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알 럽 트래블 / 조지아) 사메바 성당과 트빌리시 시티 투어

by 피안재 2016. 10. 28.

 

 

 

 

 

 

 

 

 

 

 

 

 

 

 

 

 

 

 

  올드 트빌리시에서 므츠바리강을 건너 엘리야 언덕(Elia Hill)을 바라다 보면 황금색 돔 지붕을 한 사메바 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앞쪽에 보이는 초록빛 유리 돔 지붕의 건물이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관저 이다.

  조지아나 아르메니아의 교회를 대표하는 무수수히 많은 오래된 교회들과는 달리, 뜻밖에 이 고풍스러우며 웅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이 사메바 성당이 최근의 현대적 건축물이라는 사실에 실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트빌리시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인 사메바 성당이라 들었을때, 적어도 천년은 되었을 건축물인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홀리 트리니티 성당(Holy Trinity Cathedra)' 또는 '밀레니엄 빌딩(Millennium Building)' '사메바 성당(Sameba Cathedral)'으로도 불린다. 책자나 여행객들에게는  (사메바 성당)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지아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나 현지의 안내표지판에는 (트리니티 성당)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건축가 아킬 마인디아스빌리(Archil Mindiashvili)가 설계하였으며,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 기념과 조지아 독립 공화국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에 시작해 2004년에 완공한 현대식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성당 내부에 아직도 공사중으로 천장의 벽화를 그리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성당 전체는 본당, 종탑, 대주교 사택, 수도원, 목회 신학대학교, 휴게실 등 복합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조지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부 개조되기도 했다. 돔 형식의 지붕과 돔 위에 세워져 있는 7.5 미터 높이의 황금 십자가가 볼거리다. 성당 안에는 9개의 예배당이 있으며, 이 중 5개는 성당 지하에 있다. 
건축자재는 천연 재료를 사용했으며, 바닥은 대리석 타일로, 예배 제단은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내부 벽화는 아미란 고글리즈(Amiran Goglidze)가 이끄는 예술가 단체에 의해 그려졌다.

 

 

  여행중의 컨디션 난조로 가볍게 새벽 산책을 나섰던 길이라 카메라에 힙색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골목길 언덕을 이리저리 오르다보니 거기가 엘리아 언덕인줄도 몰랐다.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에 적지않게 당황해 하기 시작하고 있을 즈음에, 갑자기 익숙한 풍경의 웅장한 대성당이 내 눈앞에 갑자기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성당의 입구인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성당 정문을 가로막고 경찰 순찰차 한대가 서 있었다.  반짝이는 경광등이 연실 돌아가고 있었다.  순찰차의 창문을 열어 놓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두 명의 경찰이 보였다.

  '꼴두 새벽부터 무슨 일이람?' '뭐 날 잡으로 이렇게 행차하시진 않았을테고?'

  성당 입구를 보니 거기에도 우비까지 걸친 사람이 하나 보초서듯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혹시 유료라서 표받는 사람인가? 이 새벽부터?' 하는 생각에 주위를 살펴보아도 어디에도 매표소 같은 것이 보이질 않는다.

  어쩌지?

  그 유명한 사메바 성당을 눈 앞에 두고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이 뭔가 요상한 상황을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위 아래로 나를 흩어보는 경찰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슬그머니 정문의 지켜서는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저기요...........  여행객인데요................................  성당 구경 좀 할 수 있을까요?'

  나를 가로막듯이 나타난 정문을 지키던 사람도 나를 위 아래로 샅샅히 살핀다. 이거 결코 예사 눈초리가 아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코리아에서 왔습니다.'

  '남쪽입니까? 북쪽입니까?'

  '남쪽입니다.  아마도 북쪽 사람들은 저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수가 없을텐데요........'

  '여행중이십니까?'

  '네. 조지아가 보고 싶어서 아주 먼길을 왔습니다. 단순한 여행객입니다.'

  '혼자 십니까?'

  '네. 혼자입니다.  잠시라도 사메바 성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배당 안쪽으로만 들어가시지 않으신다면 들어가시게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새벽 예배(미사) 시간이거든요.'

