은 버스에서 주변에 있던 여자여행객들과 함께 사륜차 기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인근 숙박업소에서 손님을 맞으러 나온 업소 주인아주머니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들 사전에 계획이나 예약이 없었나보다.
나는 쿨하게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좀 도와주고는 싶었으나 혹, 나이먹은 준노인네가 아가씨에게 치근대는 인상을 줄까봐 덜컥 겁부터 났기 때문이다. 여자 일행들이 생겼으니 별문제 없지않을까 다소 안심도 된다. 하긴 여자의 몸으로 저렇게 당당하게 혼자 여행하는 정도라면 스스로 자신을 챙기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내게 있어서 영원한 정신적 스승인 'N. 카잔차키스' 무덤의 묘비에 새겨있는 글이다.
내가 두고 떠나온 세상이 적어도 지금은 내 머릿속에 없다.
두고온 세상도 나를 까맣게 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지금 당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새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쌀과 싱그러운 바람과 사방으로 병풍처럼 나를 둘러싼 대자연의 위대한 풍경만이 지금 나에겐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 나는 지금 '자유'다.
그리고 여기는 '카즈베기'다.
언제고 내가 떠나야하는 때가 온다면, 나는 무덤을 원하지는 않지만 어디엔가는 이렇게 적어놓고 떠나고 싶다.
'나에겐 아무런 회한이 없다. 남겨놓을 미련도 없다. 그럼으로 나는 자유인으로 떠난다.'
다만......... 다만 그렇게 써놓고 떠나자면.........
아직은 내가 해야 할 일과 그전에 정리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훗. 완전 노인네쪼 청승........... ㅎㅎㅎ
눈부신 햇쌀이 들이치는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기껏 하는 생각이........ 인문학 공부여? 철학적 사고로 폼 잡는거여?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비주얼 부터가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메뉴판에 사진이 없었고 그나마 수작업으로 적은 메뉴판이었으니, 조지아어를 내가 어케 읽어? 영어가 써 있기는 해도 조지아 음식과 요리에 대한 전문 용어를 내가 어케 알어? 비어와 커피는 알겠드만........
헐. 그냥 남이 많이 먹고 있는거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할걸..........
그래도 이렇게 식탁에 느긋하게 앉아서 올려다보는 카즈베기 마운틴의 당당한 위용과 트리니티 교회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할 일인가. 갑자기 맘에 안들었던 음식에대한 너그러움까지 저절로 생겨난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뭘하지?
우리나라 시골 지역의 아주 작은 면 소재지만한 이 코딱지만한 카즈베기에서 이제부터 도대체 무얼하면 좋다냐?
어디에서건 앞으로 보면 카즈베기 산이 보이고 돌아서면 역시 병풍처럼 바위산이 가로막고 있는 풍경이 전부이자 끝인 이곳에서 도대체 뭘하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나서도 트리니티 교회에 다녀와서 트빌리시로 돌아가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사륜구동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트래킹을 한다 치더라도 충분히 해거름엔 내려와서 밤차로 트빌리시로 돌아갈 수 있다.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곳에서 1박을 해야만 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나저나 그러자면 뭐부터 하면 좋을까?
주변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보이는것이라고는 오로지 하나, 카즈베기 마운틴 뿐이다. 헐.
코카서스 산맥에는 높이가 5.000m가 넘는 산이 다섯개나 있는데 그 중 세개가 바로 이곳 카즈베기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카즈베기 산의 경우 높이가 자그만치 해발 5.047m로 조지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거대한 카즈베기 산을 올려다보며 살고있는 카즈베기 마을의 높이만도 1.740m나 되는 고원지대인 것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11km만 달려가면 러시아와의 국경이 나온다.
코카서스 산맥 전체를 통털어서도 이곳 카즈베기의 빼어난 경치를 으뜸으로 친다. 그런만큼 이곳은 등산이나 트래킹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다. 사방으로 험준한 산 뿐만이 아니라 고산 특유의 초원과 자작나무 가득한 보호숲이 저마다의 자리를 곳곳에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지가 얼마되지 않았고 지금 한창 개발이 시작되거나 진행중인 곳이다.
