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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우리 끼리 오니까 너무 좋다. 그치?" <신선계곡 트래킹>

by 피안재 2026. 7. 23.

‘힘들기만 한 산을 왜 그렇게 오르십니까?’라고 산을 자주 찾는 사람에게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요.’

이를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 해야할지 아니면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 해야할지 솔직히 필자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등산 업계에서는 예전부터 하나의 정설(定說)처럼 전해 내려오는 아주 유명한 일화로, 학창시절 내가 출전했던 교내 등산대회의 필기시험에까지 출제된 주관식 문제이기도 했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오르면 거기에 무엇이 있습니까?’

‘정복했다는 성취감이 있지요. 그것은 산 정상을 올라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고 나름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얼핏,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했던 영국의 등산가 힐러리경이 그날 정상에서 느꼈을 감회가 바로 그랬을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성취감이나 정복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세계 최고의 몇 개 봉우리를 연속 등반에 성공했다는 등, 무산소 등반에 성공했다는 등의 세적적 명산의 등반정복이 해외 토픽이이나 핫 이슈로 자주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대단한 화제꺼리가 되었었다.

하여, 등산(登山)하면 전대미문의 고봉을 정복하거나, 난공불락의 루트를 개척했다거나, 초고속으로 또는 단독으로 올랐다는 기록 경쟁으로 조금은 퇴색 내지는 변질되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에베레스트나 k2 고봉만이 등산이 아니라 북한산 한라산도 등산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동네 남산이나 뒷산도 등산 아니냐는 반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때 대한민국의 해괴한 유행이 복장과 장비는 마치 에베레스트 등반가 수준으로 갖추고서는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서 떼를 지어 이름난 관광지의 야산으로 몰려다니는 전문 등산 모임(등산꾼)까지 생겨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정복과 성취는 산의 정복 보다는 유흥에 재미를 둔 좀 다른 성향(?)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등산을 생각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산이란 산은 그것이 몽블랑이던 백두산이던 월악산이던, 도시마다 사람들이 수월하게 찾아가는 약수터 뒷산이나 도시마다 있는 남산이나, 산이란 산에는 어디든지 반듯이 깔딱고개가 있더라는 말이다. 난이도와 거리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산(山)은 어디에 있던, 유명하던, 유명하지 않던, 무조건 깔딱고개는 있고 그때마다 꽤나 힘이 드는 고행이더라는 이야기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 흐름도 바뀌었다.

‘산을 꼭 꼭대기까지 죽어라 올라가야만 등산이야? 정상에서 보는 360도 파노라마가 예술이라고? 그럼 지들이 그 산을 제대로 다 보긴 했어? 달랑 올라갔다 내려온 길과 봉우리 풍경밖에 보지 못했잖아? 산은 그게 다가 아니야.’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산의 정상을 꼭 고집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산의 정복이 아니라 그 산의 곳곳에 숨겨진 멋진 비경과 대자연이 인간에게 선물처럼 주는 푸르름과 휴식과 낭만이 목적이 되었다. 점차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여행문화로 이끌어 나갔다.

알프스 산은 수많은 등반가들에게 이미 정복이 되었지만, 더 이상 정상을 고집하지 않는 그들은 그 알프스를 품고 있는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국경을 산자락으로 넘나들며 최소 1주일의 여정으로 다양하게 개척된 여러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산장에서 묵었다가 다시 걸으면서 알프스의 숨은 비경과 그곳에 의지하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그들만의 산행을 계속한다. 유명한 <몽블랑 트래킹>이 바로 그것이다.

못지않게 유명하고 내가 간절히 열망하고 있는 알프스 산맥 남부 끝자락인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초의 <트레치메 트래킹> 또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은 워낙 광활하고 수많은 코스가 개척되어 있어서, 짧게는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는 걷고 또 걷고, 죽을 때까지 걷기에 좋은 곳이라 하겠다. 겨울은 스키장으로 나머지 세 계절은 최고의 트래킹 명소로 실로 엄청난 여행객들이 사계절 내내 이곳을 찾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트래커(trekker)라 부르고, 이처럼 산의 정상 등정이 목적이 아니라 산의 곳곳을 산책이나 도보여행 하듯이 찾아 걸으면서 풍광과 자연의 정취를 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등산을 트래킹(trekking)이라고 한다.