  '아! 네.  저도 크리스챤입니다. 프로테스탄트이지만요.  제가 반바지 차림이라 경건해야하는 예배당까지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성당 외부를 잠시 둘러보고 싶습니다.  사진 몇장만 찍겠습니다.'

  '지금 예배당 안에 중요한 분의 가족께서 기도를 하시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경찰차가 와 있는 것입니다.  그점만 이해햐시고, 성당 외부를 둘러보시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허락하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마들로바(감사합니다)'.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들어서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방금 전 나와 대화하던 남자와 순찰차의 경찰들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야 원.  성당 들어가는 것이  마치 국경검문소 입국심사받는 기분과 영락없이 똑 같았다.

  '그나저나  중요한 분의 가족이라면 도대체 누굴까?  아마도 어쩌면 조지아 대통령의 부인쯤 되지 않을까?  대통령 관저가 여기 성당과 한 300m 쯤 밖에 안되고, 조지아가 기독교 국가이니 그 가족들도 모두 기독교인 일것이고,  부인이 번거로운것을 피하면서 가족과 국가를 위해 기도를 하고자 한다면 새벽미사가 제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향했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얼씨구?

  성당을 둘러보고 돌아서 나오려는 즈음에, 성당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졌다.

  번적이는 순찰차 경광등 불빛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것이 뭔가 사단이 나도 분명하게 난 모양이었다.

  '뭔 일이지?  혹시나........  내 지난날의 행적이 모두 드러나서 인터폴이라도 출동한 거야?  에구 에구.  그러게....... 챠밍여사가 그렇게 착하게 살으라고 할때 진즉 말을 잘 들었을껄.  이제와서 후회해 본들.........  에이 조지아여행 다 조졌나보다.  수갑차고 강제 추방 당하나 보다.  후원 담장 넘어 도망칠까? ㅋㅋㅋㅋ  그나저나 그 많은 죄 중에서 언제적 일 때문에 재들이 저 난리지? 언제 지은 죄 때문인지 알아야 변명이라도 준비하지?'

  잔뜩 움츠러 들은채로 슬그머니 성당 문밖으로 나오니 정말 가관이 아니다.

 

 

 

 

 

 

 

 

 

 

 

 

 

 

 

  사방 골목까지 10대 이상의 순찰차가 몰려 들었다.

  한데 엉겨붙어 도로와 골목을 통제하는 자가용들은 아마도 사복경찰들인듯 싶었다.

  정문을 나서는 나를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몰려들어 샅샅이 쳐다보고 있으니........  알몸 수색당하는 기분..... 옴메 기죽어.

  그렌데 다행이도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는다.

  '휴. 살았다.'

 

  부랴부랴 골목길로 접어들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도망치듯 내려가려는데 아까부터 할머니 한 분이 이런 나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 계신다.

  '감마르 조밧(안녕하세요).'

  ㅎㅎㅎㅎㅎ

 

  골목을 내려서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자니 아무래도..........

  새벽에 예배를 보러 들어가는 교인들 중에 중요한 분의 가족이 눈에 띄었거나 보고로 단순하게 생각해서 순찰차 하나가 출동을 했었나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관저에서 파악해 보니 부인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중요한 인물까지 사라지게 된 것을 뒤 늦게 알았다.  후문의 초소에 알아보니, 처음 부인만 에배당에 가신줄 알았었는데 정작 vip까지 함께 은밀하게 성당을 간것으로 파악이 되자 마자.....  경호실과 경찰에 비상이 떨어진 것이리라.  부랴부랴 vip를 호위하러 떼로 몰려왔으리라.

  '에이.  조금만 더 개겼더라면 vip와 만나서 인사하고 조찬이라도 대접받으며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한 몫을 보태는건데.......'

  '아깝다.'

  발걸음을 옮겨서 새벽 산책을 다시 시작한다.

 

 

  ****  사메바 대성당의 사진은 다음에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을 올리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화창한 아침에 다시 사메바 성당을 찾아야만 하는 황당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을 곧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날의 사진은 아침 햇쌀이 있어서 더욱 선명하고 색상이 아름답다.  사메바성당은 한 번 더.........

