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이 목전에 닥치면 수많은 여행자들이 황매산을 찾는다.
등산 애호가들 끼리만 감춰두고 누리던 황매산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SNS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정상부근에 목장터였던 황매평전까지 차량을 이용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백산과 지리산 바래봉으로 한정되었던 오월이면 펼쳐지는 철쭉의 향연을 이제는 누구나가 쉽게 황매산을 찾아서 철쭉 군락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광경을 누구나 맘껏 누리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산봉우리에 하늘과 맞닿을 듯 신비롭게 펼쳐진 평원 가득 해마다 오월이면 짙은 분홍빛 꽃물결이 일렁이는 바람결을 타고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또 밀려간다. 누가 이곳을 황량한 들판이라고 말했던가? 지금 이곳은 군락을 이루며 서식하고 있는 이름 모를 초목들과 보랏빛 철쭉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부는 바람에 꽃물결이 넘실대는 산상화원이요, 무릉도원의 모습인 것이다.
가히 절경이라 할 만 하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한다고 하니, 이곳을 찾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귀해질 것이며, 그들 모두의 삶이 소망하는 대로 풍요로워 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산자락에 흩어져 서있고, 전망대 테크에 길게 늘어서 있다. 요즘 시대의 흐름인지 하늘에 드론이 여러 대 날아다니는 모습과 소리가 들린다. 한 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요즘은 사진 명소마다 드론들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고 소음을 내다보니 이날 황매산 정상에서도 새벽부터 약간의 분쟁이 생겼을 정도였다. 드론이 대세이고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라 해도, 보편타당한 선에서 일반 대중들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는 없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드론 공해의 시대가 도래한 듯 보인다.
국내건 국외건 여행을 다니면서 ‘일출과 일몰에 목숨걸지 말자’고 수도 없이 다짐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이번 여행이야 오로지 손녀들과 함께 지내고픈 확실한 목적을 가진 여행이라 애초부터 일출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평소처럼 새벽에 눈을 떴는데 손녀들은 곤히 자고 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럴 땐 일어나 새벽 커피를 마시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할머니는 손녀들 이불을 추슬러 덮어주며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고 가리킨다. 괜히 애들 건드려 잠을 깨우지 말라는 경고다. 소리를 죽이며 이리저리 돌아눕는 것이 정말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 깨기까지는 지켜보아야만 하니 나보고 슬며시 산책이나 다녀오라고 한다. 그래서 얼떨결에 새벽 일출을 보겠다고 황매평전을 지나 산 능선까지 막 올라왔던 것이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여명 아래 멀리 태백산맥 줄기 끝자락에 해당하는 합천지방의 구릉과 평야 가득 내려앉은 연무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만으로도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연무가 많이 피어오른 날이라 선명한 일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쪽 지리산 자락 위로 노을처럼 붉은 띠가 온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더니 한참이 지나 구 붉은 구름 덩어리 사이로 노란 점이 점점 커져 가더니 삽시간에 눈이 부시도록 찬연한 광채를 온 하늘 가득 뿜어내는 것이 아닌가?
일출이다. 그것도 정말 제대로 된 일출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기억도 없는 마당에....... 일출에 목숨걸지 않기로 다짐하며 사는 나에게 저런 일출이.....
‘아내와 함께 올라왔어야 했는데........ 이건 정말로 함께 보았어야 했는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철쭉 축제나 구름과 안개가 가득한 가을 억새축제도 꽤나 인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병아리들을 모시고 있는 지금이야 쾌청한 날씨에 더없이 감사하고 있지만 말이다.
황매평전의 북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던 나의 시선이 머문곳이 바로 모산재였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뿜어내는 장관이 일품인 곳이 바로 모산재다. 철새군락이 끝나는가 싶으면 무지개터와 순결바위와 국사당(國祠堂)이 모두 그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마음속에선 뛰어서라도 아주 잠깐 모산재까지만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 만 오늘은 여기서 참아야만 했다. 오늘은 자유 여행자가 아니라 병아리들을 모시는 머슴이 내 직분이니까.
이 일대를 영암산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딘지 모르게 모산재 일대가 어떤 신령스러운 지역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경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왜 황매산엔 신라의 화랑도 이야기’가 빠져있지? 아무리 따져보아도 이렇게 신령스러운 산봉우리에 이만한 경관을 갖춘 곳이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화랑들이 신성하고 산세게좋은 심산유곡을 찾아다니며 심신 수련을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과거에는 여기 황매평전이 잡목으로 빼곡한 보통의 평범한 산자락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라면 가히 (신라 화랑 사관학교 훈련장)으로 이만한 곳이 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모산재 정상의 득도바위에서 통일신라 말기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수련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당에 유학하고 돌아 온 최치원은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되살리려고 부단히 애를 썻지만, 결국 신라의 골품제라는 신분제도의 벽에 걸려 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산야에 은거하며 살았는데, 말년에 지낸곳이 바로 여기 인근의 해인사였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황매산의 무학굴에는 조선 건국의 공신인 무학대사에 대한 전설까지 전해 온다.
