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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는 모두 날조된 가짜다.

by 피안재 2025. 6. 22.

 

 

 

(공지사항)

이번 호의 글을 쓰면서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그냥 이해하시는 분이 있으신가 하면 상당히 거북해 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기독교 신앙인 이전에 종교적 사회적 보편적 이야기를 가감없이 해보고자하는 마음을 가졌을 뿐이다. 종교 이야기를 하면 거북해 하는 분들의 반응이 느껴지고 실제로 빠져나가는 분들이 있음도 알고 있다. 왜 종교를 공론화해서 논의하면 안되는 것일까? 왜 불편해 지는 거일까? 저마다의 종교는 불변의 진리 차제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올곳음을 뜻한다. 그 올곳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불편해질까? 혹, 그 올곳음에 대한 자신이 없고, 방어적 선입견이 작용함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그런 결정과 선택은 그런 분들의 몫이고, 나는 내 소신과 주관에 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피력해 보려는 것 뿐이다. 하늘나라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을 캐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승에서 인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에 대하여 궁금하고,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하여 너그럽게 양해를 구하면서, 이번호의 이야기는 논문을 통한 주장이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평소 관심이 있고 알고 있고 나름 필자의 생각과 판단에 따른 지극히 주관적인 소견을 반영해 보려고 한다. 많이 거북하시다면 읽지 않아주셔도 되고, 바라기는 그냥 이런 이야기나 소설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이해를 구해본다. 피안재.

가혹한 채찍질로 피투성이가 된 유대 젊은이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졌고, 가시 때문에 생긴 상처에서 붉은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어깨 위로 육중한 나무 십자가가 얹어졌고 성난 군중들의 함성과 야유와 조롱을 헤치며 힘겹게 채석장 언덕을 지나 해골산까지 올라왔다.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처럼 되었지만 이내 다시 십자가 위에 뉘여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한 망치 소리와 함께 손과 발에 커다란 쇠못이 박혔다. 커다란 구덩이에 그 십자가를 세우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발작하듯 턱과 어깨가 경련을 일으켰다. 지칠 대로 지치고 고통스러워하는 젊은이의 표정과 몸짓에서 이제 어떤 때가 가까워졌음을 누구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과 절망과 체념으로 가득 찬 심하게 일그러진 표정의 청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발아래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한없이 안타까운 표정을 애써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함께 생활하고 여행하면서 가르침과 당부를 전했던 믿음의 사람들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 쓰린 씁쓸함과 짙은 외로움이 폐부를 뚫고 들어왔다.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무언의 절규를 쏟아내던 젊은이는 그만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한줄기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은 남았다. 그의 몸에서 떨어진 핏방울 자리에 약속의 씨앗이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 열매가 과연 구원의 열매였을까?

기독교는 바로 그 골고다 언덕에 뿌려진 그 약속의 씨앗에서 탄생한 종교다.

하지만, 지금 열매맺어 있는 이 과실이 과연 그 청년이 의도하고 약속했던 바 대로 그 열매를 제대로 가꾸고 수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서도 잘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서 몸소 오병이어의 기적을 실천해 보여주었듯이, 약속의 열매가 잘 익으면 온 세상의 사람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나누어 먹어도 모자람이 전혀 없을 것이며,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던가? 거기엔 남녀가 따로 없고 민족과 피부색을 가릴 필요가 전혀 없는 온전히 열린 세상을 허락하신 것이다.

청년은 우리에게 동등하면서도 공평한 (구원의 약속)을 선물로 남기면서 딱 한 가지 조건만을 제시하고 떠났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였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라는 당부와 약속을 동시에 남겨준 것이다.

그런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거기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다른 어떤 규율이나 잣대도 들이대지도 말고, 그냥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당부하신 바대로 서로 사랑하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곧 기독교인 것이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기꺼이 십리를 함께 걸어가 줄 것이며,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까지 기꺼이 내줄지어다.’라고 그분께서 가르치셨고 간곡하게 당부하셨다. 그것이 모두가 하나가 되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척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당연히 모든 것이 저절로 다 해결되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앞으로 남게될 문제가 뭐가 더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온 인류의 고민 끝! 행복 시작!!!!!!

서로 사랑하면 모두가 행복해 진다는데........ 그거야 말로 아주 쉽지요????????

당연히 그러했음에도, 십자가 사건이 벌어진 지 어느덧 2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세상은 그렇게 되었는가?

어린이와 순한 양과 늑대와 사자가 함께 뛰어노는 그런 세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과연 지금 이 세상에 사랑이 차고 넘치고 모두가 행복한가?

어쨌거나 골고다 언덕에 뿌려진 씨앗과 가르치심이 모두 진실이었다면. 혹시 그분이 하셨던 약속은 ‘즉시 현장 완성형’이 아니라 아직 조금 더 가야 하는 ‘진행형’ 이던가, 한참 개선 중인 ‘하자보수형’이 아닐까? 심하면 중도 포기해야 하는 ‘부도형이나 파산형’ 이 아니라는 보장 또한 어디에도 없겠지만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우리 잘못인가? 아니면 그분의 계산 착오인 것인가?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선착순도 아니고 성금순도 아니라면서........ 이제와서 추첨제라고 하시지는 않으실 것인데........ 지금 시계가 맞는거야? 다시 시간표 확인 좀 해봐.

행복의 단비는 어디로 가고, 지금 예루살렘 주변으로 죽음의 흑비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이보세요? 한 때는 젊은 청년이었던 그분 말입니다.

그때 그런 생각 안해보셨나요?

인간이라는 종(種)은 말입니다. 말로만 해서는 잘 안듣는 사실을 미처 모르셨습니까?

두들겨 패야 해요. 죽도록 패야 말을 들을까 말까 하는 종(種)이 바로 인간이란 말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요?

아우슈비츄(Auschwitz)요?

그래봤자 개네들 죽어라 말 안들어요.

차라리 그 때, 제대로 처리하셨으면 우리가 한 번만 울고 끝나는 거였잖아요? 도대체 지금 우리가 몇 번을 울어야 하는 건가요? 어디 운다고 끝이 나겠어요?

바울(Paul)을 보내 (사랑)을 전하실 생각이셨으면........ 매질을 해도 절대로 말 안 듣는 종(種)을 그때 말끔하게 정리를 해 주셨어야지요.