이런 트래킹의 어원은 지극히 단순하게 ‘먼 길을 소달구지를 타고 느릿느릿 여행한다’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

사전에서는 트래킹을 등산과 하이킹의 중간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나는 등산과 산책의 중간에 있는 도보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그런 도보여행에는 필히 야영 생활(캠핑)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트래킹이라 하겠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우리는(챠밍여사와 나) 이제 등산보다 트래킹을 더 많이 즐기는 트래커라고 해야겠다. 내면엔 분명 나이탓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 트래킹 중에서도 조금 색다른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아주 예전에 우리는 개념도 없이 이 놀이를 즐기곤 했는데, 그것이 세월이 한참 흐르더니, 요즘들어 동호회까지 생겨나고 유튜브 방송에서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하는 ‘워터 트래킹’이라는 것이 있는데, 흔한 표현으로 다시 말하자면 계곡을 탐험하듯 걸어 오르거나 내리면서 소(沼)나 담(潭)을 만나면 그대로 빠져서 물길을 걷거나 아니면 헤엄을 쳐서 건넌 후에 계속 물길을 가는 ‘계곡 트래킹’ 이라고 흔히들 부른다.

그야말로 여름은 계곡 트래킹의 최적기 시즌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널리 퍼져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현재에 아침가리 계곡을 비롯해, 지리산 뱀사골 계곡, 산척 덕풍계곡, 문경 대야산 용추계곡, 주왕산 절골계곡, 정선 적산기 계곡, 울진의 왕피천계곡 등이 절대적인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격세지감이라할까?

시대가 변하고 말이 좋아져서 ‘계곡 트래킹’이지, 청소년 시절부터 등산이나 캠핑을 무척이나 즐겼던 나에게 있어서 ‘계곡 트래킹’은 그냥 여행 중의 일부이자 그냥 좀 색다른 놀이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챠밍여사와 함께 처음으로 ‘계곡 트래킹’을 즐긴 것이 정확히 1984년 이었으니, 까짓 누구처럼 원조라고는 못하겠지만, 초창기 개척자(?)쯤엔 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우리가 누비고 다녔던 장소야말로 오리지널 계곡 트래킹의 가히 신화적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너무나 환경이 변해서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할 테니 말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그 1984년의 설악산과 월악산의 생생한 추억이 기억속에 소중하게 남아있다. 차차 그 이야기도 해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오늘 우리는 울진 백암산(白巖山) 신선계곡(神仙溪谷)으로 트래킹을 하러간다.

하지만, 신선계곡의 이름난 트래킹 코스를 완주하겠다는 목표는 애초부터 어디에도 없다. 대충 십 년 전이라면 어쨌거나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그넘의 야속한 세월이 할퀴고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는 나에게도 다소 무리일 수 있겠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챠밍여사가 지난해 무릎 수술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회복되고 있는중이다. 통증은 줄어들었지만, 한번 떠나간 무릎의 근력은 좀체 되돌아오지를 않고 있다. 그래서 근력 강화훈련 내지는 무릎상태 점검과 진단 차원에서 모처럼 마음먹고 떠나 볼 참이다.

할머니가 우리(태리. 세리. 할아버지)를 한계령 흘림골까지 태워다 주고, 오색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오색에서 온천도 즐기고 시간이 많이 지났을 무렵 주전골의 평탄한 데크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주었더니만,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시겠단다. 다녀와서 인생의 마지막 트래킹이 되는 한이 있어도 흘림골 트래킹만은 할머니가 병아리들 앞장서서 이끌어 가셔야만 하시겠단다. 그래서 요즘 무릎 근력 강화에 신경을 부쩍 쓰시고 계신다.

우리 병아리들의 (흘림골 트래킹)이나 두타산 무릉계곡 (베틀바위 트래킹)은 모두 할망구의 무릎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자니 어쩌겠어? 어떻게든 회복 시켜서 원래대로 만들어 놔아 하지 않겠어? 뭐라고? 내가 고장내켜 놓았으니 책임지라고? 헐!!!!!

‘할망구야. 신선계곡으로 하계 극복 훈련을 떠나보자.’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에 막 도착했을 때, 처음엔 심하게 멘붕이 찾아왔다고나 할까? 말 그대로 후회막급이었다.

