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할땐 뭐하세요?"
"그냥요."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답이 어디 또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바보같은 답을 툭 내던져버렸고 동시에 엄청난 후회감이 내 영혼을 잡아먹을듯이 엄습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연거푸 서너잔을 너무 급하게 퍼 마셨던 때문일까?
화끈 달아오르는 표정을 감추려 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금년들어 가장 추운날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싸늘한 한기가 헤쳐진 옷깃사이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나저나 쓸쓸한게 뭐지?'
싸늘한 밤공기에 어느정도는 자신을 추스렸다고 싶어졌을즈음 문득 나 자신에게 다시 되물어본다.
어쩌겠는가.
알기는 아는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것이 딱히 이거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마음.........
핸디폰을 꺼내들고 인터넷의 도움을 청해본다.
쓸쓸함 - (형) 1. 외롭고 적적하다.
2. 날씨가 으스스하고 음산하다.
'아. 이게 바로 쓸씀함이라는 녀석이구나.'
멋적은 눈웃음 한 번 허공에 날리고 실내로 돌아가 좀 전에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런데 그 젊은 처자는 무언가가 아직도 자신의 성에 차지 않은 눈초리였다.
"제 질문에 아직 답을 주시지 않았어요. 쓸쓸할때 뭐하시냐니까요?"
바보같은 나의 대답이 자신을 업신여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차하면 소주잔이라도 날라올 기세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주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거듭 분명하게 대답을 했다.
"저는 분명 대답을 드렸는데요?"
.
.
.
.
.
버나드 쇼가 이런말을 한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고 묻는다. 왜 그래?' 라고.
'난 존재하지 않는것까지도 꿈꾸며 이렇게 대답한다. 왜 안 돼?'라고.
보편타당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캐며 살아가지만,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드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어리석어보이기도 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은 그런 소수자들에 의해 더 많이 발전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것인지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그냥 다......... 그렇다치고 저에게 술 한 잔 권해주실래요? 함께 건배하게?"
"소주를 드릴까요? 아님 맥주요?"
"늘 폭탄주를 드시잖아요? 저도 그렇게 한 잔만 말아주실래요?"
"저를 아시는 분이세요?"
"글쎄요? 안다고 할 수도 있고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기분 묘해지네요? 저는 기억에 없는데........."
"같은 한국사람이고 여기는 충주잖아요?"
상황이 역전된 것일까?
이유없이 점점 바보라는 미궁속으로 마구 빠져들고 있는 기분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건배.
건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산에 사는 절친이 포항출장길에 과메기를 사서 보내왔다는 것이다. 보내온 과메기의 일부가 내몫이었다고 했다니 거절했다가는 부산친구에게 의절 당할것 같아서 친구사무실로 갔다.
그랬더니 사무실에는 이미 다른 손님들 여럿이서 점령을 한 상태로 술자리가 어느정도 무르익고 있는 참이었다. 더우기 그 자리에 낯선 아가씨는 아니지만 분명 우리또래보다는 적잖게 아래로 보이는 처자들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여동생 친구라 평소 서스럼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들이라 한다.
그런데 평소 낯선여성이라고 하면 일단 저만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야 하는 (선천적 여성기피증 환자)의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난 처지로 흔히 말하는 낯을 좀 심하게 타는 편이다 보니, 쉽게 다가가지도 쉽게 친해지지도 못하는 타입으로 뭘 어쩌겠는가.
멋적은 표정으로 겨우 자리를 지키고 죽어라 술만 퍼마시고 있는데 불쑥 (쓸쓸함)이라니.
조금 젊었던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잉? 이 여자가 시방 나한테 관심있나?' 하면서 힐끔 힐끔 여자를 위야래로 샅샅히 흩으며 정밀 신체검사부터 실시 하고 있었겠지만,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한 나이들고 기력이 쇠퇴한 작금의 처지로 보자니 관심은 뭔 관심........
마눌 시선에서 조차 무한 방치되고 있는 처지이고 보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어쩌구......... 아멘)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이 난다.
만약에 챠밍여사가 내 등뒤에라도 있으면서 작금의 상황에 (쓸쓸함)에 대해 질문을 받느것을 목격했더라면 분명 이렇게 했을 것이다.
