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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세리의 캠핑) '병아리들 없을 때 우리끼리 캠핑가자.'<검마산 자연휴양림>

by 피안재 2026. 7. 17.

 

‘동전 바꾸면 나 그 돈으로 르무통 운동화 하나만 사줘. 오래전부터 신고 싶었어.’

‘그래? 어차피 동전은 당신 몫이라고 모으는 것이니까 마음대로 해. 그런데 르무통이 뭐야?’

‘노브랜드 회사에서 만드는 것 같은 운동화인데 편하고 튼튼하다고 입소문이 나서 유명 브랜드 보다도 요즘 더 인기야. 일단 신어보면 르무통만의 편안함에 빠지게 되어있어서 앞으로 계속 르무통만 찾게 될 거래. 이미 엄청 유명해졌어. 몰랐어?’

오늘은 아주 어쩌다 들리는 아주 모처럼 은행에 가는 날이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말이다. 내가 그동안 꾸준히 동전을 모아온 휴대용 금고다.

나는 오로지 현금파다. 내 주머니 들어있는 내가 일해서 벌어들인 현금만이 내 재산이라고 믿는다. 현금만 받는 채소 가게, 현금이면 할인해 주는 식당들이 있는 한 나의 현금 우선주의는 아마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카드만 받는 유료주차장, 카드만 받는 시골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이 등장하고, 카드가 있어야 주문이 가능한 카페며 식당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이제는 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낭패를 겪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연말 정산에 이득이 있다나 모라나 하면서부터는 지금의 경우 반반 정도 나누어 사용하는 형편이다.

확실하게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러다 보니 늘 생겨나는 게 동전인데 그동안은 이게 생각보다 많았다. 차량의 대시보드 곳곳이며,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집에 가면 옷 벗으며 책상에 던져놓는 동전의 양이 보기보다 많았다. 수시로 이것들을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아놓고 몇 년에 한 번씩 은행에 가져가 환전을 하는데, 그렇게 완전 꽁똔(?)처럼 불쑥 생겨난 돈을 환전해 받아들고 세어보고 쓰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이젠 은행도 특정 날짜를 정해서 동전 교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님 쓰라고 모았던 동전이었기에 누군가에게서 상품권을 선물 받은 것처럼 쓰기로 한다. 조금은 특별한 저녁을 위해 마트에 들려서 장을 보면서 통삼겹살에 와인도 두 병 산다.

집에 와서 쿠팡에서 보아두었던 할망구 청바지와 블라우스와 모자도 하나 사고, 우리가 모두 죽어라 좋아하는 막창도 주문을 한다.

마지막으로 르무통 싸이트에 들어가서 245mm 여성 운동화를 클릭하고는 네이비 칼러가 좋을까, 아이보리 컬라가 좋을가를 한참 고르다가 결국엔 아이보리 색상이 더 예쁘다는데 합의를 보고 주문 결재를 마쳤다.

 

“편안함이 당신이 두 발에 닿기까지, 르무통(Le Mouton)의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편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에도 편안함을 위한 고민과 집착이 담겨있습니다.”

“오직 편안함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회사의 홍보 문구나 사용자들의 평을 읽어보니 실제로 더 호감이 가고 어떤 기대하는 마음까지 생겨난다.

‘당신도 같이 신어보지 않을래?’

‘나는 늘 안전화를 주로 신어야 하니까 운동화가 거의 필요 없어. 지금 가지고 있는 외출용 신발만도 엄청나서 다 신지도 못할 지경인걸. 나중에 생각해 보자. 당신 신는 거 보고 나서.’

‘자주 안신게 되는거 이참에 다 내다버리고 제대로 된 신발을 이제부터 신어보는 거야? 싫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싫다는 것이 아니라 딱히 바꿔야 하는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말 나는 신발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이 일반 운동화가 아닌 트래킹화나 등산화 쪽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적지 않게 르무통 운동화가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는 몰라고 절대 호락호락 싸지 않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분명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만들어 낸 수육과 육회 한 접시를 놓고 시작은 와인 반병으로, 나머지는 오매불망 소맥으로 우리 둘만의 저녁 향연이 알딸딸하게 무르익고 있던 참에 느닷없이 요란한 ‘모야? 모야?’ 카톡 알림 소리가 울린다. 할머니의 핸디폰에서 (모야? 모야?)가 나오는 경우는 딱 세 경우뿐이다. 첫째는 ‘하나뿐인 우리 아들’짱구고, 둘째는 ‘축복의 여신’이라 적혀있는 겡구(며느리)다. 그리고 셋째는 바로 ‘소중한 우리 큰손녀’ 태리다. 부리나케 널부러져 있던 핸디폰을 찾아서 액정을 살피니 겡구(며느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머니. 내일 택배가 하나 도착할 거예요. 아니라고 거절하실까봐 제가 일부러 무작정 주문하고 충주집으로 배송시켰어요. 마음에 드시면 좋겠는데......... 색깔은 네이비와 아이보리를 두고 고민했는데, 그냥 편하게 막 신으시라고 네이비로 주문했어요. 색이 마음에 안 드시면 얼마든지 반품하셔서 바꿀 수 있어요. 르무통이란 운동화인데요. 주변에서 아주 편한 운동화라고 하기에 무릎 수술하신 어머니한테 꼭 필요하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어요. 늘 감사하고 있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 주셔야 해요?’

태리 할머니 눈자위가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한다.

왜 겡구를 핸디폰 연락처에 ‘축복의 여신’이라고 적어 놓았는지 십분 이해가 된다.

거기다가 어쩌자고 이런...... 실로 믿기 힘든 어처구니가 또 있단 말인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은 날 둘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 말이다.

한날 똑같은 르무통이라니 말이다. 거기다가 기가막히게 현명한 우리 며느리(딸)의 촉이 운동화의 깔맞춤까지 완벽하게 완성 시키는 요술(?)까지 부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당장 이 할망구가 하루아침에 내일부터 르무통 운동화가 한꺼번에 두 켤레씩이나 생기게 되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나는 아이보리, 다른 하나는 네이비 색으로 말이다. 오늘 낮에 우리가 아이보리로 결정했길 망정이지 네이비로 결정 했으면 어쩔뻔 했어?

하여간 우리 겡구의 신기한 요술(?)은 수시로 시어머니를 들었다 놨다 한다. 겡구는 사람을 마구 홀리는 귀신이다. 꼬리가 여덟개 달린 여우다.

하루는 느닷없이 ‘저는 참 복 받은 며느리예요. 어머니 늘 고맙습니다.’라는 요술로 시어머니를 눈물짓게 하더니만, 얼마 전에는 ‘차라리 제가 어머님이랑 결혼할걸 그랬나 봐요. 어머님은 자주 감동을 주시는데 오빠는 처음엔 좀 그러더니 이젠 전혀 감동을 주려고조차 안 해요. 야단쳐 주세요. 곧 애들 데리고 갈께요?’라고 또 요술을 부려 시어머니를 울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오늘은 느닷없이 르무통이다.

헐!!!!!

개뿔!!!!!

너희들은 흔한 고부갈등도 없냐?