턱밑까지 숨이 탁 차고오른다는게 더도 덜도 아니고 정확하게 지금 이런 상태를 표현해주는 말이라는 게 아주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중앙안전대책본부로부터 연실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시라’는 재난 안내 문자가 날라오고 있는 오늘은 2026년 7월 6일 오전 열 한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배낭엔 생수 한 병, 캔맥주 두 개, 복숭아 두 개, 쎈뻬이 과자 한 봉지가 담겼다. 모처럼 챙겨 온 등산 스틱을 챙겨주고, 배낭 뒤에 할머니 전용 안전조끼를 매달았다.

‘정말 물에 들어 갈거야?’

‘트래킹 운동화까지 챙겨 신었잖아? 이런날은 누가 뭐래도 무조건 풍덩이지. 여기가 어디야? 신선계곡이잖아? 신선놀음이나 즐기다 돌아가라 해서 신선계곡인거야.’

‘신선들은 물에 발만 담그고 놀지 않았나?’

‘그런건 유교 사회에서 신선을 고고하게 떠받드느라 지어낸 이야기야. 신선이라고 안 더웠겠어? 더우니까 이런델 찾아오셨겠지. 그래서 왔는데 발만 담그고 놀았다고? 개뿔. 빨가벗고 목욕하고 족대들고 쫓아다니며 피라미 잡아서 매운탕 끓이고 도리뱅뱅이 만들어 먹고 막걸리에 취하며 놀았다니까? 그래놓고 세속의 인간들이 따라 하면 자리 뺏기고 물고기 씨가 마를까 봐, 심산유곡에서 고즈넉하게 발만 적시며 바둑을 즐기시는데 그새 도끼 자루가 썩었더라 라고 기막힌 썰을 잔뜩 풀어놓으신거지.’

‘설마? 그래도 신분이 신선인데........’

‘이 사람이 정말. 그럼 요즘은 신선이 어디에 가 계서서 안보이는줄 알아?’

‘어딘데?’

‘구름 위에까지 솟아있는 두바이 최고 높은 빌딩 루프탑 맨션에서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최신형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최고급 위스키를 마시며 놀고 계신다니까? 헬리곱터로 공수해주는 빙하수에 말만 담그고서 말이야.’

‘그거야 말로 진짜 신선 놀음이네?’

산모퉁이를 돌아서 징검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너는 방법과 출렁다리를 이용해 계곡을 건너는 방법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을 즈음에 갑자기 계곡 안쪽으로부터 세차게 계곡 바람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는 통에 화들짝 놀라 이 무더운 판에 쫓아가 농로에 빠진 모자를 겨우 구출해 가지고 왔다. 이거 선풍기 3단 바람은 아니더라도 2단 바람은 족히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바람의 칼라가 다르고 바람의 질이 다르지 않은가? 한마디로 고품격 계곡 바람이 싱그러웠다. 신선들이 기꺼이 즐겼을 법한 상큼한 고품격 바람이란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세상은 한증막 같은 폭염속일지 몰라도 신선표 바람이 불어내려 오는 오늘 트래킹은 본격적인 시작부터 아주 느낌이 좋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좋았길래 신선들이 몰래 숨겨놓고 자기들끼리만 도끼자루가 썩는지도 모를 정도로 신선놀음에 흠뻑 빠졌을까 싶은 신선계곡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좀 알아보기로 하자.

산자락 아주 깊은곳에 비바람에 씻겨나간 바위들이 유독 뽀얀 자태를 뽐내서 백암산(白巖山)이라 불렸으며, 신선들이 찾아와 놀았으며, 이 계곡의 물맛이 아주 특별하였다 해서 이곳을 신선계곡(神仙溪谷)이나 선시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신선들이 즐겨 놀았다는 그 골짜기 너머 안쪽까지 화전민들이 실제로 생활했으니 그곳을 내선미(內仙味) 마을이라 하였다. 화전을 일구고 약초나 화목을 가지고 멀리 울진이나 영양까지 오가며 생필품을 구했다고 하니, 그런 고행의 거친 삶이 어떤 것이었을지, 가히 상상하기조차 힘들게 느껴진다.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의 낙동정맥에 속하는 산세가 크고 넉넉하면서 여러 깊은 계곡을 갖춘 백암산 자락엔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름난 온천이 있다.

