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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유료화 되기 전에 꼭 다녀오세요." <죽파리 자작나무숲>

by 피안재 2026. 8. 1.

 

2025년 정부기관인 산림청은 (국토 녹화사업 50주년)을 기념하면서 ‘대한민국 걷기 좋은 숲길 100선’을 선정 발표했다. 그 경선에서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산 75-22번지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는 곧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아름다운 명품 숲길이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해 준 것이라 하겠다.

산림청은 1975년부터 대부분 잡목으로 우거질대로 우거져 자연 발생 산불에 취약하고, 국토의 65% 이상인 산림자원 국가이면서도 고급 목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고질적 병폐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산에 임도를 내어 산불 방지와 산림자원 관리에 힘쓰는 한편으로, 대대적인 벌목과 고급 목재 생산을 위한 묘목을 식재하고 관리하는 사업을 국가의 미래산업 차원에서 중용하고 박차를 가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국토 녹화사업의 우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으며, 산림자원 부국으로 급격히 신분 상승하게 되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은 바로 이런 (전 국토 녹화사업)의 결과에서 생겨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한국인 모두에게 대자연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69만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서로 경쟁하듯 하늘을 향해 곧게 뻗으며 뽀얀 속살에 연한 녹색의 일렁이는 옷자락을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모습은, 적어도 그곳을 직접 찾아가는 사람만이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대자연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로부터 자작나무의 다른 이름을 ‘숲속의 가인(佳人)’이라고 불러왔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이다.

전원 생활을 늘 꿈꾸며 살아온 필자에게 혹시나 내가 너른 정원을 가지게 된다면, 기꺼이 나는 나의 정원에 오로지 한가지 수종으로 자작나무만을 심겠다고 작정하게 만들었을 만큼 자작나무는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나무이다. 나무는 무조건 자작나무 한가지뿐이다. 열 그루가 되었던 마흔일곱 그루가 되었던 무조건 자작나무 한가지뿐이라는 생각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아름다운 명품 숲길이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이의가 있습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보다 더 아름답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에 비해 전혀 아름다움에서 뒤지지 않고, 걷기에는 오히려 더 편한 숲길이 따로 있다고 확신하기에 감히 이의를 제기합니다.’ -- 피안재.

'독자 여러분. 아마도 곧 유료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으니, 서둘러 직접 꼭 다녀와서 다양한 평가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을 소개하는 기사나 블로그 글을 보노라면 항상 서두에 영화 <닥터 지바고>가 등장한다.

‘햐얀 설원을 질주하는 기차와 그 풍경속에 은근하게 드러나는 흰 껍질을 가진 나무숲’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흰 껍질의 나무가 바로 시베리아 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작나무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게 <닥터 지바고>가 등장하게 된 이유로 보인다.

나름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렇기는 해 보인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전반부 이야기가 러시아의 흑백내전(ражданская война)을 다루고 있는데, 프로레탈리아 혁명군의 무장병들이 탄 기차가 차이코프스키의 장중한 음악을 배경으로 광활한 순백의 시베리아 설원을 가로질러 폭풍처럼 내달리고, 라라(여주인공)의 연인이자 프로레탈리아 혁명군 지휘관인 파샤(Pasha)가 탄 지휘부 열차가 폭설이 내리는 자작나무 숲속에 멈추어 섰고, 또 설원의 러시아 정부군을 향해 자작나무 숲속에 숨어있던 혁명군이 뛰쳐나오며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등의 몇몇 장면에 자작나무 숲이 배경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고, 또 자작나무숲 특유의 아름다운 배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도 못하였기에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자작나무를 이야기하면서 꺼내 드는 <닥터 지바고> 배경 이야기는 영 어색하고 별반 탐탁지 않은 사례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하긴 <닥터 지바고>를 러시아혁명 이라는 불가항력적인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숭고하게 꽃피는 위대한 사랑의 대서사시쯤으로 여전히 각광을 받고있는 명화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보편 타당한 현실 속에서, 라라나 지바고나 각자가 이미 남편과 정인이 있는 사람으로 그리 운명적으로만 받아들이게끔 느껴지지 않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과, 원작에서는 지바고와 라라의 처절한 불륜 보다는, 시작과 끝 장면에 등장하는 유리 지바고의 형인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 최고위급 장군인 예프그라프 지바고의 배경과 등장을 통해 러시아 혁명을 어느 정도 재조명을 해야 했거나, 프로레탈리아 혁명군 돌격대장이자 라라의 연인인 파샤(Pasha)를 통해 당시의 시대 상황과 대의명분을 어느 정도는 재조명 했어야 했는데, 결국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팔려나가야 하는 시장이 미국을 비롯한 자유 서방세계이다 보니, 자칫 러시아 혁명을 잘못 다루다가 매카시즘 같은 시비에 걸려들까 하여 몸을 사린 것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가 무엇인가가 깨름찍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보자면 <닥터 지바고>는 거룩한 대서사시가 아니고 엉거주춤 짜맞추기에 급급한 통상적인 그러 그런 로맨스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처럼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을 소개하는 이야기마다 <닥터 지바고>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 배경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 역시........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거나, 눈물이 시릴 정도로 웃푼(?)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시베리아 벌판에 은은하게 파스텔톤으로 번져가는 자작나무 숲의 진짜 단풍 풍경을 느껴보고 싶다면, 필자는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The Barber of Siberia)>를 적극 권하겠다. 제목의 번역에서부터 혹평을 받았고, 비판적 혹평에 쪼잔하게 굴면서 B급의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로 별 볼일 없이 내쳐졌지만, 배경 풍경 하나만은 정말로 압권이었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부터 벌써 자작나무 숲으로 빼곡한 시베리아 벌판의 은근한 단풍 숲 사이를 증기 기관차가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거의 시베리아를 관통해 나갈 정도이니 자작나무숲 구경 한 가지는 정말로 제대로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국내 흥행이 참패를 했을뿐이지 영화는 그럭저럭 보아줄 만하다. 더군다나 소재 스토리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자전적 연애담이라니, 어찌보자면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보아줄 만 하지 않겠는가? 영화 전편 곳곳에서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이 보여주는 원색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여주인공역의 줄리아 오몬드와 그 자작나무 숲 배경 때문에 두 번을 감상했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65년 발표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닥터 지바고>.
톨스토이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니키타 미할코프(Nikita Mikhalkov) 감독의 작품 <러브 오브 시베리아>.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은 정부 기관인 산림청의 주도하에 1974년부터 1995년에 걸쳐 138ha의 면적에 690.000본의 자작나무 묘목을 조림하고 재배 관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7개 코스의 탐방로가 조성되었고, 숲속 교실과 전망대는 물론 생태연못과 나무다리와 나무계단은 물로 인디언 집 등의 시설을 갖추고 찾아오는 탐방객들에게 산림욕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어느 해였던가 몹시 무덥던 여름날에 이곳을 찾았던 필자의 솔직한 고백으로는....... 다 좋지만, 정작 자작나무 숲까지 접근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는 고충이 그날의 그 좋았던 기억을 대부분 깎아 먹어 버렸다는 기억뿐이다.

