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를 가만히 들여다 보게되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이는 곧 자국민들의 역사가 아니라 그 오랜세월의 대부분이 이민족들에 의한 끊임업는 전쟁터였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지역에 처음 정착해서 역사에 그라나다라는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로마의 군인들이었다.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는 신묘한 계책을 들고 나왔다. 2차 전쟁으로 이미 쑥대밭이 된 로마의 입장에선 더 이상 들고나올 군사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로마에게 모든 전황이 불리해져만 갈 뿐이었다. 이 혼미하고 암울한 순간에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감시망을 뚫고 단신으로 배를 타고 리베리아 반도에 도착한다. 카르타고도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던, 로마가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차마 멀고 먼 점령지에서 빼내오지 못했던 로마군단이 버젓이 리베리아 반도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두 데리고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철수시킨 후, 재정비해서 카르타고와 다시 전쟁을 벌이기엔 시간 물자 등 모든것이 열악했다. 스키피오는 에스파냐의 로마군 원정대를 시에라네바다 산맥 안쪽의 비교적 안전하고 풍요로운 지역에서 비밀리에 그리고 짧은시간 안에 철저한 훈련을 통해 재무장 시켰다. 로마군단의 중심지는 세비야 였고, 군단의 일부가 처음으로 그라나다에 병참을 건설했던 것이다. 그라나다가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스키피오는 처음부터 이 소수정예의 군대를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카르타고(튀니지)까지 쳐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비효율적인 전쟁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남아있는 물자와 병력과 함선으로 원정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 거점들을 하나 하나 몰살실켰다. 소수의 병력과 함선만으로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 지역의 카르타고 거점을 하나하나 쓸어버렸다.
용맹하고 체계를 갖춘 로마군대의 소문이 지중해 건너 카르타고 왕실에 까지 전해졌다. 카르타고 전체가 서서히 공포에 젖어들었다. 로마의 처절한 복수가 다가오고 있다고 공포에 젖어 치를 떨었다. 결국 카르타고 통치자는 다시 한니발을 불렀다.
한니발은 철저하게 대비를 한 다음 튀니지로 쳐들어 오는 로마군을 자국의 영토에서 방어하겠다는 작전을 펼쳤으나, 스키피오의 첩자들이 다방면으로 이미 공작을 펼쳐놓은 결과로 카르타고 지휘부는 한니발에게 서둘러 무조건 스페인으로 원정을 떠나라고 명한다.
모든것은 스키피오의 생각대로 진행되어 갔다. 스키피오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때에 벌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한니발은 대패했고 카르타고는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북쪽 동방에서 쏟아져 내려온 훈족에게 쫒겨 반달족(게르만의 일파)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에스파냐로 남하했다. 무서운 기세로 그들은 로마군의 점령지를 하나하나 쟁취해 나갔다. 반달족과 로마군 사이에 최후의 전투가 이곳 그라나다 인근에서 벌어졌고, 이번에 로마군이 참해했다. 로마의 세력이 리베리아 반도(에스파냐)에서 마지막 거점마저 빼앗끼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 사건에서도 그라나다가 등장한다.
이번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게르만족 일파인 서고트족이 반달족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 또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역사속에서 반달족의 용맹과 잔혹성은 유명한데, 이때는 서고트족에겐 비교가 안되었나 보다. 로마군이 반달족에게 당한것과 똑 같은 상황이 서고트에 의해서 반복된다. 서고트는 반달족에 비해 대단히 체계적이고 질서와 조화를 이룬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톨레도를 점령하고 성을 쌓고 수도를 건설할 정도였다.
서고트 또한 그라나다 인근에서 반달족을 상대로 참혹한 최후의 전투를 벌인 끝에 승리한다. 이제 에스파냐의 주인은 서고트 였다.
서고트에게 패한 게이세리쿠스 반달족 왕은 남은 부족을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튀니지 영토로 간 후, 로마의 북아프리카 총독 보니파키우스를 살해하고 그곳에 반달왕국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이 용맹한 서고트의 역사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왕위 후계문제와 부족간의 영토다툼으로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할 즈음에........
종교적 이유로 쫓겨나온 이슬람(시리아 지역의 아랍인)이 이번엔 남쪽에서 지중해를 건너 몰려왔다.
