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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조지아) 중세 성곽의 도시 시그나기

by 피안재 2016. 12. 6.

 

 

 

 

 

 

 

 

 

 

 

 

 

 

  시그나기는 작고 소박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조지아의 한 시골마을이다. 

  트빌리시에서 이란 국경으로 향하는 도로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데이비드 가레자란 명소도 이길을 통해 지나가 국경 부근에 위치해 있다.  하여 두 곳을 묶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두 곳을 하루에 묶기에는 좀 시간적으로 벅차지 않을까 싶다.

  시그나기를 좀 더 쉽고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어떻게 할까?

 

 

    힘들고 거친 여행보다는, 맵시있게 차려입고 경치 좋은 유명 관광명소나 이름난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인증 샷 샐프카메라 찍기에 여념이 없는 신세대여행자들에게 딱 입맞에 적격인 여행지라고 표현하면 맞는 말일까?

  아니면 바쁜 일상에서 탈출하여 품위있는 쉼(힐링)을 간절하게 추구하는 순수 낭만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할까?

  아무튼, 좀 빼곡하고 힘든 일정을 걷고 뛰어다니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치고 또 역사적 유적 유물들을 힘들게 찾아가 살피고 공부하는  것을 즐겨하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사실 별 볼일 없는 여행지의 대표격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오늘 여기 시그나기에 왔다.

  오늘이 조지아 여행의 마지막날,  아니지 코카서스 여행의 마지막날이지.  오늘밤이 지나면 이제 귀국일정이 시작될터이니 말이다.

  아침에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짐을 맡기는 문제가 해결해야할 급선무였다.  동시에 오늘 저녁 거처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자정 지나 새벽 4시반 비행기라서 새벽 2시에는 트빌리시 공항으로 이동을 해야했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자마자 코 앞에 위치한 허름표 게스트하우스(나라상과 머물렀던) 매니저를 찾아갔다.  10$을 내고 이른 체크인에 짐 보관을 부탁했다.  새벽비행기라서 부득이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흔쾌히 짐을 안채로 가져가주었다.  10$에 확실한 거처가 마련된 셈이고,  밤이슬 맞지않아도 되고 샤워라도 하면서 쉬다가 시간되어 공항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만 천원이면 거저지?

  데이빗 가레자를 다녀오고 싶었지만  저녁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것 같아 망설이다가,  그럼 므츠헤타로 갈까 고심도 했는데 결국은 미리 계획했던 대로 시그나기를 택했던 것이다.

 

 

 

  평원을 달리던 버스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이제 비로소 시그나기에 가까워진 것이다.

  사방으로 끝없이 평원이 펼쳐져있는 들판의 한가운데로 야트막한 산언덕이 하나 봉긋 솟아있는데,  그 산언덕의 허리를 병풍처럼 중세시대 쌓은 성곽이 둘려쳐져있고  안쪽으로 들어선 교회며 빨간지붕의 건물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전원마을이 바로 시그나기다.

  시그나기란 이름의 어원은 '피난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사방의 너름 벌판이 온통 포도밭과 과수원들인데  갑자기 오랑캐라도 들이닥치면 사방 어디로도 달아날 곳이 없었단다.  기껏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산언덕의 성곽 안쪽으로 도망치는 방법밖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것이 없었단다.  그래서 시그나기란 마을이 생겨난 것이다.

  한 영주가 이곳 산자락에 삥둘러 성곽을 쌓고 이 드넓은 광야와도 같은 농장지역을 다스렸다.  성곽 안쪽으로 왕궁을 짖고 교회를 짖고 성벽 안팍으로 시장을 열어 풍요와 번영을 누리는 곳이 되었다.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누구인들 이 축복의 땅을 차지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여 그 이후로는 참혹한 수탈과 약탈의 전쟁터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19세기 재정러시아의 세력권에 들면서 부터 여기 시그나기는 부자와 권세가들의 따뜻한 남쪽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지난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은 숱한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거나 사라졌고,  그나마 병품처럼 남아있는 성곽만이 지나간 역사를 대변해 준다.  하지만 그나마도 흔히 성곽이 가지는 위용이나 웅장하고 잠엄한 그런 분위기는 아몌 모두 사라진 허전하고 쓸쓸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이 아름답고 붉은 건물들은 역시 대부분이 외지인들의 별장이고,  중간중간에 놓인 현지인들의 생활모습은 시그나기로 상징되는 평화롭고 고요하고 풍요로운 전원 시골마을이라는 아름답게만 각인된 느낌들을 한순간에 모두 불식시키고 만다.

