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 누군가가 막연하게라도 (캄보디아 앙코르유적군)을 여행할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가세요.
- 어쩌면 곧 씨엠립의 모든 물가가 일본의 동경을 따라잡을지도 몰라요.
- 동남아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 어떤곳 보다도 먼저 우선 캄보디아 씨엠립을 다녀오세요. 어서요........
동남아를 넘어서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도시 씨엠립. 아니다. 어쩌면 씨엠립 마저도 (앙코르 유적군)으로 가기위해 들리게 되는 전초기지라 해도 무방할 것만 같다. 더 보태자면 특별히 나는것이나 생산하는것이 부족한 절대빈곤국 캄보디아를 오늘 이순간까지 먹여살리는 것도 (앙코르 유적군) 이라 하겠다. 수도 프놈펜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고 캄보디아의 중심을 자부하고는 있으나, 정작 생기가 넘치고 부와 명예가 돌고,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모해 가는 곳은 씨엠립이요, 그 중심에 바로 (앙코르 유적군)이 있다.
이렇게 한 국가를 먹여살리고 있을만큼 위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캄보디아요,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심성이 참으로 고운 나라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은............?
한마디로 '캄보디아는 달러($)에 환장한 나라다'라고 서슴치 않고 말해주겠다.
이같은 느낌은 비슷한 수준에서 미얀마를 여행 할 때도 똑같이 느꼈던 생각이다.
자원이 없고 내다 팔 물건이 없는 입장에서 생필품에서 시작해 많은 물자들을 해외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처지이다 보니 달러($)가 귀할것이라는 심증처럼 일단 이해는 간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또 그네들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은 나와 같은 생각들이 아마도 들게 될 것이다.
캄보디아에도 정식 화페가 있다. 리엘이다. 1$ = 4.000 리엘. 워낙 화페의 가치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굳이 리엘을 어디에서도 고집하지 않는다. 캄보디아는 환전을 하지않고 그냥 미국달러로 여행을 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나라이다. 그저 아주 소액의 거스름 돈 정도를 리엘로 거슬러 받는 정도라서...... 나중엔 이 소액화페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생겨날 지경이 된다.
달러로 모든게 통용 가능한 나라. 어쩌면 이 점이 여행객에겐 상당한 편리함으로 작용하고 캄보디아를 더 친숙하고 편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캄보디아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국경에서 비자 발급이 가능하지만 여기에는 적지않은 비용을 요구한다. 그것도 오로지 미국 달러로면 결제된다. 심지어 자국화페인 리엘로도 불가.
1인 비자발급료가 20$ 이던것이 2016년 가을부터 30$로 50%나 올랐다.(미얀마의 경우는 1인 64$나 받는다)
거기에다 앙코르 유적군을 여행하려면 통합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2017년 1월 여행시 1일 입장권 20$. 1주일 안에 3일 이용권 40$. 1달 안에 1주일 이용권 60$ 였던 것이..... 채 일년도 안되어서 2017년 9월에 다시가보니 1일 이용권 42$. 1주일 안에 3일 이용권 62$. 1달 안에 1주일 이용권 82$로 인상되어 있었다. 놀랍다 못해서 미치고 팔딱 뛸 물가상승률이다. 하지만 어떤 안내나 양해의 문구도 없다.
'너네들이 앙코르 유적군이 보고 싶어서 제발로 찾아오는 것이니 우리가 요구하는 만큼 무조건 달러를 내라'는 심산이다.
매표소에서 이런 놀라운 현실에 대해 제복을 입은(경찰 같은) 남자에게 물어 보았다. 내가 지난 정월에 왔을때 보다 이렇게 오를 수가 있느냐고.
'써프라이즈......'
그 자신도 놀랍고 어이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양손을 펼쳐 들어보인다.
어쩌겠는가? 달라는 대로 줄 수 밖에...... 표를 사고 돌아서는 나에게 그 제복의 사내가 한마디 한다. 그동안 더 많은 부분들이 복구가 되었고, 개방하지 않았던 유적들이 추가로 개방된 곳이 있어서 그렇다고.........