우리는 그 청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려는데, 거시기(?)는 도대체 누구한테 뭘 배워서 저러는 것일까요?

정말 알고싶어요?

 

바울은 가이샤 감옥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마가(Marco)의 뒷모습을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었다. 마가는 감옥을 나서는 대로 항구와 저잣거리에서 루가(Luke)를 먼저 찾을 것이다. 아마도 마가는 쉽게 루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 항해를 위해 약간의 약품과 생필품을 구매하려는 루가의 행동반경이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전제로 루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할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바울 본인의 의도나 생각을 루가를 통해 얻고자 함이리라. 그런다음 서둘러 사도 회의의 누군가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러기에 왜 마가의 동행을 허락하셨습니까? 애초엔 총독부에 루가 형제만 동행하겠다고 요청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유니아와 안드로니고의 걱정이 여전히 크구나. 하지만 이제 마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을 듯싶구나. 루가만큼은 아니겠으나 이젠 마가가 우리의 이야기를 사사건건 나쁘게 저들에게 고해바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나는 가지게 되었다.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너희들도 그만 마가를 루가와 똑같이 대해주도록 노력하렴.’

‘그는 사도 회의가 우리를 감시하도록 일부러 보낸 자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자입니다. 어김없이 이곳에서의 오늘 일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베드로나 야고보 사도에게 보고될 것입니다.’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그를 지켜보지 않았느냐? 언제부터인가 그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진것을 느끼지 못했단 말이냐? 베드로 형제가 마가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면, 가이샤를 떠나는 순간부터 나도 마가를 아들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내 조카인 유니아와 안드로니고는 물론 마가와 루가까지 모두 내 아들이라고 불러야겠구나.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앞으로는 마가를 좀 따스하게 대하여 주도록 해라. 로마까지는 아주 먼 길이다. 더군다나 너희와 나는 자유스러운 처지가 아니고,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로 죄인의 신분으로 호송되어가는 처지라 휠씬 고통스러운 여행길이 될 것이야.’

‘저희는 아직 젊으니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숙부께서 기력이 많이 쇠하셨고 시력마저 많이 떨어지셨으니 험난한 바닷길 여정이 걱정입니다.’

‘어선이나 상선을 얻어타는 것도 아니고 지중해 최강인 로마의 함선이 우리를 태워가는데 무슨 걱정이 되겠느냐? 내가 그동안 거듭 펠릭스 총독에게 너희들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고 방면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산헤드린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입증이 되었지만, 제국의 식민지 중에서도 유대 지역만은 로마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자칫 소요가 폭동으로 번지고 반란으로 확대될까 두려워 펠릭스가 우리를 일단 로마로 이송시켜 자신의 책임과 우려에서 벗어나고자 하려는 것이다. 하여 어쩌면 배가 시칠리아나 본토에 들어설 즈음에서 너희를 먼저 방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가 숙부를 끝까지 모실것입니다.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아니다. 너희가 나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사사건건 저들의 노림수에 걸려들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나는 어차피 로마의 법정에서 정식 재판을 받아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엄연한 로마인이고 식민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어떤 잘못으로도, 내가 로마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 이상 로마의 법정에선 당연히 무죄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턴 자칫 너희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너희는 로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너희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라고 하면 그땐 나로서도 더 이상 방법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나머지 여정은 곁에 루가가 있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 더불어 마가까지 함께하게 되지 않았느냐? 방법을 써서 기회가 닿는다면 일단 무조건 서둘러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라. 혹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은신하다가 데살로니카나 에베소로 가거라. 거기에서 너희가 해 줄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내게 따로 인사고 뭐고 번거로움을 떨 필요없이, 즉시 쏜살같이 달려가거라.’

‘숙부께서는 누군가가 우리뒤를 쫓을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숙부를 노리고요? 산헤드린 입니까? 아니면 사도 회의란 말씀이 십니까?’

‘생각을 많이 했더니 좀 피곤하구나. 잠시 누워야겠다.’

‘숙부님. 그게 누구입니까?’

‘무슨 걱정이더냐? 차차 때가되면 모두 다 알게될 것을.’

 

예루살렘의 등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온산 언덕위에 건설된 난공불락의 성채도시 예루살렘에는 등대가 하나 있었다. 항구 근처의 가장 높은 산정에 위치해 바다를 드나드는 어부나 여행자들에게 안전한 항로를 지켜주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인 그런 등대를 말한다. 바다를 나가면서 그 등대를 향해 안전한 항해를 기도하고, 돌아오면서 등대가 보이면 마침내 무사히 집에 돌아왔음을 절대자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오가는 여행자를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바로 등대인 것이다.

그런 등대가 하나 예루살렘에도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고 그분께서 마침내 공생애의 길을 걷기 시작하시면서 부터 예루살렘에도 등대가 하나 생겼다고 볼 수 있겠다. 바닷가 항구의 등대는 분명 아니겠으나,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틀림없는 드넓은 세속의 바다에 찬란한 빛으로 우뚝 솟아있는 등대가 틀림없었다. 하긴 그 등대는 생김새도 색달랐다. 눈부신 광채를 멀리까지 쏟아내는 그런 장치도 없었다. 시온산 자락 다윗왕의 무덤 인근에 위치한, 웅장하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누군가의 저택이 바로 그 등대였다. 저택의 규모나 화려함은 마치 어느 궁궐이나 수도원에 못지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크고 아름다웠다.

커다란 저택의 뜰에서 동쪽을 건너다보면 예루살렘의 모든 곳곳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예루살렘 대성전이며 헤롯왕의 궁전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그랬음인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이 저택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이나 드러나지 않은 저택의 내부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하여 이런저런 소문들이 저잣거리에 나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이 저택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연관이 되었거나 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하여 남의 이목을 피해 예루살렘을 오고가면서 이 저택을 거쳐가는 사람들에게 이 저택은 그야말로 항구의 등대나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 저택은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을 뿐, 소문에 따르면 어떤 한 아주아주 돈이 많은 부자 과부가 그곳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소문의 전부였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나서.......... 먼 훗날 후세 사람들은 이 '예루살렘의 등대'를 ‘마가의 다락방(Dormition Abbey - Hagia Maria)’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루살렘 성채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두 개씩의 문이 설치되어 총 8개의 성문이 있다. 처음 예루살렘이 시온산 언덕을 등지는 형태로 건설 되었음으로 시온 산이 있는 남쪽이 지대가 높은 편이며 그곳에 설치된 성문이 ‘시온의 문(Zion Gate)’ 이다. 이곳을 드나드는 아랍인이나 이방인 중에는 이곳을 ‘예언자 다윗의 문(Bab Nabi Daud)’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문 밖 시온산 정상부에 다윗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시온의 문은 다른 성문에 다르게 L자 형태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 적들이 침입하였을 때, 일직선으로 쉽게 통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안쪽의 출구가 옆으로 설치된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유대인들에게 시온(Zion)이란 더없이 성스럽고 고귀한 단어이자 의미인 것이다.