‘아들. 그럼 이 옆에 있는 아빠는 뭐냐? 그냥 폼이여? 혹시 우리 사이에 부자갈등이 대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 겡구’ ‘우리 겡구’ 타령을 하는 마님 옆에 앉아서 혼자 연거푸 자작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영 내 속은 차마 말은 못하겠지만 그냥........ 그런게 있다. 아주 쪼매........ 그런게 정말 있다.

‘그래. 난 쪼잔한 할아버지다. 어쩔래?’

야들이 바로 챠밍여사의 핸디폰에 적혀있는 (하나뿐인 아들)과 (축복의 여신)이다. 2026년 7월 중순. 마카오에서 찍은 사진이다.

 

다음날 아침, 챠밍여사와 같이 둘러 볼 현장이 있어서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도 역시나 어제저녁 겡구가 보여준 써프라이즈의 약발이 여전히 남아있다. 겡구 타령과 이비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지 말고 당신 르무통도 하나 사자? 내가 사줄게?’

‘안산다니까?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나중에 당신 신는거 봐서 좋으면 그때 사달라고 할게.’

‘할아버지가 쪼잔하긴? 애들이 미처 아빠꺼 까지 생각 못한 것 같아서 내가 사준다고 하는 거라니까?’

‘쪼잔하다니? 자꾸 사달라고만 졸라대야 쪼잔한거지. 필요가 없어서 안 산다는게 왜 쪼잔한거니?’

그때 챠밍여사의 핸디폰에서 이상한 발신음이 들려왔다. 이 소리는 은행거래를 알리는 효과음이 분명한데?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래? 방금 아들이 돈을 송금했는데, 이상하다 돈 보내올 일이 전혀 없는데? 잘못 보냈나 봐. 끝자리가 백 원 단위까지 있네? 어디 거래처 입금을 잘못 보냈나 봐. 얼른 다시 알려줘야지.’

순간, 할아버지의 뇌리에 섬광처럼 번뜩이는 어떤 불길한(?) 느낌이랄까? 나에게 붙어있는 머피의 법칙과 같은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처럼, 불현듯 뜻 모를 이 슬픈 예감은 또 뭐지?

‘아들이 전화를 안받네? 계속 통화중이래. 좀 가다가 다시 해봐야지.’

그때 또 다시 울려대는 챠밍여사의 핸디폰 알림음이 이번엔 (모야? 모야?)가 아닌가?

내 슬픈 예감으로는 저건 틀림없는 아들이 보낸 메시지 알림음이다.

‘아들이 보낸 돈이 당신 르무통 신발값이래. 밤새 생각해 보았는데 아빠를 빼놓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 무릎 수술 회복만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 겡구의 생각을 미처 사전에 알지 못해서 바로 옆에서 뭐라 할 수가 없었던 거래. 출근하자마자 검색해서 가격 알아보고 딱 그 금액만 자기가 지불한다고 생각하고 보낸데. 그리고 이건 겡구에게도 비밀로 하고 아들이 제 비자금에서 빼서 아빠 운동화 사드리는 거니까, 아빠 서운해하지 마시라고 전해달래.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랬는데?’

대답 대신 핸디폰 화면을 내 얼굴 앞에 확 들여민다.

‘아빠. 이러면 됐지?’

액정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헐!!!!!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사막에 불어오는 모래 폭풍처럼 말이다.

그런 내 표정을 째려보는 엄마의 눈초리가 무척이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또 왜일까?

대신 짧고 우렁찬 목소리로 지금의 내 심정을 솔직하게 전달해 준다. 내가 누구? 이래뵈도 내가 짱구 아빠라니까? 태리 세리의 할아버지여.

‘나도 아이보리 색으로 해줘. 우리 외출할 때 깔마춤 하게.’

'안 산다며? 필요 없다며?'

'아들의 성의가 괴씸해서라도 이럴 땐 아빠가 모르는 척 받아주어야 하는 거야. 아빠와 아들 사이엔 남들이 모르는 그런게 있어.'

<내가 쓰는 글의 내용은 모두 완전한 내돈내산이다. 이런저런 요청을 제법 받고는 있지만, 나는 여전히 완전한 자유기고가이고 싶다. 어떤 협찬도 없었고, 그런 배려에 응하는 답례의 글을 쓸 생각도 아예 없다. 특별한 홍보를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내가 경험하고 좋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편 타당한 상식과 정도와 선에서 성심껏 글로 적어 볼 뿐이다. 우리는 르무통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순수 구매자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우린 르무통 신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할머니 네이비 색은 교회 가신다고 벌써 신고 나가셔서 사진을 찍지 못했음. 그나저나 내가 저걸 언제 신어 보려나? 우린 르무통 신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할머니 네이비 색은 교회 가신다고 벌써 신고 나가셔서 사진을 찍지 못했음. 그나저나 내가 저걸 언제 신어 보려나?

 

아들 가족은 7월 중에 연휴와 연차를 묶어서 동남아 여행을 결정했고, 우리에게 부여된 다음 스케줄은 <추산교회 여름 성경학교>가 순서인데, 그 역시도 우리의 결정 권한은 일체 아니다. 일정이 정해지면 미리 설명하고 알려주어서 태리와 세리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참석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따라 녀석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 성경학교 시즌이 도래했다는 것은 곧바로 (여름방학)이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여름방학)이라는 의미는 곧 할아버지가 어떤 방식이든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7월에도 캠핑장 예약을 두 곳에 해두었다가 스케줄에 안맞는다 판단되어 하나를 이미 사전 해약했고, 중순에 하나가 남아있는 상태다. 8월 중순에도 하나는 미리 확보해 놓은 상태에서, 우리 병아리들의 스케줄에 맞추려고 여전히 계속적으로 다른 좋은 캠핑장들을 섭외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 가족이 7월 중순에 해외를 다녀 온다고 하니, 7월 중순에 예약해둔 자연 휴양림이 결론적으로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페널티 적용되기 전에 먼저 취소를 해야 하겠는데, 성수기 추첨제까지 적용되는 시점이고 보니 아깝기가 그지없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지나치는 말로 툭하고 던져 본다.

‘아들 며느리 쉬라고 그동안 병아리들 데려다 사방 돌아다녔는데, 아들 며느리가 할머니 할아버지 푹 쉬라고 병아리들 데리고 비행기를 타게 되면, 우리도 정말로 뭔가 하면서 푹 쉬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시던가? 뭐 따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병아리들이 멀리 다녀온다고 하니까 괜히........’ 라며 슬그머니 말꼬리를 내려 감춘다.

태리 할머니 촉이 9단이라, 쬐끔만 틈새를 보이면 무차별 공세를 퍼 불 것이 분명하기에 초입에서부터 철저해야만 한다. ‘그나저나 저 예약한 휴양림이 아까워서 어떻게 하지?’ 그것이 문제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저녁에 불쑥 태리 할머니가 뜬금없는 소리를 내놓는다.

‘이젠 <겡구에게 방학을 주자>도 끝낸 마당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방학은 필요하다>를 한 번 해볼까?’라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병아리들 없는 틈에 (이때다) 하고 우리끼리만 어디든 다녀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에이? 병아리들 없이 우리 둘이는 재미 없다면서?’

‘재미를 만들면 되지? 당신 주특기가 그런거잖아? 재미와 사고 치는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가기 싫어?’

‘정말인가 보네? 언제 어디로 갈 생각인데?’

