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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몰타) 만약에...... 해외 여행을 시작하려 하신다면.........

by 피안재 2018. 6. 17.

 

 

 

 

 

 

 

 

 

 

 

 

 

 

 

 

 

 

 

 

            만약에.......

            이제 해외여행을 시작하려 하신다면

            굳이 (몰타)를  가장 먼저 가보시라 권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혹여,  이제 해외여행을 접으시려 하신다면

            (몰타)를 다녀오셨느냐고  꼭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나........

            (몰타)를 가보지 않으셨는데  여행을 접으시려 하신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그곳만은  꼭 다녀오신 후에  여행을 접으셔도 늦지는 않을테니까요.

 

 

 

 

               우리는 (몰타)라고 부르고  (Malta)라고 씁니다.

            현지인이나 유럽에서는 (말타)라고 발음해야 알아듣습니다.

            (몰타)는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 옆에 있는 아주 작은 섬입니다.

 

             아시고 계셨나요?

 

 

 

 

 

 

 

 

 

 

 

 

 

  시칠리아 여행을 마치고  카타니아의 폰타나로사 공항을 떠날 때 이미 잔뜩 흐린 하늘에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 11시 40분에 도착한 루카 몰타 공항은 소낙비가 아주아주 세차게 내리 퍼붓고 있었다.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합 대합실에 도착하니 자정이  이미 저만치 지나고 있었다.

  어쩐다?

  당장 맞딱뜨린 상황이 아찔하기만 하다.

  대중교통은 모두 이미 끊겼고,  그렇다고 약속된 목적지도 없다.

  헐.........

  비행기에서 함께 내린 사람들은 저마다 제 갈길을 바쁘게 간다.  현지인은 마중나온 환영객이 있고,  여행자들은 대부분  사전 예약한 여행사나 호텔의 픽엎 써비스 차량이 기다리고 있다.  극소소의 여행자들만 잠시 우왕좌왕 하는 듯 보이더니  삽시간에 썰물 빠져나가듯이 어디론가 죄 다 사라지고 없다.

  방금 심야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은 아마도..........  나만 덩그러니  혼자 남은 듯 하다.

  카타니아에서 출발이 약간 지연되긴 하였으나...........

  그 흔한 호텔 예약 바우처 하나 없는............  완전.........  완전   날강도 심뽀의  허술한 배낭 여행자........... '어떻게 되겠지?'

  공항 경비대원에게 물어보니  새벽 첫 대중교통 공항 버스가  5시반에 운행한단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5시간 정도를 어디선가 버티거나 견뎌내야 한다는 결론인데...........

  우리나라 (제주 공항)의 크기와 수준을 갖춘 몰타의 국제 공항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낼 공간이 쉽게 눈에 띄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인근에서 잠시 머물 게스트 하우스라도  찾아봐야 하는데  주변을 살펴보아도 전혀 보이질 않는다.  비는 세차게 내리 퍼붓고.........

  '일단은  발레타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이야긴데.........  어디로 가지?'

  예약된 호텔도 없을 뿐더러,  이 시간까지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곳은  별 네개나 다섯개(오성급) 아니면 없을텐데........

 

  그러나 내가 누구?

  '의지의 한국인.'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수첩에 (몰타)에 대해서 이것저것 메모했던 것을  살펴보고 또 뒤져 본다.

  '발레타'의 숙박비는 제법 비싼 편이고,  '쎄인트 줄리안'은  놀기 좋은  새롭게 부각되는 핫한 지역인데 호불호가 엇갈리고,  보편적인 배낭여행자들에게  호응을 받는 곳은  '슬리에마 지역' 이라는  제대로 읽기도 힘든 유명한 나의 악필이 암호처럼 쓰여져 있다.(내 글씨를 사나흘 지나면 내가 잘 못 읽는다)

  그리고 그 아래로 깨알같이 써있는  (내 수준에 걸맞는  호텔)이라고 써 놓기는 했는데  제대로 읽어볼 수가 없다.  안경을 꺼내서 써 봐도.......   ㅎㅎㅎ.

  겨우 '유로파' '살레' '마리나' 글씨와 함께  떠나오기 전에 사전 공부를 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그제서야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어.느.곳.이.좋.을.까.요.알.아.맞.혀.보.세.요.

  주먹의 점쾌를 따져보니 '유로파'가 나온다.

  그럼........  망설일게 뭐 있어?

  공항 대합실 내에 있는 택시 부스로 간다.(부스에서 목적지를 말하면  지정된 요금이 나오고,   돈을 지불을 하면 티켓을  받아서  밖으로 나가서 택시 기사에게 태켓을 제출하면 목적지 까지 태워다 준다)

 

  - 슬리에마  유로파 호텔.

  - 사전에 호텔 예약 하셨습니까?

  - 네. (개뿔.  예약은 무슨........  나.......  한국인이야.  의지의 한국인.  한국인은 에약 없어도......  ㅎㅎㅎ ...... 안면 박치기에 강해.)

  - 16 유로 내세요.

  - 왓?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이거.......  시작부터 디지게 비싸네.........  택시로  십오분이면 간다던데........  씨.........)

 

  택시에 탔다.

  16 유로를 사기당했다는 생각에.......  '차라리 새벽까지 공항에게 어떻게든 버텨볼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웬걸?  그런 걱정도 아주 아주 잠시 뿐..........

  빼쌱 마른 이 젊은 기사양반이  내리 퍼붓는 빗속을 자정을 훌쩍 넘어 달리는데........  이거 완전히  포물러 원(F1 그랑프리) 수준으로 내달린다.

  나도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는  자동차로 달리는 것이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이건 차원이 다르다.  일단 낯선 트랙인데다  시방 시야 확보가 안되는  해변 도로를  무지 무지........  무지하게 달려나간다.