무학대사가 본래 여기 합천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승려가 되어 황매산의 한 동굴에 칩거하며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아무리 승려가 수도에 정진한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하여 누군가는 최소한의 공양 수발을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무학대사의 그 공양 수발을 그의 어머니가 도맡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이 험준한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아들의 수발을 들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산길을 오르던 어머니가 수풀속에 숨었던 뱀에 놀라 넘어지면서 칡넝쿨에 걸려 땅가시에 발을 긁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무학대사는 그런 어머니를 걱정하며 100일 기도를 더 열심히 드렸다고 한다. 그 덕분이었는지, 그후로 황매산에는 뱀. 칡덩굴. 가시덤불이 없는 ‘삼무의 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또 전해진다. 아울러 황매산의 철쭉이 유독 더 붉게 보이는 이유 또한 어미가 자식에게 가졌던 무한한 사랑과 아들이 어머님에게 가졌던 지극한 효심과 부처님의 자비가 더해져서 만들어내는 붉은빛 자연의 축복이라고 한다.
아래의 1.2 철쭉 군락지를 지나 한참을 오르면 3 철쭉 군락지 옆으로 황매산성이 있다. ‘미스터 선샤인’ ‘태왕사신기’ ‘태극기 휘날리려’ ‘달이 뜨는 강’의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풍광이 대단히 뛰어난 명소다. 아마도 그렇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서 수소문 끝에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들었다. 속된 표현으로...... 황매산은 처음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산이다. 가을이 기다려 진다.
캠핑장의 아침은 한나절이 가까울때까지 비교적 적막하고 한산하다.
지난밤 늦게까지 화롯대에 불을 피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던 모처럼 만의 회포를 푼 여파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에 캠핑장을 서성이거나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한 캠프의 가장들이거나 아침잠이 낯선 노년들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캠핑장의 아침 풍경은 얼추 그런 모습들이다.
캠프의 가장들은 지난밤의 결과인 쓰레기를 정리하거나 설것이를 주로 한다. 아침이 쌀쌀한 계절엔 모닥불을 피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캠핑장들이 오전 11시 철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늦잠을 즐기는 사람들의 경우 눈을 뜨자마자 느긋한 아침식사는 포기하고 서둘러 사이트를 걷기가 일쑤다. 그러다보니 일직 일어난 가장들이 먼저 설것이를 하거나 화롯대 재를 치우거나 아침에 곡 필요치 않은 타프를 걷거나 하는 등의 철수를 위한 사전 예비작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이 (황매산 오토캠핑장)이라면 그런 걱정은 탈탈 털어내 버려도 좋겠다.
황매산 오토캠핑장의 경우 입장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여느 캠핑장들과 동등하다. 하지만 철수 허락 시간이 오후 1시까지다. 아주아주 널널하다고 할 수 있다. 아침을 해 먹고 캠핑장 주변을 산책하고 나서 철수 준비를 하고, 웬만큼 준비를 마치면 아예 이곳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나서 정리해 둔 짐과 장비를 차량에 싣고 나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방갈로 형태가 아니기에 이용한 캠퍼들이 얼추 주변 정리를 제대로 해준다면, 다음 사용자가 오기까지 어떤 불편이나 시간적 텀이 겨의 필요가 없는 엄연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결과하 할 수 있다. 방갈로라면 실내 청소와 이부자리 정리와 씽크대 시설등 정리가 필요하다보니 11시 철수에서 오후 2시 입실까지 3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노지나 데크 캠핑의 경우 1시간의 격차는 아주 현실적으로 탁월한 배려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전날 사이트가 비었거나, 전 사용자가 아침 일찍 철수했다면 약속된 입실 시간 규정보다 도착 즉시 입실을 허락해 준다. 캠핑을 즐기려고 서둘러 먼 길을 온 이용자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황매산 오토캠핑장은 그런 면에서 매우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된다. 특히 오후 1시까지의 철수는 아주 탁월한 시책으로 여타의 다른 캠핑장에서도 반듯이 개선되어야 할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새벽 일출을 보고 내려왔음에도 우리 텐트는 아직 고요하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캠핑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왔다. 조용조용 살며시 화롯대를 가져다 남은 장작으로 불을 지폈다. 화창한 봄날이지만 아침 새벽 공기는 아직 제법 쌀쌀한 한기를 머금고 있다. 나에게는 딱 좋은 계절이지만 우리 병아리들에게는 아직 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닥불을 피우고 버너에 가스 불을 켜서 물을 끊인다.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일출은 어땠어? 하늘을 보니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있었을 것 같네?’
