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프로방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프랑스 제 2의 항구도시(흡사 우리나라 부산)인 마르세유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부쩍 깔랑크(Calanque) 라는 단어가 새롭게 눈에 확 띄기 시작한다. 어쩌면 마르세유라는 도시의 현판보다도 더 자주 깔랑크(이제부터는 조금 쉽게 영어식 발음으로 칼링크로 표현) 라는 표현이 도시 곳곳이며 관광안내 간판이며 각종 팜플렛과 여행 잡지에 두루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칼랑크가 프로방스 혹은 마르세유를 여행함에 있어서 그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관광 상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칼랑크는 그 어원이 프랑스의 지방 사투리라 할 수 있겠는데, 나폴레옹의 고향이기도 한 코르시카어 칼랑카(Calanca)에서 유래된 말이다.
프랑스령인 코르시카 섬은 아주 독특한 지리적 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약 5배에 이르는 크기의 결코 작지 않은 섬이지만, 섬 전체 면적의 대부분이 더없이 험준한 바위산악지형으로 가득 차있다. 섬을 둘러싼 해안 자체가 깎아지른 듯 바위벼랑들로 병풍처럼 에워싸여 있는 형상이다. 군데군데에 조금씩 생겨난 해안지역에 겨우 마을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살아 온 아주 척박한 섬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 섬의 해안지형은 아주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해안 깊숙한 곳까지 골짜기가 파여 나가며 바닷물이 들어오는가 하면, 바다 깊숙한 곳까지 뾰족뾰족한 돌부리들이 뻗어나가는 기기묘묘한 형상이 섬 전체를 가득 수놓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들쑥날쑥 생겨난 바위벼랑 사이로 거친 파도가 몰아치며 길게 형성된 이 해안선을 가리켜 코르시카 사람들은 칼랑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하얗게 빛나는 화강암 벼랑들 사이로 검푸른 지중해의 파도가 밀려와 다시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풍경은 가히 압권이라고 표현해야만 하겠다. 그런 칼랑카 사이사이로 뽀르미우. 뿌르 뼁. 앙보 같은 코르시카의 항구마을들이 이루형용키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지중해 풍경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강추 할 만한 최고의 풍경이지 싶다.
그런데, 코르시카를 벗어나 마르세유 인근에 코르시카 해안 절경의 일부를 뚝 떼어다 옮겨놓은 것 같은 풍경을 간직한 곳이 등장한 것이다. 마르세유 항구의 동쪽 끝에서 인근 항구마을인 카시스(Cassis) 사이 약 27km에 이르는 해안절경이 마치 코르시가 해안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다는 이유로 해서 칼랑크(Calanque)라 부르게 된 것이다. 프랑스어 사전에서 칼랑크를 찾아보면 ‘바위로 둘러싸인 좁고 긴 바다의 만(灣)’ 이라고 적혀있다.
이해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예를 든다면 마르세유와 카시스 사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여수와 목포 사이, 혹은 목포와 진도 사이의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따라 걷는 둘레길’ 정도로 달리 표현 해보고 싶다. 둘쑥날쑥 험준한 바위 지형으로 생겨난 해안선을 따라 걷는 트래킹을 연상하면 되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다도해’ 혹은 ‘한려수도 해상공원’ 하듯이 칼랑크 또한 프랑스의 해안 국립공원이다.
실제로 그곳만의 독특한 식물군이 존재하고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험준한 해안절벽을 조심하라는 안내판 보다 오히려 그곳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더 많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산악지역에 즐비한 아주 견고한 화강암 보다는 못하지만, 유럽에서 흔한 대리석보다는 훨씬 거칠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조금 이질적인 석회암 지대가 바다와 맞부딪쳐 파여 나가며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눈이 부실정도로 하얀 광채를 빛내고 있다. 하얀 바위와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 아래로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둘 사이를 마치 하얀 포말의 허리띠처럼 파도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그 해안 절경 사이 틈새로 아주 작은 백사장이 생겨나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바다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좀 더 큰 만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박지로 사용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점묘파 화가 폴 시냑(Poul Signac)이나 야수파 화가인 뒤피(Dufy) 등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을 찾아 천하의 절경을 화목에 담았던 것이다.
우리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파리여행 다음으로 가장 큰 기대를 가졌던 곳이 바로 마르세유에서의 ‘칼랑크 트래킹(Calanque Trekking)’ 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고대해왔던 칼랑크 트래킹을 나서는 날이었던 것이다.
