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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조지아) 천상의 트래킹 '데이비드 가레자'를 찾아가다.

by 피안재 2018. 11. 20.

 

 

 

 

 

 

 

 

 

 

 

 

 

 

 

 

 

 

 

 

 

  카파토키아 교구로부터 13명의 수도사가  코카서스 산맥 남쪽으로 파견되었다.  고대 이베리아 왕국(조지아)은 보다 더 굳건한 기독교 국가를 이룩하고자  기독교교리와 성경 공부에 통달한 수준 높은 종교 지도자가 필요했던 때문에  기독교 부흥운동의 성지였던 카파토키아 교구에 수도사의 파견을 요청을 하였다.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13명의 수도자는 모두 앗시리아인이었으며,  그 시기가 6세기 경이었다.

  이 13명의 수도사들을 이끌고 있는 리더(지도자)가 바로 '데이비드  가레젤리(Davit Garejeli)'로 당시 최고 연장자였던 수도사였다.

  조지아의 여러 기록물에 따르면  이 리더였던 수도사의 이름에 대해 '데이비드 오브 가레자(David of Gareja)'  또는 '데이비드 가레지(David Gareji' 등으로 달리 기록되어 있고 다르게 부르지만,  모두가 같은 한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임에는 모두 이의가 없다.  하여 초기에는  '데이비드 가레지'로 나도 불렀는데,  이번부터는 '데이비드 가레자'로 부르기로 하겠다.

  하지만 이름을 통일하기로 했다해서 모든것이 정리된 것은 아직 아니다.  그럼 이들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가레자'는  그의 정확한 이름일까?

  수도원 입구의 안내판에는 분명하게 '데이비드 오브 가레자(David of Gareja)'라고 명기되어 있다.  '가레자 사람 데이비드'  혹은 '가레자에서 온 데이비드'의 의미가 된다.  이름이 데이비드 인것은 맞지만  그의 성씨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지만  나사렛이 예수의 성씨는 결코 아니다.  "Jesus of Nazareth". 그러니까 '나사렛 사람 예수' 혹은 '나사렛에서 온 예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비드는  '가레자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럼 '가레자'는 어디일까?  그가 앗시리아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시리아 인근에서 '가레자'라는 지명을 찾아보아야 할까?  아니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인근에 '가레자'라는 지명은 없다.  그럼 어디일까?  그는 어디 출신이란 말인가?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David  Gareja Monasteries)'이 들어서있는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 근처의 이오리 고원에있는 우뚝 솟아난 바위산의 이름이 바로 '가레젤리 산(Mt. Garejeli)' 이다.  그렇다면 이를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만 할까?  데이비드가  앗시리아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분명  시리아 근처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동안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나름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접근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그 진실을 바로 이러하다.

 

  열 두명의 동료 수도사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한 데이비드 수도사는  카파토키아와 비슷한 환경의 이곳 바위산 동굴에서 수도생활을 영위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되자 그는 트빌리시로 가서 이베리아 왕국(조지아)의 왕을 알현했다.  이때까지는 분명 '앗시리아에서 온 수도사 데이비드' 였거나 '카파토키아에서 파견된 수도사 데이비드'였을 것이다.  기독교를 올바르게 널리 알려달라는 왕의 부탁을 받고  그는 다시  가레젤리의 바위산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자리에 모인 13명의 수도사들은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으로 골고루 흩어져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들은 이곳을 선교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각자 흩어져서 선교활동을 나서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이곳으로 연락을 하고  병이나거나 지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요양과 안정을 취하고,  정기적으로 모두 모여서 그간의 활동을 서로 나누고 보고하기로 하였다.  데이비드가 담당하게된 지역은 바로 트빌리시였다.  그는 나리칼라 요새가 있는  바위산 정상의  동굴에 기거하면서 선교활동에 전념했다.  그가 머물던 동굴 위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다윗 교회'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교회다.  이때부터 그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생겨났고,  그가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그를 찾을 수 있는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대답했다.  '가리젤리 산'으로 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데이비드 오브 가레젤리((Davit of  Garejeli)'로 불리게 되었다. '가레자에서 온 데이비드'가 된것이다.