  시그나기란 이미지는 천국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여행가이드 책자속의 그림일뿐이다.

  그저 세상 시류와 상관없이 찾아와 무더위나 피하면서 시간적으로 자유로움 속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이삼일 서성대다가 그냥 훌쩍 떠나기에는 세상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그곳의 그네들의 삶을 세세하게 관찰하듯 살피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듯 지나온 시간들을 알아내고 나면.......  그때는 여행잡지속의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그나기는 그런 곳이다.

  사진찍기 참 좋은곳.  셔터만 누르면 아름다운 사진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  가을 한폭판이 지나고 있음에도 유난히 뜨거운 곳,  바로 그곳이 시그나기다.

  언덕길을  오르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사람들을 내리게 한다.

  시그나기가 아름답게 보이는 전망대라 할까?  전망대는 아니다.  그냥 길 가에 세우고 건너편을 바라보는 노상이니까.......

  여행잡지에서 보던 그 풍광이다.

  아름다운 시그나기의 첫인상.

 

 

 

 

 

 

 

 

 

 

 

 

 

 

 

 

 

 

 

 

 

 

 

 

 

 

  시그나기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숲과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진 아름다운 작은 교회를 만나게 된다.

  보드베 교회.

  트빌리시의 사메바 성당 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 편이지먄,  어떻게 생각하면 사메바 성당보다도 아기자기 하고 더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다.

  교회 남쪽으로는 먼 발치아래로 까마득히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있다.  아마도 저 끝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리라.

  왜냐면 조지아에서 너무도 고귀하고 위대한 그분의 고향이 바로 그 메소포타미아 평원 끝자락의 카파도키아 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마도 이곳 언덕에 잠들어서도 자신이 사랑하고 헌신한 조지아의 너른 들판을 바라보고 있고,  또 그 아득한 너머로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고귀한 분은 바로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해주신 성 니도(st. nino)할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니노 할머니는 바로 여기 시그나기의 산억덕에서 운명했다.

  니노 할머니는 지금도 이곳에서 잠들어 영원히 머물고 있다.  그러하기에 이곳은 조지아인들에게 더 없는 성지인 것이다.

  니노 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이 산언덕의 아래로는 사방으로 드넓은 포도밭이다.  니노 할머니의 축복으로 가득한 와인이 차고 넘친다.

  처음 조지아에 와서 포도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선교를 시작했던 므츠헤타 산언덕의 즈바리 성당으로 운구를 하여 장례를 치루려 하였으나 도무지 관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 또한 그분의 큰 뜻이 있은줄 알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장례를 치루고 이곳 보드베 교회의 지하에 시신을 안치앴다.  하여 (보드베 교회)는 흔히들 (니노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조지아 사람이거나 기독교 역사를 아는 여행자들은 교회의 반지하 기도실에 들어가 누구나가 니노 할머니의 관에 입을 맞추며 기도한다.  그러고 나면 실제로 아주 놀라운 일들이 무수히 많이 벌어졌다고 한다.

  나도 기도실에 들어가 서서 묵념까지는 했는데,  밀려드는 인파로 더 머물수도 없었고  워낙 경건한 곳이라 차마 카메라 셔터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하여 사진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오히려 잘한 일이었다 싶다.

  니.노.할.머.니.의.축.복.이.지.금.의.조.지.아.인.들.에.게.강.립.하.시.기.를.

 

  보드베 교회의 전망이 아주 빼어난 곳에 커다란 아름다운 건물이 있어서 가보았다.  수리를 위한 나무막대사다리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보수중인가 하여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새로 신축중인 교회 건물이었다.

  참으로 멋진 건물이었다. 

  '이 사람들은 새로짖는 건물도 이렇게 세월이 뭍어나는 고풍스런 옷을 잘도 입히는구나'하고 놀랬다.  첫인상이 전혀 신축건물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수백년은 된 고건물인지 알았다.

  외부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내부는 썰렁할 정도로 허접했는데......  모두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완성되고나면 또 올수 있을까?