‘병아리들 여행 기간과 맞춰서 아무 때고 좋아. 예약된 일과 맞추어야 하니까 2박3일이면 좋겠고, 지난 주에 다년 온 (다리안 캠핑장) 정말 좋더라. D 구역이 한적하고 숲과 나무 그늘이 더 좋았으니까 거기에 자리 잡고 산책도 하고 계곡에 가서 발도 담그고, 다른 집 아이들 노는 거 지켜보기도 하고...... 데크도 훨씬 크더구만, 그냥 드러누워 쉬고 걷고 소백산 중턱까지 한 번 올라가 봐도 좋겠고, 그곳에 우리끼리 다시 가봐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어. 왜? 자리가 없어? 구하기 어려워?’

‘아니, 아마 평일이 될테니까, C 구역은 어려울지 몰라도 D 구역은 구할 수 있을거야. 그럼 예약해 볼까?’

‘응. 애들 여행기간에 맞춰서 허용되는 대로 예약해 봐. 정해지면 거기에 작업 일정을 조정해 볼 테니까.모처럼 이럴 때 당신의 재주와 능력을 부려봐. 알았지?’

'알았어. 해볼께.'

'우리 둘 뿐이니까 가볍고 심플하게 하면 되잖아. 거기 데크는 훨씬 더 크더라. 거기에 우리가 가진 그 북극곰 텐트 있잖아?(노르디스크 이든 5.0) 작고 하얀 그 텐트에, 이번에 작은 사각형 타프를 폼나게 앞에 쳐 주셨음 좋겠어. 장비 설치는 간단한 필수품 정도로만 하고 편하고 예쁜 캠핑을 제대로 한 번 즐겨보자. 예전에 젊었을때 처럼 말이야. 어때 지금도 여전히 가능하지?'

 

얼추 이런 정도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말씀인데, 그럼. 애브리 타임 오브 코스지. 이런거라면 완전 내 전문 분야가 아니겠어? 맘 푹 놓고 기다려 봐.

기다렸던만큼, 나는 이번에 캠핑은 가되 텐트 치고 어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거든?

그래서 나는 더이상 어떤 검색을 통해서도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고, 그곳에 그런 예약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쨌거나 병아리들 여행 일정에 맞추어 우리도 2박3일 여행 일정을 위해 씩씩하게 출발은 했다.

따로 예비해둔 다른 여행지를 향해서........ 이런 사실을 마님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방금 북단양 IC를 지나쳤어. 지난번에 우리 여기서 고속도로 내렸던 것 아니야?’

‘맞아. 오늘은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단양 IC 통해서 구경시장하고 하나로 마트를 먼저 들리려고?’

‘아니. 우리 지금 (다리안 캠핑장) 가고 있는게 아니야. 당신이 여기 가고 싶다고 말 꺼내기 훨씬 이전에 내가 사전에 예약해 둔 곳이 있었어. 오늘 여행 목적지는 (검마산 자연 휴양림)이야.’

‘내가 더는 사고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었지? 사전에 소상하게 설명해 주면 어디가 덧나니? 왜그래?’

‘지난번에 내가 처음부터 땅끝마을 가자고 했으면 따라 갔겠니?’

‘당연히 죽어도 안따라 갔겠지?’

‘그랬음에도 그 여행이 아주 좋았다면서?’

‘그건 그랬지만........ 그럼 오늘도 또 땅끝마을 같은거야? 도대체 얼마나 먼데?’

‘지난번엔 대전이 담양으로 바뀌고, 담양이 다시 땅끝마을로 바뀐 완전한 사기였지만, 오늘은 사기는 절대 아니야. 대전과 담양 중간에 전주쯤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도대체 그게 어디냐고? 알아야 여기서 내릴지 아닐지 결정을 할거 아니야?’

‘영양에 있는 휴양림이야. 그러니까 예전에 우리가 청옥산 다닐 때, 인근에 청송 봉화 있었지? 거기 근방이야.’

‘그럼 완전 산꼴짜기 깡촌이란 말이네.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꾸불꾸불 산꼭때기 동네 였잖아. 슈퍼도 없고 식당도 없던데 거기에 뭐가 있는데?’

‘숲과 시원한 공기와 맑은 계곡이 있지. 자작나무 숲도 있고. 산책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무척 좋을거야.’

‘자작나무 숲은 강원도서 가봤잖아? 무더운 날에 죽어라 한참 걸어 올라가느라 힘들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제대로 편하게 보여줄려고 온거야. 여기가 훨씬 좋을거야.’

‘가봐서 (다리안 캠핑장) 보다 안좋으면 당장 콜택시 불러서 집에 가버릴거야. 일방적인 사기였으니까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알았어. 그대신 도착할 때까지 더는 딴죽걸기 없기다?’

‘다음부턴 절대 사기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내가 언제 사기를 치니? 사기를 치긴. 어떻게든 좋은 곳에 모시고 가려는 일념 뿐인것이지.’

‘뭐. 그런점은 어느 정도 인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무튼 뭔가 속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분이 아주 더럽다고. 알아? 그러니까 당신이 뭔가 하자거나 어디 가자고 하면 일단 이유 없이 의심하는 마음부터 드는거잖아?’

‘난 그런게 재미있거든. 깜짝 놀래켜 주는게.’

‘어이쿠. 겡구(며느리)는 아들이 그런 써프라이즈가 없어서 재미가 없다는데, 엄마는 늙어서까지 철부지 아빠 때문에 늘 마음 졸이고 이게 뭐니? 아들이 왜 저런 것은 아빠한테 안 배웠나 몰러? 아마 아들도 아빠의 그런면이 싫어서 였을거야. 툭하면 맨날 사고만 치니까.’

‘자꾸 사고 사고 할래? 여기서 이대로 차를 돌리는 사고 한 번 볼껴?’

이런게 우리 일상이거늘, 어쨌거나 더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마침내 우리의 목적지 (검마산 자연 휴양림)에 도착을 했다.

 

차차 이야기를 펼쳐 나가겠지만, 일단 영양은 멀다. 그냥 멀다는 표현 만으로는 부족하단 생각이다.

지도상에 나타나는 거리나 내비게이션 상의 거리는 아주 먼 편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다녀와 본 사람이 오감으로 느끼게 되는 상대적 거리감은 멀어도 아주 멀다. 우리 집이 있는 충주에서 남쪽 땅끝마을과 동쪽 영양중에서 어디가 더 머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없이 영양이 훨씬 더 멀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충주에서 영양까지의 거리는 땅끝마을 까지 거리의 절반도 채 되지 못하는 거리지만, 오감으로 느끼는 거리감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그것은 차차 풀어나가기로 해야겠다.

중앙고속도로를 내려서서 말뿐인 지방도로 꾸불꾸불한 길을 달리면서 혹시나 야생동물이 튀어 나올까 걱정이 아니라 불쑥 반대편에서 언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다른 차량을 조심하면서 다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게 영양이란 동네 거기에는 있기 때문이다.

 

 

<사기라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예쁜 사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말이다.>

(검마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해서 입구의 사무실에 들러 체크인 절차를 밟는다.

입구를 통과해서 초입의 관리실 뒤쪽에 있는 야영장으로 일단 먼저 가서는 차를 세운다.