  좀 전에 타고 온  비행기 보다도 더 빠르다.

  십분쯤 지나서  일대가 모두 어둠속에 잠긴 해변 도로에 택시가 멈추어 섰다.

  간간히 가스등 처럼 흐미하게 붉은 가로등 불빛은 있었지만,  주변의 건물이나 상가나 호텔의 간판은 모두 불이 꺼진 칡흑 같은 해안도로상 이었다.

  -  유로파 호텔이 어디 있어?

  기사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건물을 살펴본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호텔 간판이 보인다.  '상황이야 어찌되었건 맞긴 맞나 보다.'

  폭우속에 택시에서 내려 배낭을 둘러메고  호텔로 다가갔다.

  간판불은 꺼졌지만  유리창 출입문을 통해 안쪽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흔들어 보니 문이 열려 있다.  무조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긴 복도를 걸어 들어가니  카운터가 나오고  연세 지긋하신 뚱뚱하면서도 기품이 엿보이는 노인께서 눈을 커다랗게 뜨시고 나를 쳐다 본다.

  눈이 마주치자 마자 나는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입장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심야의 방문객이 느닷없이 늘어놓는 푸념을 한참동안  다소 놀라 당황해 하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상황 설명이 끝나자 마자  '일단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그 할아버지가 호텔 사장님)

  그러더니 안쪽으로 들어가시더니  느닷없이  시원한 차를 한잔 내어 주신다.  젖은 비를 닦으라고 수건도 내어 주신다.

  '내 속은  방이 있는지 없는지가 우선 급한데.........'

  - 이 시간에  공항에서 오는 길입니까?

  - 네.  예정에 없던 사정이 생겨서요.

  -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 한국에서 왔습니다. 남쪽............

  - 아주 특별한 사람을 봅니다. 지금.........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 내가 이 호텔을 처음부터 아주 오래 운영해 왔는데.........  점심때 지나 오후에 문을 열고 오는 손님은 거의 대부분 사전 에약 손님이지요.  예약이 없는 손님은 거의 아침이나 오전중에 찾아 옵니다.  안되면 다른곳을 찾아 다녀야 하니까요.  그런데 자정을 훌쩍 지나 불쑥 찾아와서  방이 있느냐고 묻는 손님은  내 기억에도 별로 없습니다.  용감한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  배낭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예정에 없던 스케줄 변동을 갖게 되는 부득이한 상황을 맞게되면 가끔씩 이런 무례를 저지르게 되네요.  이와 같은 경우로  미얀마 바간에서 엄청 고생한 적도 있었는데........  이것도 경험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하고요.

  - 몰타는 어떻게 찾아 오셨습니까?

  - 한국에서는 영어권 어학연수 지역으로 제법 인기가 있는 곳이 (몰타)입니다.  해외 여행잡지에서도   몰타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주르 윈도우)를 보지 못하게 되어서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몇 해 동안 별러왔던 이번 여행입니다.  몰타에 대해서 아주 아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 며칠이나 머물 계획입니까?

  - 닷새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 몰타를 둘러보기엔 충분하다면 충분하고  부족하다면 부족할 여행 기간이군요?

  - 머지않아  가족과 다시 올 계획이 있으니까요.  그때는 열흘 쯤 머물 생각입니다. 사전답사라 할까.........

  - 여행 기간 내내 우리 호텔에 머물 생각이십니까?

  - 그러고 싶습니다.

 

  이 할아버지.  엄청 자상하시고  배려심이 많으신 고마운 분이셨다.

  내가 또 사전에 유념하지 못한 것이 (유럽 사람들은  주말 휴가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이날 호텔을  나흘 밖에  예약하지 못했다.  주말이 끼게 되었고,  주말과 휴일엔 이미 오래 전에  사전 예약이 모두 마쳐진 상태였다.  또 이날 내가 운 좋게 얻은 방도......  사실은 달랑 하나 남은 방이었다.

   예약을 하면서 할아버지는 내 처지를  보아서인지  배려를 해 주셨는데......  1박에 20 유로씩  4일을 허락해 주셨다.  거기에 하루에 도시세 0.5 유로씩.

  모두 합해서  4일 숙박비로  82 유로를 지불했다.

  방이 상당히 컸다.  더블 침대에  너른 화장실.......  비록 해변가 호텔에서  바다를 내다보는  씨뷰 까지는 아니었지만(씨 뷰는 훨씬 비쌈)  대단히 만족스런  숙소였다.  한마디로  횡재라 할 수 있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 보시라.  4박에 얼마가 요구 되는지..........  물론 여기에는  일정 부분,  어쩌면 적지않은 부분의  여행사나 중개업자의 커미션이 빠졌기 때문일 수 있다.  어찌되었든........  갑자기  공항에서 택시를 공짜로 타고 온 기분이 들었다.

  모자라는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지냈을까?  다른 호텔?  이 호텔에서 우연히 연장?

  이날 나흘 밖에  예약을 못한 이유는...........  다 하늘에서 알아서 사전에  예비하신 이유가..............  있었다. ㅋㅋㅋㅋㅋ

  유로파 호텔 5층의  스탠더드 룸은   팔레르모의 숙소 다음으로  좋았다.

  다음에 몰타를 다시 찾아가게 되더라도  당연히 1순위는  유로파다.

 

 

 

  밤을 이용해  시칠리아에서  몰타로 이동을 했고,  자정이 훨씬 넘어서 숙소를 해결하느라 대단히 피곤하였음에도  어둠이 가시자 마자 잠에서 깨어났다.

  날씨는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이  더없이 맑고 쾌청했다.

  몰타.

  슬리애마에서 맞는 첫 아침.

  그리고  코발트빛 지중해..............

 

 

 

 

 

 

 

 

 

 

 

 

 

 

 

 

 

 

 

 

 

 

 

  미치겠다.