- 퍼뜩 대답혀조. 쓸쓸할땐 뭐하냐고? 뭘하긴 뭘혀. 술 퍼마시고 있지. 허구한 날 술타령이지 뭐. 쓸쓸해도 한 잔. 눈물나게 기뻐도 한 잔. 아니여? 아니여? 맞잖어? 개뿔. 속으론 이렇게 대답할라구 했지? --- 쓸쓸할땐 창밖으로 숲도 바라보고 흘러가는 구름도 바라다보면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곤 한다고........ 개뿔. 아예 계절이 계절이니만치 눈 내리면 붉은 와인을 끓여서 마신다고 해라. 입 천장 다 벗겨졌다고. 개뿔. 죽어라 폼만 잡고 있어요. 씨잘데도 없으면서.........
날은 어둡고 쓸쓸하다.
비 내리고 바람은 쉬지도 않고
넝쿨은 아직 무너져가는 벽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어 있건만
모진바람 불 때마다 죽은 잎새 떨어지며
날은 어둡고 쓸쓸하다
내 인생 춥고 어둡고 쓸쓸하다
비는 내리고 쉬지도 않고
내 생각 아직 무너지는 옛날을 놓지않으려고 부등켜안건만
지붕속에서 청춘의 희망은 우수수 떨어지고
날마다 어둡고쓸쓸하다
조용하거라 슬픈 마음들이여
그리고 한탄일랑 말찌어다
구름뒤에 아직 태양은 비치고
그대의 운명은 뭇사람의 운명이니
누구에게나 반듯이 얼마간의 비는 내리고
어둡고 쓸쓸한 날은 있는 법이니.
이런 분위기라면 난 (A. 뮈세)의 시를 읽겠지만, 오늘은 문득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여러번 들어간 (롱펠로우)의 시를 찾아 한번 읽어본다. 물론 우아한 커피는 당연히 지금 내 눈앞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다. 이 글을 쓰다가 그냥 한번 롱펠로우이 시집을 한번 꺼내봤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밤이 제법 깊었을 무렵, 대리운전 차량이며 택시들이 올라와 빵빵 거린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된것이다.
오늘도 난 좀 걷고 싶었다.
시내에서 좀 덜어진 외곽지에서 내 집까지 추위를 무릎쓰고 걷고 싶었다.
언덕을 걸어내려가려는데 그 문제의 쓸쓸해 보이지도 않으면서 쓸쓸함을 달고 다니는 아지매가 다가왔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혹시 다음에 뵐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피안에 부는 바람)이 어떻게 끝나는지 좀 알려주시겠어요? 야련님 맞으시죠?"
제 하고픈 말만을 쏟아내듯 늘어놓던 쓸쓸함표 아지매는 쏜살같이 친구들과 택시에 올라타고는 언덕아래로 쏜살같이 사라져갔다.
무엇인가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친구가 사무실 문을 잠그고 마지막 손님인 나를 배웅하러 나오고 있었다.
"친구야. 혹시 저 아짐마............."
"그래. 맞어. 시 쓴다는 동생 맞어. 언제냐? 옛날에 내가 한 번 인사시켜 준 적이 있었는데............"
"오늘 첨 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언덕 아래 큰길에 내려와서 친구와 헤어지고 한적한 도심의 뒤안길을 걷고 또 걸어본다.
여전히 싸늘한 바람결이 옷깃을 헤집고, 하얀 입김이 솟아오르다 흩어지더니 이내 콧물까지 흐르기 시작한다.
'야련이라............. 그게 언제쩍 이야기야? 그런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었나?'
'그나저나 야련이랑 쓸쓸함이랑 무슨 상관이지?'
'그때의 내 모습을 본것도 아니면서 뜬금없이 쓸쓸할때 뭐하냐니? 그럼 그때의 내 글들이 쓸쓸한 느낌을 갖게 했었나?'
yaryun(夜蓮).
지금의 (피안재) 이전에 내가 아주아주 오랫동안 써왔던 아이디 이다.
전주 여행중에 공원의 가로등불빛아래 피어난 뽀얀 연꽃이 너무도 예뻐서 그때 그런 아이디를 스스로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했다.
야련이란 아이디로 소설도 쓰고 칼럼도 쓰고 수필이며 기행문이며 감상문등 그때는 참 다작을 했던 시기였다. 서울생활을 접고 수안보 소조령의 산막생활을 시작했을 즈음까지 싸용했었던 듯 하다. 물론 그때 (피안으로 부는 바람)이란 소설을 모 싸이트에 2년반 정도 단독 연재를 했었다. 중간에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고 종국엔 회원 수 2만명을 상회하던 그 싸이트가 문을 닫게되어, 결국에 그 소설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추운 도심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그당시를 회상해 보지만......... 난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나와 쓸쓸함이라는게 잘 매치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이 내게 던져졌을까? 쓸쓸할때 뭐하냐니?