칼랑크는 마르세유와 이웃 작은 어촌도시인 카시스 사이 약 27km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들쑥날쑥한 해안지형을 고스란히 탐험하듯이 따라 걷는 여행이다. 지도상의 직선거리 27km는 생긴 대로의 해안 지형을 따라 들어갔다 나오고, 오르고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라 여러 코스로 나뉘고, 아울러 코스에 따라 상중하의 난이도가 제각각 모두 다르다. 때론 산책이 되고 때론 암벽등반이 되기도 한다.
하여 오늘 우리는 다양한 코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졌고 난이도 면에서도 비교적 쉽다고 알려진 카시스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더불어 그 선택에서는...... 마르세유를 기점으로 하면 아비뇽이나 아를을 비롯해 반듯이 다녀와야만 하는 인근의 여러 유명 여행지가 있지만, 프로방스에서 카시스만은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둔 이유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왜 카시스를 꼭 보여주고 싶었느냐는........ 그동안 힘들께 나를 쫓아다녀야만 했던 역사와 미술사 중심의 강행군과도 같은 여행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힐링이 되는 여행, 쉼과 느림의 여행을 맛보여주기에 딱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바램은 여기 카시스에서 정말로 모두 이루어 졌다. 새로운 여행의 시간과 체험에 아내가 정말로 감격스러울 정도로 만족해했기 때문이다. 더하여 카시스는 정말로 평화로웠고 아름다웠다. 물론 언제나처럼 긴장의 순간과 땀 흘리게 뛰어다닌 기억도 당연하듯이 생겨났지만 말이다.
혹, 프로방스를 방문해서 마르세유에 들리게 되신다면........ 고호를 만나겠다고 아를를 방문하는 것에 우선을 두지 마시고......... 카시스를 가세요. 정말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지중해와 진짜 남프랑스가 그곳에 있답니다. 카시스만은 꼭 가보시길.........
아침 일찍 칼링크 트래킹을 위해 인근의 항구도시 카시스(Cassis)FH 이동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인 있는 카스텔란 광장(Place Castellane)으로 향했다, 구항구(vieux port)와 인접해 있는 카스텔란 지구 역시 마르세유의 대표적인 역사지구라 할 수 있다. 이곳은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하여 근 현대사가 고스란히 흔적을 남겨놓은 유서 깊은 장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지역이다. 그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카스텔린 광장인데,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이곳에 나폴레옹 1세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를 기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형태의 기념비를 세웠었다. 러시아 원정으로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유배를 떠난 기간에 아주 잠시 서너 달 정도 나폴레옹 2세가 즉위하였으나 연합군의 거친 항으로 곧 실각하였고, 외가가 있는 오스트리아로 갔다가 21세의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나폴레옹 1세의 친 가문은 단절의 비운을 맞았다. 훗날 나폴레옹 3세에 오르는 인물은 나폴레옹 1세의 조카가 된다. 나폴레옹의 몰락과 가문의 단절을 지켜본 마르세유 사람들은 곧바로 오벨리스크 기념비를 쓰러트려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았다. 정치권력의 비정한 뒷모습을 이곳에 서면 절실하게 느껴볼 수가 있다. 나폴레옹 가문의 영광을 지워버린 시민들은 그 자리에 민중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분수를 세우고 평화로운 광장으로 탈바꿈 시켜 버렸다.
인근인 툴롱 출신의 유명한 프랑스의 조각가 앙드레 조셉 알라르(André-Joseph Allar)로 하여금 평화의 광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분수대를 설치하도록 요청하였던 것이다.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아울러 이 광장을 조성하고 분수대를 설치하는데 모든 비용을 댄 마르세유의 귀족이자 군인이자 대부호였던 앙리 세자르 드 카스텔란-마자스트르(Henri-César de Castellane-Majastre)의 이름을 따서 카스텔란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이곳은 마르세유 대중교통의 핵심지로서 지하철을 비롯해 트램과 시내버스 전 노선이 거의 대부분 이곳을 경유하게 되어 있는 교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마르세유의 숙소가 있는 라 티몬(La Timom)에서 카스텔란 광장까지는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이다. 워낙 걷는 것에 이력이 나 있는 우리에겐 아무리 구간 거리가 멀다 해도 서너 정거장 정도는 그냥 단순하게 지척일 뿐이다. 뒷골목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카스텔란 광장으로 향하는데....... 헐! 역시나 마르세유 번화가를 벗어난 허접한 뒷골목 길은 밤새 견공들이 벌여놓은 변(똥) 모내기 논이나 다름이 없다. 쓰레기도 보통이 아니다. 그동안의 유럽 여행을 통 털어 가장 꺼려지는 난감한 뒷골목 산책이 바로 마르세유라고 하겠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애를 쓰고 시선을 돌려 외면하려 하지만, 당장의 발밑이 두려운(?) 이유로 그마저 쉽지가 않다. 그러자면 오로지 두 눈에 담겨지는 장면들을 매 순간순간마다 지우고 담고 또다시 곧바로 지워버리고를 수도 없이 거듭 반복하면서 서둘러 뒷골목을 벗어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골목어귀 저편으로 카스텔란의 분수가 나타날 것이다.