이사야서(60:14)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했다. 이는 곧 시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인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시온의 초석’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리스도가 떠나고 나서 사도들은 ‘다시 올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구약성경 이사야 서에 이미 기록되어 진대로, ‘시온이여 깨어나라. 깨어나서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영광스러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다가올 수 없을 것이며,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올 것이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아래에 엎드려 절하며 그곳을 여호와의 성읍이라 외치고 거룩하신 분의 시온이라 찬양할 것이다.’

초로의 사내는 고개를 돌려 방금 자신이 들어 온 굽어진 문을 통해 예루살렘 안쪽을 바라다보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베드로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어서 주교 야고보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췌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분께서 약속하신 ‘아버지의 집’에 막 돌아왔음에도 몸을 누이고 모처럼의 쉼을 택해 보지도 못한 채, 지금 이렇듯 허둥지둥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지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주여. 이곳이 말씀하신 시온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말씀하신 시온은 과연 무엇입니까?’

허전함과 쓸쓸함이 사정없이 폐부를 파고들었다.

오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와 이제 육십의 나이를 바라보면서도 바나바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오늘도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주여. 이제 저를 어디로 보내시겠나이까? 제가 무엇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저들의 생각과 의도를 제가 깨달았음에....... 그것이 정녕 당신의 뜻이란 말입니까?’

고뇌에 가득한 바나바의 일그러진 표정 사이로 어느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몹시 지치고 힘에 겨운 듯,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향하는 바나바의 눈앞에 또 하나의 환영이 나타나 자신에게 손짓을 보내오고 있었다.

‘나의 벗이여 친구여. 눈을 들어 시온산 너머의 너른 세상을 보게. 지금의 고뇌와 고충은 그저 잠시일 뿐, 자네가 가야 하는 먼 여행에 비하자면 아주 찰라와 같은 순간일 뿐일세.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교회에 더해질 것이며 장차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 복된 말씀을 전하고 만백성이 모두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만 행동하면 되지 않겠는가? 너희는 반듯이 기억하라고 당부하셨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거나 남자나 여자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하나라 하시지 않으셨던가? 나에게 그리스도는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항상 계신다고 전해준 사람이 바로 자네이지 않은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고 구원의 역사가 차별되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복의 근원에서 멀어지는 길일세. 그리스도께서 보내 주신 기쁨에서 멀어지는 길이 되는 것이라네. 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환영 속에 그분을 보았고, 자네는 실제로 그분과 함께 생활하면서 지켜보지 않았는가? 나를 깨우쳐 주었던 자네라면 부디 그분 말씀의 참뜻을 올바르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기꺼이 자네를 꼬옥 앉아주고 싶다네. 부디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얻길 바라네.’

지금 바나바는 그런 바울이 더욱 더 그리워졌다.

바나바는 서들러 시온의 문을 나서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다.

'주여. 저에게 슬기로운 지혜를 주십시요. 시온의 영광이 예루살렘만의 것입니까? 아니면 바울이 말하는 대로 이방인의 드넓은 광야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까? 이제 저는 서둘러 바울에게로 달려 가겠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하게습니다. 부디 제게 그 길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바나바는 광장을 지나 다윗의 무덤이 있는 시온산 쪽으로 난 골목길을 서둘러 올가가기 시작했다.

돌계단을 지나 언덕길로 이어진 골목을 한참 돌아가니 마침내 거대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 사는 예루살렘의 그저 그런 흔한 주택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사방으로 여기저기 그대로 묻어나 궁전이나 신전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건물의 규모나 돌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견고함에는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라 해야겠다. 그러함에도 어디 골목 초입이나 광장의 한쪽 구석이 아닌, 이렇듯 골목 깊숙한 안쪽에 은둔자의 숨겨진 처소처럼 드러내지 않음은 아마도 그만한 재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만한 사연을 가지고 조용히 살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상당한 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예루살렘 성안에 번듯하게 궁전을 짓고 살았어야지, 성문 밖 시온산 중턱의 좁은 골목길 안에 남들에게 쉽사리 드러나지 않게 집을 짓는단 말인가.(현재의 ‘마가의 다락방’은 2천 년 동안 성지로 떠받들어지면서 증축과 개축을 거치고 수도원으로 사용되는 등 궁전 못지않은 장소로 새로워졌지만, 1세기경의 본모습은 규모만 상당한 어느 정도 남루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일부의 역사학자들은 신약 성경의 ‘마가의 다락방’이 사실은 이곳이 아니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덧붙여, 성지순례지의 상당지역이 사실은 신약성서의 그 장소가 아니라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이름뿐인 성지순례가 하나의 여행상품처럼 팔리고 있다. 하나의 성지가 같은 지역에 두 개가 있고, 심지어는 여러 지역에 분포해 있기도 하다. 그저 입증이 안되는 허구의 이야기뿐인데 그 자리에 수도원이나 교회가 생기고 버젓이 필수 성지순례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얼핏, 과거의 무허가 약장수 서커스단을 보는 듯 하다.)

골목을 돌아서면 제법 너른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 저택의 대문이 위치했다.