챠밍여사가 조심조심 텐트 밖으로 나오면서 묻는다.
‘기가 막혔어. 당신도 보았으면 좋았을 걸. 미얀마 바간에서 정글 위로 보았던 일출 다음으로 인상적이었어.’
‘다행이네. 당신이라도 보았으니. 애들만 두고 어디를 가? 혹시나 깨면 놀랄텐데. 사진 보여 줘.’
‘응. 커피부터 마시고. 물 끓여 놓았어.’
모닥불을 앞에 두고 의자를 가져다가 나란히 앉는다. 드립 커피를 가져온다는 것이 병아리들 챙기다 보니 그만 커피를 빼놓고 왔다. 아무려면 어때? 믹스커피를 더블로 타서 언제나처럼 우리만의 성스러운 아침 의식을 치르듯이 모닝커피를 즐긴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 온 황매산의 일출을 보여준다.
‘와! 정말 황홀할 정도로 멋진 풍경이네? 그러고 보니 우린 아직 황매산 철쭉을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오늘 애들 데리고 사진속의 철쭉을 볼 수는 있는거야?’
‘아무렴. 1.2 군락지까지 가는덴 어려움이 거의 없어. 아침먹고 거기까진 올라가 봐야지. 3.4 군락지하고 정상까지 생각하고 오긴 했는데...... 우리 병아리들에겐 다소 무리이지 싶어. 단신 일출은 내년에 다시 오거나 가을에 억새 보러 다시 와서 보면 될 거야.’
‘생각했던 것 보다 와서보니 황매산 캠핑장 아주 좋네. 가을에 아주 추워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오지 뭐.’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텐트의 자크가 올라가고 큰손녀 태리가 머리를 삐쭉 내민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
밖으로 나와 의자를 가져다 화롯대 앞에 앉아서 따듯한 물을 마시다 말고 태리가 말한다.
'캠프파이어가 있는 따뜻한 캠핑이 너무 좋아요.'
'그래? 앞으로 태리와 캠핑을 많이 할 것인데, 캠핑할 때마다 항상 캠프파이어를 할 거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줄꺼야.'
'나두 캠프파이어 할꺼야.'
어느새 작은 손녀 세리까지 일어나 밖으로 나와 화롯대 앞에 의자를 가져다 자리를 잡는다. 많이 걱정을 했는데 아무 탈없이 밥잠을 설치지도 않았고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고 곤하게 잘도 잠을 자준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에 녀석들은 벌써 텐트 주변을 뛰어다니고 다시 흙장난을 시작한다. 돌과 나무로 길 안내 표시판을 만든다나 어쩌나. 우린 그저 바라만 보면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애들은 무조건 자유롭게 아주 열심히 논다. 하루에 옷을 열 번 갈아입던 넘어져서 좀 다치고 상처가 나던 말도 우리 아들과 딸(며느리)은 아이들을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둔다. 넘어지거나 위험한 것을 가지고 놀다 다치면 가르침은 알려주지만, 흙장난을 하던 물놀이를 하던 언제나 저들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는 타입이다. 적어도 그 점 만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같은 생각이다. 하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대로 하고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책임감을 고취하도록 하고 싶다.
어찌나 열심히 노는지 그새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이고 벌서 옷은 다 버렸다.
간장계란밥을 김에 싸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세리를 위해 아침을 그렇게 준비했는데, 노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아침을 먹을 생각을 안하는데 문제가 있다. 할머니가 열심히 뒤를 쫄쫄 따라다니면서 아침을 먹이느라 애쓴다. 식사 예절은 영 아닌데...... 거기까지 강조하기에는 아직 세리가 너무 어리다. 차차 나아지겠지.
아침 먹고 산에가려 준비를 시키려니 옷이 남은 게 없다. 1박 2일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어제부터 이미 흙장난 물장난 등으로 남은 마른 옷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덜 젖은 옷으로 골라 입었던 것을 다시 갈아입혀도 우리 병아리들은 전혀 불만이 없다. 그냥 순응한다. 하긴 조금만 지나면 곧 다시 젖거나 버려질 것이 뻔한데.