그런 고통스런 아픈 추억이 여전하기에, 그 길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다소 의아스럽고, 그럼 그런 힘들었던 과정이 어떻게든 보완되었거나 달라졌다는 뜻일까 하는 의문이 추가로 생겨버렸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출발점이자 입구인 숲 안내소에서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황토(마사토) 언덕길을 한참이나 오르고 또 오르고 나야만 겨우 본진이랄 수 있는 자작나무 숲에 닿을 수 있다. 이 과정의 루트가 두 길로 나뉘는데 대략 80분 정도 소요되는 원정 임도와 60분 정도 소요되는 원대 임도로 나뉘어 진다. 어디를 택하던간에 지루하고 볼 것이나 달리 할 것이 전혀 없는 언덕길을 고행의 수도자가 되어 무조건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이 자작나무 숲까지의 진입로가 탐방객을 한없이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한여름 혹서기거나 한겨울 혹한기에 적어도 한 시간 이상 힘들게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자작나무 숲은 마냥 이상적인 아름다운 힐링의 장소일 수만은 없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의 최고 난관이자 맹점이다.

그 난관을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작나무 숲을 마주할 수있다. 수령 30년에서 50년에 이르는 자작나무가 빼곡한 숲이 역경을 헤치고 올라온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국적인 정경이 시야 가득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 닿으면 이제부터 여행자의 선택에 따라 난이도와 거리가 제각각인 다양한 탐방로를 선택할 수가 있다. 일례로 가장 인기 있는 코스가 (자작나무 코스)로 불리는 제1코스로 0.9km의 거리를 약 5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작나무 숲길을 걸어볼 수가 있다. 다양한 코스가 개설되어 있고, 어려움 없게 탐방할 수 있도록 곳곳에 안내판과 다양한 시설이 고르게 잘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길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좋을듯 싶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2025년 산림청 선정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명품 숲길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 1위에 오른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에게 핏줄을 똑같이하는 친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썩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보에 따르자면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고대로 빼어닮은 아름다운 숲이 경상북도에도 또 하나가 있다.

출생기록부에 따르자면 그 두 개 숲의 탄생과 성장에 관여하고 주도한 곳이 산림청이라는 사실이 일단은 똑같다. 형인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1974년에 출생해 어느덧 나이 50에 이른 중년인 반면에. 동생인 (또다른 자작나무 숲)은 1993년생으로 이제 33세의 한창 청년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러다 보니 수령이 훨씬 앞선 원대리 자작나무 숲의 나무들이 훨씬 거목으로 자라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위용을 뽐내고 있겠지만, 생육 환경이 좋아지고 영양분 공급이 좋아진 때문인지 동생의 자작나무 숲도 비록 수령에서는 한참 뒤지지만, 쑥쑥 자라난 발육 상태가 비교적 좋은 나무들의 경우는 형의 숲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다.

하긴 인간의 경우를 보아도 어려서는 근소한 나이차에서도 신체의 차이가 분명해 지지만, 청년기를 지나면 이십대나 사십대의 신장 차이를 더 이상 느껴보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 동생이 바로 오늘 우리가 찾아가고자 하는 경북 영양의 (죽파리 자작나무 숲)이다. 이제사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자면........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거의 일란성 쌍둥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어떤 면으로 살펴보고 비교해 본다고 하여도,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 지극히 주관적인 내 개인적 판단에서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싶다.

