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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로마 - 누구나 로마인이 될 수 있었느나 아무나 로마인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by 피안재 2018.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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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담했다.'

  '수치스러웠다.'

  자신을 선봉에 내세운 집정관(총사령관)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시원하게 곧바로 뚫려있는  아피아가도(Via Appia ; 로마가도)를 바라보면서 젊은 군관은 이 길이 곧 로마에 닿을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적의 포위를 뚫고 살아남은 병사가 이제 고작 이백명  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의 부대는 백인대 여섯을 거느린 대대(cohort)로 로마군이 자랑하는 육백여명의  최강 중장보병들이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

  글라디우스(gladius ; 검)은 날이 무뎌졌으며  자벨린(javelin ; 투창)을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병사도 많지 않았다.  큐라스(cuirass ; 갑옷)도 떨어져 나갔거나 여기저기 찌그러진 채 더러는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쉴드(shield ; 방패)를 끝까지 들고 있는 병사는 그래도 상당수가 있었다.  아마 최악의 경우라도 글라디우스와 쉴드만은 결코 손에서 떨어트리지 않을 그런 최정예의 보병부대였다.  하지만 부상당하기까지 한 대부분의 병사들이 지금 튜닉(tunic ; 갑옷 아래 입는 짧은 소매와 치마차림의 붉은 군복)만 걸친채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패잔병이 되어서 로마로 회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뒤로 저만치 집정관이 말에타고 따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크레스트(crest ; 투구 위의 깃털) 마저 잘려나간 그의 모습에서 위풍당당한 로마군단 총사령관이라는 위세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속으로 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젊은 군관은 애써 참아야만 했다.

  이대로 모든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크게 숨을 들이켜 본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가 느껴졌다.  이번 전쟁에서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꼭 이루어 내겠다고 나섰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는 패배했다.  아니 로마군단이 철저하게 궤멸 당했다.

  '아!   아버지. 저는........ 용서해 주십시요.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저들은 전투가 아닌 암수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나  저는 그런 비겁한 행동이 아닌  전투를 통해 군인대 군인의 싸움으로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겨서 아버님의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아.  지금 당장 승리하기엔 넌 경험도 부족하고 너무 어리다.  더구나 상대가 누구냐?  온 로마를 공포에 떨게하는 저승에서 온 검은 사자 한니발이 아니더냐.  그는 나로서도 실로 상대하기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아라.  아들아. 언젠가 너는 네가 원하는 바를 꼭 이루게 될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네 주위에서 너를 지켜보마.'

  '오늘의 패배를 결코 잊지않겠습니다.'

  사내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주변의 모든 모습들을 그대로 가슴에 새겨 넣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격지 않아야 될,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잊지 말아야 할 패전의 모습들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저만치 뒤에서 누추해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집정관(총사령관) 바로의 모습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심정일까?  이제 로마는 코앞까지 다가왔고 어찌되었든 그는 이 전투의 최고책임자였다.

  만약에.......  자신이 총사령관이었다면 전쟁의 결과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것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당신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총사령관이야.  당신에겐 성급함과 오만함 밖에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어.  총사령관이 앞장 서서 도망을 쳤고......  그런 염치로 여전히 로마의 휘장 아래 회군을 한다고?  당신에 비하면 파울루스야 말로 진정한 총사령관이었어.  패배를 직시한 파울루스는 그대로 적진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어.  내가 그 옆에서 직접 보았다고,  파울루스는 로마군의 명예를 위해 자살이나 도망을 생각치 않고 무모하였지만 적군의 칼날아래 죽음을 선택하였지.  어찌보면 이 전투는 시작전부터 예견된 결말이었는지도 몰라.  파비우스 집정관을 파면시킬때 부터 이미 로마는 스스로 몰락을 택했던거야. 스스로.....'

  그때였다.

  항상 젊은 군관의 전후좌우에서 적들의 창과 칼을 막아주었던 거의 아버지뻘에 가까운 노병이 다가오면서 말을 걸어왔다.

  '군관께서는 저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계획이십니까?  이제라도 내치시던가 아니면 포로들에게 합류시킬까요?  로마가 가까워 질수록 저들의 시선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어떤 불상사가 생기기전에.......'

  젊은 군관은 뒤를 돌아다 보았다.  행군하고 았는 자신의 이백명의 부대 뒤로 열댓병의 남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밧줄로 포박을 하지는 않았지만 공포에 쪄든 눈빛이며......  포로처럼 마지못해 끌려오는것이나 진배가 없었다.  한니발의 포위망에 갇혀 사지에서 헤맬때, 일찌기 전쟁터가 된 칸나지역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전쟁의 틈을 타 탈출했던 노비들로,  우연히 쫓기고 있던 이들 부대를 만나 그들에게 눈과 귀와 발이 되어 도와주었던 자들이었다.