- 도둑놈들. 내가 고고학자냐? 몇날이고 여기 들어않아 앙코르 유적 전체를 샅샅이 흩어보게........ 그저 유명한 몇개의 일부만 살펴보고 떠나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날강도 짓을 국가가 나서서 하는 것이지....... 달러에 미친 기생충 같으니라고........
씨엠립을 거닐다 보면 낮이고 밤이고 정말로 수많은 여행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절대다수가 돈다발인 것이다. 현지인이 아닌 태반의 외국여행자는 피부가 희던 검던 갈색이던....... 걸어다니는 여행자는 무조건 한 사람당 100$(십만원) 짜리 화페인 것이다. 바자발급료 30$에 대부분이 3일입장권을 끊게되니 62$를 더하면 92$(약 십만원) 짜리 자기앞수표인 것이다. 씨엠립에서 여행자는 100$ 짜리 화폐랑 동격이다.
거기에 금년 정초에 오토바이 1일 렌탈료가 8$ 이었는데, 가을에 협정가격이라며 20$로 담합가격을 제시했다.
이런 추세라면 한 5년 후에는 서유럽 여행경비와 맘먹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씨엠립에 도착해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빌려 쓰고 인근에 나가 아주 가볍게 허기를 면하고 숙소로 돌아와 피곤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밤새도록 폭우가 퍼부었다. 요란한 뇌성벽력과 함께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레이저 쑈 같은 벼락의 환영공연도 인상적으로 감상했다.
날이 밝아오면서 커튼을 걷어내고 창밖을 내다보니 빗줄기는 소강상태로 겨우 오락가락하고 있다.
창밖으로 씨엠립 도심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숙소 (후랜드리 앙코르 부띠끄 호텔)은 상쾌한 아침만큼이나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는 습관처럼 거리로 산책을 나섰다.
밤새 내린 폭우에 쉽게 잠을 이루지못해 늦잠에 빠졌던 씨엠립은 이제 막 깨어나려는 모습이다.
올드 씨티 인근을 한바퀴 돌고 돌아오니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단촐하지만 정성 가득한 서양스타일의 아침식사를 한다. 딱 우리 스타일.......... ㅎ
아침식사를 마치고 무엇을 해야할까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햇쌀이 쨍하고 창문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허니 달리 생각할것이 더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서둘러 여행복으로 갈아입고 도로에 나선다. 세상에 앙코르유적만한 뷰를 갖춘곳도 결코 흔하지 않다.
바야흐로 이제부터 멋진 뷰를 찾아 태리할망의 바램대로 예쁜사진첩을 만들어볼 때가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거리에 나서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뚝뚝을 섭외 흥정하는 일이다.
지난 정초의 혼자여행때는 모든여정을 모또(오토바이 택시)로 이동했었다. 씨엠립에서 앙코르왓 까지가 거의 12km 이상되는 거리를 두고있다. 하여 앙코르왓까지는 2$. 앙코르톰이나 따프롬 등은 3$로 흥정해서 타고 다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챠밍여사와 동행이었기에 모또로 이동은 불편해서, 처음에는 오토바이 렌트를 계획했었다. 그런데 담합가격으로 1일 렌트료를 20$이나 요구하고, 거기에 기름값까지 생각하니..... 그냥 흥정 잘해서 뚝뚝(리어카 오토바이)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런데 1년사이에 뚝뚝의 가격도 협정가격이 맺어졌나보다. 물론 먼저 만난 기사들은 내가 초짜여행자인줄 알고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렀는데, 내가 이미 경험한 바 대로 모또의 예를 들어주니 그제서야 자신들도 협정가격을 만들었는데, 뚝뚝으로 앙코르왓은 5$, 앙코르톰은 6$라고 한다.
서민적이고 소박한 사람으로 보여 매표소에 들렸다가 앙코르톰까지 가기로 하고 6$에 흥정을 마쳤다.
