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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영화 (군도)를 보고나서........

by 피안재 2014. 8. 4.

 

 

 

 

 

 

 

 

 

 

 

 

 

 

 

 

 

 

 

 

  영화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그것은 제작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꼬운 경우는 제작과 감독을 겸하면 되는 것이다.  돈(자본)과 믿음(신뢰)과 두뇌(빛나는 아이디어)가 뒷바침이 되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그래서 영화판을 또 하나의 산업이라 일컷는것이다.

  영화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다분히 관객의 몫이다.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서 내가 보고싶다고 판단되면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비로소 영화를 보게되는 것이다.  상호간엔 엄연하게 기브 앤 테이크의 거래가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재미있다)와 (재미없다)의 결정이 나게되고 이 결정에 따라 산업이(영화가) 이익을 창출하느냐 적자를 내느냐 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유익하냐) 또는 (유익하지 않냐)는 극히 일부의 다른 장르의 산업(영화)에나 해당되고,  대다수의 영화관에 내걸리는 영화는 대부분 (볼만했어) (다시 보고싶어) (차기작이 기대되) 하는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자 목숨을 걸고 흥행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평가는 지극히도 이기적이다.

 

 

 

 

       - 거대한 물량을 투입한 블록버스터급 영화 (군도)는 무협영화에서 마카로니 웨스턴과 케이퍼 무비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다들며 한껏 재미를 추구한 오락영화인데,  어딘지 모르게 스토리의 엉성함과 전반 도입부의 지루함, 그리고 너무 무거운 주제에 함몰되어  무엇인가가 빠지거나 모자라는 듯한, 마치 얼마전 상영된 영화 (역린)을 보고나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지 강동원의 현란함 몸놀림이 매우 빛나는 영화였다.  - 피안재.

 

 

 

 

 

 

 

   나에게 근자에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무엇을 하러 나서기에도 어쩡쩡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거리기에도 썩 내키지 않는 날에는 컴퓨터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서부영화)를 감상하는 취미가 생겨난 것이다.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다 알게된 것이다.

  초.중등학교 시절 보았던 영화들이 거기에 있었다.  아주 유명했던 영화들 외에는 자막이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영화를 감상한다.  미천한 나의 영어 실력으로 스토리를 읽어내려갈 수는 없지만, 오랜세월 외국영화 또는 서부영화를 숱하게 보아왔던 촉(?)과 감(?)으로 충분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가 있다.  웨스턴 무비의 특성대로 속이 후련해지는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도 날리고 킬링타임용으로 제격이지 싶다.  옛 감회도 새롭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무법자 씨리즈)도 보고, 테렌스 힐의 (튜니티 씨리즈)도 보고 리반 클립도 나오고 줄리아노 젬마도 나온다.

  흔히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부르는 서부극이다.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이야기 할 때 (황야의 무법자)나 (석양의 무법자)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클린트 이스트우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용서받지 못할 자)가 미국땅에서 만들어진 마카로니 웨스턴이 아니니 그 영화만 정통 서부극이라 할 수 있을까?  마카로니 웨스턴에 대한 구구한 설명은 굳이 다시 하지 않아도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도 서부극을 굳이 세분해서 나누지 않는 이상은 그냥 보편타당적인 서부영화이다. (역마차) (알라모요새) (하이 눈) (OK 목장의 결투) (빅 칸츄리) (아파치)등의 흔히들 정통서부극이라 하는 영화들과 동류인 것이다.