‘요기 입구의 105번 데크카 우리 자리야. 내려서 먼저 살펴 보기나 하자구?’

하고는 함께 내려서 이런저런 개수작(?)을 열심히 떨어보는데, 얼씨구?????? 야영장 옆 계곡의 물이 거의 없이 바닥이 드러나 있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가?

여행을 떠나오기 전 사나흘간 기습적인 소나기와 폭우가 연일 이어졌었다. 충주를 휘감아 돌아나가는 달래강의 수위가 많이 올라갔고 시뻘건 흙탕물이 흘러내렸다. 강변에 설치었던 텐트들이 급하게 철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그래서 혹시나 검마산 계곡에도 급류가 흘러내려서 일단 수영이나 접근 금지조치가 내려있으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하면서 달려온 길이었다.

그런데 그런 우려가 모두 깨몽이었다니? 관리소에 여쭤보니 근자에 들어서 비가 전혀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해마다 이 시기의 경북 산악지역은 극심한 봄 가뭄에 시달려왔고, 아마도 지금이 그 정정이지 않을까 싶다고 한다. 내링도 모레도 비 예보는 이어지고 있지만, 마른장마가 계속되는가 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한줄기 소나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헐!!!!!

이번 여행 시작부터 조지는 것 아냐? 물고기 잡아서 튀겨 먹는다고 어항이랑 낚시까지 준비해 왔는데.........

숲은 우거졌고 주변 풍광은 아름다운데 정작 계곡에 물이 없다. 부족한게 아니고 아예 말라버렸다고 해야 할 판이다.

적지않게 실망스러운 표정의 챠밍여사를 보자니 느닷없이 엄청난 걱정이 몰려온다.

‘뭐해? 텐트 설치하지 않고? 어쩔 것이여.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텐트부터 쳐 놓고나서 뭔가 고심을 해야하는 거 아니여?’

‘텐트 치기 전에 일단 차에 타 봐. 위쪽에 사방댐이 있으니 한 번 올라가서 계곡의 물사정을 살짝 먼저 살펴보자고.’

다시 시동을 걸고 휴양림 계곡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가는데, 주변 풍경은 몹시 빼어나다. 적당히 한산하고 잘 정리가 되어있는 아늑한 휴양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주변이 다 예쁘게 꾸며져 있네. 당신은 지금 둘러보면서 어떤것이 가장 인상적으로 예쁘게 보여?’

‘가장 예쁜 것은 저기 저쪽 방갈로가 나란히 서있는 건물 3동이 당장 가장 눈에 띄게 예뻐보이네. 그중에서도 가운데 하얀 것이 유독 눈에 딱 쏟아져 들어오는 게 가장 인상적이네.’

‘바로 거게 요즘 한참 새로 설치되고 있는 캐빈이라는 거야. 컨테이너 방갈로처럼 생겼는데 다른 편의 시설은 일체 없고, 텐트 대신 머물 공간만을 제공해 주는 거야. 난방과 에어컨은 있다고 하네. 그러니까 캠핑 장비를 모두 가지고 오되 텐트는 빼도 되는, 비바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두막 방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텐트만 빼는게 어디야? 설치하랴 걷으랴, 거기에다 무게까 얼마야? 엄청 편리하고 유용하겠다. 거기다 예쁘게 만들기까지 했네. 인기 최고겠어?’

‘여기 휴양림에도 작년에서야 설치가 된거야. 점차 늘려가는 추세인데, 당장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지. 한 번 들어가 볼테야?’

‘잠겼겠지. 남의 집을 함부로 어떻게 들어가?’

‘그럼 가까이 가서 겉만이라도 제대로 살펴보기라도 하지 뭐. 담에 우리도 언젠가는 이용할 테니까.’

차를 근처에 세우고 다가가 외부 구경을 이것저것 해보는데 태리 할머니 관심이 상당하다.

‘빨간 건물과 하얀 건물의 구조가 차이가 좀 있네. 나라면 하얀 게 좋겠어. 옆면이 양쪽으로 모두 트여서 환하면서 바람도 통하고 더 깔끔해 보여.’

‘내부도 구경해 볼테야?’

‘잠겼을 거라니까? 앞에 창문을 통해서 쪼끔은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내부도 다르게 되어 있네? 나는 하얀 이 건물이 훨씬 더 마음에 들어. 당신은?’

‘나도 하얀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

‘우리 병아리들 생각하면 당장은 코앞 계곡에 물이 거의 없다는 게 치명적이겠지만, 물놀이가 가능할 정도로만 흐른다면 정말로 즐거운 여행 놀이터가 될 것 같아. 참 잘 만들었다. 너무 좋아 보여.’

‘그래? 그럼 당신 가져. 다음에 병아리들과 함게 오겠다고 생각하면서 실컷 사용해 봐.’

‘잠겨 있는 남의 집을 우리가 무슨수로 사용하니? 얼른 가서 우리 자리에 텐트나 치자니까?’

‘우리 텐트 없어. 안 가져왔어. 오늘 내일은 여기가 당신 텐트야.’ 하면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하얀 2호 캐빈의 잠긴 출입문을 열었다.

‘당신 정말.......... 이걸 언제 예약했어? 정말로 이번 여행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거야?’

‘응. 한참을 고심했봤는데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하얀 여기를 고를 것이라 생각했어.’

‘그걸 어떻게 알고?’

‘41년을 같이 살아 본 사람의 직감이랄까? 내가 누구니? 태리 세리 할아버지야. 들어가 봐. 에어컨부터 켜.’

‘와!!!!! 정말 좋다. 거기다 너무 예뻐.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여기까지 오기를 잘한 것 같아. 수고했어. 여기까지 날 데리고 오느라고.’

'사기꾼이 또 사기친거지 뭐.'


병아리들이 없는 틈을 노려(?)서 작정하고 떠나온 여행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직성이 풀릴까?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병아리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결코 아니다. 아직은 어린 병아리들을 지켜보는 할아버지가 갖는 어떤 안타까움 같은 것이라고 할까? 시간이 조금만 더 흘러서 녀석들이 조금 더 자라면 저절로 해결되겠지만, 그 시기의 세월의 무게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가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언제부턴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병아리들과의 여행에서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산(山)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녀석들의 인생은 주로 도시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쉼과 휴식이 필요하고 심신을 치유하고 싶을 때 푸른 대자연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고 싶은데, 숲과 자연의 싱그러움을 가까이 두자면 산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 태리는 당장 산을 올라도 되겠는데, 동생 세리는 아직 너무 어리다. 일반 등산로는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정비를 한다고 대부분 등산로를 계단화 시켜놓은 현재의 여건으로는 세리에게 무리를 넘어 불가능이다. 산을 가까운 친구처럼 가르쳐 준다면서 자칫 산을 지옥처럼 느끼게 해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계단이 버겁지 않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 이제 녀석들이 조금만 더 자라준다면 산을 체험시켜 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다렸는데. 엉뚱하게 이번엔 할머니가 허리가 나빠지더니 기어코 지난해 무릎 수술까지 받는 뜻밖의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니?