사냥꾼이 화살로 명중시킨 사슴을 뒤쫓았으나 해가 저물어 더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야영을하고 날이 밝자마자 다시 그 사슴의 뒤를 쫓았더니 상처 입은 사슴이 피를 흘리며 누웠던 자리를 찾아냈는데, 밤새 상처 치료를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간 후였다. 참으로 신기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사슴이 누웠던 웅덩이 안쪽에 땅속에서 온천이 솟아오르고 있는 약수탕(藥水湯)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인근 백암사(白巖寺)의 승려에게 알렸으며, 스님이 이곳에 욕탕(浴湯)을 지어 병자를 목욕 치료하면서 점차 소문이 널리 퍼졌으니,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라듐 온천으로 널리 잘 알려져 있는 백암온천(白巖溫泉)이 바로 그곳이다.

거기 백암온천의 왼편 능선을 하나 넘어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길고 깊은 계곡이 바로 신선계곡이다. 바로 옆동네 할 수 있겠다.

백암산 정상에서 시작되어 갈라지는 계곡수들은 서쪽으로 흐르다 모아지면 반변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다 모아지는 계류는 남대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들어간다.

하여 신선계곡 산행이라 하면 매미소. 용소. 가마소 등의 소와 담이 모여있는 깊고 아름다운 계곡 선시골을 통과해 올라가 막다른 골목격인 합수곡에서 여러 지류를 만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문가들이나 찾을법한 가파르고 험난한 산행길이 그동안 감추었던 모습을 차차 조금씩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 종점은 곧 백암산 정상이 된다.

아주 먼 옛날에 신선계곡의 용소에 살던 이무기가 힘든 통과의례를 마치고 막 승천하려는데, 하필 그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의 창에 맞아 요동을 치다가 그 몸부림으로 팔선대 폭포가 만들어졌고, 다시 껑충 뛰어올라 월송정의 용정에 커다란 우물을 만들더니, 마지막 몸부림으로 또 한 번 용솟음쳐서는 남대천 바닷가에 용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자고로 산이 높으면 당연이 계곡이 깊고 길어야 제격인데, 그 계곡이 아무리 깊고 길어도 거기에 어울리는 물이 없으면 결코 명산이라 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백암산 서쪽으로 길게 늘어선 계곡은 결코 웅장하다고 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길고 깊은 골짜기 대부분이 뽀얗게 빛나는 암반으로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바위골짜기 사이로 맑은 물줄기가 풍부하게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비경(秘境)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계곡으로 얼추 길이만도 6km나 된다.

검마산 자연휴양림을 찾아가는 지극히 협소하고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아주 긴 산행길 곳곳엔 유독 굿당(점집)이 많이 눈에 띈다. 과거 태백산 일대나 계룡산 일대에서나 보았을 법한 풍경이 산실 양편으로 버젓이 펼쳐진다.

신선계곡을 찾아가는 주령(구주령) 일대 풍경도 마찬가지였는데, 휴게소에서 들어보니 구주령과 선시골 일대는 예부터 기가 세기로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전해 듣기로 ‘무당이 와서러 신을 좀 받을라꼬 아무리 별별 굿을 다하고 공을 디리도 결국 신을 몬받고 그냥 돌가가는기라. 주령하꼬 선시꼴 기가 너무 씨 갖고 말이다.’

하여 실제로 선시골 인근의 주민들은 이곳 골짜기 안에선 부정타는 짓을 하지도 않고, 여름이라고 개를 잡지도 않았다고 한다. 극심한 가뭄이 들어 선시골 용소에서 기후제를 지내고 나면 진짜로 폭우가 쏟아지고도 한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이란다.

신선계곡 트래킹을 계획하면서 궁금해하고 직접 만나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가 계곡의 초입이랄 수 있는 선시골에 설치된 자연 친화적인 아주 커다란 숲이 그려진 콘크리트 캔버스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보아왔던 것이라 꼭 실제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여기 선시골엔 일제 강점기부터 아연을 생산하건 광산(금장광산)이 있었다. 정비 관리를 꾸준히 지곳하는 비포장 도로가 막 끝나는 지점부터 시작되는 본래의 원시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의 계곡 건너편에 설치되어 산길과 평행선을 이루며 상류쪽으로 이어진다.

