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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소설

귀결(歸結). 신립 장군의 마지막 열 하루.......

by 피안재 201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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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도(道)란 것이 이런 것을 말함이더냐? 이 순간까지 나는 너희들에게 신(信)을 지켜왔다. 한데 무슨 까닭으로 너희들이 이 시각에 들이닥쳤느냐? 도(道)와 신(信)을 저버리고 이렇게 올 수가 있었더냐?”

  노기로 가득 찬 절규와 같은 외침이었다.

  적군의 복부 깊숙이까지 찌른 칼이 쉽게 빠지지를 않자 발을 내뻗어 적군의 가슴팍을 내지르듯 걷어찼다. 칼날이 빠져나온 자리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힘껏 내지른 발길질이었는지라 두 서너 걸음을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바로 잡으려 하였건만 동헌으로 오르는 섬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는 것을 옆을 둘러서던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뒤를 받쳐 넘어지는 것만은 겨우 면한 상태였다.

“장군. 상처가 깊사옵니다. 어떻게든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후일을 도모 하십시오. 장군.”

“죽을지언정 어찌 저들 같은 왜구에게 등을 보인단 말이더냐? 끝까지 싸울 것이다.”

‘악!’

  불과 서너 걸음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앞에서 조선의 군사 하나가 끝내 왜군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목이 떨어진 채 쓰러지고 있었다.

‘악!’

  이번엔 발목 아래가 잘려나간 군사 하나가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으며 창을 든 왜군들이 이리떼처럼 몰려들며 부상당한 병사를 난도질 하고 있었다.

  성난 장군은 그를 구하려 칼을 휘두르며 다가서려 하였지만, 그를 가로막고 길게 찔러오는 수십 개의 창끝을 막아내며 다가서기는 실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런 물러남조차도 더 이상은 허용되지가 않고 있었다.

  동헌의 섬돌에 한 발을 올려놓기는 하였으나, 어느새 왜군의 상당한 숫자가 동헌의 마루까지 차지하고는 뒤로 밀려나는 조선 군사들의 등 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군은 가물가물해지는 두 눈을 부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이미 첩첩산중 고립무원의 상태로 왜군들에게 포위되어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죽음으로 항전하고 있는 군사의 숫자가 눈을 씻고 둘러보아도 채 열 명이 안 되는 숫자였다. 게다가 그들 모두가 이미 적군의 조총과 창과 칼에 심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반면 그들을 에워싼 왜군의 숫자가 대충 어림잡아도 백여 명은 훨씬 넘어보였다. 그리고 열려진 관아의 문을 통해 연실 왜군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승리를 목격한 왜군들은 성난 악귀처럼 몰려들며 이상한 고함소리를 외쳤다. 몇몇 남지 않은 조선군을 저들의 승리에 대한 전리품으로 서로 차지하려는 듯 악착 같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 속의 악귀의 모습이 바로 저들과 같았으리라고 순간처럼 장군은 생각했다. 더구나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분명 저들도 이미 자신이 이곳 동래성의 최고 수장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도 남았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는 커다란 기쁨이겠으나, 그 자리에서 적군의 수장을 자신의 칼날로 굴복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영광이겠는가. 그는 자신과 몇 몇 남은 수하들에게 비로소 최후가 닥쳤음을 깨달았다.

“오냐. 이것이 정녕 내 마지막이었더란 말이냐? 오냐. 오너라. 내 기어코 한 놈이라도 더 저승길에 동행하고야 말겠다. 오너라. 이놈들아. 모두 모두 다 나에게 오너라.”

  장군은 칼을 휘두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휘익’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소리와 같은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조선군을 첩첩이 둘러쌌던 왜군들이 일제히 뒤로 이십여 보씩 물러났다. 조선군과 왜군들 사이에 커다란 공간이 순식간에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공허함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장군과 얼마 남지 않은 조선의 군사들은 이 뜻밖의 상황에 다소 상기되고 놀란 표정으로 주위와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투구도 벗겨져 어디론가 날아가고 산발한 머리와 수염은 이미 피로 얼룩져 있었다. 갑옷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피가 아직도 뚝뚝 떨어지고 있는 칼은 이미 이빨이 모두 나가 톱날 같이 보였다. 왼쪽 팔은 조총의 탄환에 맞아 거의 감각이 없었으며, 뺨과 허벅지에도 적군의 칼날이 헤집고 지나가 이미 깊은 상처가 생겨나있었다. 그나마 서둘러 동여 맺음인지 허벅지의 피는 어느 정도 멎어있었다.

  주저앉고 싶었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었다. 어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무장의 죽음이구나. 허망하도다. 자난 날 어머님께서 그토록 무장이 되는 것을 말리시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구나.’

  그는 어린 시절 문과 무에 모두 재능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 장군이 되기를 희망하였는데, 한사코 무장의 길을 말리시는 어머님의 뜻에 따라 문과에 급제하였던 것이다.

  헌데 지금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니 문관과 무관이 무엇이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자신은 분명 조선국의 군왕이 왕명으로 이 동래성에 파견된 신하였으며, 오늘 이 순간에는 분명 동래성의 최고 수장이었던 것이다. 하여 자신만의 의지로 쉬이 쓰러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대 조선국의 장수로서 끝까지 왜군 앞에서 당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칼을 자신의 발 앞에 꽂았다.

  당장 눈앞에서 적들이 멀찌감치 물러난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들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칼에 의지해 짚고 섰다.

“부사(府使)께서는 어찌하여 귀하신 생명을 이리도 헛되이 버리시려 하십니까?”

  겹겹이 에워쌌던 포위망의 한가운데가 열리며 짙은 갈색마를 타고 번쩍이는 투구와 갑옷을 입은 왜군의 장수 하나가 서서히 앞으로 다가왔다.

“부사께서는 조선에 흔치않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부디 존체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왜군의 장수는 정중한 어투로 말을 건네 왔다. 약간 어눌한 느낌은 있었으나 분명 그것은 조선말이었다.

“의롭다? 하하하. 적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적지 않게 당황스럽구려. 작금의 이런 상황에서 그 같은 말이 다 무슨 소용이겠소. 어서 도주(島主) 종의지(宗義智)나 나오라고 하시오. 내 그자에게 따끔하게 해줄 말이 있소. 돌아가서 어서 그나 나오라고 하시오.”

“소 요시토시님(종의지의 일본 이름)께서는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여, 제가 단지 그 분의 뜻을 대신 전하여 드릴 뿐입니다.”

“도주의 뜻이라........ 그것이 무엇이요? 말씀해 보시오.”

“소 요시토시님 께서는 오래전부터 부사님을 몹시 존경하여 왔습니다. 하여 지금의 이 일을 몹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제라도 부사께서 생각을 바꾸신다면....... 부사께서 칼을 내려놓으시면 어디로 가시든 개의치 않고 무사히 보내드릴 것입니다. 옆에 살아있는 부하들 까지도 보내드릴 것입니다. 부사께서는 무장도 아니시질 않습니까? 싸움은 무장들이 하는 것입니다. 경상좌병사 이각(李珏)이 협공을 하겠다는 핑계로 서둘러 소산 쪽으로 도망을 친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조선은 이미 너무도 오랫동안 외부의 정세를 무시한 채 조정에 들어앉아 저들끼리 싸우다가도 함께 흥청망청 거리고....... 임금이라는 자도........... 이미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각종 전란을 통해 군사력을 키웠고, 마침내 하나로 통일된 힘을 모아 조선을 치러 온 것입니다. 조선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니 부사께서는 부디 의로운 목숨을 귀히 여겨 주십사 하는 저의 주군의 바람입니다.”

“하하하하. 살려 줄 터이니 칼을 내려놓고 어디든 도망을 치라....... 이렇게 커다란 아량을 내게 베풀면서도 종의지는 제 얼굴을 내밀기에 부끄러웠던 모양이군. 어제는 늦은 밤에 불쑥 찾아와 도(道)와 신(信)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가더니, 날이 새기도 전에 야습을 감행해 놓고 이제 돌이켜 보자니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지? 하하하하. 이런 큰 은혜를 내게 베풀려면 당당하게 제 놈의 얼굴을 내밀고 했어야지. 아니 그런가? 그리고 이게 어디 종의지의 머리에서 나왔겠는가? 이게 다 승려의 탈을 쓴 현소(玄蘇)의 계략이겠지. 아마 그 자도 부끄러워 나타나진 못하고 어디선가 숨어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겠지. 아니 그런가?”

“겐소님(일본 승려 현소의 일본 이름)께서는 지난밤에 부사님을 찾아 뵌 후에 병이 나셔서........”

“이보시게나. 종의지의 부장이었지? 아무려면 어떻겠나. 이 일의 결과는 이미 지난밤에 종의지와 나 사이에 분명하게 해결을 보지 않았는가. 자네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설마 벌써 잊은 것은 아니겠지?”

“정녕 그리 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죽을 수는 있겠으나....... 길을 내어 줄 수는 없네. 가려거든 자네들의 방식대로 가도록 하시게나. 네겐 내 방식이 따로 있음이야........”

“부사..........”

“종의지와 현소가 없다니 자네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잠시만 자네들의 창검을 의식하지 않고 쉴 수 있었으면 싶네. 아주 잠시면 되겠네.”

  종의지의 부장은 뚫어져라 부사를 쳐다보았다. 이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고 그의 두 눈은 여전히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사는 돌아서더니 말없이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쳐 잡듯이 여기저기 헤지고 피로 범벅이 된 갑옷의 매무새를 바로잡았다. 피 칠을 한 채 산발이 된 자신의 머리채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북쪽을 향하더니 먼 산을 올려다보며 지극히 정성스런 모습으로 절을 하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엎드린 그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군왕에게 자신의 죽음을 허락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수하들도 하나 둘씩 그의 뒤를 따라 삼배를 올렸다.

  수하들까지 모두 삼배를 올렸음을 확인했을 때 부사는 종의지의 부장을 올려다보며 일을 열었다.

“종의지와 현소에게 내 말을 꼭 전하여 주시게. 지난 밤 내가 한 이야기의 결론은....... 조선이 예의(禮儀)의 나라임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오늘 아침 왜군의 행태를 보자니 역시 왜는 교(狡)의 나라였기에 진즉이 더 많은 것을 깨우쳐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더라고 말일세. 흉악하고 교활할 뿐만 아니라 믿음성이 없고 성질은 탐욕스럽고 천박하며 생명을 경시하여 살생을 즐기니........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전하여 주시게. 미처 방비하지 못하여 마구 무너지는 조선이겠으나......... 곧 신(信)과 의(義)를 되찾을 것이니 그리 멀지않은 날에 그대들은 살아 돌아가기에도 벅찬 때가 곧 올 것일세. 조선은 결단코 이대로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 전하여 주시게.”

  부사는 모든 말을 마쳤다.

  그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꼽혀있던 자신의 칼을 잡고 태산처럼 섰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참고 견디기 힘든 상황의 대치였다.

“구로다라고 했던가? 내 자네의 배려는 잊지 않겠네. 이제 돌아가시게. 이제 시간이 되지 않았겠는가? 자네들의 길을 가시게. 난 막을 것이네.”

“부디............”

  구로다는 말을 돌려 열렸던 포위망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커다란 외침 소리와 함께 다시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 들어왔다.

  그리고 함성과 비명소리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탕. 탕.

  뇌성벽력과 같은 조총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조선의 군사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탕.

  부사의 몸뚱이가 갑자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대는 순간에 무리를 비집고 들어온 왜군 병사의 날카로운 칼날이 부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온 동래성이 떠나가라 커다란 함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왜군의 승리였다.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으나 분명 왜군의 대승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왜군들은 힘든 싸움의 승리를 자축하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끌어다가 살인을 자행하고 방화를 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동래성은 한마디로 아비규환 속의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의 동래성이 바로 지옥이었다.

  그 지옥의 한가운데로 왜군의 장군 복장을 한 사람과 삭발을 한 중의 모습을 한 사람이 나란히 말을 타고 들어왔다. 그들은 동헌의 섬돌아래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있는 적장의 시신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나뒹구는 머리통에서 부사의 죽음을 확인했다.

  종의지가 뒤따라 온 수하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최고의 예를 갖춰 그의 시신을 수습해라. 그리고 성 밖의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줘라. 그는 조선의 의로운 사람이었다.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란 푯말도 하나 내걸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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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결’(歸結)의 서문.(조금 긴 서문. 중간에 쓰는 서문)

 

 

 

 

 

  초등학생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던 더벅머리 고등학생 형이 있었다.

  “이 형은 군인이 될 거야. 파란 견장을 차는 가장 높은 군인이 될 거야. 파란 견장이 뭔지 아니? 그것은 실질적으로 부릴 수 있는 부하를 둔 책임자라는 뜻이야.”라고.

  파란 견장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는 그 후로도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깨닫게 되었다.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참모총장. 이것들이 바로 파란 견장이었다. 같은 계급이라도 다른 군인들은 파란견장을 차지 않는다. 그들은 실질적으론 부하를 거느리지 않는 참모계급들인 것이다. 그 위로 국방장관과 군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있지만, 형이 말한 파란견장의 최고위는 참모총장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 형은 사관생도 복장을 하고 집에 와서는 밥을 떠먹는데도 국을 떠먹는데도 기역자로 꺾기를 해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다른, 좀 더 구체적인 군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역사에는 무수히 많은 훌륭한 군인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도 군인이고 계백장군 강감찬 장군도 훌륭한 군인이었지. 일제하에서 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그 분들도 모두 훌륭한 군인이셨지.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6.25를 거치고 오늘까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훌륭한 군인을 꼽으라면 나는 한신 장군과 이종찬 장군을 꼽고 있단다. 해서 언젠가는 나도 파란견장을 차고 꼭 한신 장군이나 이종찬 장군 같은 군인이 될 거야. 지켜보렴.” 이라고 했다.

  한신이 누구야? 이종찬이 누구야? 난 군인인 그 사람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설마 초한지의 유방 부하인 한신장군을 말하나? 민정당 사무총장인 이종찬을 말하나?

  그땐 그런 궁금증을 가졌었다.

  그런 그는 진짜 군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정말로 바라던 장군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리 머지않은 날에 그가 파란견장의 최고 높은 자리인 참모총장이 되리라는 것을 으아 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사건이 생겨났다.

  그와,  참모총장보다 훨씬 높은........ 최고로 높은 사람과의 사이에 대립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신동아와 월간조선에도 나오고 9시 뉴스에도 나온 그 사건은 결국, 그가 참모총장의 꿈을 접어야만 하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어 졌다.

  지극히 좁은 내 소견으로.......... 대한민국은 참으로 아까운 군인 하나를 잃었다. 아니지.

  그 당시의 그 높은 분이 참으로 아까운 군인의 참 능력을 몰라보고 내쳤다.

  얼마 전, 실로 너무도 오랜만에 허심탄회하게 그간의 못 다한 서로간의 아쉬움을 털어버리려고 술 한 잔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녁 7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 까지 오로지 폭탄주로 마셔댔는데도, 우리 모두 너무도 멀쩡했다.

  내가 말했다.

  “형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난 군인으로서의 형이 옛날에 말해 주던 한신 장군이나 이종찬 장군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힘내. 국가를 위해 일하는 방법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것 아니야? 물론 형은 정치적인 감각은 없어 보이니까 그냥 평생 예비역 군인하면 되는 거지 뭐.”

  사실 그 후로 난 한신 장군과 이종찬 장군에 대해서 공부를 했었다.

  “고맙다. 동생아. 내가 감히 어떻게 한신 장군이나 이종찬 장군에게 비할 수가 있겠느냐? 하지만 동생인 네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더없이 고맙구나. 군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노력한 것 같아서 다행이고 고맙구나.”

  그때 핸디폰 벨소리가 울렸다. 시커먼 골동품표 아주 오래된 폴더형 핸디폰.

  내일 어디 간다는 약속 전화였다.

  높은 곳. 흔히들 이야기 꺼내기 거북해 하는 아주 높은 곳에서 온 전화였다.

 

 

 

 

  그는 군인이자 전략가이자 전사(戰史)를 연구하는 학자였다.

  태릉에서의 생도시절 모두가 외출을 한 날 평소 궁금해 하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 도서관에를 들렀다 한다. 온 도서관을 통 털어 생도인 자신과 노년의 교수이신 듯(외부 초빙교수) 보이는 분과 딱 둘 뿐이었단다.

  그 때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이조왕조실록 중 선조실록으로, 임진왜란 중에서 패전한 신립장군의 탄금대 전투에 대한 사료를 구하고자 함 때문이었단다. 그런데 모든 실록이 다 제자리에 있는데 딱 선조실록의 탄금대 전투 부분이 보이지 않았단다. 창구에 문의를 하니 대여된 기록도 없단다.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창구 직원과 함께 한참을 찾다가 보니 눈에 그 노교수가 펼쳐보고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단다. 하여 다가가 여쭈어 보니 찾고 있는 그 책을 바로 그 분이 보고 계셨던 것이다.

  ‘자네가 생도 신분으로 이 책을 찾고 있었다니 다소 의외로군. 그래 이 책을 왜 찾고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이 그 책을 찾고자 했던 이유를 설명했고, 그날 그와 그 노교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임진왜란과 탄금대전투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인연은 이어져서 그가 최전방의 사단장을 맡았을 때도 민간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의 탐사를 통해 고고학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고, 역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이어졌다. 그분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아끼고 존경하는 사제지간으로 말이다.

  그 노교수가 바로 한국 역사학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신 두계 故 이병도 박사이시다.

 

  그와 내가 쌓였던 회포를 풀던 그날, 우리도 신립과 탄금대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약간은 오고 갔었다. 높은 곳에서 온 그 전화 이전까지는..........

  나 역시도 나름 역사에 관심이 있고, 특히 내 고장의 역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 나오던 중이라..........

  물론 그에 비하면 내 고증이나 사료나 내용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 다분하겠으나....... 나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히 자료를 구하고 정리하고 언젠가 글을 써야겠다고 준비해 오던 처지라....... 이참에, 언제고 훗날 그와 다시 한 번 이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봄에 있어서 나의 의견을 먼저 제시하는 차원에서 급하게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나의 생각과 의견을 적어 보고자 한다.

  그는 삼국지나 초한지, 이 땅위의 오천년 역사위에 펼쳐졌던 온갖 전투의 기승전결과 그 여파까지를 달달 꿰고 있는 사람이다.

  암튼, 그가 꿈을 접고 별판을 떼고 야인으로 돌아 온 것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겠으나, 오랜만에 가슴속에 쌓였던 회포를 함께 풀고 나니, 마치 먼 항해를 떠났던 형이 거센 풍랑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 돌아 온 것만 같아 , 적어도 내 가슴은 마냥 뿌듯하고 푸근하기만 했다.

훗날 다시만나 나눌 대화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쓰는 글이니 서툴더라고 급하게 써서 마무리 하고, 어서 (탑평리)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까보다.

 

 

                                                                 2014년 04월 30일.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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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592년.(임진년. 선조 25년) 4월 17일. (첫째날)

 

 

“멈추시오. 어서 배를 멈추시오. 관아에서 기별이 왔소.”

  광나루 도선장이었다.

  이제 막 약간의 사람과 네 필의 말을 싣고 강을 건너려고 하던 참이었다.

“누가 무슨 기별을 가지고 왔기에 여기까지 와서 소란이냐고 장군께서 물으신다.”

“정 판관(判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정 판관이라고? 배를 멈추어라.”

  판관이라면 종5품의 관리이다. 그 아래로 참군 등의 아래 관리도 있을 터인데, 더군다나 정 판관이라면 한성부에 소속된 관리 중에서 최고 연장자인 사람이다. 그가 멀리 떨어진 이곳 광나루까지 뒤쫓아 왔다면 이건 필시 뭔가 커다란 용무가 생겼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배가 멈추어 섰을 즈음에 허겁지겁 희끗희끗한 수염을 휘날리면 관복을 입은 초로의 사내가 하나 도선장에 올라섰다.

“판윤(判尹)께서는 어서 발걸음을 되돌리셔야만 하겠습니다.”

“어허. 이거 정 판관 아니십니까? 모처럼 한 사나흘 사냥을 다녀오겠다고 내 당부를 한지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곳까지 쫓아오시다니....... 그래 도성에 무슨 사단이라도 생겨났습니까?”

“장군. 도승지(都承旨)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백사(白沙)가 내게 사람을 보내? 갑자기 무슨 일이라 합디까?”

“금일 저녁에 조정대신들이 모두 참석하는 연회가 있을 터이니 꼭 참석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연회라 하셨습니까? 거 입에 개 거품을 물고 제 자랑이나 늘어놓다가 거기에 지치면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조정의 고관대작 나리들이나 즐겨하시는 놀이마당에 나 같은 한량이 참석해서 무얼 어쩌란 말이란 말씀이요. 찾아보니 나는 이미 사냥터로 떠난 뒤였다고 백사에게 사람을 보내시오.”

“그런 이유를 들어 사양할 것이라고 도승지께서 이미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하오나 꼭 참석 해야만 한다고 서둘러 모셔오라 엄하게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하하하하. 평소 영민하기가 이를 데 없는 백사이니 이미 내 속내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터이지. 하하하하. 그렇다면 어깃장을 잘 놓는 나의 못된 심보도 익히 잘 알고 있을 터.......... 그래. 무슨 연회라 하더이까?”

“내수사별좌 영감의 생신 축하연이라 하셨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김공량(金公諒) 그자의 생일잔치라 하셨습니까? 나보고 그런 탐관오리의 생일잔치에나 참석하라고 백사가 나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것입니까?”

“탐관오리라고 말씀하셨으나......... 왕자인 신성군을 생산하신 김귀인 마마의 오라비 되시는 분이십니다. 신성군의 외숙부가 되십니다. 판윤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모르지는 않겠사오나........ 그 같은 말씀을 쉽게 드러내심은 결코 이로운 일이 아닐 것이나 부디 유의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정 판관의 염려는 고맙게 받겠으나........ 나는 김 아무개 같은 그런 작자와는 같은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눌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백사에게는 정 판관께서 잘 둘러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사흘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가자. 어서 다시 강을 건너가자.”

판윤은 다시 뱃머리로 돌아서 갔다.

‘다시 출발이다. 노를 저어라.’

  누군가가 크게 외치자 다시 거룻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도승지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더 있으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였음에도 기어코 강을 건너고자 하시면......... 전 의주목사이셨던 장인어른께서 오셨다고 말씀 전하라 하셨습니다.”

“뭣이라고요? 장인께서 도성에 들어오셨단 말씀이십니까? 이런........ 이런........... 백사 이 아우가 끝까지......... 그래. 어른께서 언제 도성에 오셨답니까?”

“의주목사를 물러나신 뒤 북변을 돌아보시다 오늘 아침에 도성에 들어오셨다 합니다. 한성부에 들러 장군을 찾으셨으나 계시지 아니하여 도승지 영감을 찾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또한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런....... 하필이면......... 그래 어른께선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저희는 알지 못하옵니다. 다만....... 도승지께서 말씀하시길......... 해거름에 축하연에 참석하시면 모두 말씀 드리겠다 하셨사옵니다.”

“이런........ 이런......... 내가 백사 이 아우를 그냥.............?”

“북변에서 오랑캐인 이탕개를 벌벌 떨게 하시고 야인들의 소굴을 일망타진하신 판윤께서도 손아래 동서이신 도승지 영감만은 어쩌시지를 못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어허. 어허. 나야 그저 전쟁터를 내달리는 일개 무장일 뿐이지만....... 내 아우인 백사는 그 속에 능구렁이가 한 백 마리 쯤은 들어앉았을 거라는 소문도 못 들으셨소? 오죽하면 백사....... 흰 능구렁이 아니겠소....... 그나저나 장인께서 벼슬에서 물러나 돌아오셨다는데 어쩌겠는가......... 얘들아, 배를 돌려라. 아무래도 오늘은 예서 돌아가야만 하겠다. 내 어쩔 수없이 연회에 참석하기는 해야겠으나......... 내 오늘은 백사에게 오랜 은원에 대한 앙갚음을 기필코 하고 말리라. 백사 아우.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임이야. 아무렴.”

  한성판윤 신립(申砬)은 못내 아쉬움 속에 배를 돌렸다.

 

 

 

 

 

                                                              ------------

 

 

 

 

 

 

 

“한성판윤 신립 듭시오.”

“거 참 이사람. 내 스스로 조용히 들어갈 것이니 그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양쪽으로 기립해 있던 가노(家奴) 중 하나가 안쪽으로 외쳐대며 알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이런 요식행위가 못마땅하던 처지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으니 부아가 치밀고 있었으나 주변을 둘러보자니 버럭 성질을 부일 처지도 못되는 상황이었다.