병아리들 성장을 기다리는 사이에 그만 할머니가 먼저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이 삼년 후엔 할아버지도 어떨지는 솔직히는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녀석들 아빠에게 바톤을 넘기자니........ 할아버지가 가진 경험과 준비해둔 계획들까지 아들이 모두 대신해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태리 할머니야. 힘내. 우리 손으로 애들 이끌고 산에 가기로 했잖아. 우리가 이끌려 다녀야 할 정도까지는 포기하면 안돼. 할머니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아직은 잊으면 안돼. 알지? 나는 절대 나 혼자서 병아리들 데리고는 안가. 못가. 내가 옆에서 도울게.’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우리의 여가 시간은 모두 산책과 작은 등산이랄까? 계곡 트래킹을 할 것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태리와 세리를 데리고 흘림골에서 등선대에 올랐다가 주전골로 내려가는 트래킹을 이제는 아득해진 오래전 아름다운 우리들 추억처럼 언젠가는 꼭 다시 하고 싶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병아리들이 없는 틈을 노려서 먹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실컷 먹어보자.

손녀는 둘 뿐인데 너무나 다른 자매의 먹성 때문에 국내 여행에서나 해외 여행에서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굶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커다란 불만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제는 우리의 가족 여행이 단식 고난의 행군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라고 할까?

까짓 이왕 이렇게 된것 병아리들 개의치 말고 편하게 맘껏 실컷 한 번 먹어보자. 거기다 술술 넘어가게 (부어라 마셔라 파티) 한 번 해보자. 다음주엔 병아리들 돌아온다.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찬스가 생기겠니?

맨날, 병아리들이 먹다가 남기는 (간장 계란밥) 아니면 (참치 볶음밥) 또 아니면 (짜파게티)만 먹었잖아?

방울토마토 좀 먹어치웠다가 혼나고, 불루베리 넘보다가 쫓겨나고, 잘 익은 망고도 많은데 왜 세리 너는 생망고를 먹느냐고? 할아버지도 참외 말고 비싸고 맛있는 과일 좀 먹고 싶다고?

그래서 나가서 실컷 사주겠다는데, (강릉 중앙시장)도 싫어, (단양 구경시장)도 싫어, (나트랑 야시장)도 싫어, (푸꾸옥 야시장)도 싫으면 어쩌니? 할아버진 호떡이랑 닭강정이랑 오징어 튀김이랑 먹물 피자가 먹고 싶다니까? 그넘의 철판 아이스크림은 보기도 싫어!!!!!

‘그리니까 그냥 간장 계란밥에 김하고 김치만 주시래니까요?’

그런데 이 녀석들 가만히 보니, 지덜 아빠하고는 호프집에 따라가서 건배도 하고, 카페에서 아빠 커피도 맛보고 이것저것 잘도 먹으면서 따라다니더니만, 왜 할머니한테 오기만 하면 할아버지를 굶기려고 작정들을 하는거니? 할아버지랑 족발집 좀 가자? 소맥 맛보게 해줄께?

병아리들이 없는 틈을 노린 이번 캠핑에서 가장 먼저 해볼 것은 무조건 실컷 먹어보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끼리 캠핑을 다닐때는 오로지 먹기 위해서 다녔다고 해도 무방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이게 뭐니?

처음부터 생각해 두길 이번 여행의 먹거리는 모두 충주에서 직접 골라 공수를 할 생각이었다.

캐빈에 짐을 풀고 테라스에 캠핑 주방을 설치하고 나면 대충 이런 장면이 연출되어 펼쳐질 것이다.

캠핑 버너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지름 43cm의 캠핑용 그리들을 얹어서 뜨겁게 달군다.

그러면서 에피타이저로 준비해 온 (육회) 한 접시를 먼저 가볍게 소맥과 더불어 나누면서 본격적인 저녁 파티를 시작한다.

그리고 옆쪽의 다른 버너에 충주 연수동에서 공수해 온 (밀포 유니베)를 양념을 첨가해 중불로 끓인다.

그리들에 올리브유를 붓고, 아주 잘게 자른 파 한 웅큼을 넣어 파기름을 만든다.

파기름에 달걀 2개을 가지고 프라이를 만들어 따로 접시에 옮겨 놓는다.

불을 중불로 낮추고 충주에서 맛집으로 이름난 집에서 가져 온 (쭈꾸미 볶음)을 넣어 살짝만 볶는다.

식은 밥을 넣고 숟갈과 주걱을 이용해 발알이 으깨질 정도로 열심히 부셔 섞는다.

적당히 섞였을 때, 딸려온 무생채와 콩나무과 열무 김치에다가 우리집 김치를 잘게 잘라서 조금 추가해서 열심히 섞어 볶아준다. 이때는 누룽지를 만들 생각을 가지고 눌러가면서 열심히 볶아준다.

어느 정도 볶아 졌다고 생각되면 불을 줄이고 김가루를 뿌려서 좀 더 섞어준 뒤에 계란 프라이를 위에 얹는 것으로 마침내 쭈꾸미 볶음이 완성된다.

적당하게 끊고 있는 밀포 유나베와 함께 맛난 저녁 식사를 시작하면 된다. 정말로 죽기에 딱 맞는 맛의 향연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것 같다.

거기에 담백하고 상큼한 우리집 태리 할머니표 백김치만 추가하면 완벽한 만찬 완성이다.

부족하면 미쉐린 셰프들도 울고 간다는 (태리 할망구표 김치찌개)가 24시간 대기 중이다.

거기다 비율을 각자 달리하는 무한정의 소맥이면........ ‘태리와 세리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겠는가?

 

BUT.........

그랬는데.........

출발 직전에 연수동 쭈꾸미 집에 포장을 하려고 찾아갔더니만....... 일요일은 휴무란다!!!!

오 마이 갓!

한방에 새 됐다.

개뿔!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도 육회와 밀포 유나베와 왕갈비와 간장갈비를 대신 챙겼다.

먹는만큼 다 먹어치우고 보는 거야.

모자라면 (하나로 마트)가 있잖아?

'대한민국에서 진짜 캠핑은 말이야. (자연 휴양림)에서 시작하고 (하나로 마트)에서 끝이 나는게 정석이야. 알간?'

PS : 요즘 시즌이 (월드컵)과 (윔블던 테니스 대회) 시즌이다.

태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축구와 테니스 덕후다. 덕분엔 이번 캠핑중에도 생방송과 재방송에 열중하느라 열심들을 다했다. 물론 이런 열의의 뒤에는 항상 내기가 따르지만 말이다. 태리할머니는 테니스 (야닉 시너) 축구 (아르헨티나) 팬이고, 세리할아버지는 테니스 (알카라스) 축구 (프랑스) 광팬이다. 결승을 앞둔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물을 먹었고 집에서 저녁 요리를 대접했다. 억한 김에 아말이 메시를 이겨주었으면.......

주말 성수기 이용객이 모두 쑥 빠져나간 일요일 저녁이라 휴양림 전체가 거의 텅 빈 느낌이다.

윗집 캐빈에 이용객이 들어 온 것은 확인 했는데 일절 외부 활동이 없다. 야영장에 캠핑하는 사람도 달랑 한 팀 뿐이다.

이 우거진 숲속 계곡의 자연 휴양림을 몇 사람이 완전 통째로 전세를 내서 즐기고 있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요즘 들어서 이런 아주 특별한 경험이랄까 하는 행운은 절대 그리 호락호락하거나 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더 겸손하고 더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겠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술이 술술 잘 넘어가지 않겠는가?