직접 벽화를 보고 있노라니 그냥 계곡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정말로 멋지게 잘 그리셨다. 나무와 숲과 골짜기가 색을 갈아입는 늦가을과 겨울을 제하고,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특히나 녹음이 짙어질 대로 짙어진 지금 계절과 정말로 잘 어울린다. ‘정말로 제대로 완성된 환경보호 프로그램이 아닌가.’

조금 지나서 만들어져 있는 멋진 정자와 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친환경으로 자연 훼손을 방지하고 있는 시설과 그것들이 오히려 본래의 자연과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전망에 맘껏 취해본다.

아연 광산이 성시를 이루던 일제 강점기에 이곳 내선미마을(선구 1리)에는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 인근으로 사방에 마을이 들어섰으며, 6.25가 나기 전엔 이곳에 거주하는 광부와 가족의 숫자가 1천 명이나 되었단다. 90년대 말까지도 광산이 활발히 운영되었단다.

여러 이유로 광산이 폐기되고 마을의 집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광산 갱도에게 계속 유출되는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포함된 유출수가 계곡으로 계속 유입되자, 정부 차원에서 광산 유해물질 유출 방지 작업으로 갱도를 막고 계곡 하천 일대에 콘크리트 축대를 쌓는 환경보호 공사를 벌였다. 2009년에 완공된 위쪽 사진의 모습이었다. 방지 작업은 완공되었으나, 이 아름다운 계곡의 풍광에 어울리지 않게 폐허더미처럼 보여지자 결국 지자체가 다시 나서서 지금의 벽화를 조성하였다. 참 아름답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박수와 갈채를 보내드리고 싶다.

다음으로는 어디에선가 보았던, 내선미 마을 인근의 야산에 있다는 통조림 깡통 더미에 해한 궁금증이었다.

이게 미제 통조림 깡통일까? 아니면 일제 통조림 깡통일까?

어떻게 이 깊은 산골짜기에 저렇게 다량의 통조림 깡통 무덤이 생거난 것일까?

일단 길이 없으니 누구라도 저렇게 많은 량을 굳이 이곳까지 가져다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측 가능한 가설은 두 가지가 되겠다.

1967년에 벌어진 (울진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 먼저 떠오른다.

이곳 일대는 무장공비의 주요 침투로이자 도주로의 한복판이었다. 그들을 추격하는데 동원된 우리 국군의 주요 추적 거점이 혹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이다. 대규모의 군대가 당시로서는 통조림 위주의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이곳에 머물 때 생긴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론이 그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일제에 의한 소나무 송진 채취를 위한 강제 동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다.

인근 마을 주민은 물론 학생과 청소년들까지 모조리 동원하여 이 깊은 산속까지 커다란 소나무들의 껍질에 생채기를 내서 송진을 추출해 긁어모아 연료를 대체했었다. 송진을 채취하자면 반듯이 통이 있어야만 했고, 전쟁군수 물자 중에서 먹고 난 깡통을 모으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이와 주민들에게 깡통 하나씩 주어주고 사방으로 소나무를 찾아다니며 부러 깊은 생채기를 내고, 거기서 나오는 송진을 채취해 모아 담는 용도로 이곳까지 가져와 사용하던 깡통 무덤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신선계곡 트래킹에서 내선미 마을인근에 있다는 깡통무덤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깡통의 정체를 살펴보는 일은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신선계곡 트래킹의 시작은 매미소(입구 출렁다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계곡에서 가장 큰 물웅덩이인 매미소는 풍수지리학에서 목마른 말이 엎드려 물을 마시는 형상을 닮았다는 (갈마음수형)에 해당한다고 한다.

여기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산책길이 이어진다고 하겠다. 산림 관리와 산불 예방을 위해 조성한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일제 치하에서 아연을 캐던 금장광산 자리에 환경 보호 차원에서 생겨난 계곡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이곳 까지는 임도와 하천이 평행선을 이루며 나란히 놓여져 있다. 언제든 작은 비탈만 내려서면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수정처럼 맑은 물과 계곡을 오르내리며 유유자적 노니는 물고기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계곡을 가로막듯이 드러나는 금강송 숲이 한껏 위용을 뽐내는 쯤에 때맞춰 쉬어가라고 멋진 정자가 만들어져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고, (백암산 산림자원 보호구역) 안내 표지판이 보이면서부터는 일상적 임도가 끝이 나고 잘 정비된 나무데크 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물길과 나무데크 길이 잠시 아쉽게 작별을 하는 시간이다.