험준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 온 아랍인들은 그라나다의 환경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하여 그라나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성채(알카사바)를 처음 짓고 군대를 주둔 시켰다. 그 성채가 발전한 것이 지금의 알함브라 궁전이 된다.
그라나다에 거점을 확보한 아랍의 군대는 이후 약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에스파냐 영토의 약 3/4을 점령한다.
그리고나서 이 유럽의 영토에 첫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게된 것이다.
이슬람이 에스파냐를 지배한 기간은 약 781년 이다.
에스파냐 점령 후 약 6백년 가까이 지나자 이슬람이 서서히 분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레콩키스타(카톨릭 국토회복 운동)의 영향력이 더해졌다.
세비야가 카톨릭에게 점령당하자 모로코에서 건너 온 이슬람 세력은 서둘러 그라나다로 거점을 옮긴다.
그라나다에서 새로운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를 세우고 모하메드 1세가 즉위한다. 이제 그라나다는 약2백년 후 이들이 리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쫓겨나게 될 때까지 이슬람의 마지막 거점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된다. 그 중심에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것이다.
'알함브라'의 뜻이 '붉은 성' 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9세기경에 아랍인들에 의해서 그라나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언덕에 처음 성채(알카사바)가 지어졌을 때의 풍광이 어떠했을지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세비야를 빼앗기고 그라나다로 쫓겨올 수 밖에 없었던 모하메드1세 아랍왕은 이 성채(알카사바)에 이어붙여서 외성과 내성을 확장하고 그 안에 자신이 거처할 왕궁을 지은것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이다.
알함브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알카사바(성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망루였던 벨라의 탑에 오르면 그라나다의 모든 전경이 한 눈에 쏟아져 들어 온다.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은 물론이고 왼편의 안쪽 깊숙한 골짜기에 사크로몬테 집시들의 거주지가 보인다. 그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듯이 알바이신 지역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고, 그 아래 평지에 그라나다 시내가 들어서 있다. 알함브라의 건너편으로 아주 저 멀리 만년설에 뒤덮힌 시에라네바다 산이 그라나다를 굽어보고 있는 형상이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처음 성채가 만들어졌을 때 24개의 망루가 성채의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 위용이 사뭇 궁금해질 뿐더러, 24개의 망루 위에서 둘러볼 수 있는 그라나다의 주변 풍경이 모두 제각각으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하니 세월의 무상함에 여행자의 발걸음이 사뭇 무거워질 수 밖에......
당시의 사람들은 이 성채(알카사바)를 '구름위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한다.
비 내리는 날 산자락을 휘감은 연무 위로 불쑥 솓아난 붉은 성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구름 위의 수호신이라.......
벨라의 탑으로 오르는 길에 보이는 군인들의 숙소 터와 창고. 터널.목욕탕 등의 자취를 볼 수 있음에 당시로서는 얼마나 중요하고 튼튼한 요새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오직 신만이 승리자다.' 라는 문구가 적힌 문을 통해 벨라의 탑으로 올라간다고 여러 여행안내서와 여행기에 적혀있었지만, 나는 틀림없이 벨라의 탑을 다녀오기는 했는데 그 문구는 찾지 못했다. '저건가'라고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형이상학적인 기호나 암호 같은 아랍어를 내가 알아채고 읽어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문구를 기억하고 찾아보고자 했던 것은.........
신화나 전설의 시대에서 부터 시작된 (전쟁)이란 비극의 이면에는......... '신' 또는 '종교'가 배경이자 원인으로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하지만........ 신(神)에 주도하에....... 신이 관여하였거나........ 신의 요청에 의해....... 신이 지시한 전쟁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신을 빌미로........ 신을 팔아서........ 탐욕에 눈 먼 인간들과 특별한 전쟁 기획자들에 의해서 그 숱한 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가지고 싶고 빼앗고 싶고........ 싸워서 이겨보고 싶고........ 그럼 그저 당사자끼리 단순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싸우면 그만이었을 사단들도, 종교가 끼어들고, 거기에 신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라고 까지 누군가가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이건 그야말로 참혹한 전쟁이 된다. 역사 속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 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되돌아 보면......... 신이 직접 끼어든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모두가 싸그리 거짓말이다.
사랑과 관용과 배려와 공존과 평화를 가르치는 신이....... 어느 날 싸움을 부추기고 전쟁을 강요한다면........ 그건 신(神)의 절대적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신은 이미 신이 아니다. 가짜다.