 

 

 

 

 

 

                                                                                        --- St.  David of Gareja

 

 

 

 

 

 

 

  데이비드 가레자를 여행하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호텔에서 픽업이 가능하며 가이드가 동행하고,  주로 데이비드 가레자 투어 외에도  시그나기 투어와 와이너리 투어를 함께 진행한다.  가장 편한 방법으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할 수 있는 여행이 되겠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이 보다도 더 편한 방법은 Taxi를 대절해서 다녀오는 방법이다.  택시 기사가 가이드 역활을 대신 해주면서 전 일정을 여행자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으로 다녀올 수가 있다.  더욱 편리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어디까지나 대절이니까.

  보편적인 일반 자유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방법은,  교통편만 제공 하는  개별 미니버스(마슈르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평화광장 케이블카 승강장 주변,  아브라바리 지하철 역 광장. 리버티 광장 주변에 가면 오전 9시쯤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대부분의 유명 여행지를 다니는  미니버스를 수도없이 많이 보게될 것이다.  차량 전면 유리창에 행선지 안내 표지판이 붙어있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가서 운전자와 요건과 비용에 대해서 개별 흥정을 벌이면 된다.  승차정원이 차면 보편 타당한 요금이 책정되겠지만,  인원이 적으면  비용이 올라갈 터이니 당연히 흥정의 요령이 필요하게 된다.  데이비드 가레자의 경우엔  대부분 이곳에서도  시그나기와 엮어서 진행을 한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이용한  프로그램은  위에 열거한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른  심플하면서도 저렴한 최상의 프로그램이었다.

  트빌리시 관청에서 지원하는 '데이비드 가레자'만을 위한 단독 프로그램이 있다.  아는 사람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참여해 보니 이제는 상당히 많이 알려져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상품으로 격상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가레지 라인(Gareji Line)'이라는 이름의 여행 상품으로  오로지 데이비드 가레자를 오가는 교통편만 제공한다.

  리버티 스퀘어 옆에있는  '푸쉬킨 공원' 모퉁이에서  연중 무휴로,  매일 아침 11시에 출발해서  저녁 8시까지  데이비드 가레자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다.

  중간에 3시간 정도  데이비드 가레자를 둘러보는 자유 시간이 주어지고,  오는 길에 우다브노에서 휴식과 저녁식사 시간을 갖는다.

  오로지 교통편만을 제공하며  비용은 1인당 25라리(1만2천5백원 정도)이다.

  데이비드 가레자를 여행하는 방법중에서  가장 저렴하고  가장 손쉽고  가장 갈끔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나는 여기 '가레지 라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트래킹을 다녀오기로 했다.

 

 

  트빌리시 여행 안내 부스(트빌리시 트래블 인포)는  본래  평화광장  케이블카 매표소 인근 교차로 모퉁이에 있었던 것이,  지금은 리버티 광장 옆 푸쉬킨 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가레지 라인'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도 변함없이  트빌리시 도심의 골목길을 산책했다.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타야하기에  배낭도 어느정도 정리를 미리 해두었고,  이미 나흘동안 이용했던 유령호텔의 청소도 간단하게나마 마쳐 놓았다.

  오늘 입을 옷을 제외한  이곳에서 입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어 빨아서 볕이 잘드는 밖에 빨래줄에 널어놓았다.

  커피를 마시고.......  나머지 여행기간을 지내게 될 터키에서의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을 해 놓는다.

  시간이 되어가자  오늘도 변함없이 작은 배낭을 메고  푸쉬킨 공원으로 보부도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또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이 많다.  무척이나 많다.  그리고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사방에서 더 물려들기 시작한다.