왜? 무엇이 그런지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방문기를 쓰면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길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지금 당장 서둘러 찾아가야만 하는 가장 걷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머지않아 곧 유료화 될 조짐이 심각하게 엿보였습니다. 그러기 전에 꼭 다녀오세요. 다음에 다시 갈때는 유료화가 되었어도 충분히 좋을만한 그런 곳이니까요.’

'그럼 이제 저희와 함께 영양 자작나무 숲길을 걸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검마산 자연휴양림’(영양군 수비면 검마산길 191)에서 ‘영양 자작나무 숲’(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산39-1)까지의 거리를 지도상에서 보면 직선거리로 겨우 1km를 넘는 아주 가까운 지척에 위치해있다. 휴양림이 들어서 있는 계곡의 오른쪽 능선 하나를 넘으면 바로 자작나무 숲에 닿을 수 있는 엎어지면 코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그런 거리다.

그런데 정작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도로를 따라 이동하자면 내비게이션에 나타나는 거리가 얼추 12km에 이르고 차량으로 이동하여 23분이 소요된다고 나온다. 그렇다고 길이 제대로 뚫려있고 노면 상태가 좋으냐 하면 그것도 절대로 아니다. 지방도라고 부르기에 그저 그런 시골 농로 정도의 도로가 곳곳게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한참 새로운 도로 공사가 벌어지고 있기는 하다.

아마도, 이 도로공사가 어느 정도 완공되는 시점에 맞추어 (영양 자작나무 숲)이 유료화가 실시되지 않을까 하고 필자는 거의 확신에 찬 주장을 자신있게 피력할 수 있다. 여러 정황이 거기에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고 보여진다.(금년 가을쯤엔)

1km의 실제 거리를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23분이 걸려 대충 12km의 먼 길을 우회해서 가야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필자가 경북 양양지역을 해남 땅끝마을 만큼이나 멀고도 멀게 느끼게 된 이유라 해야겠다. 거리상은 절반도 채 안되는데, 실제로 접근해 이동해 보면 그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는 오지 중의 오지가 영양. 봉화. 청송 지역이더라는 말이다. 숲에서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야생 동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서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차량을 조심해야 하며, 혹시나 튀어나오는 그 차량이 트럭이나 버스면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를 걱정하게 된다. 그런 우려가 혹시나 더 확대되어서 견인 차량이라던지 중장비라던지 군용차량이나 탱크라도 만나게 되면 언제라도 지옥으로 변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향에도 박달재 터널과 이화령 터널이 뚫린 이후로는 절대 그런 사정의 도로를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검마산 자연휴양림을 오고 가는 길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을 택하든지 저렇게 뻔한 걱정을 하지 않고는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다. 절대로 없다. 혹 산림청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한 반면에 국토 교통부가 좀 게으름을 피운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슬쩍 가져본다.

어쨌거나 오늘 우리는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길) 여행을 떠난다.

휴양림에서 아침 산책을 하고 모닝 커피를 즐기고, 병아리들이 없을 때만 가능해지는 풍족한(?) 아침식사까지 챙기고 나서 외출 준비 겸 배낭에 바리바리 짐을 챙긴다. 짐이래 봤자 일단 캔 맥주 두 개에다 주전부리 과자에다 방울토마토에다가 생수 한 병이 전부지만 말이다.

꼬불꼬불 오지 산길을 어찌어찌 넘어서 죽파리의 (영양 자작나무 숲 힐링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 홍보 전시관을 먼저 찾을 수는 없다. 250m 쯤 떨어져 있는 마을회관 앞마당의 ‘자작나무 숲을 오가는 전기차 운행 사무실’로 가서 선착순 순번에 따르는 승차권을 미리 확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주차장에 대형 관광버스가 있더라니만, 다리를 건너 마을 광장에 도착해 보니 모여서 대기하고 있는 여행자들의 숫자가 만만치가 않다.

이럴때는 눈치껏 잽싸게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불합리한 개고생(?)을 줄일 수 있다.

무작정 승차권 관리 부스로 쫓아가 현 상황에서 얼마쯤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표를 두 장 주시면서 다다음 버스는 탈 수 있을 것이라며, 4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겠다고 안내를 해 주신다.

표를 받으면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두말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금전에 왔건 길을 되돌아 간다. 그러자 태리할망구도 내 뒤를 쫄래쫄래 뒤쫓아 온다. 250m 왔던 길 저편에 있는 (힐링센터)로 되돌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관광버스에서 내린 여행객들로 두 대 정도의 전기차 운행 예약이 만료되었고, 사람들은 꾸역꾸역 계속 몰려들고 있는데, 이곳에는 콘테이너 두 개를 붙여놓은 정도의 대기실이 전부이고, 연실 드나드는 사람이 이어지다 보니 에어컨 작동 상태도 그럭저럭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 무더운 여름 한낮의 시간 40분을 힘겹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조금 떨어진 힐링센터 건물로 이동해서 쉬다가 다시 오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힐링센터 2층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가동 중이고, 1층과 2층의 휴게실 구역은 너른 창으로 외부의 멋진 풍경이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오고, 에어컨 빵빵한 쾌적함에다가 화장실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다가 관계자 직원 외에는 다른 여행객이 한 명도 없다. 다들 뙤약볕 아래 광장의 매표소와 대기실에서 무더위에 시달리며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0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시원하게 푹 쉬다가 5분을 남겨놓고 다시 매표소 주차장으로 향했다.