그럴때는 인간을 대리 시켜서 참혹하게 피터지는 전쟁을 만들지 마시고........ 가짜 신들끼리 위대한 싸움을 벌여 결판을 내라고 요구해야만 한다.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채를 '알카사바(Alcazaba)'라고 부른다.
코르도바를 둘러싸고 있는 성채를 '알카사르(Alcazar)'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의 곳곳 명소에서 '카스틸로(Castillo)'라고 불리는 성곽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영어 표기의 '캐슬(castle)'에 같은 어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알카사바와 알카사르와 카스틸로는 서로 무엇이 다른가?
성(城)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두고 왜 스페인은 굳이 여럿으로 분리하여 쓰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끔 이렇게 아주 쓸데없거나 지극히 사소한 어떤것들에 필(feel)이 꼽힐때가 있다.
그래서 짧은 영어로 힘겹게 몇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다 그게 그거란다. 같은 뜻이란다.' 그런데 왜 여행지마다 다르게 표기하느냐 물어보니 뭐라뭐라 하는데, 그 이상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서울을 둘러싼 성을 한양성이라 부르는데, 낙안의 성을 낙안 알카사바, 평양의 성을 평양 알카사르, 경주의 성을 경주 카스틸로....... 이런 식으로 부른다면 뭔가 이유가 있어 야할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경우 평지성과 산성을 간혹 구분해서 달리 부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한 번 필이 꼽히면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만 한다.
스페인 전역의 명소란 명소를 죄 다 뒤졌다. 알카사바. 알카사르. 카스틸로란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모두 메모를 했다. 따로 구분을 해 놓고는 무엇이 다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결국 답을 찾았다. 그 구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딱히 명확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혹 다음에 한번 더 스페인을 가게된다면 훨씬 여행이 즐거워질것만 같다. 공부가 많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카스틸로(Castillo)' : 군사적 이용을 목적으로 흙이나 벽돌이나 돌을 이용하여 방어벽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감시탑(망루)를 설치하는 등의 모든 성곽(성채)를 통용하여 이르는 말이다. 성 이나 성 처럼 생겼거나 알카사바가 붙었거나 알카사르로 불리거나 이를 총 망라해 그냥 '카스틸로'라 부른다.
'알카사르(Alcazal)' : 성은 성인데 굳이 좀 더 따진다면 스페인식 성이라 하겠다. 좀 더 부연 설명하자면 방어적인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의미에 통치자를 위한 시설이 첨가된 성이라고도 하겠다. 성 안에 왕궁을 지어서 왕이 머물면서 직접 통치를 할 목적으로 설치된 왕궁을 포함하는 스페인 형식의 성채를 말한다. 코르도바. 톨레도. 세고비아. 세비야 성이 알카사르에 속하고, 특히 코르도바 알카사르의 경우는 이사벨 여왕이 재위기간 대부분을 체류하면서 스페인을 통치하며 국토회복운동을 지휘한 곳으로 유명하다.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처음 알현한 장소 또한 코르도바 알카사르였다. 성채이면서 왕궁을 나타내는 용어로 알카사르가 쓰인다.
'알카사바(Alcazaba)' : 왕이 왕궁을 짓고 직접 체류하면서 통치를 하지 않는 방어 목적의 성채를 의미한다. 그러면 알함브라는 궁궐을 짓고 아랍왕들이 다스리지 않았느냐 라는 물음이 따른다. 이 대목에선 알카사르 설명에 나온 '스페인식 성'이란 전제가 필요하게 된다. 알카사바란 명칭이 붙는 성채는 모두 안달루시아 지역의 끝자락에서만 나온다. 말라가. 알메이라. 그라나다의 경우이다. 이 성들은 스페인 식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중해를 건너 온 무어인들에 의해서 축조된 성채라는 뜻이된다. 알카사바의 의미엔 이슬람 사람들에 의해서 축조된 이슬람식 성채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라나다를 점령한 이사벨 여왕은 알함브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여왕은 조금이라도 더 이곳 알함브라 궁전에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왕이었고 그녀가 통치해야 할 스페인은 너무도 넓었다. 리베리아 반도 남쪽 끝자락에 한쪽 구석에 위치한 그라나다에서 스페인 전역을 통치하기는 여러모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여 여왕은 코르도바에 머물면서 스페인을 통치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그라나다로 행차해 행궁으로 여기며 여가를 즐겼다. 여왕이 얼마나 알함브라를 사랑했는가 하면 그녀는 끝내 그라나다에 뭍어달라고 유언을 남기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알카사바에서 내려와 나스르 궁전 앞으로 가니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일일 입장객 수와 특히 나스르 궁전의 관람 시간까지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간혹 기다리다 지쳐 나스르 궁전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김없이 오늘도..... 어디에서나 중국인 여행자들은 표가 난다. 서양사람들 보기에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어서 혹 중국인으로 오해를 살까바 부랴부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전 여행지를 되돌아가 산타 마리아 성당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포도주의 문 앞에 있는 휴계실에서 기념품점을 구경하고 몇가지 구입한다. 커피도 마시고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나스르 궁전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마침내 그렇게 기다리던 입장 시간이 되었다.