예루살렘 성내의 여느 골목길처럼 골목 양쪽으로 다닥다닥 돌을 다듬어 쌓아 올린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고 골목길의 바닥도 넓적한 돌을 다듬어 포장도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포장된 바닥의 돌들이 가운데 쪽으로 미세하나마 경사가 지게 깔아놓았으며 한가운데로 길게 홈을 파서 이어놓아 물길을 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름으로 배수시설에까지 신경을 썼다는 뜻이다. 이 골목 안쪽에 살던 누군가가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쓴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택의 육중해 보이는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항상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활짝 열고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다시 굳게 잠기는 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있음에도 무슨 연유인지 오늘은 열려있지 않았다. 여간해서는 보기 드물게 지극히 이례적인 사태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바나바는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굳게 닫혀있는 육중한 대문 앞에 섰다. 그러더니 대문 오른쪽 문설주에 매달려 있는 문갑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으로 이 집의 주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토라(유대 성경)의 구절을 양피지에 옮겨적은 두루마리를 문설주의 문갑에 담아 걸어두고는 외출을 하거나 귀가를 할 때마다 그 문갑을 어루만지거나 입을 맞추는, 먼 조상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 있다.(영화 벤허를 보면 주인공 유다가 집을 드나들 때마다 의식처럼 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문갑을 메주사(Mezuzah)라고 하는데, 메주사가 걸려 있으면 그 집은 유대인의 집이 맞다. 메주사는 유대인의 신앙과 정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주 먼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떠나오는 과정에서 모세와 람세스의 대결 중에 벌어졌던 장자들에게 내려진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의 집 문설주에는 양의 피를 발라 그 재앙이 비켜 지나갔던 바로 그 사건을 유대인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하여 메주사 풍습과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바나바의 행동을 보면........ 이 집은 틀림없는 유대인의 집이며, 더불어 이곳이 바나바의 집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메주사는 그 집의 가족만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애초에 ‘마가의 다락방’은 사도 바나바의 집이었단 말인가?

문고리 손잡이를 흔들어 문을 두드렸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에야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정이 있어서 손님을 받을 수 없으니 사나흘 뒤에 다시 찾아주시지요? 성함과 찾아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기록해서 주인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시먼스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반갑습니다. 시먼스가 먼저 나오다니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요. 누님은 어디 계십니까?’

‘바나바님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삐걱 소리와 함께 사람이 겨우 드나드는 쪽문이 열렸다. 수염이 덥수룩한 나이 많아 보이는 노인이 서둘러 나와서 바나바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바나바가 다가가 노인의 손을 부여잡았다.

시먼스는 청년시절 어떤 이유로 이 집에 들어와 살게되었다. 글을 알고 있었고, 성실함에다 근면정신을 갖춘 시먼스는 곧 이 집안의 수석 집사가 되었으며 그후로 평생을 봉직하였다. 나이가 들어 체력저하가 눈에 띄자 주인 마리아는 시먼스와 그의 가족을 사타프(Sataf)에 있는 가족농장의 책임자로 이주시켜 남은 여생을 전원속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그러다가 부득이한 집안의 일이 발생하면 간혹 시먼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일을 해결하고 다시 내려가곤 해왔다.

‘다시 만나 무척 반갑습니다. 시먼스, 여전히 정정하시지요? 가족들도 모두 잘 지내시죠?’

‘그럼요. 덕분에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그제 올라왔습니다. 제가 안디옥에 체류한 것을 아시고 계셨군요. 그것보다 저는 오히려 시먼스가 지금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나단은 어디 있습니까? 왜 나단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지요? 누님은 지금 어디 계시고요? 왜 나와 보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나단은 지금 마님을 모시고 갸이샤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출발을하셨습니다. 하여 나단이 돌아올 때까지 제가 대신 집안일을 맡아보게 되었습니다.’

‘누님께서 직접 가이샤라로 내려가셨단 말씀입니까? 조카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오래전부터 도련님께서 많은 고민을 서신을 통해 전달해 오셨나 봅니다. 자주 떠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지난달에 올라오셔서 바나바님이 계신 안디옥을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던 차에 사도 회의 베드로님으로부터 여행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들으셨답니다. 그래서 마님께 여행 준비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셨는데, 갑자기 출발이 다급해 졌다는 연락을 받으시고는......... 안디옥으로 며칠 전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더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단을 데리고 직접 가이샤라로 떠나셨습니다. 제가 기별을 받고 밤을 새워 올라오자마자 곧바로 출발을 하셨는지라 저도 세세한 정황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안디옥에 보내신 인편은 아마도 저와 중도에서 서로 길이 어긋났나 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길로 서둘러 뒤쫓아 가면 중도에서 누님을 따라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오셔서 문 앞에서 이대로 다시 떠나신다는 말씀입니까? 잠시 들어가셔서 쉬셨다가 무더위는 피하셔서 해거름에 출발하셔도 무난하실 것입니다. 마님 일행의 여정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들어가시면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이샤라 가는 길이야 모르겠습니까? 다만 이틀은 어디에선가 묵으실 것인데, 그러다가 지나칠까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밤길을 새워서라도 달려갈 것입니다.’

‘꼭 서두르셔야 할만큼 중대한 사정이 있는가 보입니다. 몸종인 셀레나가 곁에서 마님을 모시며 따라갔는데, 셀레나의 오빠인 가레이가 그동안 도련님께 여러번 다녀왔었기에 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엔 혹시나 해서 가레이를 집에 남겨두고 떠나셨으니 지금에라도 가레이로 하여금 바나바님의 길 안내를 하라고 불러드릴까요?’

‘가레이라면 저도 잘 알지요. 제가 가이샤 길은 익숙하게 잘 알고 있고, 혹시나 집에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누님의 여정만 일러주시면 이대로 쫓아가겠습니다.’

‘마님께서는 산길을 택해서라도 가장 빠르게 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여 거듭 무리라고 말씀드렸음에도, 로드(Lod)에서 하루 유숙하시지 않으시고 산골짜기를 넘어 오늘 중에 욥바(지금의 야파)까지 당도하시고자 하십니다. 욥바에 들어서는 언덕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소금 상인 길라드의 집이 있습니다. 그곳 사람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마님께서는 오늘 그곳에서 잠시 머무실 것입니다. 이제라도 제가 바나바님을 그리로 모실 수 있습니다.’ 젊은 청년이 시먼스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가레이가 그새 어른이 다 되었구나. 네가 지난 2년 동안 가이샤를 오가느라 무척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고가 많구나. 네가 그토록 소상하게 알려주니 별 탈 없이 쫓아가 만날 수 있음이야. 혹시 모르니 너는 집에서 여기 시먼스를 돕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네가 뒤쫓아 오려무나. 그래 욥바의 갈림길에서는 어디로 가실 예정이시더냐?’

‘역시나 빠른길을 택하셔서 해변의 길을 가실것입니다.’

‘짐이 있고 일행이 있는데 안티파트리스(아벡)을 거치지 않으시고?’