예정된 시간의 전기차가 이미 들어와서 대기중이고 많은 사람들이 승차를 마쳤으며, 혹시나 여분의 빈자리가 있으면 먼저 타려는 사람들이 서로 밀치고 있었다. 전기차의 맨 뒷줄에 비어있는 바로 우리 자리 때문이었다. 우리는 대기표를 제시하고 당당하게 전기차에 올랐다. 우리가 마지막 승객이었다. 곧바로 전기차가 출발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숲길이라는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주차장에서 난이도가 제법 느껴지는 임도를 따라 한참(40~50분)을 걸어 올라야만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자칫 찾아가는 날이 폭염 가득한 한여름이라면 가히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 아닐까 싶어질 것이다.

실제로 내가 아내와 함께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찾았던 날이 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는 시기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다시 찾아가겠다고 나서기에는 왠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그런 여행지’로 기억에 강하게 남고 말았다.

하여 지금 향하고 있는 오늘 방문 예정인 (영양 자작나무 숲)을 챠밍여사에게 처음 이야기 꺼냈을 때, 예상대로 가장 먼저 되돌아온 대답은 ‘강원도서 실컷 겪어봤잖아? 아름답고 멋지면 뭐해? 도착하면 얼른 내려가고 싶어 라는 생각밖에 안드는데? 그런데 또 자작나무숲이야?’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번엔 완전히 달라. 자작나무 숲의 코 앞까지 힘들게 걷지않고 데려다 줄게.’하고 대답해 주었다.

실제로 그랬다.

(영양 자작나무 숲)의 경우에는 죽파리 마을 자치 운영회에서 주차장에서 숲까지 3.2km 거리를 무료 전기차 운행으로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 실제로 시승 체험을 하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배려이며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죽파리 마을의 관계자분들께 거듭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이 전기차가 지원되기 전까지는 영양 자작나무 숲길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처럼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곡을 건너다니면서 임도 길을 따라 50분에서 1시간 정도 걸어서 올라야만 했다고 한다.

말이 3.2km 거리지, 실제로 전기차를 타고 올라가 보는데도, 꾸불꾸불 구부러진 길의 경사도와 난이도가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어서 많이놀랬다. 간혹 이 길을 걸어서 오르는 체험형 극기 훈련자도 보였지만, 우리에게 인제처럼 여기를 걸어서 오르라고 했다면......... 확신하건데 우리는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길 트래킹을 사전에 일지감치 포기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청정한 계곡을 따라 점점 깊숙한 숲속으로 들어가는 임도는 흡사 미천골 계곡이나 방태산의 계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풍광과 정취가 빼어나다. 수량이 풍부하게 흘러내렸다면 정말로 멋졌을 것이다. 경북 산악지방의 해바다 반복되는 오랜 봄 가뭄의 여파로 그저 쫄쫄 겨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너무나 아쉬울 뿐이다. 그랬음에도 골짜기를 굼이 돌아 올라갈 때마다 서늘하게 다가오는 한기의 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더욱 깊어지는 숲을 물박달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이따금 무리 지어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는 금강소나무 군락이 저마다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금년의 여름이 지나고, 죽파리 힐링센타까지 오는 진입 확장도로 개설이 마무리되고 나면, 아마도 (영양 자작나무 숲길)의 유료화가 확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예상하기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마도 마을 주차장과 자작나무 숲 사이를 연결해주는 바로 이 (전기차 운행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자작나무 숲 관리를 들어 지자체가 입장료를 징수하고, 죽파리 마을 자치회가 전기차 운행으로 마을 공동 수익사업으로 전환을 하거나, 아니면 전기차 운행까지를 포함하는 입장료를 지자체가 책정 징수해서 일부를 마을과 분배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곧 시행될 확정 사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싶을 정도였다.

전기차 운행의 큰 배려 덕분에 우리는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아주 쉽게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을 마주하고 섰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자작나무 숲이지. 감히 말하건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이 바로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다.’ 정녕 나는 지금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뽀얀 자작나무 숲이 목전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자 여행객의 입에서는 연실 진한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자작나무를 왜 ‘숲속의 가인(佳人)’이라 불러야만 했는지가 새삼스럽게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군더더기 하나없이 하늘 끝을 향해 쭉쭉 뻗은 가냘푼 몸매에다 곱고 뽀얀 피부를 보고 있노라니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막 하강하는 선녀의 모습이 아니런가? 그야말로 21세기에도 여전히 넉넉하게 먹힐만한 출중한 비주얼을 갖추고 있는 것이 자작나무 숲이며, 그 숲속 어딘가에 선녀를 꼭 빼닮은 가인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여기 안내판이 설치된 입구에서 진입로이자 다리에 해당하는 나무 데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망대까지 대략 3KM 정도의 산책로와 임도가 이어진다.