이 뙤약볕에 우리는 나란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유럽 여행자들 대부분도 당연하게 그런 매너를 지킨다.
그런데......... 그런데........ 한 두사람이 줄을 서고 때가되면 나무그늘에서 열댓명이 나와서 끼어드는....... 차이니이즈으으으가 여기저기....... 구.제.불.능.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스르 궁전 입장이 시작되었다.
메수아르의 방을 처음 만나고 이어서 메수아르의 안뜰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어서 아리야네스의 안뜰을 보고 나서 그 유명한 대사의 방을 볼 예정이다. 그야말로 알함브라 궁전의 진정한 참모습이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아랍 건축의 특징을 흔히 '외관의 투박함과 내부의 화려함'이라고 표현한다.
거기에 더하여 유독 여러개의 문을 통해서 실내로 연결하도록 만드는데, 그 문 하나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그 화려함과 정교함은 점점 도를 더해만 간다.
속세와 천국을 건축에 그대로 드러나게 하려는 아랍인들의 삶의 철학때문이라 한다.
'그래. 이게 바로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된 아랍의 건축이자 알함브라 궁전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야.'
알함브라 궁전은 크게 보아서 (알카사바)와 (나스르 궁전)과 (카를로스 5세 궁전), 그리고 (헤네랄리페)의 4구역으로 구분한다.
그 중에서 (나스르 궁전) 이야말로 알함브라의 핵심이자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나스르 궁전에는 현재 (메수아르 궁) (코마레스 궁) (라이온 궁)의 세개의 방이 남아 있는데, 이슬람의 전성기에 이곳에는 7개의 궁이 있었다고 전한다.
경비가 철저한 나스르 궁전의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메수아르의 방)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왕이 직접 나스르 왕국을 다스리던 집무실이자 행정청이자 법원이 있었던 장소이다. 고운 황토로 마감한 벽면에는 빼곡하게 아라비아 글씨와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시원하게 뚫려있는 발코니에 나서니 시야 가득 하얀 벽면위에 빨간 기와지붕을 얹고있는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건너다 보인다. 옛날 알함브라의 통치자와 행정관들은 이 발코니에서 건너편의 백성들의 삶에 모습을 지켜보고 관찰했을 것이다. 알바이신의 아래쪽에는 소위 관직에 몸을 담아 수시로 알함브라 궁전을 드나드는 관리나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겠고, 언덕을 높이 올라갈 수록 서민들이 생활했을 것이다. 그들보다 생활이 더 어려웠던 사람들과 집시들은 따로 모여 계곡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 산자락에 동굴을 파고 생활을 하며 사크로몬테라는 마을을 형성했을 것이다.
작은 메수아르의 안뜰을 지나 우측으로 돌아서면 시야가 환하게 밝아지면서 아주 인상적인 파티오(실내정원)가 모습을 살며시 드러낸다.
(아리야네스의 안뜰)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알함부라 궁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하게 되는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생겨날 정도이다. 약 35mX7m 정도되는 직사각형의 인공연못 위로 투영되는 알함브라 곳곳의 풍경들은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고있는 것처럼 정갈한 기품마저 엿보인다. 연못의 양쪽으로 '천국의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리야네스가 피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 어느정도 이슬람식 파티오으이 정취에 흠뻑 취했다고 생각될 즈음이면 문득....... 서둘러 찾아가야 할 장소가 그 유명한 (대사의 방)이란 사실을 깨닫고는 서둘러 작은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궁전 안은 건물과 공간과 또 다른 공간과 건물사이가 끊임없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잠시 멈춰서서 가만히 생각에 잠겨서 이제 내가 가야할 곳을 떠올리면서 목적지로 시선을 돌리다 보면, 비록 미로처럼 보이긴 해도 방문의 숫자만 더하게 되면 찾아가는데는 별반 무리가 없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된다. 하여간 그 미로같은 통로나 수많은 문이나,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는 모두 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사의 방)에서 가지게 되는 느낌과 주변의 풍경은 여타의 다른 공간에서의 느낌과 전혀 달랐다.