  젊은 군관은 그들을 데려오도록 말했다.  그리고 그 겁에 질린 노예들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들자 그중 신체가 가장 건장한 사내노예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님이십니다.  위대하신 푸불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님의 아드님이시지요.'

  '그렇다면 우리 가문이 로마에서 명예로운 가문이라는 것도 아느냐?'

  '모든 로마인들이 존경하는 명망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스키피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너희에게 약속을 했다.  너희는 비록 전쟁터로 내몰린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전투에 져서 쫓기고 있는 로마군의 명예와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해준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이제부턴 로마인으로 살아가게 해주겠다고. 기억하느냐?'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저희 같은 노예가......  거기다가 도망친 처지로 어찌 로마인이..........'

  '나의 조국인 로마는 포용과 관용의 나라이다.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은 나라이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로마를 사랑하고 앞으로 영원히 로마인으로 자긍심을 가지며 로마를 위해 헌신과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로마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무나 로마인으로 보거나 로마인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로마인은 항상  명예와 용기와 충성심과 헌신의 다짐을  스스로의 가슴에 새기고 지켜나가야만 진정한 로마인이라 할 수있다.  너희들의 바램대로 군인이 되고 싶은 자는 나의 부대에 배속될것이며,  장사를 하고 싶은자는 내가 자금을 융통해 줄것이며,  돌을 다루는 자는 석공으로 살아가게 해 줄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나와 같은 로마인이다.'

 

 

 

 

 

 

 

 

 

 

 

 

   멀리 포폴로의 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마의 북쪽으로 난 통행로이자 진정한 로마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불과 40여일 전에 젊은군관 스키피오는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집정관 파비우스를 따라 여기 포폴로의 문을 나섰다.

  붉은 크레스트와  붉은 망또를 바람에 휘날리며 네마리의 백마가 끄는 황금빛 전차를 타고 로마군 최강의 9만의 대군을 이끌고 파비우스는 중부전선으로 나아갔다.  이 위풍당당한 로마군의 행렬은 오랫동안 공포에 떨고있던 로마시민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시민들은 진군하는 군대 위에 꽃가루와 향유와 포도주를 뿌렸다.  이제 다시 로마는 로마다워질 것이라고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  파비우스의 가슴은 온통 심각한 중압감과 불안감으로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상대가 다름아닌 한니발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로마가 한바탕 격전을 벌이게 될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하늘이 이미 정해 놓은 운명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시칠리아에서 격렬하게 맞붙었다.

  카르타고를 신흥강대국으로 이끈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한니발의 부친)와 푸불리우스 코넬리우스 스키피오(젊은 군관의 부친)가 맞붙은 전투에서 로마군이 대승을 거두었다.(1차 포에니 전쟁)  이 전투의 심각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 로마의 귀족과 부자들은 미레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고 업청난 군자금을 모아 전투함인 갤리선을 건조하고 마가대한 군비를 충당해 주었다.  반면 카르타고의 귀족과 부자들은 여전히 안일함에 빠져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만 추구하였다.  결과 전쟁에 승리한 로마의 지중해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해상지배권을 확보하고,  해군력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해군력 확장에 박차를 가하였다.  한편 로마군의 군비증강에 자극을 받은 하밀카르는 위기를 직감하고 리베리아반도(스페인지역)로 거주지를 옮겨서 광산을 개발하면서 군자금을 모아 군대를 길러내기로 하였는데......  기원전 229년 로마가 사주한 자객들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로마에 대한 응징과 복수를 다집하던 하밀카르의 아들 한니발이 성장하여 마침내 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향했다.(2차 포에니 전쟁)    카르타고의 건재와 한니발의 성장을 염려하여 리베리아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머물던 코넬리우스 스키피오가 즉각 군대를 몰아 맹렬하게 이미 앞서서  출정한 한니발의 군대를 뒤쫓았다.  마침내 베이티스강을 사이에 두고 양군이 맞붙었는데......  전쟁이 지속되는 중에 한니발의 동생 하스트루발 바르카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처참하게 죽을을 당했다.  복수는 거듭 복수를 낳고야 만다.