일단은 예약했던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체크인을 했다. 카즈베기도 이미 손바닥 안에 있었던 고로 아무런 문제없이 쉽게 단박에 찾았다.
깔끔하고 정돈이 잘된 숙소였다. 침대에 앉아서 창문 밖으로 카즈베기 산과 트리니티 교회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가 아주 뛰어난 숙소다. 단 한가지 흠이라면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려면 철계단을 통해 2층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식당과 휴계실이 방문 앞이라 그점은 아주 편리했다. 항상 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니까.
대충 짐정리(가져온것도 없으면서)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동네를 서성거려 본다.
지난번 여행(2년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점으로는 우선, 트리니티 교회까지 올라가는 길이 새로 생겼다. 전에는 아주 가파르고 좁고 협소한 마을 골목사이 사이로 샛길을 이용해 겨우겨우 오르고 내렸는데 이젠 마을 우측의 카즈베기 산에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따라 넓고 번듯하게 도로를 새로 만들어 놓았다. 아직 준공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산 정상부에는 중장비와 덤프트럭들이 열심히 길을 더 넓히고 있지만 내년쯤에는 새로 포장된 도로를 이용해 더 원활하고 편리하게 트리니티 교회를 오갈 수 있겠다.
또한 카즈베기 마을 전체가 새로운 건설 붐이 일어났다. 길가로는 레스토랑과 미니 숙소들이, 언덕 위로는 여기저기 사방 게스트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처럼 만들어 지고 있다. 마을 언덕의 정상부로는 제법 커다란 호텔들이 여럿 건설되고 있다.
그동안 카즈베기의 명물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룸스호텔(Rooms Hotel Kazbegi)의 명성도 이젠 거의 한계에 도달한 듯 싶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안들려 보았던 룸스 호텔에 한번 올라가 보았다. 달리 특별나게 할 일이 없어서....... 어디까지나.
거 참. 세상에나........
별로 눈에 띄지않던 한국인들이 죄다 여기에 들어앉아있다. 참 신기한 광경이다. 마치 설악산 어느 산장이나 몫이 좋은 카페에 온 느낌이 든다.
비수기에 접어든 오늘에도 룸스 호텔의 하루 숙박료는 165 달러(약 20만원)에 육박한다. 속을 들여다보면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미 지어진지 오래되었고 꾸준히 리모델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숙박(잠자리) 자체로는 사실 별 볼일이 없는 호텔이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이 금액의 절반만 지불하면 훨씬 현대식 리조트 시설을 갖춘 호텔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다만 카즈베기 산을 올려보기에 최고로 적합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지리적 장점은 있다. 작은 실내 수영장도 있고 미니 도서관도 있고 넓은 테라스가 있다는 것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 음식은 그런대로 어느정도급 호텔의 수준은 된다. 그렇다해도 상당부분은 거품이다.
이 언덕에 들어선 어느 허름한 창고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룸스 호텔 못지않은 뷰가 어디에서나 나온다. 다 거기서 거기다.
상당수의 서양 여행자들은 연세가 있는 노인이거나 방금 결혼한 신혼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조금 아래쪽의 게스트하우스에 대부분 머물면서 트래킹을 즐긴다. 카즈베기는 그런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는 곳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베이스 캠프로 인근의 여러개 계곡을 트래킹 하거나 바위산을 등반한다.
그런데 룸스 호텔 이용자의 절반 가까이는 한국인이고 모두 인증샷 찍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하이고야...... 가관들이다........ 설악산에다 괌이나 발리를 합쳐놓은 풍경이다.'