  섬돌 위 대청마루에 푸짐하게 산해진미 상차림을 앞에 놓고 둘러앉은 사람들 면면을 보자니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피둥피둥하게 살이 쪄 안면에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표정으로 연실 호방한 웃음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술잔을 권하는 폼이 영락없는 개망나니 김공량(金公諒) 이었다. 그런 와중에 옆에 나란히 상석에 앉아서 맞장구를 쳐주는 한량이 바로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요, 김공량에게 잔을 건네고 정성을 다해 술을 따르는 자가 바로 우의정 이양원(李陽元)이었으니 한 나라의 삼정승 가운데 둘이나 자리를 함께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조정에서 열리는 중신회의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대청마루 아래 너른 마당에도 멍석을 깔고 천막을 치고 제대로 커다란 잔치 한마당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당이 다 차고 넘치도록 축하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조정의 관리들 이었으니 한마디로 김공량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히 나타내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수사별좌 라는 자리가 왕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나름으로 중요한 자리라고는 하나 버젓이 위로 삼정승과 육판서가 있으며, 또한 내수사별좌에 천거된 것도 불과 서너 달 전의 일이었건만 당장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그의 권세와 부귀는 삼정승 육판서 보다도 훨씬 위로만 느껴졌다. 항간에 김공량을 향해 끊임없이 뒤따르던 온갖 추잡한 소문들이 결코 헛소문은 아니리라 싶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더니만 바로 그의 팔자가 그러했다. 자신의 누이가 선조임금의 후궁으로 간택이 되었으니 인빈 김씨(仁嬪金氏)였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그의 팔자가 달라졌던 것이다. 거기에다 인빈 김씨가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더니 급기야는 왕자를 생산하기까지 하였으니 때를 같이하여 김공량의 부귀와 권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만큼 한없이 높아져만 갔던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높아만 가던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기축옥사(己丑獄事)를 통해 정여립을 제거하면서 조정의 실권을 거머쥔 서인(西人)의 영수 정철(鄭澈)이 선조임금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음에도 세자책봉을 건의하였으며, 그가 세자로 책봉시키고자 하는 이는 바로 광해군(光海君)이었다. 선조는 자신이 아직 건재함에 세자책봉의 이야기가 논의되는 것이 싫었고, 내심으로는 인빈 김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신성군(信城君)을 후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되어도 제대로 되었던 것이다.

  당시 동인(東人)이었던 이산해는 세자책봉 문제에 대하여 정철과 사전에 논의가 있었으나, 이를 동인이 새로 권력을 잡는 계기로 만들기로 하고 김공량과 짜고 음모를 꾸며냈던 것이다. 인빈 김씨가 선조임금 앞에 나아가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정철과 서인들이 광해군을 앞세워 신성군을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고변을 한 것이다. 조정은 들끓었다. 선조임금은 분노에 떨며 정철을 유배 보냈고, 윤두수를 비롯한 서인 일파는 모조리 퇴출되었다. 또한 광해군은 석고대죄 함으로써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붕당이니 파당이니 우라질........ 온통 썩어서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먼.......... 역겨운 놈들이 죄다 몰려들었어. 온통 동인들 세상이구만....... 온통 제 놈들 세상인 것이야.......’

  신립의 중얼거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온통 동인의 벼슬아치들이었다. 아님 어찌어찌 잘 보여서 어디든지 벼슬자리 하나 얻어 보려고 아부에 아첨을 하러 온 자들 뿐이었다.

  아니지 이들이 어디 모두가 다 동인이겠는가?

  유배를 떠난 정철과 삭탈관직을 당하고 쫓겨난 서인들을 두고 좀 더 강력하게 뿌리 채 뽑아야 한다니 그만하면 되었다느니 하여, 전자의 강경파들은 북인이 되고 후자는 남인이 되는 또 한 번의 초유의 파당이 수일 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들었던 바였다.

  바로 강경하게 몰아붙이자는 북인의 우두머리가 바로 야합과 밀계로 정승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산해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이 잔치판이 바로 북인들의 단합 축하연이라 할만도 하겠다.

‘그나저나 이 거랑말코 같은 백사 아우는 어찌 코빼기도 안 보이는가? 어디 숨은게야?’

  신립은 꼴 보기 싫은 고관대작들이 차지한 대청마루에서 멀리 벗어난 구석으로 백사를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부터 신립은 평소 붕당이니 벼슬청탁이니 하는 것에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군왕과 백성들을 지키려고 어떤 싸움도 마다하지 않던 일개 무장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어쩌다가 한성판윤이 되어 도성에 처박혀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도무지 몸에 배이지 않고 적응이 되지 않아 오늘도 강 건너로 사냥을 떠나려 하다가 이리된 처지였다.

“여봐라. 거 한쪽에 자리 하나 만들어서 한성판윤을 모셔라. 귀한 걸음 하셨다.” 라는 김공량이 외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지만 신립은 못들은 채 안쪽으로 저만치 멀리 걸어들어만 갔다. 아예 상종하기 조차도 싫다는 태도였다.

  이렇게 서둘러 저들을 외면한 채 어떻게든 멀리 벗어나려는 신립에게 이미 대면한 적이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신립이 반색하면서 다가서는데, 어째 한 사람은 당혹스러운 표정이긴 하나 반가운 모습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몹시 당황해 하는 불편한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두 사람 다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평복차림이었다. 자리도 잔치판을 통 털어 가장 구석진 자리로 그들 앞에 놓인 상차림도 주변의 다른 상차림에 비해 매우 초라해 보이는 상차림이었다. 한마디로 환대받지 못하는 처지이거나 신분이 미천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신립은 서슴없이 이들에게 다가섰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조선을 통 털어 가장 기개가 넘치고 협의에 가득 찬 붓을 놀리신다는 백대붕 시인이 아니신가?”

“미천한 것이 제멋대로 붓을 놀렸다고 지금 저를 나무라시는 것이 옵니까. 판윤대감. 오랜만에 대감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왜국 통신사절에 허성 서장관을 모시고 다녀왔을 때였으니 두 해가 된 듯싶습니다. 개나 말이나 통신사에 따라 갔다 왔다 하면 죄다 두세 계급씩 벼락출세들을 하던 판에 유독 백공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쏙 빠졌다 구요?”

“어허. 어찌 그런 말씀을......... 소신의 출신이 본시 전함사의 노복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천출 처지로 어찌..........”

“그렇다면 천출이니까 아예 힘든 일을 시키지 말았어야지요. 막중한 일을 맡겨 놓고 무사히 끝내 놓으니까 떡은 제 놈들이 몽땅..........”

“어허.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판윤대감.”

  우렁찬 신립의 호통에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이 모여드는 것을 느끼자 백대붕은 손사래까지 치며 서둘러 신립을 자제시키고자 하였다. 가뜩이나 한쪽 구석진 자리일망정 가시방석 같은 자리였던 것이다.

“지금 이 상차림이 무엇입니까? 다들 상다리가 부러져라 떡 벌어지게 차지하고들 앉았으면서 지금 두 사람이 받고 앉아있는 상차림이 이게 무엇입니까? 사람 차별하는 것입니까?”

“대........ 대감. 판윤 대감............”

“게 누구 없느냐? 여기 개 밥상을 썩 물리고 저기 대청마루 위에 놓인 상차림으로 당장 내오너라. 안 들리느냐? 제대로 된 술상을 썩 내오라 하지 않더냐? 손님을 초대해 놓고 이렇게 차별하라고 누가 일렀더냐? 엉? 내수사별좌께서 나 신립이 오거든 대충 냉수 한잔 떠먹여서 내 쫓으라 시키더냐? 어서 새로 상을 내오지 못할까? 내가 여기 이 개 밥상을 놓고 내수사와 겸상 술판이라도 벌여 보아야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겠냔 말이다.”

  무르익고 있던 잔치판이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 졌다. 자못 신립의 서슬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흩어져 있던 노복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놓여있던 초라한 상차림을 허둥지둥 물리더니 이내 커다란 교자상 가득 푸짐하게 산해진미가 올려 져 새로운 상차림이 나왔다.

“울화통이 치밀어 못살겠구나. 술도 동이 째로 내오너라. 내 오늘 막역한 교우들과 맘껏 취해야만 하겠다. 어서 술을 동이재로 내어 오너라. 잔도 커다란 사발로 바꿔 내오너라.”

  그때였다.

“이사람 판윤. 자네 성정이 괄괄하다는 것이야 조선팔도가 다 아는 사실이거늘 오늘 같은 좋은 날에 어찌 언성을 높이시는 것인가? 살살 이야기 하여도 다 될 것을........ 부디 자중해 주시게나. 어디........ 내 술 한 잔 받으시겠는가?”

“영상대감 아니십니까? 그러게 말씀입니다. 내수사별좌대감을 축하하는 자리라 조근 조근 막역지우들과 술 한 잔 하려할까 했으나 술도 없고 안주도 없는 술상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더랍니다. 다행이 제대로 차려진 술상이 새로 나왔으니 이제 다시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지를 않겠습니까?”

  영의정 이산해였다.

  잔치판이 한참이나 무르익어가던 참에 느닷없이 신립이 이유 없이 난동을 부린다 생각한 김공량의 난처한 표정을 살피던 이산해가 대신 나섰던 것이다. 그만큼 김공량의 위세가 드높은 것인지 영의정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나서는 이산해의 처신이 어떠한 것인지는 보고 있는 사람들 마다 다 제각각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술이 좀 과하여 받을 수가 없겠네만, 한성판윤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네를 위해 내가 술 한 잔 따라주고 싶네만.”

“대감께서 제 잔도 받으실 것이 아니시라면 어서 대청으로 오르시지요. 대감의 뜻을 받은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또....... 실은 이미 여기 있는 김여물 장군과 술동이째로 벌주를 약속해 놓았기에 영상께서 이번엔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장군과 제가 쌓인 은원이 좀 있거든요.”

“허허. 그러신가? 그렇다면 내 자리로 돌아가겠네. 아울러 두 사람간의 은원도 조용조용 술 한 잔 하면서 말로 풀어내길 바라겠네.”

  영의정 이산해는 다시 대청마루로 돌아갔다.

  신립의 이야기 속에 두 사람의 막역지우를 거론했으며, 한 사람이 노비출신 의협시인인 백대붕이었으니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김여물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지금 몹시도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과 태도로 잠시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장....... 장........ 장군...........”

“자. 자. 이제 다들 편하게 자리하십시다. 내가 두 분을 막역지우라 표현하여 당황들 하셨습니까?”

“소생은 이미.........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일개 미천한 필부일 뿐이며.......... 일전에 제가........ 실언을 하였던 것에 대하여.......... 장군께서 알고 계시다는..........”

  김여물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실로 처참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계속해 보시지요.”

“몇몇........ 평소에 꽤나 막역한 하급 무장들끼리 모인 술자리였기에........ 두서없이 나온.........”

“취중에 내 뱉은 실수였으니 모두 이해해 달라 이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저도 술이 깨고 나서 그 자리에서의 일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허나 사내대장부로 어찌 술 때문이라 핑계를 대고 회피를 하겠습니까? 제가 그 같은 망발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여 장군께서 내리시는 어떤 처벌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다만........ 부족한 소치에서 나온 엇된 소리였으니 부디 장군의 마음에 담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처벌이니 어쩌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취중에서 하셨다고는 하나 그 말을 분명 기억하고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제가 어떻다고 판단되어 보이십니까? 술에 취했을 때와 술이 깨었을 때의 제가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장......... 장.......장군.......... 어떻게..........”

“대답해 보십시오. 여전히 개망나니 고집불통 일개 싸움꾼으로 보이십니까?”

  김여물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맺힌 은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지난해까지 김여물은 의주목사로 부임해 있었다. 그런 중에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들이 꼬이듯 생겨났고 마침내 그는 의주목사에서 파직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좌의정 유성룡의 적극적 천거에 의하여 권율(權慄)이 부임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권율은 바로 한성판윤 신립의 장인이었던 것이다.

  파직되어 일개 평민으로 도성에 돌아온 그를 평소 어울리던 무장들이 모여 위로하는 술자리가 벌어졌었다. 술잔이 돌고 돌아 모두가 얼큰해 졌을 때, 이야기가 세상 돌아가는 정세로 들어섰고 후임으로 부임한 권율에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사위들인 백사 이항복과 신립에 대해서 꼬리를 물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쟁쟁한 사람들 아니었겠는가? 도승지 이항복이야 선조임금도 늘 곁에 두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재사요, 신립이라면 당대 조선팔도에 원균과 더불어 가장 으뜸 되고 촉망 받는 장수가 아니던가?

“병법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던가? 자고로 싸움질 잘하는 것이야 용장(勇將)이 으뜸이겠으나 용장은 지장(知將) 만 못하고, 지장은 덕장(悳將) 만 못하다 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하늘의 뜻이 더해지는 복장(福將)이야말로 진정 으뜸 장수라 할 만할 것이야. 아니 그러신가? 하여 작금에 조선에서 무장이라 치면 원균과 신립을 꼽고 있는데........ 글쎄. 내가 보기에.......... 원균은 용장이긴 하지. 보탠다면 지장 근처에 까진 가겠으나 덕이 부족해. 은근과 끈기도 부족하고.......... 한마디로 일개 성주는 되겠으나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솔해 지키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은 장수라 하겠고........ 신립이라........ 신립은........ 한마디로 복장이라 해야겠지. 여기서 복장이라 했으니 그럼 하늘이 낸 장수인 복장(福將)이냐? 글쎄.......... 아무 생각 없이 단순무식하게 저돌적으로 싸움판을 휩쓸고 다니는 싸움대장 정도라 해야겠지. 헌데 어찌된 일인지 그런 무모한 싸움 때 마다 운이 따라 승리를 거머쥐었으니 지지리도 운이 좋은 복장이라 해야겠지. 원균의 발치쯤으로 본다 할까.............” 라는 이야기를 스쳐 지나는 말처럼 김여물이 내뱉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소문으로 번져나가다가 마침내 신립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분노가 치솟았다. 치가 떨렸다. 그런 말을 내뱉은 자를 잡아다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이것은 무장으로서 수치였다. 불명예였던 것이다.

  이를 갈며 치솟는 분을 억지로 참고 있던 중에 그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가 바로 열 살 아래의 동서인 백사 이항복이었다.

  차마 손아래 인척인 처지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으나, 김여물이 말했다는 그 소문이 자신의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는다는 뜻밖의 놀라운 말을 이항복은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이 기회에 스스로 자신을 한 번 깊이 되돌아보고 성찰을 가진 연후에 그 분함을 풀 방도를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라 했다.

  신립은 몇날 며칠을 홀로 들판에 나아가 말을 달리기도 하고 허공에 화살을 날리기도 하고 온종일 내리 퍼붓는 빗속에 마냥 서서 먼 산을 바라다보기도 하고, 커다란 바위벼랑을 면전에 두고 면벽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여러 날을 보낸 후에야 점차 분노가 가라앉고 새롭고 신선한 그 무엇인가가 폐부를 비집고 그의 가슴을 채우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본래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많은 것에 있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대답해 보시오. 김장군. 내가 어떻게 보입니까?”

“그........ 그 일이 있은 지 꽤나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소생 같은........ 미천한 일개 필부의 헛소리에......... 장......... 장군께서는 어떤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변화가 있으셨다면 소생이 미처 깨닫지 못하였음이니.......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고쳐먹겠으나.......... 아니시라면.........”

“아니라면?”

“소생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부닥치고 있었다.

  서로 더 이상은 물러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립은 옆에 칼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단칼에 앞에 서서 노려보는 자의 목이라도 칠 자세였다. 또한 마주선 김여물의 눈빛에선 당장 목이 떨어질지언정 자신의 생각이 그릇되었다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휩쓸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신립이었다.

“내 하나만 더 물읍시다.”

“말씀하시지요. 장군. 어떠한 물음이시던 진솔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말씀입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전쟁에 나서면서 장군께 함께 가자면 따라 나서시겠습니까?”

“명령이십니까?”

“명령이라..........명령이면 마지못해서라도 따라나서고 명이 아니라면...........”

“장군께 제가 필요한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라의 명이 있으면 당연히 따라 나설 것이요. 나라의 명이 아니라 해도 장군께 제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따라 나설 것입니다.”

“기꺼이 따라 나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많이 부족한 사람임을 아시면서요?”

“제대로 싸우는 법을 모르는 저를 장군께서 필요로 하신다면 어디에다 쓰시겠습니까? 하지만 어디에든 장군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따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신립이 용장을 지나 지장을 지나 덕장 가까이 이르게 되겠군요. 고맙소. 김장군. 지난 일은 벌써 모두 잊었음이요, 오늘일은 내 결코 잊지 않으리다.”

“많이 변하셨습니다. 장군.”

“허허허. 사람이 어디 하루아침에 변한다합니까? 좀 더 지켜봐 주십시오. 그나저나 도승지 이 사람은 사람을 불러 놓고 어찌 코빼기도 안보인단 말입니까? 자자. 이제 정말로 맘 편히 술이나 한자 드십시다. 자. 받으시지요.”

  신립이 커다란 대접에 가득 술을 따라 김여물에게 건넸다. 이어서 백대붕의 잔도 가득 채웠다. 김여물이 신리비의 잔을 채운 뒤 모두 단숨에 들이켜 잔을 비웠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기저기로 모닥불이 지펴지고 사방으로 횃불을 밝혀 마치 대낮같았다.

  어두워지면서 풍악이 울려 퍼지고 어디서들 죄다 끌어왔는지 분바른 기생들이 수십 명 몰려나와서는 여기저기 술판 사이를 오가면서 흥을 돋우고 있었다. 일부 술에 취한 취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흥에 겨워 춤판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어째 저희를 불러주신 좌상대감도 여태 보이시지를 않습니다. 좌상께서 그제 사람을 보내셔서 오늘 연회에 김여물 장군과 함께 꼭 참석하라고 하셔서 저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제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인데.........언질을 하셨던 판윤께서는 오셨는데 양환 현감과 장세강 어르신도 아직 당도하시지를 않았으니 말씀입니다.”

“좌상께서 내가 올 것이라 언질이 있으셨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르셨습니까?”

“그러게 말씀입니다. 저는 아우인 도승지의 초대인 것으로 알고..........”

“이 연회에 참석을 안 할 수는 없으니 눈도장이나 찍고 자리를 옮겨 긴히 나눌 말씀이 있으시다 하셨습니다. 함창현감을 지낸 양함이 남쪽지방을 둘러보고 올라왔다 했으며, 의주목사에서 물러난 권율 어른이 북쪽지방을 둘러보고 당도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여 함께 모여 나라의 정세에 관해 이야기를..........”

“제 장인어른이 오늘 도성에 당도하셨다는 것을 좌상께서 이미 아시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이런........ 이런........ 좌상과 백사 이 사람이 미리 짜고.........”

  그때였다.

  대문밖에 조금 소란스럽다 싶더니 이내 커다란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좌상대감 듭시오.’

‘도승지대감 듭시오.’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허겁지겁 문안에 나타난 사람은 분명 좌의정 유성룡(柳成龍) 대감이었고 그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틀림없는 도승지 이항복(李恒福) 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나타난 이 두 사람의 표정과 발걸음은 여느 때와 달랐다. 양반가의 관리의 체모를 나타내는 느긋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으면 시뻘겋게 상기된 두 사람의 표정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허. 많이 늦으셨습니다 그려. 이거 두 분 기다리다 밤이 새는 줄만 알았습니다. 어서 어서 자리에 오르시지요.”

  김공량이 버선발로 섬돌아래까지 내려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어서 모든 풍악을 물려주십시오. 아주 중요한........ 화급을 다투는 사태가..........”

  노련한 정치가 유성룡이 얼마나 서둘렀음인지 말을 더듬기까지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영의정 이산해가 거든다고 나섰다.

“아이고 이보시오. 좌상. 무얼 그리 서두시오. 천천히 해도 그만인 것을........ 어디 불이라도 났답니까? 아니면 어디 오랑캐라도 쳐들어 온 답니까?”

“그렇습니다. 영상대감. 변란이........ 변란이 일어났습니다. 왜구가 쳐들어 왔습니다.”

“뭣이라고요? 왜놈들이 쳐들어 왔단 말씀입니까? 기어코요?”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이렇다 저렇다 말도 많고 소문도 무성하더니만 기어코 사태가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여기저기 이 뜻밖의 놀라운 사실에 땅바닥에 벌러덩 넘어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용들 하시오. 조용들 하시고 지금부터 제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왕좌왕 어수선해지는 상황을 헤집고 나선 사람은 도승지 이항복이었다.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었음을 확인한 후에 도승지가 이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 전에 경상좌수사 박홍으로부터 장계가 올라왔습니다. 지난 4월 13일에 부산 앞바다를 통해 대규모의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장계였습니다. 다음날새벽인 14일에 부산성이 함락되었고, 또 다음날인 15일에 동래성이 부사 송상현의 죽음과 함께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에 탄성과 함께 절망적인 탄식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전쟁이 터졌다는 말씀입니다. 정승과 판서들은 지금 즉시 조정으로 나아가 군왕폐하를 뵙고 난국의 수습책을 타개할 것입니다. 나머지 모든 관료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시국이 비상사태임을 대비토록 할 것이며, 무관들은 당장 싸움 준비를 갖춘 후 군부로 모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온 나라의 비상사태임을 밝힙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

  장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미 술에 취해 방향감각마저 상실한 자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헤매는 추한 꼴이 재연되고 있었다. 술병들이 깨지고 잔칫상이 뒤엎어지고 모두가 허둥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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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게 백사. 전쟁이라니? 왜적 놈들이 노략질하러 몰려 온 것이 아니라 군대를 몰고 쳐들어왔다는 말이신가?”

“그렇습니다. 입지(신립의 호) 형님.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전쟁. 전쟁이라........ 그래. 왜군의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아직은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홍의 장계에 의하면 부산 앞바다가 까맣게 뒤덮였을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의 왜군 함선이 몰려들어왔다고만 했사옵니다. 부산성의 정발 장군과 동래성의 송상현 부사가 싸우다 순절했다는 소식과 왜구들이 매우 빠르게 북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적장이 누구라던가?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이라던 그놈이 직접 왔는가?”

“그 점도 아직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장계가 올라오고 있는데, 변란이 생겼다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전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렇다면 실로 큰 일이 아니겠는가? 전황 파악이 되어야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니겠는가? 전하께서는 지금 어찌하시고 계시는가?”

“요즘 들어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하시던 중에 뜻밖의 변란 소식을 들으시고 심한 충격을 받으신 듯 보였습니다. 지금은 어의가 모시고 계십니다. 성심을 추스르시는 대로 어전에서 대책회의를 하신다 하시어 급하게 정승 판서들을 모시러 화급히 달려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야말로 서둘러 어전으로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장계들이 올라오는 대로 잘 살펴서 우선 정황파악을 마쳐야 하지 않겠는가? 도승지가 할 일이 아닌가 말씀 일세?”

“그렇습니다. 형님도 뵈었으니 소제는 서둘러 궁궐로 돌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장인어른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저도 아직 뵙지를 못하였습니다. 좌상대감께서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님을 꼭 좀 모셔오라고 하셔서.........”

“그럼 오늘일이 다 좌상대감께서 생각하신 일이라 그 말씀이신가?”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자네는 서둘러 대궐로 돌아가시게. 밖으로 나가 남쪽 모퉁이 돌아서 느티나무 아래 가면 내 수하들이 셋이 있을 것이야. 내가 그러더라고 하고 내 말을 타고 가시게나. 내일 수하를 시켜 찾으러 보내겠네. 아니지......... 한성부에 들렸다가 나도 대궐로 갈 것일세.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내 말을 타고 가시게. 정승 판서들이야 다들 타고 갈 가마가 준비되었지 않겠나. 어서 서둘게.”

  신립이 이항복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도승지만 서둘러 보낼 것이 아니라 판윤도 서둘러 갑옷과 칼이라도 챙겨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돌아다보니 좌의정 유성룡이 몹시 당혹스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좌상대감. 소신에게 칼이나 갑옷이야 항시 잘 준비되어 있지를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전장으로 달려갈 만반의 준비가 항상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명만 하십시오.”

“서둘러 한성부로 돌아가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며, 날이 밝고 백성들이 이 변란 소식을 접하게 되면 적지 않게 사방에서 소요가 생겨날 것일세. 치안에 확실한 방비책을 미리 세워두어야만 할 것일세. 곧 인정(밥 10시)이 될 것이니, 오늘 같은 날을 파루를 타종하는 것도 철저해야 만할뿐더러, 행인들의 단속을 보다 엄중하게 하시게나. 단 각지에서 올라오는 장계들을 지체 없이 조정으로 들여보내고......... 그런 조치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싶으면 서둘러 대궐로 들어와 무관들과 합세해 대책 세우는 것을 거들어야 만 할 것일세. 아시겠는가?”

“대감 말씀 받들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다른 사람을 보내서라도 작금의 상황을 알리시게. 권부사(권율)께서 지금 숭례문(남대문) 밖 주막에서 경응순이란 사람과 함께 우리들 모두를 기다리고 계실 것일세. 이 상황을 알려 주시게. 혹시나 해서 자네들이랑 함께 왜국과 명나라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일이 먼저 터져버리고 말았네. 일단 전하를 뵙고 대신들과 대책을 논의한 후에 상황을 봐서 내가 그리로 가겠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일단 그곳 주막에 머물러 달라 전해주시게.”