나무데크 길이 가파른 벼랑을 타고 오르고 산중턱을 삥 돌아올라가기 때문에 한참 올라서 맞이하는 숫돌바위 라는 표지판 구역을 제외하고는 그저 높은 바위벼랑 산길이나 정비된 나무데크 길을 오르면서 먼발치 아래로, 가려진 수풀과 금강소나무 숲가지 사이로 계곡과 물웅덩이를 내려다보면서 그저 입을 크게 벌리고 탄성을 내지를 뿐이다. 정비된 나무데크 길이 이 산자락을 오르는데, 바위벼랑을 휘감듯 돌아 올라가는데 전부를 커버해 주지는 못 한다. 여러 길목에서 흔히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그럼 난이도의 약간은 위험해 보이는 벼랑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트래킹이라 하기엔 조금 버거울 수도 있겠고, 그렇다고 등산이라고 하기엔 겨우 산책을 모면한 정도의 힘겨움이 스며있다고나 할까?

주차장에서 매미소에 들어설 때까지는 한여름 폭염에 질식할 것만 같아, 오늘 트래킹을 제대로 마칠 수 있으려나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첫 전망대을 지나 데크 길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런 걱정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기온은 상상 이상으로 올랐고,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의 위력은 최상이었지만, 숲속 나무 그늘과 골짜기에서 불어 내려오는 신선한 바람이 폭염을 잊게 만들어 준다. 무더운 날씨는 오감으로 가득 느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는 하지만, 등에 땀줄기가 흘러내리거나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고통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오래간만에 찾아온 싱그러운 트래킹이 반가울 따름이다.

아늑하고 평안함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온다.

백암산 신선 계곡이라는 곳이 본래 우거진 금강송 숲의 경치로 그렇게 유명한 곳도 아니었고, 까마득한 바위 절벽으로 이름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풍부한 수량으로 수십 길을 내리꽂히는 폭포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웅장하거나 비장한 미는 비록 적다 하겠지만, 나름으로 아기자기하고 그윽한 맛과 멋이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걷기도 하고, 주저앉아 쉬기도 하고, 보고 즐기는 신선놀음을 흉내 내 보기에는 어느 산이나 어느 골짜기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부할 만한 곳이라 생각된다.

백암산 깊은 골짜기에서 사시사철 투명하기가 그지없는 물줄기가 그치지 않고 흘러내리고, 약간 어색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담하고 물소리 짙은 폭포들이 군데군데 놓여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와 담이 골짜기를 수놓아 자그만치 2백 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 수정처럼 맑은 물들이 오랜 세월동안 깎이고 또 깎여서 저마다 뽀얗게 새하얀 얼굴들을 서로 뽐내고 있으니 숲과 바위와 물줄기가 이루어내는 절묘한 하모니 위로 신선한 바람이 일렁이며 계곡을 빠져나가는 한 폭의 산수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흘러내린 물줄기가 마침에 동해읍 앞바다에 흘러들어가니 이곳이 바로 남대천 물줄기의 최상류가 되는 것이다.

가장 높은 위치의 나무데크 길에 올라서 이마에 땀방울을 훔치며 고개를 돌려 방금 내가 지나온 산골짜기를 살펴보노라니 절로 탄성이 울려나온다.

‘오늘은 신선놀음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다시 아래로 향하는 나무데크 길을 따라 오르니 바위벼랑에 기대놓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는데 숫돌바위라 적혀있다. 모처럼 계곡에 접근하기 좋은 장소를 다시 만났다.

선시골이라 부르던 이 계곡 상류에는 물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30여 호가 실제로 거주하면서 화전민과 약초꾼 생활을 영위했던 독실(독곡) 마을이 있었다. 68년 10월에 벌어진 ‘울진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계기로, 혹시나 적군의 은선처나 아지트로 활용될 가능성을 염려하여 오지의 마을들을 소개시키는 칙령에 따라 모두 산을 떠나게 되어 지금은 마을 집터만 썰렁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그때까지 이곳 독실마을 사람들은 나무장작이나 산마물과 메밀이나 약초를 지고 읍내까지 내려가, 소금이나 해산물과 낫이나 괭이 같은 농기구와 등잔이나 석유등과 바꾸어 다시 이 길을 올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비되고 나무데크가 깔린 그런 길이 아니라 비탈지고 좁고 가파른 그런 고갯길을 말이다.