  여세를 몰아 한니발은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기 시작했다.  해군력을 강화하여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는 로마 해군의 눈을 피해 바다를 건너는것이 불가능했기에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혹한의 눈보라속을 헤치며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지나 다시 알프스에 길을 내고 마침내  한니발은 이탈리아 북부에 당도했다.  14마리였던 코끼리는 단 한마리만 살아남았고 10만으로 출발했던 군대는 5만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반도 중간에 위치한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말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로마의 바람앞의 등불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로마영역을 사방으로 철저하게 짙밟으면서 한니발군은 진격에 진격을 했다.

  로마는 북부군단에 중부 보급군단까지 모두 동원하여 여러 전투를 벌였지만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중부지역까지 내려운 한니발군에 대항하여 마침내 로마를 수호하던 정예병 3만의 플라미니우스군을 내보내기까지에 이르렀지만  그마저도 무너졌다.

  로마군의 총 동원병력이 30만 정도였는데  이미 십만이 넘는 군대가 궤멸되었다.  실로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마침내 로마 원로원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끼고 아끼던 카드로 뛰어난 장군이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에게 군 통치의 전권을 부여해서 총사령관에 임명한다.  거기에 로마군의 최고 주력인 로마수비대를 포함한 최정예 9만의 막강한 군단을 출정시키기로 결정했다.  원로원과 시민들은 비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마군 최정예 9만에 탁월한 전략전술가인 명장 파비우스라면......  아무리 막강한 한니발의 5만 군대라도 능히 격파할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불과 40여일 전에 그렇게 포폴로의 문을 나서서 파비우스를 따라 전쟁터로 보부도 당당하게 떠났던 젊은 군관 스키피오였다.

  노련한 전술전략가인 파비우스는 명문가의 자손으로 군대를 통솔하는데 소질을 보인 젊은 스키피오를 평소부터 지켜보면서 아꼈다.

  '스키피오야. 한니발의 군대는 실로 하늘에서 내려온 군대라 할만큼 막강한 군대라 할수있겠구나.  고난을 헤쳐가며 알프스를 넘었고  이미 여러번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는 풍부한 전투 경험까지 얻었지.  로마가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보니 승기까지 잡았고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기세다.  너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겠느냐?'

  '전선을 이제보다 더 길게 늘리겠습니다.'

  '9만이 똘똘 뭉쳐있어도 상대하기 벅찬 마당에  전선을 늘려버리면 적의 공세에 너무도 쉽게 각개격파 당하지 않겠느냐?'

  '한니발의 군대가 강하긴 하나 주위에 능력있는 장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한니발의 주력군에겐 모두 당했습니다만, 한니발이 없는 전투에선 오히려 우리가 이긴 싸움이 더 많습니다.  전선을 더 길게 늘어트려 놓고 맞대응을 자제한다면........  모든 싸움을 한니발이 직접 나설 수는 없을것입니다.'

  '그럼 싸우지 않고 물러서기만 한다는 말이냐?'

  '사방에서 끊임없이 싸움은 합니다.  하지만 전면전만은 무슨 수를 쓰든 피해야만 합니다.  동쪽으로 찌르고 한니발이 군대를 몰고 다가오면 뒤로 뒤로 무작정 물러섭니다.  그러다 너무 가까웠다 싶으면 서쪽의 군대가 나서서 적의 측면을 찌릅니다.  허겁지겁 한니발이 다시 쫓아오면 또 다시 뒤로 물러납니다.  작은 기습전은 끊임없이 벌여야하지만  전면전만은 무조건 피합니다.  그러다보면 전선은 그럭저럭 현상을 유지하게 될것입니다.  전력의 손실도 지극히 미미할 것이고요.  그저 시간만 이대로 좀 흘러가게 만들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저들의 충만한 사기도 서서히 시들어 가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오기까지 우리는 저들의 후방으로 보급로를 차단시키는 계책을 실행하게될것입니다.  저들은 스스로 지쳐갈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무리하게 전투적으로 나오겠지요......  그때쯤엔 우리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부족한 소견입니다만..........'

  '핫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노장군의 박장대소에 젊은 스키피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굴이 붉어지며 화끈거렸다.

  '언젠가 너의 아버지 코넬리우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로마에 위기가 닥쳤을때  자신이 내 옆에서 도움이 되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는 아들을 불러 자신 대신 활용해 보라고 하더구나.  언제고 훗날 로마의 엄청난 환난을 아들이 극복할 것이라고........  네 아버지의 그 말이 꼭 들어 맞는구나.  그래.  내 생각이 너의 이야기와 한치의 다름도 없이 똑 같다.  이제 그렇게 전쟁을 치뤄나갈 것이다. 핫하하하하하하.'