  유성룡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신립도 한바탕 난리가 휩쓸고 지나간 김공량의 대궐 같은 집을 나왔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파악했음인지 밖에 두었던 수하 셋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립이 발걸음을 멈추어 서서 뒤따라 나온 김여물과 백대붕에게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숭례문 밖 주막으로 가 계시는 것이 좋을 듯싶소. 제 장인 어른께 지금의 일을 모두 말씀드려 주시고, 일단 아침까지 기다려 주시면 제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고, 도성의 치안에 대한 방비를 마친 뒤 어전회의의 결과를 본 후에 곧 따라가겠습니다. 애들아. 두 분께도 너희가 타고 온 말을 내어드려라.”

“아닙니다. 장군의 말씀을 들었으니 발걸음을 빨리 해 주막에 가 있겠습니다.”

“성문에 당도하시기 전에 파루가 울릴 것입니다. 오늘은 통금도 엄할 것이고요. 여기 말을 타고 가시도록 하세요. 공철이. 네가 함께 가서 이 분들이 성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확인하고 오너라.”

“예. 장군.”

  공철이라 불린 수하가 먼저 말에 올랐다.

  그러자 김여물과 백대붕도 수하들이 건네는 말을 잡아 올라탔다.

  말을 탄 세 사람이 어둠속으로 말을 달려가려 할 때, 무슨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 신립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

“공철아. 너 나를 따라 마포나루 저자거리에 가 본적이 있었더냐?”

“네. 서너 번 장군을 따라 가 본적이 있습니다.”

“만덕 노인을 알겠느냐?”

“어물전 구석에서 소금 팔던 허연 수염에 허리 꼬부라진 영감말씀이십니까?”

“바로 맞았다. 보면 얼굴도 알겠느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서 내가 보자 한다고 모셔오너라.”

“그 영감은 저자거리서 하루하루 겨우 먹고 사는 것 같던데......... 저자거리도 다 파 했을 야심한 시간에 어디 가서 영감을 찾으면 되겠습니까?”

“마포나루 어디든 번듯한 가계나 커다란 대문 앞에서 소동을 부려 사람들이 모이면 마포상단의 전객주를 찾는다고 하여라. 그리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포나루의 최고 부자가 마포상단의 전객주인 것은 숱한 소문으로 알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했습니다. 전객주를 찾으면 영감을 만날 수 있다는 말씀이신데...........”

“이놈.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 아니더냐? 마포나루를 다 뒤져서라도 내가 전 객주를 찾는다고 하고 다니다 보면 익히 네가 아는 얼굴이 나타날 것이라는 대두?”

“알겠습니다............ 만........... 거참. 다녀오겠습니다.”

“혹시나, 누군가 나타나기는 하되........... 병환 중이니......... 타지방에 출타 중이니..........그런 꼼수를 쓸 수도 있겠구나.”

“그럴 땐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내 말을 분명하게 전해라.”

“만덕 노인이 직접 새벽 파루가 울리기(새벽 4시) 전 까지 숭례문 밖에 반듯이 도착해 있어야만 할 것이라고.”

“아프다거나 출타중이라 하면...........”

“도성 문이 열리는 즉시 한성부의 모든 군사들을 풀어서 마포상단의 모든 점포를 폐쇄하고 모든 상단 식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체포하겠다고 전하여라.”

“싸그리 잡아들여 초토화 시키신다고 하셨다 전하겠습니다.”

“아예 죄목도 가르쳐 주고 오너라.”

“죄목이요? 영감이 무슨 죄를 졌습니까?”

“내가 그러더라고 전해라. 왜놈들과 교통한 죄라 하더라고.”

“왜놈들과 교통이요.............. ?”

“그러면 그가 올 것이다. 서둘러 가서 그를 찾아라.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3

 

 

 

  1592년.(임진년. 선조 25년) 4월 18일. (둘째 날)

 

 

  자정이 지난 지가 한참이 지났으니 어느덧 시간은 삼경을 지나 사경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궐 안은 온통 시끌벅적 어수선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지난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또는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책임들을 맡지 않으려고 모드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저자거리 좌판이야 엽전이나 물건이라도 오고가느라 시끄럽다지만, 그 어렵다는 과거를 통해 배출한 조선팔도의 걸출한 사대부들은 꺼내 놓은 물건도 하나 없이 입으로만 열심히 거래들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이따금씩은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까지 해대면서 열변을 토하는 꼴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거 조선팔도의 떼쟁이라면 떼쟁이, 날강도라면 날강도를 죄다 대궐에다 불러 모은 꼴불견이 아닌가 싶기까지 했다.

  왜놈들이 벌떼처럼 쳐들어 와서 전쟁이 벌어진 상황이 아닌가.

  국토를 유린하고 관아를 불 지르고 백성을 무자비하게 끌어다가 목을 베고 있는 상황이라는데 말이다. 왜구들이 이곳 한양의 궁궐을 향해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다는 데 말이다.

  한마디로 임금의 목을 따고 조선팔도를 차지하겠다고 달려드는데 말씀이다.

“어허. 모두들 좀 자중들을 하세요. 자중들을........ 누가 보면 시전 잡배들 싸우는 줄로 알겠습니다. 왜구가 쳐들어 와 전쟁이 벌어진 것이지 어디 문무백관들을 죄다 이곳 어전회의에 모아다 놓고 우리끼리 전쟁하자는 것입니까? 그대들의 그런 모습을 억지로 참으며 지켜보고 있는 짐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이 모두가........ 모든 것이 다........... 짐의 부덕한 소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 짐이 부덕함 때문이란 말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북받치는 설움을 토해내기라도 하듯이 임금이 신하들을 향해 일갈을 날렸다.

  바로 조선의 열 네 번 째 임금인 선조였다.

  중종임금의 서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 왕의 직계가 아닌 방계에서 등극한 첫 임금이었으니 실로 그 자신인들 임금이 될 것이라고 꿈엔들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어찌되었던 그가 임금으로 등극하였고, 정통성이 부족한 상태로 제위에 올랐으니 그 뒤로 상당한 부작용이 뒤따랐음이 너무도 자명한 수순이었다. 그는 평생을 혈통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왔고, 자신의 부족한 기반을 극복하려 신하들을 이리 저리 파벌로 나누게 하였고, 이편도 들어 주는 척 하다가 저편도 들어주는 척 하면서, 신하들 끼리 서로 반목하고 싸우게 만들어 놓고는 먼발치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관망들을 했다. 누구든 꼬리가 잡히든지 싸움에서 밀리면 가차 없이 처단해 버렸다. 그런 통치행위를 반복해 가면서 그것이 자신이 스스로 존립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그는 심약하고 소심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신임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불쑥 자신을 향해 칼 끗을 겨눌 것 같은 두려움에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살아야 만 했다. 누구를 지명하는 일에도 정책을 입안하는 일에도 늘 그는 소극적이었다. 다소의 언질만으로 신하들이 알아서 일을 만들도록 하였다. 정책의 입안도, 그 결과도 자신이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신하들의 이야기 잘 들어주고 늘 여유로운 미소로 느긋하게 용상에 앉아만 있는 차분하고 조용한 임금이었으나, 실제는 조정안의 모든 세세한 하나하나까지 살피고 낌새를 차리고 결말을 내기까지 대단히 무섭도록 집요한 사람이었다. 적당히 구스를 때에도 치밀하게 암계를 지시할 때에도 그는 항상 밀실에서 은밀하게 당사자만 불러서 일처리를 해나갔다. 그때는 표독하고 잔인한 그의 눈빛과 말투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잘 드러났다.

  시종일관 그런 처신으로 종사를 다스려 나온 지가, 그가 보위에 오른 지가 벌써 이십오 년째였던 것이다.

  선조가 자신의 한탄을 늘어놓다가 다시 용상에 주저앉기를 기다려 영의정 이산해가 앞으로 나아가 넙죽 엎드렸다.

“전하. 천부당만부당 하신 말씀이옵니다. 속히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한 나라의 임금에게는 잘못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사옵니다. 하늘이 내리셨으니 그 어떤 잘못도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이 같은 사태는 모두......... 모두가 저희 같은 무능한 신하들이 전하를 잘 보필하지 못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전하. 부디 신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전하.........”

  이산해는 크게 설움이 북받치기라도 하는 것인지 거의 울면서 통곡을 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우의정 이양원이 이산해의 옆에 넙죽 엎드리며 하소연했다.

“신들을 죽여주십시오. 이 모두가 신들의 부족함 때문이니........ 전하. 신들을 죽여주십시오. 전하.”

  가을 태풍에 볏단 쓰러지듯이 여기저기 연이어 모든 신하들이 죄 다 엎드려 대성통곡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꼴 갑들 하고 있네? 정말로 뒈지고 싶은지 아닌지 어디 칼을 왕창 싸다가 하나씩 나누어 줘 볼까? 저런 놈들이 백관이라고 자리란 자리는 저들끼리 다 차지하고 앉았으니........ 거기 당신도 똑 같아. 소갈딱지도 없는 째마리 같은 위인을 용상이라고 차지하고 앉혔으니........ 정여립이나 조헌 같은 사람을 잘 도닥거리고 살았으면 오늘 같은 이런 난리도 안 겪었을 거고. 이 환란의 모든 책임 중심에는 바로 당신이 있는 것이야. 임금인 당신.”

  엎드리고 오열하는 문무백관이라는 자들의 속보이는 처신을 역겨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맨 뒷줄에 태산처럼 우뚝 서서 뚫어져라 앞을 노려보고 있는 신립의 자조석인 독백이었다.

  차마 자칫 했다가 당신이라고 임금에게 손가락질이라도 했다가는 그 뒷일을 감당해 낼 수 없었으리라.

  주변을 둘러보니 좌의정 유성룡이 임금을 부액이라도 할 것처럼 하면서 무슨 귓속말을 건네느라 남들처럼 엎드리지 않은 모습이었고, 신립 자신과 두세 명만이 끝내 부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내 여기 있는 모든 대신들의 마음을 잘 알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정승 판서 중에는 이미 고령이신 분들도 계신데 당장 어떤 결론이 돌출 될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렇게 마냥 밤을 지새울 일만도 아닌 듯싶습니다. 모두들 부서나 처소로 돌아들 가세요. 날이 밝은 후에 다시 모여서 방도를 찾아보기로들 하십시다. 내 수라간에 일러놓을 터이니 돌아들 가시기 전에 간단히 요기라도 하고들 가십시오. 우선 좀 쉬었다가 다시 하기로 합시다.”

  선조는 용상에서 일어나 어전을 나갔다.

  나가는 그의 등 뒤로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라질. 성은이 망극은 무슨......... 처먹을 것 주면 무조건 성은이 망극이야? 난리가 났다는데 한두 끼 굶는다고 금방 뒈지느냔 말이야? 우라질.........”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신립이 혼자 중얼거린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주변에 엎드려 있던 많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신립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당황해 하지 않고 뚫어져라 이들의 시선을 환대하듯 노려보았다.

“상황이 이쯤 되었으면 평소 이런 환란에 대해 관심 있게 생각했었고 나름 소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불러내다가 사람 손 하나라도 거들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둘러선 신하들의 중간쯤에서 중론을 모아보자는 의도로 생각을 발표하였다.

“어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드러내 보시지요?”

“지난해, 왜국과의 통교는 아니 된다면서 왜국의 사신 목을 베어버리라고 도끼를 메고 석고상소를 올린 조헌이라는 사람도 있고........ 회령으로 유배를 간 윤두수나 경흥에 유배된 백유함 등이............”

“아니 될 말씀이요. 조헌은 툭하면 전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불가하고, 윤두수나 유공진, 백유함은........ 더더욱 아니 될 말씀이요.”

“왜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안 된다니까요? 절대 불가합니다. 정말 모르셔서 그러시는 겁니까?”

“서인이라서 안 된다는 것입니까? 동인이 아닌 서인이라 서요?”

“어허. 이 사람이 점점......... 글쎄 안 된다니까요.”

“파직되고 유배까지 간 사람들입니다. 작금에 어디 서인이라고 변변하게 남아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서인은 이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추수를 마쳐도 나락 몇 알은 남겨 놓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인지상정이라던데........ 유배로 모자라 아주 시를 말려야만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설사 그렇다 쳐서라도 나라에 난리가 났습니다. 전쟁이라고요. 누구라도 도움이 되겠다 싶은 사람이라면 데려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왜구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서 녹을 먹던..........”

“어허. 왜 자꾸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까. 안되다 하지 않았습니까?”

  자칫하면 화를 입을 수도 있는 이 소란의 한가운데로 스스로를 몰고 들어가 한바탕 논리를 바탕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는 바로 예조판서 이원익(李元翼)이었다. 그의 호가 오리(梧里)이기에 모두들 놀리는 뜻으로 오리대감이라고 불렀다.

  한편 이원익의 서슬 시퍼런 공세에 등줄기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종일관 불가를 외쳐대고 있는 자는 바로 영의정 이산해의 아들 이경전이었다.

“자. 자. 두 분 다 논쟁을 잠시만 멈추세요. 내가 듣자니 두 분의 말씀의 뜻은 충분히 알아듣겠습니다. 예판대감의 말씀 충분히 공감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낮다고 했는데 이런 변란에 누구든지 도움이 된다면 모셔다 힘을 보태야만 하겠지요. 충분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런가 하면 건저문제가 수습이 된지 아직 얼마 되지를 않았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결정하실 전하의 속내가 어떠신지 지금 당장은 우리 모두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니 당장의 고성이 오가는 논쟁은 그쳐주십시오. 그 문제에 대하여 여러 대신들과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를 해 본 후에, 뜻이 모아지면 그땐 전하께 건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히 그리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저를 믿으시고 일단은 논쟁을 접어주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지요? 그리고 모두들........ 잠시만 저를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의 고성이 오고가는 상황을 중재에 나선 좌의정 유성룡이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전하께서도 안으로 드셨으니 여러 대신들도 일단은 돌아들 가십시다. 날이 새면 또다시 이곳에 모여 논의가 있을 것입니다. 돌아들 가셔서 일단은 잠시라도 쉬기로 합시다. 도승지와 몇몇은 남아서 올라오는 장계를 살펴 정황을 판단해야 할 것이며, 정장 앞에서 나이든 노인네들만 떠들었지 실제 전장을 누비며 왜구들과 싸워본 무장들이나 젊은 신진 관료들의 의견은 하나도 들어보지를 못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쉬면서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어울리면서 이 벌어진 정쟁에 대한 다양하고도 최선의 대책이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도록 하십시다. 다양하고 많은 의견들이 모아져야만 하겠습니다. 최선의 방책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겠으며, 또 그 방책을 곧바로 실전에 투입하려면 사전에 다방면으로 충분한 준비가 뒤따라야만 하겠습니다. 그런 모든 분야를 통 털어서 의견들을 모아 주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지요? 날이 샌 후에 만납시다.”

  유성룡이 손을 내밀어 이산해와 이양원 등 원로들을 모시고 어전을 나갔다.

  신려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신립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 그 옆으로 도승지가 다가왔다.

“정황은 새롭게 파악된 것이 있는가?”

“왜구가 무자비하게 살육과 방화와 약탈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뿐입니다. 빠르게 이곳 도성을 향해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죽거나 포로가 되지 않았다면 병사나 백성이나 왜구의 무자비함에 겁을 먹고 산속으로 도망쳐 흩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고을의 수령들조차도 도망치기에 바빴는지 적정을 제대로 살피거나 파악해 올리는 자가 아직 없습니다. 참으로 심각합니다.”

“불의에 기습을 당해 최초의 전선이 쉽게 무너졌음이며, 오랫동안 당쟁만 있었지 전쟁에 대한 경험이나 대비가 없었으니 지방에 파견하여 주둔시킨 방어진이 너무도 쉽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지. 어디까지 물러서야 하는지 어디쯤에 전열을 가다듬어 방어진을 쳐야만 하는지....... 일단은 적정이 파악되고 적의 전술을 알아야만 대처가 쉬울 것이네만 안타깝구먼. 어쩌겠는가? 제대로 된 지방의 군관이 얼마쯤은 있지 않겠는가?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봐야지. 자네는 올라오는 장계를 보다 유심히 잘 살펴보아 주시게. 나는 한성부에 잠시 들렸다가 아무래도........ 도성 밖에를 잠시 다녀와야만 하겠네. 내 할 말은 아니겠으나........ 작금의 이런 상황에 자네가 도승지라서 조금은 안심일세.”

“너무 과한 칭찬이십니다. 형님. 그러시지요. 저도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형님께 곧바로 기별을 드릴 것이니, 장인어른께 인사말씀 전해주시고 현장의 소식이 있으면 제게도 기별을 보내 주십시오.”

“그러겠네.”

  이번에도 신립은 이항복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위로를 건네며 어전을 물러나왔다.

  계절이 봄의 뒷자락을 끌며 서서히 여름을 향해 가는 시기였으나 새벽의 밤공기는 제법 한기를 느낄 만큼 서늘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밤하늘 가득 수를 놓고 있었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하늘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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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도성의 하늘위로 파루(罷漏)가 울렸다.

  육조거리 종루에서 서른세 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무겁게 도성의 짓누르고 있던 어둠을 멀리멀리 내치고 있었다.

  이제 막 통금이 해제되었음인데 벌써 도성 남쪽의 숭례문이 육중한 삐걱 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리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도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새벽같이 무엇이 그리 급한 일인지들 모두가 하나같이 매우 서두는 모습들이었다.

  밤새 싸늘한 밤공기와 싸우며 졸음과 싸우던 파수군 조차도 몰려드는 행인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한구석으로 쫓겨 가서 참을 수 없는 하품을 연실 토해내고 있었다. 다른 포졸 하나는 아예 성문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모두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기에 바쁜 사람들 뿐 이었지 도성에서 나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포졸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방금 전까지 졸고 있었던 표정들을 싹 감추고는 지니고 있던 장창을 가슴 앞쪽으로 바짝 당겨서는 약간은 긴장되고 당황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밤새 여러 필의 말들이 먼 남쪽지방으로부터 장계를 가지고 들이닥쳤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남쪽에 왜적이나 산적이라도 나타났다 보다 하는 의구심이 든 정도였는데, 파루가 울리자마자 새벽같이 또 파발마 소리가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포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요란한 말울음 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멈춰 섰는데도 도성 밖으로는 밀려드는 행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뿔싸. 밖이 아니라 안이다 안. 우라질. 어떤 양반이 이 벽두새벽부터 납신단 말이여? 밤새 번을 선 당상관들이야 퇴청하려면 아직 멀었을 터이고........ 아님........ 밤새 장계가 올라오더니만......... 새벽같이 파발이 출발하려나?’

“모두 줄을 서지 못하겠느냐?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더 지체된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른다는 말이냐? 얘들아. 한쪽 길을 터라. 한성판윤께서 납신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낯짝 한번 보이지 않던 군관이 불쑥 나타나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신립이었다. 새벽같이 숭례문 밖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철이........ 공철이 어디 있느냐? 오지 못한 것이더냐?”

“소인 여기 당도하였습니다. 파루가 울리고 장군의 명이 있기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숭례문 담장 밑에서 말고삐를 움켜잡고 서있던 사내가 신립에게 읍으로서 예를 갖추었다.

“그런데 어째 혼자더냐? 마포상단을 찾지 못했더냐?”

“가르침대로 하였더니 마침내 마포상단 전객주를 만났습니다.”

“그럼 전객주는 지금 어디 있느냐?”

“장군께서 우려하셨던 바대로..........”

“미리 알고 도망이라도 쳤더냐?”

“아닙니다. 전객주는........ 병환 중이었습니다.”

“병환? 내 분명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더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셔오라고......... 정히 안 되면 체포해서 끌고라도 와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장군 말씀은 잘 알고 있사오나 그것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소인이 직접 확인을 했사옵니다. 아무래도 다시 일어서기가.......... 하여 시신으로가 아니고서는 모셔올 방도가 없었사옵니다.”

“어허. 어허. 아니 된다는데도. 그만큼 막중한 일이라 하지 않았더냐? 아니 되겠다. 어서 앞장을 서거라. 이미 저승길로 떠났다 해도 내 기어이 쫓아가서 노인을 만나봐야만 하겠다. 어서 앞장을 서거라.”

  신립은 당혹해 하고 있었다.

  그 정도 당부를 해서 공철을 보냈으니 새벽 파루가 울리고 나면 당연히 만덕노인이 숭례문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닷새 전부터 의식을 잃고 계십니다. 하여 소인이 결례를 무릅쓰고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판윤 어른을 뵙습니다.”

서둘러 말에 오르던 신립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다보았다.

  남빛장삼에 초립을 눌러 쓴 갓 스물을 넘었음직한 젊은 사내 하나가 공철의 뒤쪽에서 나타나 신립에게 최대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저 자는 또 누구냐?”

  신립의 물음에 공철이 대답하였다.

“만덕노인의 손자라 합니다. 제가 당도 하였을 때 만덕노인의 옆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의식이 없는 만덕노인을 대신하여 마포상단을 실제로 꾸려나가는 만덕노인의 손자라 하였습니다.”

  신립은 서슬이 시퍼런 시선으로 나타난 젊은 사내를 찬찬히 흩어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망울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잘생기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들어앉아 서책이나 가까이 했음인지 좀 말라 보이는 인상에 창백해 보일정도로 피부마저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짧은 인사말 한마디에서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듯이 예의바르고 무척이나 총명해 보이는 선한 인상이었다.

“내 너에게 묻겠다. 너는 누구냐? 내 만덕노인을 알고 지낸 것이 한두 해가 아니거늘, 만덕노인은 이 하늘아래 혈혈단신 핏줄이라고는 없는 노인이었다. 너는 누구냐?”

“만덕할아버지의 손자가 맞사옵니다. 판윤어르신의 말씀대로 할아버지께 핏줄을 이어받지는 아니하였으나, 오래 전 불행한 시절을 살던 저를 할아버지께서 거두어주셨고 그날이후로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자랐습니다. 언제까지고 만덕할아버지의 손자로 살아갈 것이니 판윤 어르신께서 그간 할아버지와 저희 상단을 관심과 배려로 보살펴 주셨듯이 저에게도 가르침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좋다. 내 너와 만덕노인 사이의 일은 아무 관계도 관심도 없는 일이니. 허나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아주 막중한 일로 부득이 네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누어 봐야겠기에 우리 이야기를 이쯤에서 그만 접고 서둘러 할아버지에게 나를 안내하여라.”

“할아버지께서는 의식이 없으셔서 찾아보셔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십니다.”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못되는구나. 나는 네 할아버지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느니라.”

“많이 위중하십니다.”

“이놈. 나라의 일이라는데 그러는구나. 혹여 네 할아버지가 이미 죽었다 해도 내 그 시체라도 깨워서 기어이 확인해 볼 일이 있다는데도 말이다. 이놈을 끌어다 어서 말에 태워라.”

  어느새 신립의 말투에는 노기가 가득 서려있었다. 어차 싶으면 아무 때고 당장 칼이라도 뽑을 기세였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런 신립의 호령에도 눈썹하나 까닥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이대로 쉬시게 하여주십시오. 하루를 사실지 이틀을 사실지..........”

“이놈. 어린것이라 여겼더니......... 네가 정녕 매서운 맛을 보아야만 하겠느냐? 여봐라. 노인은 내가 직접 가서 만날 것이니 저놈을 한성부로 끌고 가거라. 내가 돌아와서 물고를 낼 것이다.”

“판윤께서 말씀하시는 그 막중한 나랏일에 제 할아버지의 목숨이 꼭 필요하신 것입니까?”

“뭣이라고? 네 이놈을 당장........”

  말을 타고 달려 나가려던 신립은 여전히 당당하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젊은이에게 순간처럼 극한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더는 참지 못하고 막 칼을 뽑아들려는 그의 귓전에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할아버지의 죄목이 왜국과 교통한 죄라고 하셨습니까?”

“네......... 네 놈이..........”

“오래전부터 판윤께선 이미 알고 계셨듯이 왜구들과 밀무역이 간간히 이루어져 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온데 새삼스레 이제 와서 갑자기 그 일로 제 할아버지의 목숨이 필요하시다면......... 그것이 정녕 평소 대장부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오시던 판윤 어르신의 뜻이옵니까? 아니시면............”

“어린놈이. 그 주둥이를 당장 닥치지 못하겠느냐? 왜구와의 밀무역을 간간히 라니? 엄히 국법으로 금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내 당장 참형에 처할지도 모르거늘..........”

“모든 일은 소인이 나라에 금을 밟은 것입니다. 소인이 처벌을 달게 받을 것이니 할아버지만은...........”

“네 죄는 차후에 내가 분명히 따져 보겠다. 하지만 당장은 내 분명히 네 할아버지와 직접 만나서 해결을 보아야만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썩 비켜나서라.”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시옵니다. 소인이 대신하겠습니다.”

“끝내 여기서 끝장을 봐야만 속이 시원하단 말이냐? 여봐라.”

“판윤께 필요한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왜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옵니까?”

“뭐......... 뭐라고? 지금 네가.......... 네가........... 무엇이라고 했느냐?”

“소인이 그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부산진에서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지난밤에서야 겨우 마포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무것도 아시지 못하십니다.”