 

 

 

 

 

 

 

 

 

 

 

 

 

 

 

 

 

 

 

 

 

 

 

 

 

 

 

 

 

 

 

 

 

 

 

 

 

 

    이 멋진 타임워치를 보라.

  트빌리시를 제대로 여행했다면 꼭 성당들이나 돌아보고 유명 관광지나 카페 레스토랑만 볼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런 역사와 세월과 인간의 정성스런 손길이 잔뜩 묻어난  멋진 작품들을 찾아보아야 제대로 여행했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언제 만들어 졌는지는 알수 없지만 표시판대로 2010년에 현재의 상태로 복원되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써 있다.  트빌리시에서 지진의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트빌리시까지 일부 러시아공군의 폭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그때 부서졌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무너져내릴것만 같은 시계탑을 커다란 철제 빔이  더 이상 기우는 것을 막으려는 듯 고여놓은 모습인데, 놀랍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작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핸디 폰을 꺼내 트빌리시의 국제시간에 비교해 보니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살아있는 워치타워였다.

  한마디로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트빌리시를 여행하신다면.......  곡 한번 찾아가 보시라.

  여행자 거리에서 카페골목을 따라 쭈욱 나가다 보면 시오니 성당의 후문과 정교회 신학대학 건물의 사이로 난 골목길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골목을 게속 쭈욱 나아가다 보면 다시 카페골목이 나타나고,  그 골목의 어귀에 위치해 있다.

  나에게는 이 워치타워야 말로 트빌리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느껴졌다.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같은 풍광 이었다.  이 워치타워의 풍광도 날씨가 맑은날 다시 한번 찾게 된다.  그 역시 다음에 추가........

 

 

 

 

 

 

 

 

 

 

 

 

 

 

 

 

 

 

 

 

 

 

 

 

 

 

 

 

 

 

  조지아(그루지아)에 대한 자유여행자들의 평가는 지극히 단순하다.

  '오래된 교회들과 골목에 숨겨있는 워치타워(시계탑), 그리고 고성(古城)들과 함께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싸인 조지아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나라이다' 라고.

  나는 이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위의 표현에 딱 한가지, 트빌리시에 대한 감회가 대비되면 어느정도 약간은 모호한 감정이 생겨나기도 한다.

  트빌리시는 위의 표현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또 전혀 적합하지 않기도 하다.  트빌리시는 그렇게 옛스러움 못지않게 현란하리만치 현대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길가는 여성의 상당수가 담배를 피워물고 걸어간다.  맥주병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흔하다.  고즈넋한 카페나 커피숖에서 화려하게 변신한 현대적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오락실과 피씨방들이 성업중이다.

  서구화의 휴유증이라 할까 자본주의의 페단이라 할까, 그런 모습들이 트빌리시의 고풍스런 엣 건축물들과 유산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조지아의 젊은 인구들이 하염없이 무작정 트빌리시로 몰려들고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여행자들과 자본주의 속성에 눈을 뜬 조지아 젊은이들........  앞날을 생각하면 절망적인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트빌리시의 물가는 서유럽에 거의 버금간다.

 

 

 

 

  가벼운 아침산책이 거의 4시간을 훌쩍 넘겼다.  정말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상쾌한 기분으로 가졌던 김회가 새로운 놀랍도록 소중한 시간이기는 했는데, 호텔로 돌아오니 바닦을 기고있는 컨디션이 말썽을 부렸다.

  알싸하게 추워졌다가 식은땀이 나곤 했다.

  따끈하게 커피를 한잔 끓여서 들고 창밖을 내다보니 호텔 후런트에 삼삼오오 젊은 남녀들이 복도와 계단에 그냥 주저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엇다.  궁금해서 나가보니 오늘의 여행스케줄들을 조정하고 있었다.

  대부분 여행중에 처음만난 사이들로 보이는데도 마치 처음부터 함게 여행하는 모임의 회원들인양 모든것이 썩 자연스럽다.  부럽다.

  그들의 대화에 살짝 끼어들어 보니.....  역시 한국인을 대부분 (2명 빼고) 처음 본다는 이야기와,  내 나이쯤에 혼자 자유배낭여행 다닌다는 것에 약간은 신기한 모양이다.  나 역시 오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까.....  서둘러 평화의 광장으로 나가보라고 한다.