 

 

 

 

 

 

 

 

 

 

 

 

 

  몇날 지나지 않아  카르타고군에게서 심각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전투가 없어지지 빼앗아오는 물자가 없어지고......  결국은 죽치고 앉아서 얼마 비축되지 않은 물자를 축이나 내는 꼴이되어가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지고 술이나 마시다보니 군영 여기저기서 제편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 일수였고  사기의 저하는 물론 군기가 흐트러져가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한니발은 군사들의 군기강을 다시 휘잡는 반면 출정 준비를 시켜서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로마군은 흐르는 물처럼 다가가면 갈수록 뒤로 물러만 났다.  맞대응하는 전투가 생겨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한니발 혼자 무작정 적진속으로 마냥 진격할 수도 없었다.  이러다 퇴로를 차단하는 포위공격이 감행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군대를 삼면으로 나누어서 파비우스가 있는 로마군의 중심을 포위공격하려는 찰라 후방으로부터  보급로가 기습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한니발은 친위대를 빼서 이끌고 직접 후방의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나갔다.

  연일 계속되는 똑같은 미진한 전투에 이제 카르타고군이 기력을 거의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불세출의 영웅 한니발은 달랐다.  그 또한 파비우스 보다 못한것이 하나도 없는 전략전술의 대가였다.

  한니발은 이것이 파비우스의 지연전술인것을 깨닭았다.

  자신이 죽어라 쫓아다니면서 싸우자 싸우자 해서 될 전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닭았다.  이내 그는 로마군이 스스로  앞으로 달려나오게 하는 계책을 생각해 냈다.

  한니발은 대치중인 자신의 주력군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병력으로 하여금 되도록 로마 인근은 농가들을 무차별 약탈하도록 지시했다.  단  약탈을 시작하기 전에  반듯이 소유자를 확인하고 파비우스와 연관된 농장이나 재산에 대해서는 일절 손을 대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약탈을 하다가 거짓말으로라도 파비우스의 것이라거나 파비우스 사촌팔촌과 연관있다고 하면 무조건 그냥 넘어가 주었다.   약탈을 당한 사람들이 원로원으로 몰려가서 사태의 심각성과 부당함을 호소하게 되었다.

  로마와 원로원은 파비우스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파비우스와 한니발이 사전에 모종의..........?

  원로원은 전령을 보내 서둘러 전투에 나가서  승리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비우스는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알았다.

  그러나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그는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아예 싸울 생각이 없어보이는 태도였다.

  --마치 이순신장군이 선조의 엄명에도 끝내 출정을 안하다가 삭탈관직에 백의종군하는 임진왜란 이야기와 너무도 흡사하다.

  로마는 술렁거렸고  원로원은 분노했다.

  결국 파비우스는 파면당했다.

  원로원은 이렇게 파비우스처럼 고집불통의 한 사람에게 총사령관직의 전권을 맡곁을 경우의 휴유증을 절감하여 이번에는 동등한 권한을 가진 두명을 총사령관(집정관)을 임명하여  하루씩 교대로 총사령관직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바로와 파울루스가 후임자였다.

  전쟁에서는 최고지휘관의 냉철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책의 결정이 각각의 병사에게까지 신속하게 전달되어 실행에 옮겨져야만 싸움에서 이길수가 있다.  그런데 로마는 지금 서로 대립하고 혼선을 빗는 지휘체계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었다.

  파비우스에 대한 부정적인 집착이 이렇게 더욱 위태로운 결정을 잉태하게 만들었다.  바로는 성급하고 오만하였으며,  파울루스는 매사에 너무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었다.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여 바로가 다음날 공격을 위해 군대를 강을 건너 배치하고나면,  다음날 파울루스가 어리석고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다시 물렸다.  9만의 병력이 제대로 지휘도 통솔도 되지 않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는 무조건 나가싸우면 이기게 되어있다고 말했고,  파울루스는 여전히 파비우스의 생각이 옳았다고 믿고 있었다.

  바로는 못해먹겠다고 원로원에 으름짱을 놓았다.  파울루스에게는 파비우스의 꼴이 나지 말란법이 없다고 엄포가 내려졌다.  파울루스로서도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졌다.  바로가 하자는대로 말을 타고 전선을 향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바로 한니발이 계획하고 바라던 바였다.  그가 원하는 때에 그가 원하는 장소에서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인류의 전쟁사에 꼭 거론이 되는 '칸나의 전투'가 바로 이것이다.  세계 각국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연구 공부하는 살아있는 전투 교본이된다.

  로마군은 궤멸되었다.