“네가........... 네가........... 정녕 네가........ 그들을 보았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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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난 열사흘, 칠백여척의 배에 나누어 탄 왜구가 부산 절영도 앞바다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과 종의지(宗義智. 소 요시모토)가 거느린 제1진으로 왜군 선발대의 일부였습니다. 미시(未時)가 넘어서고 있는 시각이었다고 합니다.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 정발(鄭撥) 장군은 당시 절영도에 사냥을 나갔다가 부산 앞바다를 새카맣게 뒤덮으며 몰려오는 왜선을 발견하였고..........”

  모두가 신립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놀라운 소식에 열려진 입을 닫을 줄 몰랐다.

“이들은 당일이었던, 십삼일 진시(辰時)에 대마도 북단의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오우라의 강구(江口)를 떠났던 것이라 합니다. 이들의 본진이 대마도에 머물며 쳐들어 올 날만을 기다려 온지가 족히 한 달은 지났다 합니다.”

“한 달을 머물면서 쳐들어 올 날짜만 엿보고 있었다고요? 어찌......... 어찌 그런 일이......... 일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단 말씀입니까?”

  백대붕으로서는 제법 충격이 컸었나보다. 불끈 움켜쥔 그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가만히 둘러보자면 모여든 모든 사람에게 몹시 큰 충격이 가해졌음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종의지 그자라면 익히 알만한 자이고 소서행장이라는 자는 낯선 이름이구나. 전쟁을 시작함에 있어 첫 선발대라면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은 저들도 마찬가지일터, 그 일을 맡은 소서행장이라면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닐 것 같구나. 십삼일에 들이닥친 왜구들의 선발대가 적선 칠백여척을 나누어 타고 왔다면 저놈들의 군사 숫자는 얼마라 하더냐? 거기에 그렇다면 왜구가 동원한 총 군사의 수는 얼마나 된다 하더냐?”

이 같은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또박또박 정리되어진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전 의주부사 권율이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신립과 이항복의 장인이 되는 사람이었다.

“적군은 총 9진으로 나뉘었는데 소서행장이 바로 그 1진의 장수이며 9진의 총 군사를 합치면 족히 십오만의 대군이라 합니다.”

“뭣이라고? 쳐들어온 왜구의 숫자가 십오만이나 되는 대군이란 말이냐?”

“십오만은 저들의 선발대의 숫자일 뿐입니다. 본진과 후속부대까지 합치면 도합 삼십만의 대군이 바다를 건너오고 있다고 합니다.”

“삼십만?”

  모두가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소식이 아니겠는가?

“이보시게 판윤. 무엇보다도 이 같은 소식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믿을 수 있는 소식이냔 말일세. 아직 적정에 관한 어떤 상세한 장계도 받아보지를 못하였네.”

“좌상대감. 틀림없는 소식입니다. 이 정보의 진위에 대해서는 소장이 보증을 하겠습니다. 우왕좌왕 허둥대고 도망치기에 바쁜 지방 수령들이 변변한 장계 하나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마당에 믿을만한 한 젊은이가 목숨을 걸고 저들을 살피고 올라와서 그 즉시 고하는 사실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개 젊은이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란 말인가?”

“적 선발대의 장수가 소서행장이라고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자리에 소서행장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소서행장과 종의지가 거느린 적군의 수가 1만8천7백 명입니다.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던 정발 절제사가 왜국의 조공선이 아니고 전투함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세척의 배를 돌려 부산성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그가 육지에 닿았을 때는 이미 왜군이 먼저 상륙하여 부산성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없이 함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절제사는 이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왜군으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종의지가 보낸 사자였는데 ‘명나라를 치러 가고자 함에 있어 조선의 길이 필요하니 길을 내달라’는 히데요시의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답을 달라는 전갈이었답니다. 왜군은 절제사의 함선 주위와 부산성을 철통같이 에워싼 채였습니다. 날이 새고 절제사가 ‘어명 없이는 어떤 요청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침과 동시에 싸움이 벌어졌으며 두 시간이 좀 지나서 부산성은 함락되었습니다. 이미 칠백여척 적의 함선은 2진과 3진을 실으러 다시 대마도로 떠난 후였으며, 소서행장과 종의지는 발길을 다시 동래성으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그 젊은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도승지는 염려 마시게.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내 그렇게 하려 이미 동행하였다네. 좌상대감. 대단히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 젊은이를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가?”

“그렇습니다. 대감께서 허락하시면 당장 부를 것입니다.”

 

 

  그때였다.

‘웬 놈이냐? 지붕에 숨어있는 놈, 썩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우렁찬 호통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뿔각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져나갔다.

  챙그랑.

  칼집에서 칼을 뽑아드는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막 마당에 놓인 널마루에 주저앉아 안채로 들어간 한성판윤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청년은 무엇인가 섬뜩한 느낌에 돌아보려다가 그만 무엇인가가 발에 걸려 마루 아래 땅바닥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파 팍.’

  허공을 가르는 지극히 짧은 파공음 소리와 함께 쇠젖가락을 닮은 쇠붙이 두 개가 방금 자신이 앉아 있던 마루에 내려 꽂이는 것을 보았다.

  채 날이 밝지 않아 마당 곳곳에 내걸었던 홍등의 희미한 불빛에도 그 꽂힌 쇠붙이에서 내비치는 시퍼런 살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표창이었다. 누군가를 암습하고자 날린 흉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냐? 조정대신께서 머무시는 이곳이 새벽부터 왜 이리 소란하더란 말이냐?”

  와락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은 바로 신립이었다.

“장군. 자객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셔서 문을 닫으십시오.”

“뭣이라고? 자객? 도승지는 뭐하시는가. 어서 방안의 불을 끄고 모두 벽 쪽으로 붙으시게.”

  마당에 내려선 신립은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방 안에서 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사람이 하나 더 밖으로 나왔다. 김여물 이었다.

“자객이라 했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을 해 보시게.”

  김여물의 물음에 신립을 호위하며 이곳에 와있던 한성부의 관원은 널마루 위를 가리켰다.

  날카로운 쇠붙이 두 개가 마루 깊숙이 박혀있었다. 만약 그것이 마루가 아닌 사람에게 꽂혔다면 어떠했을까는 이미 충분하게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후원을 살피고 있는데 지붕위에 검은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여 고함을 쳐보았더니 놀라 움직이는 것이 분명 사람이었습니다.”

“표창이 떨어진 마루에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가?”

“장군께서 데리고 오신 그 청년입니다.”

“그럼 자객이 노린 것이 그 청년이란 말인가? 그래 청년은 지금 어디 있는가?”

“자객들을 뒤쫓아간 것 같습니다.”

“자객들을 쫓아간 것 같다고? 이 같은 상황에 저들이 청년을 노리고 있었다면서 청년이 자객들을 뒤쫓게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좌상대감과 도승지와 조정대신들이 지금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여기도 지켜야 하겠기에......... 미처..........”

“지네가 자객들이라 했네. 그럼 하나가 아니란 말인가?”

“둘인지 셋인지 어둠속이어서 확실하게 분간은 되지 않았지만 분명 한 명은 아니었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럼 지금 두 셋의 자객을 붙잡으러 젊은이 혼자 보냈다는 말씀인가?”

“아닙니다. 한성부의 장 군관과 안 군관이 뒤쫓아갔고 그 뒤로 청년과........ 청년을 따라온 사내가 쫓아갔습니다.”

“그래 어느 쪽으로 갔는가?”

“동쪽을 향해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장군. 예삿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동쪽이면 남산골로 이어질 터이니 아무래도 소장이 일대를 좀 둘러보고 와야만 하겠습니다. 장군께서는 이곳을 지켜주십시오.”

“남빛 장삼에 초립을 쓴 마른체구의 이십 줄 젊은이요. 김 장군이 그를 꼭 찾아서 돌아오셨으면 좋겠소. 여기는 곧 한성부에서 지킬 것이니 걱정 마시오. 나머지 일은 내 좌상대감과 상의해서 처리하리다. 김 장군. 조심하시오.”

  김여물은 서둘러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달려갔다.

  신립은 방안으로 들어가 박에서 벌어진 소동의 전말을 좌중에게 설명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좌의정 유성룡이 입을 열었다.

“날이 새면 어전회의가 열리겠으나 지금의 상황을 살펴 보건데, 아무래도 그 청년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소. 이곳에 도승지도 있고 한성판윤도 있고 조정의 관리들이 있는데도 저들이 노린 것이 그 청년이라면 말이요. 더욱이 우리가 그 청년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당장 바다를 건너온 왜구에 대한 것이었다면......... 결국 이 사단은 이번 전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이곳의 안위는 판윤이 알아서 하시고........ 어전회의를 위해 입조할 시간까지는 나는 여기서 그 청년을 기다리겠소. 그가 아무 탈 없이 속히 돌아오기를 바랄밖에는..........”

  좌의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권율이 말을 이어갔다.

“도성의 코앞에서 자객이라니? 이보시게 판윤. 날이 새면 어차피 변란의 소식이 민간에도 전해지고 말 것일세. 백성들이 술렁거리는 낌새라도 보이면 즉시 조정은 백성들을 달래는 포고문을 어떤 식으로든 발표할 수밖에 없질 않겠는가. 그러나 아무래도 쉽게 수그러질 사항이 아닐 것만 같네. 한번 동요되면 사태의 추위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네. 그러니 한성부의 모든 관원들을 미리 교육시켜 풀어서 백성들의 민심을 자극하는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비책을 마련하도록 하시게. 먼저 시전과 육의전등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이 전혀 동요가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감독 하도록 지시하게. 변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시전일세. 모든 것은 그곳에서 시작되네.”

“이미 많은 관리들이 저자거리로 나갔습니다. 엇 저녁에 좌상대감의 말씀을 듣고 다각도로 도성의 안위에 대해서 나름 방비를 하였습니다. 또한 장 군관과 안 군관이라면 한성부에서 으뜸 무장입니다. 반듯이 자객들을 토포하고 청년을 무사히 데려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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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빠져나갈 곳은 없다. 어서 칼을 버리고 항복해라.”

  남산골의 가파른 언덕으로 난 길을 막아선 군관이 도망치던 자객의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다. 이곳까지 도망쳐오면서 이미 서너 차례 그와 칼부림을 겪어 본 자객의 입장에서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넓적다리와 옆구리에 난 자상이 의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엉겁결에 다리의 상처는 동여 맺지만 옆구리에서는 연실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길을 막아선 군관의 자세에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보였다. 모든 것이 그릇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살려서 잡아야만 합니다.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배후가 누구인지를 캐물어야만 합니다.”

  군관의 등 뒤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빛 장삼을 입은 청년이 이들의 뒤를 쫓아 나타난 것이다. 손에는 기다란 나무 막대를 하나 들고 있었다.

“젊은이는 어서 내 뒤로 물러나시게. 저놈들이 노린 것이 자네였거늘 어쩌자고 여기까지 좇아오는 경거망동을 부린단 말인가? 썩 물러나 있게. 어서.”

“죽이진 마십시오. 군관나리. 살려서 잡아야만 합니다.”

  체념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던 자객의 눈빛이 새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애초 자신들이 목표로 했다가 실패한 청년이 제 스스로 이 자리에 다시 나타나준 것이다. 상처가 깊은 몸으로 달아날 수는 없겠으나 잘만하면 임무는 완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러나 있으라 하지 않는가?”

“제가 저자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제게 주십시오.”

“저자는 지금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데 위험하다니까. 내가 가능한..........”

  자객을 상대하던 군관이 그렇게도 엄하게 당부를 하였건만, 어느새 남빛장삼의 청년이 자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우선 정체를 밝히시오. 무엇 때문에 이런 사단을 만든단 말이요. 당신의 하기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이요.”

“크크크 큭. 어린놈이 제법이로구나. 단번에 요절을 냈어야만 했는데.......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하였으나 그렇다고 네 놈에게 내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다. 흐흐흐흐.”

  어딘지 모르게 약간의 억양이 어눌하기는 하였으나 분명 조선말을 또박또박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의 안면근육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왜국의 자객이요?”

“이놈.”

  청년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통 치듯 이놈 소리와 함께 자객의 칼날이 사정없이 청년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갔다. 너무도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라 뒤에 있던 군관도 미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전혀 당황해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이미 생각하였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옆으로 한 걸음을 슬쩍 비켜서던 청년은 내려오는 자객의 칼을 가지고 있던 막대로 비켜 받아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쪽 다리가 부자연스럽던 자객이 몸의 중심을 잃었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선 청년의 왼발이 자객의 등을 향해 가차 없이 휘돌려 찼다. 퍽 소리와 함께 자객의 몸뚱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청년의 다음 동작이 이어지기도 전에 어느새 땅바닥을 나뒹굴던 자객은 귀신같이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일어서고 있었다. 등짝을 걷어차인 통증이 그대로 옆구리 상처로 전해진 것인지 한 손으로 옆구리를 움켜쥔 채 몹시 고통스런 표정으로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놈. 조선의 첩자치곤 어리고 순하다 싶었더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로구나.”

“내가 첩자란 말씀이요? 아니요. 잘못 아셨소. 난 그저 장사를 배우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요.”

“부산에서 왜국의 군사와 접촉을 한 조선 첩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가 서둘러 한양으로 입성했다는 정보와 함께. 흐흐흐흐. 바로 네놈이 부산에서 부터 서둘러 여기까지지 온 유일한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분명해 졌소. 당신들은 왜국의 첩자이자 조선에서 암약해온 자객들이라는 것이. 이유야 어찌되었건 내가 부산에서 급하게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나를 찾아냈다는 것이 놀랍고 두렵기까지 할 뿐이요. 이미 상당히 많은 숫자가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알고 있소. 승려도 있고 몰락한 양반자제도 있고 방방곡곡을 떠도는 장사치며 심지어는 일부 부녀자들 까지 끼어있다고 들었소. 그러나 이제 하나씩 하나씩 모두 찾아낼 것이요. 당신 같은 자들을 찾아내는 방법도 들었으니 말이요.”

“누구냐? 네 놈에게 그 같은 말을 전한 그 놈이 누구냐?”

“그것이 당신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요?”

“장수이냐? 병사이냐? 어느 영주의 소속이냐? 아님 상인이더냐?”

“당신은 왜구에게 납치된 조선인이요? 아니면 납치한 조선인에게 교육을 받은 왜인이요? 그도 아님 어느 집안의 노비에서 도망친 자요? 그것도 아님 죄를 짓고 왜국으로 달아난 자요? 당신에게 이 같은 일을 지시한 자가 고니시 유키나가요? 아님 가토 기요마사요?”

“이놈. 정말로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구나. 기필코 죽여 없앴어야 하는 것을........ 부산에서 네가 접촉한 놈을 꼭 찾아내서 죽여만 하겠구나.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내가 만난 사람이 그렇게도 중요하오?”

“대업에 장애가 될 것은 애초 싹부터 철저하게 잘라내야만 한다.”

“무엇이 대업이요?”

“미련한 조선의 왕에게 이미 일렀지 않았더냐. 대륙의 명나라를 치러 갈 터이니 조선이 길을 터 빌려달라고. 그렇게 하면 처참한 전란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당신은 그 말이 진실일 것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긴단 말이요?”

“그럼 조선이나 명이 일본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보느냐?”

“일본이라.........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과 엉덩이에 뿔난 칼잡이들이 서로 쌈질이나 하며 사는 나라 말씀이요?”

“이놈. 새파랗게 어린놈이 대 일본국의 위상을 폄하하는 말을 입에 담다니..........”

“당신들은 모두 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수십 년간의 어지러운 싸움에서 승리한 당신네 두목이 또다시 자신 같은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제가 거느린 군사만 후방에 남겨두고 모든 영주의 군대를 굵어 모아 바다를 건너보낸 것이요. 아시겠소? 언제고 전쟁이 끝난다 해도 당신들은 결코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당신네 두목이 원하지를 않기 때문이요.”

“네 이놈........ 입을 갈기갈기 찢어 놓아도 시원찮을 놈. 그 같은 일을 누설한 그 놈이 누구냐? 내 죽어서라도 일본군의 막사 안에 숨어있는 그 조선의 첩자 놈을 끝가지 찾아내고야 말리라. 기필코.........”

  자객은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고 있었다.

“가르쳐 드리리까?”

“누구냐?”

“신의를 모르는 왜구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그의 이름을 가르쳐 준단 말이요?”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도대체 그 놈이 누구더란 말이냐?”

“내 특별히 당신에게만 가르쳐 주겠소.”

“그래. 누구냐?”

“우시수길(羽柴秀吉).”

  자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엇인가 잘못 알아들었거니 했다. 청년이 말한 이름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듯 말듯 가물가물하기조차 했다. 그저 멀뚱멀뚱한 눈으로 청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르쳐 줘도 모르시겠단 말씀이요? 그래서야 어찌 그자를 잡을 수 있겠소?”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멀뚱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자객을 향해 청년은 일체의 주저함 없이 일침을 가했다.

“아께지(明智)를 시켜 직전신장(織田信長. 오다 노부나가)을 살해하고 막부를 차지한 그자 말이요. 그래도 모르시겠소?”

  윽.

  자객의 입에서 단말마 비명소리가 짧은 신음소리처럼 울려나왔다.

‘이자가....... 이자가 어떻게 그 같은 사실까지........’

  같은 생각들이 거듭해서 입가와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뿐, 그는 할 말을 모두 잊었다.

  동시에 거대한 체념이 결단코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그의 전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느닷없이 우시수길 이라니?

 

 

  각 지역 영주들의 패권싸움으로 전란이 끊이지 않던 왜국에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정국은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바야흐로 진정한 통일의 시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지방을 돌아보던 직전신장은 산에서 나무를 해 오던 사내 하나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치 원숭이처럼 생김새가 아주 특이한 사내였다. 하지만 눈에서 발하는 광채만은 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당시 그 사내는 가계도 핏줄도 분명치 않았고 성씨도 이름도 없는 남의 집안의 종의 신분이었다. 범상치 않게 여긴 직전신장은 그 사내를 데려다가 검술과 전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후 그 사내는 나가는 싸움마다 이겨서 큰 공을 세웠다. 크게 기뻐한 직전신장은 그에게 우시(羽柴)라는 성씨를 하사하였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를 자신의 의자(義子)로 삼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직전신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부하인 아께지의 손에 암살당하였다. 아께지를 체포한 우시수길은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단칼에 아께지를 죽였다. 그리고 직전신장의 모든 것을 단번에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풍신수길(豊臣秀吉. 토요토미 히데요시)이라 스스로 지어 불렀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관백(쇼군)이었다.

  지금 이 청년의 입에서 바로 그 이름이 불려나왔던 것이다.

 

 

  자객은 칼을 거꾸로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전혀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목구멍을 향해 스스로 깊게 찔러 넣었다.

“살려서 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객의 죽음을 확인한 군관이 청년을 살피며 물었다.

“왜구인지 아닌지가 확인이 필요해서였습니다. 저 자는 사로잡혔어도 아무것도 불지 않았을 것이며 어떻게든 자결하였을 것입니다. 왜구가 아니라 그냥 자객이었다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 질 수가 있었거든요. 이제 적이 누구라는 것은 자명해 졌습니다. 또한 저자와의 짧은 대화에서 그동안 가졌던 의문을 여러 가지 해소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자는 자객 중에서도 제법 지위가 높은 자였을 것입니다.”

“안 군관. 여기 있었구먼. 그래 어찌되었는가. 자객은?”

  장내로 두 사람이 뛰어들어 왔다.

“놈이 자결하였습니다. 장 군관께서 쫓던 무리들은..........”

“놓쳐버렸네. 서둘러 쫓기는 하였네만 한참을 앞서 숲속으로 도망친 놈들을 붙잡는 것은 다소 무리였던 듯싶네. 둘이었던 것은 확인 되었네만, 아마도 목멱산(남산) 숲속이나 바위틈에 그대로 숨어있는 것 같네. 한참을 수색해 보았지만 아무런 기척도 확인 할 수가 없었네. 뒤따라 온 군사들에게 목멱산 일대를 지키도록 하기는 하였네만 쉽게 붙잡힐 놈들은 아닐 것만 같은 생각일세.”

“왜국의 첩자들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해왔었다 합니다. 백성들과 섞여있으면 구별 할 수가 없겠습니다. 참으로 난처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일단 주막으로 돌아들 가세. 판윤께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실 것일세. 그래 자네는 괜찮은가?”

  장 군관이 청년의 안위를 살피며 물었다.

“안 군관님 덕분에 별일 없었습니다. 서둘러 주막으로 돌아가서 사태를 보고 드리는 것이 가장 화급한 일이겠습니다. 그전에 잠시만 제가 저희상단 행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게나. 우리는 죽은 자객의 품속을 좀 살펴볼 터이니. 무엇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나왔으면 좋겠지만.”

  청년은 나중에 도착한 행수라 불린 중년인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행수께선 당장 서둘러서 마포나루로 돌아가셔야 하겠습니다.”

“상단엔 여럿 호위행수들이 있습니다. 방금 겪은 일도 있고 도련님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제게 부여된...........”

“방 행수님.”

  냉정하게 잘라 말한 청년의 손에는 작은 비단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나뭇잎 모양의 감색 비단위에 은실로 령(令)이라 글자를 수놓은 조각이었다.

“행수 방무결. 객주를 대신한 도련님의 명을 받습니다.”

“자 받으세요. 영기를 행수께 드립니다. 돌아가시면 전 상단에 이 영기로 비상동원령을 내리세요. 입단속을 전제로 이 나라가 처한 작금의 상황을 식구들에게 알리세요. 다만 이 같은 소식이 우리 상단을 통해 새어나가 백성들이 동요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전 상단의 식구들을 소집하세요. 저자거리의 최소한의 생필품 거래는 지속적으로 꾸리시고 기타의 모든 교역은 중단하세요. 밖의 동향을 잘 살피시다가 전란이 벌어진 소식을 백성들이 알아채고 동요가 일거들랑 마포 뿐 아니라 송파 광나루 용산의 모든 객주들에게 사람을 보내 어느 정도의 상황을 알리시고 찾아오는 객주들에게는 소상하게 설명하고, 어떻게든 소요를 이용해 장사를 하려는 행위만은 안 된다고 당부하세요. 모든 것이 객주어른의 뜻이라 하시면 어느 정도는 먹힐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행랑어멈을 딸려 할아버지를 벽란도로 옮기도록 하세요.”

“위중하십니다.”

“압니다. 허나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습니다. 전란 소식이 전해져 도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때는 운신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힘들겠지만 일단 벽란도의 점포로 모셔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만약의 사태에......... 전황이 아주 극도로 불리해지면........ 그때는 정주의 상단으로 모실 수 있게 미리 선편이랑 채비를 해 주셔야만 하겠습니다.”

“상단의 물품들은요?”

“식구들부터 챙기시고요.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무 때고 모두 버린다 생각을 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배편을 모두 모아서 최후의 경우에 식구들과 최소한의 물품만 가지고 가야 할 것입니다. 미리 옮길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마련해 둔 안가(安家)에 일단 보관을 하시고요.”

“도련님께서는?”

“일단 조정에 남쪽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고해 드리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당장 오늘 저녁엔 마치게 될 것인지, 아님 내일 모레,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내가 원했던 원치 않았던 이번 변란에 휩쓸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방 행수께서 상단의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여 주세요. 그리고 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게끔 막내 양행수를 한성부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판윤 어른께 미리 부탁을 드려 놓겠습니다. 양행수가 찾아올 수 있게요. 시간이 없습니다.”

“도련님. 제가 그 같은 일들을 어찌..........”

“그간 어린 저를 곁에서 항상 지켜주시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방 행수님의 생각이 제 생각일 것입니다. 어서 가세요. 서두셔야만 합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는지 서너 번을 돌아다보면서 방행수가 먼저 언덕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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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유교경전을 아침저녁으로 읽었으며, 이를 가슴에 새겨 유자(儒者)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처세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선비들의 품위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교의 가치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으뜸인 작금의 시대에 유교경전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읽고 줄줄 외우고 깨달아서 그 깨우침이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 마다 몸에 배인 체취처럼 향기롭게 우러나는 삶을 최고의 덕망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 선비들이 보여야 하는 모습이 절대 아니었다.

  관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열리는 저자거리 난전의 시전잡배들이 벌이는 한바탕의 아수라장과 별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명리(名利)에 날뛰는 선비의 탈을 쓴 자들이 벌이는 추악한 이전투구의 장이 바로 여기였다. 용상에 황금전포를 입고 앉아있는 임금은 피곤함인지 따분함인지 간간히 하품을 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움직이는 만조백관이 모두 모인 조정이었으며 임금이 주관하는 어전회의의 풍경이었다.

“제발 좀 목소리들을 좀 낮추고 남의 말에 귀를 좀 기울여 주시오.”

“웅성웅성만 대지 마시고 누구든지 나서서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좀 개진해 달란 말씀이요. 어쩌자고 뒷전에서 웅성대기만 하다가 누구하나 의견만 내 놓으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꼬리에 꼬리를 문단 말씀이요?”