얼른 돌아나와서 터미널 인근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에는 대로를 따라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음식점들이랑 미니 슈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외곽으로 좀 뜸해진 곳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다가가 보니 빵집이다. 완전히 현지인들을 위한 빵집으로, 우리나라 60년대에 누런 에나멜 칠을 한 미닫이 문을 사용하던 일본식 구멍가계처럼 생겼다. 화덕에 빵을 구워서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이는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다. 연실 동네사람들이 와서는 빵을 한보따리씩 사간다. 식욕을 넘어서 어떤 호기심에 군침이 꿀떡꿀떡 넘어간다. 이사람들의 주식인 퓨리라는 빵이다.
내 얼굴 크기의 하나반쯤 되는 커다란 퓨리의 가격이 0.5 라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240원 정도되는 가격이다.
진짜로 (오 마이 갓)이다.
한조각 뚝 떼어서 먹어보니........ 또 (오 마이 갓)이다. 이 사람들은 이스트라는 것을 아예 모른다. 막걸리를 넣지도 않는다. 오로지 밀가루에 물과 소금만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화덕 안에다 무슨 비밀스런 장난질을 하는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그.것.이.알.고.싶.다.
또다시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3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소련제 라다 승용차에다 여러가지 과일을 가득 싣고와서 미니 슈퍼에 납품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냥 구경을 하고 있는데...... 슈퍼마다 앞에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서너개씩 내어놓고 파는 것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슈퍼앞에 커다란 섬유 유연제 통을 진열해 놓은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주인 할머니는 말이 전혀 안통하고 라다를 몰고 온 젊은 사람은 그래도 어쩌구저쩌구 대충은 말이 통한다.
와인이다. 흔히들 세미와인이라고 부른다. 하우스 세미와인 이라고 하니 할머니도 알아듣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포도를 수확해서 와인을 만들어 수십년을 두고 차차 숙성을 시켜가면서 먹는것이 통상적인 와인인데, 기후적인 문제로 포도가 너무 일찍 수확되거나, 당도가 너무 높아 보관용 와인에 적합치 않거나, 생산량이 너무 많아 장기 보관이 어려워지면 이렇게 집집마다 속성으로 와인을 만들어 판매를 한단다. 이렇게 속성으로 만든 와인은 장기 보관이 되질 않는단다. 통상 2개월 정도 숙성 시켜서 곧바로 시장에 내놓아 모두 소비를 시켜야만 한단다.
지금 문 앞에 내놓고 판매하는 와인이 바로 '하우스 세미 와인'으로 3 리터자리 한병에 우리돈으로 3천원 정도였다. 알콜 도수는 10~12도 정도다.
오.마.이.갓.
이건 완전 횡재다. 로또 당첨과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불량품이 아니다. 틀림없는 아주 정상적으로 생산된 와인이다. 단지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치지 못했을 뿐이다.
3 리터를 어떻게 해결하나는 나중 문제였다. 일단은 세미와인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포도와 사과와 와인을 샀다. 과일도 아주 저렴해서 거의 한보따리 수준이다.
골목을 돌아서니 허름한 어떤 게스트하우스 담벼락 나무 그늘에 젊은이들이 예닐곱명 모여서 조촐하게 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니 자유여행자들만의 파티였다. 등산용 가스버너에 석쇠를 이용해 닭 바비큐를 만들고 소시지를 굽고 있다. 과일 절임 통조림과 완두콩 통조림도 따져있다. 술은 작은 병맥주와 바로 조금전에 내가 산 세미 와인이 두병이나 비워져 가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에 흥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미니 축제였다.
단체로 인근의 폭포가 있는 깊은 계곡까지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와 요기 겸 술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내일은 새벽부터 카즈베기 산 중턱까지 등산을 떠난단다. 수염이 덥수룩한 젊은이에다 아주 예쁜 아가씨들이 몸베바지에 쪼리를 신고 있다. 화장도 썬크림 흔적도 없다.
내 손에 들린 세미 와인을 보더니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꾸웃' 이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일단 먼저 맛을 보라고 자기들이 마시다 만 3 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에서 종이컵에 반잔을 따라 건네준다. 기쁘게 받아 마셔본다.