  실제로 미치는 일이야  없겠지만서도..........  이거야 정말 미치겠다.

  왜?

  파란 바다가 너무 많아서.......   사방으로 넘쳐나서.........

  아주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경남 사천을 거쳐 남해로 건너가던 중에 파란 바다를 만났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이 바다와 첫만남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그 파란바다의 한계를 나는 울릉도 바다를 만나면서 뛰어넘었던 기억이 있다.

  이스탄불 보스포로스해에서 바다가 화가나면 더 시퍼러진다는 사실도 알게되었고,  트라브존의 흑해를 바라보면서는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 깊으면 깊을수록 파랗다 못해 검푸러진다는 사실도 깨닭았다.

  타오르미나의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검푸른 바다는.......  바다도 때로는 사람들에게 평온과 쉼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되었다.

  그런데 지금..........

  바다 때문에 가끔은 사람이 미칠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있었다.

  호텔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그냥.........  온통 바다다.

  여기저기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것이 온통 바다다.  지중해.

  에구머니나..........

  이럴땐 뭐부터 하지?

 

 

 

 

 

 

 

 

 

 

 

 

 

 

 

 

  캬 ~~~~~~~~~

  코~ 오~ 피~ 꿋~ 베~리~ 베~ 리~ 굿 !

  호텔문을 나서면  한산한 해안도로요, 곧 해안을 끼고도는 산책로가 바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끝까지 이어져 있고  중간중간에 이렇게 멋진 휴계소겸 간이 레스토랑 겸 칵테일바 겸 펍이 들어서 있다.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면 꼭 우리나라의 카푸치노 스타일의 커피가 나온다.

  파란 지중해를 배경으로  살며시 불어오는 바닷바람 사이로 진한 커피의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들고,  커피잔의 따스한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피곤한 가슴을 살며시 어루만진다.

  나.는.지.금.저.념.쳐.나.는.지.중.해.만.큼.이.나.가.슴.가.득.행.복.이.넘.쳐.나.고.있.다.

  이날 이후, 떠나오는 날 아침까지 같은  시각이면 어김없이 이 자리에서 커피를 마셨다.  솜씨좋고 마음씨 넉넉한  저 사내와  매일매일 새로운 아침인사를 반갑게 나누면서..........   슬리애마표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몰타여행이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

 

  1. 너무나도 쾌적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작은 인구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  보내오는 환한 미소와 친절이 가득한 곳이어서.

  2. 라임스톤으로 만든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당시의 모습대로 보존되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거슬러 올라가볼 수 있어서.

  3.  동양과 서양이 맞부딪힌  거대한  문명의 충돌을 온 몸으로  직접 겪었던  격전지에서  인류문명사의 대전환을 몸소 체험하고 느껴 볼 수 있기에.

  4. 라틴어나 불어권을 여행하다가  영어문화권에 들어서면  왠지모를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몰타는 영어문화권이어서.

  5.  작은 영토가 가져다 주는 아주 이색적인 느낌과  여유롭고  행복으로 충만한 여행지를 고른다면 당연히 몰타. .  시내버스 이용 방법과  시간표를 파악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계획도 준비도 전혀 필요치 않는  하루하루가 매 순간순간이  그냥 마음 편한 동구밖 나들이........

  6.  완전한 서유럽여행이면서  이렇게 감동으로 다가올만큼  저렴한 물가라면.........  아마도  시칠리아와 몰타뿐이지 않을까 해서.

 

 

 

  <몰타여행에서 느끼는 아쉬움>

 

  1.  일단 너무 멀다.

  2.  몰타의 시계는 아마도 우리네 일상의 시간보다 서너배는 빨리 돌아간다.

 

 

 

 

 

 

 

 

 

 

 

 

 

 

 

 

 

 

 

 

 

 

 

 

 

 

 

 

 

 

 

 

 

  내가 지금 묶고있는 숙소는  슬리애마에 위치해 있다.

  여행자들이 몰타에서 머무는 장소로는 대략  세군데 지역을 꼽을 수 있는데,  으뜸으로는  몰타의 수도이자 중심지역인  (발레타)를  꼽는다.  별이 많이 달린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서있는 관계로 여러가지 여건상  최고로 치겠지만  대신 많은 머니를 요구하는 지역이다.

  다음으로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있고 사랑받는 지역으로  몰타에서 가장 핫 플레이스라 할 (세인트 줄리안) 지역이 있다.  세계 각지의 젊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펍들이 즐비하고  이곳의 밤문화(?)는  근자에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있다.  수많은 나이트 크럽들이 밤을 새워 문전성시를 이루는 핫 플레이스다.  대형 마켓과 최신 시설의 호텔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어서  미리미리 예약을 하거나 발품을 열심히 팔아야 하는 지역이다.

  그 다음이 바로 (슬리애마) 지역이다.  조용하게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고 싶은  자유여행자들이 즐겨찾는 지역이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나름 저렴한 가격에  좋은 호텔들을 쉽게 고를 수 있고,  또 몰타를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고도 하겠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발레타가 나오고,  반대로  왼쪽(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세인트 줄리안이다.

  발레타를 야간에 돌아보다가 천천히 걸어서 귀가할 수도 있고,  세인트 줄리안 나이트 클럽에서 불타는 밤을 보내다가 새벽녁에 지중해 바닷바람을 쐬면서 슬슬 걸어오기에도 적당한 좋은 위치에 놓여있는 곳이  슬리애마라 하겠다.

 

  슬리애마의 중심은 숙소에서 발레타쪽으로 조금 떨어진  페리 선착장 이라고 하겠다.