“제발 좋은 해결책을 마련하여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갈 생각은 안하고 자꾸만 뒤로 뒷걸음질 치기만 하며 누구에게든 책임만 떠넘기려 하신단 말씀이요. 정히 그러시다면 누가 나서 당당하게 말씀을 해 보시오. 이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겠소? 누가 책임을 져야만 하겠소?”

  일순 온 조정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삽시간에 조용해 졌다.

  방금 전까지 그 소란이 일던 모습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참으로 신기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요 속에 있던 사람들도 그런 느낌이었는지 서로들 자신들의 모습들을 의아해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고들 있었다.

  누구의 책임이겠느냐?

  왜구가 대군을 몰고 와 부산에 상륙하여 살인과 방화와 약탈을 일삼으며 이곳 한양의 도성을 향해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다는데 조정도 관군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새삼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냐?

  이곳에 있는 모든 대신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내포하고 있는지 익히 모두 잘 알고 있는지라 가슴이 콩알처럼 오그라들고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잔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미 서너 차례의 사화(史禍)를 격은 그들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불과 수년전에 정여립 일당이 비참하게 참화를 겪는 것을 모두 생생하게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가 지은 죄가 과연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수천 명을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구실로 엮어서 굴비 꿰듯 끌어다가 인두로 지져 죽이고 장으로 쳐서 죽이고 칼로 목을 잘라 거리에 효수하고 귀양을 보내놓고 사약을 내려 죽이고 이미 죽은 자를 꺼내서 부관침시까지 하지 않았던가.

  용상에 앉아서 자비로운 듯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임금은 백관들 앞에서는 모두 용서하겠다는 듯 미소 짓는 표정으로 내실로 들어가서는 참살. 주살. 사약. 등의 밀명을 내렸다. 무한대의 책임을 그들에게 따지고 들었던 것이다.

  죄인들과 친했다거나 만난 적이 있었다는 항간의 소문만으로도 잡혀가고 고문을 받고 죽어나가는 경우가 빈번할 정도였다. 소문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너무도 충분했다.

  어떻게든 임금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를 염원했다.

  매순간 순간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들은 나 아닌 다른모두의 기억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져서 기억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어째 갑자기 이러고들 계신 것이요? 왜구가 제 놈들 군대를 총동원해서 쳐들어 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엇인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밤에 이미 삼정승과 판서들을 통해 대책을 세워서 아침에 보자고 미리 일러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미 한나절이 되어 갑니다. 자. 이제 그간 그만큼 논의들을 하셨으면 이제는 무엇인가 대책이 마련되어 있어야만 하질 않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임금은 용상에 앉아 도열하듯 부복하고 있는 신하들을 하나하나씩 낱낱이 흩어보듯이 예리한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찡그린 인상에 잔뜩 굳어있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참혹한 침묵이 무시무시한 절대권력 앞에 강요되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고만 계시는 것입니까? 갑자기 모두 입이 얼어붙기라도 하셨습니까? 알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짐이 부덕한 탓에 저질러진 것이니 모든 결과까지도 짐 보고 알아서 책임지라는 뜻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암요. 당연히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모두 물러들 가세요.”

“전하.”

“전하. 신들을 죽여주십시오.”

“모든 것이 신들의 불충에서 생겨난 것이니 신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벌하여 주십시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물불 가릴 것도 없이 앞 다투어 엎드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을 했다.

  그것이 그나마 겨우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임금의 노여움을 위해서 반듯이 책임을 져야만 했다. 결코 이대로 물러나서 모든 상황을 원만하게 마무리할 임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무수히 많은 이 자리의 사람들이 연대책임을 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반듯이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불길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임금의 분노가 더 크게 폭발하기 전에 당장 말이다.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임금의 분노가 어디까지 얼마나 더 크게 폭발할 지 아무도 예측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긴박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 같은 사실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용상에 앉아 하품까지 날리고 있는 임금은 이미 지금의 상황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경우의 수까지 암중에서 계산을 마쳤을 것이다. 다만 그 여러 가지의 방도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최선이며 대신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자신 앞에 애걸복걸 목숨을 구걸하게 만드는 방책인가를 지금 속으로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대신들은 물불을 안 가리고 이 변란을 해결하고자 앞 다투어 나설 것이다. 원만히 이번 변란이 수습이 된다면 자신의 치세가 별 탈 없이 유지되어 더욱 공고히 됨이며, 그릇된다면 저들 중 일부가 그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신하들이 이미 그 같은 임금의 속내를 뻔히 들여다보고 있었음에도....... 사람이 태어난 고향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관직에 올라가진 야심이 서로 다르고 지금 각자 자신들의 처지가 모두 다 다를 것이니..........

‘이제 대체 어떤 자가 임금이 던지는 구실을 넙죽 받아먹고 스스로 올가미에 걸려들지가 몹시 궁금하구나. 이 명리에 날뛰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아.........’ 하고 어전의 맨 뒷전에 엎드려 같이 부복하고 있던 신립은 주변을 살며시 둘러보고 있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이 죽기를 각오라고라도 이 말씀만은 드려야 하겠사옵니다. 왜구가 대군을 몰고 쳐들어 와 전쟁이 일어났으니 속히 대책을 마련하야 함은 지당한 어명이시라 생각하옵니다. 다만........ 대책이라 함은 그 원인부터를 분명하게 따져보아 그 바탕위에서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여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피부에 종기가 생겼다면 피부의 겉만 치료할 것이 아니라, 고름을 짜 내고 종기의 핵을 터트린 연후에 고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당장 올라오는 적을 대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겠으나 어찌하여 왜구가 이 땅에 쳐들어오는 지경이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집어볼 필요가 있다고 사려 되옵니다. 아울러....... 거기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왜국에 직접 다녀온 통신사에 대한 문제를 꼭 집고 넘어가야만 하겠다는 소신의 생각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기어코 일이 터져 버렸어. 겨우내 바짝 마른 나무 섶에 부싯돌을 그어대고야 말았구나.’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기에 뻔히 그 결과를 알면서도 임금이 슬며시 던져 보는 미끼를 덥석 문다는 말인가? 이젠 온 조정에 또 한 번의 피바람이 불지도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어떤 작자가 그 같은 망발을 쏟아냈는지 궁금하여 슬며시 앞을 둘러보았으나 모든 대신들이 일제히 용상 앞에 엎드려 부복하고 있는 처지라 감히 어떤 작자인지 신립으로서도 화가인 할 방법이 없었다.

“영상대감. 통신사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영상께서는 통신사와 이번 왜구의 침입과 어떤 문제점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인지 아시는 대로 짐에게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 그것은............”

“왜요? 혹시 통신사 문제에 대하여 제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까?”

“전하. 신. 좌의정 유성룡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하문하신 통신사 문제라는 것은 지지난해(1590년) 왜국에 파견하였던 통신사를 이름이며, 당시 왜국의 수장이던 관백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만나보고 온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보고가 서로 상반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보고 내용으로는.........”

“정사 황윤길은 왜구의 내침이 곧 있을 것이라 하였고, 부사 김성일은 수길이 전쟁을 일으킬 위인이 못된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당장 왜구가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사 김성일의 말이 옳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씀들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모두에게 묻겠습니다. 왜들 왜구가 쳐들어 올 일이 없다고들 생각을 하여서 오늘 당장 이런 변란을 맞게 한단 말입니까? 왜입니까?”

“당시로서 정황을 살펴보건 데는......... 전하...........”

  사태가 위급하다 생각한 영의정 이산해가 다시 나서보기는 하였으나 차마 더 이상 무엇이라 이야기를 꺼내기가 궁색하였는지 말끝을 흐리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임금은 표정을 바꾸었다. 모든 대신들을 노려보며 엄하게 문초하듯 결연해진 음성을 드높였다.

“그 또한 동인과 서인들 간의 당쟁의 결과였단 말씀이요?”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이것이 얼마나 참혹 할 만큼 무시무시한 말인가.

 

 

 

 

  당시 온 조정의 대신들은 풍신수길이 곧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넘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이제부터 서둘러 전쟁에 대비한다 하여도 늦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했었다. 특히 유성룡과 일부 지각이 있는 대신들은 닥쳐올 위기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백일하에 나무도 자명한 사실이었음에도 임금 앞에 나선 저들의 처지와 입장은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만약 당시 임금이 첫 물음을 부사 김성일에게 던졌다면, 아마도 그는 분명하게 곧 전쟁 일어날 것이니 사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임금은 첫 물음을 정사 황윤길에게 던졌던 것이다. 곧 황윤길은 김성일이 속으로 되 뇌이고 있는 사실과 똑같은 내용을 임금에게 보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금은 상당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당황한 김성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둘러선 대다수의 대신들이 매우 낙담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였다. 낙담해 하는 그들은 바로 조정의 절반을 넘어 대충 팔 할 가량을 차지하는 김성일의 동지이자 막강한 배후세력인 동인(東人)들이었던 것이다. 지극히 세력이 미약한 처지였던 서인(西人)들의 기고만장해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당장 크게 관심을 보이며 노고를 치하 받고 있는 황윤길이 바로 서인이었던 것이다. 김성일로서는 매우 고역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보시오. 김 부사. 내가 황 정사의 소상한 보고를 듣고 있자니 이거 여간 당혹스런 사태가 아닐 수 없소. 당장 전쟁이라도 발발하는 날에는........ 만백성은........ 이 나라는 장장 어찌해야만 한단 말이요? 짐은 매우 답답하구려. 그래 어디 김 부사. 김 부사가 보기에도 수길이라는 그 자가 그렇게 무자비하고 금방 전쟁이라도 일으킬 위인으로 보였소?”

“전....... 전하...........”

“어허. 참으로 답답하구려. 당장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이 종묘와 사직은 어떻게 되며....... 당장 짐이 해야 할 일들은 또 얼마나 산더미 같이 쌓이겠소? 누구를 골라서 어디로 보내야 하며.......... 어허. 이보시오. 김 부사. 어디 말씀을 좀 시원하게 해 보시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김성일은 옆을 돌아다보았다.

  이산해와 동인의 주축인물들이 그런 김성일을 노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신이 지켜본 수길은 키는 주먹만 하고 마치 원숭이 같이 기묘하게 생긴 자로 호시탐탐 남의 것을 노리며 잔꾀나 부리는 무리로 보였습니다. 듣자니 그자의 탐욕이 지나쳐서 남의 나라를 감히 넘볼 수도 있겠으니 미연에 방비를 해야 하는 것은 옳겠으나,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수길은 조선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대국이며, 전하의 치세가 드높아 수백 년에 걸쳐 태평성대가 지속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하여 전하께 머리를 숙이며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통상을 요구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여 이참에.......... 군비를 확고하게 잘 정비하여서 조선군의 막강한 위용을 저들에게 보이시고......... 또 하해와 같은 전하의 은혜를 베푸셔서 저들과의 통상을 어느 정도까지 원활하게만 하여 주신다면........ 저들은 전하의 크신 은혜에 감복하여 감히 전쟁 같은 생각은 엄두도 못 낼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순간 이산해와 동인들의 표정이 모두 환해졌다.

  다만 유성룡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허공을 향해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인들이 또 한 번 대승을 거두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서인들은 점점 위축되어만 갔다.

  그런 중에 정여립의 옥사가 생겨났고, 이를 계기로 정철을 앞세운 서인들은 완전하게 동인들을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동인은 바닥이 났고 다시 서인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쫓아낸 동인들을 궤멸시키려 한 일로 서인 안에서 분란이 생겨났고, 정철의 광해군을 세자로 서둘러 책봉하자는 건저문제를 기화로 다시 동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동인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왜구와의 전쟁이 터졌고,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 통신사 문제가 불거져 나왔으며, 전쟁이 없을 거라 보고한 부사 김성일이 바로 동인이었던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모든 동인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는 상황이 대두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의 이 모든 사건의 이면에 바로 임금의 숨겨진 복심이 작용을 했던 것이다.

 

 

  “우리질. 기어코 또 일을 저질러 버렸구나. 버러지만도 못한 동인 놈들. 이제 또 임금이 칼자루를 쥐었으니 보란 듯이 동인 놈들을 요절을 낼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 끌어다 죽일 것인가? 가만......... 칼자루는 임금이 쥐었다만......... 지금 동인들을 죄 다 죽여 버리면 정치 놀이는 누구랑 계속한단 말인가? 서인들은 아직 건저문제가 가라앉지 않아 멀리 내쳐있고........ 서인들을 당장 다시 불러들이기에는 그들이 모두 굴복했다는 확신이 좀 더 필요할 터이고......... 당장 동인들을 모두 내치기에는 정치판에서 놀아줄 상대가 부족하지 않은가? 당장 동인들을 앞세우지 않고는 왜구와의 전쟁을 치르기도 불가능 할 터인데......... 도대체 용상에 앉아서 저 노인은 속으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라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신립은 은근슬쩍 고개를 치켜들어 저 멀리 용상에 앉아있는 임금의 서슬 시퍼런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도승지는 어디 있는가? 명을 내리겠노라.”

  임금이 주위를 환기시키듯 큰 소리로 외쳤다.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어쩌면 앞에 부복하고 있는 대신의 거의 대부분이 죽어나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모두가 치를 떨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과연 지엄하신 임금의 입에서 어떤 명이 떨어질 것인가.

“어찌 대답이 없는 것이냐? 도승지는 어명을 전하라는데도?”

“전하. 아침 어전회의에 도승지는 입시하지 않았사옵니다.”

  저만치 어전 문밖에서 내시영감이 알려왔다.

“뭣이라? 도승지가 입시하지 않았다고? 분명 아침에 짐이 내전에서 그를 만났고 어전으로 나설 때 함께 따라 나온 것을 보았거늘.......... 그럼 도승지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냐?”

“무언가 화급을 다투는 일이 있는 것처럼 어전 앞에서 슬며시 빠져나가는 것을 보기는 하였사온데........ 이직까지 입시하지 않았사옵니다. 전하.”

“사람을 보내 속히 도승지를 찾아 데려오너라. 내가 중요하고 급한 명을 내려야만 하겠다. 알겠느냐? 서둘러 도승지를 데려 오너라. 그리고 대신들은 모두 이만 물러가 쉬시도록 하시오. 내 도승지가 오는 대로 명을 보낼 것이니 그리 아시면 될 것이요. 물러들 가시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자리를 비우고 떠나는 자가 없었다.

  어쩌면 문 밖에 이미 자신들을 옥사로 데리고 갈 군사가 지키고 섰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심하게는 옥사로 데려가 문초하는 것도 없이 바로 처형될 수 있는 상황이 생겨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 져 버렸고 저승사자 보다 무섭다는 임금은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 않은가.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전하. 신 좌의정 유성룡. 전하께 한 말씀만 올리고자 하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좌상. 경의 말이라면 내가 귀를 씻고 경청하겠소.”

“정사 황윤길이 분명 전쟁이 발발할 수 있으니 미연에 반반의 준비를 갖추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을 때 소신도 분명 옆에서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올바른 진언이었습니다.”

“그렇소. 짐도 분명 그렇게 들었고 지금 그 말이 맞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소.”

“하오시면 소신은.......... 부사 김성일의 보고에 대해서도 그날의 정황을 다시 한 번 바르게 상기시켜 드리고자 하옵니다.”

“바르게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좌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도 또 있단 말씀이시오? 그렇다면 어디 말씀해 보시오.”

  신립은 지금 좌의정 유성룡이 무모하다 싶을 만큼 지금 너무 무리한 수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방면에 통달을 한 임금이 아닌가.

“신이 들었기로 분명 김 부사의 말은......... 수길의 생김이 흉측할뿐더러 잔꾀가 많아 그 깊은 속내를 들춰내기가 싶지 않을뿐더러 거듭된 전란의 결과로 왜국 또한 당장 대국과의 전쟁에 임할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보여 지니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염려는 적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군비를 증강하여 저들에게 위용을 보이고 적게나마 통상을 허락하여 저들을 달래보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당장 전쟁이 임박했다는 황 정사의 보고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당장이 아니라고 한 것이 상반된 표현으로 받아져서 전쟁이 없다는 해석을 낳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통신사의 보고가 있은 지 이년이 지나서 지금 왜구가 쳐들어 왔습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신은 그날 그 자리에서 분명 이같이 두 귀로 들었사옵니다. 하온데 이제 전하께서 그의 보고가 그릇되었다고 그를 처벌하고자 하신다면......... 이는 아래 신하의 진언을 올바르게 전하께 전하여 드리지 못한 여기 이 신의 불충 또한 크다고 하겠습니다. 부사 김성일이 거짓 고함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의 속뜻을 알았으면서도 감히 전하께 올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신의 불충 또한 크오니 함께 벌하여 주시옵소서.”

“좌상. 내 좌상 말씀의 뜻은 알겠으나 어찌............”

“전하. 그 같이 통신사의 보고가 서로 그릇되게 전달 된지가 벌써 이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의 이년간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럼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된 것이옵니까? 부사의 보고처럼 해안의 성들을 정비하고 군사들을 잘 조련시키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다면 과연 오늘처럼 왜구가 쉽게 쳐들어 올 수 있었겠습니까? 통상을 허용하고 저들을 잘 달랬다면 지금처럼 전쟁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였사옵니까? 어찌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히 김 부사처럼 전하께 그런 건의조차 드려보지 못한 불충한 신하들인 것입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왜구가 남해에 상륙하여 고을이 불타고 백성들이 살육당하는 망행이 자행되고 있는데....... 당시 김 부사는 당장에 그런 소요들이 정국을 어지럽히고 전하의 치세에 누를 끼칠까봐 우선 백성을 안심시키고 서둘러 변란에 대비토록 하자는 고언이 그렇게 왜곡되었던 것입니다. 전하. 신. 유성룡은 적어도 그리 들었고 그리 이해하고 있었사옵니다. 이 같은 사실이 허위였거나 애초부터 딴 마음이 섞여 있었다면 그것은 신의 부족함이며 전하게 저지른 불충일 터, 신을 먼저 벌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지금 신립의 눈에는 좌의정 유성룡이 몹시도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애초 임금이 동인들이 갑자기 모두 눈에 거슬려 모조리 내치고자 하였다 하여도 유성룡만은 그리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유성룡이나 이항복이나 몇몇은 결단코 임금이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런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앞장을 선 것이다. 아니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백관들 앞에서 정면으로 임금의 속내에 정면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히 안 된다면 그 모든 죄를 내가 전부 뒤집어 쓸 터이니 죽이려면 어디 나부터 죽여보아라 하고 정면대결의 수를 들이민 것이다.

  외통수로 몰아간 임금의 수에 뻔히 드러나는 수로 대항을 하고자 하였다. 결과는 백일천하여 너무도 자명한 작금의 사실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임금의 한 수에 달렸다. 곧바로 다려들어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인가. 아님 좀 더 상황을 즐기며 막다른 골목까지 패를 몰고 갈 것인가. 어쩜 그는 아주 천천히 패를 몰고 가면서 이런 상황을 즐길 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임금이었다.

  그러나 신립으로서는 그런 유성룡을 위해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임금의 눈은 유성룡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사뭇 침통한 표정으로 마냥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임금은 생각하고 있었다. 셈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 까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전하.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내시 별감이 열어주는 문으로 도승지 이항복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전하. 찾으셨사옵니까? 화급을 다투는 일로 경황없이 일을 처리하다 보니........ 송구하옵나이다.”

“왕명을 내리려 찾았소. 명을 전달해야 하는 도승지가 어전회의에 입시를 하지 않다니.......... 그만큼 막중한 일이었소? 평소의 도승지답지 않구려.”

“황공하옵나이다. 전하께 황급히 보고를 올려야 할 일이 있어서 사실의 확인과 정리를 하다 보니....... 하명하시옵소서.”

“도승지가 당황해야 할 만큼 막중한 일이라......... 말씀해 보시오.”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옵니다. 또한 여러 논의가 뒤따르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하오니, 먼저 하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명이 우선이라........ 왜국에 통신사로 다녀온 부사 김성일에 관한 사안이었소. 그에 대해 왕명을 내리려 하니 여기 좌상대감께서 그 일은 또한 자신의 죄가 크다고 함께 죄를 줄 것을 청하였소. 어찌했으면 좋겠소?”

“전......... 전하. 왕명이라 하심은 전하의 뜻을 펴시는 일이옵니다. 어찌 왕명에 있어서 소신에게 의중을 말하라 하시는 것입니까? 살펴 주시옵소서.”

  앞이 캄캄해 지고 갑자기 가슴이 막막해 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좌상대감에게 커다란 위기가 당장 눈앞에서 닥쳤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도승지. 혹시 막중한 일이라는 것이 왜놈들과의 전쟁에 관한 것이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전하를 모시고 어전회의에 입시하던 중에 누가 좌상대감을 급하게 찾는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하여 사유를 물어보니 이번 전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여 좌상대감을 살피니 이미 회의가 시작된 후였기에, 부득이 소신이 그를 먼저 만나 소상하게 알아본 후에 좌상대감께 알려드리고자 하였습니다. 하여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전쟁에 관한......... 부산에 상륙한 왜군에 대한 상당한 량의 실직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우선 그를 진정시키고, 그로 하여금 대략적인 상황을 이야기 하게 한 후, 지필묵을 대령하여 처음부터 그간 보고 격은 상황을 사실과 부합한지 점검하면서 기록을 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사옵니다.”

“뭣이라고요? 도승지. 그렇다면 바다를 건너온 왜군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전황을 모두 알게 되었단 말씀입니까? 지금?”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럼 그 정보를 가져왔다는 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자가 어찌하여 좌상대감을 찾았다는 것입니까?”

“좌상대감께서는 이 같은 변란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각지의 지인들에게 끊임없는 정보를 얻고자 하셨습니다. 그 일과 연계하여서 아는 분으로부터 소식이 급하게 당도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도승지가 이리로 데려오시오.”

“돌려보냈습니다.”

“이 판국에 그런 사람을 돌려보낸단 말씀이요? 당장 다시 데려오시오.”

“이미 그 사람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신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덧붙여........... 이미 도성과 각 크고 작은 고을에 왜군의 첩자가 상당히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백성으로 철저하게 위장해서 이미 수년전부터 잠입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색출해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정보는 곧바로 좌상대감께로 알려드릴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허. 도승지가 정녕 큰일을 해냈소. 그래 좌상대감.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요?”

“소신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옵니다. 전하.”

“좌상이 모르는 사람이란 말씀이요? 어찌 그런 일이........”

“소신이 이런 우려가 있어서 방방곡곡의 여러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하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화급한 중에 그 일을 이해하고 함께 걱정한 그 누군가가 이런 사실들을 전해왔다면....... 그것은 신에게 온 것이 아니라 전하께 온 소식인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전하께서 지켜주신 이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도승지는 그가 전해 온 모든 내용들을 소상하게 말하여 줄 수 있겠는가?”

“그렇사옵니다. 확인과 정리가 모두 마치어있사옵니다.”

“좋소. 이제야 우리는 이번 전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정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소. 참으로 다행이 아니라 할 수 없겠소. 허나....... 방금 전까지 전란의 책임을 논하였고 결론을 내려고 까지 했었으니 아니 집고 넘어갈 수는 없겠소. 이보시오. 좌상. 이제 이쯤 되었으니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결론 내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지 경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소?”

“신하의 도리로써 아무리 올바른 진언과 행동을 했다고 하여도 어심을 흩트리거나 상하게 하였다면 신하의 도리를 제대로 하였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 부사의 보고에 그릇됨이 없다손 치더라도 작금의 이런 상황에서 다시 재론되어 시끄럽게 하였으니........... 부사 김성일을 지금의 자리에서 파직하심이 옳으실 줄로 아옵니다. 아울러 성심을 불편하게 한 신의 죄도 크오니 소신이 직에서 물러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것으로 지난 일을 모두 마무리 지으시고 이제부터 라도 모두가 힘을 합하여 왜구를 물리치는데 집중한다면 머지않아 이 전란도 원만히 수습이 될 것입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십시오.”

“도승지는 들으라. 짐의 명을 전하라. 김성일을 파직하고 그것으로 지난 통신사에 관한 모든 것을 끝내겠다. 어느 누구도 다시는 재론조차 하지 말 것이며,  이와 더불어 윤두수를 비롯한 건사문제로 귀양을 보낸 사람들을 강화도나 인근의 유배지로 옮겨 수용하라.  나라가 전란으로 위급한 이때, 사직과 백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비록 죄를 지었을망정 그들의 관록과 경륜을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도록 하라.  이 또한 어떠한 논공행상도 왕명으로 불허한다. 또한 여기있는 좌상 유성룡의 청은 불허한다. 이 순간부터는 오로지 왜구를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을 최우선의 시책으로 삼는 다는 짐의 뜻을 전하라.”

  실로 절묘한 수였다.  그것이 임금이 둔 묘수였건,  유성룡이 둔 수 의 속내를 알아차린 임금의 응수였건 참으로 기막힌 한 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위기는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13일에 대마도를 떠난 왜군 선발대가 부산에 상륙하였습니다. 부산성을 에워싼 채 하룻밤을 보낸 왜구들은 다음날 새벽 마침내 부산성을 공격하였고 오래지 않아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부산성을 함락시킨 왜군의 1진을 비롯한 선발군의 총 수는 대략 십오만의 대군으로 파악되었으면............ 후방에 대기 중인 군사까지 합친 왜군의 총 숫자는 삼십 만에 이르는 대군이옵니다.”

