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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요즘 휴일 보내기..... 그리고 또 이어지는 기다림.......

by 피안재 2017. 6. 4.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속설중에 이런것이 있다.

  '한 번의 여행은 세 번에 걸쳐 행복을 나누어 안겨준다'는 이야기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갖게되는 떠나기 전의 행복이 첫째요.

  여행을 실제로 떠나서 겪는 갖가지 일들과 시간속에서 얻게되는 행복이 둘째이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오랫동안 추억을 곱씹으며 갖게되는 시간이 바로 세번째 행복이다 라고.

 

  그런데 지금 나는......  이미 너무도 충분할 만큼 그 첫번째 행복을 누렸고,  이제 바야흐로 두번째 행복의 정점에 서 있어야만 했을것인데.......  그만 다시 첫번째로 회귀해서 행복은 커녕......  마냥 지루하고 고될지도 모를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같은 낙담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헐!!!!!!!

  애초의 바램과 계획과 진행에 따랐다면 지금 이 시간........  아마도 터키의 보드룸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난 주말인 5월 27일 오후 비행기로 이스탄불로 떠날 예정이었다.  이틀 후 아테네를 거쳐 산토리니에서 에게해의 코발트빛 바다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아마도 어제쯤 페리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보드룸에 도착해 이시간쯤 셀축으로 떠날 게획이었다.  에페소를 여행하고 카이세리를 거쳐 카파토키아에서  푹 쉬다가 올 예정으로 지난 겨울부터 계획을 하고 이제껏 기다려 왔었는데........

  아.뿔.싸.

  겨울이 지나는 시점에서 챠밍여사가 사고로 다쳐버렸다.

  무릎 부위는 오늘 현재까지도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처지이고,  발톱도 이제 반 정도 새로 자라나왔다.

  여행 출발을 이십여일 남긴 시점에서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배낭을 메고 15일 정도 걸어다닐 자신이 없는데 어쩌지?'  라는 이야기에......  과감하게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려온 이번 여행이었지만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챤스라 여기고 이번에도 혼자서?'  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지난 해 만도 혼자서 3회나 근 오십일 가까이를 나홀로 싸돌아다닌 처지로 차마 이번까지는...........?

  이번 여행을 단념한 그 시점에서 꼭 일주일만에 우리는 대체여행 일정을 다시 잡았다.

  대략 추석연휴를 끼어서 보름정도의 일정으로 이번엔 동남아를 가기로.......

  지금 내기 티켓팅 하려는 날짜는 9월27일 방콕으로 출발해 10월 11일 다낭을 통해서 들어오는 일정이다.  베트남과 앙코르 유적을 챠밍여사께서 꼭 보고 싶으시다 하기에......  태국.캄보디아.베트남은 필수 코스이며  라오스를 선택코스로 잡는 '동남아 완전정복 투어 프로그램'이다.  동남아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내자.

 

 

 

 

 

 

 

 

 

 

 

 

 

 

 

  그러다보니 이제 밥숟가락 놓고 굶는 처지만 아니라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겠는가?

  챠밍여사의 컨디션 회복 문제가 앞으로 계획하는 모든 여행의 가장 시급하고도 근본적인 필수중요사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하루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날 곧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마눌님의 컨디션 점검과 회복운동'에 곧바로 돌입했다.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땅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진동계곡 트래킹'으로 잡았다.

  이른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랬을까?

  원대리 자작나무 숲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아주 조용하고 한적했다.  인근 동네의 어르신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책길이 되었다.

 

 

  영화 '닥터 지바고'나 '워터루'에 나오는 드넓은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치 않을것이다.  여러 전투씬들도 자작나무 숲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 펼쳐지던 노랑 주황 휜색의 연한 파스텔톤 단풍이 물든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제법 있을것만 같다.

  '자작자작' 조잘대는 소리를 내며 타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자작나무.  껍질에 기름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불쏘시개로 아주 오래전부터 즐겨 사용하였으며,  양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잘게 쪼갠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해 밤에 불을 밝히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하얗고 넓게 벗겨지는 자작나무 껍질에 시를 써서 연인에게 보내주기도 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이다.