  몰타 해상관광을 떠나는 쿠르즈 유람선들이 즐비하고,  또 발레타 지역을 바다를 통해 쉽게 오고가게 만들어주는  수상버스 출발지이기에  단박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또 몰타섬을 구역별로 나누어 씨티 투어를 떠나는 버스의 출발지이기도 하여 늘 시민들과 여행자들로 붐비는 지역이다.

  이곳에 오면 바로 코앞에 바다건너  발레타의 멋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엠시다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요트들이 만들어내는 아주 멋진 해양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마노엘 섬도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고.....   '아!!!  이래서........  비로소  몰타로구나'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슬리애마의 중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위령탑이  페리선착장 앞에 우뚝 서있다.

  영국령에 속했던  제 2차 세계대전의 시기에  이탈리아로 진격하기 위한  연합군의 교두보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곳이 바로 여기 몰타였다.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슬리애마지역 전투에서 숨진 몰타의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  그분들의 이름과 함께.........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가?

  어디를 가던  이런  위령탑을 보거나  사연을 접하게 되면  항상 가슴 한구석이 알싸해져 온다.

  '신이시여.  저들을 기억하시고  평안을 허락하소서.'

 

 

 

  이제 페리(수상버스)를 타고  발레타로 건너가 보기로 한다.

  누구나 시내버스 요금과 동일한 가격에 이용이 가능하다보니  인파로 늘 붐비는 페리에는 절반은 현지인이고 절반은 여행객이다.

  선착장을 출발한 페리는 곧바로 마노엘 아일랜드를 스쳐지나  발레타 페리선착장으로 직행한다.

  배가 선착장에 다가갈 수록  이제와 전혀 다른 느낌,  전혀 다른 풍광이 시야 가득 넘쳐든다.

  나는 지금 수백년 전의 중세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라임스톤으로 가득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도시와  실제의 역사속에서 요한 기사단이 활약하던 그 시간속으로..........

  아!!!  몰타.

 

 

 

 

 

 

 

 

 

 

 

 

 

 

 

 

 

  검푸른 지중해의 바다 한가운데 뚝 떨어져 스스로 고립된 섬  몰타(Malta).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a)는  고대 페니키아 어로 '피난처'라는 뜻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몰타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이 '피난처'라는 단어에서 풍겨지는  묘한 뉘앙스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과연 그랬을까?

  과연 '누구에게 피안처' 였다는 의미일까?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본다면 차라리 ' 그들에겐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두 단어의 의미는 분명 다르다.

  어쩌면 또다른 그 누군가에게는 '악의 소굴' 이었지 않았을까?

 

  이미 기원전 3.800년 경부터 지중해를 거점으로 하는 무역항으로 이름이 나있던 몰타.  하지만 그 지중해의 중추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국가와 이민족들의 침략이 끊이질 않았던 격변의 땅.  아니 아주 작은 보잘것 없는 바위섬.

  그래서 몰타는 누군가의 소중한  피난처였다는 의미였을까?

 

 

 

 

 

 

 

 

 

 

 

 

 

 

 

 

  대자연이 베풀어주는 최고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선물로 받은  몰타(Malta).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던 풍경의 이면엔  거칠고 참혹하면서도 생명을 이어가기조차도 힘들만큼 처절한 고통의 역사가 점철되어 있는 몰타.

  지중해의 한가운데......  스스로 고립되었음에도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이리 치고 저리 치어야만 했던  수난의  몰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마냥 검푸르기만  에메랄드빛  지중해.

 

 

 

 

  몰타는 지중해에 외롭게 떠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남북으로 대략 약 30km,  동서로  약 15km 크기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약 1/6 정도의 크기다.

  가장 큰 섬인 (몰타섬)과 조금 더 작은 (고조섬)이 있고  코미노섬을  포함하여 총 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나라이다.

  2015년 기준으로  몰타라는 국가의 총 인구가 약 41만 4천명 정도였으니  가히 그 크기나 위상을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몰타라는 현재의 지명이  인류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약 7.000년 전 부터였다고 하니,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 자칭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해 보아도 거의 약 2.000년을 앞서 문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서 혼혈국가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의 몰타이다 보니 그 민족의 기원을 분명하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나,  지중해를 여행하고  또 오랫동안  관찰해본 나의 생각으로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지극히 소수의  원주민이 거주하던 이곳에 지중해를 떠돌던 페니키아인들이 들어와서 처음 원시공동체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원시부족과 페니키아인들이 함께 섞여 살아가던 신석기 시기를 지나 청동기 시대에 접어든 이후로  비로소 카르타고인들과  그리이스인들 처럼 나름의 자기 문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들었다고 생각된다.

  이 작은섬 몰타의 곳곳에  인류역사가들을 놀라게 하고 경탄케 하는  선사시대의 유적지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이포게엄 (Hal - Saflieni - Hypogeum) 이라는 신석기 시대의 무덤이자 사원이 있다.  한개의 돌덩이 무게가 30톤에서 50톤까지 나가는 돌덩이들을 먼곳에서 여기까지 옮겨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이집트 피라밋 보다도  1.000년을 앞선 것이었으며,  영국의 자랑 스톤 헨지 보다도 약 1.600여년을 앞선 것이었다.

 하이포게엄은  인류 문명사의 시작을 알리던 '태양 거석문화'의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그런가하면  고조섬의 인근에 남아있는  주간티아 신전(GGantija Temple)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으로,  지지대 없이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공인 받았다.  여기에서의 주간티아는  '거인의 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같은 점들을 볼 때,  몰타에서 인간의 문명은 아주아주 오래 전 선사새대때 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는 또한 아주 척박한 작은 화산섬에 불과했던 이곳 몰타에서 이미 복잡한 문화와 다양한 신앙체계가 시작되었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몰타의 역사는 비록 척박하고 아주 작은 화산섬에 불과했지만,  지중해의 한복판이라는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민족들과 국가들이 끊임없이 호시탐탐 노리고 덤벼드는  영원한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카르타고. 로마. 시칠리아왕국. 스페인왕국. 나폴레옹의 프랑스. 그리고 근대에 영국에 이르기까지 숱한 열강들이 이 땅을 점령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몰타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요한 기사단)이다.  훗날 이들은 숫제 아예 (몰타 기사단)으로 불리어지기까지 했다.  1530년에 등장한 요한 기사단의 역사가  어찌보면 진정한  몰타의 역사가 이닐까 싶기까지 한다.