  후방에 남겨놓은 1만을 제외한 로마 정규군 8만이 카르타코군에게 포위되었다.  5만의 카르타고 정예군이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면서, 마치 양파의 껍질을 한올 한올 벗겨내듯이 로마군을 철저하게 살륙하기 시작했다.  인류사에 다시없을 대 학살이 일어났다.

  8만중에 1만이 포로가 되고 나머지 7만의 병력이 도륙되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을 이루었다.

  총사령관  바로는 죽어라 도망을 쳤고,  다른 총사령관 파울루스는 적진을 향해 단독으로 돌진하며 장렬하게 산화했다.  전투의 초기에 바로의 계획이 무리임을  깨닫고 모두가 한니발의 철저한 계략임을 눈치챈 스키피오는 자신의 대대를 좁은 틈새의 적의 포위망을 뚫도록 맹렬하게 몰아부쳤다.  그리고 천운으로 2백의 병사와 함께 그 사지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만약 이 전투에서 한니발이 스키피오를 사로잡거나 죽였다면.......  훗날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은 상당히 달라졌으리라.

  하지만 운명의 신은 스키피오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도록 허락하여주었다.

  후위의 예비부대 1만도 확실한 지도자가 없었다.  본래의 임무대로 본진이 위기에 빠졌으면 달려가 도와주거나,  전쟁이 이미 끝났다고 판단되었으면 뒤로 물러나 새로운 방어진을 구축하고 다음을 기약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들도 우왕좌왕하며 분열되다가 절반은 후퇴하고,  절반은 머뭇거리다가 달려온 카르타고군에게 역시 도륙을 당한다.

 

 

  그렇게........  지금 아피아 가도를 걸어서 로마로 회군하는 군대는 흩어졌던 패잔병들까지 모두 모아서 채 1만이 안되는 숫자였다.

  그 선봉에 그래도 싸움터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살아돌아온 스키피오가 앞장을 섰고,  이제 원로원에 출두해 어떻게든 부득이했던 전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변명해야하는 바로 총사령관이 그 뒤에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태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

  포폴로 문 안쪽으로부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과 손에는 온통 꽃들이 가득 들려 있었다.

  겨우 생명을 구해 회군하는 로마의 패잔군 앞에 로마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그들이 걸어가는 길에 꽃을 뿌리기 시작했다. 

  돌팔매와 채찍질이 있어야 할 포폴로 광장에 모든 로마 시민들이 몰려나와 꽃을 뿌리고 와인잔을 건네주며 환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자칫 이들이 8만의 전우를 숨지게 하고 겨우 살아돌아오는 패잔군이 아니라,  적군 8만을 포로로 잡아들이고 승리의 나팔을 불며  개선하는 자랑스런 로마의 승전군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포폴로 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지혜와 전쟁의 신인 아테네여신을 모시는 분수대와 조각상이 놓여있다.  이 분수대를 연단으로 여기며 로마 원로원의 전 원로들이 그곳에 서서 회군하는 군대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실로 믿기지 않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부상당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지치고 쓰러져가던 병사들이었지만,  이 놀라운 광경에 마지막 힘을 내어서 병사들은 광장 한가운데서 온 로마시민들 앞에 당당하게 도열했다.  그러자 가장 연장자인 원로원의 노원로가 아테네 여신상 앞으로 나섰다.

  '한니발을 상대로 당당하게 싸우고 돌아온 로마의 군대가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돌아와 주어서 나와 모든 로마인들은 당신들에게 크게 감사를 드립니다.   싸움에 졌다고 도망치거나 자살하거나 하지 않고 당당하게 돌아와 주어서 거듭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나......  또 내일부터도  이 로마는 여전히 여러분들이 지켜나가야  할터이니까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한 로마는 여기서 주저앉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의 승리는 우리 로마의 것이될터이니 말입니다.  오늘을 잘 추스리고나서 내일은 더 강해져야 합니다.  앞으로의 전투는 모두 우리 로마가 이길수 있게 말입니다.  전우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포로로 잡혀간 전우를 찾아올 수 있게.........   로마 시민여러분.  자랑스러운 우리의 군대와 함께 오늘은 승리의 축제를 벌입시다.  위대한 로마 만세....... 만세.........'

  젊은 군관 스키피오는 생각했다.

  '이게 로마다.  이것이 나의 조국이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또 생각했다.