  그들 팀은  카즈베기로 가는 팀과 스바네티로 아에 여행지를 옮겨가는 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두가지 여행을 나도 계획중이었는데......  차마 이대로의 컨디션으로는 그들을 따라 나서기가 내키지가 않는다.

  작별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아뿔싸.  커피 때문이었을까?  다른것은 아침에 먹은것이 전혀 없는데.....

  심하게 배탈 증세를 보이며 화장실을 연실 드나들어야만 했다.

  다시 비상용 감기약과 정로환을 먹고 드러누웠다.

  객지에서 여행중에 아프면 정말 서럽다더니 그동안의 숱한 여행중에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다.

  TV를 켜보니 아랍방송에서 한반도에 도착하고 있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속출에 대해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wifi 가능한 호텔이라 로밍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던 핸디폰을 꺼내서 충주에 연락을 해보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좋은 환경을 가진 충주는 말짱했다.  옛날부터 충주에는 가믐도 없고 수해도 없다.  태풍을 구경해 본게 언제인지 나의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한 두시간쯤 쉬었을까?

  다시 거리로 나섰다.

  광장에 가보니 아침에 떠나는 여행자들은 이미 모두 떠난 뒤였다.  혹시나 늦은 여행자가 있을까 두리번 거려보니 마슈르카(미니버스)를 개인적으로 대절하라거나 택시를 이용하라는 호객행위가 죽어라 뒤를 쫓아다닌다.  엄청난 바가지 요금과 함께.

  하긴, 조건이 맞는다 하여도 오늘은 먼거리 여행이 불가능 했다.  언제 화장실이 필요해 질지 알 수 없는 컨디션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좀 더 걷기로 했다.

  시내를 운행하는 마슈르카(미니버스)를 이용하여 올드 시티와 뉴 트빌리시까지를 돌아보는 시티 투어로 오늘 여행게획을 대신하기로 했다.

  일단은 여행자 거리로 가서 서너군데 여행사를 들렸다.

  조지아 여행중엔 개인적으로 직접 찾아가는 코스도 있지만,  여러 정황상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편리할 수 있는 여행지도 있기 때문이었다.  각 여행지의 팜플렛을 잔뜩 얻어서 배낭에 넣었다.  밤에 새로운 게획을 확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티 투어에 나섰다.

 

  메테히 다리에서 만난 특별한 여행자 할아버지.

  나를 사진에 담고 싶다고 말을 건네왔는데,  그 할아버지 또한 아주 특별한 모습과 차램새로 흡사 집시를 연상시켰다.  미국에서 오셨다는데 모양새는 영락없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폼이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상대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 구시가지의 중심인 자유광장.  레닌 동상을 철거하고 2006년에 새로 건립한 자유탑에는 악으로 상징되는 용을 창으로 찔러 물리치고 있는 말을 탄 성 조지의 동상이 농여있다. 진자 순금으로 도금되어 있다한다.

 

 

    --  승용차 보다도 큰 자전거 조형물. 

 

 

 

 

   -- 이 동상 또한 조지아 어머니상(mother of georgia)의 다른 버젼이다.  므타츠민다 산 위의 거대한 동상에 비하면 작지만 훨씬 육감적이다 못해 자극적일 정도로 매혹적이다.  정말 제대로의 크기로 하나 가지고 오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트빌리시의 신시가지.

  여기서 부터가 오늘의 트빌리시의 진짜 모습이다.

  서유럽을 방불케 하는 신시가지엔 교통표지판과 신호등이 없다.  거의인지 아에인지 잘 파악이 안될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차선도 분명치 않은 도로엔 차와 사람이 뒤섞여 있지만 어디에서도 경적소리는 울리지 않는다.

  이 복잡한 도심의 길 모퉁에 이따금 순경차와 순찰중인 경찰도 보이지만 모두가 얽히고 설켜있는 도로사정에는 무관심하다.  모여서 딴짓하거나 잡담만 나누고 있다.  트빌리시 신시가지에서는 순경이 있으나 없으나 매 한가지다.