그래도 갈아 입었다고 할아버지 앞에서 이쁜짓들을 한다. 세리는 재롱을 부리는데, 태리는 훌러덩 벗고 알몸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달려든다. ‘벌써 말 만하게 자란 기집애가..... 그건 할머니 몫이야.’ 얼른 눈을 질끈 감고 돌아앉아 버린다. ‘저게 지금은 그래도 이삼 년만 지나면 새침데기 아가씨가 되겠지?’
거기다가 아침 먹은 설것이를 지덜이 한다고 몰려갔다가 싱크대 높이가 높아서 결국엔 화롯대 씻는 마당 수돗가에 앉아서 기어코 손녀들 여린 손으로 아침 설것이를 마친다.
‘야들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신통하지?’
할머니 손을 잡고 태리 세리가 황매산 산등성이를 향해 올라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황매산 철쭉 구경을 하기 위해서 힘차게 발걸음을 철쭉 군락지를 향해 옮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왜 이곳에 어린아이들은 우리뿐이예요?’
엉? 그러고 보니 캠핑장이나 철쭉군락지를 오르내리는 동안에 다른 어린이들을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러네? 평일에다가 다른 학교들은 너네 학교처럼 휴일이 아닌가 보지?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복잡하고 등산이라 힘들까 봐 어린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나 보지?’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랑 오니까 힘도 안들고 좋기만 한데?’
‘그러네.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랑 온 게 잘 한걸까?’
‘네. 너무 좋아요. 다음에도 또 캠핑가요. 네?’
‘그럼. 태리 세리가 캠핑가고 싶다면 할아버지는 언제든 또 가지? 그건 약속할 수 있어.’
‘네. 좋아요.’
암!!!! 할아버지 사는 낙이 너희들인데........ ㅎㅎㅎㅎㅎ
행사장 매점에 들려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사이트로 돌아온다. 넘칠 만큼 따스하고 화창한 날씨에 그래도 산자락 언덕을 오르내리기에는 좀 더웠다. 녀석들 좀 힘들기도 했으련만 씩씩하게 잘도 오른다. 동생이 힘들다고 하니까 앉아주는 언니 모습에...... 지켜보는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은 마냥 흡족할 수밖에 없다.
쉬면서 빵과 주점부리와 음료수를 마시고 나니....... 어느새 오전 열한시 반이 넘어서고 있다. 철수 준배를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할머니와 녀석들을 놀이터로 보낸다. 떠나기 전에 실컷 흙장난 물장난을 하고 오라고 보냈다.
할아버지가 아직은 기운이 펄펄한 현역이라 싸이트 구축과 철거는 아직 너끈하기 때문이다. 평상시 같으면 텐트 안쪽 살림살이와 주방살림은 챠밍여사가 알아서 정리를 도맡아 해주는데, 오늘은 병아리 돌보는 게 임무다. 익숙할 대로 익숙한 처지라 어차피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버겁고 힘들 것은 하나도 없다. 천천히 절수 준비를 해서 주변 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고 나니 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시간을 확인하고 놀이터로 가서 조금 더 함께 놀아주고 돌아와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모두 차에 올랐다.
태리 세리와 함께한 (황매산 캠핑)을 마치는 시간이다.
이 여행에 감사하고 다음 여행을 또 기약해 본다. 건강히 허락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한 우리의 여행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이번 캠핑 어땠어?’
‘좋았어. 아주 오랫동안 자꾸 생각날 것 같아. 애들이 좋아하니까 더 좋았어.’
‘어쨌거나, 이제 무사히 에미 애비에게 병아리들을 되돌려 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맞아. 엄마 아빠없이 처음 떠난 캠핑이라 애들도 그랬고 에미 애비도 걱정이 더 했을 거야. 당신이 수고했어.’
‘당신이 고생했지? 다음엔 아들 며느리 앞세워서 애들 데리고 또 어디든 가야겠지?’
‘아냐! 같이가면 안돼!!’
엥?이게 시방 무슨 이야기여?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 밖의 대답이 마눌님 입에서 즉각적으로 강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왜? 당신은 아들과 여행하는 걸 늘 바라고 있으면서?’
