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와 플라멩코와 축구로 널리 알려진 붉은색 정열의 나라.
하지만 이런 몇가지 단어만으로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표현하기에 한없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러시아. 프랑스에 이어서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나라.
세계에서 프랑스에 이어 두번째로 여행자들이 맞이 찾아오는 관광대국 스페인.
40개에 이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간직한 건축의 나라 스페인은 이슬람과 카톨릭 문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지구상의 유일한 지역이다.
정열과 예술을 사랑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긍지이자 자존심인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드디어 도착했다.
10세기 경에서야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이 대도시는 처음에는 에스파냐의 수도인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였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1561년 펠리페 2세가 자신의 권력의 중심지이자 스페인 영토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제국의 영광을 고스란히 함께했떤 마드리드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다분히 현대적인 느낌이 매우 강하다.
도시 자체로서의 역사가 그 어느나라 수도보다 짧기에 근현대 이르러 계획적으로 잘 짜여진 모범적인 현대적 도시이다. 옛스런 분위기나 중세풍의 건축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드리드에서 중세나 르네상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밖에는 없다.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에 가서보면 그런 옛스러움에 대한 향수나 갈증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다.
하마터면 (마드리드)를 그냥 건너뛰고 스페인 여행을 할뻔 했다.
스페인은 각 지역별로 아주 특색있고 개성이 뚜렸한 역사적인 도시들이 너무나 많아서, 시간을 아껴가며 여행을 해야만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옥석을 가리듯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사람마다 관심과 취향이 다르기에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라나다. 세비야. 톨레도 같은 도시들과 견주어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면 나는 기꺼이 마드리드를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포루투갈 리스본을 떠나 스페인에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시점이 되고나니 '정말 스페인에 가면서 마드리드를 뺄거야?'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대폭 여행 스케줄을 변경을 하면서 첫 스페인 여행지로 (마드리드)를 선택했다.
리스본을 떠난 야간열차는 장장 11시간을 달려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차마르틴 역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새벽 6시반이었다.
프랑스나 포루투갈에서 국제선 열차가 운행되는 차마르틴 역은 인근의 아토차 역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시설이나 볼거리에 있어서도 그저그런 정도의 수준이다.
초행길의 여행자는 낯선 이국에서 맞는 아침(새벽 6시반)엔 별로 할 일이 없다.
커다란 배낭이 있기에 편한 아침산책을 할 수도 없고......... 모든것은 호텔에 체크인을 마쳐야 허락된다.
우리는 차마르틴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처럼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과 새벽 일찍 어딘가를 향가 떠나는 일부 여행자들만이 있을 뿐 대부분 한가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문을 열고 손님을 받고있는 바르(카페)가 있어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않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마드리드의 교통편에 대해서 우선 공부를 좀 해둘 요량이었다. 지하철과 시내버스의 편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내가 돌아다녀 보고자 하는 여행지들과의 대중교통 연결망만 확인된다면 나머지는 모든것이 저절로 풀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나는 마드리드의 모든 교통망에 대해서 손바닦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마드리드는 내집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호텔에 사전에 이메일을 보내 놓았기에 이른시간이지만 찾아갔다. 이번 숙소는 번화가에서 제법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로 잡았다. 엑스트라 마두라 지역에 있는 빌라 였다. 조용한 곳에서 번화가나 여행지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갈 생각이었다.
전일 투숙객이 아직 이른시간이라 체크 아웃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해서 우리는 짐만 숙소에 맡겨 놓은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스페인에 왔으니 당연히 솔 광장부터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은 스페인이 시작되는 곳이다. 모든 스페인의 지도와 거리 측량이 이곳에서 출발한다. 스페인의 0km 지점이 바로 솔 광장이다.
서쪽을 바라보면 왕궁이 있고, 동쪽에 프라도 미술관이 있으며 프레시아도스 거리를 따라 걸어가면 마드리드의 번화가이자 명동인 그란 비아가 있다.
마드리드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약속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 바로 (솔 광장)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스페인 여행이다!!!!!!!!
당혹스러울만치 낯선 이 느낌은 도대체 무엇이지?
신기하게도 이 낯선 느낌은 이질적인 괴리감으로 다가오기 보담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어떤 정겨움이나 설레임 같은 기대감으로 슬며시 다가오고 있다.
포루투갈과는 너무도 다르다.