천장의 상감 세공 기법이나 석회로 세공한 벽면, 그리고 그 벽면을 장식한 타일의 규칙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바닥에 이르러서도 한치의 오차나 헛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많은 이슬람 문화권의 타일 장식을 보아왔으나,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가득한 한 편의 파노라마는 절로 탄성이 터져나올만큼 압권이다.
이곳은 이슬람의 왕이 세상 도처에서 찾아오는 외국의 사신을 직접 대면하던 장소이다. 그만큼 화려함을 넘어서 위엄과 존엄을 부러 강조해 놓았을 공간이다. 거기에다 밖으로 시선을 조금이라도 돌리게 되면 잘 정돈된 숲 속같은 아리야네스의 정원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사막에 의지하고 사막속에서 생활하는 아랍인들이 찾아온 왕궁에 사방으로 연못이 있고 분수가 샘솟아 오르고 푸른 숲과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것을 직접 보게된 이방인들의 시야와 마음속에 알함브라 궁전과, 또 그안에서 군림하는 왕은 어떤 존재로 느껴졌을까?
아마도 알함브라는 오아시스 이상이었고 지상낙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것도 어디 보통의 물인가.
아득히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 물을 인공 수로를 통해 여기까지 끌어들여 분수를 만들었으니........
여기까지다.
이방인이나 이교도는 물론 이 세상의 어떤 남자도 이 이상은 단 한발자욱도 더는 안쪽으로 옮길 수 없다.
아라야네스 정원이 내다 보이는 '대사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궁) 안쪽으로는 나스르 왕족만의 아주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흔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아주 조심스레 이야기 꺼내는 (하렘)이 바로 이곳이다. '왕의 여자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남자는 아랍 왕이거나 모유를 떼기 전까지의 왕자 뿐이다. 심지어 이곳에서 왕이 유흥을 즐기고자 할 때 불려올 수 있는 악사들 조차도 모두 장님이었다. (절대 금남의 성역)
물론 아주 특별한 예외도 있긴 있었다.
보아브딜 아랍 왕이 이어져내려온 전통을 깨고 아주아주 이례적으로 귀한 남자 손님을 이 깊숙한 금단의 지역까지 초대한 일이 있었다. 그는 물론 장님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귀한 손님 한명만을 초대한 것이 아니었다. 귀한 손님의 일가친척을 무려 35명이나 더 함께 궁궐로 초대를 한것이다. 알함브라에 잔치 초대를 받은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어쩌자고....... 절대 성역인 라이언 궁(하렘)까지 이들 일행을 정중하게 맞아들였던 것이다.
이 내궁에 왕이나 어린 왕자가 아닌 외부인이 처음으로 36명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결코 36명이 전부 일 수가 없다. 그날 밤, 초대받았던 36명의 손님들이 모두 보아브딜 아랍 왕이 몰래 배치해 두었던 자객들에 의해서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혼자서 36명을 상대할 수는 없었으니........ 내궁에까지 들어간 남자치고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럼 그날 밤의 무시무시한 자객들은 모두 여자 자객이었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정말 그랬을까?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36명을 몰살한 명분은 당연히 금남의 지역을 무단 침입한것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길을 잃어서? 화장실이 급해서?
이제 조금은 어두워 보이는 긴 회랑을 지나가게되면....... 비로소 내궁이다. 하렘인 것이다.
나이는 들었어도 분명 남자인 내 처지에..........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은 왜일까?
으.이.구.무.셔.라.
몸에 달고 들어 온것은 어떻하든 무사히 온전한 상태로 달고 나가야만 하는데.......... 헐.
'내는 유? 하렘에는 별 관심 없구만유? 그냥 건물 구경만 하고 후딱 지나갈께유...........'
알함브라 궁전 중에서도 (사자의 정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실내 정원으로 극한의 찬사를 맏고 있다.