쌉싸름하고 떫은 맛이 많이 강하다. 단맛도 향도 너무 강하다. 거기다 상당한 알콜 도수까지 느껴진다. 그냥 이제까지의 와인에 비해서 아주 약간 자극적이라 느낄 수 있을 만큼 전체적으로 강하다. 하지만 이런 맛을 찾아서 즐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 비엔나 소시지까지 하나 얻어 먹는다.
헐. 그런데 우리나라 비엔나 소시지랑은 완전히 맛이 확 다르지? 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돌아서서 오면서 보니 게스트하우스 마당의 평상이나 베란다 발코니 마다 서양 여행객들이 주로 미니 술자리를 만들고 있다. 대부분 저런식으로 하루를 서서히 마감하나 보다. 드러누워 썬탠 하는 사람도 있고 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 액션까지 취하며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나 보기 좋은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그래. 저런게 바로 여행이지.........
세미와인이라는거........
맛과 향만 진하고 독특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막걸리처럼 일정 량 이상을 마시면 그때부터 은근히 깊게 취하는 맛이 있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제대로 취기가 올라온다.
약간 독하다 싶은 와인에다 안주로 싱싱한 포도를 마구마구 먹다보니 이넘들까지 몸속에서 혼합 발효과정을 거쳤는가보다. 뻗뻗하게 굳어도 여전히 고소하고 맛있는 빵을 계속 뜯어서 먹는다.
해가 서서히 저무는 저녁이 되었는데 아에 저녁식사 생각이 없다. 그냥 모든게 귀찮고 알딸딸한 요런 컨디션이 너무너무 좋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다.
창가에 앉아서 하늘 한번, 카즈베기 산 한번, 그리고 다시 하늘 한번.......
아르메니아에서 아라라트산을 두 번이나 겪어보았듯이 이넘의 만년설이 쌓여있는 산이라는게 말짱하게 쾌청한 날이 드물다. 더군다나 이미 겨울이 시작되었고 그제는 뒷편의 바위산 위로 눈이 내렸었다 한다. 금년 첫눈이 바위산 위에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자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먹구름이 카즈베기 산을 온통 감싸기 시작하고 있었다. 심지어 밤이되자 빗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까지 했다.
'이번에도 또? 나랑 카즈베기랑은 끝내 안맞는거여? 그럼 여기까지 괜히 다시 온거잖어?'
---- 카즈베기에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 마지막 백패킹이 되었던 장자도의 아침(2014)
지리산 천황봉의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캠핑과 여행을 즐기며 이제껏 살아왔지만, 그래도 젊은날에는 한 때 등산에 심취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끝내 지리산 천황봉 일출은 보지 못했다.
백패킹을 다닌지가 한 사오년은 되었지 싶다. 마음은 늘 있으면서도....... 어느새 백패킹을 다니기에는 늦은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 마지막 백패킹이 되었던 장자도 장군봉에서의 백패킹이 꿈에 나타났다. 일몰은 산모기에 뜯기느라고 제대로 즐기지 못햇었지만 일출만은 가히 환상이었지 않았던가. 그런 아침을 저에게 한번 더 내려주시면 아니되시겠습니까?
새벽내내 추위에 떨며 뒤척였다.
이곳의 밤은 이미 겨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난방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아주아주 애매한 시기에 내가 여기를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까짓꺼 하룻밤인데 뭘. 대신 날씨만 좋았으면..........'
날이 희뿌여지는 것을 느끼며 가로등 불빛을 가렸던 커튼을 열어재꼈다.
오!!!!!!!! 마이 갓!!!!!!!!
어쩌자고....... 세상에 이런 일이.........
아마도 내가 전생의 어디쯤에선가 여기 조지아에서 나라를 구하기라도 했었던 모양이다.
맑다. 구름 한점 없다. 이건 기적이다. 밖이 이미 겨울인것을 알면서도 창문을 확 열어재꼈다.