그리고 그랬던 그들도 미교적 물과 가까운 길인 숫돌바위에서 세수도 하고 땀도 식히고 목도 축이고, 또 나무를 할 때 쓰더 도끼를 비교적 평평하고 연한 바위에 갈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숫돌 바위라. 나그네가 잠시 물놀이 하며 쉬었다 가기엔 더없이 금상첨화로구나.’

 

 

 

 

 

 

깔딱고개가 나타났다.

조금만 더 오르면 용소(龍沼)가 나타나 우리를 반겨주기로 사전 예약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이곳에 살던 이무기가 승천하려다 마을 청년의 화살에 맞아 여기저기에 여러 전설을 서려놓았다는 장소다. 이런 기준에서 생각해 보면, 옛날에 우리나라 한반도엔 아마도 수만 마리의 이무기가 살았다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겠고, 적어도 수천 마리는 하늘로 승천하여 용이 되었어야만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폭포 아래 큰 물웅덩이만 생겼다하면 용 전설이 따라붙게 마련이고, 용 전설이 생겼다 하면 기후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로 추앙받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하여 가뭄이 심해지면 용소에서 돼지나 양의 머리를 잘라서 그 피를 웅덩이 주변에 뿌리는 제사의식을 거행하고 나서 비가 내리기를 빌었다고 한다.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자면 ‘용소에서 기후제를 지내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자면 신선계곡의 용소가 그저 예사 장소는 아니었던듯 싶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이겠지만 말이다.

혹여, 오죽하면 기후제를 지냈겠으며,99번을 지냈는데 그 중에 딱 한번 기후제를 지낸 그 밤에 폭우가 쏟아지듯 내렸다‘고 한다면, 그런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영험한 효과를 본 것이 아니었을까?

용소 말고도, 용소를 지나 독실마을에 이르기까지 사이에는‘참새 눈물나기’ ‘다람쥐 한숨제기’‘호박소’ 등의 나름 사연과 이유가 담긴 장소들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나 사연은 아마도 그 이름에서유츄해 내기가 그리 어렵진 않아 보인다.

오늘 우리 트래킹의 목표는 일단 용소(龍沼)까지였다.

이제 이 깔닥고개 모퉁이만 돌아서면 용소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를 어이할꼬???

가파른 돌부리 언덕을 기어서 오르던 챠밍여사의 수술한 무릅 부위에서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발목을 접질리거나 무릅이 뒤틀리거나 넘어져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만저만 시작에서부터 가장 크게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충분히 쉬면서 상태를 살피고 호전되기를 기다리니 그럭저럭 더 이상 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건 절대 그냥 넘길 상황이 아니다.

애초부터 시간과 코스를 정해 놓고 시작한 트래킹이 아니었고, 오로지 무릅 수술부위 컨디션을 점검하고 나름 근력 강화훈련을 삼아 시작한 산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용소가 코 앞인 것을 알았기에 그만큼 아쉬움이야 컸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리고, 대신 아주 천천히 내려가면서 모처럼 마주한 대자연의 품을 더 많이 가깝게 느껴보고, 내려가다가 편리한 장소를 골라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아예 워터 트래킹 준비를 갖추고 떠나온 길이었다. 수상 안전 조끼까지 배낭 뒤에 매달고 올라왔었다.

내려오면서 한 두 군데 계곡으로 내려 갈 수 있는 길은 있었지만, 좀 위험해 보이는 벼랑길이었고, 계곡을 살펴보니 가뭄으로 흘러내리는 수량이 너무 적어서 사방으로 칼처럼 날카로운 뾰족한 바위들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경사도는 급하고, 계곡은 좁고, 물은 겨우 흐르는 수준이고, 계곡 트래킹을 하기에는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 아닌가? 지난날 아침가리 계곡 트래킹에서 만났던 가뭄은 여기에 비하자면 훨씬 좋았지 않았나 싶어졌다.

오늘은 아쉽지만, 계곡을 텀부덩 텀부덩 하는 트래킹도 불가.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계곡물과 만날 수 있는 곳은 역시나 숫돌바위 지역이다.