앙코르 유적(Angkor Ruins).
지난여행기에서도 거듭 밝혀둔 바가 있었지만 (앙코르왓)이 (앙코르 유적군)을 대신하는 표현은 절대 아니다. 앙코르왕조가 약 7세기란 오랜 기간에 걸쳐 건설한 수많은 사원과 도읍지와 문화유산 중에 한개의 문화재가 곧 (앙코르왓)일 뿐이다. 많은 유적군 중의 일부인 것이다.
유구한 캄보디아의 역사중에서 앙코르왕조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한다면(지난여행기에 자세한 기록이 수록되어있음)..... 앙코르왕조는 서기 802년을 기점으로 자이바르만2세가 주변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자신을 우주의 군주로 칭하면서 프놈펜을 거점으로 확고하게 왕국의 위상을 가다듬었던 시기를 말하며 국명을 앙코르 라고 하며 시작되었다.
그의 아들 야소바르만1세가 지금의 앙코르유적군 중심으로 이전하면서 롤레이사원.프놈바껭. 프놈복. 프놈끄롱 등을 건설했다.
이때까지는 물론 이후로도 앙코르역사의 대부분은 인도에서 전파된 힌두교였다. 앙코르는 힌두교 국가였고 수많은 대부분의 문화재가 힌두교문화재였다. 앙코르역사의 끝부분에 자야바르만7세라는 위대한 왕이 등극하여 앙코르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자야바르만7세가 등극하기 직전 앙코르는 베트남의 중부를 차지하고 있던 참족에게 점령당하여 4년간의 지배를 받게된다. 이때 상당수의 문화재가 심하게 파손된다. 왕위에 등극한 자이바르만7세는 참족과 전쟁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다시 번영을 이루게되었으며, 영토확장에 힘쓴 결과로 멀리 베트남의 해안에서 미얀마의 바간지역과 라오스의 비엔티엔(위앙짠)과 말레이시아반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앙코르 역사상 가장많은 사원. 도로 확충. 교량 등을 건설했다. 그가 바로 현재의 앙코르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지역에 인구 100만 명이 실제 거주하던 거대한 수도를 건설한 위대한 왕이었으며, 이 수도의 이름이 바로 (앙코르톰)인 것이다. 정 사각형으로 각 방위와 모서리마다 고프라(사면상이 있는 성문)를 세웠고, 수도의 한복판에 바욘사원을 건설했다. 지금은 아유타이에 의해서 수도의 상당부분과 왕궁이 철저하게 파괴되었지만 코끼리테라스에서 자신의 위대한 군사들을 사열하고 100만명의 백성이 생활하는 광장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했을 것이다. 또한 자이비르만7세의 업적 중에 불교를 받아들인 것도 이례적이라 하겠다. 앙코르톰과 바욘사원을 비론한 그가 건설한 모든 건축물들은 우주의 중심에 서있는 수미산의 이상향을 토대로 만든 불교 건축물들이다. 또한 그는 오랜역사동안 내려온 수많은 앙코르사원과 유적들을 불교사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힌두사원이었던 앙코르왓이나 여타의 사원 곳곳에 불상을 조각해 세원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이때부터 모든 앙코르유적들은 힌두교문화재에서 불교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번영을 구가하던 앙코르왕국은 자이바르만7세가 사망하면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다가 오래지않아 다시 한동안 베트남의 참족의 지배를 다시 받게 된다. 그러다 다시 나라를 되찾을 무렵....... 새롭게 급부상한 아유타이(태국)왕국의 침입 앞에 허망하게 앙코르톰이 함락되는 비운을 맞는다.
아유타이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일부의 사람들이 프놈펜으로 옮겨가 다시 왕조를 이어나가게 되었지만...... 앙코르유적군 일대의 번영을 누리던 왕국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밀림속에 버려졌고 역사의 기억에서조차 지워져버리게 되었다.