  여러가지가 참 신기하고 오묘하다.

  거기에  조지아의 멋진 여성과 남성들을 모두 고르고 골라서 여기 트빌리시 신시가지에 있다.

  도심도 사람도 모두 너무나 멋지다.

  원.더.플.조.지.아.트.빌.리.시.

 

 

 

 

 

 

 

 

 

 

 

 

 

 

 

 

 

 

 

 

 

 

 

 

 

 

 

 

  신 시가지에서 구 시가지로 다시 되돌아 오는 길에 그 유명한 트빌리시의 지하철을 타볼까 하고 지하철역사로 갔는데.......  구 소련시대에 방공호를 삼아 건설한 지하철은 거의 지하 100m 이상의 깊이에 건설되어 있다고 했다.  트빌리시의 지하철은 구 소련의 몇개 안되는 지하철 중의 하나이다.

  지하철을 타고는 싶었는데 그러자니 꼭 들려 보고 싶은 곳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노선 방향이 달랐다.

  그래서 다시 미니버스(마슈르카)를 타고 시내 이동을 했는데......  또 아뿔싸.

  깜작 하는 사이에 목적지를 지나쳐 미니버스는 그대로 여행자거리의 메테히 다리 옆에 내려준다.

  '어떻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끝에 나는 다시 왔던 길을 씩씩하게 되돌아 걸어 내려간다.

  시오니 교회 앞을 지나니 딱 보기에 우리나라 예식장 주변 풍경과 비슷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누가 결혼해요?'  라고 다가가서 슬며시 물어보니 청년이 손가락으로 길가에 길다란 리무진을 가리키며 뭐라 대답을 해 준다.

  아마도 '내 친구'라는 답변이었을 것이다.

  시오니 성당은 (니노의 십자가)를 보관하고 있는 성당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더욱 유명한 것은 (결혼 서약)을 하는 장소로 더 유명하다.  조지아인들은 우리네 결혼식 처럼 결혼식장에서 식을 거행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유별나리만치 기어코  시오니 성당을 찾아서 신부님 앞에서 아주 간단하게 (결혼 서약)을 하고 서약서에 싸인을 하는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한다.  (결혼 서약)을 마치면 야외의 공원이나 멋진 식당이나 신랑신부의 누구 지비에서나 일가친척들과 지인들을 맞아서 밤새 축제 같은 피로연을 갖는다.

 

  시오니 성당의 정원 한구석에 있는 조각상이 나를 피식 웃음에 빠트렸다.

  제목을 (내가 뭘?) 이라고 즉석에서 내가 붙였다.  조지아의 마치 그림같은 글자로 써 있어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한 기독교인 찾아와서 그 조각상의 성인에게 따져 물었다.  "저는 말씀하신대로 계율도 잘 지켰고,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성인께서 가르쳐 주심을 철저하게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노름꾼인 박씨는 고층 아파트를 사고, 사기꾼인 김씨는 외제차를 타고, 건너마을 강씨는 아무 일도 안하면서 떵떵 거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성인이 한참만에 대답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따질려면 저기 높은곳에 계신분에게 따져야지?.  내가 아니야.  내가 뭘?'

 

 

 

 

 

 

 

 

 

 

 

 

 

 

 

 

 

 

 

 

 

 

 

 

 

 

 

 

 

 

 

 

 

  꼭 한번 찾아가보고자 마음먹었던 목지지로 발걸음을 옮기던 차에,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닮은 공화국광장의 건물 얖을 지나치노라니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센터 건물을 드나드는 것을 볼수 있었다.  하여 궁금하니 들여다 볼 수밖에.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취업 박람회장)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라면 특정한 날짜를 정해서 일정기간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연중무휴의 상설 행사장 같은 분위기라는 것이다.

  각종 서류를 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엄청난 인파였다.

  카메라 셔터를 몇번 누루고 있던 차에 경비원이 다가와 조용하게 제지를 했다.  여기 이 장소는 구직자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단다.  듣고나니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단순한 여행객이라 모르고 그랬노라고 사과하고 밖으로 나왔다.