‘마님께서 해변의 길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안티파트리스의 로마도로는 포장되고 꾸준히 관리가 잘 되어서 편하기는 하지만 한참을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도 아시고 계십니다.’

‘해변의 길을 택하셨다면, 내일은 아폴로니아(Apollonia-Arsuf)에 머무시고 모레 일찍 가이샤라로 향하신단 말이냐?’

‘아닙니다. 내일중에 가이샤라에 도착하실 생각이십니다.’

‘사흘 길을 이틀에 가시겠단 생각이시구나. 누님이라면 그러실 법도 하지. 그럼 내가 서둘러야만 한다는 말이구나.’

바나바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시먼스와 가레이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언덕을 내려와 예루살렘 성벽을 감싸고 돌아 로드로 향했다.

예루살렘 성에서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욥바가 나오고 가이샤라가 나오고 멀리는 안디옥이 나온다. 하여 그 방향에 난 문을 욥바의 문이라 불렀다.

바나바가 욥바의 문을 지나 방향을 틀었을 때, 유목민 복장을 한 키가 유독 큰 흑인 사내 하나가 급작스레 따라오더니 길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였다.

‘저는 다미아노스라고 합니다. 저의 주인이신 니고데모님께서 바나바님을 조용히 뵙기를 청하십니다.’

얼핏 펄럭이는 흑인사내의 허리춤에서 짧은 단도가 슬쩍 드러나 보였다. 불량배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열심당원(zelotes) 이라는 말인가? 유다가 죽은 이후에 열심당원 이라면 시몬(소야고보의 형제) 밖에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런데 방금 이 사내는 니고데모라 하지 않았던가? 니고데모라면 자신이 익히 어느 정도 알고 지냈던 산헤드린의 제사장이자 장로였다. 그리스도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지각이 있는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바나바가 서너 번 만났던 니고데모는 삼 년 전에 죽었다. 산헤드린의 제사장인 처지로 유대인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나는 니고데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없소. 내가 기억하는 니고데모는 삼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단 말이요. 그러니 아마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소.’

하지만 상대는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시면 구브로(Cyprus)의 요셉이 아니시라는 말씀이십니까?’

순간 바나바는 속으로 혀를 차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생면부지 초면의 이 낯선 사내는 자신의 출신과 본명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세상 모두가 자신을 바나바라고 부르고 있지만, 본명이 요셉이라는 사실까지 아는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안디옥에 계시던 중에 예루살렘 주교이신 야고보님의 전갈을 받으시고 그제 저녁에 예루살렘에 당도하셨습니다. 어제 종일 동안 사도들과 함께 계셨고, 오늘 베드로 사도를 만나러 시나고그(유대교 성당)에 들리셨습니다. 마리아님의 집에 들리셨다가 지금 가이샤라로 내려가시는 그 바나바님이 아니시란 말씀입니까? 그럼 정말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 사내는 지난 며칠동안의 바나바가 걸어온 일정까지 샅샅이 꿰고 있지 않은가? 24시간 동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보듯이 지켜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숨에 저렇게 술술 풀어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누구요? 왜 내 일거수일투족을 그렇듯 감시한단 말이요? 혹 야고보 사도요?’

‘저는 야고보 사도님의 명령을 받거나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되묻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아는 니고데모는 오래전에 분명히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소? 괜히 남의 이름을 팔지 말고 어서 본색을 밝히시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분명 니고데모님께서 바나바님을 청하셨습니다.’

‘나는 니고데모를 모른다니까? 다른 니고데모가 또 있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저를 보내신 분은 니고데모 벤 구리온(Naqdīmōn ben-Gūriōn) 이십니다. 산헤드린 제사장이셨던 니고데모님의 조카이십니다.’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니고데모 제사장으로부터 내 또래의 성격까지 비슷한 조카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남달리 총명하고 용맹함을 숭상하는 조카가 은연중에 젤롯당(Zealot. 열심당)과 자주 어울리는 것을 알게되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바나바 자신은.......... 열심당의 감시를 받아 왔고, 이 순간 열심당에 소환을 받았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왜?

하필 이 순간에 말이다.

도대체 왜?

 

‘그렇다면 벤 구리온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지금 가시고자 하시는 가이샤라로 나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왜 나를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요?’

‘그점에 대해서는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저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럼 언제부터 나를 감시해 왔소?’

‘저는 감시한 적이 없습니다.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렸을 뿐입니다.’

‘젤롯당(Zealot. 열심당) 이시요?’

‘궁금하시면 벤 구리온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대답을 듣기 전엔 내가 못따라 가겠다고 한다면 어쩌시겠소?’

잠시 머뭇거리던 사내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 이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애초 바울 사도의 로마 호송에 따라가시라는 사도 회의의 결정을 통보받으셨지요? 어차피 바뀔 결정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경을 칠 정도로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처음 보는 낯선 젊은 사내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깊은 내막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벤 구리온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뜬금없이 웬 젤롯당의 등장이란 말인가?

야고보 주교와 사도 회의 말고는 자신과 장로 서너 명만 알고 있는, 그토록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던 일이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비밀이 너무나 컸기에 자신이 한동안 그토록 괴로워 했었거늘..........

주여!!!!

오 주여!!!!!

어찌하오리까.

 

 

 

예루살렘 성 (시온의 문)
예루살렘 성 밖의 시온산 중턱에 있었던 '마가의 다락방((Dormition Abbey - Hagia Maria)'
유대인들의 집 문설주엔 항상 메주사(Mezuzah)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고, 오순절 잔치에는 이곳에 120명이 모였다.
젤롯당(열심당)은 유대 민족주의자들로 무장투쟁을 통한 로마제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였다.(사도 중에서 유다와 시몬이 젤롯당원이었다)
한밤중에 예수를 찾아온 산헤드린의 제사장 니고데모는 아직도 좀 더 살펴보아야 할 인물이다. 그는 결국 유대인의 배신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험준한 산악지형과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가이샤라로 가는 지름 길은 멀고도 험한 고난의 길이었다.
마침내 헤롯이 로마를 위해 건설한 항구도시 가이샤라가 모습을 타나냈다.