  요한 기사단의 역사는 지금 이순간에도 몰타의 곳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구 반대쪽  오리엔트의 변방인 한반도에서 이 멀고 먼 지중해까지 찾아오게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랜드 마스터  라발렛.

  나는 그가 살아서 전쟁터를 누비던 시기인  중세시대의 발레타에서 활약하던 요한 기사단을 만나러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중해의 한복판이라는 축복 같은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일찍부터 해양무역으로 성장을 거듭했넌 몰타.  그 축복이 넘쳐나다보니 사방으로 몰타를 넘보는 침략자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는데.........  진정한 몰타에 내려진 조물주의 저주는 그 이민족의 침략뿐이 아니었다.

  지금 현재에도 몰타는  관광과 중계무역이  거의 유일한 주수입원이다.

  그렇다면..........

  몰타는 겨우 손바닥만한 바위투성이의 작디작은 화산섬이 가진 전부이다.

  산과 돌이 유난히 많은 몰타는  수목(나무) 조차도  쉽게 뿌리내리고 자라지 못하는 아주아주 척박하고 황량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기에는 거의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불모지라 해도 무방하겠다.  숲을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숲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에 선인장이 널려 자라고,  올리브 나무와 야자나무가 자란다.  국가 전체적으로 농업이나 공업 분야는  부적절한 환경 탓에 불가능한 도전으로 인식한다.

  그나마 소규모의 목축업이 이들의 식량문제 해결에 가장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한때는 지정학적 위치에 힘입어 조선수리분야가 대성황을 이루었으나,  시대의 변천으로 사양산업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몰타의 식량 자급률은  겨우 20% 선에서 머물고 있다.  한마디로  나는것은 지뿔도 없다는 뜻이다.  자급자족이란 단어 자체의 의미를 모른다.  모든것을 수입해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민소득은  대한민국보다  한참 더 높다.  아이러니다.

  가진 지하자원도  생산되는 농산물이나 자동차나 선박이나 냉장고나 반도체가 없는데도,  쌀 보리 밀 농사도 지을 땅이 없는데도.......  우리보다 잘 산다.

  어떤 학자는  몰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게은른(?) 민족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몰려드는 여행자만큼이나  아예 보따리 싸서 몰타로 이사해서 남은 여생을 살고싶어 하는 세계인들이 무척이나 많고 동경해 마지않는 나라가 바로 몰타이다.

  굳이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울릉도 같다고 할까?

 

  그렇다면 옛날 몰타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모든것이 발전한 현대에도 식량 자급자족율이  20%밖에 안되는 몰타라면,  적어도 중세 시대쯤에는 더 엄청나지 않았을까 말이다.

  도대체 이 황량한 고립된 섬에서 그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슴에 새긴채.......  발레타와  그랜드 하버라는 해협 건너의  쓰리 씨티를 한번 돌아보라.

  발레타 인근의  엠디나와  고조섬의  옛도시  빗토리아를 한번 돌아보라.

  콘스탄티노플이나  로마의 영화에 비해 하나도 뒤질것이 없는  엄청난 위용의 성채와 도시와 문화가 남아있다.  이게 어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몰타에서 나는것을 모두 모아보았자 겨우 하루 한끼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지경에,  어떻게 저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이 고립무원의 지중해 한가운데 달랑 혼자 남겨진 처지에 말이다.  나는것 없지.  들어 오는것 없지.  내다 팔것도 없지.  그럼 바닷물을 퍼마시며 살았나?

  발레타 한가운데 '요한 기사단 성당'을 들어가보면  기절초풍 놀라 까무러치고 말것이다.

  성당 전체가 모두 황금이다.  진짜 황금으로 만들었다 해도 무방하겠다.  세상에서  화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먹고 사는 문제도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이 화려하고 장엄한  대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단 말이가?

 

  해.

  적.

  질.

  답은 해적질에 있었다.

  수백년 동안의 번영과 다양하고 화려하며 위대한 문화유산을 만든것은 모두가........  100%  해적질에서 빼앗아 획득한 것으로 이룩해 냈다.

  그렇다면 누가?

  설마,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이슬람 대군과 맞서 처절하게 전쟁을 벌이며  유럽이라는 기독교 세계를 기켜내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성스런 군대인  요한 기사단이 그럴리는 없겠고........  더군다나  몰타 국민의  98% 이상이 카톨릭 신자인데.......  당시에는 더 절대적 기독교 신앙인들이었는데........

  그렇다면 누가 몰타를 이끌고 먹여 살렸을까?

 

  경영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입학했을 때 경영학원론 첫강의에서 농담처럼 교수님이 툭 내던지다시피  가르침을 주셨는데...........  '경영이 뭐냐?  돈 버는 거여.  어떻게 버느냐?  최소의 경비를 들여서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거.......  그게 경영이야.  앞으로 내가 1년동안  가르칠 내용의 전부여.  그러니까 오늘이라도  최소의 경비를 들여서 이윤을 크게 낼 일(직업)을 잘 찾아 봐.  그래서 이거다 싶으면  여기서 내 강의 들을 필요 없어.  얼른 가서 돈 벌어.  알았지?'

  그래서 많이 생각해 보았다.

  돈 적게 들여서 많이 버는게 뭐가 있을까?

 

  산적.

  해적.

  사기꾼.