주로 1코스에 해당하는 노란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2코스에 해당하는 파란 산책로를 따라 하산하는 루트를 주로 선택한다. 중간중간에 파란 임도가 1코스와 2코스 사이를 자주 연결되는데, 그런 녹색 코스에는 자작나무가 아닌 낙엽송과 박달나무와 단풍나무 등 다른 수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어느 코스를 택할 것인가?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코스라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작나무 숲 전망대가 우리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이 숲의 아름다움과 숲의 싱그러움과 숲의 너그러움과 넉넉함을 찾아 잠시 푸른 자연의 품에서 쉬기 위해 찾아온 길이기 때문이다. 어느 코스가 좋을까도 필요치 않고 어디까지 오를까 하는 마음도 먹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끌고 발길이 따라가는 대로 갈 수 있을 만큼 걸으면서 앉아 쉬기도 하고 필요하면 드러눕기도 하면서 숲을 느껴보고 누려보고 싶은 바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르르 몰려온 방문객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모여서 있다. 두 분의 숲 해설가께서 방문객들을 안내하면서 숲에 관해서, 그리고 이 숲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숲이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내용과 왜 숲을 가까이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들을 시작하고 계신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우리는 그 두 무리의 곁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

평소 그런 분야에도 나름의 관심이 있었는지라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가지고 있고, 더하여 오늘은 그런 안내와 설명마저도 필요치 않은........ 우리 방식의 우리만의 숲 나들이를 하려고 작정을 하고 나선 길이었기 때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가팔라 보이는 자작나무 숲길을 깊숙이 올라간다.

약간 숨이 찰 정도로 걷다가 아무데나 앉아서 쉬기도 하고, 챠밍여사의 무릎 컨디션 체크도 수시로 해가면서 숲길을 오르노라니, 오호라 신선이 놀다 갔다는 소나무 숲과 뽀얀 바위암벽과 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투명한 물이 없어도, 싱그러운 바람결에 연한 녹색의 꽃잎들이 나부끼는 자작나무 숲속 또한 무릉도원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이곳 또한 신선놀음이 가능한 무릉도원이더라!

사진도 찍고, 병아리와 겡구 이바구도 까고(?) 다음엔 어디를 가지 하는 새로운 구상도 해보고, 무더운 날씨 탓에 더 밍밍해지기 전에 캔 맥주부터 마셔 버리기로 한다. 어제 남은 쎈뻬이 과자도 있고 크림 샌드도 있고 방울 토마토도 있다.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듣느라 우리보다 한참 늦게 출발한 여행자 무리가 이어서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간다. 전망대까지 올라가야겠다는 부류와 중간에서 다른 코스로 옮겨 타겠다는 부류가 나뉘는 의견 교환 소리가 우리 귓전까지 들려온다.

우리의 산책이 너무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걸이여서 였을까?

중턱의 갈림길 쯤에 닿으니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무렴 어때? 오늘은 이게 우리 방식의 산책인걸?

샛길을 통해 2코스로 이동을 하고, 아무도 없는 숲길을 호젓하게 걸어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정말로 멋지고 여유롭고 넉넉한 숲속 산책이었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길)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숲길’에 선정된 그곳보다 좋으면 더 좋았지 못할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극히 보편타당한 선에서 필자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말이다.

특히 전기 자동차를 이용한 숲길까지의 적근 방식의 무척이나 훌륭하고 멋진 기억으로 남는다. 그 오가는 과정뿐만이 아니라, 3km가 넘는 그 길의 주변 풍경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원대리에 이 같은 방법의 전기차 운송이 생겨난다 해도, 아마 죽파리 이동 경로의 아름답고 멋진 주변 풍광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작나무 숲에서 이렇게 마냥 좋아만 해도 되는 것 일까?

모든 게 바쁘게만 흘러 온 시대의 탓이라고 슬쩍 발뺌을 해도 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자작나무 숲이라는 것은 오지 자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함부로 쉽게 다가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지역에 주로 무리 지어 사는 나무이며, 더해서 자작나무는 일단 추운 곳에서 잘 자라는 나무라는 것을 전제해야만 한다.

때문에 시인 백석은 <백화(白樺)>란 시에서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 그리고 단감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 산 너머로 평안도 땅이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라고 썼다.

자연 그대로의 자작나무를 있는 그대로 백석은 표현겠했지만, 백석이 바라보았던 그 풍광과 느낌은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영양군 죽파리 자작나무 숲의 경치나 정취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라 생각된다.

백석이 살던 시대가 일제 치하였으며, 백두산자락 평안도라는 절대 오지에 사는 사람의 삶이 어떠했을 것이라 짐작조차 하기 어려우니, 당연히 그 오지의 자작나무 숲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자작나무 숲과는 사뭇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떨칠 수가 없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면서 <닥터 지바고>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베리아 벌판을 먼저 떠올린다는 항간의 조금은 해괴망측한 속설에 실소를 금치 못하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자작나무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잘 자라는 조금은 특별난 수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로 북한 영토의 산악지역에 고르게 분포하여 있으며, 남한에서는 태백, 횡성, 인제 등의 일부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주로 만나 볼 수 있다. 그 또한 대부분이 70년대 중반 이후로 시작된 국토 녹화사업을 활발하게 벌이면서, 쓸모없이 우거지기만 한 잡목 숲을 제거하고 양질의 목재 수급을 위한 우수 수종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일부 산악지역에 북방의 고유 수종인 자작나무를 집단 서식하고 꾸준히 잘 돌봐 길러낸 결과라고 하겠다.