 

 

사도 바울은 마가가 가이샤라의 감옥을 나서는 대로 저잣거리 장터를 돌아다니며 루가를 찾아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로마까지 이송 일정이나 마중 나올 사람이나 여타의 준비상황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본 뒤에, 지금 몹시 궁금해하고 있을 예루살렘(사도회의와 산헤드린)에서 보낸 사람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달할 것으로 짐작했었다. 하지만 그동안엔 그랬는지 몰라도, 적어도 이번만은 아니었다.

로마가 파견한 유대 총독 펠릭스(Felix)가 상주하는 헤롯 궁전을 올려다보면서 마가는 지금 카르도가 끝나는 지점의 광장 모퉁이에 앉아서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헤롯왕이 건설하여 로마황제 시저의 이름으로 헌정한 가이샤라는 유대 지역의 행정 수도이자 상업과 해운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이곳에 관리를 파견하였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상대로 또는 로마가 설치한 운송망을 통하여 상업. 해운업. 무역 활동을 활발하게 벌였으며, 그에 따라 행정가와 법률가와 큰 규모의 상인들이 많이 가이샤라에 상주하게 되었다. 당연히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 또한 빈번하게 왕래했으며, 그중 헬라인들의 거주가 유독 눈에 자주 뜨일 정도였다.

로마 방식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가이샤라에 도착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성문을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언제나처럼 육중한 돌기둥이 길게 늘어서 숲을 이루고 있는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에 낯선 이방인이나 나그네들은 곧잘 주눅이 들고 만다. 지구상 어디를 가든 로마가 세운 도시에는 항상 이런 풍경이 펼쳐 진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높이가 족히 8미터에서 10미터는 족히 되고도 남는 돌기둥이 길 양편으로 길게 군대가 도열 해 있듯이 늘어서 있다. 그런 도로의 길이가 족히 1km는 펼쳐진다. 그렇게 해서 도심의 중심에 닿게 되는 것이다. 대도시라면 열주의 숲은 더 길어지고, 간혹 중간에 도심의 구역이나 경계를 위한 또 하나의 성문이 설치되기도 한다.

로마의 군대가 지나가면서 개척하고 건설한 도시에는 어디든 항상 이런방식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과정이야 어찌되건 말건 종결은 무조건 로마였다.

로마는 세계를 점령하면서 인체의 신경세포처럼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도로망을 건설했다. 그 길로 로마의 군대가 진군을 했고, 반대편에서 승전보와 함께 노획한 물자와 식량과 노예가 들어왔다. 그런 시스템에 의해 로마는 마침내 완성되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이집트를 점령한 제국의 군대가 로마의 원로원으로 승전보를 보낸다고 치자.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가는 도중에 놓여있는 도시의 숫자가 몇 개나 될지를 말이다. 그 여정에 놓여있는 수십 수백 개의 도시가 모두 가이샤라와 같은 형태의 도시로 건설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성채로 둘러 쌓여있고, 중심에 수천에서 수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모든 도시에 통치자의 집무실과 군대 주둔지와 원형극장과 로마 신전과 남북으로 돌기둥이 길게 늘어선 중심도로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가 설치되었으며, 도시의 규모가 크면 대전차 경기장까지 갖추어졌다고 말이다. 모든 도로는 돌을 깐 포장도로였다. 더하여 필요하면 언제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수원지에서 수로를 건설하여 물을 끌어 왔다. 도대체 돌(石)하고 무슨 원한이 있는지.......

이것을 슬쩍 현대로 바꾸어 본다면....... 이집트 카이로를 나와서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를 지나면 두바이가 나오고, 다음으로 홍콩을 지나 부산과 리오데자네이로를 경유하여 도쿄와 베이징을 지나면 런던과 파리가 나오고, 이어서 프랑크 푸르트와 비엔나와 베네치아를 지나면 바르셀로나가 나오고, 다시 뉴욕과 서울을 지나서 비로소 로마에 도착하는 폭쯤이 되지 않았을까? 로마는 곧 세계였다.

예루살렘에서 광야를 지나고 척박한 산악지대를 통과하여 해안 길을 따라 돌다 보면 펠릭스 유대 총독의 집무실이 있는 갸이샤라에 도착하게 된다. 남쪽 성문을 통과하면 성문 앞 광장이 나타나고, 광장의 건너편에서 동서대로인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가 시작된다. 카르도의 끝자락엔 또 광장이 있고, 가이샤라의 북쪽 성문이 있다. 카르도의 중간에 펠릭스 총독의 집무실인 총독관저(Praetorium)가 있고, 옆으로 로마 극장(Theatre)과 1만 명을 수용하는 원형경기장(Amphitheatre)이 있다. 원형경기장 너머의 해안에 거대한 등대가 우뚝 솟아있고, 수많은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선착장의 중간에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로마 신전이 세워져 있다. 도시의 남쪽 지역은 궁전 지역으로 총독을 비롯한 로마의 관리들이 주로 살았고, 북서쪽 해변의 거주 지역에는 부자 유대인이나 성직자들이 주로 거주했다.

헤롯이 가이샤라를 건설하면서 사전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으나 선착장 중심에 로마 신전을 지었으면서 조금 안쪽의 광장 어귀에 유대교 회당이 시나고그를 세움으로써, 유일신을 믿음으로 매우 엄격한 유대인들과 이방의 제물을 로마 신전에 바치고자 하는 이교도들 사이에 다툼이 자주 일어나 군대까지 동원되곤 했다. 로마라는 강력한 배후를 등지고 유대인이 아닌 처지로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세속의 권력자 헤롯이고 보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저질러진 결과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잦은 분쟁과 소요를 통해 자 무서운 권력을 휘두름으로 로마에 자신의 존재감을 거듭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 마가는 시나고그 건너편 카르도의 육중한 돌기둥 아래 계단에 가만히 앉아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깊은 수심에 잠긴지가 어느덧 한 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 두 마리가 카르도를 지나 도심 주거지로 들어가느라 실려 있던 갈대 줄기가 마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얼핏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건너편 시나고그(유대 회당)에서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마가는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길들어진 하나의 습관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2년 동안 그는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여기나 아니면 마을 안쪽의 하숙집 식당에서 누군가를 만나왔었다. 스승이신 베드로 사도가 보낸 사람이거나, 가끔은 예루살렘 시나고그에서 보았던 장로가 여기 가이샤라까지 먼 길을 찾아와 조용히 만나곤 했었다. 내용은 주로 바울 사도의 건강과 주변 상황과 총독부에서 내려지는 명령 같은 것이었다.