  조지아의 실업자 수가 아주아주 심각한 수준의 상태라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현장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모든것이 풍요롭던 조지아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동유럽의 빈곤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이번 여행의 시작에서 부터 나는 그런 점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여행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몇날되지도 않은 짧은 나의 여행을 통해 나는 대략 서너가지로 그 이유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 또한 짧은 몇마디 문장으로 모든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내 나름으로 파악한 서너가지 이유에 대해 아주 짧게 요약읗 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유는 구 소련의 붕괴이다.  그 이유가 차지하는 부분이 거의 지배적이다라고 하겠다.

  소비에트연방(구 소련)은 철저히 계획 통제하에 전 연방을 다스렸다.  각 지역에서 나는 물품들을 그것이 나지 않는 지역에 공동 분배를 통해 감시와 통제를 하면서 전체 연방을 이끌어 왔던 것이다. 모든것이 공동생산과 철저한 계산에 의한 배급을 통해서 연방의 생존이 유지되어 왔다.  그 통제시스템인 소비에트연방이 91년 갑자기 소멸된 것이다.  혈통과 종교를 달리하던 민족들이 제각각 독립을 선언하고 떨어져 나갔다.  조지아도 그 중 하나였다.  원유를 비롯한 지하자원과 풍부한 목초지대에서 생산된 육류와 곡식과 과일을 가진 조지아였지만, 연방의 해체 후에는 하루아침에 치약에서 비누에서 플라스틱 휴지통 하나까지 생활필수품 전반을 모두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국가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조지아가 가진것만으로는 도저히 인간적인 최소한의 삶 조차도 영위해 나갈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최소한의 생필품을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소비에트연방의 관할권 아래서 조지아라는 국가가 돈을 가지고 관리할 기회를 전혀 가져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루 아침에 드넓은 땅만을 잔뜩 가진 거지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농협에서 우선 외상으로라도 지원해 주던 비료 농약 농자재의 공급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인력이라도 데려다 써야 하겠는데  당일치기 현금결제가 아니면 모두가 굶는 처지에 일을 해주겠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세상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돈을 가지고 살아 본 적이 없었던 때문이다.  모든것은 연방이 골고루 배급을 통해 최소한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게끔 해 주어왔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속에서도 그 소련의 지위권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러시아는 세상이 변했다면서 나 몰라라 이런 사태를 그냥 방치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둘째는 지도층의 부패이다.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KGB 등의 독재 정권에 편승하여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소수의 사람들이 독립과 동시에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각종 이권사업에 손을 대어 막대한 부를 축척하면서, 어찌보면 구 소련시대보다 더 참혹하게 온갖 수탈 행위를 일삼았던 때문이다.  우리나라 친일파의 행적과 너무도 유사한 이런 반 인륜적 반역사적 행위들은 저개발국이나 신생독립국가에서는 거의 전형처럼 되풀이되어지는 행태인 것이다.  그들은 하이에나이다.  그들에겐 역사인식도 민족 자긍심도 없다.  오직 일신의 안락과 부와 권력에의 집착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현 세테에 빠르게  편승하여 국영기업이나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기에 혈안이 되었고, 부당한 서구의 외국자본에게 막대한 이익을 약속하고 끌여들여서 조국을 팔아 먹었다.  자원이던 유물이던 심지어 일부의 영토이던 팔 수 있는 것은 다 내다 팔았다.  일정한 비율의 리베이트를 약속 받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재빠르게 오늘날의 서구에서 돈벌이가 되는 분야를 개척해 자기나라(조지아나 개발도상국들)의 이익이 많이 남는 사업들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독차지해 버렸다.

  인터넷 모바일 사업. 방송 광고 사업. 여행사업. 석유 사업. 물류 운송 사업 등등을 독립 순간부터 집요하게 선점해 버린 것이다.

  힘들게 독립을 쟁취하였지만,  국민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대한 자본주의의 모순에 이미 깊숙이 빠져버린 것이다.

  이런 그릇된 자본주의의 페단은 어쩌면 구 소련의 독재 보다도 더 집요하고 처참할 수 있는 것이다.

  세째는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이 너무 일찍이자 너무도 빠르게 자본주의의 어두운면에 쉽게 빠져버렸다는 것에 있다.