뚝뚝을 타고 매표소를 지나 울창한 숲길을 달릴때부터 이미 챠밍여사는 열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소 걷는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숲길을 보더니만 12km라는 거리와 무더위만 아니라면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내일은 자전거를 빌려타고 올까?' 하는 말에 적극적으로 손사래를 쳐서 거부를 표현했다. 편도는 가능하겠지만 이 무더위속에 왕복이라면......... 멀리서 책자나 영상에서 보던 해자 건너 앙코르왓을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뚝뚝은 멈추지않고 줄곳 달려나간다. 앙코르톰을 향해서..... 이상하게 나는 앙코르왓보다 앙코르톰이 더 좋게 느껴진다. 앙코르톰 중에서도 바욘사원과 바푸온사원에게 자꾸 마음에 끌린다. 앙코르톰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해자와 사면상(고프라)라 시야 가득 들어온다. 나올 때 다시 구경하기로 하고 그대로 지나쳐 마침내 앙코르톰의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석조군상들 앞에 멈추어 섰다. 와!!!!!!! 챠밍여사의 입에서 감탄사가 연실 터져나온다. 다자고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찍기에 열심이다. 그녀가 지금 느끼는 감동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8개월 전에는 나도 분명 지금 그녀의 모습 같았을테니 말이다. 바욘사원은 동서남북의 정방향을 바라보면서 미소짓고 있는 사면상과내.외부 회랑의 벽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부조들로 유명하다.(이러한 앙코르 유적들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들은 지난번 나의 여행기에서 다루었던 적이 있기에 참조하시기를 바라며 고감히 생각하기로 하겠다) 그러나 마냥 바욘사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여유를 부리기에는 까다로운 환경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행인파가 엄청나게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명중 다섯명은 중국인들이다. 나머지 셋 정도는 한국인이다. 정말 중국인 셋만 모이면 호떡집에 불난것 같다는 말이 새삼 절실하게 실감이 났다. 이거야말로 문화재 감상이 아니라 소음에 얼마까지 적응할 수 있는지 인간실험을 하고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비가 옴팡지게 내리거나 새벽 시간이 아니면 제대로 여유를 가지고 사원을 둘러볼 엄두조차 내기가 쉽지않아 보였다. 지극히 내 개인적 소견에서 하는 말이지만...... 해외여행에서 중국인 무리를 만나면 짜증이 난다. 불편하다 못해 불쾌해진다. 그렇게 무례하고 막무가내식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어보이는 그네들의 여행의식은 천성일까? 아니면 구시대적으로 그동안 살아오다가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싸돌아 다닐래니까 미쳐 필요한 소양도 갖추지 못하고 쏟아져 나왔기 때문일까? 기내에서나 식당에서 막무가내식으로 울고 투정하는 어린아이는 충분히 보아주겠는데....... 중국인이라면 먼저 피하고 싶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마주칠까 겁이난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일본인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국민은 될 수 있어도.... 절대로 선진국민은 되지 못한다.' 라는 말이었다. '중국인은 경제력을 갖은 나들이객(그들만의 행락객)은 될 수 있어도....... 절대로 참 여행자는 되지 못한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자 맹자가 그들 나라 사람이요, 넓은 의미의 중화사상을 표방하는 그들로서......... 근본 이념은 오래전에 양자강에 내다가 버린 사람들 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결코 중국인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소리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혀두지만........ 대만인이나 홍콩, 싱가폴이나 여타 동남아의 화교들을 만나보라. 얼마나 매너 세련되고 공손하고 예의 바른지를...... 성공한 화교의 어른들은 정말로 차분하고 공손하다. 