  가운데 태리 데리고 챠밍여사하고?

 

 

 

 

 

 

 

 

 

 

 

 

 

 

 

  보드베 교회의 니노 할머니와 작별하고 성벽을 지나 시그나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그나기이다.

  씨티홀?  우리나라 면사무소 마당쯤에 차가 멈추고 내려서 본격적으로 시그나기를 둘러보기로 한다.

  도심이 아닌 조지아의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보아 온 그런 일상적인 풍경들이 나를 맞는다.

  그네들의 일상을 둘러보면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 소련시대의 낡은 승용차.  아니다 승용차가.  용도는 우리나라 이사짐쎈터 용달차에 가깝다.  엄청난 양의 짐을 실어나르는 것에 놀랍다.

  할머니들이 노점과 게임에 열중이신 할아버지들.  이쪽나라들은 할머니들은 (죽자사자 일판) 할아버지들은 (죽기 살기로 놀판) 같다.  차라리 노후는 이쪽으로 고심을 좀 해 볼까?

  평온하고 고요하다.  그리고 덮다.

  화려함이란 어디에도 없다.  아니지 여행객들만이 화려하다.

 

 

 

 

 

 

 

 

 

 

 

 

 

 

 

 

 

 

 

 

 

 

 

 

 

 

 

 

 

 

 

 

 

 

 

 

 

 

 

  마을 어귀에 서있는 늠름한 동상.

  19세기 여기 조지아의 명망있는 역사학자요 철학자이며 문학가였던 솔로몬 도바쉬빌리의 동상이다.  조지아인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사랑받고있는  학자였던것 같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성벽에 붙여 설치한 추모공원 같은곳이 있다.

  조지아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많은 유공자들의 이름을 석판에 새겨 놓았다.  결코 잊지않겠노라는 의미였지 싶다.

  여기서의 독립항쟁이란 바로 조지아 근현대사의 아품인 (구)소련으로 부터의 해방과 독립을 말함이다.  1차 2차 세게대전을 포함하여 소련으로 부터 압제속에서 조국 조지아의 독립을 위해 희생된 분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장소였다.  무겁고 착찹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씨티홀과 나란히 서있는 옆쪽의 녹색 간판이 붙은 검은색 건물(바로 위 사진속)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시그나기는 '중세의 성곽도시'라는 별명 외에 또 하나의 별명인 '사랑의 도시' 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왜?

 

 

  '이미 등까지 돌려버린 사람이라도 죽어라 끝까지 결혼이 하고 싶다면 여기 (시그나기)로 가라'고 내가 서두에 써 올렸다.

  무조건 강제로 라도 잡아 끌고 (시그나기)로 가라.  그리고 나면 묘한 사랑의 묘약이 당신의 열망을 꽃피워 줄 것이다.

  어떻게?

 

 

  '싫다고 싫다고' 해도 '죽기로 살기로' 쫓아댕기는 넘이 꼭 있다.  그런넘들이 대부분 쓴물(?) 단물(?)을 쏙 빼먹고 나면 은근슬쩍 토낄 생각만 한다.  '때도 되었고 하니 그간의 빚을 갚으라' 하면 '이 핑게 저 핑계 갖은 핑계를 갖다 붙이면서 차일피일 미루기'를 갯벌에 망둥이 뛰다니듯이 한다.  사정해도 안되고 눈물로 하소연 해도 이미 맴이 떠나간 넘이다.  그냥 패죽이고 나면 되겠는데..... 차마 패죽이진 못하고.....

  요런 내막을 가진 사람들이 솔찬게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물론 상황속의 남녀가 역활이 바뀐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라.

  '우리 여행이나 한번 가자.  맘 떠난 잉간에게 더는 사정하기도 싫고,  더 그래봤자 내 맘만 상하고 내 인생만 조질것 같아서......  나도 이참에 마음 정리 할테니......  우리 굿바이 하는 정리인셈 치고 여행이나 한번 마지막으로 가자.'라고.

  이제 스스로 알아서 떨어져나가 준다는데 거기서까지 더 망설이고 여행 한번쯤 못해줄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리 머리 굴리며 주판알 튕겨봐도 하느님 땡큐지.  안그래?  입장바꿔 생각해봐. '그까짓꺼야 한번 들어주지뭐.......' ㅎㅎㅎㅎ

  - 어디로 여행가고 싶은데?