  '한니발.  이젠 모든것이 너에게 달렸다.  네가 지금 로마로 쳐들어 온다면  로마는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없다.  그러면 내 오늘을 이승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죽음으로서 너를 맞이하마.  그러나 네가 지금 달려오지 않아서 로마가 잠시라도 자신을 추스를 시간을 갖을 수만 있다면......... 너는 영원히 로마의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될것이다.  너는 위대한 장군이지만........  나를 이기고 나서야만 진정 위대한 장군이라 할수 있겠다.  나는 너에 비해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로마는 네가 지키려고 하는 카르타고 보다 훨씬 강하고 위대한 나라이다.  머지않아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모든것은 너에게 달렸다.'

 

 

  로마가 저만치 건너다 보이는 언덕에서 한니발은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보낸 병사 8만이 죽어나간 지금에 저렇듯 축제를 벌이는 저 로마놈들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종이란 말인가?'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고작 이틀이면 성을 허물고 온 로마 백성들을 도륙할 수도 있는 지금에 말이다.'

  한니발은 말에서 내려 한웅큼의 황토를 움켜쥐고는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여기가 로마다.  이렇게 로마가 내 손아귀에 움켜져있다.'

 

 

 

 

 

 

 

 

 

 

 

 

 

 

 

 

 

 

 

 

 

  TRAVEL>   경유지였던 모스코바는 유래 없는 폭설로 인하여 지금 한바탕 눈과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미 30분 이상을 연착하여 도착하였건만  활주로의 제설작업과  항공기의 제빙작업으로 출발시간과 게이트 배정조차 미정이었다.

  '이거 이러다가 로마에 재대로 가긴 갈수나 있으려나?'

  이런 우려속에서도 어쩌면 다른 한쪽에 있어서는 실로 다행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잠시 혼자 실소를 터트려 보기도 하였다.  유럽 미주 아시아 등등 지구상의 모든 항로가 대부분 이곳 모스코바를 경유하여 다니고 있다.  그만큼 각대륙으로 연결되는 항로상의 지리적 이점이 절대적이 곳이 모스코바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 모스코바 공항의 경유노선은 항상 북적거린다.  하지만 시설과 시트템이 문제이다.  인천공항을 생각한다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어찌어찌 꾸려나가는 공항이다.  러시아 국적기인 에어로 플롯이 이곳의 터줏대감인데.......  전체 항공사 중에서 수화물 연착과 분실로 악명이 가장 높은 항공사가 러시아 국적기인 에어로 플롯이고,  지금 내가 에어로 플롯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연을 거듭해 환승 시간이 길어진다면......  설마 내 배낭이야 잘 챙겨 가겠지 뭐'  나는 이런쪽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아뭏튼 어찌되었건 비행기는 다시 떴고 마침내 로마의 레오나드로 다빈치 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했다.  배낭도 무사히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밖으로 나오니 밤 11시가 막 넘어가고 있다.

  서둘러 육교를 건너 공항철도로 달려갔다.

  아주 간단하게 처음 보는 기계에서 표를 사고  다른 옆 기계에서 펀칭을 했다.  2018년 1월 18일 23시 10분이 찍혀 나온다.

  참 이상하게 외국 어디든 가서 비행기표든 기차표든 버스표든 지하철표든 척척 사고 잘 다니는데.......  왜 모처럼 서울가서는 지하철표 사느라 쩔쩔 매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암튼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가 이번이 막차인지 막차 직전차인지 모르겠지만 한참을 지나서 마침내 기차를 출발을 했고 45분 뒤에 로마의 테르미니역에 도착을 했다.

로마 내지 이탈리아의 모든 지역,  아니 유럽대륙의 모든 길은 여기 테르미니역으로 집결되어 있다.  여기 테르미니역은 이탈리아와 모든 유럽여행의 중심이다.

  밖으로 나오니 굵은 빗방울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나저나 시계를 보니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인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에겐 준비된 숙소가 없으니까 말이다.

 

  잠시 서성이던 중에 도로를 건너가는 젊은이 셋을 보았다.  어떤 본능처럼 그들이 로마를 찾아온 여행자라는 직감이 들었다.  쫓아가서 불러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벨기에에서 온 여행자들이었다.  로마의 밤거리와 야경을 감상하다 막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디에 묶고 있느냐 물으니 호스텔에 머물고 있다한다.  내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방이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건 모르겠단다.  거리를 물어보니 약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단다.  그래서 무작정 그들을 따라갔다.  다행이 방이 있었다.

  역시 호스텔은 호스텔이었고,  시설이 낡은 편에 방음이 덜되고 난방도 약간은 부족한 듯 싶었으나.......  그래도 이 상황에 얼마나 다행이냐 싶었다.