‘삼십만 이라고? 당장 쳐들어온 선발대가 십오만............’

임금도 신하들도 모두가 놀라 차마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칠백여척의 함선이 부지런히 계속 오가며 나른 왜군들은 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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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복은 또박또박 준비해온 자료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이미 이 같은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던 유성룡이나 신립은 그저 묵묵히 눈을 지그시 감고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 내용을 알려온 주막에서 만난 젊은 정보제공자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전에 이런 방법을 상의하여 결정한 결과였다.

 

 

 

 

 

 

  제1진. 주장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휘하 병력 1만8,700명으로, 고니시 7천명, 소 요시토시. (宗義智) 5천명, 마쯔우라 시게노부(松浦鎭信) 3천명,  아리마 하레노부(有馬晴信) 2천명, 오오무라 요시사끼(大村喜前) 1천명, 고또오 스미하루(五島純玄) 7백명.

   제2진. 주장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 휘하 병력 2만2,800명으로, 가토 8천명, 나베지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만2천명, 사가라 나가쯔네(根良長每) 8백명.

  제3진. 주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휘하 병력 1만1,000명으로, 구로다 6천명,  오오또모 요시무네(大友吉銃) 6천명.

  제4진. 주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휘하 병력 1만5,000명으로, 시마즈 1만명,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2천명, 다까하시 구로오(高橋九郞) 1천명, 아끼쯔끼 사부로(秋月三郞) 1천명, 이도오 스께다까(伊東祐兵) 1천명.

  제5진. 주장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휘하 병력 2만4,700명으로, 후쿠시마 5천명, 도다 가쯔다가(戶田勝降) 4천명, 하찌스 이에마사(蜂須賀家政)7천2백명, 죠소가베 모또찌가(長宗我部元親) 3천명, 이꼬마찌 가마사(生駒親正) 5천5백명.

  제6진. 주장 고바야카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 휘하 병력 1만5,700명으로. 고바야가와 1만, 다치바나 무네도라(立花銃虎) 2천5백, 모리 히데가네(毛利秀包) 1천5백명, 쯔꾸시 고오몬(筑紫廣門) 9백, 다까하사 나오지(高橋直次) 8백명.

    제7진. 주장 모리 기모토(毛利輝元) 휘하 병력 3만명.

  제8진. 주장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 휘하 병력 1만명.

  제9진. 주장 하시바 히데가쓰(羽紫水勝) 휘하 병력 1만1500명. 하시바 8천명, 호소가와 다다오끼(細川忠興) 3천5백명.

 

 

 

 

 

“말씀드린 바처럼 이번에 바다를 건너 침입하는 왜군의 수는 15만8천8백 명에 이르는 대군이옵니다. 여기에 풍신수길의 직속부대인 정예군이 전황을 보아 투입되려고 준비 중인데 그 수가 3만7천이라 하오며, 나고야성에 대기 중인 후속부대가 또한 십여만 이라 하옵니다. 이를 모두 합하면 대략 삼십 만에 이르는 근자에 볼 수 없었던 대군이옵니다.”

  도승지의 보고를 받고 있는 선조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이 어디 임금뿐이겠는가. 부복하고 있는 신하들 중 누구하나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침략군의 숫자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위력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보시오. 병판.”

  느닷없는 임금의 부름에 놀란 병조판서 김응남(金應南)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 임금의 존안을 살피며 대답했다. 임금은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탓으로 질책이라도 하는 양 매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응남의 등줄기에 싸늘한 전율이 흩고 지나가고 있었다.

“신, 여기 대령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하명하시옵소서.”

“왜군의 숫자가 대략 삼십 만에 이른다 하오. 그렇다면 이에 대항할 우리 조선군의 숫자는 얼마나 되오?”

  일국의 통수권자인 군왕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군사를 총괄하는 병권이야 말로 왕권을 확고하게 지탱해주는 최고의 기반이 아니겠는가. 병권을 상실한 군왕이라면 그것은 마치 허수아비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함에도 지금 군왕이 병권의 담당실무자인 병조판서에게 군사의 숫자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전하. 전하의 명만 있으시면 당장이라도 나아가 죽기를 각오하고 왜구를 무찌를 준비가 되어있는 전하의 최정예 삼십오만이 항시라도 출진을 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사옵니다.”

“삼십 오만이라. 그들이 모두 아무 때고 임전에 대비한 준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씀이시오?”

“그러하옵니다. 전하. 아무 때고 명만 내려 주시옵소서. 소신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일거에 왜군을 모두 소탕할 것입니다. 용맹한 전하의 군사들은 이미 북방의 오랑캐와 맞서 충분히 승리를 거두었으며, 남방에 끊임없이 출몰하는 왜구에 대하여 충분하리만치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정예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고, 부디 어심을 돌보시고 왜구의 침략에 대한 일은 신들에게 맡겨주시옵소서. 전하.”

“병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소 마음이 놓이는구려. 알겠소. 이른 시간부터 이제까지 여러 상황들을 개진하느라 다들 지쳤을 것이니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회의를 하도록 합시다. 휴식을 가진 후에는 과연 저 흉포한 왜구들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지에 대한 실직적인 대책들을 협의하도록 하겠소. 병판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의 고견을 짐은 기대하겠소.”

  선조는 선정전을 나가 내전으로 들어갔다.

  군왕이 선정전을 나가기를 기다려 신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 무리들의 사이를 헤집고 나서며 한 사람이 외쳤다.

“병판대감.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거늘, 어찌하여 당장의 안위만을 위하여 전하께 그같이 그릇된 말씀을 고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뭣이라고요? 지금 내가 전하께 거짓을 고하였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습니다. 병부의 기록상으로야 삼십오만의 숫자가 올라있는 것으로 아옵니다만, 전하께서 그 사실을 모르셔서 병판께 하문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병적에 올라있는 그 숫자가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군사들이냐고 확인하시려 하문을 하신 것이라는 것을 병판은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병조판서 김응남(金應南)을 세차게 몰아붙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호조판서 이광(李洸)이었다. 조정의 요직들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변방의 사정에 누구보다 능통한 인물이었다. 다만 지난 정여립의 기축옥사에 있어서 죄인들을 엄하게 벌하라는 명을 미온적으로 처리하였다고 하여 탄핵을 받았다가 근자에 다시 복직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변란을 앞세워 아무래도 호판께서 이 사람을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붙이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병부가 아무려면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나라의 녹만 축내고 있겠습니까? 방방곡곡의 요소요소 적재적소에 군관과 장수를 파견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책정된 군사들을 잘 훈련시키게 하였으며, 관할지역의 성곽과 방어진을 보수 관리하도록........”

“병판께서는 지금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변란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왔기에 오늘날까지 수대에 걸쳐 태평성대가.........”

“수년 전 이탕개의 난을 겪었듯이 북쪽으로는 끊임없이 오랑캐와의 변란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 바다에 수시로 출몰하는 왜구에 대항하느라 남도 지방의 군사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자면서 허기지고 지친채로 군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거늘.......... 이보시오. 병판. 북방에서 오랑캐와 대면하고 있는 군사의 수가 얼마이며, 남쪽에서 해안선을 지키는 군사의 수가 얼마이며.......... 이렇게 이미 군사접경지역에 투입된 군사를 제외하고, 당장 왜국와의 전선에 실제 투입할 수 있는 삼남지방의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병판은 파악하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어허. 전란을 앞에 두고 호판께서는 어찌 우리 병부를 힐난하기에만 급급해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이러다 조정이 자중지란에 빠졌다고 밖으로 새어나가겠습니다. 병판께서 근거에 없는 말씀을 하시진 않았을 것이니 군사에 관한 사항은 우리 병부에 일단 맡겨주시고, 호부는 당연히 변란에 대하여 호부가 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지를 않겠습니까?”

  가재는 게 편이라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 병조판서를 구하겠다고 거들고 나선 자는 바로 병조좌랑 이홍노(李弘奴)였다. 그러나 그 거들기가 자못 궁색하기가 그지없어 보였다.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이요? 지금은 어전회의요. 왜구와의 전쟁에 대해 만조백관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자 하는 조정이란 말씀이요. 이 같은 처지에 병부가 따로 있고 호부가 따로 있다는 말씀은 적절치가 않다고 사려 되는구려. 아울러 신 또한 병판대감과 병조좌랑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왜군의 선발대이자 정예군이 대략 십오 만이라 들었습니다. 하면 그 십오만이 이미 모두 상륙을 한 것입니까? 그 십오만의 대군이 부산성이랑 동래성을 침공하였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가장 시급한 것으로 병판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뒤이어 이조참의 이정암(李廷馣)이 뒤따라 나서며 거듭 병부를 따지고 들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따지고 드는 상대에 대해 병조판서 김응남과 병조좌랑 이홍노는 마땅한 대처 방도를 찾지 못한 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스스로 당혹해 하는 모습을 감추려는 듯 이홍노가 헛기침을 몇 번 한 후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응대하였다.

“참의도 한번 생각해 보시오. 왜국의 끊임없는 통상요구와 통신사 파견 이후 조정의 대응책으로 한편으로는 통상을 조건으로 저들을 달래 왔고, 또는 이번과 같은 변고가 있을까 하여 남해안의 성들을 보수하고 진지를 구축해 오지 않았습니까? 특히 부산성의 경우는 바로 지난달에 성 주위에 참호를 파고 목책을 설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 대비가 있었음에도 왜군이 몰려온 첫날에 부산성이 함락되었고, 그 다음날 동래성마저 저들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그런 정황에서 보자면 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침략준비를 해왔으며, 이번에 선발군 전원이 은밀하게 한꺼번에 상륙하였고, 저 놈들이 선발군 전체전력이 한꺼번에 부산성과 동래성에 들이닥쳤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이홍노는 다시 한 번 좌중을 둘러보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에 대하여 이정암은 이미 짐작을 했었던 듯 재차 더 심도 있는 질문을 퍼부었다.

“왜군 선발대가 이미 모두 상륙했다는 말씀이군요. 좌랑의 짐작이십니까? 아님 어떤 근거에 준한 말씀이신지 궁금하군요. 아무튼 도승지께서 방금 전에 발표하신 말씀에 준하자면 이미 부산성과 동래성은 함락되었으며, 저들이 서로 앞 다투어 북상을 한다고 하니 북상하는 통로를 따라 인근의 여러 성들이 전투를 하는 중이거나 더러는 이미 함락이 되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해안의 초기 방어진이 이미 허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조선의 개국초기에는 방어체계로 진관체계가 유지되었었다는 것은 병판이나 좌랑이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대신들이 익히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최전방의 방어진이 무너지면 후방에서 제대로 방어진을 만들어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약점이 있는 정책이었기에 수정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지금의 조정이 채택하고 있는 제승방략의 체계이지요. 진관제도의 모순을 보완한 것이 제승방략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부산 동래 등 초기의 방어진이 완전하게 뚫렸습니다. 부산과 동래가 이미 함락되었고 적의 대군이 물밀듯이 북상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당장 시행하여야 할 제승방략의 정책에 따른 대안이 무엇입니까?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방어를 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까? 제승방략의 실무를 맡고 계신 병판께서 당장 그 제승방략 시책에 따른 조치를 전하께 건의 드리고 서둘러 시행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사려 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진관체계의 허점을 파악하여 만든 제승방략 시책이었습니다. 이 제승방략의 시책에는 다른 허점이 없는 것입니까?

‘어험. 어험.’

“이 같은 판국에 어쩌자고 원론적인 토론을 하자는 것인지 원............ 이런 변란에 대비하려고 잘 훈련시킨 우리 군사들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나선다면 까짓 왜구 정도야.........”

  병조판서도 병조좌랑도 섣불리 무엇이라 더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다시 대신들이 제각각으로 웅성거리자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태를 지켜보던 좌의정 유성룡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여기모인 모든 대신들의 처지와 생각은 다르겠으나 왜적의 침입이라는 중대한 사태 앞에 종묘와 사직을 지키고 군왕을 받들어 모시며 만백성의 안위를 걱정하여 하시는 말씀들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도승지를 통한 근거가 있는 소식에 의하면 지난 열사흘에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시킨 왜군은........ 적 선발대 1진으로 내침한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의 휘하병력 1만8천700명이 전부였습니다. 고니시 휘하의 종의지(소 요시토모)가 전투 전에 정발 장군과 송상현 부사를 접촉한 사실까지 확인 되었습니다. 왜군 선발대의 2진이나 3진 등 여타의 군대는 아직 상륙하였다는 별다른 보고가 없었습니다. 당장 이 순간까지의 왜군 침략과 모든 전쟁은 고니시 휘하의 병력만으로 단독으로 벌이고 있는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자면 그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왜군 선발대의 1진만으로도 지금 조선의 남해안이, 조선의 최전선 방어진이 모두 허물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적들은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해왔고 그만큼 싸움에 출중하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들 아시겠습니까?”

  선정전 안이 또다시 소란스러워 지고 있었다.

  부산에 상륙한 왜군의 실체가 겨우 선발대의 1진뿐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1진만으로도 하루에 하나씩........ 아니지 두 시간에서 서너 시간 만에 뚝딱하고 방어태세를 갖춘 성을 하나하나씩 점령했었다는 경천동지할 소식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제 곧 몰려 올 왜군이 2진에서 9진까지 늘어서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에 아직 왜국 안에서 전세에 따라 출발할 후방군이 별도로 십만이나 더 있다는 도승지의 이야기도 이미 있지 않았었던가.

  서서히 옥죄어 오는듯한 어떤 좌절과 깊은 절망감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대신들의 가슴속에 속속들이 깊게 침투하고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지만 모두의 눈동자에 공포감마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좌의정 유성룡은 좌중을 둘러보며 손을 들어 그들의 소란을 제지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비변사로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왜구의 침입에 대하여 병부 단독으로 어떤 대책을 개진하기에는 버거운 사태라는 것을 직시하여 지금 당장 비변사로 자리를 옮겨 실질적인 대책방안을 의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작금의 위중한 사태를 감안하여 비변사에 들 수 있는 대신들이 법률에 준하여 엄히 정해져 있으나, 특별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신하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기로 여기 영상과 우상과 조율을 이미 마쳤습니다. 해당하는 대신들은 서둘러 비변사로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더하여 비변사의 이름으로 포고령을 이 순간 발표합니다. 이 순간부터 왜적의 침입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고 실행이 시작될 때까지 이 자리의 모든 대신들은 대궐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자칫 이 같은 상황들이 적이나 일반 백성들에게 알려져 소란이 이는 것을 결코 좌시 할 수가 없어서 내리는 포고령입니다. 이제 곧 비변사에서 대책을 수렴하고 어전회의에서 전하의 재가를 받아 시행을 함과 동시에 대신들의 칩거는 해지될 것입니다. 궐 안에 머무시면서 여러 의견들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궐내의 그 어떤 동향이나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엄히 금하는 바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유성룡이 이산해와 함께 비변사로 향했다.

  모든 대신들도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갔다. 이내 선정전 안은 텅 비어졌다.

 

 

 

 

 

 

 

 

 

 

 

 

 

 

 

 

 

 

 

 

 

 

                      6

 

 

 

 

 

  "스미하루(고또오 스미하루. 五島純玄). 부산진에서 온 소식은 없는가?”

“장군. 아침에 전하여왔기는 분명 금일 중에 2.3.4진이 상륙한다는 보고였습니다. 모두가 사전에 치밀하게 사전 준비된 작전이었으니 틀림없이 지금쯤 부산진에 상륙하고 있을 것입니다.”

“후발대가 따라 들어온다. 그것도 오늘.......... 기요마사(가토 기요마사. 加藤淸正) 그 놈이 마침내 조선 땅에 발을 내딛는다는 말이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그 기요마사 놈이 말이다.”

“그러나 장군께서 이미 선발대의 1진으로 조선에 첫발을 내딛으셨고, 지난 며칠간의 눈부신 전공을 이루시지 않으셨습니까? 1진의 선봉대 수장이십니다. 가토 장군은 결단코 장군의 위명을 앞지를 수가 없습니다. 오늘까지 이루신 전공에 대한 보고만으로도 관백(토요토미 히데요시. 풍신수길)께서는 주저 없이 장군을 최고로 꼽으시는데 주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미 조선의 도성을 향해 우리는 많이 북상해 왔습니다. 내친걸음으로 한양에 입성해 조선의 군왕을 사로잡아 관백 저하께 바치신다면 장군의 위명은 세세무궁토록 고귀하게 전해질 것입니다.”

“스미하루. 정녕 그렇게 되면 나의 가문이 명신(名臣)의 반열에 들 수 있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어디 다른 누가 있어서 장군의 위명에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쳐도 그놈만은 기분이 나빠. 그놈의 어릴 때 이름이 가토 도라노스케 라는 이야기를 너도 들었겠지? 호랑이처럼 사납다는 뜻이지. 그 이름처럼 그놈이 싸움 하나는 사납게 잘 싸운단 말이야. 흐흐흐흐. 가토 이놈........... 내가 사카이의 상인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시정잡배라 떠벌렸겠다. 가토........ 두고 보자 이놈.”

  왜군 선발대로 1진의 수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았다.

  항간에서 자신을 가토 기요마사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맞수로 지목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항상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극도의 격한 반응을 보여 온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이번 조선 출병에 있어서도 서로 1진을 자청하다가 관백(쇼군) 앞에서 주사위를 던져서 기어코 다행스럽게 선발 1진의 임무를 받아냈던 고니시였다.

  이번 출병에 있어서 우선적인 기득권을 이미 얻었으니,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여 조선을 떠나 귀국하는 배 안에서는 자신이 가토 기요마사를 완전하게 제압했다는 목적을 반듯이 이루어내고야 말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한편 같은 시각.

  며칠 전과 같은 모습이 지금 부산 앞바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다께(安宅船)라 불리는 대형전선들이 부산의 앞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형급 배인 세끼와 세이로오가 뒤를 따르고, 그 사이로 소형전선인 하야. 고바야 등이 바쁘게 오고가고 있었다. 그날처럼 대략 700여척의 왜선이 부산 앞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를 까맣게 수놓은 왜선들 앞으로 위용도 당당하게 대장함 니혼마루(日本丸)가 닻을 내리더니 화려한 장군 복장을 한 사람이 작은 배로 갈아타고는 이내 포구에 당도하여 대지에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사내는 스스로도 그 일이 자못 감회에 새로웠는지 지극히 감격해 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부산진의 전경을 둘러보던 사내는 이내 방금 전 자신이 타고 온 대장함 니혼마루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부산진의 진지를 향해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가쯔네.(사가라 나가쯔네. 根良長每). 유키나가(고니시 유키나가. 소서행장)가 어디까지 진격하였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오너라. 그간의 전황과 그의 행로도 즉시 알아보고 내게 직접 보고를 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장군. 일단 막사로 드시지요. 전 부대가 모두 상륙하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될 것입니다.”

“가토는 이미 우리를 한참이나 앞서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서둘러야만 할 것이야. 조선의 도성을 차지하는 것과 조선의 군왕을 사로잡는 일만은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가라. 부산성에 먼저 들어가 잔류군 중에서 아루미의 고스께를 찾아서 내게 데려와라. 고스께는 내가 심어놓은 간자다. 내가 1진에 몰래 딸려 보내며 미리 지시해 둔 것이 있다. 그를 찾아 사루미와 함께 데려와라.

“사루미라 하시면..........”

“내가 너에게 아직 사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보구나.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고스께는 여럿의 사루미를 거느리고 있었다. 매우 요긴하게 쓰일 나의 특전부대라 해도 좋겠지. 고스께를 찾아서 사루미와 함께 데려오라.”

“장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침략군 2진의 수장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가 마침내 부산진에 상륙하였으며, 그의 부장인 나가쯔네에게 특별한 명령을 지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부하 2만3천명이 그의 뒤를 따라 상륙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왜군의 3진과 4진도 뒤를 따라 상륙을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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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쯔네는 서둘러 부산성 안으로 들어갔다.

  닷새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당시 이곳 부산성에서 벌어진 전투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불타버린 잔해들이 그대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성 안은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탔거나 허물어져 있었다. 불길이나 연기는 사라졌지만 매캐한 냄새는 여전히 숨을 제대로 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사방으로 피가 흘러 고여 있다가 말라붙은 흔적들이 고랑처럼 즐비했으며, 또한 성문 주위로는 아직 채 묻거나 태우지 못한 시체들도 수북이 쌓여있었다.

  하긴 나가쯔네가 전해들은 바에 의거하여도 그것은 전투라 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미처 전투에 대한 방비를 전혀 하지 못한 부산성 주민들을 향한 무차별 도륙이었다 해도 무방할 듯싶었다. 그냥 조총을 쏘고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벤 인간사냥터였다. 살려달라고 다리를 부여잡고 애원하는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 끌어다가 목을 베었다. 항복한 병사들까지도 구덩이 앞에 세워놓고 창으로 찌르고 칼로 목을 베었다. 그러나 자국군(일본군)에 대한 피해는 겨우 수십 명의 사망과 부상이 전부였던 것이다.

  나가쯔네는 어쩌면 이 전쟁이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 부산성 뿐이었는가. 바로 다음날 한나절 만에 동래성도 함락되었고, 고니시가 북상하고 있는 전선에서도 변변한 저항 없이 빠르게 북상하고 있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전쟁이 끝나고 관백 앞에서 전공을 다투려면 앞서 진격중인 고니시에 비해 주군인 가토가 한참을 서둘러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도착하는 지금에 이미 이제까지 이룬 고니시의 전과에 버금가려면 한동안 무척이나 고생을 좀 하게 생겼다고 까지 생각되었다.

  나가쯔네는 포로들을 시켜 선박을 통해 날라 온 식량을 야적하고 있는 병사에게 고스께를 찾는 중이라고 물었다. 병사는 화마 속에서도 그런대로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있는 전각을 손으로 가리켰다. 전각의 대청마루 위에는 전시임에도 갑옷도 걸치지 않았고 칼도 휴대하지 않은 맨몸 차림의 나이가 제법 들었음직한 병사 하나가 무슨 서책 같은 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저 흔한 하급병사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고스께를 찾고 있네. 어디 있는지 아는가?”

  서책을 보고 있던 병사는 고개를 들어 대충 흩고 지나는 듯 힐끗 나가쯔네를 살폈다.

“고스께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벙어리인가?‘

  나가쯔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군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병사의 태도에 짜증이 났던 것이다.

“무슨 일로 고스께를 찾으십니까? 장군.”

“뭣이라고? 네 놈 눈엔 장군은 보이면서도 뱃속의 복종심은 잠을 자는 중이란 말이냐?”

“장군의 모습은 분명 보이오나 제가 모시는 장군이 아니시기에 말씀입니다.”

“이 놈 봐라. 이 나가쓰네를 시정잡배 취급을.........”

“핫. 그러시면 사가라 나가쯔네 장군이시군요. 가토 장군님의 부장이신........”

“나를 아느냐?”

“대장군께서 여러 차례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고스께라 합니다. 앞으로 장군을 받들어 모시며 대장군께서 지시하신 일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있으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뭣이라? 앞으로 너를 내 휘하에 두라고 장군께서 이미 지시가 있으셨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뭐야? 이런 젠장........ 아무튼 너와 사루미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사루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대장군께서 사루미를 찾으십니까? 몇 번을 찾으시고 계십니까?”

“사루미를 당장 데리고 오면 될 일이지 몇 번이라니? 지금 사루미가 열 명쯤이라도 된단 말인가?”

“만나보시겠습니까?”

  고스께가 전각의 안을 가리켰다.

  나가쯔네는 군화를 신은 채로 터벅터벅 대청마루 위를 지나서 전각의 안을 들여다보다 말고 그야말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그는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아들었다. 도무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정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조선 놈들이 아니냐? 전투가 이미 끝났고 성을 함락을 시킨 게 아니었단 말이냐?”

“장군. 고정하십시오.”

“이 놈. 고스께. 네 놈도 조선의 첩자였구나. 내가 함정에 빠지고 말다니.......”

“장군. 저들은 모두 가토 대장군님의 수하들입니다. 저들이 바로 사루미들입니다.

고정하십시오.”

“모두가 조선 놈들 아니냐?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점령한 성 안에서 죄 다 무장을 하고 버젓이 들어앉아있더란 말이냐? 토굴이라도 파고 들어왔느냐?”