  - 시그나기.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시그나기에 와 봐야 별반 뾰족하게 할 일이나 할 짓이 없다.

  날은 무지덥지.  한산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네지.  재미난 놀거리도 없지.  그냥 지루하다보니 저절로 릴랙스 해질테지.

  아쉬운 표정으로 한탄스런 푸념을 날리며 술이나 옴팡지게 마시자고 부추긴다.

  와인값이 너무너무 착하지.(3.500원 ~ 4.500원이면 근사한 와인 한병).  러시아 보드카도 참 착한 가격이지.  아르메니아에서 넘어온 꼬냑도 지천에 널렸겠다.  유럽의 갖가지 맥주도 다있겠다.  사방으로 넘쳐나는게 청포도에 먹포도에 종류도 가지가지에 사과며 감이며 과일이 굴러다닌다.  사슬릭(꼬치구이)이며 치즈며,  가격 착하고 맛있는 술안주가 지천이다.  가히 술꾼의 천국이다.

  따르고 마시고 취해라. 다만 당사자는 좀 정신을 챙기고 나쁜작자를 무조건 마시게 만든다.   사랑 쟁취의 성패가 거기에 달려있다.

  술이 제법 취했다고 생각되면......  눈물 두방울 억지로 흘리면서 지나가는 말투처럼 넋두리 가득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미련 없이 떨어져 주겠다고 큰소리 치며 오긴 왔는데...... 어쩌구 저쩌구.......'  횡설수설을 늘어 놓는다.

  그러면 '이게 떨어진다더니 맘이 변하기로도 한거여'라면서 상대가 다소 긴장할 것이다.  다시 말장난으로 무장해제 시켜라.

  '까짓 이렇게 여기까지 온거,  우리 연습으로라도 어디 한번 결혼하는 흉내라도 내보자.  안될까?'  이 상황 되면 즉각 반응이 온다.  까짓 '진짜로 결혼만 해달라는게 아니면, 여기까지 왔는데 웬만한것은 한번쯤 들어줄수도 있지' 하는 도둑놈 심뽀가 작동을 한다.  저도 사람일 테니까.  그러면 잠시도 더 머뭇거리지 말고 직빵을 날려야 한다.

  '여기에 소극장 연극무대처럼 결혼식 흉내 내주는 곳이 있다하대?  나 처럼 결혼 못하고 골골하다 죽어갈 불쌍한 영혼들을 달래주기 위해서 아주 잠깐이지만 형식적인 결혼식 흉내를 내 주는 곳이래.  어차피 떨어져 주기로 마음 먹은 나 인데.....  흉내 한번 조차 안될까?"

  '에이.  그런게 어딨어?'

  '있대.  진짜 결혼은 날짜 잡고, 청첩장 찍고, 패물 교환하고,  결혼식장 잡고,  양가 부모님과 둘러리 하객이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그건 진짜 결혼이고.......  흉내는 그냥 돈 몇푼 쥐어주면 주례대신 연극하는 남자가 하나 앞에서서 누구누구 서로 사랑하느냐 어쩌구 저쩌구..... 그냥 한번 흉내만 내보는 거래.  여기까지 왔는데......  그 정도라도 내게 한번 해주면 안되겠어?   안그러면 나 맘 안바뀔것 같아.....'

  이정도 상황이면........  다시 맘이 바뀔것 같다는데...... 못 떨어질것 같다는데.......  이 멀고먼 시그나기.....  여기까지 왔는데........  그까짓 아주 잠깐 눈 한번 딱 감고 흉내 한번 내주는 것을....... 

  '그래.  그 정도야 뭐.......  내가부득이 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지,  자기한테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그정도야.....'

  이러고 나면...... 곧 바로 위쪽 사진속의 건물을 찾아가면 된다.  무조건 그리로 가면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그리로 가면 된다.  1년 365일 24시간 문이 열려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책상에 앉아있던 두 남자가 나타나 반겨준다.  환한 미소와 함게 진지하게 말을 건네 오는데...... 오로지 조지아 언어다.

  언어장벽?  노 프라블럼 이다.  여기서는 이 언어장벽이 바로 (사랑의 묘약)이다.