주변 환경은 신선들이나 살았을법한 무릉도원이지, 우리가 좋아하는 팝 발라드가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있지, 낮에까지 도심에선 절대 느껴볼 수 없었던 싱그러운 소슬바람이 더위를 말끔하게 씻어가 버려주지, 이것저것 메뉴를 바꾸가며 벌이는 우리 둘의 만찬은 오늘따라 또 왜 그리도 맛이 좋은지, 혹여 이러다 술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지?

워낙 외진 곳이라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가 족히 십리길은 되고, 어차피 운전은 못할판에 매점도 없으니 말이다. 이틀 치를 우리 평소 주량에 맞추어 사전에 준비를 했는데도 저절로 술술 넘어가는 통에 은근히 걱정이 될 정도다.

‘태리 할망구야. 좋지? 병아리들 없다고 이렇게 세상이 달라져 보이냐? 하긴 이게 원래 우리 모습이었지?’

‘그게 하마 언제쩍 이야기여? 좋아. 그중에서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아. 난 지금 무척 행복하다니까?’

‘병아리들 없으니까 이런 즐거운 시간도 있기는 한데,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니까 또 좀 그렇지? 데리고 왔었어도 좋았을 텐데.’

‘왜 또 이 좋은 분위기를 깰려 하는거야? 아들 며느리가 더 좋은데 데려갔는데 왜 자꾸 걱정을 해? 지덜끼리 잘 보내고 있겠지. 이럴 땐 우리도 냉정하게 우리끼리 더 챙기고 더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보는 거야. 애들 생각은 오늘 내일은 잠시 접어두라니까?’

‘생각은 접었는데........ 마음이 오늘 새벽에 떠났으니 가기는 잘 갔는지가 궁금하대잖아.’

‘그래서 아들은 소용이 없다니까? 우리는 자나 깨나 지들 걱정할까봐 수시로 소식을 전해주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뻔히 걱정할 것 알면서도 카톡 한번 없잖아? 겡구가 애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으면 저라도 옆에서......... 그러니까 이제부터 당신도 신경 꺼.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꺼니 하라니까? 대신 이제부터 나나 더 잘 챙겨. 나 술기운이 슬슬 올라오는 것같아. 그러니까 나 한테나 신경 쓰셔?’

그렇게 허툰 푸념을 막 늘어놓고 있었을 때.......... (모야? 모야?) 알림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모야모야는 할망구 핸디폰에서나 울리지, 이제껏 내 핸디폰에서 울려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들일까? 아님 겡구일까? 태리는 잠들었을테니 말이다.

순간, 방금전까지 찌푸리고 한탄 가득한 푸념을 마구 늘어놓던 태리 할망구는 이제 어디가고 없다.

‘흐메. 요 이쁜 것 좀 봐. 여시여 여시. 우리 애들 잘 도착해서 즐겁게 잘 보내고 있네. 할머닌 안심!’

‘시방 할머니만 안심이면 되는거냐? 난 안 보여줘?’

‘아이고 이뻐 죽겠어. 기다려. 동영상이라 끝날 때까지 조금만 더 보고 나서 카톡으로 보내줄게. 우리 아들도 훤칠하지만 우리 겡구가 유난히 즐겁고 이뻐 보이네. 얘 좀 봐? 어머. 우리 겡구가 인디안 처녀처럼 머리를 다 땋고 갔네? 여전히 아가씨처럼 이쁘다.’

‘어디 봐. 우리 겡구가 인디안 공주가 되었다고? 에미가 머리를 땋어? 옛날 처럼? 어디?’

‘기다려. 보내 준다니까?’

'먼저 보내주고 천천히 보면 안되는거니?'

내가 가진 캠핑장비는 우리 아파트 다용도실과 사무실 창고에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텐트처럼 부피가 크고 무게가 나가거나 동계용품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는 건 무조건 창고로 가고, 러그나 이불이나 담요와 주방용품과 아이스박스는 아파트에 보관한다. 캠핑 테이블 한 세트와 예쁜 조명 기구 몇 개는 항상 베란다에 상설로 설치되어 있다. 언제나 병아리들이 할머니 집에 오면 노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캠핑 장소가 (다리안 캠핑장 D 구역) 이라고 전제(사기행위)하고 시작하였기에, 챠밍여사는 손바닥만한 티피텐트(노르디스크 이든 5.0)에다가, 베란다에 설치되었던 테이블 세트 하나에다, 네이처 하이크 사각 타프만 가지고 가면 씸플한 캠핑이 완성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나 꺼내서 싣고 가면서 전통시장이나 하나로 마트에 들리기만 하게 되면 그깟 이틀 살림살이 먹거리쯤이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진짜 캠핑장은 경북 영양의 (검마산 자연휴양림 캐빈)이 아니었던가. 캐빈은 텐트와 타프가 필요치 않은 방갈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따져본다면 캐빈이 준비되어있는 만큼, 준비해야 하는 필수 살림살이가 팍 줄어들었어야 만 되는 것이다. 챠밍여사가 생각하고 있는 최소한의 장비에서 텐트와 타프까지 필요 없게 된다면, 쉽게 말해서 그냥 덮고 잘 것과 먹을 것만 가져가면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텐트와 타프를 제외했음에도 짐은 별반 그렇게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텐트는 손바닥만 한데 굳이 왜 운동장만한 러그(깔판)를 가지고 간다는 거야? 이렇게 저렇게 두 번씩이나 접어서 그걸 꼭 깔아야만 하겠어? 그냥 간단하게 가자는데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고 그냥 가져가 보는거야. 텐트랑 타프가 빠졌으니 다른 짐도 별로 없잖아?’

‘병아리들도 없는데 왜 랜턴을 저렇게 많이 가져 가려는거야? 우리가 애들이니? 이쁜짓 안해도 된다니까?’

‘그래도 캠핑이잖아. 좋아. 그럼 다 빼고 랜턴은 쌍둥이 저거 두 개만 가지고 가자.’

장소가 바뀐다는 것을 모르는 마눌님은 남의 속 사정도 모르면서 벌써 저렇게 짐 챙기는 것부터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온다. 그냥 확 불어버릴까? 거기가 아니라고 말이다.

‘할망구야. 북극곰 텐트가 아니라 캐빈이란 말이여. 캐빈. 그냥 좀 냅두면 안 되겠니? 이게 다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라구? 시방 이게 나 하나 좋자고 이러는 게 절대 아니란 말이야?’

새하얀 2번 캐빈의 전면 창은 상당히 크고 넓다. 외부의 전망이 그대로 밀려 들어와서 실내와 하나처럼 연결된다. 그 창문 앞에 커다란 러그를 깔면 그야말로 숲속 별장 앞마당에 예쁘게 잔디가 깔린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반듯이 필요한 것이다. 러그 중간에 창가로 티테이블 삼아 하나 더 설치하면 커피도 마시고 윔블던 테니스 재방도 보고, 마주 보고 눈 맞춤도 하고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엔 캠핑 테이블을 세 개나 챙겨두었다. 테라스 주방에 두 개가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실내 창가에도 하나 낮게 설치해서 의자 없이 써 보려고 말이다.