그렇다고 지금 내가 쓸쓸하냐? 당장 쓸쓸함이 뭔지 정의 내리지 못하는 내가 쓸쓸할 리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물론 나도 사람인데 정말로 쓸쓸함에서 한참 떨어져 늘 즐겁고 떠들썩하게 사느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절대 쓸쓸하지 않다) (쓸쓸하지 않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살아가지도 않는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부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꼽고는 핸디폰 액정을 스크래치 한다.
Como una sonrisa, eres tu, eres tu.
Asi, asi, eres tu.
Toda mi esperanza, eres tu, eres tu.
Como lluvia fresca en mis manoscomo fuerte brisa, eres tu,
하나의 소망과도 같은 당신
두 손에 고인 신선한 빗물 같은 당신
그대는 그런 사람, 장작위의 불꽃같은 사람이라고 너무도 청아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내 귓전으로 파고든다.
한 때 무척이나 좋아했던 노래이다.
어쩌면 십 수년전의 그때에도 이 노래를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나는 전혀 쓸쓸함이란 느낌을 떠올릴 수가 없다. (에레스 두) 오늘 내 가슴에 아주 잔잔한 감동으로 호수에 일렁이며 다가오는 물결처럼 스미어 든다.
그냥......
이런 느낌......
이런 시간.........
그냥 그런것들이 나는 좋다.
용산동의 대로변을 건너려는데 제법 밤이 깊었음에도 길게 늘어선 챠량의 불빛들이 끊어질 낌새조차 보이질 않는다.
간혹 횡단보도 기둥을 살펴보노라면 보행자우선원칙아래 누르는 버튼이 있다고 들은 생각이 났다. 버튼을 누루고 나면 횡단보도를 건널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곧 주행 신호등도 바뀐다고 말이다.
그래서 신호등 기둥을 살표보았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곳 신호등엔 버튼이 없다.
잠시 허망한 생각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환한 가로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백하게 보여질 만큼 하얀 얼굴이다. 표정도 사뭇 이상하다. 무표정인지 추위에 떠는 표정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를 않는다.
'너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재미없는 가로등. 얼굴에 다른 화장이라도 좀 하면 안되겠니?'
파란신호등에 불이들어오니 그 파란모습이 무척이나 반갑다. 파란색이어서? 아니면 나를 길 건네줘서?
글쎄......... 이번에도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참. 아까 검색에서 분명 (날씨가 으스스하고 음산한) 것이 바로 쓸쓸함 이라고 했다.
그럼 너, 창백한 가로등은 지금 쓸쓸한 것이구나.
나?
난 여전히 쓸쓸함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왜?
그냥.............
그때 귓전에 노래소리가 멈추며 울려오는 그리 낯설지 않은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는 카카오 톡 신호음.
이 시간에 보나마나지 뭐.
시린 손을 부벼가며 잘 되지않는 화면 스크래치를 하고 살펴보니 뭐해.
누군지 뻔하지.
친구랑 술마시고 온다면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겠고, 어쩌겠어? 용기내서 입술에 침 한 번 더 바르고 나서 '운동하다 들어가는 중' 이라고 해야지. 좀 구차한 것은 나도 알지만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기고 목숨을 이여가야 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라고 말하고 싶은 나의 맘.
이러니 내가 어디 쓸쓸할 짬이 있겠어?
(쓸쓸아!).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니?
집에 돌아와 10 수년전의 메모장을 뒤적거려보니 이런 메모가 적혀 있다.
'연꽃이 필 때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내며 피어난다고 한다. 선비는 이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고저 야밤에 연못에 배를 띄우고 호수가운데 연꽃밭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개화청(開花聽)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을 지상 최고의 풍류로 여겼으니 정녕 나도 그리하고 싶다.' 라고 내 글씨로 써 있다.
이런 내모습이 남 보기엔 쓸쓸해 보이나? 달밤에 남의 담장에 올라가 안채에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지극히 나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극히 일부의 지인들은 안다.
좀 유별난 나의 생활방식과 사고.
한마디로 아주 특별하리만치 혼자서도 잘 놀고 잘지내는 아주 쬐끔 유별난 존재가 나라는 사실.
아마도 내겐 그 쓸쓸한 유전인자는 없나보다.
허면, 나머지 남은 인생속에는 씀씀함이라는 놈을 한번 길러나 볼까?
----------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