  남자가 연단에 서서 두 사람을 앞에 세워 놓고  뭐라뭐라 떠들면서 절차를 진행하는데......  어설프고 대충대충 같은것이.......  영락없는 결혼식 흉내 연극이다.  중간에 상호간에 서로 준비한 반지도 없으니 멀뚱히 쳐다보다가 그냥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러고는 남자에게 여자에게 교대로 무엇무엇이 어쩌구 저쩌구 조지아말로 질문을 한다.

  '이럴땐 예스라고 대답해야지?  남 결혼식 안가봤어? 바보야.' 하면 그넘 입에서 '예스'가 술술 나온다.  자신도 신나게 '예스'라 대답한다.  그리고 나면 돌아서라고 하고,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나와서 즉각 즉석 사진을 한장 찍는다.

  주체자가 책상에 인명부 같은 재끼장을 펼쳐 놓고 서명하라는 신호를 보내면  지갑에서 잽싸게 수수료를 꺼내서 건네주면서  이제 목전까지 걸려든 나쁜작자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거든다.

  '연습 결혼식 무사히 마쳤다고 싸인하고 기념품 받아가래.  얼른 싸인하는 거야.  이 바보야.  다 끝났어.' 라고.  여기서의 '다 끝났어'는 연습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제 네 인생 종쳤어' 하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끝가지 싸그리 조지아어로 제맘대로떠들어대니 알아 듣지도 못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시늉을 했을 뿐인데.........

 

 

  한달 쯤 지나면 두 사람의 주민등록지로 조지아로 부터 국제 우편이 한통씩 도착하게 된다.  조지아 국가 직인이 찍힌  인증서와 함께 두 사람이 국제법에 준하여 결혼식을 하였으므로 정식 부부가 되었음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송달된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실제 사실이다.

  언어를 몰라서 속았다는 이유가 성립도지 않는다.

  그 건물이 바로 국제 결혼 신고사무실이다.  국제헌법재판소의 허가에 의해 운영되는 유명한 곳이다.

  일단 이 건물에 함께 온 남녀는 이미 결혼을 전제로 합의하고 찾아온 것이기에,  결혼식의 진행이 조지아 언어였느니 그래서 못알아 들었느니 등등의 이유가 성립되질 않는다.

  날아온 증명서를 무효화 시키려면.......  국내 재판을 거쳐......  조지아 시그나기에서 또 재판을 거쳐........  국제 헌법 사무소의 최종 재가를 받아야 무효시킬 수 있다.  아직 그렇게 간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더 웃기는건.........  위의 억지 사례처럼  결혼하는 커플이 의외로 상당하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되돌아온 대답은......  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커플들이,  정상적으로 서로 죽고 못살아 결혼하는 커플들 보다,  차후 이혼비율이 훨씬 더 적더라는 아이러니가 뒤따라 왔다.

  어쩌면 극진한 사랑은......  적당한 농도로 서로 대등함을 이루는 인연보다,  죽어라 헌신적인 한 쪽의 일방적 희생과 양보가 훨씬 클때 더 잘 영위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시그나기가  당신의 사랑 고민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우선  시그나기로 가라.

 

 

 

 

 

 

 

 

 

 

 

 

 

 

 

 

 

 

 

 

 

 

 

 

 

 

 

 

 

  시그나기의 상징인 성곽길도 걸어보았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던 성곽중에서 가장 못하다.  대부분이 부서져버린 성들도  이보다는 나았었다.  허접하다.

  석재며 인력을 줄이려고 대단위 부실공사의 결과로밖에 여겨지지가 않았다.  방어수단으로의 가치가 형편없어 보인다.

  유명하다고 알려진 전통음식점에 들려 직접 음식만드는것에 이것저것 참여도 해보고, 그럴싸한 음식도 주문해 먹었는데.......  별로였다.

  푸짐한것 까지 그림은 좋았으나........  내용은 뭔가가 많이 빠진듯 '겨우 한끼를 때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크기가 엄청난 트럭들이 계속 줄을 이어 지나가는데,  짐칸에 온통 포도송이로 수북하다.

  다듬거나 포장이란것 아예 없다.  그냥 산더미처럼 싣고 지나간다.