매 시간수에 맞추어 같은 숫자의 사자 입에서 졸졸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중앙분수는 그라나다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신앙과 생활의 자유를 허락해 준것에 대해 감사의 의미를 담아 제작해 아랍 왕에게 받친것이다. 여기에서 열 두마리의 숫자는 12시간의 의미보다 유대민족의 뿌리인 12지파를 상징한다. 당시 그라나다에는 지배자인 이슬람 민족뿐만이 아니라 유대인과 카톨릭과 동로마에서 진출한 정교회까지 모두 화목하게 어울리며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했다.
아름답다.
이 모든 아름다움과 넉넉한 평화로움은 오로지 아랍왕과 왕비와 후궁들만을 위한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잘 손질된 앞뜰의 정원수들이 작은 그늘을 드리우고, 금방이라도 뚝 떨어져서 산산히 부서질것만 같은 흘러내리는 듯한 종유석 모양의 장식으로 치장된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아치형 기둥들이 사방으로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아주아주 세밀한 장식으로 치장된 124개의 화려한 대리석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마치,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새하얀 레이스에 화려한 문양의 아치형 기둥들을 오히려거꾸로 수놓아 자연스레 흘려내려 놓은듯 하다. 거기에다 금방이라도 와장창 쏟아져 내릴것 같은 바늘 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빼곡한 종유석들의 향연이라니........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빠져들 따름이다.
'이것 또한 분명 인간의 창조물이렸다?'
오래전의 이슬람 건축이 추구한 탐미적인 아름다움과 이슬람만의 매우 독특한 정취에 한없이 깊이 빠져본다. 이 장소가 아니고서 이 세상의 어디에서 이런 극한의 숨이 멋을듯한 아름다움을 느껴 볼수 있으련가?
한 걸음 저만치 물러나서 되돌아 보면 하나하나의 조형물이나 기둥의 놀라운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것들이 하나하나 나름의 체계를 이루고 전체적으로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그 창조된 인공의 공간이 내뿜는 강렬한 느낌을 고스란히 보는 이에게 전달해주는 균형의 미와 조화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곳 (라이언 궁)은 왕의 목욕탕이나 여왕의 드레스 룸 등의 여러개 부속 건물이 있지만, 보통은 크게 3개의 방으로 나뉜다.
왕이 기거하던 '왕의 방', 왕비가 기거하던 '자매의 방', 그리고 수많은 야사와 전설을 만들어 냈던 '아반세라헤스의 방'으로 나뉘어 진다. 애초에 이곳 왕의 궁전을 이른는 이름인 (나스르 궁전)에는 총 7개의 개별 궁전이 있었으나 현재 3개만 전해진다고 치면, 나머지 사라진 궁전에 둘 이상은 아마도 후궁들의 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지인들이나 가이드들도 별반 관심을 적게 가지고 대충 넘어가려하는 느낌이 절실한 '에반세라헤스의 방'이 아마도 후궁의 방이었을 것이라는 나의 견해이다.
알함브라를 다녀 온 혹자들이 말하길...... 아반세라헤스의 방과 자매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고, 자매의 방 너머로 슬쩍 감춘듯이 보여지는 아반세라헤스의 방을 현지인들 조차도 들어가길 꺼려하고 현지인 가이드들은 세세한 설명을 삼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하곤 하는데........
자매의 방광 아란세라헤스의 방은 나란히 붙어 있지 않다. 사자 분수를 두고 보자면 왕의 방이 가운데 있고, 왼편으로 자매의 방, 그리고 오른편으로 아반세라헤스의 방이 자리해 있다. 왕의 방과 아반세라헤스의 방 위치가 바뀌어 있다면........ 보아브딜 아랍 왕의 자존심에도.......
그렇게 볼 때...... 오른쪽은 정실 왕비의 방, 왼쪽은 후궁의 방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라이언 궁에 속해 있는 3개의 공간을 연결해 주는 회랑의 벽면이나 천장은 물론, 각각의 3개의 방 천장이나 벽면 또한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자매의 방' 천장 장식은 알함브라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동굴안에 빼곡히 벌집처럼 종유석이 매달려 있는 벌집형 아치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자매의 방 천장은 팔각형의 천장 구멍 안에 벌집 모양의 종유석을 빼곡히 매달았는데 마치 둥글고 깊은 동굴 모양처럼 느껴진다. 왕의 방은 직사각형의 천장에서 전해지는 환하게 드러나고 안정된 모습의 흘러내릴것만 같은 벌집 모양을 매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반세라헤스의 방은 사방으로 뽀죽뾰죽 튀어나온 별들이 빼곡히 수놓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리 만치 아름답고 매우 독특한 천장을 달고 있다. 각기의 개성을 무한 발산하는 그들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튀어나올 뿐이다.