  세상에 돈 안들이고 돈 많이 벌려면  그쪽 방향밖에 더 있겠어?

  그랬다.

  우리 교수님이 서너번 윤회하시기 전에 몰타에서 강의를 하셨었는지.........

  몰타는 저경비 고수익의  '경영학 원론'을 이미 깨우치고 있었다.

  하여 그들이 국운을 걸고 권장 매진한 사업은 바로 '해적질' 이었다.

  주로 상선을 쫓아가  나포했다.

  수많은 재화와 물품과 식량을  자신들 배로 옮겨 싣고 나면  상선의 배 밑창에 구멍을 내서 바다에 가라앉히고.......  상선의 선장과  선원들은 바다로 뛰어내리게 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인근의 노예시장에 끌고나가 팔았다.  건장한 노예의 가격이 웬만한  금은 보화보다 가치가 있던 시절이었다.  신분이 있는 포로는 엄청난 몸값을 받은 후에 돌려보냈다.

  참으로 알찬 사업이었다.

  수백년 동안 그 신성한 사업은 번성했다.  위대한 신의 가호아래..........

 

  오!!!!!  아름다운 몰타여.

  오!!!!  위대하신 몰타의 해적이여.

  인류역사상 가장 세련되고,  가장 체계화되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마귀보다도 잔혹하고,  셀 수없이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저승사자와 같은 천하무적 용감한 해적이 바로 '몰타의 해적'이었다.  카리브해의 '잭 스페로우'가 결코 아니었다.

  대서양을 싹쓸이 한  바이킹 보다도  지중해를  피로 물둘인  몰타 해적의 잔혹함이 한수 위였다고 전해온다.

 

 

 

 

 

 

 

 

 

 

 

 

 

 

 

 

 

 

 

 

 

 

 

 

 

 

 

 

 

 

 

 

 

 

 

 

  중세시대 까지만 해도  항해술이나  선박 건조기술이 오늘날 같지 않아서   배들은 모두 육지와 가까운 바다를 통해  항해했다.

  당시로서는 지중해만해도 엄청나게 험난한 바닷길이 었던 셈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각종 향신료와 비단과 도자기들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배에 실려서 지중해를 거슬러 올라가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 생산된 과일과 곡식들 또한 함난한 지중해 바닷길을 건너서 유럽으로 팔려나갔다.

  연안을 따라 항해하던 배들이  출발한 대륙에서 벗어나  드넓은 지중해 한복판을  반듯이 거치고나서야 다른 대륙으로 건너갈 수 있는 드넓은 지중해의 한복판에.......  딱 그런 지점에  작은 화산섬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데  바로 몰타였다.

  여러날동안  배위에서 성난 바다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그래도 육지라고 이 작은섬에 올라 두다리로 대지를  밟고 서서 쉬어가기를 원했다.  다른  아무것도 나지않은 황량한 이 작은섬에서  무한정으로  식수를 보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지중해를 오가는 배들은 꼭 몰타에 들려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무역선들이 드나들다 보니 식당이며 선술집이 생겨났고,  머무는 동안   배를 타고 온 상선들끼리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다보니  점차  다국적 무역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7.000년 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몰타는  그 유구한 시절의 시작부터  무역항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수많은 배들이 드나드는  특별학 주인도 없는 보잘것 없는 아주 작은 화산섬.

  바로 해적들이 노리는  최상의 먹이감이 또한 몰타였다.

  몰타는 탄생에서 부터  무역항으로 시작했지만.......  또한  해적의 역사와 함께였다.  몰타의 역사는 곧  해적들에게 시달리는 고난의 역사였다.

  몰타 사람들은  해적들을 혐오했다.

  고조섬의 한가운데 가장 지대가 높은 지역에 빗토리아 성채를 둘러싸고  가장 커다란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라바트(RABAT)라고 부른다.  몰타섬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곳에  번영을 하던 고대도시의 성곽  엠디나가 있다.  이 성채도시 엠디나를 둘러싼 도시의 이름 또한  라바트다.

  라바트란  수도(서울), 거대 도시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고조섬의 가장 높은곳에 도시를 형성하고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몰타섬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도  성채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았다.  중심 도심의 이름을  라바트라고 불렀다.  작음 섬이었음에도 가장 중심부의 가장 높은 곳에 모여 살았던 이유는 단 하나.......  해적들의 노략질로 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기 위해서 였다.

  해적들이 들이닥치면 해변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신호를 보내오고  고조섬 라바트의 시민들은  빗토리아 성으로  서둘러 피신하였고,  몰타섬의  시민들은  엠디나 성채 안으로 피했다.  그리고는 이 튼실한 성채를 의지하고  해적들에 대항했다.  그래서 부두가 매우 중요한 무역항구였음에도  이들의 주거지와 생활터전은  가장 안쪽의 가장 높은 도시이여야만 했던 것이다.

  해적을 증오할 수 밖에 없는  몰타의 운명이었다.

  그러던  1530년 즈음.

  하루 아침에  수천년간 몰타를 괴롭히며 약탈을 일삼던  해적의 공포로 부터 완전하게 해방되었다.  한순간에 말이다.

  1530년 어느날 아침.........  새벽 여명이 밝아오면서 수십척의 선박이 몰타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규모 해적들이 쳐들어 왔는지 놀란 섬사람들은  서둘러 성채로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디에서도 대포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사람들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파도소리 뿐이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그 배의 깃대에는   좌우 길이가 똑같은  붉은 십자가가 펄럭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바로 그 십자가 깃발이었다.

  요한 기사단이  몰타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당시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하고  위대한 기사이자  그랜드마스터인  71세의 노인 (아이슬 아담)이  검은 기사단 복장을 하고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렸다.  그의 뒤로 마스터를 호위하면서 내리는 젊은이가 바로  (라발렛)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단박에 알아 차렸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하고 용맹한 군대.