거기다가 그게 전부면 말도 안꺼낸다.

동계 캠핑용 대형 에어 침대도 힘들여 꺼내왔다. 에어컨 바람이 실내 중간쯤에 불어서 내릴 테니까, 에어컨 아래 벽을 의지하고, 두께가 거의 우리 집 침대만큼이나 되는 푹신한 에어 침대를 설치해 허리와 무릎이 불편한 할망구를 조금이라도 편하게끔 숙면을 취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한동안 우리 캠핑 필수 애용품이었으나 음식의 양 조절이 힘들다는 이유로 방출당했던 직경 43cm의 그리들도 이번에 혼날 각오를 하고 다시 꺼내서 가져왔다. 10년 이상을 창고에서 방치되던 숯불 화덕과 숯탄도 몰래 챙겨 실었단 말이다. 이소가스 버너만도 세 개나 따로 가져왔다. 거기다가 모처럼 등산용 스틱도 3개나 챙겨왔다.(나는 평소 스틱을 안 쓰는 편이지만, 마눌님이 쓰시게 만들기 위해 하나를 빼놓고 세 개만 가져왔다.) 민물 낚시대 작은 것 3개 있지, 플라스틱 어항 2개 가져왔지, 이런저런 평소 안 쓰는 장비들을 ‘혹시나’ ‘만약을 위해서’ 바리바리 챙겨 싸 들고왔던 것이다. 텐트와 타프가 빠지면 뭐해? 짐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걸 말이다.

그래도 그게 어디여? 여기에 에르젠 대형 텐트와 티케 타프가 더해진다고 생각해 봐? 그먕 미치는 거지 뭐.

 

그랬는데........ 정말로 그럴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다 개뿔이었으니 말이다.

상황을 인식하고 휴양림 캐빈을 둘러보고 전체적인 파악이 끝난 태리할머니가, 차량 트렁크를 열고 짐 파악에 들어갔다. 그동안 함께한 캠핑 이력이 얼마인데, 뭐 그냥 멀리서 탁 보기만 해도 할아버지가 무슨 꿍꿍이로 뭐 뭐를 가져왔는지 순식간에 파악이 끝이난다.

‘저게 다 뭐니? 내가 뭐랬어? 그냥 간단하게 씸플하게 있다고 오자고 했잖아. 그런데 저게 다 뭐니?’

당장 칭찬 받은 것은 러그 하나 뿐이다.

커다란 창문 아래 너른 러그를 딱 펼치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다. 침대고 뭐고 다 필요 없단다. 러그 위에 테이블 설치 금지, 테이블 옆에 선반 만들어 랜턴 켜서 폼 잡는 것도 금지, 에어 침대는 아예 보자마자 절대 금지라고 대못을 쾅쾅 박는다.

그냥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러그를 시골집 멍석 삼아서 이리저리 나뒹굴면서 담요로 배만 덮고 편하게 그냥 주무신다고 한다. 나머지는 일절 다 금지다. 그게 싫으면 나보고 밖에 나가서 자라고 한다. 그래서 실내엔 러그만 깔고 옷 보따리와 담요 보따리만 던져놓고 나니 캠핑 잠자리 설치 준비 끝!!!!!

출입문 밖 테라스 주방에 캠핑 테이블을 두 개 설치한 것은 오히려 큰 칭찬을 받았다. 여러모로 편하고 효율적이라나 모라나? 이왕 가져 왔다고 하니 갈빗살은 숯불에 구워 먹어도 좋겠다고 하고, 육회를 몰래 사전 준비한 것은 칭찬을 받았다.

잔득 꺼내놨던 여타 장비들이 모두 퇴짜를 맞고 다시 트렁크에 들어가 실리고 만다.

‘저건 또 뭐니. 사람이 여기 우리 둘뿐이고, 병아리들은 시방 여기 없는데 쓰잘데 없이 저건 또 왜 가져왔어?’

그 지적은 모양이 다른 의자가 두 개가 쌓아 놓은 짐 사이에 툭 삐져 나왔다가 들킨 것이다.

‘의자가 네 개면 무조건 두 개는 우리 병아리들 것인가 뭐? 그런 고정관념을 버려. 난 또 계곡에 물이 많이 흐르면 낮에 의자를 계곡물에 담궈 놓고 커피와 과일이라도 먹어보려고 그래서 추가로 가져온 것이지?’

‘괜히 개폼 잡지 말자고 그랬지? 물에 들어 가고 싶으면 지금 깔고 앉아있는 의자를 빼서 들고 가면 되지, 무슨 실내용 실외용 의자가 따로 필요해? 하여간 개폼은 무척 좋아해요? 그러지 좀 말라니까?’

삐져나온 의자 밑에 깔려있는 야전 침대는 아직 미처 발견을 못하고 있다. 물가 그늘에 펼쳐서 낮잠이라도 자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우리집에 야전 침대가 하나뿐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두 개다. 그래서 꺼내 올 때마다 혹시나 색깔이 다른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행여 들킬까 봐 여간 조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다 좀 커다란 안락 의자도 두 개나 있는데, 부피도 좀 차지하고 또 혼날까봐 아직 한 번도 가지고 나와 써보질 못했다.

‘가끔은 그러고 싶을 때가 있는 거라니까? 특히 손녀들과 다니려면 그런 이색적인 분위기에 맞게 적응하는 법도 미리 연습을 해두어야 한다니까?’

‘개뿔. 하여간 그넘의 병아리 타령은? 우리 병아리들은 날 닮아서 간단하고 실리적이고 편한걸 좋아한다구요. 그런 이유와 핑계로 뭘 더 어떻게 가져왔는지 어디 지금부터 가져온 짐 조사를 한 번 해볼까?’

‘이 사람이? 그건 월권이여. 개인 프라이버시는 물론 남의 신성한 고유 영역 침범이라고? 장비 관리는 어디까지나 내 영역이라니까?’

서둘러 쫓아가서 널부러진 짐들을 대충 트렁크 안에 집어 던져넣고 얼른 문을 쾅하고 닫아 버린다.

‘나 모르게 더 사들인 장비가 숨겨 있는 것 아니야?’

‘이 사람이 보자보자하니까 정말? 내가 몰래 더 사들인 장비가 있으면 이시간부터 태리 세리 할아버지가 아니다. 병아리들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니까? 이제부턴 있는 거 덜어 내면 덜어냈지 더 사들이는 일은 절대로 없어.’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내가 누구니? 세리 할아버지야. 그럼 믿는 척이라도 해 주어야지?’

‘개뿔. 어쩜 저렇게 점점 뻔뻔스러워질 수가 있는거니? 헐!!!!! 세리 말대로 정말 어이가 없네.’

어디까지 어떻게 있었는지 기억에 없는데 잠이 들었었고, 밖이 아주 캄캄한 시간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하지 채 새벽 4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다.

잠이 깬 이유는 바로 옆에서 코를 골며 한참 깊은 잠에 떨어져 있는 태리 할망구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잠자고 있는 자세가 완벽한 T자 형태가 아닌가. 에어컨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실내는 선선했는데 다행히도 우리 모두 담요로 배는 제대로 덮고 자고 있었다. 살며시 화장실을 다녀와도 할망구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휴! 이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근자에 들어서 챠밍여사가 편하게 푹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피로가 누적되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정이 견디다 못하면 처방받은 약의 도움을 받는 지경이었다. 한동안‘푹 좀 자보고 싶어’를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였다. 지난달 캠핑에서도 그랬었다.