  때 빼고 광내고 치장한 고고한 관광객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깡짜에 쌩얼에 몸빼를 걸친 완벽하게  배낭여행자의 포스를 팡팡 풍기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한 눈에 이들의 여행자로서의 이력과 경력을 알아볼 수가 있다.  당당함과 싱그러움과 젊음이 넘쳐난다.

  지금 푸쉬킨 공원에 몰려든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여행자가 대략 60명을 넘어 70명에 가까워 보인다.  대부분이  20~30대이고  남성보다 여성의 숫자가 더 많다.  거기다 더욱 마음이 푸근해 지는것은....... 이들의 옷이나 신발에서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일상의 편안한 복장들이다.  언젠가 우라나라 산악회를 한번 따라갔다가 흔한말로 '쪽팔려서 죽을뻔'한 당혹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뒷동산 나들이 정도 산행에 모두가 비쌀대로 비싼 옷이며 신발이며 여러가지 장비들.........  마치 히말라야 등반 원정대 같았다.  그 명품으로 도배를 한 등반가들을  청바지를 입고 따라갔으니........

  어디 이사람들 복장 사진을 올려볼 터이니 제발 명품 브랜드를 좀 찾아봐 주시라.   몸빼 바지랑 추리닝이 등산복이 맞나? (실용성과 거품(허세)의 차이)

  80% 정도가 서양인이고  나머지가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나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국인 여성이 한분 더 계셨다.  경남 사천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오신 용감한 여성분이었는데  조지아가 첫 유럽여행지였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푸쉬킨 공원에서 그렇게 '데이비드 가레자 트래킹'은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이 있는  이오리 고원은   조지아의 동부 '카헤티(Kakheti)'지역에 속한다.  인근의 관광명소이자 '성 니노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시그나기의 보두베 교회 또한 여기 카헤티 지역에 속한다.  카헤티는  코카서스 전역에서 품질 좋기로 소문난 포도의 주산지다.

  트빌리시를 벗어나  카헤티 지역에 들어서면  가도가도 끝이없이 사방으로 모두가 포도 농장이다. 수확철인 가을에 수십대의 덤프트럭이 길게 줄을 서서 달려가는 풍경을 보다가 그 트럭에 모두 방금 수확한 포도가 수북하게 실려있는 것을 보게된다면 깜작 놀라게 될것이다.  포장 덮개도 없다.  포장 박스도 없다.  그저 짐칸 가득 마구마구 퍼 올려서 싣듯이  포도만 수북하다.  놀라운 광경이다.  해변 백사장의 모래처럼 여기서는 흔하디 흔한것이 포도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지나가는 개도 포도를 한바구니씩 물고 다닌다고 하면  대충이나마 설명이 될까?

  광활한 포도농장 풍경에 실증이 난다 싶으면  서서히 소를 방목하는 풍경이나 양떼가 이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점차 평원의 풍경이 산악지형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양떼를 목격하게 된다.  이오리 고원 지대에 들어선 것이다.

  '몽고 초원'의 풍경을 우리는 곧잘 책자나 티비 방송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고원이란것이 어떤 모습인지는 대충이나마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꼭 그모습이다.

  바람. 바람.  또 그넘의 바람.........  고원에는 온통 바람 뿐이다.

  누렇게 변하다 못해 말라 비틀어진 키 작은 풀들만이 오래된 낡은 배경처럼 아무렇게나 널려있다.

  오랜 세월동안 터득한 지혜때문인지 웬만한 바람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키 작은 풀들이 자뭇 신기하기 까지 하다.

  싸늘한 바람이 페부를 적신다.

  눈이 시리다.

  황량함.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슬며시 다가오는 쓸쓸함.

  가을 공원의 수북히 쌓인 낙엽에서만 쓸쓸함이 느껴지는 줄 알았더니  삭막한 고원의 새파란 하늘에서도 쓸쓸함이 느껴진다.

  왜 내가 잠시 세상을 두고 여기까지 떠나왔던 것이지?

  아니,  내가 알던 세상은 왜 나를 이 먼곳까지 잠시 떠밀어 보냈던 것일까?