“순왜(順倭)입니다. 일본국에 동화되어 스스로 찾아들어 온 자들이란 말씀입니다. 일부 노예로 끌려 온자도 있으나, 조선의 당쟁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생명을 구하려고 도망 온 양반도 있고, 장사를 하다 도적에게 모두 털려 돌아갈 곳이 없어 온 자도 있고, 죄를 짓고 도망을 다니다 쫓겨 온 자도 있습니다. 승려와 부녀자도 있습니다. 대부분이 저들 스스로 살겠다고 조선에서 도망쳐 온 자들입니다. 조선이라는 곳이 이미 오랫동안 당파싸움에 여기저기 집안이 통째로 몰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양반들의 재물탐닉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차라리 죽기보다 힘들다하니 저렇게 죽기 살기로 도망쳐 온 자들이 부지기수로 많은 실정입니다. 하여 그들 중 극히 일부를 우리의 필요에 따라 차출하고 훈련을 시켜서 우리 군대에 필요한 무리들로 양성하였습니다. 안에 있는 자들처럼 평범한 조선인으로 정체를 숨기고 이미 조선의 각지에 침투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그럼 저들이 조선인이 아닌 우리 일본을 위해 일하는 간자(間者)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간인(間人) 이라고도 하고 세작(細作) 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영주 휘하에 있는 저들과 같은 무리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제 고향에서 간자를 빗대어 부르는 사투리인 사루미란 말로 저들 무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여 다른 곳에선 저희가 사루미라 부르는 뜻의 속내를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저들에겐 이름도 없습니다. 그저 사루미 하나. 사루미 둘. 사루미 셋........ 이렇게 숫자로 대신합니다.”

“네 말대로라면, 저들 사루미 같은 부류들이 이미 다른 영주의 군대에도 있단 말이냐?”

“이번 조선침공에 있어서 세작을 가장 먼저 창안하고 활성화한 영주는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 영주입니다. 고니시 장군 휘하에 부장으로 있는 소 요시토시(종의지)가 자신의 영지인 쓰시마(대마도)에서 노략을 일삼으며 납치해 온 조선인 중에서 자질이 있는 자를 뽑아 특별히 훈련시켜 조선해안 약탈에 투입시켜 커다란 성과를 얻으면서 본격 시작된 것입니다. 쓰시마에는 이미 전 왕조에서부터 귀화한 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어서 모든 면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하여 우리는 정예로 오십여 명을 활용하고 있으나, 고니시 영주의 휘하에는 이백에 가까운 세작들이 이미 조선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저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

“제 놈들이 살았던 지역이기에 우리 군대가 나아갈 때 길 안내를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싸움터에 먼저 들어가 첩보를 입수하고 적의 주민들을 선동하고, 때로는 몰래 잠입해 요소요소에 불을 지르거나 필요한 식량과 무기를 약탈해 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제 놈들이 태어난 나라요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인데........ 저들을 끝까지 믿을 수 있겠느냐?”

“어떤 이유로든 살려고 조선에서 도망쳐 온 자들입니다. 저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면 처참하게 죽는 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저들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대장군께서 이미 저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셨고, 보살펴야 하거나 소중한 사람들을 그곳에 머물게 하였으니 배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우리 군대에게 협조하고 희생한 대가로 후방의 가족들이 넉넉하게 살 수 있을뿐더러, 싸움에서 승리하면 조선의 관아 창고에 들은 물건들 일부는 보상차원에서 저들이 어느 정도 약탈해 재산을 축척하는 방편으로 은밀하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들이 우리 군대보다도 더 집요하게 싸움판에 뛰어들고 더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고 방화와 약탈에 항상 선봉에 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 군대가 오히려 저들 사루미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구나.”

“어떤 면으로는 말씀입니다.”

“그럼. 지금 장군께서 찾으시는 사루미는 저들 중 누구냐?”

“첫째 사루미를 찾으시는 것 이온데.......... 첫째 사루미는 이곳에 없습니다.”

“장군께서 오늘 이곳에 당도하신다는 것을 사전에 통보하였다는데 어찌 없다는 것이냐? 당연히 기다렸다가 그간의 보고를 드렸어야 하지 않았더냐?”

“고니시 장군의 진격이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니 고니시 군의 세작들은 그보다도 더 빠르게 이미 조선의 도성까지 침투하여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엿들은 정보 중에 한양 도성의 수비방책과 더불어 한강을 건너는 일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기 부산에서 한양을 가자면 병풍처럼 옆으로 길게 가로막고선 고갯마루가 있는데, 그곳을 반듯이 통과하여야만 한양에 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교통로라 하였는데......... 그 고개가 바로 천혜의 방어요새라 합니다. 고개가 하도 험해서 나는 새도 쉬어서 넘는다 하여 조령(鳥嶺)이라 부른답니다. 들은 바로는 일백의 군사로 능히 오천의 군사를 막을 수 있는 지형적 특수성을 지녔다 합니다. 한양에 들어가 조선국왕을 체포하자면 반듯이 이곳을 통과해야만 하며, 고니시 장군도 이 점에 대단히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 우리 사루미 서넛이 조령의 상태를 미리 점검하고 고니시 군의 방책을 알아보려고 서둘러 올라갔습니다.”

“그럼 어쩐다? 장군께서 사루미를 데려오라 하셨는데?”

“사루미 넷째를 함께 데리고 가겠습니다. 여기 사루미 집단의 정보를 통합 분석하고 전방과 후방의 연락을 맡은 발걸음이 정말 빠른 사루미입니다. 또한 청초한 모습에 수려하기까지 한 미모를 간직한 계집이라 어떤 검문검색에도 무사히 통과를 한답니다. 대장군께서도 이미 보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녀라면 지금 장군께서 필요로 하시는 모든 궁금증에 답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계집이란 말이냐?”

“첫째 사루미의 동생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안쪽에서 듣고 있었는지 어느새 한 사람이 이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먼지와 때가 그득한 무명바지에 무명저고리를 입고 있었지만 길게 땋아 묶은 머리카락 아래로 수줍게 드러난 여인의 모습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을 만큼 매혹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나가쯔네는 저절로 함지박만큼 벌려진 입을 쉬이 닫지 못하고 있었다.

 

 

 

 

 

 

 

 

 

 

 

 

 

 

 

 

 

 

 

 

 

         7

 

 

 

 

 

“왜구는 물밀듯이 이곳 한양을 향해서 쳐 올라오고 있습니다. 각 지방의 군대가 치열하게 방어전투에 임하고 있다고는 하나, 사전에 준비가 철저하고 오랜 내전으로 싸움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왜구들과 싸움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싸움이 적들의 기습에서 시작된 만큼 이제라도 우리가 전열을 가다듬고 저들의 진격에 철저하게 대비하여 저지함과 더불어 패퇴를 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여 비변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부산에 상륙한 왜구들이 한양까지 오는 길은 세 곳밖에 없습니다. 바로 추풍령과 조령과 죽령뿐입니다. 하여 이 세 곳에 철저하게 방어진을 구축하여 왜구들을 물리쳐야만 하겠습니다. 하여..............”

  영의정 이산해는 여기까지 말을 내려가다가 잠시 멈추고 용상에 앉아있는 임금의 표정을 슬며시 살폈다. 자못 진지한 표정의 임금은 연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칫 아무 때고 불호령이 떨어질까 불안해하던 이산해는 다소 안도감 속에 비변사에서 논의된 내용을 마저 읽어내려 갔다.

“우선 무장 성응길(成應吉)을 좌방어사(左防禦使)로 삼아 죽령을 지키게 하겠습니다. 전하. 가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시오. 그런데 성응길은 지금 어디 있는가?”

“신 성응길. 여기 대령하고 있사옵니다.”

  대신들의 뒷전에서 성응길이 대답하며 한걸음 나섰다.

“지금 즉시 죽령으로 달려가 그곳을 사수하라. 알겠는가?”

“신이 기필코 목숨을 걸고 왜구들이 한걸음도 죽령을 넘지 못하도록 막겠나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 이보시오. 병판. 군사는 얼마나 딸려 보내면 되겠소?”

“현지에 있는 군사들의 지휘권을 주고, 죽령 또한 적들이 쉬이 넘보지 못할 지세이오니 이곳에서 군사 삼천을 보낼까 하옵니다. 아울러 조방장 박종남(朴宗男)이 응길과 함께하도록 하시옵소서.”

“군사 사천을 주도록 하시오. 좌방어사는 지금 밖으로 나가 군사를 배정받는 대로 현지로 떠나도록 하여라. 이미 짐의 명이 내렸으니 별도의 출발인사를 올 것도 없다. 서둘러 현지에 부임하여 적을 막기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신. 성응길. 전하의 명을 받습니다.”

  좌방어사로 임명된 성응길이 서둘러 대전을 나갔다.

“추풍령을 막을 우방어사로 조경(趙儆)을 선발하여 내려 보내고자 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아니 되옵니다. 전하. 조경은 이미 죄를 짓고 모든 관직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어찌 그런 자에게 군대를.........”

  영의정 이산해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무섭게 반대를 주장하는 무리가 있었다.

“매우 위중한 전시입니다. 조경은 훌륭한 무장이고요.”

“그러나 법도를 어겨 파직당한 것을 그새 영상께선 잊으신 것입니까?”

“과인이 기억하기로 조경의 죄가 일전에 귀양 보낸 송강을 죄인 취급하지 않고 잘 받들어 모셨다는 것 아니요?”

“그렇사옵니다. 나라에 죄를 지은 자를 감싸는 것은.........”

“관직에 있는 몸으로 죄인을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을 돌보아주었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 여겨 그를 이미 관직에서 파직하지 않았소. 허나 달리 생각해 보면 불손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지난 정리가 있어 그리한 것이라면 그 또한 사내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소? 그가 겪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요. 더욱이 짐은 오전에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았소. 윤두수를 비롯한 귀양 가 있는 서인들을 도성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라고 말이요. 나라가 환란에 빠진 이때, 내 당파를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능력을 쓰고 싶다고 말이요. 그런 차원에서 짐은 기꺼이 조경을 우방어사에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추풍령을 방어하도록 하겠소. 도승지는 짐의 이런 뜻을 조경을 찾아 전하고, 그에게도 군사 사천을 주어 당장 임지로 떠나도록 하라.”

“명을 받들어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도승지 이항복이 대답했다.

“이제 조령이 남았구려. 그만큼 가장 중요한 길목이고..........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이일(李鎰)을 순변사(巡邊使)로 임명하시어 조령과 그 아래의 삼남까지를 방어하도록 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이일은 어디 있는가?”

“신 또한 이곳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하.”

“그대를 순변사로 명하니 즉시 채비를 하고 현지로 떠나 조령을 지켜내도록 하라.”

“신. 이일. 목숨을 바쳐 전하의 명을 기필코 달성하겠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순변사 이일에게는 종사관으로 윤섬(尹暹) 박호(朴箎)와 더불어 군사 오천을 주어 보내겠습니다. 지금의 군사정책인 제승방략이 개국초기의 김종서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나, 실로 그 제승방략이 개량되고 새롭게 수립 정착하는 데는 바로 여기 있는 순변사 이일이 바로 그 중심에서 실행시키고 완성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바, 조령의 방어를 위해 출전하는 것이기는 하나, 조령 이남의 삼남지방의 군사력을 총 집결시켜서 제승방략의 정책대로 순변사 이일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 통솔하여 왜구들을 대적하게끔 지휘권 또한 내려 주셔서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제승방략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순변사였지? 즉시 그렇게 시행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부족함이 없이 채워 내려갈 수 있게 하라.”

“소신.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왜구의 북상이 빠르다고는 하나 왜구들 다수가 기마병이 아니기에 북상 속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여 초기 전투의 해안 방어진은 무너졌다고 하나 다수의 지방군은 여전히 존재하나 다만 지휘통솔이 어려워 흩어진 상태라 보여 집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만든 것이 바로 제승방략이옵니다. 소신이 이제 출발하여 내려가면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지방군에 통지를 보내 합류할 거점을 마련하겠으며, 그곳으로 모여든 전 병력을 통솔하여 소신 또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뛰어들어 기필코 왜구들을 섬멸해 낼 것입니다. 그 첫 방어선을 신은 상주쯤으로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기필코 상주 이북의 땅을 왜구들에게 한 치도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 내 기뿐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겠다.”

  순변사 이일이 임금에게 세 번 절하고 나서 서둘러 대전을 나갔다.

  비로소 다소간 안도의 마음이 들었던지 임금이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그럼 이것으로 일단의 방어진은 갖추어진 것인가?”

“전하. 상주 문경을 지나 조령을 넘어 충주에 이르는 길목은 바로 이 나라의 혈맥과 같은 곳입니다. 적들은 반듯이 그 길을 따라 올라와 조령을 넘을 것입니다. 조령을 넘어 충주에 이르면........ 충주에서 이곳 도성까지는 그야말로 텅 빈 들판처럼 군사들이 마구 내달리기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것이 옵니다. 적을 막을 곳도 막을 방법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단숨에 이곳 도성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목숨을 걸고 이곳만은 반듯이 지켜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조령 이북의 전 군사를 동원하고........ 황해도를 비롯한 북방의 오랑캐를 막는데 투입된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조선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조령 이북을 지켜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도성의 근왕병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도 동원해야겠지요. 이번 왜구와의 전쟁은 조령 이남에서 기필코 끝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조령을 지켜내지 못하면......... 앞일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변사 이일을 서둘러 내려 보냈으나............ 수십 년간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쟁미치광이 십오만이 지금 쳐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운을 걸고 조령을 지켜낼 장수와 군사들을 당장 내려 보내야만 합니다.”

“나라의 국운을 걸고 단판 승부라.............. 그렇다면 그 같은 중책을 누구에게 맡기면 되겠소.”

“비변사에 모여 중론을 모았사온데............ 십오 만의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왜군을 막아내자면 육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용맹한 장수가 필요한데......... 여러 대신들이 우선은 경상 우수사(慶尙右水師)로 부임해 있는 원균(元均)을 천거했습니다. 하온데 지금 왜구가 바로 경상도로 침입을 한 이유로 현재 어디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바로 한성판윤 신립(申立)입니다. 원균이나 신립이나 모두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고, 북방 오랑캐와 또는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들에게 있어 저승사지라 불렸을 만큼 많은 공을 세운 당대 최고의 용맹한 무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온데 신립 또한 현재의 직책이 한성판윤으로 도성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처지인데다가......... 어떻게 소식이 전하여 졌는지 금일 오후부터 항간에 파다하게 왜구의 침입 소식이 전해져서 지금 도성 안팎으로 심각하게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동요가 점점 심해져 가는 가운데 신립을 당장 차출하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오니 전하......... 이미 명을 받은 자들을 금일 중으로 준비시켜 날이 새기 무섭게 내려 보내고, 이들의 뒤를 책임질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 임명 문제는 내일 아침까지만 미루어 주시옵소서. 다른 대안을 찾아 새 인물을 천거하던지, 원균을 찾아내던지, 신립을 대처할 방도를 마련하든지 하겠사옵니다. 내일 아침까지만 결정을 미루어주시옵소서.

‘원균이라...........’

‘신립이라...........’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임금은 두 사람의 이름을 거듭 뇌까리고 있었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전쟁이란 당연히 무신들과 병사들에 의해 현장에서 승부가 좌지우지되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의 무신들을 배격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그저 탁상공론처럼 문신들이 전쟁을 이렇다 저렇다 매도하고 있는 현실이 대단히 못마땅했던 것이다.

  화살이 날아들고 칼과 창이 부딪치고 목이 잘리고 피분수가 솟고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부상자들이 신음과 절규를 해대는 시체가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는 전쟁을 입이나 조잘거리는 저들이 알 리가 없기 때문에 더 한심한 작태라고 탄식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 분명 한성판윤 신립 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그 무엇인가가 마구 용솟음쳐 올라왔다. 피가 끓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오랑캐나 왜구의 소탕전이 아니다. 이것은 대대적인 전쟁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다.

‘나의 뜨거운 심장과 전신을 타고 도는 핏줄과 신경이 전쟁에 대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의 가슴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전쟁터에서 이제껏 단 한 발짝도 떠난 적이 없었다.’

‘오너라. 내가 기꺼이 나아가 너를 맞으리라.’

  신립은 그 전쟁이, 그 전쟁터가 이제 다시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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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남해안의 여러 곳을 돌며 왜구와 치열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기억이 생생한 신립이었다. 그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왜구의 대다수는 단순한 부랑자나 굶주림에 쫓기다 해적이 되어 칼을 휘두르게 된 자들이 부지기수였으나, 개중에는 죄를 지어 쫓겨났거나 전쟁에서 패하여 갈 곳이 없거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 하급무사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되었던 이미 정식으로 무술 훈련을 몸에 익힌 자들이었다.  이미 싸움을 충분하리만치 경험해 본 자들이었다. 이런 부류들을 낭인, 혹은 향사라 불렀다. 비가 오면 무사는 나막신을 신을 수 있었지만, 이들은 맨발로 걸어야만 했다. 게다가 무사가 있는 자리에는 그들은 함께 앉을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들은 점점 도회지를 떠나게 되었고, 마침내 한적하다 못해 외진 대마도(쓰시마)까지 흘러오게 되었으며, 왜구(해적)의 무리에 끼게 되면서 저들을 이끄는 선봉이 되었던 것이다. 칼을 마구 휘두르며 그간의 울분을 풀었고, 약탈한 물품들로 비록 좁은 대마도 안에서였지만 나름의 풍요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가세로 왜구의 전투력은 급격하게 향상되었고, 그들의 횡포는 더더욱 커져서 마침내 조선과 멀리 명나라 조정까지 두려움에 떨게 하였던 것이다.

  하여 조선조정은 이들을 토벌하고자 신립을 파견하였던 것이다. 전면전을 벌이면서 신립은 이미 몇 차례 이들 낭인들과 일대일 대결을 벌인 적이 있었다. 비록 전투 중이었지만 왜국의 무사와 조선의 무장이 정식 무술을 겨루었다는 뜻이다.

  낭인들은 날이 좁고 긴 매우 가벼운 칼을 쓰고 있었다. 칼을 뽑는데 조차 어떤 수순이 있어보였다. 정형화된 도식처럼 느껴졌지만 그들의 칼솜씨는 화려했다. 상대를 베어 쓰러트리는데 있어 어떤 미학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상대를 제압하되 어떤 수순을 거쳐 멋을 한껏 부려야만 진정한 승리라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신립 자신의 이제껏 몸에 밴 칼솜씨는 저들에 비해 지극히 단순했다. 그저 단순하게 칼집에서 검을 빼서는 이리저리 휘둘러 내려치고, 아주 작은 적의 허점이라도 발견하면 주저 없이 찔러가는 것이 전부였다. 칼을 뽑아든 만큼 어떻게 하든 신속하게 적을 제압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저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쾌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놈들은 베지만 우리는 찌른다.’

  문득 왜구들이 전면전에 앞세운다는 조총에 대해서도 생각이 났다.

  신립은 이미 조총을 보았었고, 조총이 사용된 전투를 치러본 경험도 있었고 자신이 직접 그 조총의 위력을 시험해 보기도 하였었다.

  여진 오랑캐 이탕개를 토벌하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오랑캐들이 명나라를 통해 들여 온 조총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십여 자루도 안 되는 숫자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처음엔 천둥소리 같은 뇌성벽력에 일부 병사들이 잠시 당황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아군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무기인 편전에 비하면 굉음 소리만 요란했을 뿐, 어느 하나 편전에 비해 나은 것이 없어 보였다. 오랑캐를 무찌르고 나서 노획한 조총을 포로를 시켜 시험해 보았으나, 실로 조잡하고 사용하는데 있어 절차와 시간이 매우 번거로운 것이 도무지 효율성이 없어 보였다. 비라도 내리게 되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에 비해 지금 쳐들어 온 왜구들이 잘 훈련시킨 새로운 조총부대를 전면에 내세워 엄청난 위력의 전투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하나, 제대로 훈련된 정예 기마대를 앞세워 빠르게 내달리는 마상에서 편전을 날리고 저들을 진중으로 육박해 들어가 칼을 휘둘러댄다면 결코 제압하지 못할 왜구의 군세는 절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투에 있어서도 절대 다를 것이 없다. 저들의 칼솜씨처럼 공격성. 잔인성. 단칼에 베어버리겠다는 단호함으로 화려하게 전투에 뛰어들겠지만, 날을 잘 세운 검으로 단숨에 저들의 허점을 찔러간다면 승리는 당연히 우리의 몫이 아니겠는가. 전투는 술(術)이 아니다. 전투는 바로 쾌(快)이다. 단순하고 빠른 것이야말로 바로 전투의 생명이다.’

  새로운 전투에 대한 기대가 그의 가슴을 마구 요동치게 하고 있었다.

  조선 제일의 무장 신립은 어느새 붉게 충혈 된 눈을 들어 용상의 임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8

 

 

 

 

“나리. 배가 건너오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마지막 배가 건너갈 것입니다. 저희 상단의 양행수가 지금 도착하는 배에서 내리게 되면 이번계책을 시작하는 것이 되겠으며, 마지막 배가 떠나면 곧 나리께서 주막으로 가셔야만 합니다.”

“자네의 짐작이 들어맞았기를 바랄뿐일세. 지금으로선 우리가 세작들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을뿐더러 방비를 할 시간도 전혀 없음일세. 여기서 어떤 단초라도 나와서 세작들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소인이 부산진을 떠나 꼬박 나흘을 말을 달려 한양으로 올라오는 동안에 저희 상단이나 교류가 있는 상단을 통해 말을 바꾸어 얻어 타고 오는 과정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부산에서의 일을 입 밖에 내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파발이나 장계도 저 보다 빠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 여기 광나루를 건너 마침내 한양에 들게 된 것이지요. 곧 바로 마포나루로 갈까 하였으나 날이 저물고 있었고 마침 마지막 배가 오갈 무렵임을 평소 알았기에 일단 여기 광나루를 건너서 저희 상단과 교류가 있는 배편을 마련하여 서둘러 마포까지 한강을 거슬러 내려갈 요량이었습니다. 배편을 알아보고 있던 중에 바로 저기 눈앞에 보이는 주막에 저희 마포상단의 행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건어물과 젓갈을 싣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 영춘과 평창 일대로 장사를 떠나는 중에 때가 갈수기 인지라 줄어든 수량으로 인해 골을 헤치며 뱃길을 열어줄 노련한 뱃사람 하나를 구하는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몹시 허기가 졌던 저는 국밥 한 그릇을 말아 허겁지겁 요기를 하면서 이번 장삿길을 멈추고 되돌아가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번 상단이 장사 길을 떠나면 짧게는 두세 달에서 많게는 반년이나 일 년씩 걸리는 행차기에 나선 길을 되돌린다는 것이 그리 요원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여 저는 부득이 제가 지금 급하게 부산진에서 올라왔으며 그저 그 지역에 커다란 변고가 생겼다고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이상의 세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곧바로 상단의 배를 되돌려 마포로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껏 겪은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저를 암습하려던 자들은 분명 제가 부산에서 서둘러 올라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를 분명하게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하여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같은 사실을 누군가가 알 수 있는 길은......... 아마도 여기 이곳 주막에서 누군가가 엿들었거나, 이미 저 같은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는 경우일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난 행수라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새벽에 세작을 쫓아갔던 방행수가 그 분입니다. 이제껏 저희 상단을 지켜 오신 훌륭한 분입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여기 주막이거나 이곳을 기웃거리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광나루를 건너 온 양 행수가 말을 흘릴 것입니다. 그리고 나리께서 가셔서 분위기를 살피시면 될 것입니다. 한성부의 장 군관께서 여기 북쪽 언덕의 광진원(廣津院)으로 가셨습니다. 주막의 동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곧 물색해서 오실 것입니다. 원에 머물고 있는 군사도 모두 동원 할 것입니다. 무엇인가 저들의 움직임이 포착될 때까지 저와 임 군관께서 언제든 뛰어들 준비를 갖추고 여기에서 계속 주시를 할 것입니다. 혹시 저들 중에 세작이 있는 것이라면 이미 저에 대해서는 알아볼 수 있다 싶어서 부득이 나리를 위험한 자리로 보내드리게 되었으니 부디 조심하시고, 무엇인가 알아냈다 싶으시면 곧바로 신호를 보내십시오. 소인이 달려가 나리를 보호 할 것입니다.”

“어허. 내 자네의 말은 모두 잘 알아들었네만....... 말끝마다 나리라 하지 좀 마시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자네랑 나랑 예닐곱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네만 어쩌자고 자꾸 그렇게 불편하게 부르시는가?”

  스물여덟의 양함(梁諴)은 꼬박꼬박 나리라 부르는 이 젊은이의 호칭이 영 거북스러웠던 것이다. 자신을 봉삼(峰三)이라 소개한 이 남빛 잠삼 차림의 청년은 어딘가 모르게 마포상단의 한 장사꾼으로 보기에는 의젓하고 무엇인가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소인이야 미천한 신분 이옵고.......... 얼마 전까지 함창 현감을 지내시다 새 임지로 부임하기 위해 한양에 오셨다 들었습니다. 좌상대감님과 권율 부사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자니, 나리께서 장차 큰일을 하실 장래가 아주 유망한 훌륭한 젊은 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하여 나리라 불러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

  저만치 산언덕 아래의 주막을 한동안 뚫어져라 살피던 양함은 시선을 거두어 이번에는 봉삼을 예리한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오랫동안 쳐다보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봉삼이 벌겋게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나...........리. 어쩌자고 소신을 그리 쳐다보시는 것이옵니까?”

“............. 대직약굴(大直若屈) 이라 했네. 자네는 이를 어찌 생각하는가?”