  오스만 투르크의 30만 대군 앞에 2만 오천의 병력으로 당당하게 맞섰던 온 유럽의 방패이자 기독교의 수호신,  바로 요한 기사단이었다.

 

 

 

 

 

 

 

 

 

 

 

        

          몰타섬의 심장이자 발레타의 가장 한복판에 있는  '성 요한 대성당'의 입구에 우뚝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라발렛'이다.

          우리가 흔히 '라발렛'이라 부르지만 본명은 (Jean  de  Valette ; 1495 ~ 1568) 로서  요한 기사단 역사에  아이슬 아담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로 불린다.

 

 

 

 

 

 

 

 

 

 

 

 

 

 

 

 

 

 

 

 

 

 

 

 

 

 

 

 

 

 

 

 

 

 

 

 

 

 

 

 

 

 

 

 

 

 

  400명 이상의 기사단원이 성당의 바닥 아래 안치되어 있다.

  성당은 한마디로  '거대한 요한 기사단원들의 무덤'인 것이다.

  크기에서는 여타의 다른 거대한 성당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내부에 꾸며진 화려함과 다양성에 있어서는  극한의 가치와 미를 보여주고 있다.

  소장한 보물들과  벽화들과 더불어  캔버스까지를 그림의 일부로 끌어들인 화가의 기법등으로 너무도 유명해진 대성당이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것은 역시 '요한 기사단' 이라는 이름에서 묻어나는  전설 같은 무용담과 역사속에 실재한 그들의 업적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성당을 나와서 사방으로 펼쳐진 광장 처럼 너른 언덕길을 오르노라면  바로 위쪽으로  요한대성당의 안뜰이라고 할까,  아니면 후당 정원이라고 부를까 싶은  발레타에서 가장 높고  전망이 아주 빼어난 최고의 전망대가 나온다.

  흔히들 어퍼 가든(Upper Barrakka Gardens)이라 부르는 명소 중에 명소이다.

  어퍼 가든에서 내려다 보면  대서양의 드넓고 푸른 바다의 한줄기가 내륙으로 길게 뻗어들어와   천연의 방파제를 만들어주고, 그 해협 건너편으로  세개의 발가락 처럼 생긴 돌뿌리가 뾰족뾰족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랜드 하버(Grand Harbour)라 부르는 해협을 건너  세개의 발가락 지형위로 들어선 도시를  흔히 쓰리 씨티라 부른다.

 

 

 

 

 

 

 

 

 

 

 

 

 

 

 

 

  발레타 라는 도시 자체가  아주아주 거대하고 웅장하고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싼  천험의 요새다.

  도시를 걷노라면  '왜 요한 기사단 하면  인류 최고의 성채 건설자 집단' 라고 불리워 지는지가 저절로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과연 어떻게 저 위대한 성벽을 만들수 있었을까'를 넘어서  '과연 누가 저 성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퍼뜩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한 기사단의 철저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대한 발레타 수호 성채의 동북쪽,  그러니까 대서양으로 맞닿아 있는 바닷가 해안 적벽위로 유독  웅장하고 거욱 거대한 성채 요새를 만들어 바다로 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요새를 '세인트 엘모어 요새'라 부른다.

  해안에서 올려다 보는 요새는 가히...........

  거기까지가 다가 아니었다.

  어퍼 가든에서  그랜드 해버 해협을 건너 마주보고 있는 세개의 도시 쓰리 씨티 역시 거대한 방어 체계였다.  바다 멀리 안쪽까지 가늘고 길게 늘어서서  천연의 방파제 역활을 톡톡히 해내는 칼카라(Kalkara)가 등대 역활과 파수꾼 역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외부의 적을 맞게된다.

  가운데 도시인 빗토리오사(Vittoriosa)가 바로 발레타를 비롯한 몰타 전역을 수호 책임지는 실제적 총 지휘본부였다.  빗토리오사의 툭 삐져나온 바닷가 바위벼랑에 우뚝서서 어마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채가 바로  '세인트 안젤로 요새' 이다.   말타 기사단으로도 불린 요한 기사단의 심장부이자 총 지휘 본부이다.  그랜드 마스터가 이곳에 진을 치고 서서 전쟁을 진두 지휘한다.

  이들보다 바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선 지역의 발가락 요새가 '생클레아' 이다.

  누군가가  몰타를 차지하고 싶다면   길게 늘어선  그래드 하버 해협으로 들어와  세인트 안젤로를 점령해야만 끝을 볼 수가 있다.  적들이 좁은 해협으로 들어서면  그랜드 하버 전역이  발레타와  세인트 엘모어 요새의 화력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된다.  동시에 엘모어 요새와 칼카라 요새가  바다와의 연결 통로를 차단한다.  생글레아가  안젤로 요새의 측면을 방어한다.

  이 모든 상황 위에 한가운데 가장 튼튼하고 위용을 자랑하는 안젤로 요새가 떡하니 코 앞에 버티고 서있고,  그 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  요한 기사단의 상징  정사각형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그랜드 마스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최고 전성기에도 그 숫자가 이만에서 삼만을 넘지 않았던 소수 정예의  요한 기사단.

  그들의 상대는 항상  적게는  십오만에서 삼십만의 대군을 상대하는 전쟁만을 치루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들의 전투방식은  성채를 이용해 적을 상대하는 것이었으며,  당연히 그들이 만들어 차지한 성채는 하나 같이 천험의 요새중에 요새였다.

 

  실제.......

  1만오천의 이슬람 정예병으로 무장한 선봉대가  성 하나를  두달간 공격했다.

  4천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두달간 주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성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요 성벽을 타고 넘은 군사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슬람 군대는 새로운 궁리를 모색한 끝에  후퇴를 감행한다.  포기를 하고 만 것이다.