  짐을 풀고 씻고 나서 자리에 누웠으나......  시차로 매우 피곤하였음에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가 로마라는 사실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고,  다른 이유로는 배가 몹시 고팠다.  그러나 비내리는 자정을  넘긴 밤길에 먹을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리 썩 내키지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으나 어찌되었거나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왔다.

  습관처럼 되어있는 새벽산책이기도 했지만 일단 거주지 주변의 위치와 교통상황 등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는 무엇이든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할 필요가 절실했다.  여전히 날을 잔뜩 흐려있고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선 사전에 파악해 두었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찾아 나섰다.

  로마의 기준 거점으로 이미 페르미니역을 선택하였기에,  역을 중심으로 2백미터 가까이 있는 숙소에다가 같은 일직선 상의 동선에 있는 마조레 성당을 찾아 거리와 시간을 체크해 보고 나면,  로마 전체의 크기와 각기 관광지와의 거리 내지 방향 그리고 하나의 동선에 넣어서 묶어야 할 나의 여행 노선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있었다.  채 박아오지 않은 찌프린 여멍과 환한 가로등 사이로 어마어마한 위용의 대리석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지 그리 오래지 않은 4세기경,  교황 리베리우스 1세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9월 5일에 눈이 내릴것이니 그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라'고 계시를 내리셨는데,  정말로 한여름인 9월5일에 에스퀼리노 언덕에 눈이 내려 쌓였고  교황은 이곳에 성모 마리아를 위하여 성당을 지었다.

  전형적인 바로코 약식의 대표건축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당을 한바퀴 돌아보고 주변 골목들을 살피는데 성당광장 건너편에 어둠속으로 두 개의 흉상이 있어서 가 보았다.  하나는 어디선가 몬듯한 모습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전혀모르는 인물 이었다.  그리고 나서 흉상의 주변을 둘러보아도 특별히 여기 이 흉상과 연계지을만한 것이 보이지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찾아보니 이 두분은 모두 남미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영웅들이었다.  아마도 아르헨티나 대사관이 예전에 있던 자리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마뉴엘 벨그라노와 바르톨로메 미트레 였다.

  마뉴엘 벨그라노(Manuel Belgrano)은 스페인으로부터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장군이다.  전쟁터에서 그가 입고 싸웠던 복장의 무늬에서 현재의 아르헨티나 국기가 탄행하였다.

  바르톨로메 미트레(Bartolome Mitre)는 같은 독립운동가로서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르헨티나의  초대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우리에게도 아픔과 같은 고난의 역사가 있었던 만큼,  어디를 가든지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갈채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테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웅장하면서도 씸플하고,  씸플하면서도 다분히 매혹적인 테르미니 역사.  바실리카 양식의 전형을 적나라하게 그대로 여실히 잘 드러내고 있다.

  이탈리아 대도시의 모든 역사는 바실리카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로마에서 시작된 바실리카 양식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거론하기로 하겠다.

  로마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든 터미널이나 역사에서든 공항에서든 길을 오가다 아주 잠시 선채로 간단하게 커피나 차와 빵이나 케익으로 간단한 식사를 대신하기를 즐긴다.  물론 앉는 곳들도 있고,  또 어떤곳에서는 서서 먹는 가격과 앉아서 먹는 가격이 다른 곳도 있다.  자릿세가 붙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사방 어디에서나 이런 곳들이 널려있다시피 하다.  그래서 테르미니 역을 찾았던 것인데......  카프치노 한잔에 빵 2개를 주문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커피는 에스페레소다.  아주아주 진한 작은 양의 커피를 주문하면 냉수 한잔과 함께 나온다.  먼저 냉수 반이나 한잔 전부를 쭉 들이키고 나서 찐한 에스페레소를 원샷 한다. 그리곤 쓰윽 일어나서 나간다.  아메리카노는 흔히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 보다 아주 약간 진한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먹는 스타일로 보자면 양이 너무 많다.  그래서 카프치노를 주문하는데  크림이 매우 풍성하게 나온다.  커피 역시 조금 진하기에 아래쪽으로 흑설탕을 미리 조금 넣어 놓고  풍성한 크림을 즐기며 마시다가 씁쓸한 맛이 감지되면 그제서 아래 가라앉은 설탕을 불러 올려 나머지를 마신다.

  이탈리아 커피.  맛과 향기 너무 멋지다.  참으로 많이도 마셔댔다.

 

 

 

 

 

 

 

                                    

 

 

 

 

 

 

 

 

 

 

 

 

 

  이제 대략적인 로마의 지리가 파악 완료되었다.

  어디를 어느뱡향으로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가 거의 완벽하게 파악이 된것이다. 