  어떤이는 자작나무 숲의 최고 운치로 낙엽이 모두 지고난 한 겨울 눈이 내려 쌓인 자작나무 숲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사계절 모두 나름 운치있고 아름답다.

  자작나무 숲에 들면 사게절 언제나 사각사각 숲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아주아주 상큼한 향이 코끝을 적신다.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은 주차장에서 차에 내려섰다고 해서 곧바로 자작나무 숲을 대할 수는 없다.  어느정도 발품을 팔아야만 진정한 숲과 마주할 수 있다.

  사방으로 여기저기에 자작나무 숲을 볼 수는 있겠지만,  시베리아의 숲을 연상시킬만한 진정한 자작나무 숲은 가파른 언덕길로 약 3.5km를 올라가서야만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여정에는 조금 힘든 길도,  또는 조금 힘이 덜 드는 길도 존재하는데.....  나름 각기다른 묘미와 멋과 정취가 있으니.....  결론은 어느 길을 택하든 무방하다고 하겠다.

  산불방지와 숲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인제 산림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작나무를 선택했다.

  1974년에 시작하여 95년까지 41만평으이 임야에 69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었다 한다.  그 중 약 7만5천평을 주요 자작나무 숲으로 조성을 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다.

 

 

  아직 물리치료 받는 처지로 무리하지 말고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에서 점검하자고 나온 길이었는데.......  이 아짐씨 쌩쌩하게 잘도 걸어 올라간다.

  날은 점점 더워만가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쉬었다 가자는 소리도 안한다.

  미티미티.

 

 

 

 

 

 

 

 

 

 

 

 

 

 

 

 

 

 

 

  한낮의 열기는 대단히 뜨거웠다.

  자작나무 숲에서 내려와 현리로 향했다.

  현리 버스터미널 앞 기사식당에서 두루치기로 점심식사를 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허름하고 다소 협소한듯한 느낌이었는데 손님이 북적였고,  음식엔 상당한 정성이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여행중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식당으로 치자면 언제고 다시 찾아오고픈 그런 식사였다.

  자기 차라고 손수운전해 주시는 챠밍여사 덕분에 모처럼 옆자리에 앉아서 주변인 내지 동승자의 여유를 한껏 즐겨본다.  이것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ㅎㅎㅎ

  방태산 휴양림과 곰배령이 지척에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진동게곡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여행자들에게는 (아침가리)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정감록)에 '십승지지'중 한곳으로도 기록된 곳이다.

  '십승지지'란 한반도 땅 중에서 전쟁 질병 환란등 모든 재해로 부터 피해 찾아들만한 곳 열군데라는 의미이다.  세상이 아비규환 지옥으로 변하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도망쳐서 그 환란을 거뜬히 피할만한 길지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곳 인근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조상중에는 정감록을 믿고 이곳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도 적지않게  있을것이다.

  한때 수백명의 주민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이곳 진동계곡(아침가리) 안에는 현재도 두어가구의 사람이 살고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 중의 오지가 바로 이곳이다.  아침나절에나 잠깐 햇빛이 든다 해서 '아침가리'라 불렀다 한다.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때묻지 않은 자연속에서 진정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이다.  아마도 동해시의 부연동 게곡과 더불어 트래킹의 진면목을 맛보루 수 있는 몇 안남은  곳이 아닐까 하는 나의 생각이다.

  계곡의 초입에서 상류의 화전민부락까지 약 6km의 계곡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숲을 헤치고 여울을 건너고 물웅덩이를 만나면 텀부덩 뛰어들고,  숲길이 끊어지면 계곡 물길을 헤쳐오르고,  내려오다 힘들어지치면 그대로 텀벙 빠진채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오는  트래킹 길이다.

  한참이나 늦은 봄의 끝자락에서......

  성급히 찾아와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만치 기승을 부리는 초여름 더위 속에서......  한바탕 물장구 치며 놀아나 보자고 먼길을 찾아온 것이었는데.....