  을씬년스럽다는 표현이 지금 이순간의 고원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왜?  사람이라는 존재가......  또 나라는 존재가 하염없이  하염없이 점점 작게만 느껴지는것일까?

  병이야 병.  병이라고........

  이런게 바로 '고원병'이야.  '사막병'의 증세도 아마 이것과 비슷할거야.

 

 

 

  일부구간은 시멘트 포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리 패이고 저리 부서져 나가고.......  포장도로라는 표현조차도 매우 궁색하게 느껴진다.

  고원 깊숙히 들어서면 광활한 들판 사이로 마치 거미줄처럼 여행객을 실은 미니버스가 다닌 길들이 구불구불 엉켜있다.  군데군데 물웅덩이도 있다.  차바퀴가 너무 빠대서 길이 망그러지면  또 저만치로 돌아가면서 새 길이 만들어 진다.

  염호(鹽湖)를 지나 언덕에서 차가 멈춰섰다.

  뒤따라 오는 차들도 모두 이 부근에 멈추는 것으로 보아  고원을 느껴보는  뷰 포인트인것 같다.

  몰아치는 세찬 바람을 감수하고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본다.

  바람.  그리고 황량함.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이 놀라운 풍경에 아무런 할 말을 모두 잊었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이 순간  자연에게 내 자신을 모두 맡겨버렸을 뿐이다.

  수 백만년...........

  도대체 수백만년은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일까?  수백만년은 도대체 어떻게 계산하고 길이를 재 볼 수 있을까?

  수백만년 전에  이곳은 모두 검푸른 바다였다고 한다.

  '바다라고?' ' 여기가?'

  내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를 아주 절실하게 느껴보는 순간이다.  나는 또 다시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간 고원에 들풀이 자라고.......  연중 강수량이 거의 없는 이 황량한 사막에도 어시선가 물이 생겨나  그래도 그중 가장 낮은 곳에 모여드는데,  이 부근의 지표면을 쓸고 내려온 물에는  수백만년 전의 바닷물이 남기고 간 염분이 녹아있다.  호수의 물은 모두 바닷물인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더니,  코미디를 보면서 울 수도 있다더니,  지금 이 황량하기만 하고 쓸쓸한 고원을 바라보면서 문득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시방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아름답다.

  참으로 멋진 풍광이다.

  그사람들은 왜 이토록 사무치도록  외지고  험난하고 황량하기만 한 이곳까지 찾아와서 수도원을 지었을까?

  아마도 인간은 이처럼 고립무원의 처지에 처했을 때여야만 신(神)을 쉽게(?) 자주(?) 만날 수 있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예수가 구원의 깨달음을 찾아나섰던 '광야'.

  모세가 신을 찾았던 '시나이'

  야곱이 신과 한바탕 씨름을 벌였던 '광야'

  에서가 신을 만나 밤새 대성통곡을 했던 '들판'

  마호멧이 신을 찾았던 고원의 '동굴'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깨닫고,  최대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갖추고,  내가 아닌 모두를 생각하는 어떤 절실함이 간절해졌을 때여야만 비로소 신(神)과 조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광야'이던 '사막'이던 상관없이,  부는 바람결에 싱그러움을 느끼고  이런 황량한 풍경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밤을 생각하면 쏟아지는 별무리부터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천번 만번을 다시 산다해도 결코 신(神)을 만나지 못한다는 결론이 아닌가.  속물이라서 그런걸까?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을까?'

  뭇 상념속에  고원의 풍경을 가슴속에 마구 마구 담아 본다. 요즘은 가슴이란 놈도 디지털화 되어서  용량도 무제한이고  일단은 실컷 담고나서  삭제는 차차 다음에 천천히 하면 된다.  거기다 고성능이라서  셔터를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눈길만 척 갖다대면 끝이다.  완전 자동이다.  혹 나만 그런가?

  저 언덕 넘어 초원의 어딘가에서 몇날이고 캠핑을 좀 했으면 싶다.  한번쯤 꼭 그러고 싶다.