이탈리아와는 어느정도 비슷한 면이 있어보이기는한데,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확연히 다른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스페인은 아주 독특하다.
태양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노천 카페나 공원에서 나무 그늘을 찾아 진을 치고 있으면 한국(?) 일본(?) 중국(?) 아님 동남아 사람이다. 유럽사람들은 태양을 그리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유독 스페인 사람들은 뜨거운 땡볕만 찾아다니는 사람들 같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태양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로 스페인 사람들이다.
생활과 문화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태양을 사랑하고 태양을 즐기는 민족인지를 금방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일까?
스페인 태양의 열기는 마치 열대 사막을 떠올리게 할 만큼 더없이 더 뜨겁다. 태양의 빛깔도 온통 펄펄 끓는 붉은 용암빛이다.
솔 광장을 한바퀴 돌아보고는 난 금방 알아버렸다. 스페인이 어떤 나라라는 것을.........
그리고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떠 올렸다. 마드리드를 그냥 외면해 버리지 않은 이번 여행을.........
마드리드는 커다란 대도시이지만 걷기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면서 걷다보면은 다양한 스페인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아름다운 현대 건축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마드리드다.
마드리드는 시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구시가와 그 주변으로 새롭게 확장한 신도시 지구와 인근의 외곽지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마드리드의 구시가에서 여행을 즐긴다. 솔 광장과 마요르 광장이 있고, 근처에 왕궁과 프라도 미술관등이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근대에 세워진 마드리드는 17세기 이후의 역사적 유산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에 비교적 현대적인 스페인의 향취를 접해보기에는 아주 안성마춤인 것이다.
스페인의 근대는 마드리드에서 모두 만나 볼 수 있다. 스페인의 현대는 바로셀로나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나머지 스페인의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모든 역사와 문화는 안달루시아를 비롯한 스페인 전역에서 골고루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야말로 스페인은 문화와 문명의 보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던 '올라'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올라'라고 화답해 온다.
풀라멩코와 투우를 보면서는 절정의 장면마다 '올 레이'라고 흥에 겨워서 서로들 마주보면서 크게 외쳐댄다.
일년 내내 축제가 온 나라에서 끊이지 않는 나라가 바로 여기 (스페인) 이다.
'혹시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의 기억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페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1981년 겨울 군에서 휴가를 나오던 버스안에서 였다.
고1때부터 팝송에 심취하여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실행에 옮긴것이 꿈에 그리던 DJ(디스크 자키) 였다. 팝 음악의 한 시기를 택하라면 미친듯이 이 아주 푹빠져버렸던 고2(1977년도) 해에 발표된 모든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당연한 흐름처럼 브르스. 재즈. 하드 록까지 나름의 열병 같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휴가를 나왔는데......... 당시의 심정이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접하는 아주 감미로운 팝에 삽시간에 흠뻑 도취되고 말았다.
락 그룹이 아니고 아티스트 한명에게 이토록 심취해 보기도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제대를 앞두고 그의 두번째 앨범이 발매되었고....... 이후 나는 그의 모든 앨범을 구입했다. 팝 앨범. 라틴 앨범. 불어 앨범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로 드물던 석장짜리 라이브 앨범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 재산 목록에 올랐었다.
세상에 이처럼 매력적이고 매혹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또 있을까?
88년 있었던 바르셀로나 콘서트의 시작부분에서 (메바 메바 메바.........) 읖조리는 그의 감미로운 음성과 우아한 매너와 청중을 앞도하는 그의 몸짓은 하나의 예술로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적어도 내겐 없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전율과 함께 진한 감동이 피어 오른다.
그는 진정한 아스트트이며 바로 스페인 사람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혼자 조용히 거닐면서 깊은 생각에골몰할때면........ 나는 그의 음악들을 이어서 이어서 이어서 듣고는 한다.
라이브 앨범 중에서 특히......... 천진난만한 소녀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뒤에 이어지는 리메이크 곡 (feeling)은 나의 베스트 애창곡이다. 흔치 않지만.......
그런 내가 지금 스페인에 왔다. 그것도 마드리드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콘서트를 볼 수만 있다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훌리오의 콘서트를 이번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를 기억하는 여행을 스페인으로 다시 한번 감행해 보고 싶다.
그래서 (솔 광장)을 나와 마드리드의 번화가를 거닐고 (마요르 광장)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훌리오의 콘서트 실황공연 음악을 들었다.