‘그건 그거고. 태리 세리하고 에미 애비하고 함께는 안돼. 그건 좋은 여행이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
‘헐! 아들 며느리가 우리 초청해서 함께 가자고 하면 어쩔거야?’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가야하는 거고. 내 애긴....... 우리가 생각하고 주관해서 손녀들을 데리고 어디든 가고 싶어질 때, 그땐 태리 세리만 데리고 가야 한다는 말이지. 그때는 애들이 오로지 우리 손녀들로 남아 함께 지내겠지만, 엄마 아빠랑 함께 가면 우리 차지가 절대로 안 되는거야. 매사에 모든 게 엄마 아빠 손아래 놓이는 거지. 그래서 우리끼리 손녀들을 데리고 가고 싶으면...... 딱 손녀들만 데리고 가야지만 온전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들이 되는 거야. 나도 어제 깨달았어. 그 전까지는 우리 여섯식구가 함께 여행가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또 저들끼리 혹은 우리끼리 또는 다 함께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부턴 우리 둘이 어딘가 캠핑을 떠난다면 태리 세리를 데리고 가고 싶어질 것이고, 또 그렇게 하게 된다면 엄마 아빠 빼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녀들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제대로 추억이 될 거라는 생각을 어제 하게 되었어. 엄빠 아빠가 옆에 있으면 매사를 엄마 아빠에게 의지하고 물어보고 하느라, 우리하고 있을 때만큼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어. 이렇게 아주 가끔은 엄마 아빠와 다른 시선과 관심과 보살핌으로 아이들에게 다른 시간과 정서를 만들어 주고 싶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것들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잠시거나 가끔이라도.......’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기는 했어. 다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라 여겼든 것이지. 알써. 우리 여행에 데려올 때는 무조건 우리 둘만의 손녀가 되어야 하는 거야. 그렇지? 나중에 살다가 언젠가는 당신과 아들만의 여행이나 당신과 며느리만의 여행도 한 번씩은 가능하겠지. 하지만 일단 손녀들 문제는 그런것과 전혀 다른거야?’
‘응. 확실히 다른거야.’
‘아들 며느리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
‘개뿔. 서운하기는? 어제 모처럼 둘이서 외식하고 영화 구경하고 그랬다는데....... 모처럼 이틀은 홀가분 했을거 아냐? 연애할 때처럼 개들을 위해서도 가끔은 그런 시간이 필요할 꺼구. 아들 문자왔는데...... 앞으로 자주 애들 좀 데려가 달라구 하던데?’
‘나한테두 그랬어.’
황매산이 있는 합천을 떠나서 일단 충주의 집으로 왔다. 좀 쉬면서 씻기고 나서 엄마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병아리들을 돌려보내려고 천천히 이천으로 향했다. 롯데 캐슬에 사는지라 지하주차장까지 들어가기 싫어서 롯데마트에 정차하니 곧 에미 애비가 등장한다.
이틀 여행다녀 온 꼬마들이 엄마 아빠를 만났으니 부등켜안고 뽀뽀하고 난리를 부릴 줄 알았더니 의외로 덤덤한 표정들이다. 그보다는 이제 헤어져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이별이 더 안타까운 표정이다. 덥썩 다가와 안기고 뽀뽀를 해준다. ‘에구에구. 이게 핏줄인가?’
‘어머님 아버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부탁드려요.’ 우리 여시 시며느님의 깍듯한 인사가 압권이다.
‘그래. 아빠. 앞으로 자주 좀 데리고 다녀주세요. 우리도 좋더구만.’ 거드는 아들이 얄미울 정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헤어질 때 습관처럼 아들을 떡하니 포옹해 보면 듬직한 내 아들 모습에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걸. 반듯한 아들이 있기에 나는 아무런 걱정이나 근심이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고. 아이들 손을 붙잡고 그 뒤에 서 있는 며느리를 보자니 ‘너희들 한결같이 정말 잘 어울려 보인단다. 병아리들 잘 부탁하고? 우린 간다.’
좀 쉬었다 저녁먹고 천천히 가라고 하지만........ ‘임마. 네 자식들 돌보느라 우리도 힘들어. 피곤하다고. 우리도 어서 우리 집에 가서 씻고 저녁 먹고, 한 잔 좀 거나하게 마시고 나야지만 이번 나들이가 그제야 무사히 끝났다고 안심하지 않겠니? 우리 소중한 병아리들 무사히 돌려보내 주었다? 이젠 다시 너희들 몫이요 책임이다? 잘 부탁해?’
‘윤 태리! 이번 여행 괜찮았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 정말 사랑해. 알지?’
-- (황매산 여행기)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캠핑을 기대해 주세요. 피안재.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프랑스 랑그독의 작은 베니스' 세테(SETE) 2 (4) | 2024.05.20 |
---|---|
'남프랑스 랑그독의 작은 베니스' 세테(SETE) (0) | 2024.05.15 |
내 인생 최고의 화창한 오월 어느 봄날에 부쳐...... (태리야! 황매산 갈까?) (1) | 2024.05.06 |
몽펠리에 여행 '오늘은 미술관 가는 날' (Fabre Museum) 2 (3) | 2024.04.29 |
몽펠리에 여행 '오늘은 미술관 가는 날' (Fabre Museum) (0) | 2024.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