  도주하는 적을 쫓아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군대는.......... '요한 기사단원 250명 뿐이었다.'

  250명의 기사가 두달 동안  덤벼드는 적군 4천을 해치운 것이다.  아무리 튼튼한 성채지만  겨우 250명으로 방어를 하자면.......

  그럼 자신들의 피해는 어떻했을까?

  단 한명의 기사만이 부상을 당했다.  포탄의 파편에 맞아 팔이 부러졌다.  그게 전부였다.

  화약과 대포가 등장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전혀 달라지던 중세였다.

  이를 간파한  요한 기사단은  화포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성채의 건설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노력을 했던 것이다.

  시리아 인근의  바위산 자락위에 건설된 '클락 디 슈발리에 성'은  아마도 비행기와 미사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이 창조해낸 가장 완벽한 방어진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로도스 성채'가 철벽 방어진지였고,  세번째가  몰타의 세인트 안젤로를 위시한  발레타 방어진지라 하겠는데.......  위에 열거한 철옹성 셋이 모두  요한 기사단이 설계해서 만든 창조물들이었다.

  그 다음에서야  1천년간  수백번의  전쟁을 모두 견뎌냈음에도  대포의 등장과 함께  단 한번 성벽이 무너졌고  동시에  비잔틴이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  이스탄불의 '데오도시우스 성'을 꼽겠다.

 

 

  그러나 수백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피비린내 진동하던 전쟁의 상흔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라임 스톤의 질감이 주는 묘한 여운과.........  방어진지가 아닌  거대한 건축물이 보여주는 장엄한 아름다움의 극치랄까.........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

  어퍼 가든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랜드 하버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은 온통  중세와 현세가 만들어내는 실로 묘한 어울림이 나를 감동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아!!!!

  여기는 몰타.

  나 여기 이대로 누워서 영원한 잠을 청하고 싶다.

 

 

 

 

 

 

 

 

 

 

 

 

 

 

 

 

 

 

 

 

 

 

 

 

 

 

 

 

 

 

 

 

 

 

 

 

 

 

 

 

 

 

 

 

 

 

 

 

 

 

 

  몰타는  지중해를 닮은 코발트빛 그리움이다.

  몰타는 묘한 여운을 간직한 라임스톤 빛깔의 사랑이다.

  난 그곳에 살고 싶다.

 

 

 

 

 

 

 

 

 

 

 

 

 

 

 

 

 

 

 

 

 

 

 

 

 

 

 

 

 

 

 

 

 

 

 

 

 

 

 

 

 

 

 

 

 

 

  세인트 안젤로 성을 찾아갔다.

  그랜드 마스터 라발렛이  머물면서  이슬람군 십오만을 맞아 전쟁을 진두지휘하던 곳이다.

  그의 스승  아이슬 아담이  71세의 나이로  로도스 섬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30만 대군을 맞아  훌륭하게 싸웠듯이,  로도스를 내주고 쫓겨온 이곳  몰타에서 이번엔 제자 라발렛이 오스만의 십오만 대군에 맞서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덧 그의 나이도 스승을 따라  69세의 노장군이었다.

  69세의 그랜드 마스터 라발렛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인  세인트 엘모어 성에 갇힌 7천명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 사랑하는  요한기사단원들에게  나  라발렛은  그랜드 마스터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너희가 이미 포위되었고  탄약과 식량이 떨어진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너히들을 구하러 갈 수가 없다.

      너희들이 격는 시련과  눈 앞의 전투가 참혹한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너희들의 전투를 넘어서  이번 전쟁을 반듯이 이겨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럽의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생명이 우리의 손에 맡겨져 있다.  그것들을 지키려 지금 우리가 여기에 서 있는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요구한다.  너희의 피와 너희의 생명을 나에게 다오.

     나는 너희에게 명령한다.  신의 영광을 위해 끝까지 싸우다 당당하게 그 자리에서 죽어라.

     절대 물러서지 마라.  이것이 나 라발렛이 너희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곧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

 

  7천명의 군사는 모두 그자리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 누구도 뒤로 물러서는 자가 없었다.

  끝내 전쟁은  요한 기사단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부여했다고 믿는바대로 임무를 완수했고  유럽의 기독교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라발렛은  스스로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는 7천명의 유해 앞에서 무릎꿇고 용서를 빌었다.

 

 

 

 

  코발트빛 그랜드 하버를 내려다 보고 있는 라임스톤의 안젤로 성채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라발렛을 만나지는 못했다.

  발레타를 둘러보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소요했던 결과로,  성채의 폐관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찾아갔던 때문이었다.

  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라발렛의 시선으로 몰타를 둘러보고 싶었는데...........

 

  빗토리오사와 칼카라를 잇는  해안 산책로를 걸으면서 연실  안젤로 성채를 올려다 본다.

  어디선가   라발렛이 나타나 내게 손을 흔들어 줄것만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에서 내리니 지중해 위로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고향에 떠 오른 정월 대보름달이 바로 저 달이구나.

  많은 사람들이  정월 보름달을 보면서  달맞이 행사며  소원을 비는 행사가 여기저기 불야성을 이루고 있을텐데.......

  여기서는 아무도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 드넓은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달랑 나 혼자  보름달을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야. 달아!

  한반도의 달은 지금쯤 한창 축제를 벌이고 있을텐데.........

  지중해의 너는 어떻게 달랑 혼자냐?

  하지만 오늘만은 걱정하지마.  내가 친구해 줄께.  내가가서 와인 한병 사 올테니까  나랑 우아하게 폼잡고서 와인 한잔씩 하자?

  기다려.........

 

 

 

 

 

 

 

 

 

 

 

 

     ----  마무리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한참 직업적으로 바쁜 시기라서요.  아뭏튼  감사합니다.  이어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