  아.뿔.싸.

 

 

 

 

 

 

 

 

 

 

 

 

 

 

 

 

 

 

 

 

 

 

 

  가뭄의 상처는 너무도 커 보였다.

  이 멀고 먼 오지 중의 오지, 심산유곡 강원도의 산골 게곡도 극심한 가뭄을 피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지의 효력도 현대의 가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아침가리 계곡 입구에서는 하천변 정리와 다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서히 개발과 변화의 물결이 이 오지에도 찾아들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길을 따라 계곡의 초입을 지나 바야흐로 길이 끊어지면서 여울을 건너야만 하는 지점까지 다닳았는데.......  계곡에 물이 없다.

  그렇게 풍부하게 맑은 계곡물이 넘쳐나고 굽이쳐 흐르던 골짜기에 물이 없다.  시골 농로의 봇도랑 정도의 물길이 겨우 흘러내리고 있다.  육중하고 뽀얀 바위덩이 사이로 넘실대던 그 맑은 게곳수는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흘러내리는 바닦 가득 미끈미끈 이끼로 가득했다.  물고기는 여전히 물속을 평화로이 오가는데......  내가 찾았었고 아직도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아침가리 계곡은 어디에도 없다.

  아침가리는 이런곳이 절대 아니었다.

  허망했다.

  무섭게 변해가는 세상살이지만........

  절대 변해서는 안되는 것들도 덩달아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쩐지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더라니........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까짓 텀벙텀벙 트래킹이야......  큰 장마 한번 지나가고 다시오면 되지 뭐.  그나저나 일을 못해도 비는 꼭 와야 할텐데.......'

  무심한 시선으로 하늘 한 번 올려다 본다.

  '이럴때  높은 곳의 그 양반은 도대체 뭔 생각을 하실까...........??????'

 

 

 

 

  창고를 뒤져서 오래전에 사용했던 컴퓨터 본체를 찾아냈다.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진 않았지만  오래전에 (아침가리 트래킹)을 한 기록들이 사진으로 남아 컴퓨터 어딘가에 보관되어있을거란 생각이 떠 올라서였다.

  진동계곡 아침가리가 초입의 주차장이나 상가 모습은 조금 달라졌지만  계곡 안쪽의 모습은  예전처럼 그대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고 간직한 아침가리는 절대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침내 컴퓨터에서 지난 사진들을 찾아냈다.

  나의 기억과 나의 추억과 똑같은....  바로 아침가리의 참 모습이 그곳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수량이 줄다못해 계곡 자체가 말라버렸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머지않아 큰 비가 한번 오고나면 다시 드러낼 아침가리의 진면목 삼아서 사진을 꺼내 올려보기로 한다.

  아침가리는 정말 멋진 곳이다.

  시원한 계곡물이 넘쳐나는 날,  기필코 다시 가 보리라.

 

 

 

 

 

 

 

 

 

 

 

 

 

 

 

 

 

 

 

 

 

 

 

 

 

 

 

 

  챠밍여사의 컨디션은 생각보다 말짱했다.

  ㅎㅎㅎㅎ

  쬐끔 무리한다 싶었겠지만......  에정대로 그대로 유럽으로 떠났어도 별 탈 없이 여행을 해냈을 것이다.

  비행기 날라가고 나니까......  어찌나 아쉽고......  또 9월말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하고 앞이 깜깜해 진다.

  그래서 다음주 쯤에 티겟팅을 먼전 해놓고 기다릴까 한다.  프로모션을 통해 환불도 안되는 티켓으로 해야겠다.  그래야 비행기값이 아까워서라도 다치지도 않고 서로에게 정성을 더 들일테니까 말이다. ㅋㅋㅋ

  며칠 지나서 또 시간이 나기에 컨디션 회복 운동을 나섰다.