추워도 좋아. 얼어 죽어도 좋아. 그러나 지금은 꼭 이 아침을 느껴보고 싶어.
내가 태어나 이제껏 살면서 이런 새벽 풍경을 맞이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담요로 꽁꽁 싸맨채로 창을 통해 찾아드는 겨울 한기를 즐겨본다.
영락없는 반쯤 실성한 사람꼴이다.
'높은데 계신 거룩한 분이시여. 땡큐입니다. 땡큐. 이 순간을 기다렸기에 그 먼길을 달려 왔다구요. 마들로바예요. 마들로바(감사합니다).'
언덕 위의 트리니티 교회에 아직 불이 밝혀져 있는 이른 새벽의 카즈베기가 내 가슴속으로 슬그머니 밀려 들어온다.
고요와 침묵속에서 또 새로운 하루가 살며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순간이다.
살아서 이런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까?
또 순간처럼 어떤 미안함이 페부를 그대로 관통해 지나간다. '이런것은 꼭 보여주었어야만 했는데......'
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
김용택 님의 (섬진강)에 나오는 구절이다.
온전한 날보다 굿은 일이 더 많은 우리네의 인생에서
가끔은 개구쟁이의 일탈처럼 이렇게 무작정 아주 멀고 외진 곳으로 떠나와서
지금처럼 대자연의 축복같은 놀라운 풍광을 경험해 보면서
내가 세상을 두고 떠나온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잠시 나를 떠나보낸것인지 간혹 자문도 해보면서
시름시름 지내왔던 지나온 과거의 일상을 불어오는 바람결에 모두 날려보내고
슬며시 내 어깨에 기대오는 사람에게 팔을 둘러주고 싶다.
그 사람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어진다.
카즈베기가 내 가슴에 사무치게 쏟아져 들어오던 어떤날의 새벽에...........
새벽이 서서히 다른 빛깔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숙소를 나서서 동네 골목길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일찍부터 일어나서 방 정리며 외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던 때문이다.
속이 시릴 정도로 찬 공기가 페부 깊숙이 스며들어 온다.
춥다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 들기는 했지만 이런 낯설기만한 산골마을의 새벽이 마냥 좋아지기 시작한다.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카즈베기 산을 바라보면서 '여기가 더 잘보일까' '아냐 저 언덕 위가 좋겠어' '아냐 건물에 가리잖아 저기 밭뚝이 더 좋을것 같애' 반쯤 정신줄 놓은 사람처럼 동네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런 멋진 장관을 놓고도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이게 어디 보통의 풍경이던가? 그런데도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산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 즈음에 카즈베기 터미널 공터로 갔다. 여행자 한 사람이 삼각대에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황금산을 찍고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눈다.
'이런 멋진 풍광을 두고 다들 어디갔지요? 사람들이 통 보이질 않네요?'
'날이 쌀쌀하니까 아마도 호텔 방에서 창문을 통해 구경들 하고 있을 거예요. 아니면 장기 투숙자들은 이미 여러번 보았을 테니까요.'
'그렇겠네요. 며칠이나 머물고 계세요? 어제도 저렇게 멋진 풍경이었나요?'
'아니예요. 나흘째 머물고 있는데 저렿게 완벽한 풍경은 오늘이 처음이예요. 그제는 비가 내렸거든요. 산 위에는 눈이 내리고요.'
나는 여행자와 작별을 하고나서 그길로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나갔다.
다리를 건너 게르게티 마을로 향한다.
2년 전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카즈베기 트래킹'을 지금 부터 곧 바로 시작했던 것이다.
다리를 건너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기원전 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옛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의 이름이 '게르게티(Gergeti)'다.