인제군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수산리 응봉산 자작나무 숲과 영양군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정부가 계획하고 자작나무를 심어 길러낸 같은 출생기록부를 가진 '형제 숲'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싶다.

그 중에서도 가장 늦게 조성된 여기 영양 자작나무 숲의 경우, 앞 선 인제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영양 지역에 벌목과 묘목을 식재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금강소나무 숲을 최대한 되살려서 조화를 이루게끔 하는 노력을 더 들인 결과로, 원대리에 비해 수령이 떨어지는 만큼 육중한 나무줄기의 원대한 숲의 위용은 좀 떨어지겠지만, 붉은 속살을 감춘 금강소나무 숲과 뽀얀 속살을 감춘 자작나무 숲이 함께 어우러지며 자연스레 연출해내는 아주 독특한 자연의 미를 찾는 이들에게 맘껏 선사해 주고 있다.

참으로 뭐라고 딱 잘라서 표현하기가 좀 그런........ 아주 멋진 풍광을 말이다.

앞서서 이 숲을 위해 땀과 헌신을 아낌없이 바치신 분들과 지금 여유롭고 넉넉하게 이 곳을 방문하게끔 애써주시는 죽파리 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옷깃을 여미고 한없은 존경과 사랑을 보내드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크게 행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

(영양 자작나무 숲길) 산책이 그렇게도 좋았나?

아니면 이번 여행의 (검마산 자연휴양림)과 (신선계곡 트래킹)과 (영양 자작나무 숲길 산책) 모두가 하나같이 좋았다는 뜻일까?

숲에서 내려와 힐링센터 주차장으로 가던 중에 안내판 앞에서 인증샷을 하나 찍자고 가서 서시라 하니까, 느닷없이 고맙다나 어쨌다나 횡설수설하면서 내게 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대로라면 일단 납작 엎드려 맞절로 화답을 해야만 생존을 허락받을 수 있었겠는데, 하던 짓이 사진을 찍으려는 중이었기에 얼떨결에 그냥 연거푸 셔터를 눌러대기만 한다.

헐!!!!! 시방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여?

이스탄불 (하기야 소피아 성당) 에서도,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도, 피렌체 (두오모)와 로마 (바티칸)에서도 없었던 일을 느닷없이 기습공격처럼 받고나니....... 대략난감 할 밖에.

마흔 한해 전이었던가? 이젠 기억에서 조차 가물가물한 주례 선생님이 맞절하라시기에 얼떨결에 해 본 이후로 처음으로 아내에게서 큰절을 다 받아본다.

뭐가 그렇게 특별했지? 뭐가 그렇게 좋았던 것일까?

차를 몰고 다시 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내내 ‘이번 여행의 모든 게 그렇게도 좋았다’고 한다. 그럼, 이제까지의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그렇게 수도 없이 죽어라 쫓아다녔던 여행들은 뭐가 되는 거지? 그 여행들은 뭐가 부족했던 거지? 이번 여행이 내게도 무척 좋은 여행이었지만, 이게 아무래도 이제부터 뭔가 커다란 숙제를 안고 돌아가는 것같은 아주 쬐끔 찜찜한(?) 이 기분은 또 뭐지?

‘모야 모야.’

어색해진 분위기를 일순에 쇄신 시키는 이 절묘한 타이밍의 카카오 벨소리, 아들일까? 겡구일까? 태리일까?

‘웬일이야? 우리 태리가 카톡을 다 보냈네? 저는 잘 보내고 있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도 잘 지내고 계시라네? 귀국하면 충주 온다고 하네. 사진을 보냈는데 레스토랑 사진이야. 점심을 레스토랑에서 했나봐.’

태리네 가족은 지금 마카오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중.

 

챠밍여사가 태리가 보낸 사진을 잠시 얼굴앞에 들이댄다.

‘이 배신자들!!!!!’

순간, 운전을 하다말고 내가 외쳐대는 소리에 할망구가 깜짝 놀란다.

‘애들 점심 먹는다는데 왜? 할머니 할아버지도 잘 지내시라고 안부까지 보내오는 애를 두고 왜 소릴질러?’

‘사진을 잘 봐. 내가 시방 성질 안부리게 됐어?’

‘사진이 뭘? 아들이 병아리들 잘 챙기고 있구만.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해? 나는 보기 좋기만 한데, 그런데 왜? 도대체 뭐가 문제여?’

‘거기가 시방 어디여? 레스토랑이잖아? 그럼 뭘 먹겠어? 돈가스 스파게티 뭐 그딴 것 먹었을 것 아니야? 태리도 세리도 고기에다 야채 샐러드 먹었을 것 아니야? 지들이 시방 그러면 안되지? 할아버지는 맨날 간장 계란밥이나 짜파게티 남기는 것이나 먹게 만들어 놓고, 엄마 아빠랑은 레스토랑 다니면 안되는 거지? 이 할아버지가 양식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건 배신이여 배신!!!!!!’

‘어이쿠. 난 또 뭐라고? 할아버지가 쪼잔해 가지고...........’

‘내가 뭐가 쪼잔해? 억울하고 분해서 그러는 거지?’

‘그렇게 억울하고 분하면 어디 며느리한테 따져 보시든가? 아마 레스토랑과 메뉴도 겡구(며느리)가 골랐을걸?’