(나탈리) (소녀에서 여인으로) (Hey) 가 연이어서 흘러 나온다.
훌리오 덕분에 더 아름답고 황홀한 여행이 펼쳐진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스페인의 상징이다. 그의 음악이 스페인의 교향악이다.
곰 동상으로 상징되는 솔 광장을 떠나 마요르 광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5월의 날씨지만 주변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한여름 같다. 하지만 습기가 없는 스페인의 날씨는 햇볕이 따갑게 느껴지지만 아무데고 그늘만 찾아들면 선선한 바람결을 느낄 수가 있다.
거리는 너무나도 활기차다. 그리고 여유로와 보인다.
사방에 광장이나 공원이 들어서 있고, 어디에서나 노천 카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카페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살기 위해서 먹느냐' 아님 '먹기 위해서 사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이쯤에선 해 보아야만 하겠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로 보여진다. 하루 다섯끼의 식사를 하고 그 중에서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은 상당히 길다고 한다. 늘 여럿이 모여서 수다와 잡담을 늘어놓으면서 천천히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것을 즐긴다고 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정말로 그렇다.
거기에다 '씨에스타'라고 하는 정해 놓고 낮잠을 즐기는 시간까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하니....... '도대체 일은 언제 하니?'
(마요르 광장)에 도착했다.
마침 (성 이시도르 축제) 기간 중이다. 하긴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연중 각지역에서 성대하게 각종 축제가 열린다. 그중 5월이 가장 대표적인 축제 기간이다.
마드리드의 중요 축제인 (성 이시도르 축제)는 '농부와 서민들을 위한 축제'로 잘 알려져 있다.
평생동안 농부로서의 삶을 살았던 성인이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신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남모르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 청빈한 삶을 살았디만 나그네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그냥 돌려보낸적이 없다. 그런 그에세 신의 축복이 함게하였으니 훗날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졌고 수많은 농부와 소시민들이 그를 기리며 이 기간동안 성대하게 각종 행사를 열어 축제를즐긴다.
성 이시도르 축제를 맞아 마요르 광장에서는 뮤직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었다. 낮에는 락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무대에선 통키타를 둘러멘 아름다운 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광장 주변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노천 카페들마다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식도락을 즐기면서도 무대를 올려다 보면서 지신들만의 방식으로 나름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오늘 야간엔 '국립 관현악단 공식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이런 영광이........ 밤에 꼭 다시 와야지.
직사각형의 드넓은 광장을 붉은색의 4층 건물들이 주위를 뺑 둘러싼 형태의 광장이 마요르 광장이다. 1층은 거의가 카페이고 기념품 매장들이 중간중간에 끼어 있다. 2~4층은 현지인들의 생활주거지다. 빌라 같은것이라 할까.
예전엔 이 주거지 건물의 발코니에서 왕이나 귀족들이 국가의 행사나 투우나 각종 축제를 즐기던 장소였다고 한다. 물론 정치적 탄압의 현장이고 했다.
광장 중앙에 우뚝 선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행사때문에 설치한 가설물들로 그 위용이 뚝 떨어져 보인다.
광장으로 드나드는 9개의 아치형태 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쿠치예로스 문을 통해 계단을 내려가면 아주 아주 오랜전통의 바르와 선술집들이 빼곡하게 길게 늘어선 유명한 쿠차예로스 거리가 나온다.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노천 카페를 가득 채우고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나 오고가는 현지인들과 여행객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절로 여기가 스페인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문화적 자부심이 남달랐던 한 영국인이 이렇게 말했다.
'인도를 준다해도 우리는 결코 세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그러면 인도는 뭐가되지? 아직 인도인의 답변은 듣질 못했다.
그러자 투우 관람에 열중하던 힌 스페인 사람이 건성으로 지나가는 말처럼 톡 쏘아붙였다.
'그렇다면 ....... 우리는 인도에다 세익스피어를 얹어준다고 해도 세르반테스와는 절대로 바꾸지 않겠어.' 그후 아무도 더는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일 중독자였던 펠리페 왕이 순시를 나갔다가 카페나 공원에서 책을 보면서 킥킥대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저놈은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지금 읽는중이군. 틀림없어. 둘 중에 하나야.' 했다고 한다. 시종이 쫓아가 살펴보니 아니나다를까 '돈키호테'를 읽고 있었다.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한한 문학적 자부심이다.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불리며, 고대 그리이스의 대서사시인 호메로스와 단테와 세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위대한 소설가로 인정받고 있다. 더하여 프란츠 카프카나 마크 트웨인은 인류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돈키호테)를 꼽았다.