무릅 컨디션은 괜찮은데 그냥 내려가자는 할망구의 말씀을 무시하고, 계곡 건너편으로 가서 그냥 물웅덩이에 큰 대(大)자로 풍덩 드러누워 버렸다. 계곡 트래킹을 작정하고 온 마당에 목간(?) 정도를 못할 게 무엇이겠는가?

좋다. 시원하다.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신발을 벗고 웃통을 벗고 우리 병아리들처럼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본다. 실로 어이없음을 지켜보던 할망구도 더는 할말을 잃고 신발을 벗더니 웅덩이에 들어와 텀부덩 주저앉아 계곡의 시원함을 원없이 즐겨본다.

잠시 나와서 캔맥주에 쎈뻬이를 안주삼아 먹어보니...... 오호라. 그 옛날 신선이 이곳에서 천렵을 하면서 탁빼기에 꿩고기 백숙과 산삼을 씹어먹으시던 그 품새가 바로 우리랑 비슷하렸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계곡을 빠져나와 숫돌바위에서 물놀이를 시작하기까지, 이적지 이 계곡에는 우리 달랑 둘 뿐이었는데....... 갑자기 어시선가 불쑥 중년 이상의(?) 여인네 세 병이 나타나더니 나무데크 위에서 오도 가도 않으면서 우리 부부가 노는 꼴을 지켜보고 있다.

갈려면 가든가, 올려면 오든가? 대.략.난.감.

한참을 실갱이를 하는 것 같더니만, 기어코 꾸역꾸역 건너오는 폼이........ 굳이 우리 바로 옆에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또 왜?

신사체면에 꾸역꾸역 윗도리부터 챙겨 입고 보니........ 영 분위기 어색한 것이........ 깼다. 깼어.

왜 하필 우리 그 자리가 탐이 났을까?

기어코 우리가 일어나서 다시 하산길에 나서면서, 숫돌바위 안내판에서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우리가 떠나온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들 물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좋은 자리는 알아가지고.......... 자릿세도 안내고 순전 무대포 아닌가? 헐!!!!’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같은 듯 한 풍경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다르다.

아마도 다 미처 헤아려 살피지 못했던 풍경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때문이리라.

보니 어느새...... 우리가 오늘 (신선계곡 트래킹)을 시작했던 출렁다리에 다달았다.

오를때는 출렁다리를 건넜으니, 이번엔 아래쪽 징검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너리라.

그렇게 걷다 져나와 다시 주차장에 이르니......... 오 마이 갓.......... 죽음의 폭염이 다시 달려든다.

 

 

 

(검마산 자연 휴양림)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는 내내 오늘 나들이에 대한 감동을 늘어놓는다.

애초의 1차 목표였던 (용소)까지 못간 아쉬움이야 남지만, 삐긋했던 그 이상 아무런 어려움도 격지 않고 오늘 나들이를 무사히 마친것만 해도 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저 오늘 우리가 함께한 이 나들이에 더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은 또 내일대로 (양양 자작나무 숲 산책) 프로그램을 준비해 두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샛길로 조금 새서 근처의 하나로 마트를 찾는다.

오늘은 좀 거나하게 또 한잔을 해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장을보러 갔다.

그리고 차분하면서도 소중한 우리들만의 저녁 시간을 만들었다. '태리야. 세리야.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무나 잘 보내고 있어. 너희도 마카오에서 잘 보내고 있니? 그래도 웬지 너희가 지금 옆에 없다는 것이 많이 서운하고....... 또 뭔가가 미안한 생각이 자꾸만 든다? 보.고.싶.어."

그렇게 저녁 시간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잘 보내고 캐빈 잠자리에 들었는데.......... '모야. 모야.'

흐메. 하루 종일 고대했던 겡구(며느리)의 카톡 울림이 고요함을 깬다.

이 소리는 곧 우리 사랑하는 병아리들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다. 녀석들의 오늘 하루의 일과를 엿볼 수 있는 우리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흐메.'

'역시 우리 병아리들이여.'

'온통 마카오를 싹 쓸고다니고 있네. 시방 야들이 누구 손녀래유?'

우리집 야그들은 이러고 다닌다.

여행 잘 하고 오고, 오면 얼른 다시 뺏아 와야지.

태리야. 세리야. 캠핑 가야지?

--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겠습니다.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피안재.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