  (군도)도 이런 측면에서 (정통 역사극)과 (짜집기 오락역사극)의 중간 정도로 이해랄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영화란 자고로 다양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자.  기존의 틀이나 형식이나 기타 여하한 영화판의 고정관념도 뛰어넘다 못해 싸그리 내팽개치고 오로지 재미를 위한 영화를 잘도 만들고 흥행도 성공하고 명장의 반열에 오른 명망마저 얻고있지 않은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그간 영화를  보고 자라면서 가슴에 담아 두었던 생각들과 해보고 싶었던 꿈과 자신만의 취향을 누가 뭐라든 자신의 생각대로 마구마구 뒤섞어 짬뽕이 주는 묘미를 한껏 살려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고 나서 평론가나 비평가들이 뭐라하던,  그것이 자신의 철학이요 의도했던 생각이며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이 바로 타란티노인 것이다.  그저 영화는 한바탕의 신나는 놀이마당 이라는데 더는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그런 그의 영화가 보고 싶으면 돈을 내고 보는 것이고,  싫으면 안보고..... 결국 그가 망하면 되는 것인데....... 타란티노는 무지하게 흑자를 내더라.

 

  차라리 (군도)의 윤종빈 감독도 애초부터 '한바탕 껄쩍찌근하게 놀이마당을 추구하며 질펀나게 놀아보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더라면 좀 더 영화를 망가트려 가면서 더 신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군도 - 민란의 시대'라는 제목 부터가 너무 무거운 주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영화는 TV의 주말 역사극 으로 한 30회 분량정도로 늘려서 드라마도 제작했더라면 (왕건)이나 (정도전) 못지않게 성공했을 수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나의 생각이 잠시도 떠나질 않는다.

 

  '산적 -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제목이었다면 윤종빈 감독은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으리라.

  '군도 - 민란의 시대'는 너무 무겁다.  스스로 한정된 설정에 갇히는 꼴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적은 그냥 산적이다. 산에 살면 산적이요.  물에 살면 수적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금(법)을 밟은 자들이 산속으로 은거해 숨어들어가서 살면서 도저히 자급자족이 안되니까 주요 길목이나 고갯길을 차지하고 앉아서 오가는 행인들을 털어서 생활한 사람들인 것이다.  민란 이전에 이렇게 산으로 도주해 못된짓으로 먹고살던 대다수의 무리들은 처음엔 그저 좀도둑 수준이었다.

  피해를 본 사람들이 관에 고발이 끊이질 않고 피해규모가 점점 커져가고 사방으로 각지에서 창궐하다시피 일어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토벌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별볼일 없는 부류들은 흩어지거나 다른곳으로 도망을 치지만,  역사적으로 드러난 몇몇의 무리들은 인근의 다른 무리를 흡수 병합하고 체재를 갖추어서 당당하게 관(토벌군)에 대항하곤 했던 것이다.  산적들이 체질개선 내지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과감하게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화에서 차럼 실제 그런 참상을 보다못해 (큰 틀) 내지는 어떤 (큰 꿈)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산적)이 (군도)로 탈바꿈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하다면 어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수 있을까?  장길산일까?  임꺽정일까?  글쎄다.  어디까지나 나의 소견으로는 장길산이나 임꺽정에게서는 (산적보다는 큰도적)의 수준이었을 뿐,  온마음으로 신명을 다 바친 (군도)로서의 의미에는 좀 못미치지 않을까 싶다.

  영화 (군도)에서 마지막 장면에 살아남아 거친 들판을 말을 달려 달아나는 그들이 가는 그곳은 어디였을까?  (산적)에서 (군도)로 탈바꿈한 그들이 달려간 그 곳은 역사에서 어디였을까?

  이 나라 역사에서 진실로 (군도)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영화에서 도치가 무리를 이끌고 달려간 그곳........

  그곳은 바로 (동학군)이었을 것이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민초들의 애환과  시대의 아픔으로 생겨난 (산적)들이 달려가서 (군도)로 탈바꿈한 그 목적지에는 바로 (동학혁명)이 있었을 것이다.

  (동학혁명군) 이야말로 (군도)인 것이다.

 

 

 

 

 

 

 

 

 

 

 

 

 

 

 

 

 

 

 

 

 

 

  '군도 - 민란의 새대' 라는 제목이 너무 무거웠다.

  제목을 바꿔서 애초부터 가볍고 재미난 영화로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처럼 만들었던가,  재미를 쏙 빼고 (역린)처럼 우울하고 무겁고 장엄하게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대본 자체가 좀 엉성했던가 감독 스스로가 스토리 전개가 좀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듯 보인다.