떼놈(뙤놈)이 아닌 좋은 중국인을 여행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욘사원을 벗어나 우리는 바푸온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욘사원이 아기자기하리만치 섬세한 조각솜씨를 뽐내는 사면상들과 뾰죽뾰죽한 고프라 구조물들의 오밀조밀한 배치로 빼어나게 아름답다면, 바푸온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이 숲속에 아주 안정감 있고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어 바라보면 볼수록 편안해 지는 느낌이다.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유일하게 바푸온에만 들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힘들면 아무데나 주저앉아 쉬고, 더하여 상층부의 너른 공간에서는 발아래로 숲을 바라보면서 아무데나 그냥 드러누워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 실제로 한참동안 반쯤 기대 푹 쉬다가 이동하곤 했다. 바푸온의 상층부은 아직도 손을 대지 못한 상태이며, 후면은 현재에도 복원공사 중이다. 프랑스의 극동학원이 복원에 참여하고 있는데, 후면의 여기저기에서 복언이 잘못되면 어떤 부작용과 불협화음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그대로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바푸온은 바욘과는 전혀 다르게...... 공간배치가 정말로 압권이다. 거대한 석조건물 위에서 극락세계에 대한 강론을 경청하고 있는 느낌이 절로 든다. 그러다 너무 어려워지면 아무데나 드러누워 잠들고...... 개인이 동행한 특별 가이드의 역활까지 성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내가 아는 지식들을 모두 털어서 열심히 강의를 하는데........ 이 할망구 제대로 듣기나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는 것인지....... 대꾸는 또박또박하면서....... 사방 둘러보고 들여다 보고 감탄사 연발하고 사진찍어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정말로 정말로 너무나 즐거워 보이는 챠밍여사. 앙코르에 오기를 정말 잘한것 같애..........
바푸온에서 꽤나 많은 시간은 소요했다.
정말로 힐링여행의 묘미를 만긱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려와서는 후면의 부실공사가 역력한 가운데서 와불의 형상까지도 감상했다.
참으로 무더운 날씨였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동상까지 걷고 또 걸었다.
광장에는 지난번에는 없었던 이동캠핑카식 간이판매장이 있어서 망설이던 끝에 맥주와 야채볶음면 같은것을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승리의 문을 통해 톰마논과 따께우까지를 다녀왔다.
땀을 흘리면서도 전혀 지치지를 않는 챠밍여사.
암튼 윤태리의 할머니는 용감했고 감당해내기가 힘들었다. 씨익 웃으면서 하는 말씀..........
- 고푸라 중에서는 남문이 제일 아름답다면서...... 걸어가서 살펴보지 뭐. 나선김에 아예 앙코르왓까지 걸어가든가........ 이런 숲길이 어디 또 있겠어. 실컷 걸어보자고........
오.마.이.갓.이.런.무.더.위.는.또.어.디.있.겠.니.
아는 사람은 안다.
코끼리테라스에서 남문까지의 거리가 어느정도 되는지.......
그래서 걸었다.
남문에 왔다. 구석구석 신기한듯 살피면서 사진도 찍었다.
그러다 다리 난간에서 느닷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넘버 원을 보내온다.
이번여행에 대한 나의 노고에 대해서 보내는 찬사나 감사겠거니 했다.
그런데........ 홱 돌아서더니 그대로 저만치 또 씩씩하게 걸어간다. 아예 돌아볼 생각도 안한다.
그럼 나...... 또 죽어라 쫓아간다.
아는 사람은 안다.
남문에서 앙코르왓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어쩌고저쩌고 해서 앙코르왓 주차장까지 오기는 왔다.
여기 인근중에서 노점이 아닌 제대로된 카페가 딱 하나 주차장 옆에 있다. 핸드 메이드 수공예품과 기념품을 함께 파는 앙코르 카페이다.
나름 분위기도 좋고 음식 맛도 좋은 편이다. 거기다 에어컨이 빵빵하다.
좀 쉬었다가 뚝뚝을 타도 타자고 사정을 해서 모시고 카페에 갔다.
망고 스므디와 앙코르 맥주를 시켜서 마셨다.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쉬려니 시름이 싹 가시는 듯 했다. 이제야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이런날은 얼른 호텔로 돌아가서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 마당의 풀장에서 물장구 치며 노는게 최고라 생각했다.
이거서도 어디까지나 그때까지만 말이다.......