이 지역의 본래 이름인 스테판츠민다 지역을 대표하는 가장 큰 마을이었다. 카즈베기라는 이름은 몇가지 설이 있기는한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조지아 소설가 '알랙산드로 카즈베기'의 성씨를 따서 지역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다. 카즈베기 가문이 오랜 세월동안 이 지역에서 지배력을 가진 강력한 가문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을 장악하고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과 상인들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던 유력 가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거주하는 동네가 바로 게르게티 마을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사진속의 카즈베기에는 이곳 교회가 있는 언덕아래 산동네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카즈베기를 상징하는 언덕위의 교회 이름도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교회(Gergeti Trinity Church)', 그러니까 '게르게티에 있는 교회'란 의미이다.
게르게티로 오르는 언덕길은 제법 가파르다.
열심히 오르고 있는데 동네 안에서 커다란 개 한마리가 다가온다. 개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서워 하지도 않는편이다.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도 짖지를 않는다. 아마도 나의 모습에서 선한 수도자의 이미지가 풍겨서가 아니었을까? ㅎㅎㅎ
손짓으로 불러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전혀 꺼리는 기색이 없다.
'그래. 이제부터 네가 나의 길잡이가 되거라. 나는 지금 언덕 위의 교회로 가는 길이다. 알았지?'
잠시 뒤에 어디선가 개 한마리가 더 쫓아온다. 이녀석들 산 중턱까지 나와 함께 새벽 산책을 했다. 내가 게르게티 마을을 지나쳐 산에 오르는 순간까지.
돌아볼 때마다 카즈베기가 전만치 내 발치 아래로 작게 작게 멀어져 갔다.
계곡 옆 약수터에서 물을 깃는 아저씨를 만나 아침 인사를 나누고 맛이 좋다는 약수도 직접 마셔본다. 보르조미 약수 보다도 더 좋다.
천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견뎌왔던 돌을 쌓아 만든 게르게티 마을은 윗쪽으로는 텅 빈 집들이었고 중반부 이하로는 현재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돌부리에 걷어 채이면서 꾸불꾸불 골목 언덕길을 올라 마을을 벗어나려니 길목마다 철문이나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사람이 다니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기르는 소나 양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하고, 밤중에 산에 사는 야생 짐승들이 함부로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산언덕의 교회에 가려면 나는 지금 이 길을 꼭 지나가야만 한다. 타 넘기도 하고 허리 굽혀 빠져나가기도 한다.
길을 따라 나섰던 멍멍이와도 그 쯤에서 작별을 했다.
다시 가파른 언덕위의 전나무 숲으로 올라간다.
후줄거니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마음만은 더없이 상쾌하고 발걸음은 가벼운 것이 다행이도 오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비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사륜구동차로 여행객을 실어나르는 길이다. 길을 건너서 다시 전나무 숲길을 올라가면 또 다시 찻길을 만난다. 가로질러서 빽빽한 숲길을 또 올라가면 또 차동차 길을 만난다.
그러면서 이곳부터는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곳 코카서스 지역은 단풍나무 숲이 없다. 그래서 울굿불굿 단풍을 기대할 수는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자작나무 단풍도 장관이다.
500m 정도의 길은 비포장 자동차 길을 따라 자작나무 빼곡한 숲길을 걸어야 한다. 평지나 다름없기에 한결 편하기도 하고 좌우로 자작나무 숲을 여유있게 구경할 수가 있어 나름 운치가 넘쳐나는 코스다. 찬연한 가을 햇쌀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자작나무 숲의 조화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렇게 걷다보면 왼편으로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계단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르는 사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계단이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에게 어느정도 오히려 고역인것이 바로 계단 이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번 더 땀을 흘리며 씩씩하게 걸어올라가노라면 마침내......... 드넓은 고원의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초원 저편으로 성 삼위일체 교회가 마침내 제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여행객을 태운 첫 사륜구동차가 내 옆을 지나간다.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내준다.
나는 오늘 이곳에 직접 걸어서 올라온 첫번째 트래커였다.
야~호.
초원지대의 잡목숲 사이로 텐트가 여러개 보였다.
백패커들이 비박을 하고 있었다. 간밤의 추위를 녹이려고 모닥불을 지피고 뜨거운 커피를 나누고 있었다.