  혹시나 몇날을 초원에서 혼자 서성이다 보면  신(神)께서 심심하실 때 한번 슬쩍 내려오실 수도 있는거 아니야?  초컬릿 하나 가지고 있다가 신께 드려볼까?  신께서 쵸컬릿 맛을 아실까?  아니면 포도주 한 병 가지고 있다가 마주앉아 대작을 한 번 해봐?

  그러다 보니 차가 주차장에 멈춰 섰다.

  수도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는 안았지만  주변의 풍광이  책자에서 이미 보았던 것들과 많이 닮아있다.  데이비드 가레자에 마침내 도착을 한것이다.

  일행들이 하나 둘 앞다투어  수도원쪽으로 일제히 달려가기 시작한다.

  '왜들 저러지?  수도원에서 보물찾기 놀이라도 하나?  정해진 시간도 충분한데..........'

  트래킹은  수도원을 바라보고 시계 방향으로도  시계 반대방향으로도  모두 가능하다.  지금 수도원으로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시계방향으로 트래킹을 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나서기로 했다.  왜냐면......  일단 북적이는 것이 싫다.

  호젓하게 나만의 트래킹을 즐기고 싶으니까.........

 

 

 

 

 

 

 

 

 

 

 

 

 

 

 

 

        ---  외적으로 부터  데이비드 가레자를 지키기 위한  감시탑 이자 망루(Watchtower)

 

 

 

 

 

 

 

 

 

                            --- 조지아  국경수비대.

 

                                     

 

 

 

 

 

 

 

 

 

 

         --- 조이아와 아제르바이젠의 국경.  수시로 국경을 넘나드는 트래킹이다.   지구상에 이런곳 절대 없음.

 

 

 

 

 

 

 

 

 

 

 

 

 

 

 

 

 

        --- 목동과 양떼가 다니던 길이 그대로 국경이 되었다.  그 길을 지금은 여행자들이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며 다닌다.

 

 

 

                  --- 우다브노(Udabno)  동굴 수도원.

 

 

 

 

 

 

 

 

 

 

 

 

 

                 -- 허접한 이 쇠말뚝이 국경의 전부라고?  이걸 뽑아다 엿사먹으면  어느나라에서 처벌을 받을까?  조지아가 좀 낮겠지?  아무래도 기독교가....... 

 

 

 

          ---  가레자 산 정상에 있는 기도처(chapel Ressurection,부활 성소)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트빌리시에서 약 60 km 떨어진 카헤티 주의 이오리 고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 황량하기만 한 고원의 한복판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바로 가레자 산이다.  또한 이 지역은  아제르바이젠의 '아그스타파 레이온(Aghstafa Rayon)' 지구에 속하기도 한다.

  소련과 오스만이라는 거대 제국 틈바구니에서 오욕의 세월을  함께 격었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독립(해방)이라는 거대한 숙원 앞에서 허둥대다보니 상호간에 어정쩡한 상태에서 심사숙고 없이  국경을 설정해버렸던 것이다.  두 나라의 영토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가레자 산을 분할함에 있어서 대충........  고대때부터 목동들이 양을 몰고 다니던 산길을 그냥 국경으로 삼기로 덥썩 합의를 했던 것이다.  일단 그래놓고 추후에 가만히 따져보니   조지아의 위대한 유산인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 전체가 온전하게  조지아의 영토에 들어 온 것이 아닌,  지그재그로 일부 일부가  아제르바이젠의 영토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즈 가레자 수도원은  조지아 사람들에게 종교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자부심이자 자존심이었다.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젠에게  수도원 영역의 영토를 돌려줄 것을 청했다.  당연히 아제르바이젠은 이를 거절했다.  비록 역사로 보아 과거에 조지아의 영토였던 것은 맞지만,  엄연히 국제법상의 조약에 의해 합의하에 분할한 영토였던 것이다.  분쟁은 날로 커져만 갔다.  작은 전쟁까지 있었다.  그러자 국제 사회가 중재에 나섰다.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젠에게  영토의 교환을 제의 했다.  수도원이 본래의 모습으로 완전한 영역을 확보해야겠기에  가레자 산의  아제르바이젠 영역만큼의 땅을  국경선에 접한 다른 지역으로 보상 교환하자는 제의였다.  이 제의에 대하여 오늘까지도 아제르바이젠은 대꾸가 없다.  묵묵무답이다.  아마도 조지아에게 너무도 귀한 지역이기에 슬쩍 걸쳐놓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보는것 같다.  땅을 한 서너배 넓은 지역으로 맞교환하자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는 바꿀 생각이 없는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초리에  아제르바이젠이 한 발 물러섰다.