이제 막 문을 여는 노점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다보니 마침내 카시스로 향하는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2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주 작고 예쁜 항구가 카시스라고 들었는데...... 얼시구 이 버스 아예 작정을 한 듯 아주 빠르게 산악지역의 가파른 언덕을 향해 달려 나간다. 흡사 고속도로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를 아주 빠르게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 아닌가? 이거 아무래도 어디 다른 곳을 가는 버스를 잘못 탄 것이 아닐까? 흡사 어딘가 모르게 지리산 자락을 내달리는 고속버스 같은 느낌이다. 반대 방향이 맞는 거 아니 여?
그렇게 한참을 더 달리다가 느닷없이 차창 우측으로 저만치 발아래쯤으로 파란 지중해가 불쑥 나타났다. 그제야 당황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카시스 가는 게 맞기는 맞나 벼’라고 혼자 중얼거려 본다.
시계를 보니 벌써 25분을 훨씬 넘기고 있다. 이제 다 왔거니 했는데....... 포도나무 밭을 지나고 언덕을 넘고 이리저리 꼬불꼬불 언덕길을 한참을 더 내려가더니 그제야 작은 시골마을 어귀로 저만치 파란 지중해가 언뜻언뜻 보이는 그런 외곽지에 버스를 세우고 일행을 내려 준다. 스무 명 남짓 여행객이 내렸는데 우리처럼 생긴 사람이라곤 달랑 우리 둘 뿐이다. 젊은 청춘들은 프랑스 인근지역 사람들로 보이고, 우리보다 연세 지긋한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러시아 여행자들로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달랑 우리 둘만 남았다.
‘거 참 사람들 무지 빠르네. 카시스 여행이 우리가 모르는 뭔가 선착순이 있는 건가?’하는 다소 의아함을 느끼며 서서히 언덕길을 내려간다. 물론 정류장 가판대에서 시내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어놓고 말이다. 이러면 마르세유로 돌아가는 만반의 준비도 모두 갖춘 것이 아니겠는가?
But...... 만반의 준비는 무슨...... 갖추기 뭘 갖춰??????? 개뿔!!!!!
솔직히 표현해서..... 정말로 손바닥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시골 어촌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카시스의 무엇이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일까?
머릿속 생각만으로 궁금해 하면 무슨 소용이람?
몰려든 외지인들이랑, 또 그들 속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느껴볼 수밖에......
일단 카tl스는 더없이 온화하고 포근하다. 이번 여행에서 이십일 가까이 타지에서 지내오면서 오늘이 가장 화창한 날씨를 하고 있다. 주변으로 온통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산들 틈새로 움푹 파고들어간 아주 작은 해변이 바로 카시스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남부 해안을 휩쓸고 있는 미스트랄(프랑스 지중해 계절풍)이 이곳 해변에는 와 닿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 싼 바위산등성이만을 흩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이번여행을 통 털어 처음으로 온통 화창한 날씨다. 카시스 도착에서부터 그야말로 가시광선처럼 내리쏟아지는 지중해 특유의 눈부신 햇살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다. 이론상으론 이런 날이 지중해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어야만 하는데....... 아뿔싸. 여행 이십일 만에 처음 느껴보는 화창한 날씨다.
거기에다가 카시스를 찾아 온 외지인들의 표정엔 즐거움과 평온함이 가득하고, 이들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표정엔 여유와 친절이 넘쳐흐른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만연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래서 사람들이 카시스 카시스 하는구나!’