  도입에서 중반부 까지는 사실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었고, 화면 우측으로 자막에 1부,2부,3부,4부라고 글자로 설명이 나오듯이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로  스토리전개를 설명해 주어야 할 상황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혼자만의 시선으로 매끄럽게 스토리가 이어져야 하느것인데 말이다.

  땡추는 잡히지 말고 싸우다 죽었던가,  고문을 이겨냈어야 한다.  그 정도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 산속 은신처에서 벌어질 일이 어떤것인지 몰라 고문앞에 당장 죽는 몇사람을 위해 자백을 한다?

  (존놈 나놈 이놈)에서 북간도의 사막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사용된 싼타에스멜다의 경쾌한 기타 선율은 배경음악으로 놀라우리마나치 신선했고 상큼한 충격 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오락추구라 하지만 사극의 장면장면에 삽입된 웨스턴무비 스타일의 기타선율은 아무래도 꽝이었던듯 싶다.  더우기 웨스턴무비의 명장면인 (장고)에서 프랑코 네로가 쏘아대는 따발총 장면을 (군도)에서 다시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도 어설픈 장면으로 정말 아쉽다.

  상투를 계속 자르고 다니는 행위에 대해서도  관객들 입장에서 무어서인가 엄숙한 비장감이 들거나 딱히 '재가 이래서 저렇게 까지 하는구나' 하는 확신이 스스로에게 납득 가능한 이해가 전혀 되질 못했다.

 

 

 

  캐스팅은 어느 영화 못지 않게 화려했다.

  하정우씨의 점점 원숙해지는 연기를 보는 것도 한 즐거움이었다. 단 어느 한 이미지에 굳어버릴까봐 약간 걱정되는 면이 늘 있다.

  강동원씨는 훌륭했다.  참으로 멋있었다. 누군가 지적했던 억양 같은것도 그의 현란하고도 우아하기까지 한 몸동작으로 충분히 커버되고도 남았다.  라스트 대결씬에서 굳이 아기를 품에 안고 싸워야 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안타깝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몫이다.

  나의 오랜 불알친구 경영이는 여전히 건재해 보기 좋았다.  요즘은 엄청나게 다작을 하고 있다.  아마도 중견배우로는 요즘 최고 대세가 아닐가 싶다.  다만 드러난 이마와 남은 머리가 희어진것(이놈은 본래 학창시절부터 새치를 넘어선 흰머리가 유독 많은 넘이었다우)과 많이 불어난 몸집을 보니 (오호라. 어쩔소냐 인생 무상이라), 내 자신을 들여다 보는것 같아서 조금 가슴이 찡했다.  장주영이(성우협회 회장도 하고 안산 항공에어쇼 사회를 몇년째 보는,  주영이 경영이 나, 요렇게 충주 고구문거리  야현동 일대 악동 삼인방이었음) 놈만 아직 쌩쌩한것 같아. 녀석만 원래 동안이었으니까.

  송영창씨는 이제 악역 분야에선 입신의 경지에 이른듯 하고, 마동석씨와 윤지혜씨도 나름 멋있었다.

  조진웅씨는 조금 갈팡질팡 하는 것 같았고,  다른 배우들은 좀 역할이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뭐.  따지고 보자면 이것까지도 모두 감독의 몫인데........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이 기대이상으로 너무 좋은 작품이어서였을까.

  다음 작품을 한번 더 기대해 보기로 하자.

  항상 수작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테니까.  아마도 다음 그의 작품이 그의 감독생활 중 최고의 작품이 아니되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윤종빈 감독이 아직은 젊은 감독이라는 데에서 이번 작품의 아쉬움을 그냥 달래보기로 한다.

 

  - 중반부분 이후부터 라스트씬 까지는 그래도 재미있엇잖아. ㅎㅎㅎㅎ

 

 

 

 

                                                                 ----- 여름비가 내리던 날에.  충주 티티씨에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