  버는 것은 부족해도  쓰는 것은 남부럽지 않게 써야만 한다. 빚을 내서라도......  결과는 페인이 되거나 범죄자가 양성된다.  모두가 화려한 도심인 트빌리시로 몰려들고  한탕주의가 만연해 간다.  가치관이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졌다.

  네째는 늘어만 가는 노년들에 대한 문제이다.  속된 말로 사람은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

  그런데 불가리아에 버금가는 장수국가인 조지아에는 하루하루 노인들이 늘어가다 못해 넘쳐나고 있다.  안 죽는 것을 어쩌겠는가?

  인간 수명의 연장,  인구의 고령화에 대한 사회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아주아주 심각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부분에 대해 뼈저리게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다.  머지않아 우리도 심각하게 이런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나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죽어야만 한다.  내 스스로의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그것들이 보편 타당한 선에서의 사람다운 가치에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당당하게 죽어야만 한다.  그게 인류가 꾸준히 존속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다.)

  노동력을 상실하였지만  도무지 죽지를 않는 인간들..........  그들이 동유럽에 흔하게 산재해 있다.(이런 비인간적 표현이 나도 싫다)

  그들은 구 소련 시대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죽지않는 세대들에게 모든것이 넘쳐나는 풍요속의 자본주의는 허상이다.  세상의 모든것이 그림속의 떡이다.

  이미 능력을 잃었으니 돈이 없고,  돈이 없는 자본주의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것이다.

  최소한, 독재이던 뭐던 소비에트연방 하에서는 나이들면 일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하지 않아도 평등한 인민의 권위를 보장받아 부족한대로 끊이지 않고 배급이 나왔던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굶겨 죽는 일은 없었던 때문이다.

  프로레탈리아 이상국가 혁명치하에서 살아왔던 그들이,  오늘 구 쏘련 시대를 그리워 하고 있는 어찌보면 지극히 타당한 이유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조지아나 아르메니아를 포함한 CIS(독립국가연합)가 헤쳐나갈 길들이 결단코 그리 요원한 것이 아닌것이다.

  정녕.  신의 은총이 그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그리고 마침내 제법 시간이 걸려 걷고 나서야 (도깨비시장)에 당도 할 수가 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야 우리나라 풍물시장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다만 무수히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네와 전혀 다르고, 노상에 길게 펼쳐놓고  사고 팔는 물건들이 생소한것이 다르다면 다르겠다고 하겠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참 좋다.  절로 신이 났다.

  한참동안을 이고저곳 마구 들쑤시고 다녔다.

  실갱이 같은 오랜 줄다리기 같은 흥정 끝에 골동품 악세사리점 후덕한 아주머니에게서 반지 2개와 팔찌 2개를 샀다.

  반지 2개는 우리 화페로 약 7천오백원에,  팔찌 2개는 약 9천원에 샀다.  썩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더 어정어정 서성대다가 마침내 찾아간 곳이 미술거리였다.

  초입에 실제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그곳의 모든 그림들이 모두 그렇게 탄생해서 내 걸려 있는 것이었다.

  신이 났다.  절로 흥이났다.

  어떤 나라의 갤러리나 아틀리에, 혹은 노점에서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사진찍는 것은 절대 금지로 하는 곳들을 많이 보아오았다.

  작품에 대한 사진은, 훗날 그로인하여 모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작품 보호에 대한 작가의 프라이버시 차원이었다.

  정말 신이 났다.

  그래서 연실 셔터를 과감하게 눌러댔다.

  그런데 갑자기...........

  ㅎㅎㅎㅎ

 

  딱 위쪽의 마지막 사진까지였다.

  카메라의 4G 메모리카드가 가득찼다는 신호가 왔던 것이다.  천장을 훨씬 넘는 사진이 메모리카드 속에 가득채워졌다는 의미였다.

  전시된 미술품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메모리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여행전 새로 구입한 8G 메모리카드를 넣었다.  이정도면 이번 남은 여행기간에도 충분하리라.

  그리고 나서 다시 미술품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땐 정말 몰랐다.

  이제 곧 얼마나 엄청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줄을 그때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시점에서 부터 엄청난 비극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   뒷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