프랑스에서 늘 그렇게 놀래왔듯이....... 기온이 한 20도에 이를 만큼 상승하고 피부를 살짝 찌르듯이 따사로운 가시광선이 얼굴 가득 쏟아져 내리면,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실내로 자리를 옮기거나 나무그늘이라도 찾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선 그런 이유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몹시 쌀쌀한 바람이 불어도 따스하게 난로가 피워진 실내보다는, 바바리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손을 후후 불면서도 겨우 한 주먹의 햇살이 내리비추는 노천 가장자리 테이블을 고수가 아니라 사수하고들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 까지는 그런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여행이 계속되면서 그런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니스를 지나 마르세유 올드포트의 사마르테인 카페에 들리면서부터 우리는....... 프랑스식 노천카페의 매력에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파리지앵은 아니더라고 노천카페에서 멍 때리기에 거의 중독된 사람이나 진배없게 되었다.
항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새벽 바다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을 사고파는 간이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여행자들로 붐비는 햇살 가득한 노천카페에서 테이블 하나는 차지하고 앉았다.
‘정말 카시스에 오기를 잘 한 것 같아. 모든 것이 딱 알맞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잖아.’
우리의 남은 여정과 아름답고 평화로운 카시스를 위해 건배!!!!!
카시스는 아름다운 해안절벽 사이로 움푹 패여 생겨난 아주 작은 어촌마을의 매력을 한껏 간직하고 있는, 이제는 제법 널리 알려진 전형적인 지중해의 고급 휴양지가 되어 버렸다.
주변에 솟아난 웅장한 바위산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들과 지중해 해변의 빼어난 풍광이 감탄사가 연발 할 만큼 멋진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남프랑스 특유의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명소라 하겠다. 거주하는 현지인의 숫자가 8천 명을 넘지 않는 이 작은 어촌은 기기묘묘한 바위절벽(파라이)과 들쑥날쑥한 해안절경(칼링크)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프랑스의 지중해 국립해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칼링크 트래킹의 시작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해변의 왼쪽으로 거대하고 웅장한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까나이 곳(Cap Canaille)으로 대서양과 지중해에 면한 프랑스 해변 전체에서 가장 높은 절벽(해발 363m)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바위산이 고대 유럽의 역사에서부터 등장하는 유명한 카사 스톤을 생산하는 채석장으로 쓰였다. 이곳의 바위는 대리석 보다는 훨씬 단단하고 우리나라의 화강암 보다는 연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빛깔이 희게 보여서 고대에부터 이미 항구를 건설하거나 신전의 기둥 주춧돌로 지중해 전역에 팔려 나갔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 건설과 여러 신전들의 기단석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까나이 곳이 해안을 거슬러 내려와 작은 어촌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들쑥날쑥 기묘한 형상의 해안 바위지대(칼링크)가 시작되는데, 이곳에서 마르세유 항구까지 약 27km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다.
직접 해안 절벽을 오르내리며 걷는 트래킹이 유명하지만, 정작 카시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곳 항구에서 배를 이용해 바다를 통해 칼링크를 돌아보는 칼링크 투어의 시작 항구로 더 명성을 떨쳤다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배를 이용한 해안투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두 발로 직접 걸어서 체험하는 트래킹이었다.
미스트랄이 프랑스 남부를 온통 휩쓰는 약 석 달간의 겨울에도 바위벼랑에 둘러싸인 카시스만은 비교적 온화하고 따뜻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으로 알려진 카시스는 일 년 평균 기온이 대략 23도 정도라 한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지중해의 대표 휴양지가 바로 카시스인 것이다.
그런 카시스 이다보니 여행지나 휴양지로서의 유명세를 넘어서, 사실은 부와 명예를 갖춘 성공한 사람들이 아주 조용히 은거하다시피 체류하며 남은여생을 누리는 가리워진 부촌마을로 또한 아주 유명하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장소는 항구와 칼링크에 향하는 해안이 전부이다. 하지만 항구를 벗어난다싶으면 크고 아담한 별장식 주거단지가 카디스의 주변으로 온통 가득하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기가 힘들지만 건물의 크기며 정돈된 정원이며, 척 보면 벌써 ‘부촌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 팍 가슴에 와 꽂힌다. 더군다나 외곽지역에 이따금씩 보이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에는 유명한 해외 명차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정말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드러내놓지 않고 조용히 살기엔 딱 이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새해 2월이면 만개한다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를 상징하는 노란 미모사 꽃이 벌써 담장위로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카시스 항구지역을 벗어나 칼링크 트래킹을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세상에....... 항구 옆 블록 아주 작은 모래 백사장에 정초부터 바다수영을 하는 사람들과 썬텐을 하는 쭉쭉빵빵 미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칼링크 트래킹은 무슨?????? 그냥 해변에서 놀면 안 될까?