  조지아를 통해 데이비드 가레자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국경문제를 원칙대로 적용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관망해 주겠다고 허락을 해준 것이다.

  그래서  테이비드 가레자 트래킹 코스를 포함한  산 정상부를  조지아 군대가 관활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젠 군대는  산 아래 평원에 진을치고  국경을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이 세ㅔ상에 유래가 없는  기기묘묘한 행태가 이곳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이지만,  아제르바이젠은 철저한 이슬람주의 국가이다.  그러다보니  오가는게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국경을 통과하자면  여권 검사며  비자문제면  출구심사 입국심사가 뒤따른다.  거기에 세관 신고나 짐검사까지 말이다.  조지아에서 아제르바이젠을 가던,  아제르바이젠에서  조지아로 오던......  국경을 넘어다니자면  당연한 절차가 아닌가.

  그렇게 따져서 데이비드 가레자 트래킹을 하자면  한 열흘은 걸려야 한바퀴 돌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이 코스의 곳곳에 국경검문소가 생기지 않는다면 절대 불가능한 트래킹이 될 것이다.

  수도원 뒷산에 증턱쯤 오르면 벌써 국경이 나온다.  그런데 국경의 한쪽만 택해서는  올라갈 방도가 없다.  길이 국경을 넘었다 다시 넘어왔다 하기 때문이다.  왼발은 조지아에 오른발은 아제르바이젠에 두고  국경에 걸터앉아 쉬기도 한다.  트래킹 코스를 한바퀴 돌자면  대충 잡아서  한 200번은  무단으로 조지아에서 아제르바이젠 국경을 넘어가야만 하고,  넘어갔으니 이번엔 다시 한 200번 쯤  아제르바이젠에서  조지아 영내로 국경을 슬쩍 무단으로 넘어와야만 한다.

  그렇게 월경을 무단으로 수시로 하고 있는데도  바윗덩이 위에 무장한 조지아의 국경 수비대는  무심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  직무유기 아닌감?

  국경을 지키라고 돈주고 밥주고 무기까지 주었는데.......  이눔저눔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어도 아무런 제지를 안한다.

  혹여나 여행자가 쇠말뚝을 넘어서  아제르바이젠 영토에서 넘어져 다친다면.......  아마 군인들도 본분을 망강하고 과감하게 국경을 도발하고 부상자를 도와줄것이다.  아마도 그럴것이다.  그럴려면 국경을 뭐하러 만들었지?

  여기 국경에 박혀있는  쇠말뚝을 죄다 뽑아서 한국의 고물상에 가져다주면  엿을 제법 많이 바꿀 수 있을텐데........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여권도 비자도 없이 국경 넘나들기..........  지구상에 여기밖에 없는 진풍경이다.

  이쪽에선 아멘 할렐루야..... 한걸음에  국경을 넘어서는  알라 알라  인샬라.

 

 

 

 

 

 

 

 

 

 

 

 

 

 

 

 

 

 

 

 

 

 

 

 

 

 

 

 

 

 

 

 

 

 

  꿈속에서도 불가능한  내맘대로 국경 넘다들기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데이비드 가레자 트래킹'은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다.

  마치 사막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듯 광활한 초원과  황무지 같은 바위산과 계곡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듬뿍 찾는이에게 선사한다.