오늘은 약속이 있는 날도 아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상념에 갇혀 터벅터벅 걷다 보니, 또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이곳까지 오게 되지 않았던가 말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시선을 들어 유대사람들이 몰려나왔던 시나고그의 종탑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유대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그 종탑 꼭대기 가장 높은 곳에 올려져 있다.

‘저에게 내리신 책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사양하고 싶습니다. 싫어서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도 아닙니다. 무엇이 당신의 뜻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라 하시니 사도를 따라 로마로 갈 것입니다. 부디 저에게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혜안을 허락해 주십시오.’

뜨거운 눈물이 마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 마리아가 생각이나자 자신도 모르게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에 로마로 떠나면 언제나 돌아오게 될지, 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럴 때 혹 루가가 옆에 있을까 몰라 뒤를 돌아다 본다. 연배가 조금 아래이긴 하지만 가끔 불같은 성질을 가진 마가 자신에 비하면 루가는 늘 우직하면서도 매서울 정도로 끈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작을 일 하나로도 감정이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쉽게 반복하는 자신보다는, 언제나 무덤덤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루가를 조금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거기에는 루가가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출신의 의사라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루가라면 눈물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들다보니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 온다. 바울 사도가 제자인 루가와 소통하는 방법과 베드로 사도가 제자인 자신과 소통하는 것에서 알게 모르게 어떤 차이가 분명히 있음을 가슴으로 느껴왔던 때문이다. 자신에게 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바나바 외삼촌의 경우라면......... 두 사도의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외삼촌도 속마음으로는 바울 사도를 존경한다면서, 교리적 논쟁이나 다툼에서는 늘 베드로 사도 쪽으로 기울어 보이지 않았던가 말이다. 하여 바울 사도에 대한 의문을 바나바 외삼촌에게 묻지 못했고, 베드로 스승에 대한 의문을 쉽게 외삼촌에게 물어보지도 못한 채로 지내와야만 했다. 그런 면에서 루가는 참 복을 타고났다고 마가는 생각했다. 두 사람은 늘 머리를 맞대고, 또는 어디에든 무엇이든 글자로 끄적거리면서 소곤소곤 대화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물론 마가가 바울 사도에게 무엇을 묻고 이야기를 전하면 정색을 하고 끝까지 차근차근 들어주고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을 해 주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루가만큼은 아닌 것 같고, 또 거기에는 스승인 베드로 사도에대한 생각이 저변에 먼저 깔려있게 되다 보니 대화의 깊이가 다소 겉도는 느낌 또한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무 때고 기회가 된다면 루가를 스승인 베드로 사도에게 붙여서 두 사람이 어떻게 대화하는지를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루가가 지금 자신의 주변에는 없다.

다음 기둥으로 돌아가 반대편으로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시나고그 높은 종탑에 올려져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다윗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

그날, 산헤드린의 공회원은 공개석상에서 분명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날 마가는 그 법정에서 산헤드린의 판관인 제사장들 무리 속에서 익히 알고 있던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이미 선한 사람이 갈릴리에서 나오셨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헤드린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왜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의 삶에 있어서 산헤드린의 역할이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산헤드린(sanhedrin)에 대해서 마가는 누구보다 분명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레위(Lēwī) 지파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버지가 레위였고 어머니도 레위였으며 바나바 외삼촌 또한 레위 지파 사람인 것이다.

유대인의 12지파 중에서도 레위 지파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 가문에서 태어난 마가였는지라 그는 누구보다도 산헤드린에 대해서 소상하게 잘 알고 있었다.

레위(Levī)는 야곱과 레아 사이에 태어난 셋째 아들이다. 레위 지파는 그의 후손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전을 관리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선택을 받았다. 모세가 이끈 애굽 탈출 사건 이후로 광야에서의 40년 동안 성궤를 운송하고 주둔지에 장막을 설치하여 안치시키고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가나안을 정복하고 유대왕국이 건설되고 성전을 건축하자, 그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하고 종교적 업무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 임무가 바로 레위 지파에 운명처럼 주어졌다.

첫 대제사장이 레위에서 나왔고, 제사장들이 레위인들로 채워졌다. 아울러 성전의 관리와 호위 임무까지 모두 레위인들이 맡게 되었다. 가나안을 차지한 이후로 모든 영토를 열 두 개 지파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으나, 레위 지파에겐 어떤 영토도 지급되지 않았다. 영토가 배분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경제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어 먹고 살길이 막혀버렸다는 뜻이다.

하여, 열 한 개 지파가 공동으로 성금을 모아 레위 지파가 오로지 성전관리와 종교적 업무만을 대신할 수 있게 하였던 전통이 훗날 11조 헌금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레위 지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고 유대교 성전과 종교적 모든 일을 레위 지파가 담당했다. 제사장이 되지 못한 나머지 레위인들은 예배하는 동안 시편을 노래하였고, 다른 지방에 새로운 성전을 계속 건설해 나갔고, 유지 보수 관리는 물론 경비를 서고 호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거기에 더하여 각처에 흩어져 토라(유대교 성경)를 설파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유다 왕국이 분열의 시대로 넘어가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되는데, 북이스라엘 왕국이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뽑기 시작하자 레위 지파는 남유다 왕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또 시간이 흘러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 왕국으로 통일되자, 이번엔 이곳에서도 레위 지파가 아닌 부족 중에서 제사장을 맡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제사장 회의에서 결정되던 일을 산헤드린이 맡아서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레위지파는 소수의 제사장을 배출하고 나머지 레위인들은 사방에 흩어져 성전과 시나고그를 관리하고 제사장들을 호위하고 성금을 관리하고 토라를 전파하는 업무를 주로 맡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산헤드린(sanhedrin)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모여 앉는다’는 의미를 가진 산헤드린은 71명의 판관들이 모여 토론하고 결론을 내는 모임 자리인 것이다. 그때그때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23명에서 72명까지의 판관이 모이게 되는데, 항상 홀수로 구성되는 것은 의견이 같은 수로 나뉘게될 경우에 대제사장이 판결을 결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왕정이 사라진 유대왕국에서 산헤드린은 그야말로 최고의 절대적인 지배 계급이 되었다.

그들은 입법기관이자 사법기관이며, 대법원의 역할까지 도맡았으며, 그 위에 유대인들의 종교적 판단과 결정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초월적인 기관이라고 해야겠다.