  군대서 30개월 동안 1 : 2.500 의 지도를 놓고  거리를 재고, 나의 표고와 표적의 표고를 확인해서 재고,  공기 온도 밀도 화약 온도 밀도 습도를 재고, 풍향과 풍속을 재서 머리 뽀개지는 계산을 한 후에 숫자화된 계산을 바탕으로 대포를 발사하도록 명령하던 기계적일 정도로 능숙했던 오래된 과거의 경험들이 나의 여행에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될 줄이야........  인제 원통에서 얼마나 눈물을.......

  지도를 펼쳐 놓고  먼저 내가 가보고자 했던 곳들을 미리 모두 표시를 한다.  다음으로 내가 있는 숙소에서 부터 방향과 거리와 소요되는 시간을 예측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하루 하루의 동선을 확인해서 그어본다.

  그러면 이제 모든 준비는 끝마쳐진 것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두 발에 의지해서 나의 생각과 경험이 안내해준 동선대로  그때그때의 상황과 컨디션을 조절해가면서 걷고 또 걸으면서 여행 자체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대에서 동선을 마련했다.  이 계획보다 늦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간에 쉬고 마시고 먹으며 다니다가.....  그래도 무엇인가가 아쉽고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되면   이미 진행하던 동선에다 약간의 변형을 그때그때 가미한다.  그러다보면 다음날이나 나머지 동선에서 시간 여유가 크게 생긴다.  그럴때는 다시 보고픈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가  전통 재래시장이나  발뿌리에 걸리는 대로 아무 골목이고 무작정 투어에 나서곤 한다.  한적한 주변의 시골로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기도 한다.

  이것이 나만의 여행 스타일이다.

  이제 로마를 만나기 위한 나의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나는 밖으로 나선다.

  새벽에 만났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다시 지나간다.  환한 아침에 맞는 성당의 모습은 새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로마사람들을 만난다.

 

  (로마 여행)을 생각하면 선입견 처럼 떠오르는 세 가지가 있다.

  소매치기가 많다.  이탈리아 사람은 불친절 하다.  로마여행에서 기차는 절대 믿지 말자.

  이런 선입견들을 믿고 또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다 당신 하기 나름이지요' 라고.

  난 나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다녀도 단 한번도 소매치기를 당해본적이 없다.  무엇을 읽어버린 적도 없다.  나름 나만의 노하우를 가지고는 있으나..... 그 또한 여행자 자신이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로마에서 기차 시간은 절대적으로 믿어라.  로마. 피렌체. 시칠리아에서 나는 단 1분도 지연되는 열차를 타보지 못했다.  비행기는 지연될 수 있어도 이탈리아 기차는 정시에 정확히 출발한다.  피렌체로 가는 알이딸로  열차가 중간에 아픈 환자 발생으로 앰블런스에 인계하느라 목적지에 20분 늦게 도착한 적은 있다.  시속 250km를 달리면서도 열차는 수시로 안내 방송은 물론 전광판으로 기차의 속도와 예정 도착시간을 계속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탈리아 사람은 불친절 하다.  절대 아니다.

  로마에서의 첫날.  이른 아침에 골목길을 지나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에게 나는 (본 조르노)라고 외친다.  마주친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의 인사에 미소로 답변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짧은 인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자꾸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다.  라틴어를 못알아 들으면서도 느낌으로 '어디서 왔냐'는 물음임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꼬레.  사우스 코리아' 라고 답하면,  '오! 꼬레' 하면서 두 팔을 벌려 금방이라도 안아줄것처럼 환영 인사를 건네온다.

  첫 목적지에 도달도 하기전에 나는 이미 꽃 한송이에  이탈리아식 모닝차를 한 잔 얻어먹고 난 다음이었다.  나의 로마여행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당신이 먼저 언어장벽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그 불친절하다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웃으며 (본 조르노)라고 말을 건넨 후,  길을 묻던  화장실을 부탁하던 버스표 사는 방법을 물어보던 웃으면서 말을 걸어 보세요.

  웃.는.얼.굴.에.침.뱉.는.사.람.을.이.제.껏.나.는.만.나.보.지.를.못.했.습.니.다.

 

  본 조르노.

  본 조르노.

  안되면 그냥......  굿 모닝.

  하이.

  해브 어 나이스 타임.

  헬로우.

 

  그렇게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걷다보면은.........  사진에서 보던.......  영화에서 보던.........  웅장한 석조 건물이 골목의 끝에 쨘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 로마가 있었다.

 

 

 

 

    -----------------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