책 속에서 판타지에만 너무 깊이 파뭍혀 세상에 대한 이치와 사리 분별력을 잃어버린 돈키호테는 스스로를 그가 읽었던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착각하고는, 늙고 병든 말 로시난테를 타고, 참으로 특별한 시종 산초 판사와 함께 세상을 유랑한다. 어디까지나 '기사도의 완성'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그가 행하는 모든짓(모험)은 언제나 실패와 좌절로 끝난다. 하지만 진정한 기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그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은 그들로 하여금 여행(모험)을 계속하게 만든다. 두꺼운 책 한권을 통털어 온통 엉뚱함과 눈물나는 유머로 가득하다.
하지만 유독 나에게만은 가혹했던 소설이 (돈키호테) 였다.
양서와 악서를 가리지 않고 어릴적부터 활자로 찍힌것에 심취하고 열중했던 나에게 유년시절 독후감을 쓰기위해 동화집 (돈키호테)를 펼쳐들었을 때, 내게 남겨진 것은 지독한 실망감 뿐이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작품을 칭찬해도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유치한 억지스런 해프닝으로만 느껴졌다. 하여 나는 중도에서 책을 덮었다. 6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중도에 책을 덮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처음이 바로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를 읽느니 (아라비안 나이트)가 훨씬 재미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이'천일야화'를 사촌형을 따라가 도서관에서 최고급 양장본에 서너권으로 나눠서 제본된 거의 원서인 (아라비안 나이트)를 모두 읽었었다. 그 천일 동안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평소 접하지 못했던 단어와 수식어를 동원해서 만든 문장과 표현력을 어찌 이루말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다녀와서 한동안 방황하던 시기에 고전과 나름 유명하다는 인기 소설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제서야 읽었고, (안나 카레리나)와 (폭풍에 언덕)이 그 시기에 읽은 책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어느날........ 책의 앞표지가 여러장 날라간....... 훼손 상태가 좀 심한 두꺼운 소설 한권이 우연하게 내 손에 들어왔는데........ (돈키호테)였다. 유년의 반갑지 않은 기억이 있었는데다가......... 상태도 형편없지......... 그냥 심심해서........ 그냥 한장 두장 넘겨 보았다.
'이 무슨 해궤망측한 시추에이션.......... 갑자기 디지게 재밌었다면............'
스페인의 어느 도시에나 (스페인 광장)은 항상 있다.
그중에서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이 유별나게유명한 것은 단 한가지 이유때문이다.
바로 세르반테스 기념 동상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 판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청동상 위에 근엄하게 앉아있는 세르반테스가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더운 날시를 무릎쓰고 (스페인 광장)까지 걸어서 같다. 그런데........
아뿔싸.........
스페인 광장이 전면적인 보수공사 중이다.
광장 전체를 안전막으로 철통처럼 감싸고 공사중이다.
작업중인 공사장 인부를 만나 상황을 들었는데도......... ㅎㅎㅎㅎ....... '날짜 잘 못 잡으셨네요';가 전부다.
헐.
허탈.
'이보슈. 세르반테스. 내 소시적부터 당신을 알아봤어. 우린 뭔가 잘 안맞는 모양이유......... ㅎㅎㅎㅎㅎ'
안전망 사이로 펜스 틈새로 겨우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와 산초를 만난다,
헐.
그래도 이게 어디야?
'우린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의 오리지널 세르반테스를 보긴 본거여. 그럼 됐지뭐.'
ㅎㅎ ㅋㅋ 크크........
갑자기 사이비 자유여행자로 전락해 버린듯한 이 기분은 뭐지?
또 헐.
--- 원래는 이래야 했다. (스페인 광장) 구글에서 퍼 옮.
다소 허탈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 정식 체크 인을 했다.
인근의 마을이랑 마켙을 둘러보고 장도 보고 직접 요리를 해서 푸짐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마요르 광장의 이시도르 축제가 클래식 국립 관현악단 무대래.' 챠밍여사의 이 말은 곧 '안갈꺼야?' 라는 뜻이다.
곧바로 우린 날이 저물고 있는 숙소를 나섰다. 어느 분의 지엄하신 하명이라고...........?