  본래 여기 일대에는 15개나 되는 수도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13세기 중엽,  이곳을 침량한 몽골 군대에 의해 모두 완전 페허가 되었다.   지금 사도사들이 기거하고 예배를 보는 건물이 '라브라(Lavra) 수도원' 이다.  그리고 언덕위에 벼랑길에 자리잡은  수많은 동굴 수도원 가운데서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유명한 '우다브노(Udabno) 동굴 수도원'이 가장 유명하다.

  성 데이비드와  12명의 수도사들이 처음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라브라 건너편의  거북바위처럼 생긴 바위산에 동굴을 파고 그 안에서 기거하였다.

  성 데이비드의 명망이 높아지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그의 제자  도도와 루시아니로 하여금  찾아온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더 많은 동굴 거처를 만들도록 하였다.  도도와 루시아니는  산을 넘어 바위 벼랑에까지 또 동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  우다브노 동굴 수도원이 생겨난 것이다.  데이비드 가레자의 명망은 점점 높아져만 갔고   점차 귀족들과 부호들의 후원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하여 9세기 경에 마침내 동굴 수도원에서 벗어나  교회건물의 형태를 가진 '라브라(Lavra)'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인근으로  15개나 되는 수도원들이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14세기에 몽골에 의해 폐허가 된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수시로 몽골의 약탈은 지속되었다. 

  몽골이 이슬람을 정복하여 세운 압바스 왕조에 의하여 1615년 수도사 6.000명이 학살되고 대부분의 예술품이 약탈 당했으며  수도원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 파괴되었다.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의 비극이었다.  그 후로 수도원의 명맥은 이어져 내려갔으나  수도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활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구 소련 시절 약간의 복원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질적인  종교시설의 복원사업은 아니었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과의  전쟁에 대비해  이곳을 군사훈련소로 개조해 사용하였던 것이다.

  지금의 수도원 모습은  대부분이  조지아가 소련으로 독립한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이 수도원은 조지아인들에게 자존심 이상의 것이었다.

  수도원이 제모습을 되찾게되자   순례자들이 속속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곳의 빼어난 정경이 입소문을 타자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트래킹을 겸해 조용히 쉬면서 다녀갈 수 있는  힐링 여행지로  명망이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는 추세다.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천상의 트래킹 코스를 품고 있다.

 

 

 

 

 

 

 

 

 

 

     --- 데이비드의 눈물 샘.  바위벼랑에  사선으로 홈을 파서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 저장했다.  그만큼 물이 귀했다.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데이비드 가레자 트래킹을 조지아에서의 마지막 날에 선택한 것도 참 잘한 일인것 같다.

  이제껏과는   전혀 다른 느낌 다른 풍경 다른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의 표정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천상의 트래킹'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오늘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나는 조지아를 떠나  터키로 간다.  새벽 2시쯤 숙소를 나서야 하니  밤이  지나는 것도 아니다.  아쉽다.

  아직도 조지아에 대해서 무언가가 많이 아쉽다.  허전하다.  과연 내가 조지아를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다시 올까?

 

  버스는 다시 오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같은 자리에 고대로 앉았으니까  창문밖의 풍경이 오전과 반대인것 뿐인데........  다르다.  너무나 확연하게 다르다.

  아름답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또다시 최신형으로 장착한  나의 가슴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눈빛만 보내면 저절로 찰칵이다.  파노라마 동영상도 가능하다.  참 좋은 세상이다.

  두고두고 이날의 풍경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다.

 

 

 

 

 

 

 

 

 

 

 

 

 

 

 

 

 

 

 

 

 

 

 

 

 

 

 

 

 

 

 

 

 

         --- 이곳의 분위기를 여실히 나타내주는  벽보판.  일장기 아래 우측으로  천원짜리 우리 지페가 걸려있다.  왜 일본쪽이야?

 

 

 

 

 

 

 

 

 

 

 

 

 

 

 

 

 

  데이비드 가레자를 나와서 이십분쯤 달렸을까?