  뜻하지 않은 질문에 순간 봉삼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러나 양함의 시선은 그런 봉삼의 표정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에 박힌 양함의 날카로운 시선을 봉삼도 이젠 결코 피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주위를 무겁게 내리누를 즈음 차분한 목소리로 봉삼이 입을 열었다.

“대의(大義)에 뜻을 둔 사람은 소절(小節)에 구애 받아서는 아니 될 것이며, 곧은 사람이라 할 그런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의리에도 대의가 있고 소의가 있으며, 용기에도 대용과 소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곧은 절의에도 대절과 소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자기 일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행하는 것은 소의이며 소용이며 소절이고, 만천하의 대다수 백성을 위하고자 함은 대의요, 대용이며 대절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무리 그 말과 표현이 옳지 못한 명분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하여도, 그 속셈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집착한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소절이라 하겠습니다.”

  봉삼의 답변에 양함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아니었다. 어찌 본다면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무거운 침묵으로 봉삼을 쳐다보던 양함이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어찌하다 보니 이른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던 것은 사실이네. 하여 정치라는 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네. 조정에 나아가 대신들이 모여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행하는 지에 대하여서도 나는 아직 잘 모른다네. 다시 말하자면 정치라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일세.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치라는 것에 대해 모른다는 표현 또한 옳지 않다는 생각일세.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은 이미 원하던 원치 않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선 것이 아니겠는가? 자네나 나나 정치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터............. 하지만 이 순간에 나는 분명.......... 조정이 돌아가는 꼴이..........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고 있네. 오늘 새벽에 자네와 나는 좌상대감이며 도승지며 권율부사며 백대붕 처사며 장세강 나리와 경응순 왜학통사들도 만나 보았네. 나는 그분들에게서 환멸을 느끼고 있는 정치판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네. 그렇다면 자네는 그분들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몹시 궁금하네.”

  이번에도 봉삼은 무거운 침묵으로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옛 성현께서 이르시길, 무릇 정치란 노(老)와 장(壯)과 청(靑)이 슬기롭게 조화를 이룰 때 참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조화에 몇 가지 구태의연한 문제점들이 생겨나는 바, 그중 하나를 예로 든다면.......... 나이든 정치인들이 사회적인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는데 노련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노정객이 되면 피할 수 없이 스스로의 아집과 편협성에 젖게 되어서 역동성과 다양성을 가진 새로운 생각의 젊은 정치가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것입니다. 낙후와 침체와....... 마침내 고인 물은 썩는 경우와 같은 누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 오늘 뵈었던 그 분들이라면............ 고인 물웅덩이에 상류에서 그나마 신선한 물을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는 중요한 분들이라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같은 답변을 미리 짐작하기라도 했던 듯, 양함은 무표정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양함이 한참을 기다리다가 고개를 돌리며 툭 하고 던지듯 한마디를 했다.

“자네. 반상인가?”

  뜬금없이 갑자기 이것이 무슨 질문인가?

  봉삼은 숨소리를 죽이며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어찌 양함이 물어오는 질문의 뜻을 모르겠는가? 봉삼은 주막으로 시선을 돌린 양함의 옆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권 부사께서 지나는 말로 그러시더군. 자네의 낯이 어딘가 모르게 익다고......... 저자거리에서 마구 자란 행실이 결코 아니라고 말일세. 옆에서 김여물 장군이 내게 말씀하셨네. 자네를 보건데 틀림없는 반상일 것이라고. 어떤 이유에서건 드러내지 못하는 신분일 것이라고. 실은........ 나도 그렇게 느꼈네.............. 만덕 노인의 손자라는 것은 나도 믿네. 다만....... 만덕 노인이 거두기 전의 자네........... 아비와 어미에 대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더는 묻지 않겠네. 다만............ 자네 반상인가?”

‘자네 반상인가?’

‘자네 반상인가?’

‘반상?’

‘내가?’

‘반상이 무엇인가?’

‘지금 반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를 품에서 놓지 않았던 어미와 나에게 자상하게 글을 가르쳐 주던 아비.’

‘나를 매우 엄하게 닦달 하셨던 또 다른 아비와 나만 보면 늘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또 다른 어미.’

‘내가 양반인가?’

‘나는 만덕할아버지의 손자이니까 중인 신분이 아니었던가?’

‘아님 상놈?’

온갖 상념들이 뇌리를 흩고 지나가고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또 다시 양함의 착잡한 표정과 공허한 음성이 폐부를 뚫고 들어왔다.

‘자네 반상인가?’

  저도 모르게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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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아범. 더 늦기 전에 몇 동이만 더 져 나르라니깐. 저기 하늘 좀 봐. 금방 한 소나기 하겠어.”

“노루막이가 좀 까매졌기로서니 무얼 그리 호들갑이란 말이요? 항아리 두개는 내가 이미 가득 채워놓았는데 까짓 어두워지기 전에 나머지 하나 못 채우겠소? 보채지만 말고 탁배기나 한 사발 냉큼 주슈.”

“거 가라사니 없는 말일랑 좀 작작하슈.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허구한 날 술타령이나 하고 방구들에 들어앉았기나 하면서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어디 그간 밥값이나 제대로 하는 줄 아슈?”

“어허. 이거 부엌어멈이 꼭 쥔 말씀하시듯 하네? 이거야 원. 허구한 날 사람을 이리도 쥐 잡듯 들볶으니 아무래도 날도 풀렸겠다. 어디로든 떠나든지 해야지 원.”

“쳇. 하는 꼬락서니 보아서는 진즉이 내쫓아버릴 것을 그나마 안 되었다 싶어 나름으로 챙겼더니만 하는 소리라고는............ 떠날 것이면 예서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어디든 떠나슈.”

  동시에 부엌어멈의 매서운 손길이 물아범의 등잔대기를 그대로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아범이 화들짝 놀라 일어서며 저만치 달아났다. 길길이 날뛰며 푸념을 늘어놓더니 이내 물동이를 지고는 사립문밖으로 돌아 나갔다.

  속까지 미운 것은 아니었는데, 왠지 다가서거나 마음을 좀 열까 싶으면 물러서고 체념해 버릴까 하면 다가와 살갑게만 구는 물아범 때문에 여간 속이 상하지 않는 부엌어멈이었다. 서방이라고 하나 있던 것이 밤사이 어둠을 틈타 어디론가 줄행랑을 친 것이 벌써 네 해가 넘어서고 있었다. 자식이라고 내질러 논 계집자식이 병으로 죽은지도 어언 두 해가 지났다. 그간 사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내들이었을 뿐, 물아범만큼 가슴을 후벼 파듯이 사내의 품이 그리웠던 적은 없었다. 반년 쯤 전이었던가. 꼬락서니하고는 한 열흘을 굶은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 무슨 일이든 다 할 터이니 우선 허기나 면하게 해달라고 조르던 때가 바로 엊그제만 같은데......... 허우대는 멀쩡한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게 망가지고 상했을까 하는 마음에 부엌어멈이 주인할미에게 넌지시 사람 일손이 필요하지 않느냐 사정해서 주막에 머물게 하였던 것이다. 며칠 지내놓고 보니 허우대만 멀쩡한 것이 아니었다. 주막의 바깥살림을 죄다 도맡아 할뿐더러 커다란 덩치와는 다르게 곰살궂기가 그지없었다. 저런 사내라면 모든 것을 맡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데 사내는 늘 저만치 일정한 거리에서 서성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가혹한 시련이 자신에게 이미 주어져있는 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면서....... 곧 잘 밤길을 떠나 어딘가를 다녀오곤 했다. 어떤 때는 사나흘 걸린 적도 있었다. 부엌어멈의 생각으로는 어디 산골에 모시지 못하는 병든 노모가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직감이 들었다. 까짓 아무 때고 모든 사연을 털어놓고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다면 병든 노모쯤은 병수발을 들지 못 할 것도 없다싶은 마음을 이미 굳혀먹고 까지 있는 중이었다.

“부엌어멈아. 무슨 생각에 그리 골몰하고 있느냐? 막배가 들어오고 있지 않니?”

  주인할미의 부름에 정신을 퍼뜩 차린 부엌어멈은 막 강기슭에 닿고 있는 거룻배를 보았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는 강물을 헤치고 건너온 거룻배에는 한양 땅을 밟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족히 스무 명은 넘지 싶었다. 날이 잔뜩 흐려서인지 땅거미가 어제 보다도 빠르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온종일을 기다렸다 싶었던지 갑자기 후드득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배에서 막 내린 사람들을 비를 흩뿌리기 시작하는 어두운 하늘을 다소 원망서린 눈길들로 올려다보다가는 어쩔 수 없이 주막 안으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광나루의 언덕을 올라 큰길가로는 주막이 더러 더 있었으나, 당장 나루터에 인접해 있는 주막은 단 두 곳뿐이었기에 그 두 곳으로 방금 뱃전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 쫓기듯 몰려들었다.

  행주로 방금 앞서 나간 손님들이 앉았던 탁자를 훔치던 부엌어멈은 몰려드는 손님들을 살피며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장작부터 몇 개 더 얹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모두 뱃전에서 내린 것을 확인한 뱃사공이 여기 주막을 올려다보면서 소리쳤다.

“자. 자. 금일의 마지막 건너가는 배입니다. 한강을 건널 분들은 서둘러 배에 오르십시오. 오늘의 마지막 배입니다. 밤새 큰 비라도 내리게 되면 내일 아침 배는 장담 할 수가 없겠으니 자 자 어서들 서두르십시오. 비도 시작하고 있으니 서둘러 출발하겠습니다. 금일 마지막 배가 곧 출발하겠습니다. 막배입니다. 한강을 건너실 분들은 서둘러 배에 오르십시오. 곧 출발합니다.”

  광주 쪽에서 광나루로 건너왔던 배가 다시 강을 건너 출발하겠다는 소리였다.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의 마지막 선편이라는 말에 더욱 힘을 주어 강조를 하고 있었다. 더욱이 밤새 큰 비라도 내린다면 다시 강이 안정될 때까지 뱃길이 끊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주막에서 커다란 봇짐을 진 사람들 서넛이 먼저 달려가 배에 올랐다. 그리고 선비 차림을 한 사람들도 서넛이 배에 올랐다. 건너 올 때와는 달리 막배로 한강을 건너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이 들이닥쳐 여기저기의 탁자를 대부분 차지하고 앉았을 무렵이었다.

  앳된 청년 하나가 허겁지겁 어느 정도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주막으로 뛰어드는 것이 부엌어멈의 눈에 띄었다. 젊은 사내는 주막의 이곳저곳을 유독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일행을 찾기라도 하는 눈치였다.

“일행을 찾으십니까?”

  부엌어멈이 물었다.

“네. 아....... 아니요? 그냥 배가 몹시 고파서 국밥이라도 하나..........”

  화들짝 놀란 표정에 당황한 듯 젊은 청년은 대답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부엌어멈이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 마당하게 합석을 시킬만한 상황도 못되어 보였다. 머리에서 빗방울을 털어내고 있는 사내를 쳐다보면서 부엌어멈이 말했다.

“막배에서 비까지 내리는 상황에 손님이 몰려들다보니 마땅히 젊은 손님을 합석시킬 자리도 마땅치가 않네요. 혼자시며 괜찮으시다면 부엌 아궁이 앞의  툇마루에라도 자리를 만들어 드리지요. 국밥은 소반 상을 따로 보아 곧바로 내어드릴 것입니다.”

  젊은 청년은 부엌어멈의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은 안중에도 없듯이 그저 주막 안을 샅샅이 살피며 대답했다.

“거기라도 좋겠습니다.”

  부엌어멈은 젊은 청년을 이끌고 주막 안을 가로질러 부엌 쪽으로 갔다.

  야채를 담았던 소쿠리랑 채반을 서둘러 한 곳으로 치우고 겨우 사람 하나 둘 엉덩이 붙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젊은 청년에게 자리할 것을 권했다. 청년은 등에 지고 온 괴나리봇짐과 쓰고 있던 초립을 벗었다.

“아주머니 국밥을 한 그릇 주시고요.......... 그 전에 측간이 어디 있는지.......”

“저기 사립문 밖에 짚더미가 보이지요? 바로 거기예요.”

  매우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청년은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주막안의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틀림없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표정이었다.

‘거 참 알 수 없는 청년일세. 혼자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부엌어멈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주막 안은 떠들썩했고 부엌어멈과 주인 할미와 주막식구들은 매우 바빴다.

  그리고 밖은 여전히 비가 점점 굵은 빗방울을 뿌려대고 있었다.

‘막배는 떠납니다.’

  빗줄기 속으로 커다란 외침이 있더니, 서서히 마지막 거룻배가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소반에 국밥을 말아 들고 부엌에서 나오던 어멈은 작은 툇마루에 여전히 빈 초립과 괴나리봇짐만이 덜렁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측간을 다녀오기에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있던 시점이었다.

‘어디를 갔을까? 배앓이 라도 하는 것인가?’

  궁금해 하며 여기저기를 살피는 데, 사립문밖 저만치 오동나무 아래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다가가 인기척을 살피니 틀림없는 그 젊은 청년이 무엇인가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무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부엌어멈은 뜻밖의 상황에 다소 의아해 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청년을 불렀다. 음식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청년은 서둘러 주막 안으로 들어왔다. 흠뻑 비에 젖은 모습이었다.

  괴나리봇짐과 초립을 벗어두었던 자리에 돌아온 청년은 몹시 굶주리기라도 하였던 듯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보일 정도로 서둘러 음식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이제 부엌어멈의 관심은 온통 그 젊은 청년뿐이었다.

“그렇게 먹다보면 체하기가 십상이겠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니 좀 천천히 드시오. 여기 물부터 드시고요. 부족하면 내 더 내어 오리다.”

다소 놀란 눈초리로 청년은 물 대접을 턱 앞에 내밀고 있는 부엌어멈을 올려다보았다.

“보아하니 일행도 없다고 해 놓고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눈초리로 보이우. 주막에서 오래 있다 보니 척하면 느껴지는 어떤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오. 내 알바는 아니겠으나 혹여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으면 털어놔 보시오. 도움이 될지 어찌 알겠수?”

“아 아닙니다. 그냥 지나는 길에 날이 저물고......... 거기에 비까지 내려서......... 염려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어디까지 가시는데 그 걱정이십니까? 젊은 도령께서?”

“글쎄 그것이.......... ”

  청년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멀뚱히 부엌어멈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가보우. 됐소. 마저 먹던 음식이나 체하지 말고 천천히 드시오.”

  마침내 부엌어멈도 체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리 그냥 놓아두는 것이 더 났겠다 싶어서였다. 그렇게 부엌으로 돌아서던 어멈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힘없이 자신을 부르고 있는 청년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멈은 다시 돌아섰다.

“저기 아주머니........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말씀해 보세요. 아는 한도에선 도와드리리다.”

“혹시 말씀입니다. 혹시........”

“편하게 물어보시라니까요?”

“분명 이 주막이라 했는데.......... 혹시 낮에 관에서 나온 듯 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 찾아와서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관에서요? 그런 사람 본 기억이 없는데.........”

“배를......... 배를 타고 건너오는 사람을 살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았나요?”

“누군가에게 쫓기고 계슈?”

“아.......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 죄를 짓고 쫓겨 다니는 사람은 아닙니다. 틀림없이 이곳에서 누군가가 저를 기다린다고........... ”

“휴. 다행이유. 젊은이가 죄를 짓고 쫓겨 다닌 것만 아니라면.......... 비도오고 사정이 있어 그 분이 다소 늦으시나 보지요. 마음 편히 좀 더 기다려 보시구려. 여차하면 내가 주인할미에게 잘 말해서 묶었다 가게 해드리겠소.”

“아 아닙니다. 아주 화급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기에......... 그렇다면 아주머니?”

“말씀해 보이요. 처지를 보니 도와드리고 싶구려. 어서요.”

“저........ 혹시......... 남촌이 이곳에서 먼가요?”

“남촌이요? 저 도성안의 대감들이 사는 남촌 말씀이유?”

“네. 남촌이요. 서둘러 그곳까지 가야만 하겠습니다. 어떻게 방도가 없을까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촌은 이곳에서 꽤나 멀어요. 서둘러도 족히 한나절은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이 야심한 시간에 비도 쏟아지고 있는 판에 거기까지 어떻게 간단 말씀이유? 넘어야 하는 고갯길이 몇인데.......... 차라리 여기서 쉬었다가 날이 새는 대로 새벽에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급박한 일입니다. 어디 여기 주막에 있는 사람 중에 오늘 중으로 도성으로 가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쪽으로 가는 길만 안다면 뒤를 따라 쫓아가겠습니다.”

“개중에 도성으로 가는 사람이야 있겠으나, 간다손 쳐도 인경에 파루가 울리면 도성의 문이 잠기고 행인이 오가는 것이 금지되니 기어코 간다손 쳐도 늦은 시간에야 겨우 도성 문밖에 당도해서 새벽을 기다려야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정히 그렇다면 어디 오늘 중에 도성 쪽으로 가는 사람을 수소문해 드리리까?”

“아 아닙니다. 아니 됩니다. 지금의 제 처지를 함부로 남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는 처지이라서.......... 일단 도성으로 향하는 길만이라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오늘 중으로 꼭 가보아야만 할...........”

“일단 드시던 음식이나 마저 드시우. 내 따끈한 국물을 더 내오리다. 일단 몸부터 녹이고 저 아궁이에서 젖은 옷이라도 잠시 말리고 계시면 내 상황을 보아 혹시 오늘 중 도성으로 가야하는 사람이 있는지 눈치를 살펴본 연후에 그때 떠나시더라도 떠나시오. 내 길은 꼭 가르쳐 드리리다. 아시겠소. 일단은 여기서 좀 쉬면서 내 말씀을 기다려 보시오. 아시겠소?”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에야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엔 내 고향에도 젊은이만한 동생이 있었다오........”

  부엌어멈은 서둘러 손님들 사이로 나갔다. 주막살림을 주로 맡아서 해 오던 처지였기에 말이다.

  기어코 항아리에 물을 다 채워 놓았음인지 비에 아주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물아범이 들어왔다.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들어온단 말이요?”

“무얼 하긴 뭘 했겠소? 기어코 물 항아리를 채워 놓으라고 당신이 닦달을 하지 않았소?”

“누가 이 비를 맞으면서까지 하랬소? 짬이 나는 대로 하란 것이었지?”

“이 여편네가 이제 사람까지 잡네? 시침을 저렇듯 딱 잡아떼는..........”

“여편네라니? 내가 언제 당신 여편네요? 보자보자 하니깐........... 까짓 어차피 젖었는데 밖에 광에 가서 장작이나 혹시 비에 안 젖는지 비설거지 좀 단단히 하시오. 아셨수?

“뭐유? 이제껏 이 비를 다 맞고 항아리를 채워 놓았더니 또다시 나로 하여금 비설거지를 하라고?”

“내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서 탁배기 한 투가리 그득 담아 놓을 테니 서둘러 비설거지 하고 들어와 아궁이에 몸 녹이면서 요기라도 하란 말씀이요. 그것도 싫으면 하지 말고?”

“이왕 줄려면 고깃덩이 좀 숭숭 썰어서 그득 넣어 주슈. 탁배기도 독 째로 주시고..........”

“속도 야무지지. 아주 숫제 매를 벌어요. 매를.............”

  부엌어멈이 아궁이 앞 부지깽이를 집어 들자 물아범이 소스라치듯 놀라 밖으로 도망쳤다.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주막 앞에서 멈춰 섰다.

“이보시게. 강을 건너는 배가 어디에 있는가? 혹시 막배가 이미 떠났는가? 떠났으면 얼마나 되었는가? 누가 배를 되돌릴 수 없겠는가?”

  말에서 뛰어내린 선비차림의 사내는 주막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따지듯 물었다.

“막배는 이미 떠났습니다. 아마 강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것입니다. 선비께서 조금 늦으셨습니다.”

  주막의 맨 가장자리에 앉았던 장사치가 눈이 마주쳤기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선비는 즉시 물가로 달려 내려갔다.

‘배를 멈추시오. 나는 한성부에서 명을 받아 강을 건너야만 하는 사람이요. 내 소리가 들리거든 어서 배를 돌려 나를 건네주시오. 매우 중요한 나랏일이니 소리가 들리거든 어서 배를 돌려주시오.’

  그러나 어둠속에서는 세찬 강바람 소리와 빗소리만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강 저편의 어둠속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던 선비는 막배에 대한 체념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깨달았는지 다시 허겁지겁 서둘러 주막으로 올라왔다. 주막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한 곳, 방금 말을 타고 온 사람에게 쏠려있을 때 주막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그의 손엔 벼슬아치의 직위를 나타내는 신표가 들려있었다.

“나는 함창현감 양함이요. 칠순의 노모께서 위중하시다 하여 허락을 받고 올라왔으나, 급박하게 막중한 임무를 하사받고 서둘러 임지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외다. 지엄한 어명을 받자와 한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는 입장이요. 명을 받자마자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참이외다. 부득불 막배가 떠난 것을 이제 알게 되었으나 지금의 처지는 단 한 촌각도 지체할 수가 없는 막중한 상황이요. 혼자 헤엄을 쳐서라도 기어코 건너야만 하는 상황인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인데다가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으니 몹시 당혹스럽구려. 누가 인근의 고기잡이 배라도 주선을 좀 해주시오. 급박한 일이요...........”

  그러나 다들 놀란 표정이기는 한데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리의 말씀과 표정을 보니 정말로 화급한 상황인 것은 알겠습니다. 호위 군사하나 없이 각 중에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말씀입니다. 막배는 이미 떠났고, 이 또한 모두가 관에서 지시한 명에 따른 조치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날이 어두워지면 배를 오갈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이곳에서 지척에 여기 광나루를 감독하는 광진원(廣津院)이 있으니 그곳으로 연통을 하셔서 관리들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어떠하실지.........”

  손님상을 치우던 환갑을 훨씬 지난 주막할미가 예를 갖추어 나서며 말했다.

“그대가 이곳 주막의 주인인가?”

“예 그러하옵니다. 아무리 급하시기로 날씨와 상황이 이러하니 잠시라도 안으로 드시어 비라도 피하시면서 방도를 찾도록 하시지요?”

“고맙네. 그런데 주모. 이쯤 되는 주막이라면 인근에서 고기를 잡아 주막에 대주는 고기잡이가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딱히 한곳을 지정해서 고기를 받는 것은 아니옵고, 아무튼 광나루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면서 여러 주막에 고기를 납품하는 어부가 열 명 가까이 되옵니다.”

“그 중에 이 밤 안으로 나를 강을 건네줄 사람이 있겠는가? 광진원엔 부득이한 사정이었다고 내가 연통을 할 것이며, 어부에게는 내 따로 셈을 해 줄 것이네.”

“그 점은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 수소문을 해보아야지만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곧 사람을 보내겠으니 현감께서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잠시 기다리시면서 우선 요기라도 하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설혹 강을 건너신다 하여도 먼 길을 가시자면 고픈 배로 마냥 가실 수만은 없질 않으시겠습니까? 공무 중이시오니 약주는 아니더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 올려드리겠습니다.”

“주모의 사려 깊은 배려에 깊이 감사드리오. 알겠소. 내 잠시 쉬어가리다. 어서 인근의 어부들에게 연통을 좀 해주시구려.”

양함은 가운데의 빈 탁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주막할미는 예를 갖추며 물러나 부엌어멈에게 음식을 준비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나뭇간의 비설거지를 끝내고 들어와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물아범을 불렀다.

“물아범. 이야기를 모두 들었겠지? 서둘러 모든 어부들에게 연통을 해야만 하겠네.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자네도 알겠지?”

“상구와 칠성애비를 보내겠습니다. 앞집 주막에는 소인이 직접 들러서 혹시나 술 마시고 있는 어부가 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혹여 앞집에서 신경 쓰지 않도록 조심하게. 자네들이 오고 난 후로 매상이 줄었다고 우리에게 여간 심통이 나 있는 것이 아닐세. 자네는 앞집만 다녀와서 옷부터 갈아입고 어부들 소식을 기다리며 저기 저 나리를 불편하신 것이 없도록 잘 모시도록. 알겠는가?”

“예. 마님. 잘 알겠습니다.”

  물아범은 돌아서서 다시 주막 밖으로 나갔다.

 

 

 

 

 

 

 

 

 

                                       ---------------------  다음으로.  피안재.

 

 

 

 

 

 

 

 

 

                          (공지 사항)

 

 

 

  알려드립니다.

  연재하고 있는 소설의 열람 싸이트를 변경하고자 합니다.

  블로그와 카페가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진이나 기록을 단편으로 써서 모음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블로그가 편리하나, 어떤 주제의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하는 데에는 카페가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저의 카페를 다시 정리를 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몇 몇 글들도 아직 남아 있네요.

  하여 현재의 블로그인 (피안으로 가는 길)의 특색에 맞는 여행기나 짧은 단상들을 계속 블로그로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다만 연재하던 소설 (귀결)과 (탑평리야 탑평리야)는 저의 카페 (피안재)로 옮겨 계속 연재하겠습니다.

  같은 다음 싸이트 카페 검색창에 (피안재)라고 검색을 하시거나, 다음의 주소를 이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http://cafe.daum.net/pia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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