한참을 쉬고 났으니 제법 기운이 되찾아졌을 때 쯤이었다. 챠밍여사가 불쑥 통보하듯이 내게 말했다.
'앙코르왓은 오후가 관람하기에 좋은 시간이라 그랬지? 쉴만큼 쉬었으니 이제 슬슬 다시 앙코르왓으로 가보자........'
'뚝뚝이 타고 호텔 가는게 아니고.......?'
오.마.이.갓.
이틀에 돌아볼려고 생각했던 스케줄을 하룻만에 해치워버린 태리할머니.
호텔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생생.......
저녁식사겸 올드마켓을 또 돌아봐야만 하겠다는 둥...... 멋진 레스토랑을 찾는것인지...... 쇼핑이 아직 성에 안차시는 것인지.......
암튼 어두워지도록 수영장에서 놀고 있으려는데 또다시 밤비가 시작된다.
헐.
오늘은 또 얼마나 내리려고........
암튼 야간산책과 쇼핑은 취소되었으니....... 서둘러 나가서 현지음식을 이것저것 먹어보고...... 마트에서 먹거리쇼핑까지 해서 돌아온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되는거여.
비가 오든 말든...... 어디를 가던 말던....... 이런게 자유배낭여행 아니겠어?
이번여행의 재미에 아내가 빠져도 제대로 흠뻑 빠졌나 보다.
'다음 여행 계획이 어떻다고 했지?'
'2월 13일 이나 14일에 일단 이스탄블로 날아가서....... 지금 계획은 몰타에서 5일 정도 시칠리아로 건너가서 카타니아. 팔레르모.타오르미나를 둘러보다 보면 한 일주일........ 그런 스케줄로 짧게 잡으면 15일, 길게 21일을 잡으면 터키에서 좀 더 돌아다닐 수 있는 쪽으로.......'
'21일은 너무 길어. 최소한의 생활과 가족들도 염두에 두어야지. 보름이 딱 적당할것 같아. 그런데 꼭 이스탄블을 가야해? 방송에 나온 뒤로 테러이야기만 나오면 난 쪼끔 무섭단 말야.'
'터키의 안전은 내가 보장하지......'
'개뿔. 보장은 무슨...... 당신이 터키 대통령이야? IS 대장이야?'
'야. 세상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전쟁난다고 난리인데..... 우리가 언제 걱정하고 사전 준비한 적 있어? 시방 세상에서 젤 위험한데는 한국이여. 한국. 한국에 비하면 터키는 절대안전지역이라고......'
'하긴 그래....... 좋아. 그러면 죽어도 나는 따라간다. 다만 날짜를 내가 좀 조정하게 해줘. 대신 유럽여행 경비 중 항공료는 내가 낼께.'
'정말이지? 뱅기표는 당신이 사는거다?'
'그렇다니까? 비행기표에 이번에 수고가 많으니까 좀더 보태줄 수도 있고.......'
'알써...... 까짓 약간의 날짜 조정은 허용........ 나중에 딴소리 하면 난 그때 혼자라도 갈거니까 알아서 해. 알았지?'
'큰일났네....... 조지아도 가고 싶고....... 모로코도 가고 싶고........ 베니스도 가고 싶고..........'
'난 이란에서 터키로 넘어가고 싶은데...... 여건이 허락되면 시리아 다마스쿠스도 들려보고........ 거긴 여자가 가기 힘든곳이니까 아무때고 당신 떼어놓고 나가면 거기를 가야지.........'
'아주 혼자 돌아다닐려고 부러 위험하다는데만 골라서 수작을 부려요. 수작을........ '
'뱅기값은 언제 줄건데.........?'
'돌아가서 곧 준다니까? 내 카드로 사든가....."
'아녀. 현금으로 선결재 해줘. ㅎㅎ ㅋㅋ ㅎㅎ ㅋㅋ'
씨엠립의 하늘에 섬광이 번쩍이며 또다시 폭우가 내리 퍼붓기 시작하고 있었다. 알 럽 자유배낭여행.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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