  딱 고원의 한복판쯤 되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미니버스가 멈춰섰다.

  프로그램에 있었던 대로  '우다브노 마을에서  휴식과 저녁식사 타임'이 1시간  주어졌다.

  그냥 길가에 얼핏 창고를 개조한 듯한  귀여운 식당이 두 곳 들어서 있다.

  우리 일행의 미니버스가 3대였고  다른 미니버스들도 서 있다.

  식당 두 곳중에서 그냥 아무데나 고르고 싶은곳을 들어가면 된다.  나는 건물이 좀 더 커보이고 너른 공터가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자유배낭여행자 쉼터 같은 곳이다.  무한의 자유가 허락되는 곳이다.

  아무곳이나 앉고 싶으면 앉고  기대고 싶으면 기대로 눕고 싶으면 아무데고 누우면 그만이다.  인도나  파키스탄의 어느 뒷골목 게스트하우스 분위기다.

  약간의 히피나 집시풍의 분위기라고 할까?

  철망 사이에 열려있는  있으나마나한 문을 열고 나가면  또다시 초원이 시작된다.

  방갈로 앞에 길게 놓여있는 나무의자에 기대어 앉으면  두 눈 가득 초원이 쏟아져 들어온다.  들려오는건 오로지 바람소리 뿐이다.

  도끼가 보이기에  장작패는 시범을 보여주고 일행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도 기웃거려보고  할머니의 요리 강의를 들었는데........  조지아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셔셔 연실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나왔다.

  친절한 일행이 나누어주는 빵과 함께  생맥주 한잔을 마셨다.

  어느 자리에 앉던  누구에게 다가가던  여기서는 모든것이 다 용서되는 완전 자유지역이다.

  눈만 마주치면 너나 할것없이 서로 먼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여행중에만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경험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 하나씩의 개별 여행자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면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의 여행자 무리가 된다.  친구이자 동지다.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흥에 겨우면 삼삼오오 모여서 춤을 춘다.

  이렇게 즐거운 때 일수록  안타깝게도 시간은 더없이 빨리 지나가기 마련이다.

  다시 미니버스는 출발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밤 여덟시가 조금 지나서야  오전에 출발했던  푸쉬킨 공원 앞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모든 일행들과 한명 한명씩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건네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유령 호텔로 돌아와  내걸었던 빨래를 걷고   샤워를 하고  다시 마지막 배낭 정리를 했다.

  방금 들어오면서 갤러리아 슈퍼에 들려 사온 와인을 어제 남은 포도와 과일과 함게 먹는다.  아참 빵도 아직 남았다.

  이렇게 조지아 여행도 마쳐가고 있다.

  이 시간에 잠이 들으면 더 피곤만 느끼게 되고  혹여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게 되면 낭패라는 생각에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버티기로 한다.

  무료 와이파이가 이럴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열심히 영화를 검색한다.

  다이안 레인 주연의  '파리 가는 길'을 보았다.  재미있다.  언제인가는 마르세이유랑 파리를 꼭 가야만 될것 같다.

  '맘마미아 2'를 다시 보았다.  마치 동화를 읽는것 같다.  도대체 그리이스는 언제쯤 가면 될까?

 

  새벽 2시가 가까워 온다.

  이젠 서서히 조지아를 떠날 시간이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서 슬며시 밖을 내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도대체 하늘은 나에게 왜 이러는걸까?  여행중에 장거리 이동만 할려고 하면 꼭 비가 내리네?  도대체 왜그러는거여?

  젠장~~~~~~~.  택시 잡아타는 도로까지는 꼼짝없이 비를 맞게 생겼다.

  그래도 좋았어.  고마웠어.  잘있어.  조지아.

  트빌리시야  사랑해.

  마들로바. 마들로바. 마들로바. 마들로바.

 

 

 

 

 

 

 

 

 

 

 

 

 

 

     ----- 조지아 여행기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터키  카파토키아에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