  아침에 조조할인 받아서 (노무현 입니다) 영화를 보았다.  많은 생각이 다시 떠오르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는 산책에 앞서서 점심 식사를 하러 문경새재 제3관문으로 가는 초입인 고사리로 향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송이 칼국수>를 오랫만에 먹기 위해서 였다.

  가을에 월악산 주위에서 생산되는 자연향이 가득한 송이 중에서 상품성이 뛰어난 자연산 송이를 고르고 난 파생품(모양상 상품가치가 좀 떨어진) 송이를 대량 구입해서 냉동보관했다가 4게절 음식에 푸짐하게 넣어주는 흔치않은 곳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옛날 방식의 칼국수 맛이 일품이다.  음식의 양도 아주 푸짐하고,  거기에 자연산 송이의 맛과 향이 넘쳐난다.

  여기에 더하자면.......  이번에 내가 찾아간 5월말의 경우에도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가 여전히 아삭아삭한 상태로 함께 나온다.  정말 일품 김치라 하겠다.  요즘의 이런저런 첨가물과 향신료에 젖지않은 수수한 옛날 칼국수를 소중하게 다시 먹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드리고 싶다.

  충주 수안보 지나 문경새재 3관문 가는 길목에......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원 인근에 있다.

  시인 박노해님이 지난해까지 아주 오랫동안 머물다 떠난 곳이기도 하다.  박노해 시인께서 머물다간 자취가 여기저기 그대로 묻어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산책삼아 찾은곳은 송계계곡이었다.

  채 이른게절이라 여행자가 자주 눈에 띄지는 않는 게절이었다.

  송계계곡은 챠밍여사와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기억이 세세하게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아침가리로 게곡 트래킹을 갔다가 허탕을 쳤고,  부연동 게곡도 좋다고 말은 했지만  그곳들이 대한민국 최고라고는 나는 말하지 못하겠다.    지금은 불가능해졌지만.........  지난날 우리 부부는 최고의 장소에서 최고의 트래킹을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그리고 그곳은 바로 송게 계곡이었다.

  1984년의 송계게곡은 차가 다니지 않는 아예 자동차도로가 없는 오지였다.  계곡따라 겨우 리어카 지나갈 정도의 울퉁불퉁한 농로가 전부였다. 시내버스가 이제 막 미륵리까지 개통되었고,  내사리를 거치는 내송계는 완행버스가 하루 몇대 다니던 시기였다.  몰론 모두 비포장도로였던 시절이다.

  서울에서만 살아 시골을 모르던 챠밍여사가 충주에 내려와 처음 수안보를 가면서 본 주변 풍경이 잊지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러던 중에 수안보 초등학교 미륵리분교를 빌어서 학생들에게 여름캠프를 열어주려고 준비하던 중  우리에게 시간이 생겨서,  사전 답사겸 분교를 찾았다가.......  연실 주변 풍경에 탄성을 질러대는 챠밍여사에게 더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고 손을 잡아 끌었다.  우리는 미륵대원사지 초입 도랑에서 시작해서 닷돈재.  팔랑소를 지나 덕주사 입구를 지나고  지금의 송계 소재지까지를 온통 바위벼랑 게곡의 물길을 따라 텀부덩 거리고 헤엄치고 바위를 타고 넘으면서.....  기어코 송계리까지 내려갔다.  지금이야 포장도로가 훤히 뚫렸지만.....  길도 없던 시절에 그 먼 계곡 길을......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송게계곡을 온몸으로 누비고 다녔다.  요즘 남들이 멋들어진 표현으로 하는 (트래킹)이라는 것을 그 때 이미 경험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장소에서.......  월악산과 한수 수몰지역 인근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부친의 주요 사냥터였기에 나는 어린시절에 이곳들을 무수히 드나들었었다.

  훗날 한계령 주전골 트래킹도 해 보았지만........  30년도 훌쩍 지나버린 옛날의 송게만한 곳은 다신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 다음해에 우리는 결혼했꼬......  송계는 점차 변해 갔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송게는 여전히 30년 전과 같다.

  그 아득한 에날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곳은 송계 오토캠프장이다.