모든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모든 일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세속에서의 생활 전반까지. 모든 면에 있어서 언제든 산헤드린의 개입과 판결과 처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산헤드린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기관이었고, 대제사장의 권한은 신정합일 왕국의 왕을 능가했을 정도였다. 다윗왕이나 솔로몬왕의 다른 이름이 곧 산헤드린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산헤드린의 절대다수 지분이 바리새파에서 나왔고 다음으로 사두개파에서 채웠다. 이들이 곧 유대왕국(이스라엘)의 최고 부자이면서 최고 권력자들이었고 귀족이었다. 참으로 묘하게 유대왕국의 부와 권력은 항상 성전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그들의 운영의 묘가 남달리 뛰어났음인지, 아니면 절대자께서 방심하셨거나 혹시나 그 분의 무능하심의 결과가 아니었는지 필자는 그저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들이 행해 온 어떤것도 그다지 성스럽다거나, 거룩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거나,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교훈이 될만한 짓꺼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운 돈과 권력 쟁탈과 향유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거룩하신 그분께서는 한때, 혼탁한 세상 전부를 쓸어버리고 새롭게 재창조를 하시겠다고 노아의 홍수를 보내셨던 분이셨다. 칼을 뽑으시면 반듯이 끝장을 보는 그런 분이시다.

이번에도 그러고자 하셨음일까?

새로운 노아의 홍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마제국이 유대왕국을 홀라당 점령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멸망해버렸다.

그런데 세상을 점령한 로마제국에게도 유대왕국은 정말로 골칫덩이였던 것이다.

태양신 미트라를 주신으로 믿는 로마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그대로 허용했다. 제국의 심장인 로마의 한복판에 판테온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다. 대신 로마제국에 종교적 이유로 반감을 가지거나 저항하지만 말라고 했던 것이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도 판테온의 한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거절했다. 유대인들이 가진 종교관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사상이었으며, 그들은 아주 특별한 선민사상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뿐인 거룩한 하나님은 그런 잡신(?)들이 바글대는 저잣거리에 아무렇게나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고 곧 심판의 날에 내려오셔서 유대민족만을 구원해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이다.’라고 끝까지 버틴 것이다.

유대 땅을 정복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강제 노역을 시킬 수는 있으나, 되돌아서기만 하면 ‘주여, 곧 오실 주여. 주여.’를 외치는 유대인들의 영혼과 정신세계까지 도려내거나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로마는 깨달았다.

하여, ‘로마에 대한 저항이나 반란이 아니라면 유대 전통과 종교적 자유를 포함하는 자치권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유대인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수정했다.

그 방편으로 예루살렘 정복 이전처럼 유대인들의 자치권 행사를 산헤드린을 통해 계속하도록 했다. 다만, 산헤드린의 최고 수장인 대제사장을 로마가 직접 임명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산헤드린의 기조와 운영을 로마가 믿고 허락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골라 대제사장 자리에 앉히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살짝 산헤드린을 어용으로 만들어 간접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훗날....... 300년 가까이 시간이 훌쩍 뛰어넘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로마 가톨릭이 탄생하고,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지만 로마 가톨릭은 수도 이전에 불참하고, 새로운 수도에서 그리스 정교회가 주도권을 쥐는 상황에서 이처럼...... 로마가 산헤드린을 슬쩍 어용으로 만들고 싶었던 정책이 슬그머니 다시 재현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 시기의 산헤드린을 다스리고자 했던 교훈의 결과였으리라. 그 점에 대해서는 훗날 기회를 보아 다시 재론하기로 하고........

로마는 유대 왕국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산헤드린을 허용해 주었는데, 대제사장의 임명권 정도로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래서 절대왕정을 슬쩍 복귀시키면서 헤롯 일가를 유대 왕으로 임명을 하여 어용정부를 탄생시켰고, 바지사장을 통해 간접통치는 물론 산헤드린을 감독하도록 하였는데........ 헤롯 일가가 누구였느냐?

먼 조상의 핏줄은 분명히 유대인이었으나, 정통이 아니라고 유대인들에게 쫓겨나 비루하게 삶을 연명해 오던 무늬뿐인 유대인이었다. 유대 풍습이나 전통을 전혀 따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으로 천시와 배척을 당해오던 최하층의 불량배 집단이었던 것이다.

헤롯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러니까 분명 유대인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바로 다음 단계에서 야곱의 계열이 아닌, 이스마엘과 에서의 계열로 갈라진 다음에 그 갈래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다음에 벌어졌던 헤롯일가의 설음과 고난은 쉽게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했고, 누군가를 시켜서 예루살렘을 감시하고 꼼짝 못 하게 통치를 해야겠다고 고심하던 차에 레이더망에 기득권적 유대인에 대한 상처가 몹시 큰 헤롯 일가가 포착된 것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헤롯을 유대 왕에 임명했다.

예루살렘의 실질적 통치는 산헤드린이 담당하도록 허용했지만, 수장인 대제사장만은 로마가 직접 임명한 사람이고, 대제사장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헤롯과 상의를 할 것이고, 헤롯은 예루살렘이 로마를 안심케 하기만 하면 왕 자리가 계속 보장되니 목숨 걸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감시 탄압할 것이며, 사사건건을 가이샤랴의 유대총독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을 것이니, 로마 입장에서 더 이상 유대 땅은 불완전하고 쓸모가 없어 포기해야 할 불손한 땅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의 손에 의해서 반(反)로마 투쟁의 싹은 모조리 잘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적(원수)으로 생각하는 이교도 헤롯 일가의 손을 빌려서 예루살렘을 조용하게 잠재운다는 거시적인 전략이었다.

그런 로마의 전략대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소소한 분쟁과 다툼이 연일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서서히 전락해 갔다. 로마 입장에서는 소요 사태를 꾸준히 관망해 나가면서 열광하는 군중들의 우두머리로 등장하는 사람을 찾아내서 헤롯에게 언질을 주고, 헤롯이 산헤드린에 압박을 가하고, 그러고 나면 산헤드린이 나서서 그 주동자를 찾아내 스스로 알아서 깔끔하게 처리하게끔 정착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했던 사건이었다.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 성전 출입이 썩 자유로웠던 마가(Mark)는 이렇게 변질되어 가는 산헤드린의 파행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지척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일하랴 정리해 올리랴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