저들 사이에 내 텐트가 자리잡고 있었어야만 했는데....... 4개나 되는 텐트가 4년넘게 방구석에서 방치되고 있다.
비박용이 2개요. 여름 텐트와 겨울용 텐트도 있다. 불쌍한 내 자식들......... 다시 사용해 주어야만 할텐데.........
또 초원의 저만치에 떨어져 서있는 미니버스(낡은 봉고차)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부부였다. 덴마크에서 온 40대의 부부로 석달째 이런 여행을 하고 있단다. 지난밤이 매우 쌀쌀했는데 날씨가 좋아서 아주 멋진 일출을 보았다고 한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따뜻한 지중해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한동안 더 이런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여행에 건강과 기쁨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거라고 했는데 이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너무너무 부럽다. 나도 저런 여행을 하고 싶다.
캠핑카니 뭐니 호들갑 떨게 하나도 없다.
저 낡은 봉고차에 간이 침대 하나 만들고 나머지 살림살이는 그때그때 필요한만큼 바리바리 싸서 어디에든 고정만 시켜놓으면 그만........
꼭 저들만큼만이면 충분하지 싶다. 추운 모습이었지만 두사람 모두 얼마나 행복한 표정인가?
부족함이 때로는 행복의 열쇠이거나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한것을.........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는 조지아 정교회에 있어서 은둔처이자 비밀 보물창고였다고나 할까?
14세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트빌리시를 비롯한 조지아가 외세에 의해 침공을 당하면 가장 신성한 '니노의 십자가'를 비롯해 종교적 보물들을 이곳 깊은 산중으로 옮겨와 보관하던 장소였다. 광대한 대자연에 둘러쌓인 가파른 산꼭대기에 고립된 듯 위치해 우뚝 솟아있는 이 교회는 지금 현재에도 조지아 정교회 정신의 상징이다.
이렇게 산중의 교회를 둘러보고 있는 중에 서서히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생리적 현상의 대표격인 화장실 문제는 아니었다. 이곳엔 번듯한 화장실이 있다.
갑자기 으시시 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땀이 식자 갑자기 추위가 몰려들었다. 이곳엔 세찬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고 있다.
아.뿔.싸.
이곳에 패딩이나 아웃도어 겨울용 파커를 걸치지 않은 사람이 딱 한명 있다. 바로 나다. 이제사 둘러보니 연이어 올라오는 모든 여행자의 옷차림이 겨울 방한복 차림들이다.
오.마.이.갓.
나는 여전히 반팔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 아닌가? 이거 시방 미친거 아니여? 지가 무슨 이팔 청춘이여?
이곳의 높이가 자그만치 해발 2.170M 아닌감?
그저 새벽부터 황금빛 산봉우리에 홀려설랑 그만........... 으~이~구~추~워.
방법? 하나밖에 더 있어? 잽싸게 산을 내려가야지? 그렇다고 존심을 팽개치고 차를 타고 내려가기도 그렇고.........
품위라면 기꺼이 목숨이 열개라도 기꺼이 내놓는 의지의 한국인 아니겠어? 우리 가문이 본시 뼈대있는 양반 가문이여.........
까지꺼 또 걷다보면 저절로 슬슬 땀이 다시 나겠지 뭐.
앗싸싸싸사.
고원의 초원 지대만 벗어나 골짜기에 들어섰을 뿐인데 벌써 몸이 따뜻해져오는것을 느낄 수 있다. 오로지 바람이 문제였다.
산을 내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내가 다녀온 케르케티 트리니티 교회가 조만치 코 앞에 놓여있다.
무엇을 더 바라고 아쉬운것이 무엇이 더 있겠는가?
이만하면 이미 나에겐 너무나 충분한 행복이지 않은가?
두어라. 아서라. 이만하면 이미 됐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약 4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후 체크 아웃을 했다.