날이 저문다는 표현이 좀 그렇다. 한국에서는 여름엔 7시? 겨울엔 5시?
하지만 스페인 포루투갈에서는 사뭇 많이 다르다. 엄청나게 다르다. 밤 9시면 아직 해가 기세를 부리는 시간이다. 9시반은 되어야 저녁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저녁 9시간쯤에 우리가 슬슬 저녁 나들이를 위해 숙소를 나선다는 말이다.
숙소 코앞이 버스 정류장이다. 이곳에서 마요르 광장까지 15분이면 충분하다.
참고로......... 마드리드는 시내버스 이용이 참으로 편리 했다. 노선이 다양하고 단순했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지하철 이용이 편리했다.
물론 내가 이용한 숙소의 위치와 여행 방법들에 비교해 좀 다를 수도 있겠으나, 어떤 경우건 나 라면...... 마드리드는 시내버스, 바르셀로나는 지하철을 이용하겠다.
마요르 광장에서 펼쳐진 클래식 관현악단 공연은 참으로 훌륭했다.
클래식을 참 잘 이해하는 청중들의 반응도 한마디로 원더풀 이었다. 예정된 공연은 앙코르에 앙코르로 이어졌다. 정말 뜨거웠다. 감동이었다.
지방의 소도시인 충주에 살며서 가장 갈급한 것이 문화적인 소외였다.
마지막으로 본 클래식 공연이 청주 공군사관학교 광당에서 본 (테너 박인수 선생님)의 공연이었던것 같다.
예정된 시간은 박인수 선생님이 채우고, 나머지 시간을 본인이 가르치는 제자들의 데뷰 무대로 가득채워주셨던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공연이었다. 감동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한 20년 되었나?
그런데 인구 30만이 안되는 소도시에서는 이런 문화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만은 과거의 서울 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니 어떠했겠는가?
스페인을 대표하는 국립 관현악단이 대표적인 축제에서 행하는 연주라............ 그저 한없이 황홀했을 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교향시 (돈키호테) 작품 35번 연주시에는 일동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진실함으로....... 이런 호사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오늘이 행복했다. 이 여행이 한없이 즐거웠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나 역시 저절로 행복해 진다. 내 고향 충주에도 이런 기회가 좀 자주 있었으면.........'
그리고 마요르 광장의 공연은 모두 끝이 났지만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여흥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스페인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시내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우선 오전중에 왕궁과 시벨레스 광장 부근을 돌아볼 요량이다.
웬만하면 한낮의 뙤약볕은 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마드리드에서 왕궁과 프라도 미술관은 항상 붐비고 길게 줄을 늘어서기 때문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먼저 사바티니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원의 뒤로 웅장한 왕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궁을 보고나면 아마도 이 정원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것같은 느낌에 아예 정원을 먼저 보고나서 왕궁에 가보기로 했다.
사바티니 정원에서 왕궁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300년 전에 있었던 스페인 대화재 사건이 떠올랐다.
이곳은 본래 '카톨릭의 국토회복운동'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안달루시아로 쫓겨갈때까지 이슬람 왕국의 성채가 들어섰던 자리였다. 마드리드를 탈환한 스페인은 이곳을 왕궁으로 삼고 수도를 천도해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1734년 크리스마스에 대화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수많은 유물과 미술품들이 왕궁과 함께 화재로 인해 영원히 사라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페인의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유물과 미술품이 고스란히 사라지고 말았다니.......
그 후 같은 자리에 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으로 장엄하고 웅장한 지금의 왕궁을 지은 것이다.
기마경찰이 매우 인상적인 왕궁에 마침내 도착했다.
헐.
벌써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장사진을 치고 있고, 매표소에서 저만치나 떨어져 있는 알무데나 대성당의 계단까지 길게길게 두줄이나 늘어서 있다.
허니 어쩔것이여?
졸래쫄래 뒤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릴 밖에........(아마도 티켓 구입가지 약 한시간은 줄을 섰던것 같다)
'Palacio Real'
스페인에서는 무조건 (레알)이 붙으면 급(품격. 등급)이 확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아무나 막 가져다 붙이는 (레알)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 (레알)의 원조이자 원산지가 바로 이곳인 것이다.
(스페인 왕궁)
--- 스페인 왕궁과 나머지 마드리드 여행은 다음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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