  한때는 '여행이 곧 캠핑이며,  캠핑이 내 여가생활의 디부분이다' 라고 여기며 사방 쏘아다녔는데.......  생각해 보니 마지막 캠핑을 다녀온지가 언 3년 가까지 되어간다.  뒷방 한구석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캠핑장비들에게 새삼 미안해 진다.  게절과 장소와 용도를 달리하는 텐트만도 4개나 되는데........  오랜시간 모두가 휴면중이었다.

  캠핑장을 둘러보니 사뭇 달라진 것이 너무도 많아보인다.  일단 영역이 서너배는 넓어졌다.

  이젠 어디에서도 노지캠핑(옛날 방식의 아무대나 좋은곳을 차지하는)은 점점 힘들게  아니 불가능하게  변한것 같다.  차량을 가까이 두어야 하는 오토캠핑이 기본이 되었고, 아에 아파트 한채가 이사다니는 캠핑이 대세를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안전이나 환경 분야에는 지대한 공헌을 한것이 사실이겠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초기의 캠핑을 온몸으로 누리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영 개운치 않고 잘 적응이 되지 않은 새로운 패턴의 문화환경이라 생각된다.  노지캠핑의 멋과 맛은 이제는 모두 제지 내지는 제한 조건이 되어버렸다.

  겨울 눈속을 뚫고 골짜기에서 하루 힘들게 유하고 기어나오던 추억,  무인도에 찾아가던 일,  험준한 산자락에서 달구경하면 캠핑하던 일.  계곡벼랑에서 캠핑하다가 폭우로 구사일생 빠져나오던 일.  태풍불던날 어둠속에서 겨우 평지를 찾아 텐트를 쳤더니 군부대 초소여서 불시에 끌려갔던 일......

  감회가 무척이나 새롭다.

  여기저기 겨우 들어서 있는 누군가의 텐트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갑자기 캠핑이 사무치게 그리워 진다.  차맹여사도 같은 심정인가 보다.

  '우리 그동안 캠핑을 너무 등한시 안거 아니야?  당신이 맨날 해외로 내뺄 생각만 하니 그렇지.  아니야?"

  '쪼매 그런 생각이 드네.  우리 캠핑도 다시 시작할까?'

  '요번 여름부터 다시 다니자.'

  '오키. 콜.'

  '미 투.'

 

 

 

 

 

 

 

 

 

 

 

 

 

 

 

 

 

 

 

 

 

 

 

 

 

 

 

 

  여기저기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월악산 영봉이 올려다 보이는 게곡에 발을 담구고 마주 앉았다.

  송게계곡도 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먼저는 아들 며느리 근황을 다시 이야기 하다가  금방 넘어가 버리고......

  우리의 소중한 손녀 태리의 이야기가 대세를 이룬다.

  핸디폰을 꺼내고 손녀 자라나는 동영상을 보며 키득 거린다.  우리의 관심과 소망과 바람은 온통 윤태리로 향한다.

  10월 5일인 태리의 첫돌이 날자를 앞당겨 질거라는 즈음에서야......  다시 현실적인 여행 이야기로 되돌아 간다.

  '귀한 손녀 태리의 첫돌이 9월 24일 쯤으로 당겨지면......  우리의 동남아 여행은 27로 출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계곡물에 발담구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다음에 쉬는 날은 어디가지?'

  '뭐 아무데든지,  그때그때 상황봐서 가면 되지 뭐.'

  여울을 건너서 주차장으로 향 하는데........  누군가 저쪽 캠핑장 구석에서 이제 막 텐트를 펼치기 시작한다.

  '우.이.씨. 우.리.도.캠.핑.부.터.다.시.시.작.하.자.'

  '그.래.좋.아.'

 

  또 하루가 지나간다.

  이 순간에 감사한다.

  주변의 모든것에 감사한다.

  특별한 것 아무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오늘이었지만.......  살아서 오늘같이 무탈하고 마음편한 날이 세어보면 몇 날이나 될까?

 

 

 

 

  -------  어느 평범한 날에.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