그렇게 라이언 궁을 둘러보고 시간 제약에서 오는 아쉬움을 달래몃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게 된다.
'워싱턴 어빙'이라는 이름이 매달려 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는데......... '알함브라 궁전'을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리게 한 일등 공신이 체류했던 방 이란다. 정원의 한구석에 그이 청동상이 서 있다.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라..........
--- 자매의 방 천장 모습.
--- 왕의 방 천장 모습.
--- 아반세라헤스 방의 천장 모습.
(왕의 방)과 연결된 테라스를 건너면 아주 간촐하고 소박한 미가 돋보이는 작은 휴계실 같은 (레하의 중정)을 만날 수 있다.
작은 공간 중앙에 분수를 두고 네 귀퉁이에 나무를 심은........ 왕이 햇볕을 즐기거나 커파 한잔 하기에 딱 그만이었을것만 같다.
그런가하면 (왕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레하의 중정 반대편을 내려다 볼 수도 있는데, 그곳이 바로 (린다라하 정원)이다. 역시 가운데로 분수를 두고 꽃과 커다란 나무가 울창하게 우서진 나름 제법 규모가 있는 정원이다. 여기의 나무들이 크고 울창한 것은 처음 만들어 졌을 때는 야외정원이었으나, 주변에 건물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미치 파티오(실내정원) 처럼 꾸며지게 되었다고 한다.
볼 것이 너무도 많은 라이언 궁을 구경하다가 지친 여행자 중에서 주로 노년의 어른들이 쉬어 가기를 즐겨하는 장소이다. 정말로 여유롭고 알뜰하게 휴식을 취하고 계신 노년의 부부를 보고는 부러운 마음으로 우리도 가까이에 벤치에서 나름 우리만의 여유와 휴식을 즐겨본다.
궁전을 나서기 전에 만나게 되는 하맘 시설과 반 지하의 물저장고....... 천장을 통해 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시대에 이런 것들이 가능했다니.......
나스를 궁전을 나서면 처음에 슬쩍 둘러 보았던 파르탈 궁전의 정원이 또다시 펼쳐진다.
이 너른 정원이 실은 사라진 궁전의 터였다니....... 절로 아쉬움이 터져나오곤 만다.
다섯개의 아치로만 남아있는 파르탈 궁전이나....... 흔적조차 사라진 유세프 3세의 궁전은 또 어떠했을까?
되돌아보니........ 그 자리엔....... '아라비안 나이트' 한 권만이 덩그란히 텅 빈 벤치위에 남아있는것만 같다.
오늘도 여행의 신은 우리편을 들어주셨다.
사전 예약도 없이 이렇게 너끈하게 알함브라 궁전을 관람하다니........
매표소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인다.
인파를 헤집고 언덕길을 조금 내려가 미니버스 정류장 의자에 걸터 앉는다.
'첨부터 정해진 스케줄이 아니었으니....... 이젠 뭐하지?'
시계를 들여다 본다.
값자기 배가 고파 온다. 그러고보니 점심 때가 한참이나 지나있다. 중간에 커피랑 빵 한조각씩 먹은게 오늘의 전부였지 않은가?
또 여행의 신에게 모든것을 맞기고....... 운명의 알함브라 버스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31번이 오면........ 누에바 공원 왕복행 버스이다. 그럼 공원의 멋진 노천카페에 가서 우아한 점심식사부터 한다.
32번이 오면........ 누에바 공원과 알함브라 궁전과 알바이신 지역을 순회하는 버스다. 그건 생각을 좀 해보아야 겠다.
34번이 온다면...... 누에바 공원과 알함브라 공원과 알바이신 지역을 거쳐 사크로몬테 언덕까지 가는 순환 버스다. 그렇다면 무조건 사크로몬테로 간다.
어.느.버.스.가.올.까.요.알.아.맞.춰.보.세.요.
그렇게 그렇게 요상한 궁상을 떨고있을 때....... 저만치 아래서 빨간 미니버스가 올라오고 있다.
그 번호는?
------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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