‘겡구가 그런걸 내가 어쨌다고 뭘 따져? 따지길? 겡구가 정했으면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다음에 충주올 때 겡구한테 돈가스 사달라고 하시던가?’

‘이사람이 정말? 내가 이래도 태리 세리 할아버지여. 사도 내가 사야지. 다만....... 사주고 싶어도 내가 물어보면 태리 세리는 돈가스가 아니래잖아? 또 간장계란밥 아니면 짜파게티라니까?’

‘그런걸 어떻게 해? 당신 팔자라면서?’

‘오냐!!!!! 좋다. 병아리 없이 우리끼리 여행 오니까 너무너무 좋다고 당신이 그랬지? 나도 눈물나게 좋아. 그러니까 이참에 아예 병아리 없는 김에 우리도 돈가스 먹으러 가자. 얼른 검색해봐. 영양에서 최고로 맛있는 돈가스 집을 찾아 가서 실컷 먹어보는 거야. 오케이?’

‘정말이야? 나도 당근이지?’

‘우리도 돈가스 먹는 사진 찍어서 태리한테 보내주자.’

"내가 특정 (음식) (숙박) (레져) 등에 관한 집중 기사를 쓰지 않는 이유는.........

여행이 대중화를 넘어서 일상이 되면서부터 이와 연관된 음식문화 레져 숙박 등등의 분야에 엄청난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중 상당 부분인 일종의 (협찬)을 제공 받고서 함당한 응대에 부응하는 글들이 SNS와 잡지와 유튜브 방송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흔히 (내돈내산)을 전면에 내세우는 글 중에까지도 그런 모종의 거래(?)를 감추는 글이 있을 정도이다. 물론 (협찬)이 꼭 부정적이라던가, 그 때문에 글의 본질이 달라지거나 오염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만약에 내가 그런 도움(?)을 받았고, 거기에 연관된 글을 써야 한다면 약간은...... 혹은 어느 정도는 솔직한 내 의중과 상관없거나 동떨어진 표현이나 정보에 관해 다루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내지 못할 것 같은, 완전한 내 생각과 의사를 피력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일절 그런 경우를 사양하고 있다. 때문에 이런저런 여러 제의를 꾸준히 받고는 있지만, 나는 초장에서부터 완곡하게 일절 거절을 해오고 있다.

나는 그저 순수한 자유 기고가로 남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블로그의 초장 어딘가에 분명하게 이미 밝혀 둔 바가 있다. 그것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내가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그 순간까지 거듭 같은 이유와 방법으로 계속 진행형일 것이다."

 

영양 *식당은 퓨전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영양 맛집) 검색을 해서 레스토랑을 찾아냈다.

영양지역에 소위 맛집이라는 곳은 많이 있었지만, 오직 손녀가 보내온 사진때문에 돈가스집이라는 전제를 달고 검색해 보니 의외로 간촐하다 못해 다른 선택이 불필요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돈가스를 먹어야겠다는 결코 흔치않은 일념(?)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우리 거점인 검마산 자연휴양림에서 영양 읍내의 돈가스 집까지는 거리가 23km니까, 왕복 46km라는 소위 일백리 이상을 다녀와야 하는 우리 여행에서는 결코 흔하지 않은 해괴망측한 씨츄에이션임 또한 분명해 보인다. 하필 오늘따라 그넘의 돈가스가 뭐라고?

‘병아리들이 없으니 좋다며?’

‘병아리들 없는 틈을 이용해 이것저것 다 해보자며?’

‘우리가 언제 돈가스를 편하게 먹어보겠어?’

‘거기다가 유명한 맛집이라며?’

‘만약에...... 이렇게 힘들게 찾아갔는데 웨이팅이 있으면?’

‘설마!!!!!?????????’

그래서 꾸역꾸역 이 무더운 날씨에 그 먼길을 기어코 찾아서 갔다.

도로 갓길에 주차를 하고 나니 바로 앞 승용차에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차 안에서 뭐하지?

도로변의 작고 아담한 레스토랑 앞에 아무도 없었다.

조신조신 살며시 다가가 문을 열었는데........ 아뿔싸!!!!!!

웨이팅이 있단다. 예약자 석이 하나 비어 있었고, 방금 들어왔는지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은 테이블이 두 개나 있다. 그리고 우리 앞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앞번호의 웨이팅 손님이었던 것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를 않는 것일까?

30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 무더운 날씨에 따로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장소가 별도로 없다. 막말로 그냥 노천 뙤약볕 아래서 털퍼덕 주저앉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데, 오늘은 땅바닥이 까맣게 그을린 온돌방 구들장이라 마땅히 앉을데도 없다. 평소 우리에겐 20분 정도의 웨이팅이라면 몰라도 그 이상이라면 삼수갑산을 갔다가 다시 오는 한이 있어도 절대 불가인데, 병아리 없는 틈을 노린 돈가스라는 전제가 깔린 마당에 당장 영양에서 다시 찾아 나설 만한 돈가스집이 보이질 않는다.

일단 차에 들어가서 에어컨 켜놓고 나서 방도를 찾아보기로 하고 차로 돌아가서 시동을 건다.

그냥 갈까? 아니면 기다려 볼까?

이럴 때 시간은 지지리도 안가게 마련이다. 이제 겨우 5분이 지났다.