‘여기서 죽을래? 어여 앞장 서.’
서슬 시퍼런 마눌님의 눈초리에 다시 쫄쫄거리며 죽어라 뒤를 쫓아간다.
헐!!! 내 팔자여!!!
우리나라 남해안 다도해 답사여행을 좋아해서 통영이나 여수는 물론 남해 금산의 보리암을 서너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이상하게 아직까지 여행이력에 올리지 못하고 늘 아쉬움으로 그리워만 하고 있는 곳이 목포와 진도 사이의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역이다. 지난 추석에까지도 진도 캠핑을 생각했으면서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일단 너무 멀고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것이 쉽게 발걸음을 향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제주도나 울릉도도 다녀왔으면서...... 유독 진도 지역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곳과 연계성이 거의 없어서, 일단 무조건 구석텡이 끝까지 밀고 내려갔다가 같은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장애가 되는 것 같다. 언제 어디에서든 그때그때 마음먹은 대로 코스 조정이 가능하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느닷없이 길의 방향과 스케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열린 여행을 항상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왔던 때문이다. 어디가 되든지 깊은 한 구석에 갇히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여행의 영역이 아니라 생각하는데....... 진도가 바로 그런 지역이 아닌가 싶다. 혹, 언젠가 내가 요트 한 척을 가지게 된다면 어쩌면 가장 먼저 찾아갈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시스에서 시작하는 칼링크 트래킹을 진행하면서 문득 아직 가보지 못한 진도 트래킹을 떠올린다. 제주 올레길이나 동해안 산책로는 잘 정돈되고 다듬어져 있지만, 온통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진도 인근의 산책로나 트래킹 코스는 아직은 미개발의 상태로 남아있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다. 해안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결코 순탄할리만은 없지 않겠는가? 사람이 사는 인가 부근의 산책로가 있겠고, 들짐승이나 다녔을법한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해안의 지형에 따라 백사장도 있겠고, 몽돌 해변을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겠고, 아니면 들쑥날쑥 이거나 가파른 바위벼랑을 아슬아슬하게 수도 없이 오르내려야만 하는 구간도 있을 것이다.
혹, 진도의 다소 거친 해안 산책로가 흡사 칼링크 트래킹과 닮지 않았을까? 영판 닮았을 것 같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칼링크 트래킹을 시작했다.
제법 많은 여행자들이 오고간다. 아마도 절대 다수는 현지인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카시스에서 시작하는 칼링크 트래킹의 첫 코스로 그중 가장 난이도가 낮다는 Calanque de Port Pin 코스를 택했다. 일단 그곳까지 가서 다음 코스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해안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만을 만나고, 그곳에 정박해 있는 수많은 요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감상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비포장도로 언덕길을 올라 모퉁이를 돌아서면 이정표가 나타나고 새로운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등장한다. 여기서부터는 걸음걸이에 바짝 조심을 해야 한다. 사방으로 뾰족뾰족 날카로운 칼바위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빼곡한 소나무 숲 사이로 검푸른 지중해가 드러나 보이고, ‘이런 걸 칼링크라고 하는 구나’하는 탄성과 함께 멋드러진 절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속해서 펼쳐진다. 거기에다가 해안 절벽에 오르고 나니 이제껏 우리를 모진 추위 속에 떨게 만들었던 미스트랄(지중해 계절풍)이 따사로운 온기를 가득 품은 채 미풍으로 다가와 시원함으로 속삭여주는 것이 아닌가?
골짜기를 지나고 언덕을 오르기를 반복하다가 쨘 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절경....... 깊게 안쪽까지 휘어져 들어 온 만의 끝자락에 개인 휴양지 삼으면 딱 좋았을 정도의 크기로 뽀얀 백사장이 앙증맞게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백사장과 안쪽의 벤치와 주변의 넓적한 바위마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고 와인을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칼링크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정월 초에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스쿠버 장비를 가지고 막 도착하는 연인들도 있다.
‘세상에나....... 이런 게 낙원이지 다른 어떤 게 낙원이야?’
'여기를 팍 사버리자면....... 우리나라 부동산 시세로 얼마쯤 할까?'
--- 칼링크 트래킹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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