그런데 오늘 이게 무슨 일인가? 이렇게 깊은 잠을 곤하게 자는 것도 모처럼일뿐더러 내가 깨었을 정도로 코까지 좀 심할 정도로 골며 잠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어제나 그제와 오늘 아침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무엇이 아내를 이렇게 편안한 잠에 빠지게 만들어 준 것일까?’

‘설마 이게 러그 때문은 아니겠지? 마구 나뒹굴며 자도 무방하겠고, 푹신한 침대보다 이런 적당한 딱딱함도 혹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집에 돌아가면 침대 위치도 바꿔서 옮겨보고 까는 이부자리도 바꿔봐야겠다.’

말려있는 담요를 풀어 당겨서 새로 덮어주는데도 여전히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난 이제부터 뭘하지? 밖이 아직 캄캄하니 산책을 나갈 수도 없고 말이다.

가만, 오늘이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이 있는 날이 아닌가? 태리할머니가 성원하는 야닉 시너랑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단식 결승전을 벌이는 날이다. 내가 성원을 보내는 카를로스 알카라스는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참 진행 중일 것이다. 탭을 켜서 찾아보니 4세트가 진행 중인데 현재는 시너가 2대1로 앞서고 있는데 여전히 막상막하라고 해야만 하겠다.

소리를 줄여놓고 엎드려서 실시간 결승전을 관람한다. 처절한 혈투가 게속 된 끝에 결국엔 시너가 3대1로 승리하면서 윔블던 2연패를 달성했다. 할망구를 대신하여 진심을 가득 담아서 축하를 전한다. ‘

테니스 결승전이 종료됨에 맞추어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새벽 미명에서 깨어나는 숲의 전경은 무척이나 신성하고 아름답다. 매일 반복하듯 찾아오는 아침이지만, 지금 어떤 소중하고 고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런 아침을 우리는 사는 동안 몇 번이나 마주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상념과 생각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아침을 기다리면서 이제는 월드컵 토너먼트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는데, 멀리 숲 위로 아침 햇살이 여운처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즈음에서야 챠밍여사가 잠에서 깨어난다.

어제 저녁에 평상시보다 음주를 좀 과하게 했던 탓도 있겠지만, 정말 세상모르고 푹 잤다고 한다. 좀 더 자라고 권했지만 켜져 있는 탭을 보더니 대뜸 테니스 소식을 묻는다.

그래서 유튜브 프로그램을 뒤져서 방금 끝난 (윔블던 테니스 결승전 하이라이트 모음)을 찾아냈더니 런닝타임 21분으로 편집된 동영상이 있었다. 플레이를 해서 화면을 키운 후에 챠밍여서 앞에 설치해 준다.

‘시너가 우승을 했는데, 아슬아슬한 박빙 승리였어. 하이라이트로 보고 있어. 난 아침 산책하고 올게.’

이 너르고 깊은 휴양림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곤 나 하나뿐이다.

지금 (검마산 휴양림)을 차지한 사람은 나다. 내 전원 별장이 바로 여기다.

휴양림의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리면서 아침 산책을 하는데, 유독 캐빈 바로 건너편에 있는 취사장이 새롭게 눈에 띈다. 살며시 다가가서 가만히 살펴보자니 조금은 신기한 듯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다. 앙증맞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 취사장은 정확히 정사각형 구도로 구역이 따로 구분되어지는 형대로 만들어져 있다. 가운데 수도가 네 개가 매달린 설거지 데크가 싱크대처럼 만들어져 타일로 마감되어있고, 여기를 둘러서서 동서남북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뉜 목재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얼핏 떠오른 생각에 이 네 개의 목재 데크에 각각 네 개의 가스렌지를 올려놓고, 주방 그릇과 요리 재료들을 가져다 놓고, 하나에서 할머니가 요리 강사처럼 요리 설명과 시범을 진행하고, 나머지를 차지한 태리와 세리와 할아버지가 각자의 손맛을 자랑하는 요리 실습실로 사용하기에 딱, 그러니까 안성맞춤일 것 이라는 실로 기발한 생각이 언뜻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무슨 요리를 하지? 스파게티를 할까? 간장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볼까? 살짝 화상 때문에 위험하긴 하지만 온갖 재료들을 모조리 가져와서 튀김 요리를 해볼까? 그럼 할아버진 그 전에 피라미 잡으러 다녀와야겠네?

개뿔!

당장 곁에 없는 병아리 생각은 또 왜? 내일까지는 하지 않기로 해놓고 말이다.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는데 별로 재미가 없다. 거의 말라버린 도랑만 보이고, 있어야 할 물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허탈한 마음으로 캐빈으로 돌아와 코펠에 물을 끊이려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모닝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챠밍여사가 나와서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뒷목덜미를 잡고 조금 뻐근하다고 하는데도 표정이 무척이나 밝다.

‘우리가 어제 제법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당신은 속이 불편해? 아침에 김치찌개 끓여줄까? 속 풀으라고?’

‘해장술 더 마시라고 찌개 끓여주겠다는 것 아니야?’

‘더 마시고 싶으면 더 마셔? 이렇게 좋은데 나와서 아침이 무슨 상관이야? 김치찌개 끓여줄게. 소시지도 있고 계란 후라이도 가능하고.’

‘안돼. 운전해서 다녀올 데가 있어. 그런데 잠은 잘 잤어? 좀 개운해?’

‘응. 엄청 잘잤어.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았는걸? 나 심하게 코곯진 않았어?’

‘곯았어. 아주 심하게, 덕분에 내가 잠에서 깼어. 그래도 잘 자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푹 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정말 세상모르고 잤어. 베개가 안 맞았는지 목이 조금 뻐근한 것만 빼고는 오늘 아침 컨디션 최고야. 고마워. 여기에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 땡큐야.’

‘쉬다가 아침은 나가서 간단하게 먹어도 괜찮아. 모닝 커피나 마시고 그냥 편하게 쉬어.’

‘안돼. 오늘 트래킹 간다고 안했어? 그럼 아침을 꼭 챙겨 먹어야 해. 일단 커피부터 마시고 나서 김치찌개는 금방 할 수 있어.’

‘햇반은 숲속 도서관에 전자렌지가 있더라고. 산책길에 확인했어. 내가 다녀올게.’

‘그럼 아침 먹고 나서 몇 시에 나갈 거야?’

‘정해진 시간은 없어. 그냥 당신 나가고 싶을 때 가면 돼. 가기 싫으면 안나가고 여기서 낮잠을 자도 되고.’

‘아니야. 갈 거야. 나 운동 해야만 한다니까? 우리 병아리들 데리고 여행 다니려면 부지런히 하체 단련 훈련 해야 한다니까?’

‘내일 까지는 병아리 이야기 하지 말라니까?’

‘아 참. 그랬지. 그런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 병아리들 오늘은 또 뭐하려나?’

‘카톡 사진이 오늘중에 또 오겠지?’

‘그치?’

--- 감사합니다. 다음에서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무더위에 모두 건강하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