앞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게 보인다. 앞 순번이 지났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다. 그런데 아까 음식이 나오지 않은 테이블이 두 개에다 이 팀까지 치면 세 테이블이 되고, 순서대로 음식이 나올 것이고 먹는 시간을 계산하면 얼추 이십 분이면 되지 않을까? 라면서 부지런히 잔머리를 동원해 시간 계산을 하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린다.

‘푸하하하하하.’ 얼른 들어오시란다. 예약 손님이 한 시간 늦으신다고 해서 그 자리가 났단다. 그럼 10분이 채 안걸렸다.

‘가끔은, 슬픈 예감이 빗나갈 때 생기는 이 희열을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아주 절감을 넘어 통감을 하는 사람이다. 암 통감하고 말고. 통통통감 이라고 알아?’

영양 읍내에 있는 (*식당)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을 요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창의적 메뉴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이다.

대표 시그니쳐 메뉴인 (영양 고추돈가스)는 고추 특유의 매콤한 맛으로 느끼함을 잡아주고, (관우네 사과피자)는 단짠의 조화가 극강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해산물 크림 짬뽕)과 ㅁ9고구마 치즈 돈가스) (스테이크 샐러드) (스테이크 덮밥) (리소토) 등 호화로울 정도로 다양한 메뉴로 특히 젊은 연인이나 여행자들이 충분히 좋아할 만하다는 호평을 받고있는 영양 최고의 맛집 중 한 곳이다.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7개 정도였던 듯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는, 결코 그리 크다거나 럭셔리풍의 레스토랑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전예약을 받고, 주말이면 웨이팅 줄의 길이가 상당하다는 후기들을 볼 수 있었다.

모처럼 병아리가 없는 특별한 날인만큼 거기에 걸맞은 특별한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기에 각자 메뉴를 펼쳐 들고 열심히 나름의 연구를 하면서, 곁눈질로 남의 테이블에 나오는 음식들을 열심히 커닝해 본다.

‘언제 자주 먹어 봤어야지? 세 개 시켜서 나누어 먹으려 했더니 나오는 음식의 양이 상당하네?’

‘각자 골라서 시키고, 음식 나온 것 봐서 부족하다 싶으면 추가하기로 하지 뭐.’

고심 끝에 태리할머니는 (빠네 크림파스타)를 세리할아버지는 (영양 고추돈가스)를 골랐다.

생맥주가 정말로 간절했지만......... 나는 운전을 해야만 하고, 할머니는 혼자서는 참겠단다.

음식이 나왔다.

이게 시방 언제 어디서 보았던 풍경이지?

학창시절 막 등장했던 초대형 분식집이나 학교 앞 2층 경양식 집에 가면 나오던 딱 그런 스프가 나오는데, 그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옛 정취와 은근하게 풍겨오는 아득한 추억의 향기가 그만........... 오감을 황홀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게 시방 음식으로 나온거야? 아니면 우리의 지나간 인생을 회상시켜 주려고 나온거야?'

'그 기분이 어떤것인지는 충분히 알고 공감을 하겠는데, 그때 당신 옆에 있던 년(?)은 내가 아니었잖아? 지금 어떤 *을 말하는거야?'

아.참. 이.할.망.구.가?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 이 할망구를 어쩔꼬? 테이블을 뒤집어 엎고 뛰쳐 나가서 아직 할아버지 승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

그랬다가 직빵으로 그런 사실이 아들에게 날라갈테고, 겡구가 알게 될테고, 앞으로 병아리들을 안보내주게 된다면......... 지금은 절대적으로 국면전환이 먼저 필요할 때다.

'아니라니깐? 난 첫사랑하고 결혼한 사람인데......... 그럼 그 년(?)이 당신 년(?)이었다는 사실인데 기억 안나? 그 돈가스?

'개뿔! 어디 돈가스?'

'짱구 돈가스?'

 

(빠네 크림 파스타)가 먼저 나왔는데, 그윽하게 풍겨나오는 향기 이전에 비주얼이 충격적이었고, 담겨져 있는 음식의 양이 상당하다. 혹시나 2인분인가?

(영양 고추돈가스)가 나왔는데, 아련한 돈가스의 추억을 떠올리기 이전에 토핑으로 올려져 있는 잘게잘린 고추의 깜찍한 비주얼이 먼저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끌며 '혹시나 이거 무척 매운것 아니야?'하는 우려가 먼저 피어 올라온다.

펼쳐 놓고 보니 한상 가득이다.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돈가스 샐러드) 하나 더 추가해야 겠다던 애초의 생각은 당장 떨쳐버리기로 했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식도락의 향연에 빠져들었는데........

생략!

또 생략!!

모조리 생략!!!

무조건 생략!!!!

 

맛있다!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그 체험을 오늘에 또 다시 절실하게 느껴본다.

오기를 잘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

오늘 우리는 제대로 (식.도.락)의 의미를 직접 즐겨보았다. 근데 누가 다 먹은거니?

태리야, 세리야, 이게 다 너희 덕분이야.

병아리들이 없으니 또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구나. 그동안 몰랐어.

'근데 할망구야. 이런 사실을 애들에게 비밀로 해야하니? 아님 이야기 해주어야 하니?'

--- 이렇게 이번 여행기를 이쯤에서 마치면서 곧 다시 새로운 여행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