터미널로 가서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마슈르카(미니버스)에 올랐다. 비용 10 라리를 지불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손님이라곤 절반도 안찼다. 출발 에정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는데...... 어차피 정원이 차야 출발을 한다.
기사양반에게 길거너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올테니 오기전에 정원이 차면 좀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느긋하게 커피타임을 즐기고 서서히 일어서려는데......... 또 (오 마이 갓).
조디 포스터양이 불쑥 카페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를 알아보고 서로 놀라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녀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주문했고 기다리고 서 있다. 커피가 나오면 잠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겠지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를 들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트리니티 교회에는 다녀왔어요?'
'네. 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내려오시는 아저씨를 보았어요. 어쩜 그리 씩씩하세요? 저의 아버지도 여행은 좋아하시는데 아저씨만큼 씩씩하지는 않아요. 겁도 좀 있으시고요.'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아마도 내가 내려 오기 시작했을 때 포스터 양은 사륜 구동차를 타고 올라갔었나 보다.
그때 트빌리시행 미니버스 기사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포스터 양도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우연처럼 우리는 다시 만났다.
차가 구다우리를 지나 내리막 길에서 잠시 간이 휴계소에서 쉬어갈 때였다.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있는데 조디 포스터 양이 내쪽으로 다가왔다.
'어제는 많이 감사했어요.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어요. 뒷자리에서 불편하셨을텐데.........'
'괜찮아요.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다 겪게 되잖아요? 그 정도 일이 아가씨 여행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요.'
그러다가 차마 내가 실수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 우물쭈물 망설이기만 하고 물어보지 못하였던 것을 이쯤 되었으니 한번 물어보기로 하였다.
'혹시나 크게 실수가 아닐까 하여 망설이던 것이 있는데.......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녀의 모습은 이미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혹시나........ 조디 포스터랑 닮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나요?'
'그런 이야기를 가끔 듣기는 하는데....... 저는 엄연히 그냥 평범한 독일 여자일 뿐이에요. 그 분은 헐리우스 스타이시고요.'
'처음 보았을 때 감짝 놀랐어요. 헐리웃 스타를 만나는줄 알고.'
'칭찬해 주시는 걸로 받아들일께요. 조디 포스터만큼은 아니겠지만 못생기지는 않았다는 말로 이해할래요.' 얼굴까지 붉혀가면서 환하게 웃어준다.
독일에서 '사회 복지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아가씨였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2년 정도 학교에서 강의를 했단다.
그러다가 이번에 공기업체에 취직을 했는데, 출근에 앞서서 회사가 그동안 공부하느라 수고했다며 2달간의 해외여행 선물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여행지로 조지아에 왔고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을 거쳐서 헝가리 체코 폴란드로 가볼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나라 이런 회사도 있나? 독일이 참 부럽다. 구직하기만도 하늘의 별따기 인데...... 얼른 출근해서 눈도장 찍기도 바쁜데........ 사람 뽑아놓고 일 시키기도 전에 취직하느라 고생했다고 해외여행을 선물로 주는......... 에고 우리 손녀 태리를 아예 일찍 독일로 이민 보낼까?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참으로 해맑고 당당하고 배려심 있고 상냥함에 나름 기품까지 갖춘 아가씨였다.
다두베 터미널에 내려서는 처음처럼 더 멋쩍어 질껏 같아서 내리자 마자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건물 안쪽으로 지하철을 타러가는 방향이었고, 그녀는 도로로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참. 아주 잠시 서툰 대화를 나누다보니 정작 중요한 이름을 물어보는 것을 까먹었다. 나도 내 이름 소개를 할 틈이 없었다. 아고 아까버라. 우짤꼬.
'하지만 괜찮아. 이미 다른 이름이 있잖아? 조디 포스터 프럼 저머니.'
'아무렴. 독일 조디 포스터도 썩 괜찮잖아?'
--- 헐리웃 조디 포스터. ----- 독일 조디 포스터.
---- 다음 여행은 '데이비드 가레자'로 다시 트래킹을 떠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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