  너른 광장에 보니 포도수매장인듯  수십대의 늘어선 차량이 다 이런모습이다.  와~~~~~  정말 차고 넘치는게 포도다.  상상초월.

  그래서 드라이버에게 요청했다.

 가는길에 멋진 와이너리 있으면 한번 들려보자고,  그랬더니 한참을 달려 어느 와이너리 주차장에서 차가 멈췄다.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시음회에 참석해 보고 마켓에서 구매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지아에서 생산규모나 판매량에 있어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와이너리였다.  수출도 한한면서 전시장 안쪽으로 게양된 국기들이 이곳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수입해가는 나라라고 국기들이 게양되어 있는데,  태극기는 없다.  조지아와 우리나라와는 현재 와인 교역이 없음.

  1년반 정도 숙성된 가장 인기있고 많이 판매되는 대표와인인 한병에 우리나라돈으로 3.500원~ 4.500원에 판매된다.  시음에 참가해서 직접 맛을 보았는데.......  맛과 향이 기가막히다.  개인 소견으로 아지기도 소량 생산되는 우리나라 와인 '마주왕'과 현격한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여행객 대부분이 적게는 다섯병에서  많게는 20병까지 구매를 한다.  남들의 으아해 하는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나는 한병도 사지를 못했다.  ㄷ신 훗날 언제고 다시 올 때는 스케줄을 잘 조정해서 와서 꼭 10병은 사서 모두 마시고 조지아를 떠나겠다고 다짐해 본다.

  ' 난 오늘은 와인을 못사.  돌아가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쉬었다가,  자정 넘으면 비행기 타야 해.  오늘이 조지아 마지막 날이야.  산다해도 소화시킬수가 없어......... 캐리어라면 두 병쯤 사겠는데.....  난 배낭족이야..... ㅎㅎㅎㅎㅎ'

 

 

 

 

 

 

 

 

 

 

 

 

 

 

 

 

 

 

 

 

 

 

 

 

 

 

  와이너리를 나서기 시작하면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날이 어두워졌고  트빌리시 까지는 제법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밤이 되자 트빌리시 시내의 차량도 엄청나게 늘어 거의 교통체증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자유광장 메테히 다리에 도착했을 때는 제법 늦은 시간에 접어들고 있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맏고 간판조차 없는 게스트하우스 숙소에 도착했다.  매니저가 목요타올을 들고나와 젖은 나를 흠쳐준다.  다행히 오늘은 그렇게 여행자 손님이 많은 날이 아니어서 곧바로 하나뿐인 화장실을 차지하고 샤워부터 했다.

  어차피 젖은 옷을 말리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커다란 비닐에 갈무리하고,  우산을 빌려쓰고 골목을 나왔다.  밤은 제법 깊었지만 저녁을 해결하지 못해서 언덕을 내려갔다.  엇그제 크리스와 나라상과 들렸던 지하식당이 마침 아직 문을 닫기 전이었다.  들어가보니 마감을 하려던 순간이 아닌가.  부탁을 했다.  자정 넘어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저녁을 해결하지 못하고 버티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고.  조지아에서 마지막 식사가 되는데 미안하지만 뭐라도 가능한 것으로 먹게 부탁한다고.

  잠시 뒤에 음식이 나왔다.  여유있게 식사하셔도 된다고 하기에 생맥주까지 시켜서 조지아 여행의 휘날레를 즐겨보기로 했다.

 

 

  비는 내리퍼붓고.........

  자정을 넘어서 부터 시간은 더디게만 가고.........  잠은 안오고........

  새벽 두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샤워 한번 더 하고.........

  매니저가 친절하게 택시를 불러준다.  가격 흥정도 대신해 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담엔 내 색시하고 꼭 다시 올께.'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와 계속 거래가 오갔었던 듯,  택시 기사가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트빌리시의 좋은 이미지만 많이 기억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놓치지 않는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운전석에서 내려 내가 배낭을 챙겨 메는 것까지 도와준다.

  아름다운 트빌리시.

  자유배낭여행자의 천국  조지아.  물론 아르메니아와 에레반에게도 같은 찬사를..........

  아.무.때.고. 꼭.다.시.돌.아.올.께.영.원.히.잊.지.못.할.거.야.

 

 

 

 

  가자.  다시 이스탄불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